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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그릇 교과묵상] 제 7과 죄를 이김(1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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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작성일17-11-12 11:12 조회2,2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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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다운로드: http://file.ssenhosting.com/data1/ask2life/20171117.mp3     

※ 지난 방송은 http://www.podbbang.com/ch/10813 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 앱(팟빵 등)에서 '만나그릇'을 검색하여 구독하시면 더 편하게 들으실 수 있습니다.

※ 방송 내용은 매 과별로 당일 방송분까지 포함하여 첨부 파일 형태로 제공합니다.

 

 

1117() 7죄를 이김전체 요약

 

행위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진리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절망하는 죄인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사탄은 그들의 마음속에 계속 죄를 지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핑계거리를 만들어냅니다. 6장은 이러한 생각에 대한 바울의 답변입니다. 그는 롬 6장에서 죄를 극복하고 점점 그리스도의 성품에 가깝게 다가가는중요한 신앙적 주제인 성화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5:20)다는 은혜의 기별을 남용하는 자들을 위해 권면할 수 있도록 영감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6:1~2)고 외쳤습니다. 그는 죄를 지은 옛 몸을 장사지내는 장례인 침례의 의미를 상기시키면서, 죄의 몸은 파괴되었고, 죄에 굴복하지 않는 새 사람으로 물에서 올라왔으므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죄와 씨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살았다는 그의 설명은 우리 안에 죄가 계속 존재할지라도 우리가 죄악의 욕망과 죄에 굴복하지 않음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죄로 하여금 너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했습니다(6:12).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죗된 욕망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12절의 첫 머리에 그러므로라는 말을 등장시켜, 앞서 기록된 10~11절의 내용처럼 침례를 통해 거듭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동시에 죄를 섬길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하려 했던 것입니다. 엘렌 G. 화잇도 이러한 설명을 남겼습니다. “그대는 그대의 마음을 고칠 수 없고 스스로 애정을 하나님께 바칠 수 없다. 그러나 그대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 수는 있다. 그대는 그대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칠 수 있다. 그리하면 그분은 그대 안에서 그대가 원하고 행하는 것을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의 온 본성은 그리스도의 영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분은 그대의 애정의 중심이 되시며 그대의 사상은 그분과 조화될 것이다.”(정로, 47)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6:14)는 바울의 말은 어떤 이들에 의해 십계명이 폐지되었다는, 특히 제칠일 안식일 준수가 더 이상 중요치 않게 되었다는 주장의 근거로 자주 제시되어왔지만, 전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바울이 법 아래라고 말한 것은 당시의 유대 사회 제도 아래라는 뜻이었고, ‘은혜 아래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의롭다 하심을 경험하고,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죄를 극복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법 아래를 너무 제한적으로 정의하여, ‘은혜 아래거하므로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식으로 주장하며 살아간다면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은혜가 아닌 정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매우 강력한 흑백논리로 모든 인간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의 종이거나, ‘영생에 이르는 의를 순종하는 종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6:16). 또한 그는 신자들이 바른 교리와 바른 교훈을 마음으로 순종할 때(17), 그것이 그들을 의의 종’(18)이 되도록 이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그의 설명에 비춰볼 때,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교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랑할지라도, 그들이 따르는 교훈(교리)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들의 신앙은 진리에서 이탈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믿음에 있어서는 어떻게 믿느냐보다도 무엇을 믿느냐’, 혹은 누구를 믿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롬 6:19에서 육신이 연약하다는 표현으로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대한 그의 이해를 드러내면서, 인간에게 의로운 삶을 살게 해 주는 새로운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선택의 능력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죄와 하나님 사이의 중간지대는 없다는 사실을 두 주인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면서, 죽음이라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주지 못할 죄라는 주인의 속임수에서 벗어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서라고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의를 섬기는 자들의 삶에 나타나는 선한 열매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그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이 아닌, 구원의 새로운 경험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인간적인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를 부정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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