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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 담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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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9-01 17:46 조회4,8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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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9월 5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56분) (李 奉 周)

제10과 담대(膽大)함

<기억절(記憶節) >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핵심 교과토의(核心 敎科討議)>
○ 우리의 확신(確信)과 담대(膽大)함은 어디서 오는가?
○ 우리의 확신(確信)이 추측(推測)으로 변질(變質)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우리의 기도(祈禱)가 응답(應答)될 것이라는 확신(確信)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 사단의 공격(攻擊)으로부터 지켜주실 것에 대한 어떤 보증(保證)이 있는가?
○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知識)에 이를 수 있는가?
○ 하나님은 어떠하시며, 우리에게 주신 그분의 약속(約束)은 어떠한가?
○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확신(確信)과 담대(膽大)함을 가질 수 있는가?
○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과 그분과 함께 영원(永遠)히 사는 것보다 더 중요(重要)한 것은 없다.
○ 요한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깨닫기) : 우리는 구원(救援)을 확신(確信)하고, 기도(祈禱)의 응답(應答)을 받으며, 보호(保護)를 받고,
하나님께 속하며, 예수님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하나님께 대한 신뢰심(信賴心)과 소속(所屬)감을 배양(培養)한다.
(행하기) : 추측(推測)이나 가정(假定)이 아닌 확신(確信)속에서 적극적(積極的)인 그리스도인 삶을 산다.

<요점(要點)>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확신(確信)과 담대(膽大)함을 가질 수 있는 다섯 분야(分野)를 열거(列擧)하였다.
우리 자신의 부정적(否定的)인 선택(選擇)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救援)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일(日) (8월 30일)
<담대(膽大)함을 가짐(요일 5:13~21)>

◉ 좋은 약(藥)은 입에 쓰나 병(病)에 이롭고, 충언(忠言)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行實)에 이롭다.
와신상담 [臥薪嘗膽],이란 고사성어(故事成語)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누구나 쓸개하면 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쓸개의 맛을 본 사람은 많지가 않다.
곰쓸개가 몸에 좋다고 해서 맛을 본 사람이나,
곰쓸개 대신에 돼지 쓸개 맛이라도 본 사람은 쓸개 맛이 쓰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얼마나 쓰면 쓸개라고 할까?
쓸개는 한자로 담(膽)이라고 하는데 담이 하는 역할(役割)이 무엇일까?
몸 안에서 담(膽)이 하는 역할(役割)은 잘 알지 못하지만
집을 둘러싼 담의 역할(役割)을 안다면 몸 안의 담이 하는 역할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집을 둘러싼 담을 사전에서 찾아본 내용은 소유권 표시로서의 대지경계선 확정, 사람이나 동물의 침입방지, 외부의 시선 차단, 방화·방음 등의 목적으로 판장(板墻), 목책, 가시철망울타리, 바자울, 산나무울타리보다 튼튼하게 만든 것을 담이라 한다.

몸 안에서 담(膽) 또한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쓴 것이 약이 되어 몸에 이로운 것이다.
한의학(韓醫學)에서 담(膽)은 대담한 용기(勇氣)를 내는 장부(臟腑)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담(쓸개)이 크다'는 것은 '용기가 많아 대담하다'는 뜻이고, 담(쓸개)이 빠졌다'는
것은 반대로 '용기가 없고 비겁하다'는 뜻이다. 이처럼 대담한 사람을 감히 넘보지 못하듯이
몸 안의 담이 건강하다면 외부(外部)의 병(病)이나 내부(內部)의 병(病)이 함부로 몸을 넘보지 못하는 것이다.
담안에 있는 담즙은 담즙색소 및 담즙산염, 콜레스테롤, 레시틴 및 무기염 등을 포함하는 알칼리성 액체이다.
담즙은 간(肝)에서 생성되고, 하루에 500~800ml를 분비되며 간(肝)에서 바로 분비(分泌)된 간 담즙, 총 담관 안에 있는 담관담즙, 담낭 내에 저장되어 있는 담낭담즙으로 구분된다. 주성분은 담즙산, 담즙색소, 지질, 소금, 탄산나트륨, 칼슘 등의 무기염류, 기타 소량의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요소 등을 포함한다.
담즙산염은 지질을 유화시키고 췌장의 리파아제 작용을 도와주고 소화된 지방산을 물에 잘 녹게 하여 소장에서의 흡수를 돕는다. 담즙산의 염류는 표면활성 친수성이 커서 지방을 유화시키고 리파아제의 작용을 받기 쉽게 해 지방의 소화를 돕고 지방산과 micelle형성을 하여 수용성의 복합체를 만들고 지방산의 흡수를 촉진시킨다.
지용성 비타민, 철, 칼슘의 흡수(吸收)를 촉진(促進)하며 가벼운 설사작용과 장(臟)과 간(肝) 순환에 의한 담즙의 생성분비를 촉진시켜주며, 장 관안에서 부패를 방지하며 담즙색소, 콜레스테롤, 호르몬, 독물, 약물 등을 배설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담이 하는 역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담(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병이 쉽게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담을 넘어 들어오는 침입자(侵入者)들에게 쓴맛을 보여준다는 것은 건강을 위협(威脅)하는 병원균(病原菌)에게 쓸개의 쓴맛을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쓴맛으로써 건강(健康)을 지키는 길이다.

▶ 담(膽)
(쓸개)를 만드신 분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주님(主任)의 일을 하는 사람은 담(膽)이 클 수밖에 없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담(膽)이 크다. 담이 크다는 말은 겁이 없다는 말이다.
겁은 오감(五感)의 작용(作用)으로 생기는 것이다.
무서운 독사가 등 뒤에 다가와도 그것을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겁내지 않는다.
그러다가 뱀을 보는 순간 겁이 덜컥 난다.
주님의 참된 일꾼은 무엇을 보든 그 보이는 것을 꿰뚫어, 또는 그것을 말미암아 주님을 본다.
풍랑(風浪)속으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유령(幽靈)인줄 알았을 때는 겁이 났다가 그분이 주님이신 줄 알자 겁이 사라졌다. 무엇을 보든, 어디를 가든, 눈앞에 오직 주님만 계시는데 무엇이 겁날 것인가?
그래서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담이 큰 것이다.

☞ ○ 아합왕 앞에 분연(紛然)히 나타나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한 엘리야와
○ 한때에 비굴하고 비겁한 배신자였던 베드로의 담대함을 보자.
베드로는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담대히 예수님에 대하여 설교를 하였다.
(사도행전 2:14-36; 3:12-26절을 선포할 때,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이를 갈거늘." (사도행전 2:37; 7:54)
이광경이야 말로 담이 큰 즉 담대한 하나님의 백성이라 확신할 수가 있다.
○ 담대한 사람 "스데반" 을 보자
스데반은 담대한 사람 중에 참으로 담대한 사람이다.
돌로 맞아 죽음의 돌무더기 속에서도 저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중보의 기도를 드리면서 저들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를 하는 스데반이야 말로 참으로 담대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사도행전 7:1-53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이를 갈거늘." (사도행전 7:54)
○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를 보자.
60큐빗이나 되는 금(金)신상(神像)앞에서 느브갓네살 왕의 명령을 거역 하며 우상(偶像)에게 절하지 앉는 담대함을 보자,
다니엘은 조서에 어인(御印)이 찍힌 것을 알면서도 늘 하던 대로 하나님께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를 하는 담대함을 보자. (단 6장 참조)
담대함이란 전자(前字)에 거명한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 말고도 네로 화제의 박해를 받아 카타쿰의 피난으로 신앙의 절개를 지킨 성도들과 왈덴스인들과 존 위클리프와 후스, 제롬루터, 폴리갑 등등 믿음에 굳게 선 선조들이야 말로 담대한 믿음의 조부(祖父)들이 아니겠습니까.

◉ <엘리야가 하늘의 열쇠를 가짐>
“아합 왕이 놀란 마음을 수습하고 대답할 말을 채 찾기도 전에 엘리야는 하늘의 열쇠를 가지고 사라져 버렸다. … 그는 그의 말로 하늘 보물창고(寶物倉庫)의 문을 잠궈 버렸기 때문에 그의 말이 아니면 다시 그것을 열 수 없었다.… 그 하나님의 사람이 가 버리고 다시 소환(召還)할 수 없게 되자 비로소 아합은 그에게 책망(責望)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가게 내버려 두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뷰 1913. 8. 14).

◉ <하나님의 기별(寄別)을 지닌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은 자기의 기별을 맡기실만한 사람을 항상 갖고 계신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말하지 않을 수 없게 하신다. 거룩한 열심으로 고무되어 하나님이 주신 강한 충동을 가지고 주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난 다음에 이르러 올 결과를 계산하지 않고 그들은 의무 이행에 착수하였다. (리뷰 1885. 4. 7).

◉ <하나님을 위하여 전적(全的)으로 일어섰던 사람>
항상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최고로 높이시고 그분의 권면의 말씀을 사람들 앞에서 확증하셨다. 선지자 엘리야의 증언은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땅에 있는 그분의 사업을 위해서 전적으로 일어선 사람의 본이 된다. 그 선지자는 주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 이름은 그분의 겸비와 연민의 정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그의 열심과 이스라엘 집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은 오늘날 지상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사업의 대표자들을 가르치시기 위한 교훈으로 제시되어 있다. (편지 22, 1911).

◉ <용기(勇氣)는 하나님을 쳐다봄으로 가능(可能)함>
어떤 특수한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아무리 용감(勇敢)하고 성공적(成功的)이었던 사람일지라도 그의 믿음이 시험을 당할 만한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만약 그가 끊임없이 하나님을 쳐다보지 않으면 용기를 잃게 될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 능력의 현저한 증거를 그에게 주신 이후라 할지라도, 비록 그가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의 사업을 하게 된 후일지라도, 만약 그가 전적으로 전능자를 신뢰(信賴)하지 않으면 실패(失敗)하고야 말 것이다. (리뷰 1913. 10. 16).

◉ 요한일서 5:14의 '담대(膽大)함'이란 ?
헬라어 "파레시하(parresia)로 원래는 "자유로운 표현" 그러므로 "기탄없이 말함"으로 신약(新約)에 31회 나타나는데 사도 요한이 13회 사용했다.
"확신(確信), 담력(膽力), 혹은 진솔(眞率)함(행 4:29, 31)이나, 명백(明白)함 (요 16:25, 29)을 의미(意味)한다."

○ 담대(膽大)함이란?
그리스도 안에 끊임없이 거(居)함으로 그가 강림(降臨)할 때에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묘사(描寫)한다.
이생을 주와 함께 보내는 자들은 그가 강림(降臨)할 때에 그분을 환영(歡迎)할 것이다.
회개(悔改)한 죄인은 자기 확신으로 기탄없이 말하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이 없는 확신을 가지고 그분을 맞을 것이다.

○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에 의존하기 때문에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확신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이 행한 일에 근거하지 않는다.
이 확신은 전적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온다.
요한은 요한일서의 끝부분에서 “우리가 아노라”라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이 담대함의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아노라”라는 말이 앞에서도 두 번 나오지만(요일 3:2, 14),
결론 부분에서 다섯 번이나 반복되면서 “담대함”의 개념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 우리는 우리에게 영생이 있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분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시며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알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 <하나님의 보호(保護)를 확신(確信)함>
“우리가 만일 우리 자신의 생각대로 계획한다면 주께서는 우리가 실수하도록 버려두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부를 좇은 후에 우리가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우리는 낙담하여 물러설 것이 아니라 위기를 당할 때마다 무한한 자원을 자유로 쓰실 수 있는 분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자주 곤경에 둘러싸일 것이다. 이때에 우리는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뢰해야 한다. 주께서는 당신의 법도를 지키기 위하여 당하는 시련 때문에 곤란에 빠진 각 영혼을 보호해 주실 것이다.”(시대의 소망, 368)

◉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구원(救援)의 확신(確信)을 가질 뿐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그분께서 우리의 기도(祈禱)를 들으시고 지켜주실 것을 확신(確信)할 수 있다.

월(月) (8월 31일)
<영생(永生)을 가짐(요일 5:13)

◉ 한번 구원(救援)은 영원(永遠)한 구원인가?
대부분의 복음주의(福音主義)자들은 일단 우리가 한번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救主)로 영접(迎接)하면 구원은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한 번 구원(救援)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주장은 안전한가?
“나는 작년 12월 21에 구원받았습니다.”라고 확신 있게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구원(救援)받은 날짜와 시간까지 정확하게 말하면서, 자신은 이제 더 이상 멸망(滅亡)당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능력과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을 영원히 불변(不變)하는 것으로 보장(保障)해 주셨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정말,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 것인가?
결론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번 목욕하면 평생 동안 깨끗해서 목욕을 할 필요가 없는가?
인간은 아담이후 태어날 때부터 죄인(罪人)으로 태어난다.
즉 죄의 성향(性向)으로 태어나서 죄로 멸망(滅亡)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므로 죄인인 인간이 멸망(滅亡)치 않고 영원히 영생할 수 있는 비결(秘結)이 두 번째의 아담이신 예수님에게 접(椄)붙임을 할 때 영생할 수 있다. (로마서 5:12-21 참조)

○ 좋은 품종(品種)은 접(椄)붙임을 통하여 우수(優秀)한 품종(品種)의 열매를 맺는다.
사과는 능금나무에 접(椄)붙임을 통하여 좋은 맛있는 사과의 열매를 맺고, 감은 고욤나무에 감 접(椄)을 붙여서 좋은 감을 맺게 되며 식물(植物)에 있어서 좋은 품종(品種)은 반듯이 접(椄)붙임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 접(椄)붙임을 받은 가지는 지속적(持續的)으로 뿌리와 원 둥치로부터 영양공급을 받아야 살 수 있다.
한번 접붙임을 밭았다고 뿌리로부터 원줄기로부터 수액과 영양분을 받지 않아도 살 수 있겠는가.
밥을 한 끼만 먹고도 평생(平生)동안 식사(食事)를 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겠는가?
영양분은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공급을 받아야 생존을 할 수가 있다.
목욕을 한번하고 나면 계속적으로 깨끗함을 지속할 수가 있을까?
세족예식(洗足禮式)과 성만찬예식(聖晩餐禮式)의 진정한 의미를 안다면,
한번 구원(救援)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말의 모순(矛盾)을 발견할 것이다.

○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 데 거(居)하지 아니하면 접(椄)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椄)붙이실 능력(能力)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 감람(橄欖)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本性)을 거슬러 좋은 감람(橄欖)나무에 접(椄)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롬 11:23-24)

○ 영원한 구원(救援)의 비결은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는데 있다.
고의적(故意的)으로 범(犯)하는 죄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관계를 단절(斷切)시킨다.
영생(永生)에 대한 보장에는 항상 조건(條件)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記憶)해야 한다.
사도바울이 한 말씀을 참고해보자.
(고린도전서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傳播)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은 자신의 생애가 다시 죄에 사로잡히도록 허용한다면 멸망(滅亡)당할 수밖에 없음을 생각한 것이다.

◉ 영생은 현재적(現在的) 실제이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 마지막 부분에서도 비슷한 진술을 하였다.(요 20:30~31)
◉ 영생(永生)
헬라어 "조에 아이오니오스 (zoʹeʹ aioʹnios)"
요한복음에서 '영원(永遠)한"이라는 의미의 형용사 "아이오니오스 (aioʹnios)", 오직 "조에(zoʹeʹ)" 즉 "생명"이란 단어와 만 함께 나타난다.
(요 3:15, 16, 36; 4:14, 36; 5:24, 39; 6:27, 40, 47, 54, 68; 10:28; 12:25, 50; 17:2-3)

헬라어는 문자적으로 "영생을 계속 유지(維持)하기 위하여"이다.
"영생(永生)"은 영원토록 지속(持續)되는 생명이며, 끝이 없는 생명이다.
그것은 오직 모든 생명의 근원(根源)이신 분과의 중단(中斷)없는 연결(連結)을 통(通)해서만 가능(可能)해진다.
요한일서 5:11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永生) "조엔 아이오니온 (zoʹeʹn aioʹnion)을 주신 사실을 강조 한다.
영생의 선물(膳物)은 하나님이 다함이 없는 선물인 당신의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을 때에 이루어 졌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지금 하나님의 은사(恩賜)인 영생이 있으며,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을 인하여 기뻐할 특권(特權)이 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이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2)

영생의 소유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내재(內在)하느냐에 달려 있다.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참조 요 5:24-25; 6:54; 8:51)

○ 요한일서 5:13은 신약에서 영생에 관해 다룬 다른 구절들과는 차별된다. 다른 구절들은 영생의 조건이나 약속을 언급하고 있지만(예, 요 3:36),이 구절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미 영생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확신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괜찮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확신을 갖기를 원하신다.
모세(출 32:32), 베드로(벧전 5:1), 바울(딤후 4:7~8),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엡 2:8), 골로새 신자들(골 1:12~14)도 이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 우리는 시험(試驗)과 유혹(誘惑)에 빠지기 쉬운 연약(軟弱)한 존재이므로 순종(順從)과 회개(悔改)와 믿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屈伏)시켜야 하며, 소망(所望)의 진리(眞理)를 굳게 잡고 끝까지 견뎌야 한다.

※ 어떤 사람들은 구원(救援)의 “확신(確信)”을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救援)받는다”는 식의 “무조건적(無條件的)인 보증(保證)”으로 변질(變質)시켰다. 만약(萬若)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도, 그리고 우리를 하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부도덕(不道德)하고 비윤리적(非倫理的)인 삶을 살아도 괜찮다는 말이 되고 만다!(갈 5:21, 계 21:8).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순결(純潔)하게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만약 우리가 어떻게 살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교리(敎理)를 받아들인다면 어떠할지 상상(想像)해 보라!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 확실성은 우리 자신의 선택에 의해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우리는 날마다 계속해서 순종과 회개와 믿음으로 자신을 주님께 굴복시킴으로써 생명의 면류관을 굳게 잡을 필요가 있다. 사단이 두루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에(벧전 5:8) 우리는 항상 경계하고 기도해야 한다.

◉ <예수님의 능력(能力)으로 영생(永生)을 얻음>
“그대는 그분의 임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분은 그대의 모든 시련을 다 아신다. 둘째 아담인 그분이, 아담의 배은망덕한 타락의 결과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다. 모든 면에서 그분은 대적을 이기셨으며, 그분의 힘으로 우리는 승리자의 상급인 영생을 얻을 수 있다.”(설교와 강연, 2권, 236)

◉ 우리는 물론 영생의 확신을 가져야 하지만,
'한번 구원(救援)받으면 영원(永遠)히 구원 받는다'는 식의 확신은 우리를 방종(放縱)으로 이끌어갈 위험이 있다.

화(火) (9월 1일)
<그분의 뜻을 따라서(요일 5:14~17)>

◉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말씀은 보지 못하더라도,
기도(祈禱)는 할 것이고 기도에 대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기도는 드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보았을 일이라면…….
기도란 내가 원(願)하는 것들을 하나님께 간청(懇請)하려는 것으로 그리고 내가 충분히 길게 그리고 아주 열렬히 기도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늘에 좌정(坐定)하셔서 우리를 살피시는 친절하신 아버지이시며 우리들이 예의바르고 또 선(善)하다면 상(賞)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착하게 살려고 마음을 먹고 며칠을 반복하며 기도하지만 내 자신이 드리는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에 어떠한 생각들을 하였을까?
철야기도를 인해서 그럴까? 헌금을 잘 안 드려서 그럴까? 누구를 미워해서 그럴까? 교회출석을 열심히 인해서 그럴까? 많은 반문과 풀리지 않는 수수깨끼로 지금도 궁금해 하면서 오늘을 맞이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지 않을 까 생각을 해봅니다.
기도(祈禱)하는 대로 즉시즉시 응답을 받는 다면 과연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은 즉시 저주를 받아야하고?
돈이 필요하면 손톱하나 움직이지 않고 돈 나와라 뚝딱 하면 돈이 방안에 가득 넘치고?
흔히 말하는 기도가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각하고 기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 우리의 진지하고 자비하신 주님께서는 무엇이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인지를 알며, 그의 은혜와 능력을 우리의 행복과 구원(救援)의 증진(增進)을 위해 사용하신다. (살전 4:3 참조)
우리가 구원 받기를 열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열렬하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를 열망하신다.
그의 뜻은 우리 자신의 뜻보다 훨씬 더 확고하게 우리의 구원에 쏠려있다. (갈 1:4; 엡 1:5).
따라서 우리가 만일 우리의 구원에 관하여 어떠한 간구(懇求)라도 드리면, 구주께서는 들어줄 준비가 되고도 남는다. 그분이 그 요청을 이루기위해서 언제나 기다리고 있으시다.
이러한 보증(保證)은 매일의 생애에서 큰 문제들뿐 아니라 작은 것들에서도 유효(有效)하다.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헤아리시는 그분은 그분이 대신 죽은 자들의 삶의 아주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도 무관심(無關心)하지 않으시다. (마 10:29-31) (본교 성경주석(한)14권363p)

◉ 기도(祈禱) / Prayer
(마음으로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신(神)에게 비는 일 또는 의식(儀式))

(계 5 : 8, 계 8 : 1). 기도(祈禱)는 향(香)이다.
(시 62 : 8) 백성들아 시시(時時)로 저를 의지(依支)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吐)하라.
(약 1 : 17) 각양선물(各樣膳物)을 포함한 축복(祝福)의 보고(寶庫)인 것이다.
방식(方式)에 있어서.........친구(親舊)에게 하는 것처럼.
용도(用度)로 말하면 ....... 하늘 창고(倉庫)를 여는 창고의 열쇠.

[1] 기도(祈禱)의 정의(定義)
① 하나님과의 대화(對話)이다.
② 영혼(靈魂)의 호흡(呼吸)
③ 하늘 창고(倉庫)를 여는 열쇠(Key)
④ 영혼(靈魂)의 생명(生命) =
영적(靈的) 생활(生活)을 유지(維持)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은밀(隱密)히 교제(交際)하는 일인 것이다.

[Ⅱ] 기도(祈禱)의 필요성(必要性)
(빌립보서 4 : 6 -7) ①. 사정이 생기고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1 : 5-8) 가난한 집에 찾아온 밤중의 손님
(누가복음 11 : 11-12) 음식(飮食)을 조르는 아이들
(마태복음 7 : 7) 사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요구(要求)가 생기고 (Ask)
찾아야 할 것이 있고 (Seek) (눅 15 : 8 )
문을 두드리고 들어 갈데가 있기 때문이다 (Knock)
②. 시험(試驗)에 들지 않기 위하여
눅 22 : 46, 21 : 36
마 26 : 41, 막 14 : 38
③. 영혼(靈魂)의 호흡이다.
그것은 영적(靈的) 능력의 비결(秘結)이다. (초기문집245)
기도(祈禱)는 신앙(信仰)의 정신(情神)이다. (교회증언1권163)

[Ⅲ] 성실(誠實)한 기도(祈禱)의 자세(姿勢)(엡 6 : 18, 살전 5 : 17, 골 4 : 2-3, 롬 12 : 12.)
① 쉬지 말고 항상(恒常)기도 함.
② 습관적(習慣的)으로 (늘 하는 곳에서)
다니엘 (단 6 : 10)
다 윗 (시 55 : 65)
③ (마 6 : 6) 은밀(隱密)한 곳에서
④ 무릎을 꿇고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눅 22:44, 22:41, 행 9:40, 21:5, 대하 6:14, 왕상 8:54)

[Ⅳ] 기도(祈禱)의 방법(方法)
마 6:9. ① 하나님의 성호(聖號)를 부른다.
시 100:4 ② 감사(感謝)와 찬양(讚揚)을 드린다.
시 32:1, 5 ③ 죄(罪)를 자복(自服)한다.
빌 4:6 ④ 소원(所願)을 간구(懇求)한다.
요 14:13-14,⑤ 예수님의 이름으로,
요 16:23-26 , 골 3:17

[Ⅴ] 기도(祈禱)의 종류(種類)
(마 6:6) ① 은밀(隱密)한 개인기도(個人祈禱)
아무 곳에서나 언제나 할 수 있다.
② 가족기도(家族祈禱)
(대하 6:12-13) ③ 공중기도(公衆祈禱)
④ 마음의 묵상기도(黙想祈禱)
⑤ 특별(特別)한 경우를 위한 기도(祈禱)
금식기도(禁食祈禱) (느 1:4, 단 9:3, 욜 2:12)
철야기도(徹夜祈禱) (눅 6:12, 창 32:24)

[Ⅵ] 응답(應答) 받는 조건(條件)
(사 44:3, 렘 26 :12-13), ① 하나님의 도우심의 필요를 느낄 것 (시 42:1)
(약 1 : 6, 마 21:22). ② 믿고 기도 할 것
(히 11:6) ⓐ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믿고.
(막 11:24) ⓑ 응답 하실 하나님이심을 믿음. (롬 8:32, 마 7 :11, 시 65 :2)
(엡 6:18, 유 1:20-21) ③ 성령(聖靈)으로 기도 할 것.
(골 3:17. 요 14:13). ④ 주님의 이름으로 할 것
(마 6:12 18:35) ⑤ 다른 사람을 용서 하는 마음으로 (용서의 정신을 품어야 한다 )
(예) 탕감(蕩減)받은 은혜(恩惠)를 잊은 관리(官吏) (마 18:22-35)

(사 1:15-16, 잠 28:13, 민 5:7, 레 5:5) ⑥ 죄를 자복(自服)하고 버려야 한다.
(요일 5:14, 마 6:10, 마 26:39) ⑦ 하나님의 뜻대로 구(求)해야 된다.
(롬 12:12, 골 4:2) ⑧ 항상(恒常)꾸준하게 기도해야 한다.

[Ⅶ] 상달(上達)되지 않는 기도(祈禱) (응답(應答)받지 못하는 기도(祈禱))
(시 66 : 18, 겔 14:4, 사 59:2) ① 죄악(罪惡)을 품은 마음으로.
(잠 28 : 9) ② 율법(律法)대로 행치 아니 하면.
(마 6 : 5) ③ 보이려고 하는 기도 .
(약 4 : 3) ④ 욕심(慾心)에 끌린 기도.

[Ⅷ] 기도(祈禱)의 모본(模本)들
(마 26 : 39, 42, 44). ① 예수님
(행 16 : 13, 10 : 9) ② 제자들과 바울
(단 6 : 10) ③ 다니엘
(시 63 : 6) ④ 다윗
(삼상 12 : 23) ⑤ 사무엘
인간은 과학의 놀라운 개발로 우주통신의 수단을 발견 했다.
1/300초 내에 지구 저쪽과 교통 하는 위성시대(衛星時代)에 살고 있다.
“같은 시간에 세계인구가 통화(通話)할 수 있는” 길을 발견(發見)하였다.
그러나 천사(天使)는 수천(數千)년(年)전(前)에 레이저 광선(光線)보다 더 빠른 통신(通信)으로 그 백성(百姓)들과 교통(交通) 하지 않았는가. (단 9: 21-23)
기도(祈禱)는 ① 과학(科學) 이다.
② 능력(能力) 이다.
③ 그것은 영혼(靈魂)을 살게 하는 호흡(呼吸)이다.
④ 기도(祈禱) 하는 자는 승리 한다. 승리 하려거든 기도(祈禱)하자. (아멘)

◉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된다는 약속(約束)이다.
우리의 기도(祈禱)는 우리의 기대(期待)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선한 상태로 응답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고, 그 절정(絶頂)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며 그 생명이 생활하기에 넉넉한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영생을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위하여 자주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나보다 더 확실히 아시기 때문에 영원을 위하여 나에게 가장 확실한 것으로 응답하신다. 그러나 회개(悔改)와 용서(容恕)는 즉시 응답하신다.

◉ <기도(祈禱)를 기다리는 천사(天使)들>
“보다 더 깊은 경험과 경건을 위하여 매우 열렬하게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행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약하고 실수를 많이 범하는 그의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주님은 그들의 기도와 간증을 귀 기울여 들으신다. 매일 매 시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깨어 기도하는 사람들은 주께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천사들은 그들의 뉘우치는 기도를 하나님께 전해 드리고 하늘 책에 기록하기 위하여 날개를 펴고 기다리고 있다.”(재림교 성경주석(영), 4권, 1183)

◉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야 한다.
나의 모든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고자 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진다.

◉ <기도(祈禱)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볼 이야기!>
누가복음 18장13절에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한 그를 예수님께서 그 입술에 넣어주신 세리(稅吏)의 기도보다 더 낫고 단순하고 완전한 기도를 찾아볼 수 없다. 그 기도는 효력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다"(14절)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김을 간구(懇求)하는 세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기 때문에 자비를 구했다 그는 의(義)를 구하지 않았다. 만약에 그가 의를 구(求)했다면 그는 율법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肉體)가 업다. (롬 3:20)
그는 자신의 선(善)함이나 악(惡)함을 늘어놓지 않았으며, 단순히 자비(慈悲)를 구했다.
그는 어떤 종류의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정직한 심령에서 우러난 그의 자비에 대한 호소는 하나님께 들려졌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신실한 열망으로 기도하는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즉시응답해주십니다. 아멘.

수(水) (9월 2일)
<보호(保護)를 확신(確信)함 (요일 5:18~19)>

◉ 우리 인간들이 평상시의 삶에서 우리 몸 안으로 침투하는 수많은 병균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일일이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또한 외부로부터 침투(浸透)하여들어오는 나쁜 병균(病菌)이나 세균(細菌)의 감염(感染)에 대해서 24시간365일 우리의 몸을 지켜주는 적혈구(赤血球)나 백혈구(白血球)의 생명을 걸고 우리 몸을 지켜주는 일에 감사나 고마움을 느끼며 매일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과연 몇%나 될까요?
작금에는 신종 풀루다 뭐다해서 전 세계적으로 국가적으로 바짝 긴장을 하고 있지만 그러한 질병으로부터의 매일 매순간에 우리를 보호하는 것에서부터 크고 작은 사고와 재난(災難)으로부터는 물론이며 마귀(魔鬼)사탄으로부터 우리가정과 자신을 보호해주고 계시는 하나님께 대하여 얼마나 감사의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신앙하고 있을까?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굳게 서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保護)하시는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 몸을 해(害)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變)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단 3:27)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단 6:22)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신바 되시며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 합시다. (마 10:30; 눅 12:7; 눅 21:18)

▶ "내가 산을 향(向)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天地)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失足)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 하시 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右便)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傷)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害)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 너를 지켜 모든 환난(患難)을 면(免)케 하시며 또 네 영혼(靈魂)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出入)을 지금부터 영원(永遠)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1-8)

○ 오늘도 지금이순간도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우리를 보호하고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요한일서5장18절에 "하나님께 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라는 말씀에는 (제임스 역(譯))에는 "keepeth himself" (자신이 지키시매)로 되어있다. 이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자(信者)를 지키시매"로 더 심오(深奧)한 의미가 있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거듭난 신자(信者)들을 모든 악(惡)으로부터 지킬 것이라는 용기를 북돋는 약속의 말씀이다. 더 쉽게 설명을 드리자면 예수님께서 그의 영혼의 길목을 지키시므로 죄가 들어오도록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다.

○ 악한 자에게 속한 온 세상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인 우리가 살고 있다. 그것은 성도들이 언제나 공격대상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방어하는 삶으로 영생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그 승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것이기 때문에 성도는 그 승리는 방어하는 삶으로 이기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험(試驗)과 유혹(誘惑)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사단이 우리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도록 지켜 보호(保護)하신다.

○ <보호(保護)의 확신(確信)>
“우리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하나님을 의뢰해야 한다. 우리는 무분별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시험을 자초하지 않도록 생애의 모든 행동에 있어서 지혜와 판단을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물질을 무시하고 그가 주신 재능을 오용하면서 어려움 속으로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그의 교훈을 전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사업이니 우리가 남을 축복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야 한다.”(시대의 소망, 368)

◉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대 쟁투(大 爭鬪)에서, 그리스도의 편에 선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분의 보호를 받으므로 사단이 저들을 만지지도 못한다.

목(木) (9월 3일)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知識)을 가짐(요일 5:20~21)>

◉ 신앙(信仰)에는 다음과 같이 크게 네 부류로 나눌 수가 있다고 봅니다.
⑴ 광신(狂信) → 입에 거품을 물고, 자기가 믿는 것 외에는 항상 도전적이고 전투적이며 심지어 남편(아내), 자식(子息)도 안중(眼中)에 없이 출석하는 종교집회에 동궁이 풀릴 정도로, 목숨을 걸은 듯 한 사람으로 광적(狂的)인 사람.
⑵ 맹신(盲信) → 남이 하는 대로 가자고 하면가고 오자고 하면오고, 마치 친목단체에 출석하는 식의 신앙인으로 마치 시계추(時計錘)가 좌우로 진좌운동 하듯 왔다 갔다 하는 신앙인.
⑶ 미신(迷信) →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그저 고목(古木)나무나 큰 돌이나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
⑷ 참 신앙(信仰) → 바로 알고 바로 믿는 신앙인(信仰人).

○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종교(宗敎)가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종교 가운데 창조주(創造主)유일신(唯一神)인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그리 많지가 않다.
그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아는 참된 지식을 소유한다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다.
만약에 내가 참 하나님을 즉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지금 잘못알고 신앙한다고 가정해보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라고 확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다.
아마도 첫째로 이사를 가는 날을 선택할 때라면, 즉 손이 없는 날을 잡아서 이사를 해야 할 것이고, 몸이 아프다거나 무슨 사고가 났다면 굿을 하거나 부적을 써가지고 몸에 지니고 다닌다거나 많은 돈이나 재물을 들여서 무당이나 이에 해당하는 작명가들이나 풍수지리(風水地理)하는 분들이나 주위에 산적한 전문 미신 쟁이 들에게 시간과 재물과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며, 돼지 머리 놓고 그곳에 돈을 물리고 절을 하며 행운을 비는 노릇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를 생각해볼 때 참으로 아찔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또한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건물이 큰 곳에 유명한 목사님이 마치 예수님인 것처럼 그분을 자랑하며 그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마치 예수님과 함께 특권을 누리며 사는 것 인 냥 목에 힘을 주며 대단한 것처럼 폼 잡고 큰 교회를 운운하며 선호(選好)하며 거침없는 자랑으로 자위(自慰)하며 신앙하는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생각 할 바가 많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천만 다행인 것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에는 목사님들께서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게 순회하며 고루 사람보다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도록 안경(眼鏡)과 확대경(擴大鏡)의 역할로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도록 목사님들의 역할을 해주심에 사람을 예수님처럼 그분이 가는 곳으로 떡을 해서 이고 지고 이사(移徙)가는 교인들이 없음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삼위(三位)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올바로 신앙한다는 권은 특권(特權)중에 특권이며 축복(祝福)중에 축복인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르러 구속사업(救贖事業)을 성취(成就)했음을 아는 것은 그가 개인적으로 죄의 용서(容恕)와 자신을 죄로부터 지키기 위한 구주(救主)의 내재(內在)하는 임재(臨在)의 능력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많은 사람들이 영지주의(靈知主義)의 허위(虛僞)로부터 참된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진리로 돌리고자 하는 간절(懇切)한 마음에서 요한의 서신을 쓰는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찬양을 돌립시다.

할렐루야!

○ 요한이,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요일 5:21)고 말한 까닭은 참되신 하나님 대신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참되신 하나님을 경배(敬拜)함>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라는 명령과 대조되어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계 13:3, 8, 15). 즉, 각인은 참된 예배와 거짓 예배 사이에서 하나님의 방식(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혹은 우리의 방식(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로 하나님을 경배하든지 양단간에 선택을 해야만 할 것이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238)

◉ 요한은 그의 첫 번째 서신(書信)의 마지막 부분에 참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强調)하면서,
그분에 대한 그릇된 견해(見解)를 우상숭배(偶像崇拜)에 비유(譬喩)했다.

◉ “우리가 세상의 축복을 간구할 때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지체될 수도 있고 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것을 주실 수도 있으나, 우리가 죄로부터의 구원을 구할 때에는 그렇지 않다. 우리를 죄에서 깨끗케 하셔서 그의 자녀로 삼으시고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 그의 뜻이다.”(시대의 소망, 266)

◉ “만일 병자(病者)의 생애가 그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가 살기를 기도할 것이나, 그럴지라도 우리의 뜻대로 할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대로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의 소망을 전지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아무 염려 없이 완전한 신뢰 가운데 모든 것을 그분께 의탁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은 확고하여지고 더욱 의지할 만하게 된다. 우리는 약속을 가지고 있다. 그분의 뜻과 일치하게 간구하면 그분이 들으실 줄을 우리는 안다. 우리의 간구는 명령하는 형태를 취할 것이 아니라 그분께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그분이 행하시도록 간청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교회증언, 2권, 149)

<초점(焦點)>
○ 담대(膽大)함이란 확신(確信)이 있을 때 담대함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참된 지식을 가질 때 영생에 대한 확신과,
그분의 뜻을 따라 신앙을 참되게 할 수가 있고,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保護)하시고 구원(救援)하심을 믿게 될 것이며,
그분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할 수가 있고,
우리의 기도(祈禱)의 응답(應答)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있어서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서도 담대해질 수가 있어 승리할 수가 있다.

행복한 안식일 맞이 하세요. ^^
해피 싸밧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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