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과 - 권력 투쟁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7과 - 권력 투쟁

페이지 정보

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11-10 15:30 조회4,026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2009년11월 14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22분)

제7과 권력투쟁 (權力鬪爭)

<기억절(記憶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연구범위) : 창 17:10~17, 민 16~17장, 수 4:3~9, 마 26:13, 눅 22:19.
(핵심본문) : 민 16:47~48

<학습목표(學習目標)>
(깨닫기) :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백성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에 대하여 일으킨 반역에 대해 이해한다.
<하나님의 택하신 지도자에 대한 반역>
(느끼기) : 반역의 치명적이고 끈질긴 속성을 인식하고,
그것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극단의 처방이 필요함을 느낀다.
<반역의 치명적인 본질의 위험성>
(행하기) : 우리로 하나님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해 주신 기념비들을 기억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기념물을 간직함>

◉ <확대경(擴大鏡)>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에게 반역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이며, 이는 범죄 행위인 것이다.
죄는 전염성이 있고 반역의 정신은 곧 사단의 정신이요 사단의 대리자임을 명심해야 하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방법과 제도에 매임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며 권력투쟁이나 반역은 스스로 파멸의 길로 가는 것임에, 하나님께서는 중보와 자비로 생명까지 내어주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초청의 음성에 우리는 믿음으로 반응하자.

◉ “이 반역의 주모자인 고라는 고핫 가족에 속한 레위 사람으로서 모세의 사촌이었으며 재능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성막 봉사의 직분을 맡았으나 자신의 지위에 불만을 품고 제사장직을 갈망하였다. 전에 각 가족의 장자에게 줌으로 발전되어온 제사장 직분을 아론과 그의 집에만 준 처사에 대하여 질투와 불만을 품은 고라는 은밀하게 모세와 아론의 권위를 반대하였다. 마침내 그는 행정적 권위와 종교적 권위를 모두 전복하려는 대담한 계획을 세웠다.”(부조와 선지자, 395)

<요점(要點)>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에 대한 반역은 우리와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두려운 감화를 끼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중보와 자비를 요청하라고 호소하신다.

일요일(11월 8일)
<또 다시 반역(叛逆)함 (민 16:1~3)>

◉ "고라"의 반역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와 그분이 위임하신 직분에 대한 인간적인 도전과 찬탈 욕망 및 그에 대한 심판을 다루고 있다. 고라는 모세와 아론처럼 레위지파 사람이었다. 따라서 자신도 그들만큼 정치, 종교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반란을 주도 하였다. 또한 다단, 아비람, 온 등은 장자인 르우벤 지파 출신이었기 때문에 자신들도 정권을 차지할 권리가 있다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정치적 반역에 선뜻 가담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그들의 인간적인 공로나 성품 때문에 당대의 지도자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위임되었다. 결국 고라 일당의 반란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한 교만한 처사로서 신약 성경은(유다서 1:11) "고라의 패역"이라고 일컫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풍부하신 지혜와 능력으로 각 사람에게 적합한 직임을 위임 하신다. 이에 대해 인간이 불만을 표시하거나 그 위임된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듯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롬 9:19-21)

▶ <고라와 그 동료들의 반역>
“고라, 다단, 아비람, 그들과 연합한 250명의 족장들은 처음에는 시기하였고, 다음에는 질투하였고, 그 다음에는 반역하였다. 그들은 백성의 통치자로서의 모세의 지위에 대해 말하였으며, 드디어 모세뿐만 아니라 그들 중 누구라도 차지할 수 있는 탐낼 만한 자리라고 상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불만 속에 완전히 빠져 버림으로 결국 스스로를 속이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스스로 취하였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교회증언, 3권, 346)

◉ 고핫의 손자 '고라'는 모세의 친 사촌으로서 백성들에게 종교교육과 성막봉사를 할 수 이었던 레위인 이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위치와 신분에 만족하지 못하고 '최고'의 지위를 탐함으로써 반역의 기치를 높였다.
감사하지 못하고 교만한 자에게는 패망이 기다릴 뿐이다. (잠 16:18)
인간 타락의 궁극적인 원인도 자신을 높이려는데 있었다. (창 3:5)

◉ <르우벤 자손 - 다단과 아비람 - 온>
르우벤은 원래 이스라엘의 장자(長子)였으나 범죄(犯罪)함으로 이 신분을 상실했다.
그리고 대신 유다가 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장자역할을 했다. (민 2:3-17) (창 29:32; 49:3-4)
그러므로 르우벤 지파의 후손들은 실추된 자신들의 위치를 만회 하려고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 한 노력으로 그들은 '당(黨)'을 짓고 단합된 힘을 통해 실세(實勢)회복을 꾀하였다.
이처럼 분파 의식에 따른 정치 활동은 거룩한 공동체를 괴멸시키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악(惡)이다.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이기를 바라신다.
성령께서는 나뉘어진 마음들을 하나로 묶어주시는 능력의 신(神)이시다. (엡 4:3-6)

◉ 이 공격에 대한 모세의 반응은, 그가 이처럼 왜곡된 비난에 대해 느꼈을 실망감을 보여 준다. “그들은 모세와 함께 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 사람들 중에 속해 있었다. … 백성의 번영에 큰 관심을 표명하면서 처음에는 저들의 불만을 서로 주고받았으며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그들이 넌지시 던진 말은 너무나 잘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들은 한걸음씩 더 담대하게 나아갔고 마침내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한 열심으로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참으로 믿게 되었다.”(부조와 선지자, 396~397)

▶ 정말로 믿어지지 않는 것은 이들이 한 말이다. 그들은 애굽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종살이하면서 억압받던 나라를 가리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라고 언급한 사실은 죄가 그들의 판단력을 얼마나 심하게 왜곡시켰는지를 잘 보여 준다.

▶ 고라와 250명 족장(族長)의 모세에 대한 반역은 사단이 하나님에 대해 일으킨 반역과 흡사(恰似)하다.
반역의 정신에 물들면 시야(視野)는 심하게 왜곡(歪曲)된다.

월요일(11월 9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行)하사"(민 16:15~35) >

◉ '새일'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인간의 편에서는 항상 새롭고 기이(奇異)할 수밖에 없다. (사28:21)
여기서 말하는 '새 일'은 땅이 입을 벌려 반역자들을 삼키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시기만 하면 기상(氣象)의 이변(異變)뿐 아니라. 땅의 변화까지도 조성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만 활동하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새 일'을 계획하시며 집행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분이시다.
우리가 믿음의 눈을 떠서 바라볼 때 이러한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매순간 목격하게 될 것이다.

▶ 이 사람들의 비난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 확인해 보자. 홍해를 가른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었는가, 모세와 아론의 능력이었는가? 매일 아침 만나를 내린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었는가, 모세와 아론의 능력이었는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나타나신 분은 하나님이셨는가, 모세와 아론이었는가? 이 모든 사실을 목격한 그들이 이렇게 행동했다는 것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해 보라. 만약 그들이 더 광범위한 반역을 조장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더 끔찍한 결과가 초래되었겠는가? 이스라엘 백성은 마땅히 해야 할 만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너무나도 쉽게 타락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제어하신다는 것과 그분께서 그들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만 했다. 모세와 아론은 단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해 명하시는 대로 행하고 있을 뿐임을 이해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죄는 사람의 마음을 흐리게 만드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번 반역의 정신이 일어나면 그것을 가라앉히기가 어렵고 무서운 기세로 퍼져나간다.

▶ 이 사람들에게 한 모세의 반응을 보라(민 16:4~11). 그들에게 주어진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더 높아지기를 원했다. 모세는 그것을 간파했던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말을 들어 보면 모세와 아론이 모든 권력을 빼앗고 자신들의 영역을 침해하여 스스로를 높이고 그 백성을 광야로 끌어내어 죽게 한 것인 양 그들에게 대적했던 것이다.

◉ (민 16:31-33)의 반역자(叛逆者)들의 종국(終局)은 그들이 지금은 완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그곳에 서있다 할지라도, 문자적으로 '살아서 무덤(Sheol)속으로' 내려가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멸(輕蔑)하고 '무가치(無價値)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모세가 반역한 자들에게 한말을 주목하라(민 16:25-35 참조)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말을 확증하고 모세를 옹호(擁護)하시기 위해 행동하심으로 그것들이 모세의 입으로 낸 말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그 반역적인 정신의 확산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행위이셨다.
▶ 비록 백성들은 몸을 피하여 멀리 떨어져 있었을지라도 땅이 갈라져서 반역자들을 삼키는 굉음(轟音)과 희생자들의 아연실색(啞然失色)하여 질러대는 비명소리 때문에 훨씬 더 멀리 달아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전에 불평하고 불신하였던 것과(14절) 그 반역 당파(黨派)에 동조한 것을 생각하며 자신들도 동일한 운명에 처해질까봐 두려워하였다. (본교 성경주석(한) 2권 382 p)

▶ 그러나 심판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구름에서 번개와 같이 불이 나와서 분향하던 250인의 족장들을 태워버렸다. 이 사람들은 최초에 반역에 가담하지 않았으므로 음모의 주모자들과 함께 멸망당하지 않고 그들의 종말을 보고 회개할 기회를 갖도록 허락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반역자들을 동정하였기 때문에 그들과 같은 운명에 빠지고 말았다.”(부조와 선지자, 400-401)

▶ 고라와 그의 추종자(追從者)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한 반역(叛逆)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었다.
사단의 정신에 물든 그들은 초자연적(超自然的)인 방법으로 징벌(懲罰)을 받았다.

화요일(11월 10일)
<기념물(記念物) (민 16:36~40) >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기념물들을 통해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셨다.
☞ 예(例)를 들어
1.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이며, (창 2:1-3, 출 20:8-11)
2. 창세기 28:11~22에는 야곱이 하나님의 언약 곧 자기와 자기 후손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기 위해 기념의 돌기둥을 세운 기록이며,
3. 홍수 후의 무지개(창 9:13)나
4. 할례(割禮)(창 17:10~17),
5. 유월절(踰越節)축제 (민 9:1~14)나,
6. 옷단 귀에 술과 함께 단 청색 끈(민 15:38~41), 혹은
7. 요단강을 건넌 후에 여호수아가 세운 기념의 돌단(수 4:3~9)과
8. 성만찬 예식 (고전 11:23-29) 등이 여기에 속한다.

▶ 이와 대조적(對照的)으로 번제단(燔祭壇)을 감싼 편철(片鐵)은 아론의 후손이 아닌 타인이 제사장 직분을 범하지 못하도록 '방지하기 위한' 경고의 기념물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그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인간이 자신의 탐욕과 권력에 대한 야망을 채우기 위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고 하나님을 대항한 사건을 기억나게 해 줄 것이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라와 그 무리와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민 16:40)
분향(焚香)한 향로(香爐)를 두들겨 펴서 제단(祭壇)을 두러 싸게 하였다. 그것을 볼 때마다 분향은 오직 아론 자손에게만 허락된 하나님의 허락의 표가 되게 하셨다. 반역자들은 자기들도 분향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주장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들도 거룩하게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구별한 사람들만 하나님께 분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함으로 누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는지 다 알게 하셨다.

▶ <향로를 쳐서 만든 제단을 싸는 편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을 명하여 붙는 불 가운데서 향로를 취하여 다가 그 불을 타처에 쏟으라. 그 향로는 거룩함이니라. 사람들은 범죄하여 그 생명을 스스로 해하였거니와 그들이 향로를 여호와 앞에 드렸으므로 그 향기가 거룩하게 되었나니 그 향로를 쳐서 제단을 싸는 편철을 만들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표가 되리라 하신지라”(민 16:36~38)”

▶ 제칠일안식일(第七日安息日)은 창조(創造)의 기념일(記念日)이요, 유월절(踰越節)은 애굽의 속박(束縛)에서 해방(解放)된 것을 기념하는 것이며, 성만찬예식(聖晩餐禮式)은 예수님의 대속적 희생(代贖的犧牲)을 기념하는 의식(儀式)이다. 특히 죄지은 인간을 대신하여 죽임당하는 희생제물은 죄의 심각성(深刻性)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였다.

수요일(11월 11일)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서 (민 16:41-50) >

◉ '죽은 자와 산자 사이에 섰을 때'라는 말은 문자그대로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더 확실한 표현은 '죽어야 할 자와 용서 받을 자를 분명히 구별하였을 때"이다. 삶과 죽음의 중간에 서 있는 아론의 이 같은 행위는 삶과 죽음을 구분하시는 심판자(審判者)이다.
영벌(永罰)에 처한 인간과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사이에 중보자로서 활동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豫表)한다. 더욱이 염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적인 사역을 행한 아론의 용감한 행위는 인류의 구원(救援)을 위해 의연히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예시한다. (사 53:4-6)
☞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상징하는 모습이다. 예수님만이 생명과 사망의 경계이시다.
그분을 통하여서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다.

◉ <선민(選民)의 영적무지(靈的無知)>
일부 백성들은 아직도 '고라'일당의 죽음이 하나님의 징벌에 의한 것이기 보다 단순히 인간 모세를 향한 정치적 분쟁에 의한 결과로 본 것 같다.
이처럼 죄로 어두워진 인간은 진리를 직시할 줄 모르며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려는 본성적인 죄악을 표출해낸다. 사단은 이런 자들의 마음을 충동질하여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려 든다.
이 처럼 영적인 일에 무지한 자는 사단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기에 성도들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와 (요일 4:1-3), 사단의 유혹에 대처하기위한 긴장이 필요하다. (벧전 5:8-9)

▶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250명의 족장들에게 내린 심판은 광야의 백성으로 하여금 정신을 번쩍 차리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몇을 소멸하고, 땅이 갈라져 나머지를 삼켜버리지 않았는가? 공공연한 반역과 배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이보다 더 명백히 나타날 수 있었겠는가?

▶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250명의 족장들이 멸망당한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에게 나와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민 16:41)라고 원망하였다. 반역의 정신은 고라의 멸망으로 끝나지 않았으며 여전히 백성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말은 사람들 속에 있던 반역의 정신이 고라에게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 반역의 정신은 무서운 심판이 내린 후에도 진영에 남아 있었다. 반역적인 행동의 결과가 어떠한 것임을 목격한 후에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일단 반역과 배교로 기울어지게 되면 얼마든지 무모하고 분별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러한 반역의 정신이 우리를 파멸로 이끌지 않도록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분의 약속을 붙잡고(고전 10:13, 빌 1:6) 반역의 정신을 버려야 한다.

▶ 이 세상에는 오직 산 자와 죽은 자(육체적으로 죽은 자가 아닌 영적으로 죽은 자) 두 부류의 사람들만이 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예수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 계신다. 그분은 경계이시며 전환점이시다.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다.

▶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선 아론>
“진노의 사자가 나아가 진중에 전염병을 퍼뜨려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 아론은 그의 동생의 지시로 향로를 취하여 급히 회중 가운데로 달려가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였다. 그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다. 향이 올라갈 때에 성막에서 드린 모세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재앙이 멎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중에서 1만 4천여 명이 불평과 반역의 죄의 결과로 죽임을 당했다.”(부조와 선지자, 402-403)

▶ 아론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 염병이 그친 사실(민 16:48)은,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표상한다.

목요일(11월 12일)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민 17장) >

◉ 민수기 17장은 제사장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기록 하고 있다.
모든 지파의 지팡이 중에서 오직 아론의 지팡이만이 싹이 남과, 지팡이를 반역자들에 대한 기념물로 보관함에 대한 기록으로 민수기 17장은 민수기 16장의 '고라'일당의 반역사건과 연관 지어 이해하여야 한다.
'고라'일당의 반역은 '왜 아론만이 제사장직을 맡고 또 그것을 세습(世襲)할 특권을 가졌는가, 우리도 그들과 동일한 지위를 가질 수 있지 않는 가' 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아론이 제사장 된 것은 어떤 인간적인 조건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를 들어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기준이나 야망으로 제사장직을 판단하거나 넘볼 일이 못 되었다. (히 5:4)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은 죽은 지팡이에서 싹이 나게 하신 이적을 통해 아론의 제사 장직이 정당함을 보여주셨다.
즉 하나님의 권위(權威)있는 개입으로 교만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을 잠재우셨다.
인생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민 16:9)는 모세의 질문이 시사(示唆)하는 바처럼 각자의 직무에 충실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 지팡이는 목자(牧者)나 여행자들이 호신용(護身用)또는 도보용으로 사용했던 막대기이며, 때로는 통치자의 권위(權威)를 상징하는 '규(揆)'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이 지팡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밝히셨다. (출 4:2 ; 겔 37:16).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권위의 상징인 막대기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제사장직을 부여받은 자가 누구인지를 입증하시고자 하셨다.

▶ 그러므로 지팡이에 이름을 쓰라고 하신 것이다.
이름은 한 사람의 인격과 삶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팡이에 각 지파 두령(頭領)의 이름을 기입하게 한 것은 그들의 전 인격이 하나님께 나아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인격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요 15:16)
이름을 기록하여 증거궤(證據櫃)앞에 두라는 말씀은, 증거궤위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곳이다. (민 10:35-36). 따라서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두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직접 지목하시라는 전적인 의뢰의 표시인 것이다.

▶ 그러므로 택(擇)한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라고 말씀하고 있다. (민 17:5)
하나님께서 부르시어 사명을 위탁하신 자에게는 그 일을 수행 할 수 있도록 능력과 생명력을 공급하심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 (엡 2:1, 5)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따라 위대한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됨을 암시한다. (고후 2:15-16 ; 4:1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여타의 노력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께 순복해야 할 것이다. (고전 4:2 ; 계 2:10)

▶ 순이 나고 살구열매가 열렸더라. (민 17:8)
'살구나무'(히, 솨케드)는 '깨어 있다' '깨어 지키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의 '솨카드'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살구나무를 소생(蘇生)시키시고 거기에 열매가 열리도록 하심으로 항상 깨어 있어 모든 것을 아시고 임의로 역사를 주관 하는 분임을 드러내심과 아울러 아론에게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였음을 입증하였다. 또한 이는 이스라엘을 향한 산 소망(所望)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 그러므로 아론의 지팡이 만에 싹이 나게 하신 것은,
이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의 교만을 제어하기위한 조처인 동시에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복한자를 높이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약 4:8)

▶ 특히 이 백성들은 원망을 일삼다가 조금만 위태한 일이 생기면 죽음을 운운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연약한 감정에 흔들림이 없이 하나님만을 굳게 의지한다. (고후 5:7 ; 히 11:1)

◉ 제사장 외에 접근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는 규례 (민 3:10)를 알고 있던 백성들은 자신들로서는 성막에 가까이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울분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아직도 아론의 제사장직에 관해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한편 그들의 두려움은 회개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목격하고는 하나님을 무조건 심판과 정죄를 일삼는 분으로 인식하여 자신들은 이제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음을 탄식하며 공포에 휩싸인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새로운 교제관계를 형성하고자 하셨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성막을 짓게 하신 것은 정당한 절차를 통하여 백성들과 교제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제사장의 중보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죽게 되었노라고 떠벌린 것은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성품(공의와 사랑)과 그분의 보호하심을 온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과 오해를 벗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분이 어떠한 분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호 6;1-3)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과 세계를 바로 인식할 수 있다.

▶ 수천 명의 사람이 고라가 일으킨 반역으로 죽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제사장 직분의 구별성 문제가 여전히 정립될 필요가 있음을 아셨다. 하나님께서 강력하고 고통스러운 심판을 반역의 무리에게 쏟으셨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 모두를 정당하게 쓸어버리실 수도 있었으나 그것은 그분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다. 심지어 이 모든 일이 일어난 후에도 그분께서는 여전히 이 백성과 함께 일하고자 하셨고, 당신의 구원하는 은혜를 그들에게 나타내고자 하셨다.

▶ <제사장직의 권위를 확증해준 이적>
“하나님께서 아론과 다른 이스라엘 자손들을 뚜렷이 구별해 놓고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 주시기 위하여 하룻밤 사이에 그 지팡이에는 매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이적이 있고 난 다음에 제사장직의 권위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재림교 성경주석, 1권, 1115)

▶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 판과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다.(히9:4) 처음에는 십계명 판 외의 것은 언약궤 앞에 두었으나 이동할 때 그 안에 넣었으며 마지막 성전이 파괴될 때 이것을 다 언약궤 안에 넣어서 궤를 옮긴 것 같다. 이 세 가지는 구주이시며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상태를 표상하는 것들이다. 십계명은 그분의 신성을, 만나 항아리는 그분의 성육신(成肉身)을, 싹 난 지팡이는 그분의 부활을 표상한다. 언약궤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일과 그 일을 통하여 인간이 도달하기를 원하시는 상태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理想)이 나타나 있다.
▶ 아론의 싹 난 지팡이의 기적은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만 제사장 직분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백성에게 분명히 각인시켜 주었다.

◉ “반역과 배도는 바로 우리 주변과 환경 속에 잠재해 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의지 없는 영혼을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붙들어 매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 그 영향을 받고 말 것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쉽게 그릇된 길로 휩쓸린다면 사단이 그리스도로 가장하고 나타나서 기적을 행할 때에는 어떠하겠는가? … 교리들은 분명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공부를 시작한 사람은 진리 안에 닻을 내릴 때까지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배는 폭풍이 와도 든든할 것이니 이는 닻이 그들을 꼭 붙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재림교 성경주석, 1권, 1114)

◉ 요약(要約)
고라와 그의 동료들이 모세와 아론에 대항하여 일으킨 반역은 너무나도 뿌리가 깊어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을 지진과 불과 염병으로 파멸시키셔야만 했다. 이 사건은 기념물로 만들어진 번제단의 편철과 같이 시기와 질투에 대한 경고가 되어야 했다. 만일 우리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는 고라의 반역을 통해 고대 이스라엘이 겪었던 내적인 분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