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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과 위대한 스승 (하나님 품성 중심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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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용범 작성일15-05-22 13:42 조회3,2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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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과 위대한 스승

 

 

기억절:“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눅 4:32)

 

첫째 날(일) 예수님의 권위

 

*도입질문: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달랐기에 그 가르침에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서기관들과 어떻게 달랐고 그것이 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쳤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서기관은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들로서 성경의 내용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이 가르치거나 설교할 때는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였고, 그 해석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였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성경을 글자그대로가 아닌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품성대로 다시 해석하는 가르침이었습니다.(마5:38-39, 43-44, 마19:8)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품성이 드러났으므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켰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서만 일깨워집니다”

사람이 무조건적인 사랑에만 감동을 받는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도 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나를 섬겨주시고, 사랑해 주시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건 없는 사랑에 반응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

예수님의 설교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글자대로가 아닌 그 말씀을 하신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풀어 설명하심으로 사람들은 감동하게 되었고, 그 사랑의 감동이 그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영향력이 된 것입니다.(고후5:14)

 

 

둘째 날(월)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의 설교

 

*도입질문: 예수님은 산상보훈(마5:-7:)에서 선포하고 싶었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산상보훈의 내용은 하나님 안에서 거듭난 사람이 살아가야할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거듭남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될 때(눅6:35) 하나님을 개인의 창조주와 구원자로 선택함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거듭난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선택하게 되고, 성령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하게 합니다.(눅6:27-31, 37-38, 45)

 

 

셋째 날(화) 새로운 가족

 

*도입질문: 하나님 안에서의 새로운 가족은 어떻게 형성될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하나님은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를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사단에게 속하는 선택에 의해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나면서부터 사단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아들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아들(아담)을 창조하신 아버지께서 친히 아들(두 번째 아담)의 위치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첫 번째 아담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인 영원한 죽음을 해결하심으로,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날 때,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실 때의 원래의 모습대로 다시 하나님 안에서 가족이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거듭날 때 하나님의 가족으로 새롭게 형성됩니다.

 

 

넷째 날(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1

 

*도입질문: 젊은 법관의 신앙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젊은 법관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의 신앙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 조건에 맞는 신앙을 해야만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최고의 관심사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10:25)였습니다. 그는 영생은 조건이라고 생각했고, 조건을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은 조건적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기에 영생을 위해 조건을 맞추는 문제가 그에게는 꼭 해야만 하는 문제였습니다. 조건에 맞춘 삶은 피곤한 삶이었지만 조건이 맞지 않을 때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강박관념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조건을 주고 그 조건에 맞을 때만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은 사랑하고 싶지 않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 뿐만아니라 주위의 사람들도 조건에 맞는 행위 때문에 영생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타가 인정하는 영생의 삶 속에 있는 것 같은 젊은 법관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은 그의 마음속에 영생을 위한 조건을 실천하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는 상태를 보시고, 사랑이 없으면 생명도 없음을 부드럽게 일깨워주시고자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대로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젊은 법관에게 실상은 하나님도 사랑하지 않고 이웃도 사랑하지 않고 있음을 밝히신 것입니다.

법관에게는 조건을 주시는 하나님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성경은 사랑이 곧 생명임을 증거 합니다.(요14:6, 요일4:16 비교)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지 않은 채, 성경이 제시하는 조건만 충족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믿고 행했던 법관은 자신의 행위만 있었지 생명인 하나님의 사랑과는 연결되지 못했건 것입니다.

 

 

다섯째 날(목)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2

 

*도입질문: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교과를 통해 답을 생각해보기

 

법관이 사랑해야할 이웃이 누구냐를 질문에 대한 답으로 주신 것이 바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비유에서 강도만나 자는 법관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알지 못한 채 영생을 위해서는 조건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사단이 영에 생각이 빼앗긴 자였습니다. 조건을 맞추는 일이 너무나 힘들어 지쳐 있을 때 제사장도 지나쳤고, 레위인도 지나쳤습니다. 그들이 강도만난 자를 지나친 이유는 그들의 사랑이 조건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강도 만난 자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를 알지도 못하지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완벽한 사랑이었습니다. 부비가 더 들면 다시 와서 그것까지도 계산 하겠다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에 대한 표상입니다.

 

이 비유의 끝부분은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였습니다. 결국 강도 만난 자인 법관이 사랑해야할 이웃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법관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조건을 제시하는 예수님이 싫었습니다. 예수님이 싫은 상태에서 영생을 위해 조건을 맞추고 사는 살므로 스스로 만족하였지만 그 삶은 생명과 상관없는, 예수님 보시기에는 죽어 있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지 않고는 아무라도 하나님께로 오지도 않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될 때 그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의 결합이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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