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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그릇 교과묵상] 제 1과 이방인의 사도 바울(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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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작성일17-06-25 06:29 조회2,6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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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다운로드: http://file.ssenhosting.com/data1/ask2life/20170630.mp3    

※ 지난 방송은 http://www.podbbang.com/ch/10813 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 앱(팟빵 등)에서 '만나그릇'을 검색하여 구독하시면 더 편하게 들으실 수 있습니다.

※ 방송 내용은 매 과별로 당일 방송분까지 포함하여 첨부 파일 형태로 제공합니다.

 

 

630() 1이방인의 사도 바울전체 요약

 

청년 사울은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이름 없는 범죄자의 모습으로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런 거짓 메시야를 따르는 예수의 추종자들이야말로 종교적 타락을 조장하는 자들이라고 믿었고, 이들을 제거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박해자 사울을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는 가장 위대한 전도자 바울로 바꿔 주셨습니다.

 

스데반의 설교와 순교는 사도 바울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데반을 돌로 처형했던 사건(7:58)에 처음 등장한 이래, 예루살렘의 광범위한 박해에 참여한 자로 계속하여 언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8:1~5). 하지만, 그와 스데반의 첫 인연은 순교 사건 이전에 벌어졌던 해외파 유대인의 무리와 스데반 사이의 논쟁(6:9)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과 율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한 예수가 유대 신앙의 진정한 중심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스데반을 반대하며 정죄했는데, 바울 역시 바리새인으로서 그들과 동일한 견해를 갖고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스데반과 같은 자들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위한 그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확신이 가져온 결과였습니다.

 

그의 활동을 설명하기 위해 멧돼지의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행위를 묘사하는 잔멸할새”(8:3)라는 단어가 선택되었던 것처럼, 바울은 기독교 신앙을 박멸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바울이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사람이었고, 다메섹 도상에서의 만남이 그의 생각을 바꿔놓았을 때, 그의 삶의 방향도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성령께서는 그를 설득해 오셨습니다.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26:14)는 말씀은, 그가 계속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역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만남은 하나님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를 풀어주는 사건이었고, 그는 이제 새로운 성전(聖戰)을 위한 주님의 투사로서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존심과 열정으로 똘똘 뭉쳐 예루살렘을 떠났던 그는 이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다메섹으로 입성했습니다. 다메섹에서의 첫 삼일 동안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바울이 이제는 이방에 복음을 전하도록 선택받은 사도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26:16~18). 이러한 소식은 아나니아와 그가 속했던 다메섹 교회에게도, 3년이 지난 시점의 예루살렘 교회에게도(9:26~30)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면서 대제사장에게 기독교 신앙을 뿌리 뽑으라는 명령을 받았던(26:12) 그에게, 주님께서는 대제사장보다 더 큰 권한과 명령으로 이방인의 사도라는 역할을 맡기셨고, 이러한 계획은 유대인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최초의 이방인 교회가 세워진 안디옥은 초대 교회의 선교 전초기지가 되기에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파견하여 교회를 도왔고, 바나바는 5년의 사역 후 바울을 불러들여 그곳에서 함께 사역했습니다. 바울은 그 전까지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한 것으로 보여지며(1:21), 그 기간동안 가족의 상속권을 박탈당하고(3:8) 고초를 겪었을 것(고후 11:23~28)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국 성령의 인도하심과 두 지도자의 협력으로 안디옥 교회는 성장했습니다. 다양한 이방인 신자들로 구성되어 대도시의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었던 이 교회는 복음의 전초기지가 되어 더 많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가 되길 바라셨던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며 계속하여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를 모두가 반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반드시 할례와 모세의 법에 대한 순종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10:11~11:18). 이런 자들은 안디옥에서 논란을 일으켰고, 그 결과로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들이 전하는 복음과 사역에 대해 설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총회가 바울의 손을 들어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7년 뒤 바울이 예루살렘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에는 그들로 인해 생명의 위협까지 겪어야 했을 정도로 그 반감의 뿌리는 깊었습니다(21:28). 이처럼 그들은 바울의 사역 내내 그를 막아섰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모습은 자신만의 신앙의 잣대를 고집하는 일이 가진 위험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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