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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과 안팎의 위기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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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5-10-03 08:15 조회3,6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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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과 안팎의 위기

 

 

기억절 :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3)

 

 

첫째 날(일) 간추린 역사

 

*도입질문: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에 발생한 이스라엘의 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여호수아를 통해 드디어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복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가나안 백성들과 함께 거하게 되었고, 가나안 백성들의 영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 그들의 마음이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생명 없는 사망의 삶이었기에,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사사들을 보내셔서 생명이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사들의 지도를 받을 때는 하나님께로 돌아왔지만,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과 원수가 됨으로 약간의 시간과 기회만 주어지면 곧 하나님을 떠나 사망의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사사들이 지배하던 내내 반복되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다스림도 원하지 않아서 이방인들처럼 왕을 원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셔서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왕의 지도력에 따라 하나님을 경외할 때는 생명력이 충만한 행복한 시기였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우상을 따를 때는 모든 행복이 다 사라졌고 죄의 본성에 따라 싸움과 갈등과 다툼이 지속되었습니다.

급기야는 솔로몬 왕이 죽은 이후에는 한 나라였던 이스라엘이 지역에 따라 남방 유다와 북방 이스라엘로 분리되어 두 나라로 존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이 만든 것 같이 보이는 세상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세상의 역사는 사람들이 만든 역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 속에 있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중심에 놓고 최우선 순위에 두는 사람과 나라는 하나님께서 생명과 행복의 모습이 되도록 인도하시지만, 하나님을 떠나고 사람의 생각에 바른 것처럼 보이는 것을 따라 행하는 사람과 나라는 결국은 사망으로 끝나며, 사망으로 가는 과정 속에 수많은 불행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생명과 행복과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이 눈에 필경 좋게 보이는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만 생명과 행복과 기쁨이 있음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마7:13-14)

 

 

둘째 날(월) 두 왕국

 

*도입질문: 이스라엘 나라가 두 나라로 나뉘게 된 이유와 이후 두 나라의 형편은 어땠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왕으로 세워진 사람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었습니다. 르호보암은 왕이 된 후 솔로몬 왕 때부터 신하였던 노숙한 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 그들은 르호보암이 백성들의 세금을 내려주고, 백성들이 편안한 정책을 추진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르호보암은 자신의 친구들과도 상의하였습니다. 르호보암의 친구들은 신하들과 달리 초반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엄히 다스리고 세금을 올려서 왕권을 강하게 세울 것을 조언하였습니다.

 

정반대의 조언에 대하여 르호보암은 친구들의 조언을 선택하게 되었고, 강하고 엄한 정책은 백성들의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10지파가 르호보암의 반대편에 세게 되었고, 그 중심에 여로보암이 있었습니다.

 

10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 북쪽 지방에 그 근거지를 두고 르호보암과 분리하였습니다. 10지파가 있던 지역이 북쪽 이었기에 그들은 “북방 이스라엘”이라고 이름 지었고, 나머지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는 남쪽이 있었기에 “남방 유다”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두 왕국의 역사는 일반적인 나라의 역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의 본성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왕국은 전쟁과 불행과 사망이 있고,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모든 일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사람들의 왕국은 행복과 지혜와 생명력이 있었습니다. 두 왕국이 하나님을 떠나는 선택을 할 때마다 사랑과 생명을 주고 싶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부르셔서 그들을 방문케 하셨고, 그들이 생명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호소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은 하나님을 싫어하기 때문에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하나님을 떠나는 사사기 시대의 모습을 반복하였습니다.

 

 

셋째 날(화) 두 죄악

 

*도입질문: 하나님이 정의하시는 악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사람들이 정의하는 악은 행위와 관련이 있는 반면, 하나님께서 정의 하는 악은 관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악한 행위를 악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생명의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행위를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단도 가졌던 핵심 생각이었습니다. (창3:4)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의 존재가 하나님의 창조행위로 존재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생명을 공급하심으로 존재를 유지하는 존재이므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신 하나님과 절대적 관계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상태는 선이고 의이지만, 하나님을 떠난 상태는 악이고 죄인 것입니다.(렘2:13)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여 몸은 하나님께 있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태 역시 사람들이 볼 때는 매우 종교적인 사람의 모습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악한 상태이고 죽은 죄의 상태입니다.(사1:11-13)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난 것과 하나님 없이 스스로 생명을 얻고자 하는 모든 노력은 그것 자체가 사망이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이요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품성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 스스로의 행위로 구원 얻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에 대한 감동만이 하나님께로 다가서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을 성경은 선이며 생명이며 의라고 정의합니다.(요일5:12)

그래서 하나님의 품성을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호6:3)

 

 

넷째 날(수) 바벨론의 위협

 

*도입질문: 하나님께서 남방 유다를 바벨론의 손에 붙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께서 남방 유다를 바벨론의 손에 붙이셨다는 표현도 사실이 아닌 하나님의 품성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남방 유다가 하나님을 떠난다 할지라도 멸망시키시는 분이 아닙니다.(요12:47)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난 나라에게 심판과 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선택의 결과가 고통입니다.(렘2:17, 19)

 

남방유다의 선택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에서 나간 것이고 그 결과가 이방인의 침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그 상황을 역전 시켜서 하나님께로 다시금 돌아오는 기회로 삼으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죽음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나면서부터 이미 죽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고전15:22 전반부)

또한 나면서부터 죽은 자들이지만 그들을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돌아가심으로 죽음을 해결하셨고 그들을 이미 살리셨기 때문입니다.(고전15:22 후반부)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자의 모습은 문제가 안 되는 데 정말 큰 문제는 죽은 자가 살 수 있는 기회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셨는데, 그것을 알지 못한 체 하나님에게서 떠나 영원한 무(멸망)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생을 거부하고 멸망이 되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최악의 상황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거절함으로 이미 죽어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명을 선택하길 원하셔서 지속적으로 선지자들과 성령을 통해 호소하시지만, 그들이 끝까지 생명의 호소를 거절한다면 하나님의 강제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품성대로 그들의 선택대로 인정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에도 하나님으로서는 최후의 사랑의 행위를 행하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자이지만 실제로 죽는 그 순간에 생에 대하여 간절히 원하여 그동안 선택했던 사망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통해 하나님은 최후의 호소를 하십니다. 죽음과 직면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 최후의 시간이 되고, 그 시간에 하나님은 영적 에너지로 시간을 조절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사랑의 호소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기회를 주시고 마지막까지 생명을 선택하도록 절대 놓치지 않으십니다.(사49:15, 요13:1)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도 사람에게 주신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선택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가슴 아픈 사랑을 오래 참으시면서 그 사람의 선택을 인정하실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의 가슴은 타들어가는 불 못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다섯째 날(목) 거짓 맹세

 

*도입질문: 예레미야 선지자 당시의 백성들의 죄는 무엇이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예레미야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되라고 설교하였습니다. 이것은 행위를 바꾸라고 하는 말씀 같지만 그 내면을 생각해보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의가 하나님이시고(롬1:2-복음에는 의가 나타나 있음 롬1:17) 진리가 바로 하나님입니다.(요14:6)

유다 백성들은 마음으로는 하나님께로 오지 않았으면서도 종교적 행위를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께 있다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망이며 죄입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있습니다.(요14:6) 구원은 하나님 자신입니다.(눅2:28-29)

그러므로 하나님을 나의 삶의 중심에, 최우선 순위에 놓을 때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을 나의 삶의 중심에, 최우선 순위에 놓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의 본성은 하나님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이 일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일은 나의 본성의 힘 보다 더 강력한 사랑의 에너지로 나에게 다가오시는 성령님을 통해서입니다.(롬8:2)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기를 선택할 때, 성령께서 오셔서 나의 마음에 그동안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사랑의 진실과 깊이와 넓이를 보게 하시고 느끼게 하십니다.

성령을 통해 느끼고 보게 된 하나님의 사랑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끌려지게 하여 마침내 하나님을 나의 삶의 중심에, 나의 최우선 순위에 놓기를 선택하게 만듭니다.

내가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것을 내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사역입니다.(요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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