5천원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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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딸기아부지 작성일08-09-01 18:04 조회3,661회 댓글0건본문
이글은 저희 교회에서 여집사님께서 해주셨는데
너무 좋아서 올려봄니다.^^
* 오천원의 행복 *
오천원으로 사랑을 나눠 가져야 하나
행복을 누려야 하나를 두고 몇날 며칠을 고심했다 .
안교장님 께서 소재를 주실 때는 아마도 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다는 미지근한 답을 가지고 보름 견디었건만 확실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얼마를 가지고 한주를 써야 잘 쓰는 것인지 어떡해 해야
몇 백원의 돈으로 한주를 잘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나는 것인지를 알수없지만
그래도 남들보다는 아니 TV에 나오는 프로그램처럼 계획성있게 탈렌트 처럼
굶어가면서 아껴가면서 무작정 바쁜숨결로 내달리는 시간들을 오천원으로 벌판에 서서 바람이 가는대로 쓰기는 쉽지만 너무도 어렵고 무의미한 일이다.
뇌리속에 남는 오천원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싶건만 ...
돈의 대한 그릇된관념으로 오천원을 만족하게 써보자고 스스로 제안해본다.
아니다
그들과 다른사람들과 달리 정말 유용있게 잘써야 하고 조리있게 아껴쓰는
방법을 터득해서 교우님들께 은헤로운 한시간을 만들어 야 하는데
어찌하면 함께 공유하면서 함께 공조를 하는 시간을 만들어 볼까하는 것이 강권이었다 .
어디서부터 어떡해 시작을 할것인가 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럼 우선 시간속을 걸어 뒤돌아 가보자.
그 옛날 오천 원이 귀하던 시절에
이십 원으로 사탕 사먹고
이백 원으로 삼양라면 사먹고
오십 원으로,
라면 땅 사먹고,
천오백원으로 그렇게 맛있는 자장면 사먹던 시절이 있었다.
나머지는 빵도 사먹었을 것이고
우유도 사먹었건만
학용품이라고는 향나무 연필과 모나미 볼펜이 최고였던 시절
연습장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공책은 이백 원 삼백 원으로 그리운 추억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한
자료들이다.
뒤돌아보면 가슴 시린 날들많다.
그리운 추억이라기보다는 아픈 기억일는지도 모르지만 없던 시절에
오천 원은 지금의 오만원이었다
공감하시는 우리교우님들이 계실 것이다.
그런데 이오천원을 무엇에 무엇으로 써야만 얻어지는 행복한 안식일에 빛나게 할 것인가.........내내 상심이 되어 시릿한 시간들을 보냈다
나는 오천원의 행복을 이렇게 나눠야 한다고 계획을 잡았다.
나에게 단한사람 밖에 없는 사랑하는 예수님께
나를 제일로 사랑하는 내사랑하는 예수님께 천원의 헌금을 드리고
나머지는 시간의 여유를 두고 조금씩 길게 아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쓰도록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다.
식상한 일이지만 당연히 서툴리 써서는 안되는 일이기에 좋은일과 생활하는데 두가지로 나누어 써보려 했다
어느 날 거장 아파트에 외근을 나갔던 적이 있었다.
인터넷 접수를 해달라고 달려오는 휠체어 탄 젊은 청년에 뜨거운 시선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
고등학교 때 무면허로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낫는데 옆에 있던 친구들은 다죽고
혼자만 살아났다고 한다.
휠체어를 탄 청년이 그 후로 내내 밥도 먹지 못한 채 목구멍에 호수를 끼우고 밥도 대소변도 누군가 있어야만 활동이 가능했던 때가 있었고 말도 못하고 손발이 떨리는 증세에 일어설 수 없는 그런 자세로 십년을 살았다고 한다.
어찌된 사연인지 몰라도 어머니는 도망갔고
할머니의 도움으로 십여 년을 살았는데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세월이 주름으로 남았다는 한스러운 한숨이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휠체어를 탄 청년은 집에서 심심한데 인터넷이나 연결해 달라고 할머니 한데 조르지만 돈이 어딧냐고 호통을 치시는 할머니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했다.
친구도 없는데 인터넷 연결해달라고 휠체어 청년은 조르고 또조른다.
장애 1급으로 사십만원의 보조금 받아서 한달을 생활하는데 안된다는 할머니
불쌍해서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다
저 청년을 어떡해 도와주고 싶은데 방법을 찾지 못해 망설이던 차에 청년이 네게 달라왔다 마음이 아파서 견딜수가 없었다
무슨 일을 해줘도 해주고 싶은데 할수 없는 내가 답답 했다
할수 있는 것은 담배와 음료수를 사달라고 조르는 휠체어 청년에게 사주는 건말고는 더 이상 도움을 줄수가 없었다 .
그렇다
이 사람들을 교회 다니라고 권하고 가까운 교회를 연결해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돈은 당신의 사업을 행하도록 당신의 나라를 세우도록 우리에게 맡겨주신 선물로 여겨야 한다는 말씀 하셨다.”
그들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명함을 건내주었다.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오천원의 행복을 나눠 보자는 의미에서
음료수를 사주고 담배를 사주었다
비록 마음은 아팠지만 무엇인가를 원하는 이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의미로 생각을
바꾸었다
휠체어 청년은 한숨을 내리쉬고 올려쉬며 인터넷 타령을 또한다 .
가슴이 쓰리고 아프게 후벼오는 소리를 낸다
할머니는 무슨 돈이 있어서 인터넷을 연결 하냐고 호통을 치시며 담배를 사준건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하다고 눈을 찡긋하신다.
휠체어 청년에게 삼천원으로 좋은 것은 사주지 못했지만 원하는 것을 사주어서 .
마음의 부담은 가시었고 더 큰것을 해주지 못함이 더 아쉬웠다.
돈의 가치와 오천원의 소중한 자산이 이제 천원으로 바닥의 한계선을 넘어서려 한다 .
아직도 길 한모퉁이에서 망설이고 있다 .
천원으로 우리가족의 행복을 누려 볼 생각이지만 어떡해 잘 써야 할까를 두고 또 고심했다.
아니다 이렇게 쓰자
회사에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
며칠전 회사직원들과 회식을하는 과정에서 “김은영씨 때문에 비싼 소고기를 먹어야 하니까
2차는 황골가서 길거리 커피를 쏘라는 한다.
잘되었다.
직원중에서 교회다니는 것을 좋게 보는 직원에게 이돈은 교회를 다니라는 조건으로 커피를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백원짜리 다섯잔이 딱 맞는다
비록 소고기보다 싼 이백원짜리 커피지만 아주 비싼 커피처럼 의기양양한 자태로 분위기를 마시며 별빛을 친구삼아 음악을 음미하며 싼커피를 비싸게 마시게 해주었다.
“은영씨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오천원으로 사먹는 커피 맛있다고 농담을 하는 직원들보면서 빛과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를 넘나드는 시간인양 기쁘고 행복했다 .
오천원에서 남은 천원....
행복한 시간의 여유를 즐기게 했다 .
비록 희생해서 번돈이거나 땀을 흘려 번돈은 아니지만
오천원이 즐겁고 정말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게 하거나 아니면 기쁨을 주지 않았지만 나 나름대로 잘쓰려 했던 시간들이었다 .
부끄러운 일이지만 행복은 돈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도 전달된다는 것을 알았다
오천으로 인해 사랑을 알았고 지금의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했던 시간들이었는지.........
멀리에서 다가오는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감사의 사랑을 보게 했던 계기었다 ..
자신의 필요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전진하는데 유익하게 쓰라고 감사의 조건을 만들어 주셨다 .
오천원은 돈이 아닌 감사의 티겟이었다.
주님!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이 게시물은 안식일학교님에 의해 2008-09-01 20:36:29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너무 좋아서 올려봄니다.^^
* 오천원의 행복 *
오천원으로 사랑을 나눠 가져야 하나
행복을 누려야 하나를 두고 몇날 며칠을 고심했다 .
안교장님 께서 소재를 주실 때는 아마도 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다는 미지근한 답을 가지고 보름 견디었건만 확실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얼마를 가지고 한주를 써야 잘 쓰는 것인지 어떡해 해야
몇 백원의 돈으로 한주를 잘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나는 것인지를 알수없지만
그래도 남들보다는 아니 TV에 나오는 프로그램처럼 계획성있게 탈렌트 처럼
굶어가면서 아껴가면서 무작정 바쁜숨결로 내달리는 시간들을 오천원으로 벌판에 서서 바람이 가는대로 쓰기는 쉽지만 너무도 어렵고 무의미한 일이다.
뇌리속에 남는 오천원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싶건만 ...
돈의 대한 그릇된관념으로 오천원을 만족하게 써보자고 스스로 제안해본다.
아니다
그들과 다른사람들과 달리 정말 유용있게 잘써야 하고 조리있게 아껴쓰는
방법을 터득해서 교우님들께 은헤로운 한시간을 만들어 야 하는데
어찌하면 함께 공유하면서 함께 공조를 하는 시간을 만들어 볼까하는 것이 강권이었다 .
어디서부터 어떡해 시작을 할것인가 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럼 우선 시간속을 걸어 뒤돌아 가보자.
그 옛날 오천 원이 귀하던 시절에
이십 원으로 사탕 사먹고
이백 원으로 삼양라면 사먹고
오십 원으로,
라면 땅 사먹고,
천오백원으로 그렇게 맛있는 자장면 사먹던 시절이 있었다.
나머지는 빵도 사먹었을 것이고
우유도 사먹었건만
학용품이라고는 향나무 연필과 모나미 볼펜이 최고였던 시절
연습장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공책은 이백 원 삼백 원으로 그리운 추억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한
자료들이다.
뒤돌아보면 가슴 시린 날들많다.
그리운 추억이라기보다는 아픈 기억일는지도 모르지만 없던 시절에
오천 원은 지금의 오만원이었다
공감하시는 우리교우님들이 계실 것이다.
그런데 이오천원을 무엇에 무엇으로 써야만 얻어지는 행복한 안식일에 빛나게 할 것인가.........내내 상심이 되어 시릿한 시간들을 보냈다
나는 오천원의 행복을 이렇게 나눠야 한다고 계획을 잡았다.
나에게 단한사람 밖에 없는 사랑하는 예수님께
나를 제일로 사랑하는 내사랑하는 예수님께 천원의 헌금을 드리고
나머지는 시간의 여유를 두고 조금씩 길게 아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쓰도록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다.
식상한 일이지만 당연히 서툴리 써서는 안되는 일이기에 좋은일과 생활하는데 두가지로 나누어 써보려 했다
어느 날 거장 아파트에 외근을 나갔던 적이 있었다.
인터넷 접수를 해달라고 달려오는 휠체어 탄 젊은 청년에 뜨거운 시선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
고등학교 때 무면허로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낫는데 옆에 있던 친구들은 다죽고
혼자만 살아났다고 한다.
휠체어를 탄 청년이 그 후로 내내 밥도 먹지 못한 채 목구멍에 호수를 끼우고 밥도 대소변도 누군가 있어야만 활동이 가능했던 때가 있었고 말도 못하고 손발이 떨리는 증세에 일어설 수 없는 그런 자세로 십년을 살았다고 한다.
어찌된 사연인지 몰라도 어머니는 도망갔고
할머니의 도움으로 십여 년을 살았는데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세월이 주름으로 남았다는 한스러운 한숨이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휠체어를 탄 청년은 집에서 심심한데 인터넷이나 연결해 달라고 할머니 한데 조르지만 돈이 어딧냐고 호통을 치시는 할머니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했다.
친구도 없는데 인터넷 연결해달라고 휠체어 청년은 조르고 또조른다.
장애 1급으로 사십만원의 보조금 받아서 한달을 생활하는데 안된다는 할머니
불쌍해서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다
저 청년을 어떡해 도와주고 싶은데 방법을 찾지 못해 망설이던 차에 청년이 네게 달라왔다 마음이 아파서 견딜수가 없었다
무슨 일을 해줘도 해주고 싶은데 할수 없는 내가 답답 했다
할수 있는 것은 담배와 음료수를 사달라고 조르는 휠체어 청년에게 사주는 건말고는 더 이상 도움을 줄수가 없었다 .
그렇다
이 사람들을 교회 다니라고 권하고 가까운 교회를 연결해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돈은 당신의 사업을 행하도록 당신의 나라를 세우도록 우리에게 맡겨주신 선물로 여겨야 한다는 말씀 하셨다.”
그들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명함을 건내주었다.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오천원의 행복을 나눠 보자는 의미에서
음료수를 사주고 담배를 사주었다
비록 마음은 아팠지만 무엇인가를 원하는 이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의미로 생각을
바꾸었다
휠체어 청년은 한숨을 내리쉬고 올려쉬며 인터넷 타령을 또한다 .
가슴이 쓰리고 아프게 후벼오는 소리를 낸다
할머니는 무슨 돈이 있어서 인터넷을 연결 하냐고 호통을 치시며 담배를 사준건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하다고 눈을 찡긋하신다.
휠체어 청년에게 삼천원으로 좋은 것은 사주지 못했지만 원하는 것을 사주어서 .
마음의 부담은 가시었고 더 큰것을 해주지 못함이 더 아쉬웠다.
돈의 가치와 오천원의 소중한 자산이 이제 천원으로 바닥의 한계선을 넘어서려 한다 .
아직도 길 한모퉁이에서 망설이고 있다 .
천원으로 우리가족의 행복을 누려 볼 생각이지만 어떡해 잘 써야 할까를 두고 또 고심했다.
아니다 이렇게 쓰자
회사에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
며칠전 회사직원들과 회식을하는 과정에서 “김은영씨 때문에 비싼 소고기를 먹어야 하니까
2차는 황골가서 길거리 커피를 쏘라는 한다.
잘되었다.
직원중에서 교회다니는 것을 좋게 보는 직원에게 이돈은 교회를 다니라는 조건으로 커피를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백원짜리 다섯잔이 딱 맞는다
비록 소고기보다 싼 이백원짜리 커피지만 아주 비싼 커피처럼 의기양양한 자태로 분위기를 마시며 별빛을 친구삼아 음악을 음미하며 싼커피를 비싸게 마시게 해주었다.
“은영씨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오천원으로 사먹는 커피 맛있다고 농담을 하는 직원들보면서 빛과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를 넘나드는 시간인양 기쁘고 행복했다 .
오천원에서 남은 천원....
행복한 시간의 여유를 즐기게 했다 .
비록 희생해서 번돈이거나 땀을 흘려 번돈은 아니지만
오천원이 즐겁고 정말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게 하거나 아니면 기쁨을 주지 않았지만 나 나름대로 잘쓰려 했던 시간들이었다 .
부끄러운 일이지만 행복은 돈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도 전달된다는 것을 알았다
오천으로 인해 사랑을 알았고 지금의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했던 시간들이었는지.........
멀리에서 다가오는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감사의 사랑을 보게 했던 계기었다 ..
자신의 필요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전진하는데 유익하게 쓰라고 감사의 조건을 만들어 주셨다 .
오천원은 돈이 아닌 감사의 티겟이었다.
주님!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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