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안식일(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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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9-16 11:51 조회5,856회 댓글0건본문
37. 내 인생의 안식일
◈ 주 제 : 안식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고 감사한다.
◈ 진행방법
1) 안식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교인들이 발표해 본다.
2) 이어서 순서자료의 안식일 성수 경험담을 소개한다.
3)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안식일 성수를 위해 애쓰는 주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한다.
◈ 순서자료
어느 안식일, 당시 교목이셨던 목사님께서 “오늘, 이 안식일이 너무나 행복한 일이나 감사한 일이 있는 사람은 나와서 이야기 해보세요.”라고 하셨다. 몇 명의 고3선배들이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앞에 나가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무엇이 고3인 저들을 행복하게 할까?’.
“오늘은 저의 대학면접일입니다. 오랫동안 준비했고 공부했지만, 저는 안식일을 성수하기 위해, 시험장에 가지 않고 이렇게 교회에 왔습니다. 얼마나 더 큰 축복을 주시려고 저에게 이러한 선택의 시험을 주셨는지, 너무나 기대되고 행복합니다.”
나에게 그 말은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확신할 수 있는 거지?’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가고 싶었던 대학교, 혹시 나중에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그 대학에서 개최하는 과학/수학 경시대회, 여름/겨울 캠프 등 행사라는 행사는 다 다니고, 공부도 그 학교에 맞춰서 한 그 학교에 원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린 후, 면접을 볼 날짜를 받았다. 처음으로 안식일을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왜 갑자기 환하게 웃던 그 선배의 얼굴이 떠오른 걸까?’
안식일이 되었다. 나는 교복을 입고, 학교 교회로 향했다. 조금은 불안하던 마음이 갑자기 평안해 지면서,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그 안식일은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행복하고 평안한 안식일 이었다. 그 후 나는 원하던 학교가 아닌 학교로 진학을 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원하는 학교가 아니라면 등록금이 싸거나 장학금이 후한 학교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ACT 모임을 시작했다. 정말 많은 재림 청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갈구하고, 한국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활동하는지 알게 되었고 회개하게 되었고 배울 수 있었다. 특별히 그 곳에서 나는 안식일을 우선함으로 축복을 받은 선배들을 보게 되었고, 교회를 짓는 데에 자신의 등록금을 드리고도 행복해 하던 선배가 그 다음 학기에 장학금을 받거나 더 큰 축복을 받는 모습이나, 안식일에 중요한 시험이 겹치면 “이러한 시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쁜 마음으로 시험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믿음, 신앙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그런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그것이 전혀 고민거리가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성적이 엉망이 되어도, 그래서 조금 아쉬울 때도 있었지만, 성적보다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대학 졸업이 다가오면서, 나는 다시금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떠한 직장을 가더라도 안식일은 문제가 되겠지, 식생활면에서 눈총을 받겠지. 주 5일 근무라고 적혀 있는 곳을 고르고 골라,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많은 곳에서 안식일을 지키려는 나는 환영 받을 수 없었다. 이력서를 제출한 곳 중 마지막이었던, 연세대학교 심혈관연구소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주 6일인데? 그러면 너는 일요일에 나와. 나 박사 할 때, 삼육대학에서 강의해 보아서 거기 사람들 잘 알아. 술도 안마시고 토요일에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교회 가는 사람들. 재미없는 사람들이지만,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잖아. 그러면 토요일 대신 일요일에 나와서 일 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선배들 덕에 나는 교수님께 처음부터 좋은 인상을 받아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하였다. 일요일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제일 먼저 출근하고,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 주려고 일요일에는 토요일에 일하는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많이 일하곤 했다. 더 이상 일요일은 나에게 주말이 아닌 일주일의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일주일 중 하루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구소선배들의 눈총을 받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이해해주신다던 교수님마저도 안식일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나를 압박하였다.
“널 이해해 보려고 했는데,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우리가 이만큼 양보하면 네가 어느 정도는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니니? 연구소 분위기가 안 좋아져서 안 될 것 같아. 다른 곳 알아보렴.”
그 날부터 나는 다른 곳을 알아보고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두 의 연구소에서 합격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다음날 아침, 교수님께 말씀을 드렸다. 이곳에서 너무나 잘해주시고 도와주셨는데, 이렇게 되어버려 죄송하지만, 저는 어쩔 수 없다고, 언제든 이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오늘부터 다시 일해, 너한테 충격 주면 잘못했다고 그냥 일하게 해달라고 할 줄 알고 한소리인데, 순한 줄 알았더니, 독한 데가 있더라. 지금까지 네가 성실하게 일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아서 다시 받아주는 거야. 너 다른데 가도 이런 식으로 하면 나 말고 누가 받아줄 줄 알아?”
기도가 통했는지. 교수님께서는 나를 BK21 과정으로 추천해 주셔서, 월급도 받으면서 몇 가지 조건이 맞으면 장학금으로 의과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할 수 있는 과정을 추천해주셨다. 그냥 연구원으로 일만 하려던 내게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입학을 하려면 기관토플시험성적과 면접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문제는 두 가지 시험이 다 안식일이라는 것, 기관토플 성적은 공인토플 성적으로 대체 할 수 있어 해결할 수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면접시험이었다. 해결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 학기에는 입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교수님께서는 “사실 네가 그 날은 교회 안가고 시험 보러 올 줄 알고 다른 방법을 안 찾아봤어. 그런데 너 정말 안 왔더라. 생각보다 고집쟁이네.”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 다음 학기가 되자, 교수님께서는 “학교에 정식으로 제출하게 너희 교회 목사님 중에 유명한 목사님 추천서나 편지 하나 받아와.”라고 하셨고, 삼육대학교에 계신 목사님을 통해, 교수님께 편지를 하나 받을 수 있었다. 원래 계획 했던 것보다 한 학기 늦게 입학하게 되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축복을 받아 너무나 감사드렸다. 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번 안식일에 시험을 보게 되어 곤란한 적이 있었으나, 믿음의 선배들이 좋은 선례를 보여 주셔서, 약간의 손해만을 감수하고 시험을 보거나, 레포트로 대체 하여 학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석사학위가 끝마쳐 갈 무렵,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박사과정을 추천하셨고, 너무나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입학원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렸다. 1차는 합격했지만, 2차 면접을 통과해야 최종 합격인데, 면접일은 아직 발표 되지 않았고 ‘추후발표예정’이라고 적혀있었다. 일곱 분의 교수님 앞에 앉아 약 30분간 이어지는 질의응답식의 면접시험으로 보통은 면접에 많은 시간을 준비하지만 나는 시험 날짜가 안식일이 아니길 기도했다. 하지만, 시험날짜는 예년과 다름없이 안식일이었다. 안식일에는 시험을 볼 수 없다고 지도교수님께 말씀 드렸더니, 학과에 부탁은 드려 보겠지만, 시험을 따로 보거나 날짜를 바꿀 수 있을지는 확답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다음 날 학과사무실에는 면접일 전 날인, 금요일 오후에 면접 시간을 잡아 보겠다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일곱 분의 교수님 중 최소 다섯 분 이상이 오셔야 시험이 진행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있었다. 면접시간은 3시 30분, 20분전부터 대기실에 앉아 다섯 분이상이 오시길 기도했다. 그리고 30분이 되어 면접 장소에 들어갔을 때는 네 분의 교수님이 앉아계셨다. ‘안되는구나..’ 라는 생각에 실망하고 있을 때, 한 교수님이 헐레벌떡 들어오셨다.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져, 감사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것을 모두 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3월 입학을 확정 받았다. 나라 정책에 따라 BK21은 학생의 입학년도에 따라 제도가 바뀌는데, 3월 입학을 앞둔 2월말 어느 날, 2009년 박사입학생은 전액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 전에는 기관토플 시험 성적에 따라 차등 지급되었기 때문에, 안식일에 이뤄지는 기관토플을 보지 않았던 나는 장학금을 등록금의 70%만 받았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석사입학이 한 학기 늦춰졌던 이유를 이렇게 알게 하시나? 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기도를 드렸다.
사실 그 외에도 여러 번 안식일에 중요한 시험이나, 면접 등이 나의 길을 막는 것처럼 보였다. 그 뿐 아니라 함께 식사를 하거나 모임이나 활동을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언제나 선택의 기로가 있었고 그 때마다 같은 선택을 하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으려 노력했다. 함께 일할 때는 나의 신앙을 존중해 주는 것 같다가 안식일 문제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본다고 이야기 하는 선배나 동기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팠던 적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언제나 가장 좋은 것으로 준비해두시고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흔들리는 마음과 손을 굳게 잡으시고 준비해두신 축복을 보여 주실 것을 믿으며 기도하며 선택하면, 나에게 가장 필요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일이 더욱 기대가 된다. -한국삼육고등학교 졸업생 차민지
◈ 주 제 : 안식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고 감사한다.
◈ 진행방법
1) 안식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교인들이 발표해 본다.
2) 이어서 순서자료의 안식일 성수 경험담을 소개한다.
3)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안식일 성수를 위해 애쓰는 주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한다.
◈ 순서자료
어느 안식일, 당시 교목이셨던 목사님께서 “오늘, 이 안식일이 너무나 행복한 일이나 감사한 일이 있는 사람은 나와서 이야기 해보세요.”라고 하셨다. 몇 명의 고3선배들이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앞에 나가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무엇이 고3인 저들을 행복하게 할까?’.
“오늘은 저의 대학면접일입니다. 오랫동안 준비했고 공부했지만, 저는 안식일을 성수하기 위해, 시험장에 가지 않고 이렇게 교회에 왔습니다. 얼마나 더 큰 축복을 주시려고 저에게 이러한 선택의 시험을 주셨는지, 너무나 기대되고 행복합니다.”
나에게 그 말은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확신할 수 있는 거지?’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가고 싶었던 대학교, 혹시 나중에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그 대학에서 개최하는 과학/수학 경시대회, 여름/겨울 캠프 등 행사라는 행사는 다 다니고, 공부도 그 학교에 맞춰서 한 그 학교에 원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린 후, 면접을 볼 날짜를 받았다. 처음으로 안식일을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왜 갑자기 환하게 웃던 그 선배의 얼굴이 떠오른 걸까?’
안식일이 되었다. 나는 교복을 입고, 학교 교회로 향했다. 조금은 불안하던 마음이 갑자기 평안해 지면서,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그 안식일은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행복하고 평안한 안식일 이었다. 그 후 나는 원하던 학교가 아닌 학교로 진학을 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원하는 학교가 아니라면 등록금이 싸거나 장학금이 후한 학교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ACT 모임을 시작했다. 정말 많은 재림 청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갈구하고, 한국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활동하는지 알게 되었고 회개하게 되었고 배울 수 있었다. 특별히 그 곳에서 나는 안식일을 우선함으로 축복을 받은 선배들을 보게 되었고, 교회를 짓는 데에 자신의 등록금을 드리고도 행복해 하던 선배가 그 다음 학기에 장학금을 받거나 더 큰 축복을 받는 모습이나, 안식일에 중요한 시험이 겹치면 “이러한 시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쁜 마음으로 시험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믿음, 신앙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그런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그것이 전혀 고민거리가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성적이 엉망이 되어도, 그래서 조금 아쉬울 때도 있었지만, 성적보다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대학 졸업이 다가오면서, 나는 다시금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떠한 직장을 가더라도 안식일은 문제가 되겠지, 식생활면에서 눈총을 받겠지. 주 5일 근무라고 적혀 있는 곳을 고르고 골라,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많은 곳에서 안식일을 지키려는 나는 환영 받을 수 없었다. 이력서를 제출한 곳 중 마지막이었던, 연세대학교 심혈관연구소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주 6일인데? 그러면 너는 일요일에 나와. 나 박사 할 때, 삼육대학에서 강의해 보아서 거기 사람들 잘 알아. 술도 안마시고 토요일에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교회 가는 사람들. 재미없는 사람들이지만,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잖아. 그러면 토요일 대신 일요일에 나와서 일 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선배들 덕에 나는 교수님께 처음부터 좋은 인상을 받아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하였다. 일요일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제일 먼저 출근하고,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 주려고 일요일에는 토요일에 일하는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많이 일하곤 했다. 더 이상 일요일은 나에게 주말이 아닌 일주일의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일주일 중 하루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구소선배들의 눈총을 받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이해해주신다던 교수님마저도 안식일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나를 압박하였다.
“널 이해해 보려고 했는데,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우리가 이만큼 양보하면 네가 어느 정도는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니니? 연구소 분위기가 안 좋아져서 안 될 것 같아. 다른 곳 알아보렴.”
그 날부터 나는 다른 곳을 알아보고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두 의 연구소에서 합격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다음날 아침, 교수님께 말씀을 드렸다. 이곳에서 너무나 잘해주시고 도와주셨는데, 이렇게 되어버려 죄송하지만, 저는 어쩔 수 없다고, 언제든 이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오늘부터 다시 일해, 너한테 충격 주면 잘못했다고 그냥 일하게 해달라고 할 줄 알고 한소리인데, 순한 줄 알았더니, 독한 데가 있더라. 지금까지 네가 성실하게 일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아서 다시 받아주는 거야. 너 다른데 가도 이런 식으로 하면 나 말고 누가 받아줄 줄 알아?”
기도가 통했는지. 교수님께서는 나를 BK21 과정으로 추천해 주셔서, 월급도 받으면서 몇 가지 조건이 맞으면 장학금으로 의과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할 수 있는 과정을 추천해주셨다. 그냥 연구원으로 일만 하려던 내게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입학을 하려면 기관토플시험성적과 면접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문제는 두 가지 시험이 다 안식일이라는 것, 기관토플 성적은 공인토플 성적으로 대체 할 수 있어 해결할 수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면접시험이었다. 해결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 학기에는 입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교수님께서는 “사실 네가 그 날은 교회 안가고 시험 보러 올 줄 알고 다른 방법을 안 찾아봤어. 그런데 너 정말 안 왔더라. 생각보다 고집쟁이네.”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 다음 학기가 되자, 교수님께서는 “학교에 정식으로 제출하게 너희 교회 목사님 중에 유명한 목사님 추천서나 편지 하나 받아와.”라고 하셨고, 삼육대학교에 계신 목사님을 통해, 교수님께 편지를 하나 받을 수 있었다. 원래 계획 했던 것보다 한 학기 늦게 입학하게 되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축복을 받아 너무나 감사드렸다. 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번 안식일에 시험을 보게 되어 곤란한 적이 있었으나, 믿음의 선배들이 좋은 선례를 보여 주셔서, 약간의 손해만을 감수하고 시험을 보거나, 레포트로 대체 하여 학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석사학위가 끝마쳐 갈 무렵,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박사과정을 추천하셨고, 너무나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입학원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렸다. 1차는 합격했지만, 2차 면접을 통과해야 최종 합격인데, 면접일은 아직 발표 되지 않았고 ‘추후발표예정’이라고 적혀있었다. 일곱 분의 교수님 앞에 앉아 약 30분간 이어지는 질의응답식의 면접시험으로 보통은 면접에 많은 시간을 준비하지만 나는 시험 날짜가 안식일이 아니길 기도했다. 하지만, 시험날짜는 예년과 다름없이 안식일이었다. 안식일에는 시험을 볼 수 없다고 지도교수님께 말씀 드렸더니, 학과에 부탁은 드려 보겠지만, 시험을 따로 보거나 날짜를 바꿀 수 있을지는 확답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다음 날 학과사무실에는 면접일 전 날인, 금요일 오후에 면접 시간을 잡아 보겠다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일곱 분의 교수님 중 최소 다섯 분 이상이 오셔야 시험이 진행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있었다. 면접시간은 3시 30분, 20분전부터 대기실에 앉아 다섯 분이상이 오시길 기도했다. 그리고 30분이 되어 면접 장소에 들어갔을 때는 네 분의 교수님이 앉아계셨다. ‘안되는구나..’ 라는 생각에 실망하고 있을 때, 한 교수님이 헐레벌떡 들어오셨다.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져, 감사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것을 모두 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3월 입학을 확정 받았다. 나라 정책에 따라 BK21은 학생의 입학년도에 따라 제도가 바뀌는데, 3월 입학을 앞둔 2월말 어느 날, 2009년 박사입학생은 전액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 전에는 기관토플 시험 성적에 따라 차등 지급되었기 때문에, 안식일에 이뤄지는 기관토플을 보지 않았던 나는 장학금을 등록금의 70%만 받았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석사입학이 한 학기 늦춰졌던 이유를 이렇게 알게 하시나? 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기도를 드렸다.
사실 그 외에도 여러 번 안식일에 중요한 시험이나, 면접 등이 나의 길을 막는 것처럼 보였다. 그 뿐 아니라 함께 식사를 하거나 모임이나 활동을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언제나 선택의 기로가 있었고 그 때마다 같은 선택을 하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으려 노력했다. 함께 일할 때는 나의 신앙을 존중해 주는 것 같다가 안식일 문제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본다고 이야기 하는 선배나 동기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팠던 적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언제나 가장 좋은 것으로 준비해두시고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흔들리는 마음과 손을 굳게 잡으시고 준비해두신 축복을 보여 주실 것을 믿으며 기도하며 선택하면, 나에게 가장 필요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일이 더욱 기대가 된다. -한국삼육고등학교 졸업생 차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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