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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가나안 접경에서의 부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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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 작성일09-12-05 08:27 조회4,9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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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가나안 접경에서의 부도덕

12월 12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14분)


기억절: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고전 10:8)


연구범위: 민 25, 31장, 신 21:10~14, 고전 10:1~14, 계 2:14.


안식일 오후

우리는 여기서 다시 민수기 전체를 관통하는 동일한 주제를 발견하게 된다. 즉 그렇게도 분명하고 강력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백성이 여전히 잘못된 선택을 하고, 여전히 믿음의 부족을 나타내며, 가장 무서운 불순종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의 거듭된 불순종과 그릇된 선택에 의해 그 목적은 점점 더 이루어지기 어렵게 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돌보시는 섭리는 계속되었고 또한 계속 될 것이었다. 그분께서 옛날 언약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듯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하늘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목적을 방해하지 않고 그분과 협력하기를 거절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번 주에 우리는 구약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믿음의 실패 사건 즉 싯딤에서의 배교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비록 그 일이 수천 년 전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일어났지만 약속의 땅의 변경에 와 있는 오늘날의 교회는 여기서 귀중한 영적 경고를 받아야 한다.


핵심본문: 고전 10:8


<학습 목표>

깨닫기: 시련의 때에 불신에 빠지기 쉬운 것처럼 안락한 때에는 타협의 정신을 품게 됨으로 타락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느끼기: 악에 빠지기 쉬운 우리에게 구주가 절실히 필요함을 느낀다.

행하기: 도덕적 순결과 그리스도께 대한 충정을 지키기 위해 그분과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기로 결심한다.


< 교과 개요 >

I. 깨닫기: 안일과 타협의 정신이 타락을 불러옴

A. 이스라엘은 어떤 단계를 거쳐 부도덕과 우상숭배에 빠졌는가?

B.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계속되던 염병이 멈추게 되었는가?

C. 온 진영이 죄에 빠지게 되기까지 지도자들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II. 느끼기: "주여, 타락으로 기우는 나를 도우소서."

A. 도덕 불감증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는 어떤 생활 방식을 가져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타협하려는 유혹을 받고 있지는 않은가?

B.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그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제공하신 대비책을 활용한다면 우리의 삶의 방식에 어떤 변화가 생기겠는가?


III. 행하기: 그리스도, 우리의 의(義)

A. 우리는 가정과 교회에서 부도덕을 멈추게 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는가?

B. 우리는 성적 욕구를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지만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건전한 성적 성향을 갖도록 어떻게 도우시는가?


요점: 세상의 관습과 타협하고 세상 사람들과 가까이 교제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도덕적 타락에 빠졌고 그에 대한 책임을 공동체 전체가 져야만 했다.


일요일(12월 6일) 유혹에 빠짐(민 25:1~3)


민수기 25:1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너무나도 명백하게 알려주는 진술이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었다”고 말한다. 즉 그들은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 그들은 쉬고 있었다. 그들은 가나안 족속(민 21:1~3)과 아모리 족속(21~31절)과 바산 왕 옥의 지배 아래 있던 자들(33~35절)을 정복하는 등 몇 번에 걸친 정복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에 참으로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약속의 땅이 보이는 요단 강 건너편에 도착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은 후에 이제 일이 순조롭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들은 군사적 위협을 쉽게 물리쳤으므로 당장은 전쟁의 위협도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편히 쉴 수 있었던 것이다.


1. 민수기 25:1~3을 읽으십시오. 이들은 어떤 단계를 거쳐 배교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얼마나 무서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민25:1-3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답: 이스라엘 백성이 편안하게 싯딤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그 여자들의 꾀임에 빠져 그 신들의 제사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먹고 그 신들에게 절하였다. 마침내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 복속하고 말았다.


이 모든 성적 문란함과 우상숭배와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는 요단 강 이편에서 일어났다. 본문에 사건이 일어난 순서를 보면, 먼저 그들이 그 여인들과 성적인 관계를 가짐으로 경계가 무너졌고, 그 다음에 이 여인들의 초대를 받아 이방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마침내 그들은 이방 신들에게 절하고 그것들을 숭배하였다.

우리 생각으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명히 그들이 잘 몰라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섞이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처음에는 많이 섞이지 않았다가 점점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그들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그들의 경계를 허물었고, 그들이 깨닫기도 전에 정욕의 덫에 사로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일단 그들이 올무에 걸리게 되자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죄의 미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속임을 당하게 되고 말 것이다.


죽은 자에게 제사한 모압 사람들

“죽은 자와 교통한다는 이 같은 신념이 이교의 우상숭배의 초석을 놓았다. 이교의 신들은 죽은 영웅들의 신격화된 영이라고 믿어졌다. 그리하여 이교의 종교는 죽은 자를 예배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벧브올에서 범죄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민 25:1~3). 시편 기자는 이 제사를 어떤 유의 신에게 드렸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동일한 이스라엘의 배도에 언급하여 그는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었다(시 106:28)고 말했는데 그것은 즉 죽은 자에게 드린 제사였다.”(부조와 선지자, 684)


<부가설명>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한 것은 발람의 꾀였다. 발람이 자기의 탐욕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의 간섭으로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이제는 대담하게 하나님을 대적할 방법을 생각하였다. 발람은 모압 왕에게 모압의 축제를 열고 이스라엘을 초청하도록 제안하였고, 발락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 모압 신의 축제를 열고 이스라엘을 초청하는데 발람이 그 역할을 맡도록 하였다. 이것은 적중하여 이스라엘은 발람의 올무에 걸려들었고, 그들은 하나님이 있도록 한 그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떠났다.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없어지자 사망이 그들을 삼켰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적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을 벗어나기만 하면 적은 우리를 삼킨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그 보호의 손길에서 벗어나도록 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강구한다. 우리는 분별하는 눈을 가지고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교훈: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정욕의 덫에 걸려 타락하고 말았다. 하늘 가나안을 목전에 둔 우리에게 얼마나 엄숙한 교훈이 되는가?

월요일(12월 7일) 이스라엘이 타락에 빠지게 된 배경(계 2:14)


1. 요한계시록 2:14과 민수기 31:16을 읽으십시오. 이곳 싯딤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이 구절들은 그들이 타락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계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민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답: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모압에서의 타락에 빠지도록 유도한 사람은 발람이었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계 2:14).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민 31:16)


모압과 미디안 족속은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 실패하자 다른 방법을 시도했는데 그것이 적중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원리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면 죄와 미혹과 파멸의 수많은 문들을 닫아버릴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정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 다음 일을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발람의 제의에 따라 모압 왕은 그의 신들을 높이는 대축제일을 정하고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의 참석을 권유할 수 있도록 비밀리에 준비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발람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알고 있었으므로 발람은 자기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많은 백성이 그와 함께 축제에 참가하였다. 그들은 대담하게도 금지된 곳으로 나아가 사단의 올무에 걸렸다. 노래와 춤과 이교 축제의 현란함에 미혹되어 그들은 여호와께 대한 충절을 포기하였다. 환락과 축연에 가담하여 술을 마시며 방종할 때에 그들의 지각은 몽롱해져서 마침내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정욕이 그들을 완전히 지배하였다. 음탕한 행위로 말미암아 양심을 더럽힌 그들은 우상에게 머리를 숙여 절하도록 권유를 받았다. 그들은 이교도의 제단에 희생 제물을 드리고 가장 비루한 의식에 참여하였다.

오래 지 않아 이 독소는 치명적인 전염병처럼 이스라엘 진영에 퍼졌다. 전쟁으로 원수를 정복해야 할 이들이 이방 여인의 간계에 정복당하고 말았다. 온 백성이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통치자들과 지도자들이 범죄하는 첫 무리에 속해 있었으며 너무나 많은 백성이 범죄하여 거족적(擧族的)으로 배도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모세가 그 악을 감지했을 때에는 원수의 계획이 이미 큰 성공을 거두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브올산에서 음탕한 예배에 참가할 뿐 아니라 이교도의 의식이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에서도 거행되고 있었다.”(부조와 선지자, 454~455)


발람이 모압 왕에게 제안한 계획

“발람은 즉시 모압 땅으로 돌아가 왕 앞에 자기의 계획을 아뢰었다. 모압인들도 역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방패가 되실 것을 깨닫고 있었다. 발람이 제의한 계획은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유인함으로 그들을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만일 그들을 바알과 아스다롯의 음탕한 예배에 참석시킬 수 있다면 그들의 전능하신 보호자는 그들의 원수가 되실 것이며 그들은 곧 주위에 있는 맹렬한 호전 민족들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왕은 쾌히 이 계책을 받아들였으며, 발람 자신은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 일을 수행하는 데 조력하였다.”(부조와 선지자, 451)


<부가설명> 유혹은 욕망을 미끼로 하여 접근한다. 사람들은 생리적 욕망이 있다. 식욕과 성욕과 물욕은 사람의 의식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다가 기회가 오면 튀어나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오관을 성령께 맡기기를 원하신다. 성령이 우리의 감각을 주관할 때 우리의 감각이 거룩하게 된다. 우리는 오관의 문을 잘 지켜야 한다. 이것은 인간 모든 욕망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우리의 감정과 감각이 예수님처럼 되어야 한다. 감각을 통하여 오는 유혹은 감각적 쾌락을 수반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런 쾌락을 즐기려하고 이성은 이것을 피하려한다. 그러나 이성이 감각에게 이기는 일이 쉽지 않다.

거친 광야생활에서 이런 인간의 감각적 쾌락이 절제되어 왔던 이스라엘에게 모압 여자들의 관능적인 춤과 유혹은 그들을 쉽게 무너뜨렸다. 이것이 그때 이스라엘에게 가장 약점이었을 것이다. 마귀는 성도들의 가장 약한 곳을 공격한다. 예수께서 40일이나 금식하셨을 때 먹는 것으로 유혹의 미끼를 던진 것처럼 오늘날도 우리의 어떤 약점과 절실한 필요를 미끼로 유혹하려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도록 마음을 주님께 드리자.


교훈: 이스라엘이 이교의 음란한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 배경에는 발람의 제안이 있었다. 가나안 접경에서 발람은 온 이스라엘을 배교에 빠지게 하였다.


화요일(12월 8일) 죄와 벌(민 25:4~5)


이 사람들은 억울하게 함정에 빠졌다고 자신들의 죄를 변명할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처음부터 여호와께 순종했더라면, 만약 그들이 그분의 계명들을 지켰더라면, 만약 그들이 알고 있는 바 옳은 일을 행하고 서서히 유혹에 대해 문을 열지 않았더라면, 이 두려운 배교와 고통은 결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그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멀리 가리라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들의 축제에만 참석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의 선지자인 발람이 그들을 초청했는데 무엇이 잘못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아주 신속히 제어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1. 성경에서 사람들이 죄에 대해 조금씩 문을 열다가 마침내 상상도 못했던 무서운 결과에 이르게 된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까?


답: 에덴동산에서 하와는 금단의 열매 주위를 배회하다 결국 그 열매를 따먹음으로 이 세상에 죄를 들여왔다. 삼손은 블레셋 여인과 교제하다가 마침내 비참한 운명을 맞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줄 알았더라면 유다는 그분을 은 삼십에 팔지 않았을 것이다.


의문의 여지없이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이와 유사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 것을 보게 된다. 에덴동산의 하와로부터 예루살렘의 가룟 유다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고 있었고, 경고를 받았으며, 더 큰 빛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 그 빛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행동을 합리화하면서 파멸을 가져오는 죄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 자신들도 살아오면서 이와 유사한 경험을 가져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데, 이는 그분이 독재자이시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지를 아시기 때문이다.


2. 민수기 25:4~5을 읽으십시오. 왜 그렇게 강력한 처벌이 내려졌습니까?(참조 8~9절).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게 됩니까?

민25:4,5,8,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5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9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답: 발람의 미혹으로 문을 연 우상숭배는 두령들을 중심으로 온 백성에게 신속히 확산되었고, 그것은 민족적 멸망을 의미했다.


동족이 동족을 죽이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해 보라. 각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 배교에 가담한 그들의 두령을 처형할 책임을 맡아야 했다. 따라서 그 두령의 가족들도 처형하는 일에 가담해야만 했다! 그리고 대낮에(문자적으로 태양 앞에서) 그렇게 해야 했다. 그것은 진영 전체에 큰 고통을 자아내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사단의 전술

“사단은 여러 세대를 통하여 바알브올에서 그처럼 성공을 거둔 동일한 유혹으로 이스라엘 중에 가장 강한 자들과 귀인들을 파멸시켰다. 각 시대를 통하여 육욕적 방종의 암초에 걸려 깨어진 품성의 잔해(殘骸)들이 흩어져 있다. 세상 끝이 가까이 이를수록 하늘 가나안의 변경에 서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사단은 옛날처럼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배전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사단은 각 영혼에게 그의 올무를 놓는다. 경계해야 할 사람은 무식자나 교양이 없는 자들만이 아니다. 사단은 가장 높은 지위, 가장 거룩한 직분을 가진 자들을 유혹할 준비를 할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457)


<부가설명> 이스라엘이 방심한 것은 그들을 초청하러 온 자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알려진 자였기 때문이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건이나 사람들을 통하여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유혹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유혹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소위 신실한 신자나 교회의 명망 있는 지도자들을 통하여 유혹의 손길이 벋으면 신자들은 방심하게 되고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교리적으로 바르게 알지 못하거나 확실히 알지 못할 때 그럴듯한 논리로 접근하면 깜박 속아 넘어간다. 사단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 같이 접근한다. 그들 스스로도 사단의 일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스스로 믿는다. 그런데 그 가르치는 것이 절대적으로 성경적이 아니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그래서 깨어있어야 하고 말씀을 근원부터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교훈: 가나안을 눈앞에 둔 지점에서 이스라엘에 큰 배교가 일어났다. 각 지파의 두령들과 배교에 가담한 자들을 죽일 때에 온 백성은 큰 고통을 겪었다.


수요일(12월 9일) 대담한 죄(민 25:6~18)


이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경험했을 혼란과 고통은 가히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문에서 울”었다(민 25:6)는 구절에서 암시를 얻게 된다. 아마도 그들은 배교 때문에 울었고, 괴로움 때문에 울었으며, 동족의 죽음 때문에 울었을 것이다. 또한 염병이 진영을 휩쓸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과 가족들을 위해 울었으며, 다음은 자신들의 차례가 될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들이 회막문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더 이상의 파멸을 막기 위해 여호와께 애원했음을 가리킨다.


1. 민수기 25:6~18을 읽으십시오.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 이야기에서 얻을 교훈은 무엇입니까?

민25:6-18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7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9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13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14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 곧 미디안 여인과 함께 죽임을 당한 자의 이름은 시므리니 살루의 아들이요 시므온인의 종족 중 한 족장이며 15 죽임을 당한 미디안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니 수르의 딸이라 수르는 미디안 백성 한 종족의 두령이었더라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7 미디안인들을 박해하며 그들을 치라 18 이는 그들이 궤계로 너희를 박해하되 브올의 일과 미디안 족장의 딸 곧 브올의 일로 염병이 일어난 날에 죽임을 당한 그들의 자매 고스비의 사건으로 너희를 유혹하였음이니라.


답: 이스라엘 온 백성이 그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슬퍼하며 울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의 족장 중 하나인 시므리가 미디안 여인 고스비를 장막으로 데리고 와 그로 더불어 행음하는 것을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창으로 꿰뚫어 죽임으로 백성 중에 염병이 그치게 했다.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였다고 성경은 말한다.


비록 본문에는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비느하스가 장막으로 들어가 창으로 두 사람을 꿰뚫어 죽였을 때에 이스라엘 사람 시므리는 그 여인과 음행 중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죽이는 일이 가혹한 듯이 보일지 모르지만 상황을 생각해 보라. 온 진영이 그들에게 닥친 재난으로 인해 울며 여호와께 탄원하고 있을 때에 이 사람은 대담하고 뻔뻔스럽게도 미디안 여인을 진으로 데리고 왔고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그녀를 장막으로 데리고 들어가 음행을 범하고 있었다. 온 진영에 염병이 퍼지고 있는데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시므리가 족장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즉 그는 귀족 계층에 속하였고,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너무나도 깊이 유혹에 빠지고 정욕에 사로잡혀 온 백성이 성막 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우리는 성경에서 죄가 이성을 마비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무분별한 행동을 하게 한 사례들을 무수히 보게 된다. 가인, 다윗과 밧세바, 예수님을 배신한 유다를 생각해 보라. 이렇게 이성이 마비된 자들이 돌이키기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죄가 너무나도 철저히 그들을 감싸서 죄를 더 이상 죄로 보지 않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시므리의 대담한 죄

“이스라엘의 귀족 중 한 사람인 시므리는 '미디안 백성의 한 종족'의 공주인 음란한 여인을 데리고 대담하게 진영으로 들어왔다. 이보다 더 뻔뻔스럽고 완고한 악행은 결코 없었다. … 제사장과 지도자들이 슬픔과 굴욕 중에 엎드려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여호와께 당신의 백성을 아끼시고 당신이 택하신 백성을 책하지 마시기를 간청하고 있을 때에 이 이스라엘의 귀인은 마치 하나님의 형벌을 부인하고 백성의 사사들을 조롱하는 것처럼 회중의 목전에서 보라는 듯이 뽐내면서 범행하였다.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그 둘을 살해하였다.”(부조와 선지자, 455)


<부가설명> 사람이 홀리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다. 죄는 특별히 홀리는 힘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께 홀리라고 권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히12:2)고 권한 말씀 중에 “바라보자”는 말은 “아포라오”인데 그것을 보기 위하여 다른 보이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바라보는 것을 뜻하는 낱말이다. 신약성경에 두 번 쓰인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위하여 다른 모이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예수만 보고 그분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된 것을 홀렸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족장 시므리는 성적 욕망에 홀린 것이다. 주위가 그렇게 슬픔과 고통에 빠져 있어도 그렇게 욕망에 홀린 시므리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생활 중에 이런 경험이 없는가. 자기주장에 스스로 홀려서 다른 설명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며 모드 틀린 것으로만 보이는 경지에 있다면 그는 또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자기 주장에 홀린 것이다. 조심하자.


교훈: 족장 중 하나였던 시므리의 공공연한 죄는 사람이 일단 죄의 유혹에 깊이 빠져서 이성이 마비되면 어떤 죄라도 저지르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목요일(12월 10일) 미디안 족속의 멸망(민 31:1~24)


이스라엘 백성은 싯딤에서의 배교로 무서운 파멸을 경험하였으나 그들을 속여 고통을 가져다 준 미디안 족속은 아직 심판을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공의는 실행될 것이었다. 특히 이 미디안 족속은 열렬한 우상숭배자들이었고 그에 따른 악을 행하였다. 아모리 족속처럼 미디안 족속도 "그들의 죄악의 잔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엘렌 G. 화잇, 리뷰 앤드 헤럴드, 1893년 5월 2일자). 마침내 여호와께서 그들의 멸망을 선고하셨다.


1. 민수기 31장에서 미디안의 멸망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십시오. 이 기사에서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사실은 무엇입니까?

민31:1-8, 15-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3 모세가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싸움에 나갈 준비를 시키고 미디안을 치러 보내어서 여호와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되 4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대하여 각 지파에서 일천 인씩을 싸움에 보낼지니라 하매 5 매지파에서 일천 인씩 이스라엘 천만인 중에서 일만 이천 인을 택하여 무장을 시킨지라 6 모세가 매지파에 일천 인씩 싸움에 보내되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그들과 함께 싸움에 보내매 7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그 남자를 다 죽였고 8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15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 두었느냐 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17 그러므로 아이들 중에 남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안 여자는 다 죽이고 18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은 다 너희를 위하여 살려 둘 것이니라.


답: 아마도 다음 구절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 중에 남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안 여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은 다 너희를 위하여 살려 둘 것이니라.”(민 31:17~18)


어린 아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에 관한 계시를 신뢰해야 하며, 우리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고 우리에게 계시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민수기 31:13~18을 읽고 혼란에 빠지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많은 미디안 여인들은 수천수만 명을 죽게 한 유혹에 직접 가담한 여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죄에 대한 형벌을 거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린 여아들과 처녀들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돌보지 말라고 하셨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이 연약한 여자들은 부모도 죽고, 사회 모든 구조가 파괴되어 버린 가운데 홀로 남겨지게 될 것이었다. 그 당시의 가혹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그들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누가 알겠는가? 그리하여 이 여인들이 이스라엘 진영으로 취해짐으로써 그들은 홀로 남겨지는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후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처사는 결국 이스라엘의 율법이 요구하는 바와 조화를 이루었다.


여자와 아이들을 살려둠

“민수기 31:7에서 말하는 '남자'는 대항하는 적군 남자, 즉 군인 연령의 남자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기드온에 의한 또 한 차례의 미디안 정복이 사사기 8:12에 기록되어 있다. 남자들을 모두 쓸어버리면 곧 그 민족의 멸망이 뒤따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디안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숙적으로 계속 나타난다(삿 6:1~2, 7:14, 8:22, 9:17, 28, 사 60:6).

그리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제외하고 남자들만 죽이는 것은 고대의 관습이었다(창 34:25, 왕상 11:16).”(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1권, 933)


<부가설명> 남자를 경험하지 않은 여자들은 이스라엘 중에 남겨두어서 이스라엘 남자들과 결혼할 수 있었다. 그 여자에게서 태어나는 자녀는 이스라엘 남자들의 씨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의 혈통이다. 그러나 남자를 경험한 여자들은 다 죽였다. 그들은 다른 민족의 씨를 잉태했을 가능성이 있고 이미 그 아이들을 낳았거나 양육한 경험이 있는 자들이다. 그들을 통하여 아이들이 나면 순수하지 않다. 그들은 순전히 이스라엘 아이들의 어머니로서의 직분을 수행하기에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죽은 남편과 자녀들이 그들의 뇌리에 있어서 어쩌면 이스라엘에게 복수할 기회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에 합당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는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이 기사가 가르치는 것의 핵심 사실은 도덕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구속의 문제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표상하기에 합당하지 않은 것은 다 사망에 속한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성경의 중심이 도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성경은 생명에 대하여 가르친다. 그 생명의 씨에 대하여 가르친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씨가 어떻게 회복될 것인지 면면히 쓰며 있는 계시이다. 여자가 어떤 족속이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여자에게 생명의 씨를 낳아주는 자가 누구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사상을 깨달으면 “여자의 후손”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생명이냐? 사망이냐? 생명의 씨인가, 사망의 씨인가? 이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훈: 미디안 족속이 멸망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남겨진 여아들과 처녀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도록 모세를 통해 특별한 명령을 내리셨다.


금요일(12월 1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제41장 '요단에서의 배도'(453–461).


“이스라엘 백성이 죄에 빠진 것은 저희가 표면상으로 안락한 상태에 있을 때였다. … 그들은 기도를 게을리 하고 자기 자신을 믿는 정신을 품었다. … 그리스도인이 공공연하게 죄를 범하기 전에 오랫동안 마음속에 준비 과정이 진행된다. 사람의 마음이 단번에 순결과 거룩함에서 부패와 타락과 범죄로 전락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자들이 금수와 악마처럼 타락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바라봄으로 우리는 변화를 받는다. 불순한 생각들을 품음으로 인간은 한때 그가 미워하던 죄를 좋아하도록 길들여지는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45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성(性)이라는 고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또한 오용되기 쉬우며, 신자들까지 파멸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분야에서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 우리는 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한자로 性은 마음심 변에 날생을 한 글자이다. 이런 형상은 성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 같다. 성은 마음과 생명이라는 뜻이다. 진리가 아닐까. 그러므로 성은 단순히 쾌락의 도구가 아니라 마음과 생명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과 생명이 빠진 성은 타락으로 이끈다. 그래서 성경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고 권한다.(히13:4)


2. 죄로 인해 이스라엘 진영을 휩쓸었던 재앙을 생각해 보십시오. 온 백성이 겪은 고통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이러한 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 죄를 단호히 책망해야 한다. 그러나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사랑으로 회개할 수 있도록 자비와 사랑과 이해와 관용으로 주님께 이끌어야 할 것이다. 말은 쉬운데 실제로 이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람은 죄 지은 사람을 미워하고 죄 자체에 대하여서는 별 관심이 없이 지내는 상태가 아닌지 모르겠다.


3. 이스라엘은 하룻밤 사이에 타락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점진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단이 파놓은 함정으로 이끄는 죄에 대해 조금씩 문을 열고 있지는 않습니까? 표준을 높이는 것은 이러한 죄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살전5:22) 정신이 필요하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생명의 성령의 정신이다.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사단은 약속의 땅 변경에서 집요하게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다. 특히 인간의 욕망에 집착하도록 공격하였다. 지금 우리도 시대적으로 천국 변경에 와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시대는 정말 감각적 시대이다. 생명의 성령의 절대적인 주장 아래 자신을 두도록 날마다 주님께 굴복하고 자아가 죽는 경험으로 살기를 원한다.


요약: 가나안 접경에서 이스라엘이 빠졌던 도덕적 타락은 마지막 때에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을 어떤 방법으로 배교에 빠뜨릴지를 예고해 준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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