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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과 약속의 자녀 - 2017년 제4기(로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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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식 작성일17-12-08 10:04 조회1,4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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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과 약속의 자녀 - 2017년 제4기(로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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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과 약속의 자녀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 롬 9:18

 

1. 12월 3일(일) 바울의 부담

 

1)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 출 19:6

 

2)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정해 주신 모든 지역을 점령하도록 되어 있었다. 참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기를 거절한 백성들은 그 땅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품성을 그들에게 나타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이끌려 오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온 세상에 복음의 초청을 보내도록 되어 있었다. 제사 제도의 교훈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만백성 앞에서 높임을 받으시고 그분을 쳐다보는 자는 다 살아야 했다. … 이스라엘 백성의 수효가 증가됨에 따라 저희는 국경선을 점점 넓혀서 마침내 저희의 나라가 온 세계에 미치게 되어야 했다.” - 실물교훈, 290

 

3) 바울은 동족에 대한 사랑과 슬픔을 확언한(롬 9:1~3) 후에, 그들이 거절당한 이유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천명합니다(롬 9:6~13). 또한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하나님 편의 어떠한 불공정함도 없습니다(롬 9:14~29). 잘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거절한 데 있습니다(롬 9:30~10:21).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상태가 가망이 없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의 구원에 대하여(롬 11:1~10), 또한 이방인을 받으심에 대하여(롬 11:11~22절) 말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영광에 대한 증거라고 말합니다(롬 11:33~36). 

 

4) “하나님께서는 항상 당신을 섬기는 남은 무리를 보존하셨다. 아담, 셋, 에녹, 므두셀라, 노아, 셈은 계통을 이어가며 각 시대를 통하여 그분의 뜻을 담은 귀중한 계시들을 보존하였다.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은 이 거룩한 신탁(信託)의 후계자가 되었다. 우상숭배는 사방에서 그를 유혹하였으나 허사였다. 신실치 못한 자들 가운데서도 신실하며, 만연하고 있는 배교에도 부패되지 않은 채 그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끝까지 고수하였다.” - 부조와 선지자, 125

 

5)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 롬 9:8

 

6)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에 생긴 이 구분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참된 자녀 곧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는 것은 단지 육신적 혈통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끌어냅니다. 이것은 유대인에게 이해하기 힘든 교리였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단지 유대인이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신조를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기별은 이방인에게는 희망과 격려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7) “그리스도의 선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영혼에게 미치기에 풍족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큰 선물이신 분을 받아들일 사람의 수효를 초과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제한이 있을 수 없다.” - 시대의 소망, 565

 

2. 12월 4일(월) 택함을 받음

 

1)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 롬 9:12~13

 

2) 야곱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대리자가 될 민족의 선조로서 택함 받은 것이 결코 그의 형이 멸망 받도록 택함 받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바울은 유대인에게 잘 알려진 역사인 이삭과 이스마엘,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를 언급함으로써, 단순한 행위나 택함 받은 민족의 혈통적 가족이 되는 것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은총과 특권으로 복 주실 의무를 갖게 만들거나 그렇게 하도록 속박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강조하고자 노력합니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언약 관계를 오해하고 남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이 점을 강력하게 강조하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3)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모든 이에게 값없이 주어집니다. 우리 모두는 멸망이 아닌 구원을 받도록 선택되었습니다(엡 1:4~5, 벧후 1:10).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의 약속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아닌 우리 자신의 선택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모든 영혼이 영생에 이르도록 택함을 입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셨는데 그것은 죄인을 의롭게 하고 순종으로 이끄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4)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불공정하게 행하지 않으신다. 세상을 위한 당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교회를 부르신 일에서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은 택하고 에돔인들과 이스마엘 사람들은 거절했을 때 처음 사용한 것과 동일한 원칙을 따르신다.”- 재림교회주석 11권, 709

 

5)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천국의 축복을 누리도록 분명히 택함을 입었다고 생각하면서 종말을 바라본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계시하는 택함이 아니다. 인간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갑옷을 입도록,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사단이 그의 영혼을 앞잡이로 삼으려고 하는 동안에 모든 거룩하지 못한 정욕을 거스려 싸울 수 있도록 그의 수중에 놓아두신 하나님의 방법들을 사용하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깨어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고, 시험에 들어가는 것을 피해 가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 순종함으로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도록 택함을 입었다. 이것이 성경의 택함이다.” - 목사와 복음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453~454

 

3. 12월 5일(화) 신비들

 

1)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 이사야 55:8~9

 

2) “하나님은 너무도 지혜로우사 과오를 범치 아니하시고, 너무도 선하사 정직하게 행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 주시기를 금하지 않으신다.” - 정로의 계단, 96

 

3)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 롬 9:17~18

 

4) “바로의 마음은 한층 더 굳어졌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바로에게 기별을 보내어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네 마음과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너로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알게 하리라…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고 선포하셨다.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위하여 그를 세상에 나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정하신 바로 그 때에 그가 보좌에 오르도록 사건들을 지배하셨던 것이다. 이 교만한 폭군은 그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잃어버렸지만 그의 생명은 보존되었다. 이는 그의 강퍅함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 당신의 기사를 나타내시고자 하심이었다. 사건들을 처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속한다. 하나님께서는 힘있게 나타나는 당신의 능력을 감히 저항하지 않을 더 인자한 왕을 보좌에 앉히실 수도 있으셨으나 그렇게 했을 경우에는 여호와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초자연적 능력이 행사되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당신의 능력에 대한 아주 분명하고 놀라운 증거를 주셨다. 그러나 왕은 완고하게 그 빛을 거절하고 그것에 유의하지 않았다. 그가 거절한 무한한 능력이 나타날 때마다 그의 반역은 더욱 굳어지고 결정적이 되었다. 그가 맨 처음 표적을 거절할 때에 심은 반역의 씨들은 결실을 거두었다. 바로의 마음은 그의 완고함이 한 단계씩 더해지는 자신의 길을 계속 추구해 감에 따라 점점 더 굳어져서, 마침내 그는 죽은 그의 맏아들의 싸늘한 얼굴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며, 주의와 경고를 주시고 죄를 견책하신다. 그분은 각 사람에게 그들의 그릇된 행위가 품성에 고착되기 전에 그것들을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만일 그가 시정받기를 거절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은 그의 행동의 경향을 제시하기 위하여 개입하지 않는다. 그는 같은 길을 되풀이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성령의 감화에 대항하여 마음을 굳게 하고 있다. 계속 빛을 거절하면 그는 더욱 강력한 감화력도 영구적으로 감명을 주지 못하는 곳에 자신을 두게 된다.” - 부조와 선지자, 267~269 

 

5) “바로의 경우에 있어서 그 일은 어떠했던가?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고 되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의 현현 가운데서 빛이 반복해서 주어질 때마다 그 말은 되풀이된다. 그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기로 거절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점점 더 굳어지고 하나님의 영에 의한 감동을 덜 받게 되었다.” - 교회증언 5 권, 119

 

6) “하나님의 사랑이 산 원칙으로 심령 속에 있으면 편협하고 국한된 견해는 사라진다.” - 2보감, 98

 

7) “인간의 유한한 정신으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품성이나 그 사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연구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가장 우둔하고 무지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장 열심 있고 교양 있는 사람에게도 거룩하신 하나님은 오묘로 가리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지만,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시 97:2). 우리는 한없는 자비가 무한한 능력에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뿐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능력만큼 그분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전능하신 손과 사랑으로 충만한 그분의 마음에 의뢰할 뿐이다.” - 교육, 169

4. 12월 6일(수) ‘암미’ : 내 백성

 

1)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 로마서 9:25

 

2) 바울은 롬 9:25에서 호 2:23을, 26절에서는 호 1:10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결혼을 통해 다른 신을 좇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의 이름은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거부와 심판을 상징하였습니다. ‘로암미’라는 셋째 자녀의 이름은 문자적으로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호 1:9). 그러나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신 후에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거짓 신들을 제하시며, 그들과 언약을 맺을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호 2:11~19). 그때 ‘로암미’, 즉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이 ‘암미’, 즉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 호세아 2:23

 

4) 호세아 2:23에서 고멜이 낳은 세 자녀의 이름들의 은유적인 의미가 역전되며 회복된 결혼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아름답게 사용되었습니다. 호세아 1:4에서 이스르엘은 “하나님이 흩으실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냈으나, 이곳에서는 하나님께서 “내가 심고”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로루하마, 곧 “사하지 않을 것”이라고(호 1:6) 하시는 대신, 이제는 “긍휼히 여기며”라고 약속하십니다. 로암미 즉 “내 백성이 아니요”(호 1:9) 대신 “너는 내 백성이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5) 우리는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입양되며(롬 9:24~26), 그렇게 됨으로써 영생의 상속자들이 됩니다(요 1:11, 12; 롬 8:14~17; 갈 3:26, 29; 계 21:7; 롬 11장).

 

6) “하나님께서 선택된 국가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행하시려던 당신의 목적을 오늘날 세상에 있는 당신의 교회를 통하여 마침내 성취하실 것이다.” - 선지자와 왕, 713

 

7) “구원에 필요한 큰 진리는 백주(白晝)와 같이 명백히 드러났나니 누구든지 분명히 드러난 하나님의 뜻 대신에 자기 자신의 판단을 따라 행하는 자들 외에는 아무라도 잘못되거나 저희의 길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정로의 계단, 89

 

5. 12월 5일(목) 걸려 넘어짐

 

1)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 롬 9:30~32

 

2) 하나님의 약속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이방인들은 의를 얻은 반면에 많은 유대인들은 의를 얻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의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의를 얻기 위해 노력도 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이방인 사이에 의를 위한 욕망이나 갈망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적인 유대인과 대조적으로 이방인들은 표면상 그것을 구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제공되었을 때 이방이든을 그것을 환영했습니다. 

 

3) 로마서 9:30~31에서 이방인이 좇지는 않으나 얻는다고 묘사되는 것은 “의”입니다(롬 9:30). 그러나 유대인이 좇기는 하지만 얻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의의 법”입니다(롬 9:31). 유대인들은 그들을 의롭게 해줄 원칙을 저들의 도덕적 및 종교적 율법의 체계 속에서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 율법들이 요구하는 대로 살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의의 원칙은 그들이 구하던 의를 만들어 낼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의롭게 해 줄 생애의 원칙을 율법주의적으로 추구함으로 종교적인 법들을 더욱 많이 만들었습니다. 

 

4) “행위를 의지함이라.”(롬 9:32) 유대인들은 행위로 말미암아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롬 2:25~3:20). 의는 오직 믿음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롬 3:21, 22). 

 

5) “…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롬 9:32) 잘못은 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걸려 넘어짐의 원인으로 작용한 사람들의 태도에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으나, 부름을 받은 자들에게는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고전 1:23, 24). 그리스도는 믿음이 없는 자들과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입니다(벧전 2:7, 8). 

 

6) 그리스도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자들에게 의를 주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른 방법으로 구했던 유대인들은 그분과 그분의 기별에 화를 냈습니다. 행위로 말미암아 의를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너무도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들은 구주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마침내는 구주를 살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7)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께서 견고한 기초돌이 되신다. 그들은 반석에 떨어져서 깨어진다. 그리스도께 대한 복종과 그분께 대한 믿음이 이곳에 나타나 있다. 반석에 떨어져 깨어지는 것은 우리의 독선(獨善)을 버리고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하게 그리스도께 나아가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그분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믿는 것이다.” - 시대의 소망,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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