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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 성령의 열매인 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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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1-26 15:21 조회4,2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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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01월30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53분)

제5과 성령(聖靈)의 열매인 인내(忍耐)

<核心本文> : 약 1:2~5
<硏究範圍> : 창 6:3, 출 34:6, 막 4:26~29, 롬 15:5, 엡 4:1~2, 약 1:2~4.
<記憶節>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學習目標 >
<깨닫기> : (인내(忍耐)를 배움)
인내를 실천(實踐)하는 것이 때로는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느끼기> : (인내심(忍耐心)을 배양(培養)한 필요성)
인내심을 기르기 위해 간절히 소망(所望)한다.
<행하기> : (시련(試鍊)중에 인내심을 발휘(發揮)함)
시련과 곤경(困境)의 상황(狀況)에서 인내심을 발휘한다.

◈ <확대경(擴大鏡)>
<인내(忍耐)>
현대의 간편하고 편리하고 신속한 생활패턴은 점점 "인내"(참음)를 빼앗아 가는 것 같습니다.
작은 불편과 분노를 참지 못하여 우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경의 가르침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중에서 "오래 참음"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습니다.

에스더는 민족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금식하며 5일간 기도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믿음 안에서의 인내,
요셉의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에서의 감옥행과
형들의 지난날의 자신에게 한 행동의 종살이와 고생의 복수 대신에 인내로써 하나님을 의지함.
욥의 천재지변과 육신의 질병에서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인내.
사도들의 신앙으로 인한 핍박과 환란에서의 믿음의 인내.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智慧), 그리고 구원(救援), 정말 부러운 모습입니다.

<要點 >
인내심을 계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내를 묵상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영적 성장에 주요한 걸림돌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적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일요일(1월 24일)
<하나님의 속성(屬性)인 오래 참음(출 34:6)>

◈ <인내(忍耐)하시는 하나님>
양(羊)이 길을 잃어버린 것은 양의 실수(失手)입니다. 우리가 고생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은 하나님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실수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못해서, 교만해서, 버릇이 없어서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쳐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실수해서 우리가 잘못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 잘못 때문에 구원(救援)을 포기하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유보(留保)하시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구원(救援)하기를 원하십니다.
죄인 가운데는 스스로 회개(悔改)하고 돌아올 가능성이 있는 죄인이 있습니다.
탕자가 되었어도, 하나님을 등 뒤로 하고 세상에 가서 인간적으로 살고 죄에 빠져 괴로워하다가도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죄인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문을 열고 밤이나 낮이나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죄인은, 스스로는 절대로 죄 가운데서 빠져나올 수 없는 그런 죄인이 있습니다. 이런 죄인들을 위해서 목자(牧者)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나기 위해 예수님은 2000여년의 세월을 거쳐 여기까지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인내(忍耐)를 닮고 배웁시다.

◈ <예수님의 인내(忍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시고 동산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제사장의 하속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검(劍)과 몽치를 들고 왔습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 볼에 키스하면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유다야 네가 내 볼에 키스하므로 나를 파느냐 빨리 행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달려들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할 때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의 잡히심에 분노해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그래 예수님께서 귀를 붙여 낫게 하시고 “칼을 집에 꽂으라.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한다. 라고 교훈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까지 참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는 말은 ‘그들의 행동을 그냥 내버려두어 하게 하라’ 그런 뜻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너희들이 손대면 안 된다. 하도록 내버려 두어라.’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2-3).
예수님을 ‘참으신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참고 사셨습니다. 참고 죽으셨습니다. 그는 참으심으로 일생을 일관되게 나아갔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느껴지는 감동은 예수님의 인내(忍耐)입니다. ‘너희들이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라는 말은 ‘너희들이 세상 살기 힘들어 낙심될 때 주님 바라보라.’ 다시 말하면 ‘가난할 때 주님을 바라보면 참을 수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주님 바라보면 참을 수 있다. 원수를 만났을 때 예수님을 바라보면 참음으로 이길 수 있다. 실패하고, 낙심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주님을 바라보면 능히 참을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 <기다림의 유익(有益)>
우리는 배우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기도 응답이 오기를 기다리고, 반항적인 자녀가 철들기를 기다리고, 일자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건강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갈등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곧 인내(忍耐)다.
우리는 기다림을 통해 인내(忍耐)를 배운다. 믿음의 영웅들의 명단을 보면, 잘 기다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다윗 왕은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에서 기다렸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기에 앞서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렸으며, 다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보냈다. 욥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도 하나님을 기다렸다.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노년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난 후에야 특별한 아이인 침례(浸禮)요한을 낳았다. 사도 바울은 감옥(監獄)에서 석방되기를 기다리면서 편지들을 썼는데, 그것이 오늘날 신약 성경의 일부로 옥중서신이라 한다.
하나님 역시, 세상 죄를 대속(代贖)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해 ‘때가 찰 때까지’ 기다리셨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주재권(主宰權)에 얼마나 굴복하며 사는지는 ‘기다림’이라는 도가니에서 시험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운명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체념 상태로 기다리거나 초조해하고 염려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이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이시오,
그 모든 것의 시간 조절에 있어서도 주님이심을 고백하기 원하신다.

◉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
“각 시대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말을 듣지 않는 자녀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셨고 이제 도전적인 반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 마음으로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심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내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호 6:4)고 부르짖으셨다.”(선지자와 왕, 284)

◉ 하나님께서는 가장 완악한 죄인까지도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
우리가 인내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까닭 중 하나는 하나님의 인내(忍耐)를 닮고자 함이다.

월요일(1월 25일)
<인내(忍耐)가 요구됨(엡 4:1~2)>

◈ 인내(忍耐)에는 3가지의 종류로 나누어 보고 싶다.
⑴ 어쩔 수 없어서 참는 것, →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
⑵ 마지못해 참는 것, → 주인과 종으로의 관계
⑶ 믿음으로 소망가운데 참는 것 → 성도(聖徒)와 하나님과의 관계

◈ <인내(忍耐)하는 믿음과 신앙(信仰).>
우리가 삶을 살다 보면 때로는 인생의 황무(荒蕪)함의 계절(季節)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인생의 자갈밭 길을 걸을 때 태양 빛이 우리를 내리쬘 것이다.
잠시 동안 우리는 육신의 자녀를 낳지 못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발전이 없으며,
나의 업무에 실적이 없고 교회는 문제 속에서 나에게 무관심 내지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어 내가 약(弱)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황무함에 대한 나의 반응은 어떠해야 하는가?
문제는 우리의 믿음과 신앙의 우물이 마르게 허락할 것인가에 있다.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하나님은 나를 잊으셨다"라고 느껴질 때에도 우리는 믿음과 신앙 속에서 인내해야 한다.
나의 주위의 "보이는 현상"의 실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황무함의 세월 동안, 주위 사람들은 당신의 상황이 변화될 것에 대한 기대감도 없고,
당신의 내면에서는 사단의 음성이 계속 내 자신을 바라보게 하여
믿음이 산산조각 난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그곳에 보이지 않는 현상이 있다. 능력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당신을 기억하는 그분에게 당신의 기도의 향불을 다시 올려 드리라.
그분에게 당신의 황무함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절대로 당신의 손을 비틀지 않으며, 하늘나라의 보좌 앞에서 이리저리 걸으면서 “어떻게 해야 하지? 이 황무함은 내게 너무 크다!”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절대로 당신의 황무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내 삶에도 황무함의 영역이 있으며, 하나님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애원한다.
모든 것에서 나의 가장 깊은 바람은 그분이 나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격려해 주시는 그 음성을 듣고
믿음의 하늘 사닥다리를 보고 그 분이 내미는 사랑의 밧줄을 믿음으로 움켜잡고 인내로 올라야 하는 것이다.

◈ 우리말 속담에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나가도 샌다는 말이 있다."
내 자신의 참을성이 없는 사람은 가정에서도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그대로 인내하지 못하고,
눈에 보는 그대로 귀에 들리는 그대로 즉시 입으로 마음을 토설(吐說) 할 것이다.
흔히들 연애(戀愛)할 때는 이 세상에서 그 사람이 최고로 좋은 사람으로 여기고 열애(熱愛)를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한 사람 중에 이혼(離婚)을 하는 사유를 들어 보면,
연애를 할 때는 50% 도 안 되는 좋은 점만 눈에 보게 되기 때문에 서로가 없으면 죽고 못 살 것 같이
열애(熱愛)를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해서 살다 보면 100%중에 단 1%정도의 결정적인 사유로 인하여
이혼(離婚)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인내(忍耐)란 무엇일까?
가정에서 부부(夫婦)지간이나 부모자녀지간에 인내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잠언 17:1)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和睦)하는 것이 육선(肉饍)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말씀하고 있다.

교회도 하나 되게 하는 성도(聖徒)들의 덕목(德目)으로
온유(溫柔)는 길들여진 가축에 대해서 사용된 단어로서 "연약(軟弱)함"이란 뜻이 아니라
① 하나님께 길들여진 마음이나,
② 자신은 강(强)하지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성품을 의미 한다.(창 13:7-18; 민 12:3; 마 11:29)
그러므로 인내(忍耐)는(오래 참음은) 죄인들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인내로서,
거역(拒逆)하는 자들에게 보복(報復)하지 않는 자비(慈悲)를 뜻하는 것이며,
우리는 이 덕목에서 교회의 하나 됨이 외적(外的)인 압력에 있지 않고 내적인 사랑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롬 14:1, 15:1)에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 대야여 다음과 같은 조언을 주고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고 오히려 그들의 약점을 강한 자들이 대신 지는 미덕을 발휘하라고
바울은 권면하고 있다.

◉ <우리의 약점(弱點)을 참아 주시는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부족한 점을 아시지만 오래 참으신다.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는 오래 전에 멸망하였을 것이다. … 악한 추측을 받고 난폭한 대접을 받을 때 침묵하고 있으면 거기에는 참으로 고상한 위엄이 나타나는 법이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왕이나 정복자보다 더 강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생각하도록 하는 사람들이다. 그는 사랑이 있고 친절하고 겸손하며 오래 참지만 진리와 그리스도를 옹호할 때는 굳세고 용감하다”(재림교 성경주석,(영) 3권, 1160)

화요일(1월 26일)
<복음을 전(伝)할 때의 인내(忍耐) (딤후 4:2)>

◈ 반쪽 신앙의 가정에서 배우자를 주님께 인도하기란 참으로 어렵고 힘든 것을 우리는 보고 또 경험한다.
그러나 배우자를 주님께 인도한 사례를 살펴보면 그들의 공통점은 "인내(忍耐)"라는 단어밖엔 다른 표현이 없다는 것이다. 말로만 하는 복음전도자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몸으로 실천할 때 영혼구원의 추수(秋收)를 한다는 것이다.
농부가 밭에 씨앗을 뿌리면 발아(發芽)가 되고, 싹이 나고, 잎과 줄기가 형성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순식간에 열매를 추수하는 것이 아니며 인내(忍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훈해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많은 비유 가운데에서 농사에 관 한 비유가 많다는 점도 우리는 유념해 볼 것이다.

◈ 복음전도자들이 해야 할 역할로
<첫째> 복음 전파에 항상 힘써야 한다.
<둘째> 사람을 꾸짖음. 즉 실수와 하물을 깨닫게 해야 한다.
<셋째> 사람들의 범죄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즉 엄하게 징계해야 한다. (고후 2:6).
<넷째> 사람들을 권(勸)해야 한다.
즉 잘못된 사람들을 징계만 해서는 안 되며 사랑의 정신으로 위로하고 권면해야 한다. (고후 7:3; 빌 4:1)

. 때가 되기 전에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자라고 열매가 맺히고 익기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 <인내(忍耐)함으로 영혼을 구원(救援)함>
“바울은 인내하여 일한 결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진리를 받지 아니한 자도 많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어떠한 방법으로 진리를 소개하든지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꾼들은 가장 좋은 방법을 연구하여 반감이나 논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에 많은 사람들이 실패한다.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전도하였더라면 사람들을 인도하여 그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까지도 인도하였을 것을 자기의 성벽대로 전도함으로 전도의 문을 막아 버린다.”(복음 교역자, 118)

◉ 우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인내심(忍耐心)을 가져야 한다.
비록 당장의 결과를 볼 수 없다 할지라도 그를 정죄(定罪)하는 대신 참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수요일(1월 27일)
<인내(忍耐)에는 한계(限界)가 있음(창 6:3) >

◈ 하나님께서는 노아 당시의 사람들에게 120년간의 유예기간(猶豫期間)을 주셨다.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광야와 바벨론 유수 때의 이스라엘을 보면, 사람들의 어떤 태도가 그와 같은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왔음을 보게 됩니까?(신 31:27, 시 95:8, 렘 17:23)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무한정(無限定)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악용하는 자들은 이 경우를 통해 언젠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그치는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 역사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후에 두려운 심판이 내려진 사례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을 멈추실 때에는 한없는 연민의 정으로써 끝을 선언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 <죄악의 잔(盞)이 넘칠 때 >
“죄악의 잔은 빠르게 채워져 가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죄악이 하나님의 정하신 한계점에 이를 때까지 자비로 지체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오래 참으시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이를 때까지 하나님의 대리자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들의 죄를 하나님의 인내를 가지고 참으시지만 그는 막대기로 그들의 죄를 징치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멸망시키는 사단의 대리자들을 파멸시키도록 허락하실 것이다”(재림교 성경주석,(영) 4권, 1171)


목요일(1월 28일)
<인내심(忍耐心)을 계발(啓發)하는 비결(秘訣) (약 1:2~4)>

◈ 인내는 수동적인 참을성이 아니라 고난(苦難)에도 굴복(屈伏)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하는 역동적(力動的)인 견고성을 의미한다. 즉 능동적으로 시험에 대처한다는 의미의 이 말속에서 우리는 참 신앙이란 감정이나 지성에 머물지 않고 의지로까지 확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시험’ 혹은 ‘유혹’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페이라조(peirazo)인데, 넓은 의미로 ‘입증’ 또는 ‘검증’을 뜻하기도 한다. 마귀는 우리를 시험하고 유혹하여 악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삶에 허락하시는 시험과 시련은 우리의 품성을 계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인생의 고난은 우리 성품에서 불순물과 거친 것을 제거해 내는 하나님의 일꾼들이다. 이들에 의해 채석되어 깎이고, 끌로 새기어지고, 갈리고 다듬어지는 것은 고통스런 과정이다. 또 회전 연마기(硏磨機)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 속에 들어간 돌은 하늘 성전의 제자리를 채우는데 부족함이 없이 준비되어 나온다. 쓸모없는 물건을 위해서는 주께서 그처럼 신중하고 철저한 작업을 하지 않으신다. 오직 그분의 보석만이 궁전의 식양대로 다듬어진다.”(산상보훈, 10)

◉ <다윗이 인내를 배운 과정(過程)>
“다윗이 목자로서의 초기의 생애에서 겸손과 수고를 참고 친절히 양떼를 돌보는 데서 얻은 교훈들과 한적한 들에서 자연과 접촉하고 음악과 시에 대한 재능을 계발하며 그의 생각을 창조주께 향하게 한 것들과 오랜 광야 생활의 단련으로 용기와 견인불발과 인내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행사하도록 하신 것은 여호와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할 준비로서 정하신 과정이었다.”(부조와 선지자, 746)

◉ 시련은 우리의 품성, 특히 인내심을 길러준다.
우리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복종하고 믿음으로 그분을 굳게 붙잡음으로 시련을 통과할 수 있다.

◉ “하나님께서 사람을 취급하실 때 그분은 오래 참으신다.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대리자들을 쓰셔서 사람들을 부르사 충성하라 하시고 회개하면 완전히 용서해 주겠노라고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악용한다.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복종케 해야 될 하나님의 참으심이 부주의하고 죄 된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영향을 미친다. 그분의 오래 참으심이 그들로 하여금 자제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고 반역하는 마음을 기르게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오해하여, 자기들의 탈선행위에 대해 별 관심이 없으신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즉각적으로 형벌이 주어지는 시대에 산다고 하면 하나님께 범죄하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지체될지라도 역시 형벌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나님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분의 오래 참으심이 한계에 다다르면 필연 형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이처럼 완고한 죄인을 취급하실 때는 완전한 끝이 이를 때까지 그치지 않으실 것이다.” (재림교 성경주석,(영) 3권, 1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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