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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의인들이 받는 복(질문과 대답과 부가설명)01/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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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5-01-24 09:42 조회6,8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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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54분

 

기억절 :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잠 10:6).

 

연구 범위 : 잠 10:1~14, 마 19:19, 잠 11~12장, 요 3:16, 잠 13장.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번 과에서 의인들이 받을 복을 살펴보려고 한다. ‘의로운’을 뜻하는 히브리어 ‘차디크(zaddiq)’는 잠언 10장의 핵심어이다. 이 말은 ‘공의’로 번역되는 ‘체데크(zedeq)’에서 유래했는데 ‘체데크’는 잠언 전체 서론에서 등장한다. “…솔로몬의 잠언이라 이는…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잠 1:1~3). 잠언에 따르면 지혜는 의로운 것이다. 여기서 의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믿음 안에서 행하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물이 되며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실천하라는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다. 의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일종의 선물이다. 의의 반대는 어리석음과 불충성이다. 지혜는 ‘공의’ 또는 ‘의’이지만 어리석음은 죄악이다. 이번 주에 공부하는 말씀 속에는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 학습 목표

➊ 깨닫기 : 좋은 선택의 결과와 나쁜 선택에서 오는 결과의 차이점을 이해한다.

➋ 느끼기 : 우리의 안녕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바람을 신뢰한다.

➌ 행하기 :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의 원인을 깨닫고 더 나은 선택을 하기로 결심한다.

 

A. 

❷ 우리가 선택하는 의 또는 악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얼마나 파급효과가 강하다고 생각합니까?

※ 바로 주위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은 각각 가진 주위로 퍼져나간다. 마침내 온 동네에 파급될 것이다. 

❸ 의인들의 선택이 결국 좋은 보상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 그들이 바른 길을 가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❹ 의인이 받는 복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 올바른 신앙생활고 전도활동이다. 

 

❷ 오직 현실만을 생각하는 악인과 달리 영원한 미래를 염두에 두는 의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됩니까?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이다. 

❸ 거짓을 말하는 개인과 그것을 허용하는 사회가 결국 파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불신이 편만하게 되기 때문에 연합하여 한 마음을 공존할 수 없게 된다.

❹ 우리가 일상적인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의인의 선택’은 어떤 것일까요?

※ 성경의 원칙을 따라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우리의 삶 속에 작용하는 원인과 결과의 원리를 설명해 주십니다.

 

 

첫째날(일) 1월 25일 의는 전인적이다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잠 10:6~7).

 

1. 잠 10:1~7을 읽어 보라. 삶과 믿음에 대하여 어떤 다양한 원리가 여기에 제시되었는가?

[잠10:1~7]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2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의리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3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5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6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거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7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으리라.

 

답: 기쁨을 만드는 가정생활, 재물을 의롭게 얻는 사회생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 부지런히 일함으로 누리는 경재생활, 사람을 사귐에 의롭게 할 것이고 의인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 되라는 원리들이 제시되어 있다. 

 

한 남자가 배 위에 올라 자신이 앉은 자리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중단하도록 요구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신들이 참견할 일이 아니야. 이건 내 자리라고!” 이처럼 황당한 반응이 바로 죄인들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변명이다. “내 인생이야! 당신과 무슨 상관인데?”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특히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좋든지 좋지 않든지 다른 사람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어느 정도 느껴본 적이 없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잠 10:3~5은 영적인 삶과 도덕적인 삶 그리고 육체적인 삶과 물질적인 삶이 어떻게 결합하는지에 대해 다룬다. 요지는 이렇다. 부자라도 악과 도덕적 잘못을 저지르면 얻는 게 없을 것이며, 가난한 자일지라도 의롭게 살면 보상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잠 10:6~7에서 음욕이 간음과 같고 증오가 살인과 같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유사한 옛날식 표현을 발견한다. 증오심을 감추고 말하는 것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악한 생각은 종종 우리의 몸짓이나 음성의 고저에서 무심결에 노출된다.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선의 출발점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레 19:18, 마 19:19과 비교해 보라)는 것이다.

7절에서 제안하듯이 우리가 남긴 선한 인상은 다른 사람에게 지속적인 감화를 끼칠 수 있다. 알고 보면 우리는 상당히 상식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나쁜 평판을 얻는 것보다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부가설명> 사람은 절대로 홀로 존재하거나 생활할 수 없다. 연결되어 있고 얽혀있다. 그물코 하나가 빠지면 연이어 빠져나가 그물이 해체되듯이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 하나하나가 다 그물코 같이 얽힌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사상과 언어와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주위에 선한 감화를 끼치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 어느 기사를 읽는 중에 한 신부(神父)의 이야기를 보았는데, 그 신부는 예수를 믿으라고 입으로 전도하지 않고 예수께서 사신 것처럼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했다고 적었다. 참 좋은 이야기이다. 그 신부가 교리적으로 바른 신앙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생활이 예수님이 사신 것 같이 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우리는 바른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생활이 예수님처럼 되지 않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바른 원칙으로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서 생활이 진리대로 될 때에 말을 하지 않아도 옆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주며 사람들이 선망하는 인격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이런 삶을 사는 단순한 원리들을 잠언 10:1~7에 제시하고 있다. 오늘 제목이 의는 전인적이다 인데 의는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그 생명을 받을 때 그 생명에 의하여 삶이 나타나기 때문에 전인적이라는 말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사람으로 이런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자.

 

교훈 : 우리의 삶은 의롭든지 악하든지 우리 주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우리의 육체와 물질적인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둘째날(월) 1월 26일 의로운 자들의 입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잠 10:11).

 

입술과 혀로 이루어진 입은 잠언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는 신체 기관이다. 개역개정판에서 ‘입’은 50번, ‘입술’은 40번, ‘혀’는 16번 사용된다. 특별히 입의 사용은 잠언 10~29장의 핵심 주제이다.

기본 전제가 중요하다. 우리의 말은 선악간에 매우 영향력이 크다. 혀는 우리에게 부여된 최고의 선물이 될 수도 있고 최악의 선물이 될 수도 있다. 혀에 대한 이런 상반된 가치는 잠언이 다루는 가장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이다. 참으로 입은 생명을 주기도 하고 죽음을 주기도 한다.

 

1. 잠 10:11~14을 읽어 보라. 의인들의 화법과 어리석은 자들의 화법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잠10:11~14]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13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14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답: 의인은 입으로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지만 악인은 사람을 망하게 하는 말을 한다. 그래서 의인의 입이 생명 샘이라고 한 것이다. 

 

11절에서 “생명의 샘”이라는 표현을 주목하라. 그것은 지혜의 특성들을 상징적으로 설명한다. 이 표현은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와 관련되어 있다(시 36:9). 겔 47:1~2도 성소로부터 물이 흘러나오는 유사한 장면을 묘사한다. 예수님도 성령의 선물을 설명하기 위해 같은 은유를 사용하셨다(요 4:14). 따라서 의인들의 입을 “생명의 샘”에 비유한 것은 그들의 입을 하나님과 관련시킨 것과 같다.

긍정적인 생명의 선물이 바로 입을 특징짓는 요소이다. 이런 특성은 입의 합당한 기능이 무엇인지 말해 준다. 그것은 악이 아닌 선을 위한 힘이 되어야 하며 죽음이 아닌 생명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내용은 약 3:2~12에서도 반복된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히 1:3)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따라서 말은 오직 창조적인 목적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부가설명> 야고보는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온전한 자라고 했다. 성경은 그만큼 말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천지를 창조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그 이름이 말씀이다. 그분은 하나님이신데 요한복음 1:1에 의하면 말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의 말에도 능력이 있다. 상하 질서에서 상관의 말은 부하의 행동이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으로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 백부장은 이런 이치를 잘 깨달았다. 자기의 군 생활을 통하여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상관이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하라하면 했다. 상관의 말이 부하의 행동이 되는 것이다. 그처럼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곧 그 말씀을 듣는 대상의 행동이요 생활이며 건강이고 생명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의 이런 능력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을 하는 것 같이 해야 한다.(벧전4:11)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해야 한다. 우리 입에 파수꾼을 세우고 입술의 문을 성령께서 지키도록 맡겨야 한다. 이런 이치를 잘 깨달은 솔로몬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잠18:21)

 

교훈 : 말은 창조 또는 파괴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창조의 목적에 맞게 입술을 사용해야 한다.

 

 

셋째날(화) 1월 27일 의인들의 희망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잠 11:3).

 

1. 위 성경절이 맞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러한 영적 진리가 드러난 경우에 대하여 보거나 들은 예가 있는가? 아니면 적어도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이 말씀을 단지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야 하는가?

 

답: 정직한 자가 범사에 정직하게 행하면 당장 손해보는 것 같은 일이 있을지라도 마침내 신용을 얻게 되고 사람을 얻어서 번영할 수 있지만, 사악한 자가 당장의 이익을 탐하여 미래를 내다보지 못할 때 결국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이 전부인줄 생각하고 현세에서 번영을 위하여서만 사는 자들은 결국 영생을 잃게 될 것이지만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성실히 사는 자는 영생과 천국을 얻게 될 것이다. 

 

2. 잠언 11장을 읽어 보라. 여기서 다루는 다양한 주제 중에서 악한 자들에게 일어나는 것과 반대로 신실한 자들에게 이르는 큰 복은 무엇인가?

 

답: 악인은 결국에 망하고 의인은 생명을 얻는다. 악인은 다른 사람에게 덕을 끼치지 못하고 자기만을 위하여 살다가 망하게 되지만 의인은 다른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하고 자기도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된다. 

 

미래에 대한 의식과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가치는 의인들로 하여금 바르게 살도록 동기를 부여한다(고후 4:18 참고).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에 의인들은 겸손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동정심을 가지고 행동한다.

반면 악인들은 오직 현재 안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오직 눈앞에 보이는 것과 당장의 보상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남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며 기만술과 악습에 의지한다. 예를 들면, 고객을 속이는 상인은 높은 매상으로 당장의 보상을 받겠지만 결국 고객을 잃고 사업은 망한다(잠 11:3, 18).

 

<부가설명> 11장은 의인과 악인을 매 구절에서 비교하여 가르치고 있다. 결론은 이 세상에서 형통해 보이지만 영원한 나라를 얻지 못하고 영원히 멸망하게 된다는 것과 의인은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이 세상에서 비론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마침내 영광의 나라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아주 간결한 언어로 가르치고 있다. 사람은 성경이 말하는 지혜를 얻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이유는 당장 이익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것을 소망이라고 말한다.(롬8:24,25) 이 소망이 확실한 사람은 시련을 견디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그것을 바탕으로 현세에서 온유와 겸손으로 살아갈 수 있고 고난을 당할 때 인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성령의 역사로 얻는 선물이다. 

 

교훈 : 거짓과 속임수를 사용하여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 악인들은 결국 망하지만 정직하고 진실하게 사는 의인들은 미래의 보상을 받는다.

 

 

넷째날(수) 1월 28일 의인들의 진실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잠 12:17).

 

1. 언어에 관한 주제 특히 거짓말과 진실한 말에 초점을 맞춰 잠언 12장을 읽어 보라. 우리가 여기서 찾을 수 있는 정직과 거짓에 대한 기별은 무엇인가?

 

답: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실을 도외시 하지 않지만 영적인 것은 하나님을 믿고 장차 오는 영원한 나라와 거기에 가서 살게 될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와 이 세상에서만 살려는 사람을 대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정직하고 의로운 인격자가 된다는 것이다.

(성경 본문은 각자가 찾아 읽기 바란다. 전 장을 다 옮기려니까 양이 너무 많다. 화요일에도 전장을 다 읽어야 하기 때문에 본문을 옮기지 않았다.)

 

철학자 시셀라 보크(Sissela Bok)는 거짓이 사회에 얼마나 유해한지를 설득력 있게 예증하며 이렇게 적고 있다. “구성원이 진실한 메시지와 기만적인 메시지를 구별하지 못했던 사회는 멸망하였다.” - Lying: Moral Choice in Public and Private Life (New York: Pantheon Books, 1978), p. 19. 보크의 서론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누스도 이렇게 말했다. “진실에 대한 관심이 붕괴되거나 다소 약화되기만 해도 모든 것이 묘연해진다.” - 상동, xv.

엘렌 화잇은 이렇게 말했다. “거짓을 말하는 입술은 하나님께 모독이 된다. 그분은 ‘점술가들과…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선언하신다. 진실한 말이 정직하지 않은 손과 불확실한 이해에 붙들리지 않게 하라. 그것으로 하여금 생명의 일부가 되게 하라. 진리를 아무렇게나 취급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감추기 위해 그것을 모른 체 하는 것은 믿음의 파선을 의미한다.… 허위를 말하는 자는 싸구려 시장에 자신의 영혼을 팔고 있는 것이다. 그의 거짓은 위기 상황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공정한 거래로는 얻을 수 없는 사업의 확장을 이루는 것처럼 생각할 것이다. 결국 그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자신이 거짓말쟁이다보니 다른 사람의 말도 믿을 수 없게 된다”(My life Today, 331).

언어의 엄청난 감화력을 생각한다면 거짓말 역시 말이기 때문에 그러한 영향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거짓말을 들을 때에 상처와 배신감, 모욕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거짓을 비정상적인 것보다 더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회가 총체적인 혼란에 빠지리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거짓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들은 습관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는 반면 아직도 많은 사람이 거짓을 말할 때 일종의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낀다. 이것이 바람직한 이유는 아직도 성령에 대한 감수성이 남아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망설이지 않고 거짓말을 내뱉는 사람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부가설명> 성경은 일상적인 삶에서 정직하라고 가르친다. 이 말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잠언3:5,6에 있는 말씀이다. 언어생활이나 정신생활이나 인간의 모든 의식작용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우리는 때때로 여호와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감정을 드러낸다. 그런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살면 멸망이 신속히 임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성경에 정직과 거짓에 대하여 핵심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 새 예루살렘 성 밖에 거짓말하는 자들이 있다. 도덕적으로 거짓말한 사람도 포함되겠지만 하나님께 거짓 질 한 것과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이 중심일 것이다. 요한일서에 보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여기는 일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마귀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마귀는 참 말을 하고 하나님은 거짓말한 자라고 믿는 것이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것은 영혼불멸설로 교회 안에 안주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여기는 일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우리가 죄 없다하는 것도 그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정말 성경이 가르치는 길을 올바르게 걸어야 한다.

 

교훈 : 거짓말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허용하는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쳐 마침내 그 사회에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다섯째날(목) 1월 29일 의인들이 받을 보상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잠 13:21).

잠언은 두 종류의 대조적인 사람들을 빗대어 수많은 교훈과 가르침을 제시하였다. ‘지혜로운 자는 이렇게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저렇게 한다’, ‘경건한 자들은 이렇게 하지만 악인들은 저렇게 한다’는 식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우리 모두에게는 지혜로움도 있고 어리석음도 있다. 예수님을 제외하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롬 3:23)한다. 그러나 그 다음 절에 아름다운 약속이 있다. 비록 우리는 죄인이지만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롬 3:24)을 수 있다. 결국 인류는 구원을 받든지 아니면 멸망을 당하든지 둘 중 하나에 속하게 될 것이다.

 

1. 요 3:16을 읽어 보라. 모든 인류가 양자택일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든지, 믿지 않고 멸망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2. 잠언 13장을 읽어 보라. 이 장은 의인들의 경험과 운명을 악인들의 경험과 운명에 어떻게 대비시키는가?

 

답: 의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할 것이며 악인들은 멸망하게 된다. 요한복음 3:16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교훈하고 있다.

 

잠언 13장은 지혜로운 자를 오래가는 등불로 비유한 반면 악인은 꺼져가는 등불에 비유했다(잠 13:9).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한 일에서 얻는 좋은 결실을 누릴 것이지만, 죄인들은 악을 거둘 것이다(2, 25절). 지혜로운 자는 자손들로 인해 그들 이후에도 미래가 확실하지만, 악인은 그 재산을 모르는 사람 즉 의인들에게 남기게 된다(잠 13:22).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의 생애가 불순종과 어리석음의 생애보다 훨씬 낫다.

 

<부가설명> 잠언은 지혜서라고 한다. 아마도 욥기, 잠언, 전도서가 지혜서로 분류되는 성경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성경 전체가 지혜의 책이다. 사람이 지혜를 활용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삶을 올바르고 윤택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차이는 삶의 모습이다. 지혜가 그의 인격과 삶의 모습을 바르게 하고 윤택하게 하지 못하면 그런 지혜는 가치가 없다. 윤택이라는 것은 반드시 경제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성이 풍요로운 것과 사람을 복되게 하는 것과 덕을 끼치는 삶을 나는 윤택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지혜는 사람을 그렇게 형성시킨다. 성경이 지혜의 책이라는 것은 성경은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잠언은 이런 지혜가 현실적으로 생활에 드러나는 상태를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 기록된 교훈을 지금 이 세상에서의 삶에도 적용하고 영원한 삶이 모습을 이루는 지혜를 가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우리는 모두 때로는 지혜롭고 때로는 어리석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의인들은 마침내 영생의 상급을 얻을 것이다.

 

 

여섯째날(금) 1월 3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公言)하고 우리 이름이 교회 녹명책에 기록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어떠한 공언을 하든지 우리의 옳은 행실로 그리스도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 공언은 아무 소용이 없다”(실물교훈, 312~313).

 

“그리스도의 시대에 사람의 마음의 가장 큰 기만은 진리에 동의만 하면 의가 성립된다는 생각이었다. 모든 사람의 경험으로 보아 진리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은 영혼을 구원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가장 어두운 역사의 장(章)들은 완고한 종교가들이 범한 죄악의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같은 위험이 지금도 존재한다. 많은 사람이 단순히 어떤 신학적 교의(敎義)에 동의하기 때문에 자신이 당연히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실생활에서 실천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을 진실하고 친절하고 참고 관용하고 거룩한 마음을 갖도록 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신앙을 소유한 자들에게 저주가 되고 그들의 감화로 말미암아 그것은 세상에 저주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의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뜻에 마음과 생애를 일치시키는 것이다”(시대의 소망, 309~31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우리의 선택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선악간에 영향을 미치는지 토의해 보십시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러한 진실을 나타내는 첫 번째 예는 바로 타락의 이야기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선택은 오늘날까지 우리 각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이 가져온 선과 악의 정도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솔깃하기는 하지만 실패로 끝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가 어느 정도까지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비춰볼 때 결과가 어떨지에 대한 두려움과 상관없이 우리가 옳은 일을 하기로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옳은 일을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장하신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서 생명을 얻은 자는 이 생명의 길을 가게 된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주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얽혀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물코에 대한 이야기를 한 기억이 있다. 그렇게 사람은 얽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해 놓은 것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사망을 우리 앞에 두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명을 택하라고 권고하신다.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망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아도 그는 이미 사망에 처해 있는 것이다. 사망에 처한 우리에게 생명으로 나오라고 권고하시고 그 권고를 받으면 그것이 바른 반응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선택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➋ 잠언은 의인과 어리석은 자를 예리하게 구분합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으로부터 무엇이 옳고 그른지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리석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에 대해 매우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반면 우리가 한때 의롭다고 여겼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속았습니까?

※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아시는 것처럼 온전히 모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긍휼히 여기며 서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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