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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과 선으로 악을 이김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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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7-12-16 06:10 조회2,1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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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과 선으로 악을 이김

 

 

기억절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첫째 날(일) 너희의 영적 예배

 

*도입질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영적 예배는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룰 수가 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에게 권하는 것은 명령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영적 예배 역시 우리가 스스로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나면서부터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스스로는 영이 원하는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롬8:5-8)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예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영적 예배를 할 수 있도록 도우셔야만 영적 예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 예배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영적 예배니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란 무슨 의미일까요? 성경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걸구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 내용에 의하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롬12:1-2)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즉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아니 오해했던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동안 오해했던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로 인해 오해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원래의 뜻은 요6:40에 있습니다. 아들(예수님)을 보고(십자가에서 보여 진 사랑) 감동으로 인한 신뢰의 관계로 인해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게 되면 하나님의 품성 속에 있는 사랑에 대한 감동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신뢰의 관계가 생명임을 알지 못한 채, 내 스스로 구원을 얻을 만한 행위를 해야 한다는 오해를 하게 됩니다. 이런 오해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오해였습니다.(눅10:25, 마19:16, 마7:22 등등)

 

사람들에게 구원을 위해서 조건을 달거나,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라 십자가에 보여 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품성을 깨달을 때 이르러 오는 감동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믿음으로 굳게 잡음으로 하나님과의 생명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영적 예배입니다. 이런 영적 예배는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품성을 보게 하실 때 그 품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의 반응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둘째 날(월) 지혜롭게 생각하라

 

*도입질문: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과 지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은 지식으로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릅니다. 지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글자대로 생각하는 것이고,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은 글자에 생명력을 입히는 것입니다. 율법을 예로 든다면 율법에 기록된 대로 잘 지켜 행함으로 구원 속에 있고자 하는 것은 지식적으로 생각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 당시에 살던 대부분의 신앙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글자 그대로, 율법의 조문 그대로를 지킴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였지만, 놀랍게도 예수님과는 늘 부딪히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율법과 말씀이 예수님을 증거(요5:39)함에도 불구하고 율법대로,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오히려 예수님과 반대의 입장에 서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지식대로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에는 예수님과의 관계가 전혀 없기 때문에 생명이 없습니다.

 

글자대로의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과 율법을 주신 예수님을 통해 글자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품성 속에서 말씀과 율법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신약에 오셔서 구약에서 기록한 율법대로의 뜻이 예수님의 품성 속에서 생각해보면 전혀 다른 뜻이라는 사실을 예수님은 산상보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마5:38-44) 말씀대로가 아닌, 율법대로가 아닌 그 말씀을 하시고 그 율법을 말씀하신 하나님의 품성 속에서 그 말씀들을 이해하고 생각하고 행할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 됩니다.(마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게 하는 지혜로운 생각이 필요합니다.

 

 

셋째 날(화) 그리스도인과 정부의 관계

 

*도입질문: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속한 곳에서 어떤 모습과 태도로 살아야할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나라의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우리가 살아야 할 가장 기본 되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꿈꾸는 삶은 생명과 연결되는 삶이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소중한 존재들이며, 그 가치가 훼손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이런 삶은 나 뿐 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으로서의 소중한 가치와 행복이 잘 실현되도록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선거를 통해 나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그것들이 실현되는 지를 잘 확인하여야 합니다.

 

한 나라의 시민이 가지고 있는 의무와 권리를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잘 수행하여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행복을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이 잘 누리고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관심을 갖고 행해야 합니다.

 

 

넷째 날(수) 서로 사랑하라

 

*도입질문: 어떻게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서로가 행복할 수 있는 사랑을 우리는 스스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죄의 본성은 이기심과 교만이고, 이기심과 교만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기심과 교만이 채워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것을 빼앗아야만 되는데, 상대방도 나에게 자신의 이기심과 교만을 빼앗기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이기심과 교만이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남을 사랑할 수가 업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없는 것들 명령 형식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 속에서 그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는 약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죄의 본성이 아닌 서로 사랑하는 방법은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하나님으로 인해 감동을 받고 내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해 질 때에만 가능합니다.(요일4:7-8)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가득차서 흘러넘칠 때 우리는 스스로 할 수없는 겸손과 이타적 사랑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인해 행할 수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늘 감동받는 일이 있어야, 그 사랑이 나에게 넘칠 때에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이 될 때 그 사랑이 나를 넘어서 상대방에게까지 전달됩니다.

 

 

다섯째 날(목) 이제 우리의 구원이...

 

*도입질문: 우리의 구원이 가깝다는 인식을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성경은 구원이 하나님 자신임을 증거 합니다.(눅2:30, 요14:6)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나의 창조주와 구원자로 선택하게 함으로 우리 속에서 이미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요5:24, 요일5:12) 우리 속에서 시작된 구원은 구원이신 분이 오시는 재림으로 인해 고정됩니다. 재림은 구원이 오시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이미 시작된 구원이 재림으로 인해 더 이상의 흔들림이 없는 구원으로 고정됩니다.

 

주님의 오심이 가까운 이때가 바로 구원이 바로 우리 앞에 있음을 느끼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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