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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맨의 교과 지도 - 제 1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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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피맨 작성일09-09-28 19:51 조회3,1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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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이번 기는 민수기 연구이다.

교과의 제목은 전진하는 백성이다.

기간은 출애굽한 지 1년 보름이 되던 해 BC1450년 4월 15일부터 시작하여 가나안 정복을 눈 앞에 둔 순간까지 약 40년간의 기록이다.
저자는 모세와 후대의 편집인이다. 1장과 26장의 두번의 인구 조사를 축으로 보아 민수기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민수기의 유대인의 전통적인 제목은 "광야에서"이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정길에 항상 함께 하셨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하심과 자비하심을 나타내셨으며
광야에서 약속대로 가나안까지 한 백성을 인도하심을 본다.
문제는 이런 하나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어떠한 상태였는가이다.

안타깝게도 출애굽 세대의 불신앙과 불평, 그리고 반역의 결과로
광야에서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외에는 다 죽고 말았으며
새로운 세대가 가나안 접경에 이르러 다시 그들의 믿음이 시험받는 장면에서 막을 내린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36장을 보면 아직 가나안을 정복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요셉지파의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아와 기업을 요구하는 장면으로 끝맺음으로
마침내 믿음으로 가나안을 정복하게 될 사람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 "광야에서" 하늘 가나안을 향해 전진하는 백성들이다.

그래서 제 1 과의 기억절은 민수기를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고전 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이른바 거울이론이다.

거울을 보면 현재의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출 38:8)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성소에서 물두멍은 씻음을 위한 장소다. 재료가 놋이었는데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든 것이었다.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당시 거울의 재료가 놋이었으나 그 깨끗함과 더러움을 구분할 수는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자신의 참 모습을 볼 수 있게 만들고 씻도록 결심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거울이다. 민수기가 바로 이와 같은 거울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예화) 거울을 처음 본 사람들의 이야기
장에가서 거울이라는 신기한 물건을 사가지고 왔다. 생전 처음 거울을 본 아내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리고 소리를 쳤다. "아니 이이가 장에 가서 새 여자를 얻어왔구만!" 펄펄 뛰고 난리가 났다.
시어머니가 듣자니 큰 일이 났다 싶어 와 보니 거울인가 뭔가 하는 물건 때문에 사단이 난 것이다. 그래 시어머니가 슬며시 거울을 들여다 보더니 "이런, 색시를 얻어 오려거든 젊은 색시를 얻어 올 것이지
어디서 이런 다 늙어빠진 할망구를 데려왔누" 하더란다.

거울을 보면서도 그게 자기 얼굴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성경의 사건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건 그저 그 당시 사람들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결코 자신의 모습이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가 있다.

따라서 민수기의 이야기를 고대의 사람들의 어리석음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민수기를 기록한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민수기의 사건들은 후 세대의 사람들, 곧 오늘 우리와 같은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똑같이 저지를 수 있는 일들을 거울처럼 보여주고 그들에게 무슨 결과가 벌어졌는지를 깨닫고 스스로 경계하는데 있다.

타산 지석이라 했다.

당시 유대인들이 놋 거울로 만든 물두멍을 보며 자신의 참 상태를 깨닫고 씻음이 이루어졌던 것처럼
우리도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엮어진 민수기를 읽으면서 진정한 회개와 씻음이 이루어진다면 좋겠다.


제 1 과 새로운 질서

일요일/ 군대를 조직함

이스라엘 자손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 거주하였다.(출 12:40)
그들은 끝도 없는 끔찍스런 노예생활에서 단지 도망쳐 나오는 것으로 여겼을 것이지만 성경은 이렇게 쓰고 있다.

출 12;41 "사백삼심 년이 마치는 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 즉"

창 15:12-17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였으며 장정만 60만인 대 민족이었다.

주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약속은 정확히 성취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도망자"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여호와의 군대"라고 부르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곧바로 군대로 편성하지는 않으셨다.
민수기 1장의 인구 조사와 군열 조직은 출애굽후 무려 1년하고도 보름이 지난 후, 성막이 건설된 지 1달만에야 비로서 실시 되었다.

장인 이드로의 충고가 있기 전에는 모세 혼자 지칠 정도로 재판하면서 온 지파를 통치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그들은 한 마디로 400년 이상, 노예 생활에 찌들은 자들로 오합지졸이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군대로 조직되는 것이 지연되었을까?

출 13장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출 13:17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는 바대로 열하루길이면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 근성이 다 없어지고
군대로 제대로 조직되지 않으면 위급한 상황에서 모조리 애굽으로 도망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광야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분명히 여호와의 군대를 광야에서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군대"로 보신다. 우리의 교회를 당신의 군대로 보신다.
우리는 지금 과연 하나님의 군대인가? 잘 조직되고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믿음의 군대인가?
아니면 아직도 죄악의 노예 근성을 가진 채 무작정 살아가는 불평불만의 오합지졸들인가?

유대인들이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여야 했던 것처럼
우리의 교회도 하나님의 군대로서 서기 위하여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겐 우리가 속한 지역 사회를 또는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기 위한 적절한 군대로서의 질서가 세워져 있는가?
우리에겐 지금 어떤 새로운 질서가 필요할까?




월요일/ 여호와의 임재

인구 조사가 끝난 뒤에는 장방형의 조직이 형성되었다. 당시 애굽의 익나톤과 람세스 2세 통치기간의 군대도 장방형의 조직을 갖고 있었슴이 고고학을 통해 발견되었다.

먼저 성막이 세워졌고 그 동서남북 사방으로 각 지파들이 진영을 갖추었다. 각 지파들과 성막 사이에는 레위지파들이 위치하였다.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만일 성막이 가장 앞에 놓여있다면 몇 지파는 수십만명을 통과해야만 겨우 성막에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각 지파는 성막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배치되어있었고 공평하게 취급되었다.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자들은 빈부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동일한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다.

바로 그 성막 위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분명한 상징이 있었다. 민 9:16절을 보면 낮에는 구름이 성막을 덮고 밤이면 불 모양이 성막 위에 나타나서 아침까지 있었다.
구절앞에 "항상 그러하여"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광야 생활 40년 동안 단 하루도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떠나지 않으셨다는 말이다.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의 약속을 연상시킨다. 마 28:20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시대의 소망 669-670 페이지의 말씀이다.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모든 슬픔과 고통 중에서나, 앞길이 캄캄하고 장래가 암담하게 보일 때에 그리고 우리가 무기력함과 외로움을 느낄 때에 믿음의 기도의 응답으로써 보혜사가 보내신 바 된다.
환경은 우리를 지상의 모든 친구로부터 분리 시킬는지 모르지만 어떤 환경도 어떤 먼 거리도 우리를 하늘의 보혜사로부터 분리시키지는 못한다.
우리가 어디 있든지 어디를 가든지 언제나 그분은 우리를 지지하시고 격려하시며 위로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오른편에 계신다. "

두번째, 레위인들이 증거막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었기에 성막 사방에 진을 쳤다는 점이다.(민 1:53)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성막을 거룩하게 하시고 백성들이 호기심이나 무지의 소치로 함부로 성막에 들어옴으로 죽음을 당할 수 있슴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레위지파를 세우시고 성막 사방에 진을 쳐 사람들을 보호토록 하셨다.

출 19장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십계명을 선포하시기 전에도 시내산 사면에 지경을 세워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케 하셨다(출 19:21)

레위인들이 성막 주변에 포진한 것은 성막보존보다는 생명보존이 그 목적이었던 배치였다.

하나님은 나의 생명을 그처럼 가치있게 여기신다.

동시에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이다.
하나님께로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하고 합당한 경배를 드리도록 준비시키는 사역이 바로 교회 사방에 포진한 우리들의 사역이다.




화요일/ 기를 따라서

예화

워싱턴에는 한국 전쟁 기념관이 있다. 수만명의 젊은 이들이 우리 조국을 위해 죽음을 당했다. 그들의 앞에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 벽면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민 2:34절 "이스라엘 자손이 ... 그 기를 따라 진치기도 하며 진행하기도 하였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성막 동쪽의 지도적인 지파인 유다는 사자, 남쪽의 르우벤은 사람의 머리, 서쪽의 에브라임은 황소, 북쪽의 단은 독수리가 깃발에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대쟁투가 전개되고 있는 요한 계시록 4장 7,8절에는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그 첫째 생물은 사자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밤낮 쉬지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하나님의 군대로서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며 세상을 정복해나갔던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도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에 모신 자들로서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밤낮 쉬지않고 돌리며
"우리의 과거 속에 계셨고 오늘 현재도 함께 하시고 영광 중에 재림하실 것을 고대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교회의 깃발을 알고 있는가?
교회는 깃발을 높이 들고 전진해야 한다.

우리의 깃발은 무엇인가?

아말렉 족속과 르비딤에서 전쟁을 치를 때에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려오면 패하였던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아론과 훌이 그 손을 붙들어 결국 승리를 거둔 후 모세가 단을 쌓고 이름하기를 "여호와 닛시"라 하였다.
그 뜻이 바로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다.

하나님을 우리의 깃발로 삼아 전진하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기를 내리고 물러나면 안된다.
기를 든 자가 힘겨워하거나 쓰러지면 다음 사람이 함께 그 기를 다시 들어야 한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사 62:10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들라"




수요일/ 섬김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음

출애굽이 성사된 마지막 재앙은 애굽의 장자들의 죽음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양을 장자대신 죽여 그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장자의 생명을 보존하였다.

창세로부터 죽임당한 어린양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유월절(Passover)사건은 십자가 사건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그 피값으로 살아남은 자들은 어린양 예수님께 빚진 자들이다.

예화

노예시장이 여전하던 때에 한 늙은 흑인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은 노쇠하고 병든 것이 완연하여 아무도 그를 원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만일 오늘도 선택되지 않는다면 다시 착고에 채여 차가운 굴속에서 또 하루를 버텨야 했다. 한 신사가 그를 보고 그를 지목하더니 값을 치렀다.
노예상인은 값을 받고 그 늙은 흑인을 마침내 팔아치운 것이 너무 기쁜 듯 연신 휫바람을 불어댔다.

늙은 흑인은 그를 산 주인을 말없이 따라 집으로 왔다. 여전히 착고가 채여져 있었는데 주인은 그의 착고를 풀어주고 상처에 약을 발라주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내 집에서는 이제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이요"

그 늙은 흑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주인님을 평생토록 섬기겠습니다."

예수님의 그 크신 은혜를 갚는 것은 그를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민 3:12-13절에는 살아남은 각 가족들의 장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선택하셨다고 말한다.

1개월 이상된 모든 장자들을 계수하니 22,273명이었는데 1개월 이상된 레위인의 수를 계산하여 보니 이와 비슷한 수가 되었는데(22,000명, 다른 조사는 22,300명) 그들을 대신 받으신다고 한 것이다.

따라서 레위 지파의 사람들은 성막 봉사를 자신을 위하여 한 것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들을 대표하여 행한 것이었다.

내 인생이 오직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이라면 우리는 레위지파의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
나는 교회 봉사를 통하여 죽을 운명에 처했던 사람들을 위한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교회에서 무의미한 습관적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속한 땅에서 누군가의 생명을 대신하여 일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맡은 크고 작은 봉사의 중차대함과 매일의 봉사 사역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

성막에는 문지기도 있었고 그릇닦는 자도 있었으며 번제단에 타다 남은 찌거기를 처리하는 자도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들은 모두 한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이다.

시 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이 시편기자의 심정이 우리의 것이 되도록 기도하자.




목요일/ 거룩한 것을 보호함

민 3:2,3절에 따르면 아론의 아들들이 제사장 직분을 받았다. 그들은 기름을 발리우고 거룩히 구별되었다.

그러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장자였던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여호와앞에 드리다가 여호와앞에서 죽었다.

충격을 받은 아론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모세는 그 친척들을 불러 장례를 치르게 하였다. 슬픔은 금지되었다. 포도주와 독주가 제사장들에게 금지되었다.

레 10:10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것을 분별하고 또 ...가르치리라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신약 시대에도 동일한 표준을 요구하고 있다.

딤전 3:2,3 절 "감독은 ...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딤전 3:8절 "집사들도 ...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롬 13:13절에도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 술취하지 말며"

맨정신으로도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술취함으로 얼마나 큰 위험에 빠지게 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엡 5:18절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우리의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영적인 삶과도 직결된다.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순종하여 술취하지 말자.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갈망하자.



금요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토론이 가능한가?

1. 종교에서 조직이 꼭 필요한 것인가?

2.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토록 소중한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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