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과 이방인의 사도 바울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 1 과 이방인의 사도 바울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7-06-27 03:46 조회2,446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제 1 과 이방인의 사도

 

 

기 억 절 :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첫째 날(일)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자

 

*도입질문: 바울의 초기의 신앙은 어떠했으며 그가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깨닫게 되고 회심하게 되는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바울로 개명되기 전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을 지독한 민족주의자였고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유대교를 최고의 종교로 인식하였고 유대인을 최고의 선택된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강하였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을 때 사울을 그들에게 속한 유대인들을 핍박을 통해서라도 잘 못된 믿음을 돌이키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열심을 다하였습니다.

 

스데반을 율법과 성전을 무시한다는 죄목으로 사형시킬 때에 사울은 그 죄목으로 사형을 당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을 낸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믿고 있던 하나님은 잘 못한 일을 한 것에 대하여 합당한 벌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스데반의 사형집행에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충성스런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죽음을 목격한 사울을 충격을 받았습니다. 스데반은 스데반 자신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죽게 되었는데도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원망이나 복수를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오히려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자신이 믿고 있던 하나님의 품성과 스데반이 믿고 있던 하나님의 품성이 현격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이 믿고 있던 하나님의 품성은 철저히 조건적이었던 반면, 스데반이 믿고 있던 하나님은 철저히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너무나 다른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사울을 깊은 인상을 받게 되었고, 그 날의 그 사건이 그가 하나님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열심 혹은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과 목표입니다. 사울을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로 인해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을 많은 핍박으로 힘들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울을 그런 일을 하면서도 전혀 양심의 거리낌도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는 점입니다.

 

내가 믿고 알고 있는 하나님의 품성이 무엇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을 갈 수 있음을 심각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둘째 날(월) 사울의 회심

 

*도입질문: 사울이 결정적으로 회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사울이 그 날도 다메섹에 있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기 위해 길을 떠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하늘에서 빛이 비추었고 그 빛으로 인해 다 쓰러졌을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드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9:4)

그리고 자신은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사울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이단이라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믿고 있던 사람들을 핍박했던 일들이 사실은 그들이 믿고 있었던 예수님을 핍박하는 일이었고,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살아계시며, 예수님의 품성은 자신이 그동안 알고 있던 하나님의 품성과는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자신을 핍박을 하고 있었던 자신에게 복수하거나 벌주지 아니하시고, 묵묵히 오래동안 참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님처럼 자신을 죽이는 자들의 죄까지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스데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믿고 있었고, 알고 있었던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품성의 하나님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것이 사울이 생각을 바꾸게 되는(회심)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셋째 날(화) 다메섹으로 간 사울

 

*도입질문: 사울에 회심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반응과 부정적인 생각을 바꿀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인해 시력을 잃은 사울은 유다라고 불리는 사람의 집에서 머물다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유다의 집에 온 아나니아를 통해 시력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 사울이었지만 그 회심에 대하여 아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의 사울의 행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혹시 자신들을 속여서 모두를 잡아들일 계획된 행동이 아닌지를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 자신도 받아들이지 못할 만한 일이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자신이 사울의 눈을 회복하는 데에 도구로서 사용되었음을 선언하였을 때에 제자들도 사울의 회심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사울은 이방인들 위하 하나님의 사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경험을 신뢰하는 대신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확신이 없다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생각과 경험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중시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사55:8)

 

 

넷째 날(수) 이방인에게 전파된 복음

 

*도입질문: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전초기지가 된 곳은 어디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스데반의 순교이후 핍박이 심해져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북쪽으로 48키로미터나 떨어진 안디옥으로 도망하였습니다. 안디옥은 로마 제국 내 시리아 지역의 수도였고 로마나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인구는 약 50만명이었습니다. 바나바에 의해 개척되었고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안디옥에 구브로 출신 바나바, 구레네 출신 루기오, 길리기아 출신 바울, 아프리카 출신 시몬 그밖에 다양한 이방인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바나나의 초청에 의해 안디옥에 일 년간 머물면서 교회를 지도하였는데 그 때에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마도 안디옥 교회 교우들의 삶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짐으로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할 수 있는 중요한 전초기지가 세워졌습니다. 그것도 유대인의 율법주의적 신앙이 아닌 그리스도가 높여지는 그리스도적 사랑과 복음의 신앙이 드러났다는 것이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다섯째 날(목) 교회 내의 갈등

 

*도입질문: 당시 초대 교회 내에 있었던 갈등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당시 초대교회를 구성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오랜 방식대로 살아온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여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그리스도교의 신자가 된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이 된 신자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지만 유대교에서 그동안 지속적으로 행했던 율법주의적 행위들이 그리스도교회에서도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할례가 당시에 큰 이슈였습니다.

 

할례를 받아야만 그리스도교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주장한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으로 그리스도교에 교인이 된다고 주장한 바울과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여러 초대교회에서 발생하였으므로 예루살렘에서 총회를 열어 이 부분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주장은 지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생명과 연결된다는 바울의 주장은 바울 자신이 오래된 율법주의적 신앙과 바리새인적 신앙을 했던 사람의 경험과는 전혀 다른 반대의 주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에 다른 인식이 다른 신앙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특정 민족만을 구별하실 리가 없으며, 할례라는 조건으로 구원을 주실 수 없다는 것이 바울이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 확신한 신앙이었습니다.

 

오래 동안 율법의 억눌림 속에서 살았던 바울이 예수님의 사랑의 복음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자 이제는 율법이 자신의 신앙을 얽매이는 멍에가 아니라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임을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약속임을 알게 됨으로 참된 진리의 자유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이 억제할 수 없는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고 율법 안에 살기로 선택합니다. 율법은 힘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기 위한 약속이며, 하나님께서 이루실 약속입니다.

 

복음과 율법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율법의 약속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 있기를 선택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께서 내 속에서 율법을 이루어 나가심을 경험하게 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