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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바울의 사도적 권위와 복음(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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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7-07-01 07:23 조회5,3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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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56분

 

 

● 연구 범위 : 벧후 3:15~16, 갈 1장, 빌 1:1, 갈 5:12

● 기 억 절 :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어느 대학교의 학생들이 캠퍼스 내에 인종, 성, 지위, 종교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환영하기 위한 회관을 세웠다. 그런데 몇 년 후에 이들이 모교를 방문해 보니 후배들이 그 회관의 구조를 변경했다고 상상해 보라. 그곳에 모이는 모든 사람의 연대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고안된 널찍한 친교의 공간이 인종, 성, 등의 출입 제한이 있는 여러 작은 방으로 나눠졌다. 구조 변경을 주도했던 학생들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관습을 근거로 그러한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보낼 당시의 상황이 이러했다. 바울의 계획은 오직 믿음만으로 이방인들을 신자로 맞이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 때문에 그의 계획은 도전을 받고 있었다.

바울의 관점에서 그러한 주장은 복음의 본질에 대한 공격이었기 때문에 그는 대응에 나섰고, 그래서 갈라디아서가 기록되었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바울이 자신의 복음과 가르침에 대한 사도적 권위를 어떻게 정의했는지 이해한다.

느끼기 : 거짓 교훈에 대항하여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려는 바울의 결단과 열정에 공감한다.

행하기 : 성경의 진리를 고수하고 수호하기로 결심한다.

 

➋ 바울이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바울 반대자들이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선전했기 때문이다. 

➌ 바울이 그토록 강력하게 비난했던 다른 복음이란 어떤 종류였을까요?

※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주장이다. 예수님 외에 인간의 노력이 조건이 되었다. 

➍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복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 예수께서 구원해 주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인간의 노력과 수고가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되면 사람이 칭찬을 받는 자리에 앉게 된다. 

➎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다른 복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 인간의 노력을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하면 안 된다. 그것은 구원받은 결과일 뿐이다. 

➏ 교회 내에서 복음의 정신과 어긋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 교육은 단호하고 대하는 태도는 친절과 온유와 사랑이어야 한다.

 

결론 바울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사도적 권위로 거짓 교리를 단호히 정죄함으로써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시작하였습니다.

 

첫째 날(일) 서신의 저자 바울

7월 2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벧후 3:15).

 

1. 벧후 3:15~16을 읽어 보라. 초기 교회는 바울의 글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영감의 작용에 대하여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

[벧후3:15,16]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답: 바울 편지를 구약성경과 동등한 성경으로 여겼다. 영감은 모든 성경에 기자들에게 작용하였고 모든 성경에 작용하였다는 것을 확인한다. 

 

바울은 문학적인 작품을 남기기 위해 갈라디아서를 기록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령의 안내를 받아 자신과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관련된 특정 상황을 다루었다.

갈라디아서와 같은 서신은 바울의 사도적 사역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방 세계의 선교사로서 바울은 지중해 지역에 여러 교회들을 설립하였다.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그 교회들을 방문하였지만 한곳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었다. 그의 부재를 메우고, 교회들을 지도하기 위해서 그는 서신을 보냈다(골 4:16). 그의 서신 가운데 몇 개는 사라졌다. 하지만 신약 성경 가운데 13개의 책이 그의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위에서 베드로가 언급한 것처럼 바울의 글은 성경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이는 교회 역사 초기에 그의 사역이 얼마만큼 인정을 받았는지 보여 준다.

일찍이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바울 서신의 형식이 하나님의 영감의 글을 담기 위해 성령께서 만드신 독특한 형식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옥스퍼드의 젊은 학자 버나드 그렌펠(Bernard Grenfell)과 아서 헌트(Arthur Hunt)가 이집트에서 오십만 개의 고대 문서 조각(예수님 전후 수백 년 동안 사용되었던 파피루스에 기록된 문서)을 발견하면서 깨졌다. 가장 오래된 신약 성경 사본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청구서, 소득 신고서, 영수증, 개인 서신 등을 발견하였다. 놀랍게도 바울 서신의 형식은 그 당시의 모든 서신에 나타난 일반적인 형식과 다름이 없었다. 그 당시 서신들은 ⑴ 안부와 함께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이름이 언급된 인사말, ⑵ 감사의 말, ⑶ 서신의 본론, ⑷ 끝맺는 말로 이루어져 있었다. 바울은 그 당시의 형식에 따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매체와 문체를 가지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기별을 전하였다.

 

<부가설명> 바울 자신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베드로도 성경의 모든 말씀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사람의 지혜로 기록된 것이 아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 지구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영생의 생명으로 회복시키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사람의 언어로 사람을 통하여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사람이 기록했지만 그 사상이 하나님의 것이다. 성경을 기록한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 문학작품을 남기려는 생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하나님께 굴복시키고(고후10:5) 오직 하나님이 계시한 것을 올바르게 기록한 것일 뿐이다. 그런 말씀을 읽고 연구하는 우리도 우리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께 굴복시키고 말씀을 연구해야 한다. 신학이나 철학을 성경연구에 대입하는 것은 오류로 빠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영혼불멸설이 기독교에 들어온 것은 헬라 철학을 성경 이해에 도움이로 불러들인 결과이다. 플라톤 철학에 이데아 사상이 영혼불멸설을 끌어들인 길잡이 노릇을 하였다. 우리는 말씀 앞에 겸손하고 경건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교훈 : 바울은 교회 역사 초기부터 영감의 글을 기록한 저자로서 권위를 인정받았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익숙한 형식에 따라서 서신을 기록하였다.

 

둘째 날(월) 바울의 소명

7월 3일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 1:1).

 

비록 바울의 서신들이 고대 서신의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갈라디아서는 다른 서신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여러 개의 독특한 특징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특징들을 파악함으로 바울이 처한 상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1. 갈 1:1의 인사말을 엡 1:1, 빌 1:1, 살후 1:1의 인사말과 비교해 보라. 갈라디아서의 인사말은 다른 서신의 인사말과 어떻게 다른가?

[갈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엡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빌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살후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답: 갈라디아 인사말은 바울이 사도된 사실을 변증하는 어조로 기록되었다. 

 

갈라디아서의 인사말은 다른 서신의 인사말보다 다소 길 뿐 아니라, 바울의 사도적 권위의 근거를 설명하기 위해 형식을 벗어났다. 문자적으로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사람’ 또는 ‘사자’라는 뜻이다. 신약에서 이 말은 예수님의 12제자와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증인의 사명을 위임 받은 자들에게만 엄격하게 제한하여 적용되었다(갈 1:19, 고전 15:7). 그런데 바울은 자신도 이 선발된 무리에 속한다고 선언했다.

바울이 자신의 사도적 권위가 사람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이유는 갈라디아 교회의 일부가 그의 사도적 권위를 약화시키려고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앞에서 살펴봤듯이 교회 내에서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기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울의 복음이 순종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했다. 분란을 일으킨 자들은 교묘하게 행동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 기별의 기초가 사도적인 권위의 원천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요 3:34) 그러한 권위의 문제를 공략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들은 바울의 사도성을 정면에서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신 그들은 바울이 예수님의 첫 제자가 아니며 그의 사도성은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인 바나바나 아나니아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했다(행 13:1~3, 9:10~18).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바울의 기별이 그의 의견일 뿐,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바울은 이런 비방의 위험성을 깨닫고,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부여받은 그의 사도성을 방어하였다.

 

<부가설명> 오래 전,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에 대통령이 어느 시골 초등학교를 방문했는데 대통령이 자기를 대통령으로 소개하자 초등학생 중에 한 아이다 그것을 어떻게 믿는지 의심하였다. 그때 부시 대통령이 자기 아이디카드를 아이에게 내어 보이는 사진이 신문에 공개되었다. 그래도 그 아이는 아주 미심적은 태도를 보였다. 신분을 끝까지 의심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확실히 증명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신분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믿음 때문이다. 또 공인된 증명서를 믿기 때문이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지극히 극적인 사건이었다. 핍박자가 사도가 된 것은 예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직접 불러서 사명을 주신 사건으로 성경은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 이것이 아직 기록되지 않았고 보편화된 사건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반 바울주의 자들은 바울이 사도라는 것을 은근히 부인하는 작전을 편 것이 확실하다. 특히 갈라디아 지역에서 그랬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임명된 사실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것은 당시에 바울의 기별을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중요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것을 강력하고 확고하게 증거하기 위하여 인사부터 자기의 사도된 사실을 설명한 것이다. 

 

교훈 : 바울이 전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기별을 못마땅하게 여긴 신자들이 그의 사도성에 의문을 제기하자 바울은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을 방어하였다.

 

셋째 날(화) 바울의 복음

7월 4일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갈 1:3).

 

1. 자신의 사도직을 방어한 것 외에 바울은 인사말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무엇을 강조하였는가? 갈 1:3~5을 엡 1:2, 빌 1:2, 골 1:2과 비교해 보라.

[갈1:3~5]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엡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골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답: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강조했다. 

 

바울 서신의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사말에서 ‘은혜’와 ‘평강’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 두 단어의 조합은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유대인 사회의 인사법을 변형한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안부(카레인)’라고 했을 말을 바울은 발음이 유사한 ‘은혜(카리스)’라고 썼다. 거기에 유대인들의 전형적인 인사말인 ‘평강’을 덧붙인 것이다.

두 단어의 조합은 단순한 사교적 인사가 아니다. 오히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함축하고 있다. 바울은 신약의 다른 저자들보다 이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 은혜와 평강은 바울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

 

2. 바울은 복음의 어떤 측면들을 갈 1:1~6에 담았는가?

[갈1:1~6]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답: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강조했다. 

 

인사말에서 복음의 본질을 설명할 여유는 거의 없었지만, 바울은 능숙하게 짧은 몇 마디로 복음의 핵심을 묘사하였다. 복음은 어떤 핵심 진리 위에 놓여 있는가? 바울에 따르면, 그것은 바울의 반대자들이 외치는 율법에 대한 우리의 순종에 달려 있지 않다. 반대로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 곧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렸다. 그래서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죄악의 권세와 공포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 두신 은혜와 평강의 소식을 생각하자 바울은 진심으로 송축할 수밖에 없었다(갈 1:5).

 

<부가설명> 바울을 통하여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주신 기별은 복음의 가장 핵심 되는 것을 인사말에서부터 담았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이것이 빠진 것은 성경의 복음이 아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여기에 인간이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바울은 이것을 다른복음이라고 했고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오늘 재림교회가 바울 당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사상을 답습하고 있지나 않는지 두렵다. 구원의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셨다.(딤후1:10)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날 수 있다.(벧전1:2) 십자가와 부활이 복음이 되는 것은 그것을 믿고 사람이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열심히 노력해서 성품변화 이루었다고 주장해도 진정한 거듭남의 경험이 없으면 그는 사망에 있는 것이다. 사망에 있으면서도 성품변화를 할 수도 있고 교회일 열심히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참으로 복음을 믿고 복음을 체험했는지 아니면 복음의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 애써 복음이 말하는 것을 성취하려고 했는지 정직하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행여 다른 복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훈 :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 그의 인사말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기초해 있음을 내비쳤다.

 

넷째 날(수) 다른 복음은 없다!

7월 5일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1. 바울 서신에서 인사말 뒤에 보통 어떤 내용이 이어졌는가? 갈라디아서는 다른 서신과 어떻게 다른가? 갈 1:6을 롬 1:8, 고전 1:4, 빌 1:3, 살전 1:2과 비교해 보라.

[갈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롬1: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고전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빌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전1: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답: 일반적으로 수신자의 상태를 칭찬하며 감사하였으나 갈라디아서는 수신자의 상태를 책망하는 어조로 그들의 상태를 이상하게 여긴다고 썼다.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그 교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다루더라도, 바울은 인사말 뒤에 그의 독자들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거나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심지어 온갖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를 위해 편지하면서도 그렇게 했다(고전 1:4과 5:1 비교).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의 상황은 너무나 심각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감사의 말을 생략한 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2. 갈라디아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한 그의 염려의 정도를 표현하기 위해 바울은 어떤 거친 단어들을 사용하였는가?(갈 1:6~9, 5:12)

[갈1:6~9]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5: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답: 그리스도를 배반하였다고 말하고 그런 사람들은 저주를 받으라고 하며 또는 스스로 베어버리기를 원한다는 등의 말을 썼다. 

 

바울은 거침없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나무랐다.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의 부르심을 배반하였다고 꾸짖었다. 사실 “떠나”(6절)라고 번역된 말은 국가에 대한 충성을 포기하고 탈영한 병사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말이다. 영적으로 말하자면 바울에게 있어서 갈라디아 신자들은 하나님을 등진 변절자였다.

갈라디아 신자들은 다른 복음을 따름으로 하나님을 떠났다. 바울은 하나 이상의 복음이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마치 또 다른 복음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이런 복음의 왜곡 때문에 너무도 분노한 나머지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기를 빌었다(갈 1:8). 그는 내용상으로 같은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면서 이 점을 강조하였다(갈 1:9).

 

<부가설명> 예수를 믿는 종교가 세상의 다른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신앙의 근본이 예수님의 교훈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불교는 석가모니가 없어도 그의 교훈을 따르면 된다. 유교도 그렇다. 공자를 믿는 것이 아니고 공자의 교훈을 따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의 교훈을 실천하는 것만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성경의 종교는 예수님이라는 분이 없이 그의 교훈만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구약이나 신약은 예수님의 교훈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소개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고 인류를 위하여 봉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단지 성경에 기록한 교훈들을 실천하면 된다고 말한다면 그는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실천하는 성경의 교훈의 실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성경의 종교는 오직 예수님이다. 그분 안에서 그분의 부활한 생명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받을 때 그 생명이 그것을 받은 사람 안에서 작용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런데 갈라디아교회들에는 그것은 그것대로 해야 하지만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하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교훈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은 다른 복음이다. 우리는 어떤가?

 

교훈 :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기 때문에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저주를 선언하였다.

 

다섯째 날(목)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근원

7월 6일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1. 갈라디아에서 분란을 일으킨 자들은 바울의 복음이 다른 이들에게 신임을 얻기 위한 그의 소망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정말 사람의 신임을 구했다면 서신에서 어떻게 말했겠는가?(갈 1:6~9, 11~24)

[갈1:6~9, 11~24]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오 일을 유할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답: 바울이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이라면 그들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일하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격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진정한 복음을 말하였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의 방법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바울이 이방인 개심자들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바울의 반대자들은 바울이 어떻게 해서든지 개심자들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하면 개심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바울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바울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자라는 것이다. 그와 같은 비방에 대하여 바울은 8절과 9절에서 강한 어조로 반대자들에게 대응하였다. 그가 원하는 것이 신임이 전부라면 그는 분명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였을 것이다.

 

2. 바울이 사람을 기쁘게 하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갈 1:10) 그의 복음과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천명한 후에 그는 자신의 정당성을 어떻게 증명하였는가?(갈 1:11~12, 13~24)

[갈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여기 구절들은 1번의 구절과 같다. 1번에 있는 성경구절을 읽기 바란다. 

 

답: 그가 사람을 만나러 가서 들은 것을 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였다. 

 

갈 1:13~24에서 바울은 회심 전(13~14절), 회심 당시(15~16절) 그리고 회심 후(16~24절) 자신의 상황에 대하여 자서전적인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이런 사건들의 정황을 보면 그의 복음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역설한다. 바울은 누구도 자신의 부르심을 의심하거나 그의 기별을 폄하하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과 자신이 무엇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전할 계획이었다.

 

<부가설명> 바울을 회심한 다음 유명한 사도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찾아 교훈을 배우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복음이나 바울이 다메섹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직접 경험한 교훈이 동일한 것이다. 오히려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로 나갔다. 침례요한처럼 예수님이 40일간 광야에 계셨던 것처럼 바울도 아라비아 광야로 갔다. 거기서 성령의 인도로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복음을 배우고 경험한 것이다. 그가 가르치는 것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광야에서 구약성경을 깊이 연구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성령께서 친히 가르쳐주시는 복음을 배우고 그것을 전한 것이다. 바울은 골수 유대 주의자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유대주의가 성경의 사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깊이 깨달았을는지 모른다. 우리는 복음의 사람이 되어야한다. 어떤 주의자가 되는 것은 다른 복음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교훈 : 바울이 정말 사람의 신임을 얻기 위해 그들을 기쁘게 하는 복음을 전했다면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 그렇게 강한 어조로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섯째 날(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7월 7일

 

“거의 모든 교회에 유대인 태생의 신자들이 있었다. 유다에서 온 교사들은 이런 신자들에게 쉽게 접근하여 그들을 통해 교회 내에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다. 성경적 논쟁으로 바울이 가르친 교리들을 폐기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에 바울의 감화력에 대응하고 그의 권위를 약화시키고자 그들은 무원칙적인 수단에 의지하였다. 그들은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그분에게 사명을 위임받지도 않았는데 주제넘게 베드로와 야고보 등 다른 제자들의 교회와 정반대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공표하였다.… 바울은 교회들을 신속히 파괴하고자 위협하는 악을 보고 분개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즉시 갈라디아 교회에 서신을 보내, 그들의 거짓 교훈을 폭로하고 믿음에서 떠나간 자들을 엄하게 꾸짖었다”(엘렌 G. 화잇, Sketches From the Life of Paul, 188~18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그대는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각자의 생각을 나눠 봅시다. 서로의 생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 서로 이야기해 보세요. 복음은 예수님 자체이다.(눅2:6~11, 롬1:1~4을 보라.)

 

➋ 바울은 갈라디아서의 인사말에서 예수님의 죽음이 특별한 이유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갈1:4)라고 가르쳤다. 우리도 예수를 믿음으로 이 악한 세상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➌ 바울은 복음에 대하여 자신과 다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왜 그토록 너그럽지 못했을까요? 다른 시각으로 복음을 바라보는 자들에 대하여 그가 어떻게 기록했는지 다시 읽어 보십시오. 오늘날의 교회에서 바울과 같이 강하고 비타협적인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은 어떻게 비춰질까요?

※ 구원의 복음은 바울이 받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렇게 전하는 자들을 독선자라고 말한다. 지금도 그렇다. 

 

요약: 갈라디아의 거짓 교사들은 바울의 사도직과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그의 사역을 폄하하려고 노력하였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서두에서 이런 비방에 대응하였다. 그는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라고 담대히 선포하였으며, 그의 회심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들이 그의 부르심과 복음의 신적 기원을 증명한다고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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