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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약속의 자녀(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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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12-01 09:20 조회1,6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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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14분

 

연구 범위 : 롬 9장

 

기억절 :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8).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롬 9:13, 15).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자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없다면 우리가 믿는 것들은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거나 거부할 자유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이 성경절은 개인의 선택과 상관없이 구원받을 자와 버려질 자들이 정해져 있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답: 여기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맡아 할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구원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답을 얻고 싶다면 바울이 제시하고 있는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바울은 지금 ‘택한’ 자들을 선별하여 사용할 권한이 하나님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복음화 시켜야 할 최종적인 책임을 지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가 뜻하는 자들을 일꾼으로 선택하지 못할 법이 없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그 누구의 구원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그러한 행위는 자유의지의 원칙과 전혀 상충되지 않을 뿐더러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으며,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바라신다는 위대한 진리와도 전혀 충돌되지 않는다.

로마서 9장은 개인의 구원이 아닌 사명으로의 부르심에 관한 것이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니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하나님이 특별한 사명을 수행할 자들을 선택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행하기 :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아 모든 자를 구원하시려는 그분의 사역에 동참한다.

 

➋ 하나님이 구원의 역사 속에서 전체가 아닌 일부를 선택하신 예를 들어 보십시오.

※ 노이와 그 식구들,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

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데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을까요?

※ 그들이 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일꾼을 삼으시는 것이다. 

➍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전체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 예수님이 오셔서 성취하셨다.

➎ 하나님이 마지막 시대에 선택한 남은 무리로서 우리의 사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영원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기 원하시며, 잃은 자들을 찾기 위해 그분의 뜻대로 사람들을 택하여 사용하십니다.

 

 

첫째 날(일) 12월 3일 바울의 부담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6).

 

하나님은 이교 신앙과 흑암, 우상숭배로 기울어져 있는 세상을 복음화 시킬 전도자들을 필요로 하셨다.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셔서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그들로 모범적인 나라가 되게 해서 다른 민족들이 참 하나님께 이끌리도록 계획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그분의 성품을 그들에게 나타내서 그들로 하여금 그분께로 이끌려 오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제사 제도의 교훈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만백성 앞에서 높임을 받으시고 그분을 쳐다보는 자는 다 살아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수효가 증가됨에 따라 그들은 국경선을 점점 넓혀서 마침내 그들의 나라가 온 세계에 미치게 되어야 했다”(실물교훈, 290).

 

1. 롬 9:1~1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바울의 요점은 무엇인가?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롬9:1~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2 (1절에 포함되어 있음)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6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 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10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답: 요점은 하나님의 구원사업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그릇을 선택하신다는 것이다. 인간이 실패했어도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그릇을 사용하여 그 일을 이루신다.

 

바울의 논리에 따르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이 완전히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위해 일하게 하실 남은 무리들을 여전히 두셨다. 남은 무리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남은 자들을 두셨던 사실을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⑴ 하나님은 그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 아브라함의 후손 모두를 선택하시지 않고 오직 이삭의 자손만을 선택하셨다. ⑵ 하나님은 이삭의 후손을 모두 선택하시지 않고 오직 야곱의 자손만을 선택하셨다.

그러나 유업과 조상이 구원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그대가 적자(嫡子) 이고, 적통(嫡統)이며, 남은 교회의 신자일 수도 있지만, 언약 밖에서 멸망할 수도 있다. 누가 “약속의 자녀”인지는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통해 드러난다(롬 9:8).

 

<부가설명> 로마서 9장은 많은 사람들이 예정설을 주장하는 말씀으로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예정은 구원과 멸망의 예정이 아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할 사명을 맡은 그릇으로 예정한 것이다. 인류 중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 예정의 실마리를 푸셨다. 아브라함의 여러 아들 중에 이 사명을 맡은 아들은 이삭이었고 이삭의 두 아들 중에 이 사명을 맡을 사람은 야곱이었다. 야곱의 자손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를 이루게 하시고 그들에게 복음 사업을 맡기셨다. 그러나 그들이 실패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로 구성된 교회에 그 사업을 맡기셨다. 교회가 실패하자 개혁하게 하시고 또 진리를 바르게 드러내지 않자 개혁하게 하셨다. 종국에는 그 여자의 남은 자손들에게 이 사명을 맡기셨다. 사명을 맡는 다는 것이 구원의 보증은 아니다. 그 맡은 사명에 충성하지 않으면 버린바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경고했다.(고전4:2) 오늘날 재림교회가 맡긴 일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수행해야 할 것이다. 구원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 받는 은혜의 선물이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예정한 것이다. 믿지 않으면 구원의 예정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교훈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심은 세상을 구원하는 도구로 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둘째 날(월) 12월 4일 택함을 받음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 9:12~13).

 

이번 주 교과의 서론에서 밝힌 것처럼 바울이 로마서 9장에서 개인의 구원에 관하여 말하고 있지 않음을 알아야 비로소 로마서 9장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은 특정한 개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맡기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야곱의 후손들이 세상을 복음화 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대리자들이 되기를 바라셨다. 이 성경절에서 에서가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암시는 전혀 없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바라신다. 마찬가지로 에서도 구원 받기를 바라셨다.

 

1. 롬 9:14~15을 읽어 보라. 우리는 이것을 12~13절과 함께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롬9:14,15]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9:12,13]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답: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위하여 불러 쓰시는 일꾼, 즉 그릇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는 도구로 가장 합당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불러 쓰신다는 뜻이다.

 

이 역시 개인의 구원에 관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비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딤전 2:4)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딛 2:11)났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역할을 감당할 민족을 선택하실 수 있다. 그들이 그 역할을 거절할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선택까지 방해할 수는 없다. 아무리 원한다고 할지라도 에서는 메시아의 조상 또는 택한 백성의 조상이 될 수 없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이 에서를 구원의 대열에서 배제시키는 독단적인 조치는 아니었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모든 이에게 값없이 주어진다. 우리 모두는 멸망이 아닌 구원을 받도록 선택되었다(엡 1:4~5, 벧후 1:10).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의 약속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아닌 우리 자신의 선택인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들을 위해 죽으셨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모든 영혼이 영생에 이르도록 택함을 입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셨는데 그것은 죄인을 의롭게 하고 순종으로 이끄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부가설명> 앞에서도 말했지만 예정론을 주장하는데 로마서 9장의 말씀을 잘 사용한다. 예정론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고 읽으면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결코 인간 구원에 대한 예정을 가르치는 말씀이 아니다. 자세히 읽으면 하나님의 일을 시키기 위하여 사람을 택하는 것에 대한 말씀인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21절에서 24잘까지 읽으면 이 말씀이 일꾼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말씀인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사람도 무슨 일을 시키기 위하여 거기에 합당한 사람을 선택하여 시킨다. 그렇거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사람 구원하는 사명을 맡기기 위하여 그 일에 가장 합당한 사람을 선택하여 맡기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스마엘이나 에서나 그들은 복음을 맡아 전하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보신 것이다. 애굽의 바로는 당시로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데 적임자였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기 위하여 선택하였다. 바로는 이 선택을 거절한 것이다. 바로가 거절해도 결국 이스라엘은 출애굽 했고 하나님의 능력은 드러났고 영광을 받으신 것이다. 사람이 일꾼으로 선택받을 때에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충성하면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일을 수행하여 능력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대상으로 사람을 예정하시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다만 구원의 방법으로는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된다는 것은 예정된 사실이고 누구는 믿고 누구는 믿지 않도록 미리 정해놓은 것은 결코 아니다.

 

교훈 : 하나님은 어떤 역할을 맡기기 위하여 특정 집단을 선택하신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려 있다.

 

 

셋째 날(화) 12월 5일 신비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1. 롬 9:17~24을 읽어 보라. 지금까지 우리가 읽은 것을 바탕으로 한다면 이 말씀에서 바울의 요점은 무엇인가?

[롬9:17~24]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답: 하나님의 일을 시키기 위한 일꾼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다. 아울러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출애굽 당시 애굽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보면, 그분이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일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애굽의 재앙과 이스라엘의 탈출을 통해 애굽인들과 이방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진정한 신임을 계시하고자 의도하셨다. 그 일들은 열방의 백성들에게 우상을 버리고 그분께 나아와 경배하라고 초대하려는 그분의 계획이었다.

분명 바로는 마음이 강퍅하게 되어 하나님을 거역하기로 결정하였으나 하나님이 그에게서 구원의 기회를 제거하시지는 않았다. 그의 마음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는 호소에 대하여 강퍅해진 것이지, 구원을 받으라는 하나님의 개인적인 호소에 강퍅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와 아론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죽으셨던 것처럼 바로를 위해서도 죽으셨다.

이 모든 것을 두고 봤을 때, 타락한 우리가 세계와 현실 그리고 하나님과 그분의 사역에 대하여 얼마나 편협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연 속에 담겨 있는 신비들도 다 이해할 수 없으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의사들이 수술 전에 손을 씻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불과 171년 전의 일이다. 우리가 얼마나 무지에 깊이 젖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시간이 흘러 미래에 새롭게 발견된 사실들이 오늘날 우리의 무지를 밝히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다. 그분은 전능하시다. 그분이 창조하신 것은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온전하게 존재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창조하였겠는가? 그러므로 창조주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온전하게 보전하려고 하신다. 창조주를 대적하는 세력이 이 세상을 죄로 파괴하였고 계속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인간을 파괴하고 있다. 창조주께서는 말씀하나님을 보내어 사단의 파괴를 몸소 겪게 하시고 사단을 제압하셨다. 이 사실을 사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전하여 온전한 생명으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한다. 이 일을 감당하기에 합당한 사람을 택하신다. 우리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를 곡해해서는 안 된다. 그분이 마치 잘못하는 사람을 벌주려고 노리는 존재인 것처럼 여기게 하는 것은 사단의 계략이다. 그분이 구원에 있어서 선택적으로 한다는 생각을 믿게 하는 것도 사단의 계략이다. 구원은 모든 아담 후손이 받을 수 있다. 말씀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셔서 구원을 이루신 것을 깨닫고 그분을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받는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전하는 사명은 합당한 사람에게 맡긴다. 당연하지 않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잘 아시기 때문에 가장 알맞은 사람을 택하여 일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 일에 우리가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훈 : 자연의 신비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다. 그분의 뜻과 계획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고 깊고 높다.

 

 

넷째 날(수) 12월 6일 ‘암미’ : 내 백성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롬 9:25).

 

바울은 롬 9:25에서 호 2:23을, 26절에서는 호 1:10을 인용하고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이렇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결혼을 통해 다른 신을 좇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셨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의 이름은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거부와 심판을 상징하였다. ‘로암미’라는 셋째 자녀의 이름은 문자적으로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호 1:9).

그러나 이 와중에서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신 후에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거짓 신들을 제하시며, 그들과 언약을 맺을 날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호 2:11~19 참조). 그때 ‘로암미’, 즉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이 ‘암미’, 즉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의 시대에 ‘암미’는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들이었다(롬 9:24). 얼마나 분명하고 강력한 증거인가! 복음은 처음부터 온 세상을 위해 계획되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서 우리가 이 부르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 14:6). 바울의 시대나 고대 이스라엘의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구원의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한다.

 

1. 롬 9:25~29을 읽어 보라. 바울이 당시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 위해 구약을 얼마나 인용하고 있는지 주목하라. 이 말씀이 전하고 있는 바탕 기별은 무엇인가? 이 말씀은 독자들에게 어떤 소망을 주는가?

[롬9:25~29]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답: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여 듣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소망을 준다.

 

일부 바울의 동족들이 복음을 거절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에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되었다(롬 9:2). 그러나 거기에 남은 자들이 있었다. 인간은 약속을 어겨도,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되는 법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소망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약속들을 주장하면, 그 약속들은 우리 안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아들을 창조하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을 때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상실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 ‘로암미’가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다시 하나님의 백성 ‘암미’가 된다. 사람을 이렇게 하기 위하여 말씀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그를 믿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회복하게 된다. 그렇게 한 사람들은 또한 이 복된 기별을 전하는 택하신 그릇이 된다. 그릇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든지 사람이 ‘암미’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셨고 지금도 그 일을 하고 계신다. 오늘날 그분의 교회가 되어 그분의 지체가 된 교인들은 ‘암미’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암미’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렇지 않다면 왜 예수님을 보내셨겠는가? 구원받을 사람이 예정되어 있고 못 받을 사람도 예정되어 있다는 주장은 전혀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속지 말아야 한다.

 

교훈 : ‘로암미’였던 우리가 ‘암미’가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리라는 그분의 약속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다섯째 날(목) 12월 7일 걸려 넘어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롬 9:30~32).

 

1.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스라엘이 저지른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행위로 율법의 정신을 이루려고 했으나 불가능했고 이방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기 때문에 의에 이르렀다. 인간의 행위에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바울은 오해의 여지가 없는 언어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기대하셨던 것을 놓치고 있는지, 그들이 추구했던 것에 이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동족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방인들은 노력조차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은 그들을 용납하셨다. 이방인들은 세속적 관심과 목표를 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복음이 이르자 그들은 그 가치를 깨닫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자로 영접하였음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의롭다 선언하셨다. 그것은 일종의 믿음의 거래였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만 걸림돌에 넘어졌다(롬 9:33).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가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 영접하기를 거부하였다(행 2:41 참고). 예수님은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분이 오셨을 때, 그들은 그분에게서 등을 돌렸다.

로마서 9장이 끝나기 전에 바울은 또 다른 구약 말씀을 인용한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9:33). 이 장에서 바울은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진정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보여준다(벧전 2:6~8 참조).

걸림돌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지만 어떻게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가? 그렇다. 많은 이들에게 예수님은 걸림돌이다. 그러나 그가 어떤 분인지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그분은 전혀 다른 돌, 즉 “구원의 바위”가 되신다(시 89:26).

 

<부가설명> 이스라엘이 믿음을 따르지 않고 그들의 행위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법의 요구에 이르지 못했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비록 아브라함의 자손일지라도 그들은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죽은 자가 자기 노력으로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이치가 아주 단순하고 쉬운데 사람들에게 심히 어렵게 여겨진다. 이유는 호흡하고 활동하며 노력하여 선을 이루는데 그것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부인하며 오직 예수를 믿을 때만 생명을 얻어서 비로소 활동하게 된다고 하니 이 세상의 논리로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현상(現狀)을 진상(眞相)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호흡하고 활동하는 것은 참 생명의 모습이 아니고 죽어가면서 죽을 때까지 활동하는 것일 뿐이다. 죽음을 바로 앞에 두고 비로소 인생이 허무하다고 한다. 아무리 성취해도 죽으면 본인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현재의 인생은 패배의 상태일 뿐이다. 살아남는 자가 승리자이다. 이 생명은 생명이신 분, 생명을 주시는 분에게서만 받을 수 있다. 그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를 믿을 때 이 생명을 얻고 이 생명의 활동이 비로소 율법의 정신을 생활로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이치를 거절한 것이다. 비극이다. 

 

교훈 : 우리가 예수님을 인정하면 구원의 반석에 굳건히 서게 되지만, 예수님을 거부하고 지나치려 하면 걸려 넘어지게 된다.

 

 

여섯째 날(금) 12월 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각 시대의 대쟁투>, 261~262 “후기 영국의 개혁자들”과 <화잇 주석>에서 출애굽기 4장에 해당하는 글을 읽어 보라.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천국의 축복을 누리도록 분명히 택함을 입었다고 생각하면서 종말을 바라본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계시하는 택함이 아니다. 인간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갑옷을 입도록,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사탄이 그의 영혼을 앞잡이로 삼으려고 하는 동안에 모든 거룩하지 못한 정욕을 거슬러 싸울 수 있도록 그의 수중에 놓아두신 하나님의 방법들을 사용하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깨어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고, 시험에 들어가는 것을 피해 가도록 택함을 입었다. 그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 순종함으로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도록 택함을 입었다. 이것이 성경의 택함이다”(목사와 복음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453~454).

 

“인간의 유한한 정신으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성품이나 그 사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지만,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시 97:2)이다. 우리는 한없는 자비가 무한한 능력에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뿐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능력만큼 그분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전능하신 손과 사랑으로 충만한 그분의 마음에 맡길 뿐이다”(교육, 16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어떤 기독교 신자들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과 멸망을 예정하셨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선택과 관계없이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멸망한다는 그런 사상에는 어떤 오류가 있습니까? 그러한 주장은 우리의 이해와 어떻게 다릅니까?

※ 하나님을 오해하게 한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하신다. 성경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구원하기로 예정하신 것이지 누구는 믿어 구원받도록 예정하고 누구는 믿지 않도록 예정했다는 것은 사단의 사상이다. 

 

➋ 그대는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역할과 비교해서 오늘날 재림교회의 역할과 그 부르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는 어떤 면에서 그들보다 잘하고 있습니까? 또는 어떤 면에서 그들보다 못하고 있습니까? 토론해 보십시오.

※ 우리의 사명은 옛 이스라엘의 사명과 동일하다. 온 세상에 이 기별을 전하는 면에서는 그들보다 바르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신앙과 거룩한 문화를 이끌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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