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맨의 교과 지도 - 제 3 과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해피맨의 교과 지도 - 제 3 과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해피맨 작성일09-10-12 20:21 조회3,148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제 3 과 예배와 헌신


기억절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안식일 오후

민수기 7,8장은 하나님의 성막이 건립된 후 드려진 족장들의 예물과

성전의 봉사자들로 세움을 입은 레위인들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질서있고 예모있게 진행된 모든 예식들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합심하여 일하는 것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교과를 통하여

우리에게 있는 단의 귀중함과

우리의 할 바 도리인 예배와 헌신에 대하여 함께 살피게 될 것이다.


번제단의 봉헌에 대하여 연구하고,

성소의 등대의 역할을 살펴보고,

그리고 레위인들의 임명식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공부해보자.


일요일 단의 봉헌(민 7장)

민 7장에는 두 종류의 족장들의 예물이 기록되어 있다.

1. 회막 봉사를 위한 예물(7:2-9)

2. 단의 봉헌을 위한 예물(7:10-88)


A. 회막 봉사를 위한 예물


민 7:2-9절까지는 회막 봉사를 위해 드려진 족장들의 예물이 언급된다.

6대의 수레와 이를 끌게 될 12마리의 소가 예물로 드려졌는데

오늘날로 말하자면 교회 선교 차량 같은 것이 되겠다.


민 4장에서는 이동식 성막이었기에 매번 성막을 철거해서 운반할 때

레위 지파의 각 자손들이 각기 역할을 맡은 것을 기록하고 있다.


고핫 자손은 성막 비품 중에서 가장 거룩한 것들을

(증거궤, 등대, 금단 등) 메어 운반해야 했다.

그러나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은 고핫 자손이 맡은 비품보다

더 무거운 비품을(성막의 양장, 가죽 덮개, 기둥 등)을 운반해야 했다.

7장은 이 무거운 비품들을 어떻게 운반해야 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 족장들이 드린 수레 여섯은

게르손 자손에게 두 대가 할당되어(7절)

성막의 양장과 회막 따위를 운반하게 하엿고,

나머지 네 대는 므라리 자손에게 할당되어(8절)

장막 널판과 기둥 따위를 운반하게 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오늘날 교회의 당면한

실제적, 선교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헌신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공동의 책임임을 시사하고 있다.


B. 단의 봉헌을 위해 드려진 예물


7:10-88절의 본문에서는 단의 봉헌을 위해서

각 지파의 족장들이 예물을 드린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각 지파의 이름과 족장의 이름만 바꾸어서

같은 사건의 내용이 단조롭게 반복되어 있다.


그럼 왜 단에 대하여 이처럼 특별한 봉헌 예물과 예식이

장장 12일에 걸쳐서 진행되었을까?


1) 단의 위치에서 얻는 의미


구약의 성막에서 번제단은

성막의 출입구를 들어서면 맨처음으로 보게 되는 것으로

정면에 놓여 있었다.

번제단은 성소 제도에 있어서 첫번째 관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매일 성막의 문이 열려지면

밖에서도 번제단 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를 볼 수 있었다.


바로 이 번제단 앞에서 모든 제물의 목숨이 취해졌다.

속죄제, 속건제, 번제, 화목제 등 모든 제사용 동물은

여호와 앞, 다른 표현으로 번제단 북편, 회막 앞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여호와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모든 제사용 동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했다.

비둘기를 바친 경우는 목을 비틀어 죽였다.


반드시 여호와 앞에서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비참한 죽음을 연상시키고 죄인의 속죄를 탄원하는 것을 의미했다.


목이 비틀어져서 죽어 그 피를 흘리는 비둘기와

도살되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소와 양들의 모습을

여호와는 매번 보셔야 했다.


하늘 아버지는 아들의 처절한 죽음을 반복적으로 쳐다 보아야 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이

매일 제단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래서 단은 그 어떤 것 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다른 성소의 기명들을 위해서는

봉헌 예물이 드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제단을 위해서는

출 29:37절에 의하면 7일동안

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고

특별한 봉헌 예물과 예식이 요구되었다.


솔로몬 성전이 지어진 후 성전의 낙성식이 있은 후에도

단의 낙성식을 7일 동안 특별히 다시 가졌다.(대하 7:9)


이처럼 단의 봉헌을 위해

12 족장이 매일 동일한 제물을 바치면서

제단 앞으로 나아오게 한 것은

단이 없다면 그들은 영영히 소망이 없기 때문이었다.


2) 단의 재료에서 얻는 의미


민수기에서 제작된 단은

그 재료가 아카시아 나무였다.

시내 사막 지역에 흔했던 황갈색의 목재였고

내구력이 강한 조각목이었다.

그러나 그 나무의 질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무가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은 불에 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불이 임하면 탈 수 밖에 없는 나무를 재료로 삼은 것은

그 본성의 어떠함이나 빈부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의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태를 상징한다.

멸망이 선고된 상태를 말한다.


단을 위하여 속죄하여야 했던 것은(출 29:37)

이 단이 바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 죄인들의 처지를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무엇이었는가?

출 27:2절에 의하면,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

불이 내려와도 타지 않도록

완전히 놋으로 둘러싸는 것이었다.(대하 7:1)


이 놋이 무엇일까?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을 싸서

불타죽지 않도록 만든 이 놋은

바로 생명싸개이신(삼상 25:29)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놋되신 그리스도에게 싸인 제단이 되어

영원한 멸망의 불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단이 없다면 영원한 소망이 없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의 단은 교회다.

놋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싸인 바 된 거룩한 장소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를 선포하고

그 은혜를 영원토록 누리게 하는 단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단을 소중히 여기며 힘을 다해 섬겨야 할 것이다.


3) 족장들의 예물에서 얻는 의미


여기서 각 지파가 동일한 예물, 번제물,

속죄 제물, 화목 제물을 드리고 있슴을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본문에서는 제사장의 사역을 뒷받침하고 있는

족장들의 역할에 대하여 매우 강조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은

거룩한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 제사장들을 도와,

그들이 사역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열두 지파가 드린 예물과 제물을

12일 동안에 걸쳐 바치게 하고 동일하게 반복하여 기록한 까닭은.



1. 모든 지파가 균등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슴을 보여주기 위함이며,



2. 또한 각 지파가 서로 협동하여

성막과 제사장직을 받들었슴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교회를 받드는 일은 나의 영생과 직결된 일이다.

내게 생명의 단인 교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크고 은혜로운 축복인지를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합심하여 섬기자.


월요일 하나님과의 교통(민 7:89)

민 7:89절은 단 한 구절이지만

단의 봉헌이 이루어지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회막에 거하시게 됨으로써

이제 회막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예배 중심지가 된 것을 확증해 준 것이다.


사실 성막은 당시 황금과 상아로 지은 이방 신전들에 비해

겉으로 보기에도 보잘것없는 천막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지성소가 있었고

그룹들 사이에서 빛나는 쉐키나의 영광이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고 있었다.


성막 건립을 명령하시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약속하셨다.


(출 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그리고 민 7:89절은 이 약속의 성취였다.


(민 7:8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씀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마치 모세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예수께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통을 약속하신 것이다.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 16: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이 약속은 그대로 성취되었고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행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 바울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과의 교통을 체험하고 이렇게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비록 우리의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는 우리 안에 쉐키나의 영광이 있슴을 알아야 한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과 날마다 교통하는
놀라운 특권의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 일컫는다.
내가 말씀하려하지 않고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새로운 삶의 패턴이 낳은 결과였다.

오늘 나는 성령이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 음성을 듣고자 무릎꿇는 자는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반드시 듣게 될 것이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화요일 성막 안의 빛(민 8:1-4)

성경에서는 개인 가정에서의 등대에 관하여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성막 중 성소 안에 설치되어 있었던 등대에 관하여

주로 기록하고 있다.


이 등대는 히브리어로 메노아라고 하는데

빛을 뜻하는 히브리어 오르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메노아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생명나무와 관련된 상징으로

그 모양은 중심되는 줄기가 있고

양 옆에 세 개씩 여섯 개의 가지가 있는데

한 달란트(약 96 파운드) 무게의 금을 망치로 두드려서 만든 것이었다.


메노아는 AD 70년 성전 파괴 후 전리품의 하나로

로마의 티투스의 개선문의 부조에 새겨져 있고

이후 오늘까지 유대교의 가장 유명한 상징물로

유대인 회당과 가정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등대에 설치된 등잔들은 살구꽃 형상을 하고 있는데

더 밝은 조명을 위하여

또는 관리하기에 더 편하게 하기 위하여

부착된 것으로 본다.


계 1:12-20절을 보면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해석되어 있고

인자 같은 이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레 24:4절에 대제사장 아론처럼

“등잔들을 끊이지 않고 정리하는” 모습을 통해

당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은(마 5:14절)

성소에서 어두움을 몰아내고

12지파를 상징하는 진설병을 비추던

메노라, 곧 교회의 사명을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가 살구꽃처럼 “깨어있고 각성하는”(마 24:42,43)자들이 되고

온 땅을 환하게 만드는(계 18:1-3)

마지막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반드시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기름인데

이 기름이 바로 약속하신 성령이시다.


열처녀의 비유를 기억하는가?

기름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이

하나님의 결혼 예식에 들어갈 수 있었다.(마 25:1-13)


기억하라 슥 4:6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눅 11:13)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깨어 세상을 환히 비추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으로 하여금

성령의 충만한 열매(갈 5:22,23)인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하는 것이다. (마 5:16)



수요일 레위인들의 봉헌 1(민 8:6-26)

신학적으로 이 본문은 하나님의 거룩이란 주제 하에서,

특별히 레위 인에 대한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레위인들은 각 지파의 장자들을 대신하여

성막의 봉사를 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을 돕는 자로 일하게 되었다.


이들은 성소의 소소한 의무들을 맡은

종속적인 성소 관리들이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전 사무를 보살피는 자,

유자와 재판관, 문지기, 찬양자로

각자의 역할을 맡아 수고하였다.(대상 23:3-5)


민 8:6-26절에는 레위인들의 정결과 봉헌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들은 목욕, 몸의 털을 밀음, 희생 제사, 안수,
하나님께 대한 엄숙한 봉헌의 제사들에 의하여 성직에 취임하였다.

공동체 사람들이 레위인들에게 안수함으로써

레위인들은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맡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민 8:10-19절).


레위 인들은 기름 부음을 받거나

특별한 복장을 입지 않았다.

다만 입고 있는 옷을 깨끗하게 빨아 입었다(7절).


롬 11장을 통해 유대인의 구원의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었던 사도 바울은

롬 12:1,2절을 통해 신약 시대의 이방인들에게도

과거 레위인들에게 주어졌던 동일한 축복의 삶이 열렸슴을 선포하였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사도 바울은 과거 성소 봉사에 있어서 요제로 드려졌던 레위인들처럼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자들로 부름받아

정결함을 입고 헌신의 삶을 살 것을 권하는 것이다.


더하여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세대를 본받지 말고

그들의 실패를 거울삼아

마음을 새롭게 함을 입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교회 증언 3권, 163페이지

“세상의 관습을 따라 신체적, 정신적,

도덕적 활력을 감소시키는 습관에 몰두하면서

인간이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기꺼이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대는 오늘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기를 원하는가?


목요일 레위인들의 봉헌 2(민 8:16)

(민 8:16)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바 된 자라
이스라엘 자손 중 일절 초태생
곧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내가 그들을 취하였나니』

“내게 온전히 드린 바 된 자들”이란

원문상 “나에게 드려지고 또 드려진 바 되었다”는 반복적인 강조이다.


하나님은 “레위인은 내 것이라”고 선언하셨다.(민 3:12)

그들은 애굽의 유월절 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살아남은

온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대신하는 자들이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살아남은 구원받은 자들을 대표하였다.


하나님은 말로 할 수 없는 큰 값을 치르시고(Ransom)

그들의 생명을 구출해 내셨던 것을 언급하셨다.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영원한 표였다.

그 처절한 십자가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민 8:19절에서 의미하는 바는

온 애굽을 통곡의 밤으로 만들었던 무서운 재앙으로부터

그 어린양의 피로 보호함을 입었던 장자들의 대리인들인

레위인들, 성막과 이스라엘의 진 사이에 포진한 그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은 그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다시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의 생명을 보존해주시는 은혜를 계속하시게 되는 것이다.


고라의 사건이 종결되었으나

오히려 온 회중의 반역이 극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의 분노의 염병을 멈추게 한 것도

바로 아론이 달려 나가『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이다. (민 16:48)


레위인들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백성에게로 흘러가게 된 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것인데

레위가 원래 어떤 자였는지를 기억하면

여기 한 가지 더 중요한 교훈을 얻을 부분이 있다.


레위는 마지막 임종을 앞둔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축복을 받아야 하는 순간에

저주의 말을 들어야 했던 자였다. (창 49:5)


(창 49:5-7)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레위는 시므온과 함께 강간당한 자신의 여동생 디나의 복수를 위해

히위 족속에게 화친하는 척하면서 할례를 행하도록 요청한 후 고통 중에 있을 때

그 모두를 잔해하였다.


(창 34: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야곱은 임종의 순간에조차

레위를 저주하는 기도를 올린 것이다.


놀랍지 않는가?

이처럼 그 악한 본성 때문에 저주받은 자였던 레위 족속이

하나님의 가장 축복받은 자들로 대변신을 하게 된 것이다.


신 33:8-11 모세의 마지막 유언의 축복에서

레위에 대하여 이렇게 기도한다.


[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9]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10]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11] 여호와여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출애굽하여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편에 서는 선택을 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저주받은 자에서 축복받은 자로

나아가 축복을 선포하는 자로 바꿔놓으셨다.


(출 32:26)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우리에게도 주님은 같은 은혜를 베푸신다.


잔해하는 칼이었던 핍박자 사울을

복음 앞에 굴복시키셨고

오히려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가 되게 하셨다.


부디 하나님의 편에 섦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는

그 놀라우신 은혜를 체험하기를 바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