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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 나팔, 피, 구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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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10-16 13:46 조회4,3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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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10월 24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43분)

제4과 나팔, 피, 구름, 불

▶ 연구범위 : 출 12:1~29, 민 9~10장, 마 26:36~43, 눅 22:15, 19~20, 고전 15:52.
▷ 핵심본문 : 고전 5:7

▶ 기억절(記憶節)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犧牲)이 되셨느니라.”(고전 5:7)

▶ 학습 목표
깨닫기 :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백성을 인도(引導)하시는 여러 방법들을 배운다.
(피, 불, 구름, 나팔로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臨在))
느끼기 :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함으로 그분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하나님의 가시적(可視的) 및 가청적(可聽的) 임재(臨在)를 인식(認識)함)
행하기 :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능력에 반응하여 믿음으로 전진한다.
(성령께서 감화(感化)를 따라 전진(前進)함)

▶ 요점(要點)
영적(靈的)인 유아(幼兒)에 불과했던 이스라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는 친(親)히 돌보시고 인도하셨다.
그분께서는 나의 삶의 모든 성장(成長) 단계(段階)마다 말씀과 성령의 감화(感化)를 통해 다가오시며,
우리가 감지(感知)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통해 인도하신다.

일요일(10월 18일)
<나를 기념(紀念)하여(민 9:1~5)>

◉ 기념이라는 말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 할 수가 있다.
기념(記念) = 기억(記憶)하여 잊지 않음.
기념(紀念) = 오래도록 사적(事蹟)을 전(伝)하여 잊지 않음.

◉ 유월절(踰越節)의 기념
유월절은 하나님의 구원(救援)과 은혜를 가장 함축적(含蓄的)으로 보여준 구속사(救贖史)의 백미(白眉)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의 존재이유와 목적을 깨닫게 해주는 아름다운 사건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절기를 잊을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도 이 절기(節期)를 영원히 지키도록 명(命)하셨다. (출 12:14).
한편 이 부분은 시체(屍體)로 인해 부정(不淨)한자나 여행으로 인해 성소와 먼 거리에 있던 자가 정월14일의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면 한 달 후(2월14일)에 지킬 수 있도록 또 한 번의 주는 특례법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특례법은
⑴ 율법의 제한적인 특성, 즉 율법이 온전한 규례가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그림자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의 서론에서 율법과 복음의 비교를 참조하라)
⑵ 하나님은 형식주의에 얽매인 고지식한 분이 아니라 인간 속사정을 깊이 이해하시며 그들이 처한 사항에 따라 적절히 대처 하시는 자비로우시며 풍요로우신 분이심을 보여준다.
⑶ 하나님은 인간에게 대한 징벌보다는 화목과 용서를 원하시는 사랑의 주인이심을 시사해준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키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믿음으로 순종한 자들은 풍성한 축복을 경험하였다.

▶ <유월절(踰越節)은 성만찬 예식으로 대체되었다.>
표상과 그림자로 예시되었던 유월절 희생양은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마침내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의 장자들을 죽였으나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뛰어넘었던 놀라운 밤으로부터 1주년이 되었다. 이제 그날이 연중 의식으로 제정됨으로써, 그들은 애굽에서의 특별한 구출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구원을 기념하게 될 것이었다. 성만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결과로 이루어진 큰 구원을 기념하기 위해 주신 바 되었다. … 이것을 통하여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분의 위대한 사업은 우리 마음속에 항상 새롭게 간직된다.”(시대의 소망, 652~653)

▶ <우리의 유월절(踰越節) 양(羊) 그리스도>
“유월절은 기념적인 동시에 모형적(模型的)이요, 애굽에서 구원(救援)받은 과거를 가리킬 뿐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을 죄의 속박에서 해방하시고자 하는 더 큰 구원을 예표 하는 것이었다. 희생 제물로 바쳐진 새끼양은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희망이신 '하나님의 어린양' 곧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사도는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고 말한다. 한편 유월절 양을 잡는 것으로는 넉넉하지 않았다.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야 하였다. 그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영혼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께서 세상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 뿐 아니라 우리 각자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속죄의 희생의 공로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재림교 성경주석, 출 12:1~14)

우리는 유월절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나오지 않아야 하며,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예수 안에 있으며 그분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는가.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출 받은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은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고전 5:7)에 의하여 성만찬 예식으로 전환되었다.

월요일(10월 19일)
<인도(引導)하시는 하나님의 임재(臨在) (민 9:15~23)>

◉ 선민(選民)을 인도하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⑴ 하나님의 군대(軍隊)인 이스라엘의 상징적 지도자로서 나타나며,
⑵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가시적(可視的) 현상이고 나아가서는,
⑶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직접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행동(救援行動)에 대한역사적 증거이다. 그리고
⑷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치밀한가를 보여준다.
애굽을 벗어나 광야를 지나서 시내산까지 오는 동안 여호와께서는 모든 사람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불과 구름이라는 중간 매체를 통해 그의 은혜로우신 임재를 나타내셨으며 그의 백성을 친히 인도하셨다. (출 13:21-22)
광야의 찌는 더위(구름 기둥)와 쌀쌀한 밤 날씨(불기둥)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40년간 아무 사고 없이 통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그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 마찬가지로 죽음과 분쟁이 도사리고 있는 광야 같은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와 동행 하시고 우리의 고난을 능히 이기게 해주신다. (요 10:14)

▶ 구름이 머무는 곳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원하시는 때에 이스라엘 진영가운데 있는 성막위에서 구름이 떠오르게 하시고 원하시는 때 원하시는 장소에 머무름으로써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진(陣)을 치게 하셨다.

☞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그 부요하신 지혜대로 성도들을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이끄신다. (롬 11:33-36). 이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전적인 순종이다.

▶ 구름이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내가 요청되는 부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이 오래 도록 머문다고 해서 서두르거나 성급해하지 않고 구름이 머문 동안 기다리며 머물렀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라 가장 지혜로운 처신인 것이다.

▶ 구름이 머문 날이 적은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심을 암시해 준다.
그들은 성막에 구름이 머무는 기간이 아무리 짧았을 지라도 그리고 그 때가 밤이라 하더라도 성막위에서 구름이 떠오르면 즉시 진행하였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자의 시야(視野)에는 하나님의뜻을 받는데 있어서 어떤 역경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했음을 암시해 주는데, 처음 경험하는 광야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이슬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장 안전한 여행 방법이었다.

☞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성도들도 이 땅의 광야 여정 중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제일 안전한 여정이다. (갈 5:25).

▷ 여호와께서 그들을 눈에 보이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을지라도 그들의 여정은 평탄치만은 않았다. 예레미야는 기록하기를, “그가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섰다(렘 2:6)고 하였다.

◉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保護)하심>
“눈에 보이지 않는 인도자의 군기가 항상 그들과 함께 있었다. 낮에는 구름이 그들의 여정을 인도하거나 군중 위에 천개(天蓋)처럼 덮여 있었다. 그것은 불타는 폭염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었고, 냉기와 습기는 목이 타고 끓는 사막에서 그들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밤에는 그것이 불기둥으로 변하여 그들의 진영을 비춰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게 해주었다.”(부조와 선지자, 282)

◉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그들 위에 떠 있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었을 뿐 아니라, 언제든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화요일(10월 20일)
<은(銀) 나팔 (민 10:1~10)>

▶ (은(銀) 나팔의 용도 및 상징)
나팔소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權威) 혹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을 상징했다. (출 19:16)
예수님께서는 이 나팔소리와 더불어 재림하실 것이다. (마 24:31)
한편 이 나팔은 ?
⑴ 백성을 소집하거나 진영(陣營)을 움직일 때 사용 하였으며
⑵ 전시(戰時)에 군대의 사기(士氣)를 높일 때 (민 10:9)
⑶ 거룩한 절기를 지킬 때 (민 10:10)등에 사용되었다.
결국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통치권자이심을 기억 하게 하며 질서의식(秩序儀式)(순종의식(順從儀式))을 고취(鼓吹)시키기 위한 도구였음을 알 수 있다.
▷ 은(銀) 나팔은 제사장들만이 부는 것으로서 두 개만 만들어 졌는데 그 이유는 당시 제사장이 두 명(엘르아살 과 이다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시대에는 120명의 제사장들이 나팔을 분 적도 있었다. (대하 5:12)
▷ 하나님께서는 섬세한 배려로 당신의 뜻을 전달하신 것을 나타낸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소한 일에 대해서까지 세밀히 가르쳐 주신 것은 당신의 말씀이 인간의 생활 전반에 걸쳐 관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다양한 나팔 소리에 대해 깨어 귀울이지 않으면 혼란을 빚기 쉽다. 나팔 소리에 대한 관심과 식별, 이것은 광야 여행 중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수적인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어둡고 둔탁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듣고 그것을 잘 분별할 줄 아는 영적 통찰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은사들이다. (벧전 5:8 ; 요일 4:1)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두 종류의 나팔을 가지고 있었는데, 보통의 양각 나팔(쇼파르)과 또 하나 곧 성소에 속하여 오직 제사장들만 불었던(민 10:8) 두 개의 은 나팔이 있었다.

▷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는 것은 거룩히 구별하였다. 이것은 나팔소리가 위엄에 찬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을 진행시키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즉 나팔은 세상적인 쾌락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를 움직이게 하는 거룩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팔을 불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정을 아시고 그들의 간구를 들어주신다는 의미이다.
전쟁 할 때 나팔을 울려 분다는 것은 전쟁 선포를 나타냄과 동시에 하나님께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은(銀) 나팔들을 부는 데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나팔을 부는 것은 "명령"을 의미했다.
전쟁 시에 이 나팔 소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리라(9절)는 보증을 나타내었다.
따라서 나팔 소리는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10절)는 의미였다.

▷ 이스라엘 백성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이라는 가시적인 표징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으나,
은(銀)나팔을 통해 가청적인 표징까지 더해짐으로써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과 성령님의 감화를 통해 더욱 명백한 인도를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와 임재를 느낄 수 있는 많은 다른 증거들과 함께 그분의 임재와 돌보심을 상기시키는 나팔이 사용된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같은 시각적 표징뿐 아니라, 나팔소리와 같은 청각적 표징이 하나님의 인도와 임재에 대한 특별한 증거로 주어졌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와 임재를 상기할 수 있는 구름기둥이나 불기둥 혹은 은 나팔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 새 언약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충분히 깨달을 수 없었던 그분의 사랑과 돌보심에 대한 보증이다. 그들은 지금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깨닫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지식 대신 단지 표상과 그림자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다(빌 2:6~8). 이러한 그분의 사랑과 품성에 관한 지식과 나팔 소리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

◉ <마지막 나팔 소리>
“그리스도께서 신실한 사람들을 당신께로 모아들이시기 위하여 오실 때 마지막 나팔이 울려 퍼질 것이다. 가장 높은 산들의 꼭대기에서부터 가장 깊은 동굴의 가장 낮은 곳에 이르기까지 온 땅이 그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불멸의 몸을 입고 그들의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무덤에서 나올 것이다.”(재림교 성경주석, 7권, 909)


어떤 나팔이든지 그것은 사람들에게 어떤 사실을 알리는 기능을 한다.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에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날 것이며 이 나팔 소리에 잠자는 성도들이 다 일어날 것이다.

◉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구름기둥이나 불기둥 혹은 귀에 들리는 나팔소리는 없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예수님의 희생을 통한 새 언약이 있다. 우리는 지금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모이고 떠나고 멈추는 일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는 사랑이 그 소리에 있다. 그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 열심히 말씀을 상고하여 이 소리를 따라 생활하는 이스라엘이 되어야 한다.

수요일(10월 21일)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민 10:29~32)>

◉ 중국대륙에는 땅이 넓은 관계로 인구도 많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많은 인구 중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 이를 통하여 창작 활동에 연결시켜 보자는 야망으로 어느 예술인 감독자가 이를 착안하여 장애인 예술단원을 설립하여 일반인들 보다 몇 십 배 힘든 노력과 반복되는 훈련을 통하여 특별한 예술인으로 승화 시켜서 이들이 얼마 전에는 북경 올림픽 때에 출연을 하여 전 세계인들로 하여금 깜짝 놀라운 감동을 안겨주었고 이에 뜨거운 호응과 찬사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들의 특징은 시각 장애인은 청각 장애인과 한조를 이루고,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시력과 청각과 장애가 없는 사람과 한조를 이루어 두 사람이 한 몸의 부족한 부분의 기능을 대신 하도록 해서, 활동 중에 이동을 한다든지 어느 한 동작을 할 때에는, 눈이 되어 주고 손발이 되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많은 감동을 안겨주는 것을 보면서, 금번의 교과를 통하여 인간적인 나약한 면모를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 모세는 하나님께 여쭙지도 않고 호밥에게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즉 모세는 "호밥"에게 우리의 "눈"이 되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광야를 지나는 민족을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낮의 구름기둥과 밤의 불기둥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단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 광야에 길을 여시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을 신뢰하지 못한 채 당면한 도전 앞에 연약성을 드러내는 모세의 모습을 보게 된다.

▷ 100만 명이 넘는 수많은 부족들을 이끌고 출애굽 하여 시내산을 출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할 때 훌륭한 지도자인 모세도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나팔 소리 등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늘 계셨지만, 눈에 보이는 그곳의 지리에 익숙한 사람을 만나서 "우리의 눈이 되리라"하며 강청(强請)을 한 모세의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훌륭한 지도자들이라 할지라도 나약한 인간 이라는 연약함을 여기서도 모세가 미디안 사람 "호밥"에게 간청하는 것을 통하여, 인성의 연약성과 의지해야 하는 것을 말해 줌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믿음과 말씀으로 우리가 재 무장 하여야 함을 교훈 하고 있다.

▶ 민수기 10장29절에 나오는 "호밥"은 어떤 사람인가.
사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은 다시 결혼하였다. 그의 아내 그두라는 여러 아들들을 낳았는데 그 중 하나가 미디안이다(창 25:1~6). 모세가 십보라와 결혼함으로 르우엘(출 2:18)로도 불리는 이드로('하나님의 친구'를 뜻함)가 그의 장인이 되었는데, 그는 미디안 제사장으로(출 18:1), 참 되신 하나님을 경배하였다(12절).

▶ 여호와께서 구름기둥으로 행진할 때나 진(陣)을 칠 때 나 하나님께서는 지시하셨을 뿐만 아니라 대략적인 방향 까지도 알려주셨다. 그러나 호밥은 사막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산에 가려져있거나 또는 골짜기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샘이나, 오아시스나, 풀밭 등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호밥"이 결국 승낙을 했는지 기록이 되어있지는 않지만 사사기 1:16에 호밥의 후손이 유다자손과 함께 아랏 남방 황무지에 살게 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음을 볼 때 승낙했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며 그들은 사울시대까지도 이슬라엘 백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삼상 15:6 ; 27:10 ; 30:29 참조)

◉ 우리 구주께서도 때때로 인간적인 동정과 지지를 필요로 하셨다. 그분은 모든 제자들은 사랑하셨지만, 특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가까이 지내셨다.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께서 이들을 데리고 변화 산에 오르셨을 때에 그들은 기도하는 대신 잠을 자고 있었다. 이때 하늘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보내졌다. 그들은 그분께서 대속적 죽음으로 나아가시도록 격려하였다(눅 9:28~31). “이제 하늘은 예수님께 사자들을 보냈다. 그들은 천사가 아니라 고통과 슬픔을 당하였기에 지상 생애에서 시련을 당하시는 구주를 동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세와 엘리야는 그리스도의 동역 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같이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갈망을 가졌었다. … 세상의 희망, 곧 각 사람의 구원이 그들의 대화의 요지였다.”(시대의 소망, 422, 425)

◉ 모세는 때때로 믿음의 연약함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 백성을 인도하기를 갈망하였다.
이 모세가 십자가를 앞두고 피땀 흘리시던 예수님께 보내졌다.

목요일(10월 22일)
<본향(本鄕)을 향(向)하여? (민 10:11~36)>

◉ 거의 1년 동안이나 (출 19:10)시내산에서 체류(滯留)한 후에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은 드디어 본향인 가나안 땅을 향하여 본격적인 행진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지파별로 순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할 때에 이와 같이 그 군대를 따라 나아갔더라.”(민 10:28)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노정(路程)에 앞서 긴 시간 동안을 하나님께 교제하게 하심으로써 험난한 여정(旅程) 중에 닥치게 될 시련을 이길 수 있도록 하셨으며, 백성 상호간에 친밀한 교제를 통해 민족적 단합을 꾀하게 하셨다. 결국 이스라엘의 1년 동안의 기다림은 시간과 정력의 허비가 아니라 더욱 성숙한 인격과 국력의 정비 기간 이였다고 할 수 있다.

☞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의 삶은 이처럼 세상적인 시야(視野)로 볼 때에 실패하고 어리석은 것 같으나 신앙적인 눈으로 볼 때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것이다. (웹 5:17, 6:5)

▶ 모세의 기록에 따르면, 시내산(호렙산)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는 열 하룻길밖에 되지 않았다.(신1:2) 가데스바네아는 후에 유다의 남방 경계가 된 지역의 성읍이었다.

▶ 이스라엘 군대가 어떤 순서로 행진하였는지 주목해 보라. 구름기둥과 함께 법궤를 앞세우고 세 지파의 군대가 그 뒤를 따랐다.
<“그는(하나님께서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신 1:33)>
그 다음에 레위인 들이 성막의 여러 기구들을 옮기는 수레와 함께 나아갔다. 또 다른 세 지파의 군대가 그 뒤를 따랐으며, 그 다음에는 고핫 자손이 성막의 기구들을 메고 따라갔다. 그 다음에 여섯 지파의 군대가 후방을 방어하면서 따랐다. 모든 것은 매우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다. 만약 그들이 무질서하게 행진하였더라면 아마도 끔찍한 재난이 일어났을 것이다.

◉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가장 가까운 길은 블레셋 땅을 통과하는 해변 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전쟁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아셨다(출 13:17). 그리하여 구름기둥은 이스라엘 민족을 북동쪽에 있는 바란 광야로 인도하여 3일 길을 행하게 하였다(민 10:11~12, 33). “그들이 전진할수록 길은 더욱 험해졌다. 그들이 가는 길은 돌 많은 협곡과 불모의 황야를 가로질러 뻗어있었다. 그들의 주위에는 다 황량한 광야뿐이었다. … 멀고 가까운 바위투성이의 좁은 골짜기에는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 수레들과 짐승들, 양떼와 가축 떼의 긴 행렬로 혼잡을 이루었다. 그들의 행진은 느리고 고통스러웠으며 군중은 오랫동안 장막을 치고 평안이 있던 뒤라 노중의 위험과 불편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부조와 선지자, 377)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지극히 정교한 질서로 움직인다. 인간의 신체도 얼마나 질서가 있는가. 이 질서가 흐트러지면 병이 된다. 하나님의 교회는 바로 사람의 몸으로 비유되었다. 조직과 질서는 교회가 하늘본향으로 진군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 <질서(秩序)의 하나님 ! 오늘날에도 질서가 요구됨>
①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하늘과 관련된 사물마다 완전한 질서 가운데 있다. 복종과 철저한 훈련이 천사의 무리의 행동에 나타난다. 성공은 질서와 조화된 행동에만 따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시대 못지않게 지금도 그분의 사업에 질서와 조직을 요구하신다. 그분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부주의하거나 되는 대로 하는 태도로 하지 말고 총명하게 일하여야 한다. 그분은 그분이 승인하시는 표를 인칠 수 있도록 그분의 사업을 믿음과 정확성을 가지고 이루어 주기를 원하신다(부조 376).”

② 히브리 진영은 엄정한 질서 안에서 정돈되었다.
“그것은 세 큰 부분으로 나누어져, 진영 중에서 각각 지정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앙에는 성막, 곧 눈에 보이지 않는 왕께서 거하시는 곳이 있었다. 그 주위에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모든 다른 지파들은 이 바깥에 진을 쳤다(부조 374, 375).”

③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한 사람의 판단이나 선택에 맡겨진 것이 아니고, 흥미를 가지고 자아를 희생해 가면서 즐겨 일하는 사람들에게 고루 나뉘어져 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주신 기술과 능력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책임을 누구나 다 지는 것이었다.
모든 종교적 봉사와 사업체들은 하늘의 인을 받아야 하였다. “여호와께 성결”이 모든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좌우명이 되어야 하였다. 모든 일은 질서와 예의, 충성과 신속성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으로 생각되었다.”(화잇주석, 대상 28:20, 21)

④ “하나님의 자녀는 진리의 표준을 높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을 하되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일해야 한다. 자아를 높이면 그리스도는 크게 될 수가 없다. 자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가르침에 잘 유의하고 자아를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면 그 크신 토기장이의 손은 모양이 좋은 그릇을 만들어 내실 것이다(편지 78, 1901).”

⑤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지 못하는 곳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는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조절될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항거하는 인간의 저항력보다 더 큰 힘으로는 역사하지 않으실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권면과 충고를 듣지 않을 수도 있고, 자기 행동은 자기가 마음대로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하면 영광의 그릇이 되지는 못한다.”(화잇주석, 렘 48:10-12)

⑥ 하나님의 능력이 성공을 가져다 줌(겔 10:8,21)
“유한한 인간의 마음에는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것같이 보이는 것을 주님의 손은 완전한 질 서속에 보존할 수가 있다.”(화잇주석, 겔 1:8)

⑦ “하나님은 불필요하게 중복해서 일하시지 않는다. 질서는 하늘의 첫 번째 법칙이므로 하나님은 질서 있게 활동하신다. 이러한 질서는 신성 내부의 연합에서 나오며 신성 내의 연합을 보존한다. 성부는 근원으로, 성자는 중보자로, 성령은 실행자 혹은 적용자로 행동하시는 것처럼 보인다.”(교리, 29)

⑧ “하늘에는 완전한 질서, 완전한 순종, 완전한 평화와 조화가 있다. 이생에서 질서와 훈련을 존중하지 않는 자는 하늘에서 준수되는 질서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결코 하늘로 들어가도록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그 곳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질서를 사랑하고 훈련을 존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생에서 형성된 품성은 장래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다.”(1보감, 537)

◉ 이스라엘 백성은 군대로 조직되었으나 아직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름길 대신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

▶ “만일,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기 위해 자신을 그분께 바친 상태라면 내일을 위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대를 종으로 삼으신 그분께서는 처음과 끝을 다 아신다. 미래의 사건들이 비록 그대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능하신 그분의 눈에는 훤히 다 보인다. …

⑨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고자 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을 때 우리는 장래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사랑하는 부모를 의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삼켜지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이 사라질 것이다.”(산상보훈, 100~101)

<요약(要約)>

시내산 아래서 1년간이나 머물던 이스라엘 백성은 진을 떠나기 전에 유월절 1주년 기념일을 자유로이 경축했다. 그들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解放)시켜 주신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했다.
지파별로 질서정연하게 3일간 행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그들의 행진은 은 나팔의 신호에 따라 질서 있게 진행되었으며 제사장들은 법궤(法櫃)를 메고 맨 앞에 섰다.
구름기둥은 북동쪽의 바란 광야로 그들을 인도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힘들 것처럼 보이는 곳으로 인도하실 때에도 지혜가 풍성하신 그분을 신뢰(信賴)하는 것이 축복(祝福)의 열쇠이다. ✝

<행복한 안식일 맞이하세요 ^^ 살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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