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가 해설 베스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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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식일학교 작성일08-12-26 11:31 조회8,166회 댓글0건본문
제 목: 찬미가 해설 베스트5
(찬미가의 작사 작곡 배경 연구)
목 적
우리가 익히 하는 몇 곡의 찬미가가 지어진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그 찬미가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함이다.
주제 성구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준비 사항
해당 찬미가 가사를 파워포인트로 준비해 둔다. 가능하면 내용과 관련된 사진 자료를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함께 띄워준다.
진행 방법
찬양대장이나 지휘자가 이 순서를 진행하면 가장 좋다. 소개된 5곡 중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만 2곡이나 3곡만 해도 괜찮다.
순서 진행
< 찬미가 520장 ‘내 구주 예수여’ >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후, 몇몇 루터파 개혁교회가 있었으나 날로 쇠퇴해졌는데, 그 루터파 교회를 슈몰크(Benjamin Schmolck, 1672-1737) 목사가 담임하게 되었다. 36개의 부락이나 되는 광활한 지역에서 단 한군데 루터교회의 담임교역자로서 슈몰크 목사 내외는 대단히 어려운 목회 생활을 했다. 한번 심방을 나가면 할 온종일이 걸려 밤중에 오기가 일쑤였고, 어떤 때는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했다. 그 때 집에는 어린 아이들 밖에 없었다.
1704년 어떤 날 슈몰크 목사 부부가 방문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은 불이 나서 온데 간 데 없고 폐허가 된 잿더미 속에서 소사(燒死)한 어린 아들 형제가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충격을 받은 슈몰크 목사 부부는 한순간 정신을 잃었으나 이내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기도 내용이 바로 우리의 찬미가 520장의 가사이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1절)
< 찬미가 608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
호프만(Elisha Albright Hoffman, 1839-1929)목사는 자신의 고향 미국 펜실베니아의 올위그스버그에서 30마일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레바논의 교회에서 헌신적으로 목회를 했습니다. 그는 설교 준비나 찬송시를 짓기 위해 서재에 있는 시간 외에는 교구의 빈민가의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1894년 이른 봄 어느 날, 한 가난한 집을 방문했습니다. 마침 그 집 부인이 무슨 일엔가 비통해 하면서 집으로 들어서는 호프만 목사를 보자 쓰러질 듯 달려들더니 울부짖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제 죽을 수밖에 없답니다. 어떡하면 좋지요?" 이 때 호프만 목사의 대답은 한마디 간결한 것이었습니다. “예수 앞에 아뢰십시오.”
심방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호프만 목사는 아까 그 가난한 부인에게 자신이 한 말 “예수 앞에 아뢰시오”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편의 찬송 시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그래서 호프만 목사는 단숨에 시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곡까지 붙였습니다. 그래서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의 찬미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찬미는 마태복음 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이 그 배경입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1절)
< 찬미 528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 1820-1915) 여사는 어떤 날 급히 5불 정도의 돈을 채워서 쓸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5불의 돈을 마련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54세의 일생을 그렇게 살아 왔듯이 돈 5불의 필요를 위해 무릎을 꿇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짧은 기도는 어떤 방문객의 초인종 소리에 중지되었습니다. 그 방문객은 다만 크로스비 여사의 집 앞을 지나다가 유명한 찬송작가를 뵙고 인사만 하고 가고자 했던 남자 성도였습니다. 그 성도는 곧 아무 말 없이 작별 악수를 청하고는 크로스비 여사를 떠났습니다. 그 성도가 떠난 뒤 장님인 크로스비 여사는 손끝으로 손에 잡히는 것을 만져보았습니다. 5불의 돈이었습니다. 그 남자 성도가 악수할 때 남기고 간 돈이었습니다.
너무도 놀랍고 감사한 사건을 통해 주님만 의지하고 그 분의 뜻대로 복종하고 살아왔던 지난 일들이 마음에 뜨겁게 느껴져 왔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길(all the way)을 또 그렇게 계속 가리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곧 글을 적어 나갔습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1절)
바로 이렇게 해서 528장의 찬미가가 탄생했습니다. 크로스비 여사는 과부의 딸로 태어나 어렸을 때(2살쯤) 시력을 잃고 평생 동안 맹인으로 살며 찬송시를 무려 8,000수를 작시한 하나님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찬미가에도 무려 23곡이나 들어 있습니다.
< 찬미 506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
히윗(Eliza Edmunds Hewitt, 1851∼1920) 여사는 불량소년을 교화하다가 그 소년으로부터 등뼈를 얻어 맞아 1887년 겨울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장장 7개월 동안 병상에 꼼짝 못하고 누워서 척추의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원래 경건하고 신앙이 굳세었지만, 오래 병상에 누워 대소변까지 받아 내는 투병생활에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매사에 짜증과 자신을 가해한 소년에 대한 증오와 미움에 견딜 수 없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떤 화사한 늦은 봄날 아침, 병실 청소를 하던 청소부인 흑인 여자가 빗자루질을 하면서 흥얼거리며 즐거워하는 모양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따뜻한 봄날 마음대로 밖에 나가지 못하고 있던 히윗 여사가 그 청소부에게 버럭 역정을 내었습니다. "이봐요, 청소부 주제에 뭐가 그리 좋다고 생글거리는 거예요?" 그러자 흑인 청소부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좋지 않다니요. 나에게 닥친 모든 형편과 처지가 찬송으로 바뀔 수 있는 힘을 주님이 주셨으니 즐거울 수밖에요!”
히윗 여사에게는 감전된 듯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렇다. ‘평생 주님의 일을 해온 나에게 이런 시련을 내리시다니’하고 원망만 하지 않았던가!” 깊은 회한과 애통이 그녀의 입술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예수께 의지하는 마음을 매어 답니다. 어떤 병이라도 이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The trusting heart to Jesus cling, Nor any ill forbades: 원문 찬송시 1절)
히윗 여사는 자신의 참회를 원고지에 적어 나갔습니다. “주님을 찬송하면서 내 인생의 앞길이 험악하여도 주님만 따라 가겠네.” 그 이후부터 병상의 투병생활이 기쁨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척추는 치료되었고, 가해 소년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히윗 여사는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어 다시 공립학교의 교편을 잡았고, 나머지의 인생을 청소년들을 교화하는데 바쳤습니다.
히윗 여사가 고통 중에 작시한 찬송시가 바로 오늘 우리의 찬미가 506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입니다.
< 찬미가 395 ‘내 평생에 가는 길’ >
이 찬미가는 Horatio Gates Spafford (호레이시오 게이츠 스패퍼드)가 작사하였고 Philip Paul Bliss (필립 폴 블리스)가 작곡했습니다. Spafford는 19세기의 욥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1873년 11월 15일 예정대로 그 여객선은 출발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이 찬미가의 작시자 호레이시오 게이츠 스패퍼드 교수(Horatio Gates Spafford, 1828―1888)의 부인과 네 딸 타고 있었다. 사실은 스패퍼드 교수도 같이 가기로 하였었으나 얼마 전 시카고의 대화재로 그의 모든 재산이 소실 될 때 그가 회계 집사요, 주일 학교 교사로 받들던 무디 교회도 소실되어 교회 건물 재건과 자기 사업의 뒷정리 및 지불해야 하는 문제 등으로 도저히 같이 떠나지 못하게 되었다. 부인의 건강 회복은 그에게 충격을 준 그 복잡한 환경을 떠나는 것이라는 가정의사의 권고를 생각할 때 도저히 연기할 수가 없었고, 더욱이 당시 가장 호화선으로 알려진 여객선에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동행하게 되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인과 아이들을 먼저 출발시키고 수일 내로 그들의 뒤를 따라 가서 프랑스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기쁨이 가득한 승객들을 태운 배는 1주 동안 순항하다가 11월 22일 새벽 2시 많은 생령(生靈)들이 다 꿈나라로 가 있는 동안에 영국의 철갑선 로천(Lochearn) 호와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그토록 호화스럽던 여객선은 기울기 시작하더니 30분도 못되어 226명의 목숨을 실은 채 가라앉고 말았다. 배가 침몰하기 전 스패퍼드 부인은 그 수라장 속에서 네 아이를 이끌고 갑판 위로 올라와 무릎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 사랑하는 네 아이들의 목숨을 건져 주소서! 그러나 그들이 죽는 것이 당신의 뜻이옵거든 우리는 기꺼이 죽음을 택하게 하소서...”
간절한 기도를 정신없이 드리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그 와중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배와 더불어 물속에 잠겼고, 스패퍼드 부인은 실신하여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익사 직전에 기적적으로 로천 호의 구명정이 구조하였다.
전보를 들은 스패퍼드 교수는 정신이 아득하기만 했다. 이제 프랑스에서 만나자는 약속의 키스는 이별의 키스가 되었고 다시는 사랑하는 그 애들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의 교회 가까운 친구들은 이 비보(悲報)를 듣고 달려와 그를 위로하였다. 이 때 그는 “내게 어떤 희생이 닥쳐와도 주님을 의지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I am so glad to trust the Lord when it will cost me something)” 라고 하며 위로하러 온 교우들에게 답했다. 그는 네 아이를 잃고 허둥대고 있을 부인을 생각하며 곧 그를 데리러 영국으로 가기로 했다.
12월 초 그가 가장 빠른 선편으로 영국으로 가는데 어느 날 그가 타고 가던 배의 선장이 스패퍼드 교수를 그의 선실로 초대했다. 거기서 선장은 “지금 우리는 당신의 아이들이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한 그 위를 통과하는 중입니다.” 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스패퍼드는 자기의 선실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씨름이 시작되었다. (창 32장)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기에게 어찌하여 그토록 큰 시련을 주느냐고 따졌다. 그 많은 재산을 다 쓸어가고 무엇이 부족하여 사랑하는 네 아이들마저 데려가느냐고 따졌다. 하나님은 자기를 버리신 것이 아니냐고 캐물었다. 하나님이 진정 살아계신다면 어찌 그리도 가혹한 일을 하실 수 있느냐고 따졌다.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심한 갈등과 의심과 불안과 공포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는 밤이 되도록 울부짖었다. 해답을 얻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가 울부짖는 순간 네 아이의 환상은 활동사진을 보는 듯 차례로 지나갔다. 그의 마음에는 심한 폭풍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렇게 밤 자정이 훨씬 넘도록 울부짖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그토록 걷잡을 수 없었던 심한 폭풍이 잔잔해지는 순간 세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평화가 그를 감싸 안았다. 주위가 지극히 고요하면 아주 작은 소리라도 들을 수 있고, 우리의 영혼이 지극히 잔잔하면 하나님이 속삭이는 작은 음성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은 한 시로 응답해 주셨으니 그 시가 바로 여기에 소개하는 “내 영혼 평안해. (It is well with my soul)”인 것이다. 이곳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은 교수는 이 곡을 작사하여 많은 이들로 하여금 부르게 했고 이 곡을 부를 때마다 많은 이들이 삶의 위안을 얻고 평화를 얻는다고 합니다.
(찬미가의 작사 작곡 배경 연구)
목 적
우리가 익히 하는 몇 곡의 찬미가가 지어진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그 찬미가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함이다.
주제 성구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준비 사항
해당 찬미가 가사를 파워포인트로 준비해 둔다. 가능하면 내용과 관련된 사진 자료를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함께 띄워준다.
진행 방법
찬양대장이나 지휘자가 이 순서를 진행하면 가장 좋다. 소개된 5곡 중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만 2곡이나 3곡만 해도 괜찮다.
순서 진행
< 찬미가 520장 ‘내 구주 예수여’ >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후, 몇몇 루터파 개혁교회가 있었으나 날로 쇠퇴해졌는데, 그 루터파 교회를 슈몰크(Benjamin Schmolck, 1672-1737) 목사가 담임하게 되었다. 36개의 부락이나 되는 광활한 지역에서 단 한군데 루터교회의 담임교역자로서 슈몰크 목사 내외는 대단히 어려운 목회 생활을 했다. 한번 심방을 나가면 할 온종일이 걸려 밤중에 오기가 일쑤였고, 어떤 때는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했다. 그 때 집에는 어린 아이들 밖에 없었다.
1704년 어떤 날 슈몰크 목사 부부가 방문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은 불이 나서 온데 간 데 없고 폐허가 된 잿더미 속에서 소사(燒死)한 어린 아들 형제가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충격을 받은 슈몰크 목사 부부는 한순간 정신을 잃었으나 이내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기도 내용이 바로 우리의 찬미가 520장의 가사이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1절)
< 찬미가 608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
호프만(Elisha Albright Hoffman, 1839-1929)목사는 자신의 고향 미국 펜실베니아의 올위그스버그에서 30마일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레바논의 교회에서 헌신적으로 목회를 했습니다. 그는 설교 준비나 찬송시를 짓기 위해 서재에 있는 시간 외에는 교구의 빈민가의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1894년 이른 봄 어느 날, 한 가난한 집을 방문했습니다. 마침 그 집 부인이 무슨 일엔가 비통해 하면서 집으로 들어서는 호프만 목사를 보자 쓰러질 듯 달려들더니 울부짖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제 죽을 수밖에 없답니다. 어떡하면 좋지요?" 이 때 호프만 목사의 대답은 한마디 간결한 것이었습니다. “예수 앞에 아뢰십시오.”
심방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호프만 목사는 아까 그 가난한 부인에게 자신이 한 말 “예수 앞에 아뢰시오”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편의 찬송 시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그래서 호프만 목사는 단숨에 시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곡까지 붙였습니다. 그래서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의 찬미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찬미는 마태복음 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이 그 배경입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1절)
< 찬미 528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 1820-1915) 여사는 어떤 날 급히 5불 정도의 돈을 채워서 쓸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5불의 돈을 마련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54세의 일생을 그렇게 살아 왔듯이 돈 5불의 필요를 위해 무릎을 꿇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짧은 기도는 어떤 방문객의 초인종 소리에 중지되었습니다. 그 방문객은 다만 크로스비 여사의 집 앞을 지나다가 유명한 찬송작가를 뵙고 인사만 하고 가고자 했던 남자 성도였습니다. 그 성도는 곧 아무 말 없이 작별 악수를 청하고는 크로스비 여사를 떠났습니다. 그 성도가 떠난 뒤 장님인 크로스비 여사는 손끝으로 손에 잡히는 것을 만져보았습니다. 5불의 돈이었습니다. 그 남자 성도가 악수할 때 남기고 간 돈이었습니다.
너무도 놀랍고 감사한 사건을 통해 주님만 의지하고 그 분의 뜻대로 복종하고 살아왔던 지난 일들이 마음에 뜨겁게 느껴져 왔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길(all the way)을 또 그렇게 계속 가리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곧 글을 적어 나갔습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1절)
바로 이렇게 해서 528장의 찬미가가 탄생했습니다. 크로스비 여사는 과부의 딸로 태어나 어렸을 때(2살쯤) 시력을 잃고 평생 동안 맹인으로 살며 찬송시를 무려 8,000수를 작시한 하나님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찬미가에도 무려 23곡이나 들어 있습니다.
< 찬미 506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
히윗(Eliza Edmunds Hewitt, 1851∼1920) 여사는 불량소년을 교화하다가 그 소년으로부터 등뼈를 얻어 맞아 1887년 겨울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장장 7개월 동안 병상에 꼼짝 못하고 누워서 척추의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원래 경건하고 신앙이 굳세었지만, 오래 병상에 누워 대소변까지 받아 내는 투병생활에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매사에 짜증과 자신을 가해한 소년에 대한 증오와 미움에 견딜 수 없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떤 화사한 늦은 봄날 아침, 병실 청소를 하던 청소부인 흑인 여자가 빗자루질을 하면서 흥얼거리며 즐거워하는 모양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따뜻한 봄날 마음대로 밖에 나가지 못하고 있던 히윗 여사가 그 청소부에게 버럭 역정을 내었습니다. "이봐요, 청소부 주제에 뭐가 그리 좋다고 생글거리는 거예요?" 그러자 흑인 청소부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좋지 않다니요. 나에게 닥친 모든 형편과 처지가 찬송으로 바뀔 수 있는 힘을 주님이 주셨으니 즐거울 수밖에요!”
히윗 여사에게는 감전된 듯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렇다. ‘평생 주님의 일을 해온 나에게 이런 시련을 내리시다니’하고 원망만 하지 않았던가!” 깊은 회한과 애통이 그녀의 입술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예수께 의지하는 마음을 매어 답니다. 어떤 병이라도 이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The trusting heart to Jesus cling, Nor any ill forbades: 원문 찬송시 1절)
히윗 여사는 자신의 참회를 원고지에 적어 나갔습니다. “주님을 찬송하면서 내 인생의 앞길이 험악하여도 주님만 따라 가겠네.” 그 이후부터 병상의 투병생활이 기쁨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척추는 치료되었고, 가해 소년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히윗 여사는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어 다시 공립학교의 교편을 잡았고, 나머지의 인생을 청소년들을 교화하는데 바쳤습니다.
히윗 여사가 고통 중에 작시한 찬송시가 바로 오늘 우리의 찬미가 506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입니다.
< 찬미가 395 ‘내 평생에 가는 길’ >
이 찬미가는 Horatio Gates Spafford (호레이시오 게이츠 스패퍼드)가 작사하였고 Philip Paul Bliss (필립 폴 블리스)가 작곡했습니다. Spafford는 19세기의 욥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1873년 11월 15일 예정대로 그 여객선은 출발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이 찬미가의 작시자 호레이시오 게이츠 스패퍼드 교수(Horatio Gates Spafford, 1828―1888)의 부인과 네 딸 타고 있었다. 사실은 스패퍼드 교수도 같이 가기로 하였었으나 얼마 전 시카고의 대화재로 그의 모든 재산이 소실 될 때 그가 회계 집사요, 주일 학교 교사로 받들던 무디 교회도 소실되어 교회 건물 재건과 자기 사업의 뒷정리 및 지불해야 하는 문제 등으로 도저히 같이 떠나지 못하게 되었다. 부인의 건강 회복은 그에게 충격을 준 그 복잡한 환경을 떠나는 것이라는 가정의사의 권고를 생각할 때 도저히 연기할 수가 없었고, 더욱이 당시 가장 호화선으로 알려진 여객선에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동행하게 되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인과 아이들을 먼저 출발시키고 수일 내로 그들의 뒤를 따라 가서 프랑스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기쁨이 가득한 승객들을 태운 배는 1주 동안 순항하다가 11월 22일 새벽 2시 많은 생령(生靈)들이 다 꿈나라로 가 있는 동안에 영국의 철갑선 로천(Lochearn) 호와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그토록 호화스럽던 여객선은 기울기 시작하더니 30분도 못되어 226명의 목숨을 실은 채 가라앉고 말았다. 배가 침몰하기 전 스패퍼드 부인은 그 수라장 속에서 네 아이를 이끌고 갑판 위로 올라와 무릎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 사랑하는 네 아이들의 목숨을 건져 주소서! 그러나 그들이 죽는 것이 당신의 뜻이옵거든 우리는 기꺼이 죽음을 택하게 하소서...”
간절한 기도를 정신없이 드리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그 와중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배와 더불어 물속에 잠겼고, 스패퍼드 부인은 실신하여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익사 직전에 기적적으로 로천 호의 구명정이 구조하였다.
전보를 들은 스패퍼드 교수는 정신이 아득하기만 했다. 이제 프랑스에서 만나자는 약속의 키스는 이별의 키스가 되었고 다시는 사랑하는 그 애들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의 교회 가까운 친구들은 이 비보(悲報)를 듣고 달려와 그를 위로하였다. 이 때 그는 “내게 어떤 희생이 닥쳐와도 주님을 의지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I am so glad to trust the Lord when it will cost me something)” 라고 하며 위로하러 온 교우들에게 답했다. 그는 네 아이를 잃고 허둥대고 있을 부인을 생각하며 곧 그를 데리러 영국으로 가기로 했다.
12월 초 그가 가장 빠른 선편으로 영국으로 가는데 어느 날 그가 타고 가던 배의 선장이 스패퍼드 교수를 그의 선실로 초대했다. 거기서 선장은 “지금 우리는 당신의 아이들이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한 그 위를 통과하는 중입니다.” 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스패퍼드는 자기의 선실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씨름이 시작되었다. (창 32장)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기에게 어찌하여 그토록 큰 시련을 주느냐고 따졌다. 그 많은 재산을 다 쓸어가고 무엇이 부족하여 사랑하는 네 아이들마저 데려가느냐고 따졌다. 하나님은 자기를 버리신 것이 아니냐고 캐물었다. 하나님이 진정 살아계신다면 어찌 그리도 가혹한 일을 하실 수 있느냐고 따졌다.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심한 갈등과 의심과 불안과 공포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는 밤이 되도록 울부짖었다. 해답을 얻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가 울부짖는 순간 네 아이의 환상은 활동사진을 보는 듯 차례로 지나갔다. 그의 마음에는 심한 폭풍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렇게 밤 자정이 훨씬 넘도록 울부짖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그토록 걷잡을 수 없었던 심한 폭풍이 잔잔해지는 순간 세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평화가 그를 감싸 안았다. 주위가 지극히 고요하면 아주 작은 소리라도 들을 수 있고, 우리의 영혼이 지극히 잔잔하면 하나님이 속삭이는 작은 음성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하나님은 한 시로 응답해 주셨으니 그 시가 바로 여기에 소개하는 “내 영혼 평안해. (It is well with my soul)”인 것이다. 이곳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은 교수는 이 곡을 작사하여 많은 이들로 하여금 부르게 했고 이 곡을 부를 때마다 많은 이들이 삶의 위안을 얻고 평화를 얻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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