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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4기(로마서) 5과 아브라함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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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식 작성일17-11-03 11:14 조회1,4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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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4기(로마서) 5과 아브라함의 믿음

 

1. 율법 – 10/29(일)

 

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 롬 3:31

 

2) 구원의 계획의 주된 영광 중 하나는, 그 계획이 믿음을 통해 죄인의 칭의를 가능하게 하는 한편, 그 죄인 속에 순종하고자 하는 갈망을 유발시키는 강력한 영향력도 제공해 준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계획은 율법을 그 본래 위치에 되돌려 놓습니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깨닫게 하고(롬 3:20), 의의 위대한 표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율법에 직면한 죄인은 자신의 죄를 볼 뿐 아니라 긍정적 본질들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도 봅니다. 그리하여 율법은 그를 그리스도와 복음으로 인도합니다(갈 3:24). 그렇게 되면 믿음과 사랑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새로운 순종 즉 믿음에서 솟아나는 순종(롬 1:5; 롬 16:26), 사랑의 순종(롬 13:8, 10)을 낳습니다.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에서 최후의 싸움은 바로 하나님의 율법의 권위와 기능에 관한 문제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율법의 모든 계명에 온전히 순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사단이 세상에 가져올 마지막 큰 기만입니다(계 12:17; 14:12; 시대의 소망, 763).

 

3) “원수는 항상 율법과 복음을 분리시켜 놓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은 나란히 행할 것이다.” - 원고 11, 1893

 

4) “여호와의 율법은 나무요, 복음은 나무에 핀 향기로운 꽃이요, 열매이다.” - 편지 119, 1897

 

5)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품성 변화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가 고백하는 교리가 진리라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는 표징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교회라는 매일의 증거는 말씀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살아있는 증언은 언행이 일치된 신자들의 행동 가운데서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 편지 83, 1896

 

6)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라 그러면 그대는 안전하다. 그대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순종을 통해 나타날 것이다.” - 부조와 선지자, 153 

 

7) “칭의는 죄에 대한 충분하고 완전한 용서이다. 죄인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그 순간 그는 용서를 받고 그리스도의 의가 그에게 입혀진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믿음 속에는 우리의 구주가 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믿음은 우리의 죄를 없이 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오는 것이다. 그분이 죄인의 구속을 위하여 값을 지불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실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분의 피를 믿음으로써이다. 죄인은 자기의 선행을 칭의의 수단으로 의지할 수가 없다. 그는 그의 모든 죄를 포기하는 지점에까지 와야 하며, 빛이 그의 길을 비추어 주는 정도에 따라 그 빛을 차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피로 마련된 값없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믿음으로 붙잡는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에게 의와 성화와, 구속이 된다. 그리고 그가 예수를 따르면 그는 빛 가운데서 겸손히 행할 것이며, 빛 가운데서 기뻐하고 그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그의 모든 생활에서 기쁨으로 그분의 말씀을 순종한다. 하나님과의 화목이 그가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인가를 보여주는 결과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사람들,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의 말씀을 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비추이심을 받을 것이다. 귀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아름다움은 물론 고상함과 순결함이 있다. 그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인간의 최고의 능력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 사인즈 1898. 5. 19

 

2. 빛 또는 은혜? - 10/30(월)

 

1)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 롬 4:6~7

 

2) “믿음은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용서를 약속하시기에 적합한 상태이다. 그것은 믿음에 구원을 얻을만한 공로가 있기 때문이 아니요, 믿음이 죄를 위해서 마련된 치료제인 그리스도의 공로를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죄인의 죄와 허물 대신에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제시할 수가 있다. 죄인이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믿을 때에 틀림없으신 그분의 약속에 의하여 하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값없이 의롭다 하신다. 회개한 사람은 그의 칭의가 그리스도께서 그의 대속자와 보증인으로서 그를 위해 죽으시고 그의 속죄와 의가 되셨기 때문에 오는 것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 의는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다. 율법은 의를 요구하고, 죄인은 율법에게 이 빚을 갚아야 하는데 이제 그는 이것을 치룰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의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을 통해서 가는 길 뿐이다. 믿음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하나님께 가져갈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 아들의 순종을 죄인의 계정에다 두신다. 인간의 실패 대신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가납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믿고 회개하는 영혼을 받으시고,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의인을 대하듯 그를 대하시고, 그의 아들을 사랑하듯 그를 사랑하신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어떻게 의로 여기시는 바 되는가 하는 것이다.” - 리뷰 1890. 11. 4

 

3) “죄인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나아가 그분의 공로를 붙잡고 죄를 짊어지신 주님께 자신의 모든 죄를 자복하고 주님의 용서를 받아야만 한다. … 이리하여 그리스도의 의가 회개하고 믿는 죄인에게 전가(轉嫁)되었다. 그 죄인은 하늘 가족의 일원이 되며 하늘 임금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의 후사가 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유업을 받는 자가 될 것이다.” - 1기별, 215

 

 

 

4) 우리의 구원은 누구를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요 1:29). 베드로가 갈릴리 광풍의 파도 위를 걸을 때 깨달은 것처럼(마 14:24~32), 구주에게서 시선을 돌리면 비록 잠시일지라도 위험합니다. 예수님께 믿음의 눈을 계속 고정하면(히 12:2) 능력의 근원이신 이, 우리에게 참고 죄를 극복하도록(전도, 298) 힘을 줄 수 있는 그분과 끊어지지 않는 접촉을 유지하게 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에만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5) “율법을 지킴으로써 자기 자신의 행위로 천국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자는 온전히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순종함이 없이는 구원 받을 수 없다. 자신의 모든 수고가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 행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행하셔야만 한다. 만약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위만을 가지고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안에 기뻐할 수 있는 어떤 요소를 갖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능력만을 가지고 구원을 얻으려는 노력은 가인의 제물로 상징되었다. 그리스도가 없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기심으로 부패하여진 것과 죄 뿐이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행하여진 것만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천국을 얻으려고 노력할 때에 그 영혼은 향상하게 된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우리들은 힘에서 힘을 얻게 되며 승리에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들의 완전한 구원을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 가려 뽑은 기별 1권, 364 

 

3. 약속 – 10/31(화)

 

1)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 롬 4:13

 

2) 로마서 4:10~12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할례, 즉 모든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하는 자들을 위해 행해진 소위 최초의 율법 “행위”인 할례를 받기 전에 하나님이 그에게 의를 입혀 주셨음을 강조합니다. 아브라함이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칭의를 얻을 수 있었다면, 분명히 이방인도 그와 똑같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칭의의 필요조건으로서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화주의자들에 맞서는 바울의 논증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방법에는 차이가 없으며, 따라서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려 한다면 믿음으로 얻는다(롬 3:22; 10:12)고 논증합니다. 어떤 유대인이나 이방인도 “행위”로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입니다(행 4:12).

 

3)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자 하는 노력은 믿음을 의미 없게, 심지어 소용 없게 합니다. 믿음은 살리지만 율법은 정죄합니다. 사도 바울은 정죄에 이르게 하는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노력의 무용성에 대해 가르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필요했던 동일한 것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것으로 간주되는 예수님의 구원의 의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마침내 종교개혁으로 이어졌던 그 진리입니다.

 

4) 유업은 율법이 아니라 약속을 통해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약속 외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육신의 후손에게는 그 약속으로 인해 하나님의 선민이 되는 신분이 부여됐으며 가나안의 소유권이 주어졌습니다. 율법에 따라야만 그들의 신분과 가나안의 소유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유업에 대한 소유권을 일하여 얻지는 않았습니다. 권리는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그들의 것이 됐으며, 그 권리를 지속할 수 있는 자격은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생에서 누리는 구원의 유업(히 5:9)에서도, 하늘 가나안에서 누리는 성도의 영원한 유업에서도 그러합니다.

 

5) “비록 이 언약은 아담과 맺어지고 아브라함에게 되풀이되었으나 그리스도의 죽으심까지는 비준될 수 없었다. 그것은 구속에 대한 첫 통고가 주어졌던 때로부터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존재했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졌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비준하신 때로부터 그것은 새 언약으로 불리워졌다. 하나님의 율법은 이 언약의 기초이었으며, 그것은 단순히 그들을 다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만들고 그들을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수 있는 위치에 처하게 하는 계획이었다.” - 부조와 선지자, 370 / 소망, 656

 

4. 11/1(수) - 율법과 믿음

 

1)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 갈 3:21~23

 

2) “사람이 자신의 행위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하는 원칙은 모든 이방인의 종교의 기초에 놓여 있다.... 이런 원칙이 신봉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사람은 죄를 막을 방벽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 시대의 소망, 35~36

 

3)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성결하기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우리는 그와 같은 모든 요구에 대하여 부족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마는 이처럼 사랑을 주고, 겸손하고 성결케 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보게 된다.” - 각 시대의 대쟁투, 263

 

4) “율법은 범죄자를 용서할 힘이 없고 범죄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보인다. 그분은 만일 우리가 그분을 대속자와 보증인으로 받아들이면 내가 너의 죄를 가져가서 담당할 것이요, 나는 너에게 나의 의를 입혀 주겠다고 하신다.” - 리뷰 1901. 5. 7 

 

5) “마음이 갈바리의 십자가에 이끌리게 될 때에 우리는 불완전한 시각으로 치욕의 십자가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본다. 그가 왜 죽으셨는가? 죄 때문에 죽으셨다. 죄가 무엇인가?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눈이 열려서 죄의 성질을 보게 된다. 율법이 파괴되어 범죄자를 용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를 벌받을 사람이라고 정죄하기 때문에 우리의 몽학 선생이다. 치료제는 어디 있는가? 율법은 우리를 내몰아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타락하고 죄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의를 나누어 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며, 그의 의로운 품성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그의 아버지께 제시하려 하심이다.” - 원고 50, 1900

5. 율법과 죄 – 11/2(목)

 

1) ““죄는 불법이다.” 이것이 죄에 대한 유일한 정의이다. 율법이 없으면 범함도 있을 수 없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의의 표준은 아주 광범위한 것이요, 모든 악한 것들을 금하는 것이다.” - 원고 27, 1899

 

2) “단 한 계명을 범했거나 가장 작은 세목 하나를 범해도 율법을 범하는 것은 죄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부 측 입장에서는 그 죄의 형벌을 집행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재판관이시요, 공의의 보수자시다. 그것이 그의 보좌의 기초이다. 그는 그의 율법이 없이는 지낼 수가 없고 죄를 용서하시거나 죄에 적응하기 위하여 율법을 폐지할 수가 없다. 그분은 율법의 정직성과 공의성과 도덕적 탁월성을 온 우주 앞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들 앞에서 입증하고, 주장해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죄와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하여 세상 죄를 지신 것은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거룩한 기회들과 편익들을 제공하시고 죄인이 또 한번의 재판을 받도록 하신 하신 것이다.” - 원고 145, 1897

 

3)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께서는 이 말씀으로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논박하셨다. 세상에 대한 예수의 사명은 바리새인들이 그가 범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바로 그 율법의 신성한 요구를 옹호하시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율법이 변경되거나 폐지될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고통을 당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율법과 사람과의 관계를 설명하시고 자신의 순종의 생애로 율법이 가르치는 바를 실증하기 위하여 오셨다.” - 시대의 소망, 307

 

4) “그러나 만일 율법을 변경시키거나 폐기시킬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율법을 폐기할 수 있다면 범죄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이 세상은 사탄의 지배하에 있게 될 것이다. 율법은 결코 변함이 없으며 인류는 이 교훈을 순종함으로써만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이다.” - 시대의 소망, 762

 

5) “율법의 한 조목도 폐지되지 않고, 일점 일획도 변경되지 않았다. 에덴동산에서 생애의 큰 법칙으로 인류에게 알려진 그 원칙들은 회복된 낙원에서도 변치 않고 존재할 것이다. 에덴동산이 다시 지상에서 꽃 필 때, 태양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을 순종하게 될 것이다.” - 산상보훈, 50

 

6)  “십계명의 율법은 금지의 측면보다 자비의 측면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율법의 금지규정은 순종에 따르는 행복의 확실한 보장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일 때에 율법은 영원한 세대를 통하여 우리에게 기쁨을 줄 품성의 순결성을 이루도록 역사할 것이다. 순종하는 이들에게 율법은 보호의 장벽이 된다.” - 가려 뽑은 기별 1권, 235

 

 

 

7)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일반적으로 “옛 언약”이라 부릅니다(히 8:13). 백성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충분히 이해하고 언약의 참된 정신에 들어가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옛 언약은 다음과 같이 새 언약 또는 복음과 대조되어 제시 되었습니다: (1) 옛 언약은 더 초보적인 것이었다(갈 4:1~5). (2) 그것은 외적인 의례와 의식에 더 밀접하게 관계된 것이었다(히 9:1). (3) 그것의 동기는 주로 형벌과 보상에 있었으며, 단지 이것들은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이스라엘을 깨닫도록 준비시켜주는 자극제에 불과했다(갈 4:3, 부조와 선지자, 371). (4) 그것의 축복은 대개 일시적인 것이었다. (5)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죄로부터 우리를 구하신 구주보다 인간의 성취와 선한 행실에 의존하였다(출 19:8). 새 언약에 따르는 괄목할 만한 축복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율법의 의”(롬 8:1~4; 행 13:37~39)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행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율법을 지키려는 그들의 시도를 허용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아에 대한 신뢰심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심으로, 자신의 노력에 대한 확신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일에 대한 믿음으로 이끌리게 될 것이었습니다. 율법은 죄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신 유일한 구주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갈 3:23~26). 이렇게 하여 새 언약의 관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지켜질 율법을 위한 길이 준비되었습니다(렘 31:31~34; 롬 3:21~31; 8:1~4; 히 8:7~11). 바울이 선언했듯이 이 새 언약의 관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롬 3:31)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의무의 표준으로, 거룩한 행실의 기준으로 남아 있습니다. 새 언약은 율법을 의의 영원한 법으로 세웁니다. 그것 없이는 거룩한 행실도 있을 수 없습니다. 

 

8) “만약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에 의와 공로의 가치를 부여하도록 이끄는 데 성공한다면, 사탄은 유혹을 통해서 그 사람을 정복하며, 자신의 포로와 먹잇감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문설주를 어린양의 피로 적시라. 그래야 안전하다.” - 리뷰 앤드 헤럴드, 1889년 9월 3일

 

9) “하나님의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리스도의 빛이 당신의 정결하게 하는 피와 의롭게 하는 의의 필요를 사람에게 보여 줄때에 율법은 여전히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데 있어서 대리자로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게 한다.” - 시대의 소망, 308 

 

10) “죄인에게는 율법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율법은 죄인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주는 학교 교사다. 죄인은 죄를 담당하신 구세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 가려 뽑은 기별 1권,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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