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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사도 바울과 로마(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1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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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7-09-29 12:15 조회5,2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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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7분

 

연구 범위 : 롬 15:20~27, 행 28:17~31, 빌 1:12, 롬 1:7, 엡 1장, 롬 15:14

 

기억절 :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롬 1:8).

 

로마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 서신의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면 항상 맥락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 당시의 현안들을 알 필요가 있다. 바울은 특정한 이유 때문에 특정 시대의, 특정 집단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기록하였다. 따라서 그 이유를 아는 것은 우리의 연구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1세기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곳의 회중과 그 당시 신자들의 입장에서 성령님이 로마의 신자들에게 전하도록 바울에게 맡기신 말씀을 들을 필요가 있다.

바울이 다루는 문제들이 얼마나 지엽적이고 일시적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뒤에 놓여 있는 원칙들(예를 들면 어떻게 사람이 구원을 받는가 하는 문제)은 보편적인 것이었다. 물론 서신을 기록할 당시 그는 특정 사안을 염두에 두고 특정 집단의 사람에게 말했다. 그러나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의 말씀은 수백 년이 지나서 시대와 상황이 완전히 변했을지라도 그 당시만큼이나 루터에게도 의미가 있었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로마서의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한다.

느끼기 :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원해야 했던 바울의 영적인 부담감을 느낀다.

행하기 : 우리의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교적인 부담을 나누고 방법들을 공유한다.

 

➌ 성경의 각 책에 더 깊이 공감하기 위해서 우리는 알아야 하는 배경은 무엇입니까?

※ 각 책이 기록된 경위와 그 책을 읽을 대상의 상태와 그때의 사회적 국가적 교회적 처지를 잘 아는 것이다. 

➍ 이번 교과에 따르면 바울은 로마 교회에 대해서 어떤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 이미 복음이 전파되어 있기 때문에 복음 전하러 가기를 원하지 않았으나 스페인으로 가는 길에 로마에 들러서 그들을 만나고 그들이 스페인으로 보내 주기를 기대했다. 

➎ 로마와 관련된 바울의 행적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기존 교회를 더욱 튼튼하게 하고 그들이 새로운 지역 개척에 협력하게 하는 정신이다. 

➏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세계 선교에 더 구체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요?

※ 선교사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위하여 재정적으로도 할 수 있는 대로 후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 : 이번 과는 우리의 상황 속에서 복음을 증언하고자 기도하며 방법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첫째 날(일) 10월 1일 

사도 바울의 서신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행 18:23).

 

롬 16:1~2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 근처의 겐그리아라는 그리스 도시에서 로마로 보내는 편지를 썼다. 고린도 지역에 거주하는 뵈뵈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곳이 로마서의 집필 장소일 가능성이 크다. 신약의 서신들이 기록된 도시들을 확정해야 하는 목적 중에 하나는 기록 연대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다. 바울은 여러 지역을 다녔기 때문에 그가 어느 시기에 어디에 있었는지는 기록 연대를 확인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바울은 기원후 49년부터 52년까지, 2차 선교 여행 중 고린도에 교회를 세웠다(행 18:1~18). 그리고 53년부터 58년까지, 3차 선교 여행 중 그리스를 다시 방문했고(행 20:2~3), 58년 선교 여행이 거의 끝나갈 무렵 예루살렘의 성도들을 위한 구제금을 받았다(롬 15:25~26). 따라서 로마서는 아마도 기원후 58년 초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1. 3차 선교 여행 중 바울은 어떤 중요한 교회들을 방문했는가?(행 18:23)

[행18: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

 

답: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였다.

 

갈라디아 교회를 방문했을 때에 바울은 자신이 없는 동안 거짓 교사들이 신자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고 모세의 법을 준수하도록 설복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로마에 도착하기에 앞서 원수들이 그곳에 이를 것을 염려하여 로마에서 동일한 비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고자 로마서를 기록하였다. 갈라디아서는 3차 선교 여행 중 바울이 그곳(고린도)에 세 달 동안 머물렀을 당시 도착 직후에 기록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경의 어떤 책을 연구하든지 그 책의 기록 목적과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기록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따라서 로마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들이 유대인과 이방인 교회들을 자극하고 있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다음 주에는 그러한 문제들을 다룰 예정이다.

 

<부가설명> 성경 편지서의 기록의 배경을 확실히 잘 아는 것은 중요하다. 기록한 당시의 사회적 형편과 편지를 받는 교회나 사람들의 사정을 잘 알므로 편지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잘 알아서 그런 경우에 있는 교회나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이는 엄청 오해하는 것이다. 성경은 살아있는 말씀이다.(히4:12) 살아있기 때문에 환경과 시간이 바뀌어도 살아있는 것은 그 환경과 시간대에도 살아있는 상태로 생활하고 말을 한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모든 시대 모든 지역 모든 인종에게 현재적으로 적용되는 살아 활동하는 말씀이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로마에 있는 교회와 교인들에게 당시의 현대기별이 된 것 같이 21세기에 살고 있는 한국교회와 교인들에게도 현재적으로 현대기별이 된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의 성질이 그렇다. 그래서 로마서를 어디서 언제 기록했는지 몰라도 지금 로마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분명히 들을 수 있다. 이것이 성경말씀의 특성이며 기능이다. 우리는 말씀을 연구할 때 언제나 지금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또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교훈 : 로마서뿐 아니라 성경의 각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떤 상황 속에서 기록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둘째 날(월) 10월 2일 

로마에 방문하려는 바울의 열망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롬 15:22).

 

대개 직접 만나는 것이 최고의 소통 방법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전화, 이메일, 화상채팅을 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한 자리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만 못하다. 바울이 서신에서 로마의 신자들을 직접 보고자 한다고 밝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의 방문 의사와 목적을 알리기 원했다.

 

1. 롬 15:20~27을 읽어 보라. 바울이 이전에 로마를 방문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어떤 계기로 로마 방문을 결심하게 됐는가? 그의 생각 속에서 선교는 얼마나 핵심적인 주제인가? 우리는 바울의 말에서 선교와 증거에 대해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롬 15:27에서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하여 어떤 흥미롭고 중요한 요점을 밝히는가?

[롬15:20~27]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 줌을 바람이라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답: 이미 로마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설립되었기 때문에 방문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서반아로 가려는 길에 잠깐 로마에 들려서 그들을 만나보고 그들이 바울을 서반아로 보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로마에 가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27절은 이방인 유대인에게 신령한 빚을 졌기 때문에 육신의 것으로 나누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였다. 이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도우는 처지가 된 것을 드러낸다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는 복음이 확립된 지역의 사역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새로운 지역에 복음을 가져가야 한다는 부담을 끊임없이 느꼈다. 기독교가 아직 연약하고 사역자들이 거의 없는 시기에 복음이 이미 들어간 지역에서 일한다는 것은 귀중한 선교 역량의 낭비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5:20~21)고 하였다.

바울은 로마에 정착할 목적이 없었다. 그의 목표는 스페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계획을 위해서 로마 신자들의 지원을 얻기를 바랐다.

 

2. 바울이 새로운 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기존 교회의 도움을 구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선교 전반의 문제에 관하여 어떤 원칙을 끄집어 낼 수 있는가?

 

답: 선교는 기성교회가 협력하여 수행해야 할 하나님의 사업이라는 원칙을 찾을 수 있다. 

 

<부가설명> 바울이 로마를 방문하려는 것은 그들을 대면하여 보기를 원하고 또 그들이 바울을 스페인으로 보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바울이 로마에 일찍 방문하지 않은 것은 그곳에 이미 복음이 전파되어서 교회가 설립되었고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곳에 바울이 선교활동을 하려고 방문할 뜻이 없었다. 그는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수많은 지역에 선교 방문해야 할 필요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선교할 지역이 많은데 이미 교회가 있는 지역에 선교를 목적으로 가는 것은 선교인력을 낭비하는 것임을 암시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가 선교할 스페인에는 아직 복음이 전파되지 않고 있었다. 로마교회가 바울을 스페인 선교를 위하여 보내준다면 아주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바울의 사상은 기성 교회가 무교회 지역에 선교 활동하는데 반드시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넌지시 가르치는 것이다. 오늘날 이런 정신이 모든 교회에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복음 확산이 신속할 것이 아닐까?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 그제야 끝이 온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도 이런 사실에 부합하는 말씀이다. 재림을 촉진하자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교훈 : 복음의 혜택을 이미 누리고 있는 우리는 미개척지 선교를 위해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후원할 책임이 있다.

 

 

셋째 날(화) 10월 3일 로마로 간 바울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행 28:16).

 

1. 위의 말씀에 따르면 바울은 어떻게 로마에 가게 되었는가? 우리는 이를 통해서 우리의 인생에 예기치 않고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에 대해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행28: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답: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갔다. 믿음으로 한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마침내 로마에 당도했다. 매우 훌륭한 의도로 세워진 계획일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기대와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바울은 유럽과 소아시아의 교인들로부터 모금한 빈민구제금을 가지고 3차 선교 여행의 종착지인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체포되어 결박을 당했다. 2년 동안 구치소에 감금되어 있다가 그는 가이사의 판결을 요구했다. 구속된 지 약 3년 만에 그는 로마에 당도했다. 그것은 이전에 로마 교회를 방문하겠다고 밝혔던 당시의 계획과는 다른 방법이었다.

 

2. 행 28:17~31에 따르면 바울은 로마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가? 우리는 이 말씀에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행28:17~31]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 준 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20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1 저희가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29 (없음)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답: 그가 감금된 집에서 자유롭게 활동하였고 그는 많은 사람들을 청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복음을 전할 열망으로 하는 일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궁정의 관심이 그리스도교로 이끌린 것은 바울의 설교가 아닌, 그의 속박이었다. 그가 매우 많은 영혼들에게서 죄악의 노예 생활 가운데 붙들어 매여 있는 속박을 끊어 준 것은 그가 포로로 있을 때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빌 1:14)”(사도행적, 464).

 

3. 우리의 삶에서 일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꼬였지만 전화위복이 된 적이 얼마나 많은가?(빌 1:12 참고) 우리는 어떻게 그런 경험을 통해서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가?

[빌1:1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답: 상황이 좋든 좋지 않든 복음을 전하는 바른 목적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이끄신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부가설명>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권고하였다.(딤후4:1,2) 이것이 바울의 정신이었다. 그가 죄수의 신분이 되었든지 자유로운 상태에 있든지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헌신하였다. 이런 바울이 당한 어떤 경험도 그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바울이 비록 그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을지라도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복음 전하는 일 뿐이 아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그가 종종 잘못 선택한 일에도 하나님께서 전화위복이 되도록 섭리하신다. 증언의 말씀에는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외에는 미래를 위하여 염려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 나라에 갔을 때에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겪은 모든 행로가 그때마다 최선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도 하였다.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섭리가 언제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자비로운 말씀이다. 바울의 경우에서 이런 섭리를 보게 된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위한 삶으로 매일을 올바르게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훈 : 실제로 이뤄진 바울의 로마 방문은 그가 기대했던 방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투옥을 통해서 복음의 진전이 이루어지게 하셨다.

 

 

넷째 날(수) 10월 4일 로마에 있는 성도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 1:7).

 

1. 위의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진리, 신학, 믿음을 도출할 수 있는가?

 

답: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부르심을 받아 성도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면 예수님은 우리 주님이시고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분이시다. 신학에 대하여 아래 설명을 참고하라.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음.’ 하나님은 진실로 세상을 사랑하시지만 특별한 의미에서 그분을 믿기로 선택한 자, 그분의 사랑에 반응하는 자들을 사랑하신다.

우리는 인간의 영역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을 특별하게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상호 애정의 교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반응을 필요로 한다.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사랑은 온전하게 표현될 수 없다.

‘성도로 부르심을 받음.’ 어떤 번역들은 원문에 없는 말을 삽입하지만 의미에는 차이가 없다. 삽입된 단어들을 제외하더라도 그 의미는 ‘부름을 받은 성도’ 즉 ‘지명을 받은 성도’가 된다.

‘성도’라는 말의 그리스어는 ‘하기오이’이다. 그것은 문자적으로 ‘거룩한 자들’이란 뜻이다. ‘거룩함’이란 ‘바쳐짐’이다. 성도란 하나님에 의해 ‘구별된’ 자이다. 성화의 여정은 여전히 길다. 그러나 성도라는 말의 성경적인 의미에 따르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성도로 지명한다.

 

2. 바울은 그들이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 말은 부르심을 받지 못한 자들도 있다는 뜻인가? 엡 1:4, 히 2:9, 벧후 3:9의 말씀에 비춰볼 때 우리는 바울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히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답: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담의 모든 후손을 택하여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경영하셨다. 예수님의 희생은 아담의 모든 후손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담 후손들이 그 희생을 믿을 때 실제적인 성도가 된다. 

 

복음의 위대함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보편적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것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분 안에서 구원을 받도록 부름을 받았고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이미 성도로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의 본래 계획은 모든 인류가 예수님 안에서 구원을 찾는 것이다.

지옥불은 오직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한 것이었다(마 25:41).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회를 활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시장에서 단식투쟁을 벌이는 자들이 거기에 있는 풍요로움을 외면할 수 없듯이 그러한 사실이 그 선물의 위대한 가치를 깎아내리지는 못한다.

 

<부가설명>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보면 세 단계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보편적 부르심이다. 아담과 아담의 모든 후손을 다 구원으로 부르셨다. 둘째 단계는 실제적 부르심이다. 이것은 보편적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성도가 될 것이다. 셋째 단계는 봉사로서의 부르심이다. 사도와 선지자와 기타 주님의 교회에서 복음을 위하여 직무를 맡은 사람들이다. 이것을 바울은 은사라고 하였다. 셋째는 바로 은사로 부르심이다. 그러나 실제적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크든 작든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실제적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다 셋째 부르심인 은사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래서 성도들은 다 전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보편적 부르심으로 그 부르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성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 사람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의사도 전혀 없다. 이런 사람들을 성경은 성도라고 하지 않고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난 자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비의 욕심을 행하는 자들이다. 보편적 부르심을 두고 그들도 성도라고 할 수 없다. 그들도 성도가 될 후보자들인 것은 맞다. 우리는 그들이 성도가 되도록 하는 은사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런데 이 부르심은 모든 이들에게도 해당된다.

 

 

다섯째 날(목) 10월 5일 로마의 신자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롬 1:8).

 

로마에 어떻게 교회가 수립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베드로 또는 바울이 설립했다는 전승은 역사적인 근거가 없다. 어쩌면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회심한 후에 로마로 이주했거나 그곳에 방문한 일반 신자들이 그 교회를 세웠을지도 모른다(행 2장 참고). 또는 로마로 이주한 회심자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 제국의 수도에 믿음을 전했을지도 모른다.

오순절로부터 불과 몇 십 년 만에 사도들이 가보지도 않은 교회가 그토록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지 20년 후에 로마에는 활기 있고 열렬한 교회가 있었다. 이 교회는 튼튼하였고 열성이 있었으며 주께서 이 교회를 위하여 일하셨다”(화잇주석, 롬 1:7~8).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넓은 의미의 신실함, 즉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신실함을 포함한다.

 

1. 롬 15:14을 읽어 보라.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를 어떻게 묘사하는가?

[롬15: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답: 그들은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충만하고 서로 권면하는 신앙인들이라고 했다. 

 

다음은 바울이 로마 신자들의 삶에서 꼽은 주목할 만한 가치들이다.

. ‘선함이 가득하고…’ 사람들이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하려고 할까? 그들이 우리와 교류할 때에 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우리 안에 있는 선함의 풍성함인가?

. ‘모든 지식이 차서…’ 성경은 계몽, 정보, 지식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그 가르침을 잘 숙달하도록 요구를 받는다. “ ‘새 심령을 너희에게 주되’라는 말씀은 ‘새 마음을 주되’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심령의 변화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진리에 대한 이해를 항상 동반한다”(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품성과 인격, 94).

  ‘서로 권하는…’ 동료 신자들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면 그 누구도 영적으로 번성할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격려할 필요가 있고 때로 다른 이들의 격려를 받을 필요도 있다.

 

<부가설명> 로마교회는 저자의 말대로 아마도 사도행전 2장 오순절에 로마지역에서 온 사람들이(행2:10) 성령의 역사로 복음을 받고 깨닫고 3000명 침례 받은 사람들 중에 있었을 것이고 그들이 로마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했을 것이다. 복음은 생명이 있기 때문에 활동하게 한다. 그들이 오순절 경험을 깊이 새기고 예수 이름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고 알기 때문에 주위에 전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평신도 운동으로 세워진 교회가 이렇게 튼튼히 성장하였다. 그들은 선함이 가득하고 진리의 지식이 충만하였다. ‘지식이 차고’했는데 ‘차고’라는 말이 ‘플레로-’이다. 충만하다는 뜻이다. 그들이 성경을 깊이 상고하여 진리의 지식이 충만한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성도 서로 간에 권면하고 위로하며 신앙을 더욱 풍성하게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롬1:8)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참 부럽지 않는가? 오늘 이 시대의 재림교회가 이렇게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령의 돌보심이 충만하게 되기를 간구한다. 

 

교훈 :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선함이 가득하고, 지식이 넘치며, 서로를 권하고 사랑함으로 그 명성이 널리 퍼진다.

 

 

여섯째 날(금) 10월 6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교회증언 5권>, 706 “성경의 오묘”, <사도행적>, 372~374 “구원이 유대인에게”를 읽어 보라.

 

“구원은 하나님의 뒤늦은 발상 또는 죄가 생긴 뒤에 예상치 못한 사건들의 전개로 인해 필요했던 즉흥적인 조치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인류의 속량함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비롯되었으며(고전 2:7, 엡 1:3, 14, 살후 2:13~14)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있다(렘 31:3).

이 계획은 무궁한 과거와 역사적인 현재와 무궁한 미래를 총망라한다. 그 계획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한 택하심과 예정, 속량함과 용서,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의 통일, 성령으로 인치심, 영원한 유업의 상속, 그리고 영광화를 포함한다(엡 1:3~14). 이 계획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있다. 그것은 단순히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간 결정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적인 목적에 기초를 두고 있다(행 4:27~28). 예수님은 진실로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계 13:8)이시다”—The Handbook of Seventh-day Adventist Theology (Hagerstown, Md.: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2000), pp. 275, 27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종교개혁에 대해서 토의해 보십시오.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바르게 깨닫는 종을 일으키시고 진리의 정로를 세상에 알게 하셨다.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세상은 더 깊은 암흑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➋ 창세 전에 우리가 구원 받기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더 묵상해 보십시오(딛 1:1~2, 딤후 1:8~9 참고). 우리가 이 말씀에서 용기를 얻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인류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어떤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들에게 베풀어진 은혜에 등을 돌리는 슬픈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에는 생명과 구원이 이미 들어있다. 구원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이름 안에 있는 약속대로 말씀하나님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셨다. 받지 않는 사람은 사단의 계략에 속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➌ 목요일 교과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다니는 교회의 평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토의해 보십시오.

※ 복음 진리가 생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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