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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장의 옛 남편은 "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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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종수 작성일17-11-24 11:37 조회1,578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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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의 저자가 로마서 7장의 옛 남편을 유대교 체계로 설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로마서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롬 1:5; 16:26) 하는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죄에 대하여 죽고 새 생명 가운데 사는 것을 율법으로 비유하여 옛 남편은 죄, 새 남편은 의인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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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지명훈님의 댓글

지명훈 작성일

연구와 논증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한 가지, 결론으로서 "옛 남편=죄"의 동일시는 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옛 남편은 죽었지만 죄가 죽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은 것을 말하기 위한 예증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어떨까요? 칭의 이전이나 이후에도 "죄"는 여전히 우리에게 위험한 존재로서 도사리고 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죄가 죽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연구하신 것처럼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이지요!

김종수님의 댓글

김종수 작성일

목사님 코멘트 감사합니다.
저는 죄가 죽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죄가 죽은 것이 아니라 옛 남편에 매였던 "내"(옛 사람)가 죽음으로써 옛 남편에게서 벗어났습니다.
새 남편과 연합한 상태이기 때문에 죄가 더 이상 나를 주관하지 않도록 죄의 유혹을 죽게 하는 일이 계속 필요하고(지속적으로 옛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은 상태로), 새 본성이 옛 본성을 계속 정복해 나가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지명훈님의 댓글

지명훈 작성일

의도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단지, 가급적 성경 본문에 기록된 바대로 이해하고 설명되어지면 좋을 듯합니다. 7장 1-3절의 바울 예증에서는 문자적으로 여러번 "남편이 죽은 경우" 법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말합니다. 따라서, '옛 남편=죄'라기 보다는 예증의 요지는 사망시에 상실되는 법적 효력을 말하는 정도의 의도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우리는 죽지 않았으나 죽은 것으로 여겨져 더이상 율법 앞에서 정죄되지 않고 의롭다 함을 받게 됩니다. 더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신분이 되었지만, 그것이 죄가 사망한 것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옛 남편=죄' 혹은 교과에서처럼 '새 남편=그리스도'와 같이 이해하려는 것은 좀 추상적이고 설교적(?) 적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 유익한 연구와 견해에 감사드립니다.

김종수님의 댓글

김종수 작성일

모처럼 생산적인 토론이 되어서 감사합니다. 전달이 부족한 것 같아서 제가 이해하는 바를 다시 추가하여 말씀드립니다.

로마서 7:1-3절의 예증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서 재혼의 권리가 생기는 것은 십계명의 일곱 째 계명을 뜻한다고 봅니다. “남편의 법”은 남편과의 관계를 규정한 일곱 째 계명으로 이해됩니다.
그 이유를 3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재혼의 권리가 생기게 됩니다.
이곳의 “남편의 법”을 (옛)남편이 주관하는 법으로 생각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바울은 이전에 자기를 주관하는 세력이 죄라는 것을 이미 6장에서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로 든 이 비유에서는 남편이 죽은 것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현실 세계에서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수 있는 예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결혼 비유에서 한쪽이 죽으면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예로 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의 배우자인 “(옛) 남편”이 죽은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십자가에서 못박힌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재혼할 수 있는 권리가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옛 사람인 “나”의 죽음으로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옛 남편을 “죄”가 아니라 “율법”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율법이 죽은 것이 아니라 “내”가 율법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죄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은 것임을 여러 차례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을 때에는 자기가 살았으나 계명이 이르매 그 계명에 의해 죽었다고 설명합니다(롬 7:9).
만일에 율법이 남편이라면 남편이 없을 때에는 살았으나 남편이 이르매 나는 죽었다는 이상한 뜻이 됩니다.
결국은 옛 남편이 없었다는 뜻이 되어버립니다.

옛 남편을 죄로 보면, 죄가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일으켰으나 그것이 죄가 아니라고 속였던 것입니다. 바울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 3:6)라고 한 것이 이런 상태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대로 율법의 법조문으로 율법의 신령한 특성(롬 7:12, 14)을 제외시키면 자신이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의롭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율법이 이르게 되어 신령한 율법에 의해 그것이 탐심이라는 죄가 되는 것을 알게 되어서 율법의 정죄에 놓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되어 율법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율법에 대하여 죽을 운명이었고, 그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치루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과 연합함으로 그는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연합된 나도 새 생명으로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게 됩니다.

로마서 6-7장에서 죽은 것은 “죄”가 아니라 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자신, 곧 타고난 본성인 육체 속에 있는 “옛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신성과 연합됨으로 새로운 본성이 심어져 그 본성(영)에 의해 타락한 본성인 육체가 정복되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처럼 약속을 믿음으로 1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서(출 23:29) 완전한 정복을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평생을 통해서 이 정복을 이루어갑니다.

“죄의 몸이 멸하여”지는 것은 죄의 지배를 받던 “내”가 더 이상 죄의 유혹에 반응하지 않도록 죄의 유혹에 죽은 자로 대하는 것입니다.
죄는 육체(타락한 본성) 속에서 세력이 후패해(낡아져) 가는 것이지만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고후 4:16). 겉은 겉사람인 옛 사람을, 속은 속 사람인 새 사람을 뜻한다고 봅니다.
죄는 새 사람 속에 있는 영에 의해 정복되어 가는 것이지 죽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것으로 여깁니다(롬 6:11).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설명한 죄와 의의 싸움을 혼인관계의 법을 비유로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함으로 “옛 남편의 법”에서도 벗어납니다.
“옛 남편의 법”은 “죄의 법”으로 죄가 다스리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법”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법”은 “의의 법”(롬 9:31)입니다. 율법주의에 빠졌던 유대인들이 따른 법도 “의의 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죄의 법”으로 규정한 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생명의 성령의 법”(롬 8:2)과 대조되는 것이며, 죄와 사망이 왕노릇하는(다스리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죄가 주인인 상태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생명과 성령이 왕노릇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가 주인인 상태입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비유에서 말하는 옛 남편을 “죄”에게 종노릇 하는 상태의 남편인 “죄”이며, 새 남편은 “의”에게 종노릇 하는 상태의 남편인 “의”라고 결론내립니다.
죄는 육체 속에서, 의는 영(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왕노릇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 없이 육체 속에 거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안]에 있지 아니하고 영[안]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지명훈님의 댓글

지명훈 작성일

토론으로 서로 더욱 깊은 이해와 깨달음에 진전이 있음을 저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전히 약간 차이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1. 2-3절에 옛 남편의 죽음의 예증은 이유,까닭의 헬라어 접속사 '가르'에 의하면 명백히 1절이 그 요지가 됩니다. 즉, 예증을 든 이유는 '사망으로 법적인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2.누가 죽었는지 보다는 죽음이 있으므로 법에 의해 더 이상 제한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옛 남편을 죄나 율법 혹은 나 자신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문 자체로는 분명치 않거나 그럴 경우 보완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실제 죽음은 그리스도의 대속 즉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도 죄와 율법에 대하여 죽은 것과 같습니다. 달리 말하면 죄에 대하여 죽어서 의로 여김을 받았고, 율법에 대하여 죽어서 더이상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 1-3절의 남편의 죽음과 9절의 나의 죽음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9절에서의 나의 죽음은 율법과 계명이 없을 때에 정죄를 몰랐기 때문에 나는 살았다는 것이고, 율법과 계명이 오자 죄인임을 알고 정죄 즉 법적으로는 죽은 것과 같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5.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그분과 연합하여 죽음이 이루어졌고, 더 이상 정죄받지 않고 법적으로 죄의 속박에 놓여 있지 않은 것입니다.
6.떠라서, 큰틀에서는 목사님의 이해와 저의 해석은 같습니다. 단지, 저는 성서신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최대한 본문 자체에서 지지받는 정도의 이해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7.목사님의 이해와 설명에 결론적 입장에서 백프로 동감합니다. 단지, 본문적, 각론적 사항에 대한 해석 차이만 있습니다.
8.본문에서 확인되는 것만으로도 목사님의 결론이 충분히 증명될 것입니다.
9.옛 남편이 꼭 내가 아니어도 됩니다. 본문은 둘 다 죽었다고 말하니까요. 또 서로 공감하듯 옛 남편은 죄도 아닙니다. 죄가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칭의 이후에도 죄의 영향력은 너무나 강력해서 6,7장에서 바울은 다시는 죄를 짓지도 지배를 받지 않도록 강하게 권고하기 때문입니다. 옛 남편이 율법이 아닌 것도 확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이 죽어서 더 이상 필요없다는 이들에게 바울은 7장에서 율법은 의롭고 선하다고 강조하며, 죄로부터 벗어나려면 계속해서 율법이 필요함을 논증하는 것입니다.
8.좋은 토론과 많이 배우고 나눌 수 있어 감사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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