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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과 아브라함의 믿음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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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7-10-30 00:53 조회2,1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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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과 아브라함의 믿음

 

 

기억절 :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개역)

 

 

첫째 날(일) 율법

 

*도입질문: 율법 혹은 구약 성경이 여전히 믿음으로 얻는 의를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율법과 은혜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율법에는 하나님의 품성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품성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율법은 늘 명령처럼 느껴집니다. 율법을 명령으로 이해하는 한 율법과 은혜는 하나일 수가 없습니다.

 

구약 성경이 가리키는 것은 예수님입니다.(요5:39) 예수님의 사랑이 무조건적이어서 나에게 명령하는 분이 아니라 약속하시며, 그 약속을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서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고 받아들일 때 예수님의 사랑에 끌리게 되고, 그 사랑에 반응함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생명 속에 있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품성을 오해하게 되면 명령하는 예수님, 조건을 제시하는 예수님처럼 생각되어져서 예수님을 감동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두려움과 무서움 속에서 구원을 얻기 위해 늘 부담 속에 살게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행위만 있을 뿐,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선택하지 않게 되며, 그것의 결과는 생명과의 단절입니다.(요5:40, 41)

 

율법이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임을 알게 될 때, 성경이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임을 알게 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약속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이루셔서 구원하시는 분에 대한 감동으로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회개, 롬2:4) 하나님을 선택함으로 생명의 관계가 이어지도록 합니다.

 

율법과 성경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는 의, 구원, 생명을 이룰 수가 없음을 가르쳐 주며, 오직 의와 구원과 생명은 의이며 구원이시며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사업임을 가르쳐 줍니다.

 

 

둘째 날(월) 빚 또는 은혜?

 

*도입질문: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빚이냐, 은혜이냐에 따라 어떻게 다른 결과를 가져올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창조주께서 아담의 선택의 결과인 영원한 죽음을 아담을 대신하여 이 땅에 두 번째 아담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영원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창조주께서 하신 대속의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신앙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빚으로도 생각할 수 있고, 은혜로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빚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능력이 많으신 전능하신 신으로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나랑 큰 상관이 없이 그저 능력이 뛰어난 전능하신 신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행위에 대하여 내가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채의식을 갖게 합니다.

 

반면에 대속하신 분이 나의 창조주이시고, 그 창조주는 나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시는 아버지이며, 하나님께서 선택의 자유를 주실 때는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를 창조주께서 책임지실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대속을 빚으로 생각하지 않고 동일한 사랑으로 이루신 은혜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은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부채의식이 없고, 오직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동으로 인해 사랑에 반응하게 됩니다. 사랑에 대한 반응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즐겨 따르고자 하는 결심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셋째 날(화) 약속

 

*도입질문: 약속과 율법이 조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약속과 율법을 반대의 개념처럼 생각되어 집니다. 약속은 약속한 사람이 이루겠다는 것이고, 율법은 명령이나 강제처럼 보여 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이 조건적 사랑을 한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 율법은 명령일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을 위한 조건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 조건을 이루는 명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품성이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이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율법은 명령이나 강제가 아닌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는 약속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될 때, 사랑에 대한 반응이 억제할 수 없는 순종의 마음을 갖게 하고, 그 순종하고자 하는 감동의 마음이 약속을 붙잡을 때, 마침내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이 아니라 약속입니다.(신29:1, 겔16:60, 출24:7, 시105:8, 대상16:15 등) 구약, 신약 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약속을 이루십니다.(요14:10)

 

 

넷째 날(수) 율법과 믿음

 

*도입질문: 율법과 믿음은 반대편에 있는 것일까? 동일한 것일까?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율법과 믿음은 다른 개념이 아닙니다. 율법과 믿음을 하나입니다.(갈3:21)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지 않습니다. 율법 자체로만 이해하게 되면 약속이 아닌 명령처럼 느껴지지만,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품성으로 생각해보면 그것은 명령잍 아닌 약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선택의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은 명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혹은 말씀을 글자대로 보지 않고 그 율법과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품성 속에서 봐야합니다.(롬10:17, 마4:4)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품성에서 나오는 말씀이기에 명령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품성에서 나오는 말씀이므로 명령일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나면서부터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서 태어남으로 하나님 보시기에는 나면서부터 이미 죽은 자들입니다. 죽은 자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죽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명령하실 수가 없습니다. 죽은 자들을 위해 산 자이신 하나님께서 구원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시고, 구원이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해 주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명령하지 아니하시고 그 일들을 우리 속에서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빌1:6)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때에 감동하게 되고, 감동은 선택의 자유를 하나님을 개인의 창조주와 구원자로 선택하게 만듭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조건 없는 사랑의 감동이 우리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 냅니다.

 

 

다섯째 날(목) 율법과 죄

 

*도입문제: 율법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폐지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율법에 하나님의 품성이 담겨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품성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조건 없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죄인의 모습과 모든 죄를 지신 분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시는 하나님의 가장 돋보이는 행위입니다.

 

율법에 그런 조건 없는 사랑을 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에게 명령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으며, 그 약속을 이루시는 보장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시는 분이시라면 우리를 위해서 못 하실 것이 없는 하나님임을 깨닫게 하십니다.(롬8:32) 율법이 하나님의 품성을 증거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품성의 잘 드러내는 십자가로 인해 폐해질 수가 없으며, 오히려 더욱 굳게 세웁니다.

 

율법 속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명령이 아닌 약속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은 성령의 조명하심으로만 이루어집니다.(고전2:10-11) 그러므로 성령을 구하시고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합니다.(눅1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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