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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기 9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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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하 작성일09-08-22 01:56 조회3,2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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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요일 5:5-


아들이심을 믿음

요한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가 아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he who believes in the Son of God’이 아니라 ‘he who believ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이 세상을 이긴다. 왜 요한은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니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고 지적했을까? 요한은 지금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배경은 영지주의다. 하지만 영지주의 보다 더 깊은 뿌리는 신화시대이다.

“우연히 삼킨 잎사귀 한 장, 호도 한 알, 또는 바람 한 점이 만반의 준비가 끝난 자궁 안에서는 생명으로 잉태할 수도 있다.... 처녀 잉태 이미지는 민담이나 신화에 수두룩하게 등장한다”(조셉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393쪽).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이야기는 어떤 것도 신화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동정녀에서 탄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일이 필요했다. 요한이 말한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일 5:6,7)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게 무슨 뜻일까?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위의 말씀은 요한일서 4장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말씀이다. 요한일서 4장 2-4의 말씀을 요약하면 ‘예수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것을 시인하는 자는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요, 5장 4-7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물과 피로 임한 자가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과 피로 임한 자는 육체로 임한 자이다. 왜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을 말하면서 ‘육체로 임하신’ 사실을 지적하는 것일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신화에 나오는 신인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신인이란?

『예수는 신화다』의 저자들은 예수를 신인이라고 말하므로 성경을 신화화하려고 한다. 신인은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체 안에 있는 모습으로서 신화에 나오는 존재이다. 과연 예수님이 신인일까? 예수는 신인이 아니라 사람으로 오셨다. 신인이란 반인반신이다. 인간과 신의 모습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신의 힘으로 변형하는 존재다. 제우스가 구름도 되고 독수리도 되고 빛도 되는 일에 어떤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 그러나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셨다.(요 5:30; 마 26:42)

사람들은 예수께서 이 땅에 신인으로 오셨다는 말을 쉽게 말하지만 예수님 자신은 당신이 신인이 아니라 인자라고 하셨다. 성경에 인자라는 말이 총 94번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 89번은 예수님에 의해 사용되었다. 하나님이 완전한 인간이 되어 인간의 모양으로 오셨다는 말이다. 무한의 질서가 유한의 질서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 밖으로부터 동정녀를 통하여 우주 안에 모습을 드러내심으로 당신의 전능하심을 보여주셨다. 동정녀 탄생은 하나님이 성육신하시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람들이 예수를 신인으로 보는 것은 예수께로부터 일어나는 번뜩이는 신성 때문이다. 하지만 죽은 자를 살리는 신적 능력은 엘리사에게도 베드로에게도 바울에게도 있었다. 신적 능력이 그분이 신성임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인간에게 신적능력을 주신 적은 있지만 어느 누구도 신성을 가졌던 적은 없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그분은 신성을 하늘에 두고 이 땅에 오신 인자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신인(神人)이 아니라 인자(人子)라는 것을 거듭거듭 천명하시므로 신화시대에 있을 수 있는 오해를 불식시키셨다.
신인은 자신의 형태를 변형하는 일에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만약 예수께서 신인이었다면 죽으신 뒤에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는 능력’(요 10:18)을 사용하여 스스로 무덤에서 살아 나오셔야 한다. 하지만 사도들은 죽은 예수를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행 3:15)고 20회 이상 누차 증거함으로 예수께서 신화에서 말하는 신인이 아니라는 것을 논증하였다.


물과 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지만 그 분은 육체로 태어나셨다. 그 증거는 물과 피다. 성경에서 물과 피는 인간에게 필요한 요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성경에서 물과 피는 침례와 예수님의 죽으심이다. 이것은 예수님에게 있은 두 번의 사건이지만 의미상으로 볼 때 죽음을 뜻하는 한 사건이다. 왜 죽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인 증표가 될까?
신화의 신인에게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인간은 신을 위해 끊임없이 노역에 종사해야하는 신들의 노예요, 인간의 피는 신을 기쁘게 하는 진찬일 뿐이다.(조지프 캠벨, 『동양신화』 14쪽 참조) 인간을 위해 드려질 피도 물도 신화의 신에겐 없다. 물과 피는 인간을 구원하고자하는 하나님에게만 있는 고유한 것이다. 인간을 구원하시고자하는 절대적인 열망에 의해 하나님께서 육체로 오셔서 요단강 물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는 일에 그 이상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할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성령님께서 증거하셨다. 요한은 이것을 증거하신 성령님을 진리하고 말했다.(요일 5:7) 여기 진리로 번역된 ‘알레데이아 aletheia'는 ’숨길 수 없이 밝히 드러난 일‘이다. 예수께서 침례 받으실 때(마 3:17)와 변화산상에서 하신 성령님의 음성에 따라(마 17: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밝히 드러났다. 사람이 증거한 것도 효력을 발생하거늘 성령님이 증거하셨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요일 5:9)


속성의 전염성

인간이 영생하려면 인간에게 있는 멸의 속성이 신에게만 있는 불멸의 속성으로 바뀌어야 한다. 속성이란 그것 없이는 개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물의 성질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만일 어떤 신이 사랑이 아니라면 그는 하나님이 아니다. 속성은 개체의 변치 않는 특성이다. 하지만 컴퓨터에서의 속성은 변경이 가능한 특성이다. 어떻게 속성을 바꿀 수 있을까? 글자의 모양에서 속성을 바꾸기 위해 클릭을 했을 때 컴퓨터가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속성은 바뀌지 않는다. 멸의 속성을 가진 인간이 불멸의 속성을 가지려면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그것만이 속성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이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요일 5:3) 주 안에 거하는 것이요(요일 3:24)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이다.(요일 3:23)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 있는 증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것이다.(요일 5:11) 따라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은 하나님의 속성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 신의 속성이 그토록 쉽게 옮겨질 수 있을까?
SBS에서 방영하는 「동물농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곰길이는 태어나면서 사람 손에 맡겨진 어린 곰이다. 곰길이가 동물원 사육장에 갔을 때 이미 거기엔 어린 사자와 원숭이가 있었다. 원숭이와 사자가 곰길이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했지만 곰길이는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면서 당하기만 했다.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사육사가 곰길이를 꺼내 자동차에 태우고는 엄마가 노는 사파리로 갔다. 거기서 곰길이는 엄마 곰이 사자와 함께 있으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노니는 모습을 보았다. 엄마 곰을 본 곰길에게 야성이 전염된 것일까. 그날 저녁 곰길이는 사육장에 와서 자기에게 대드는 원숭이를 한방에 쓰러뜨리고 사자에게 소리를 질러 사자를 제압했다.
엄마의 모습만 보고도 잠자던 맹수의 본능이 살아나듯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선과 악의 본능이 그와 사귀는 사람을 통해 살아난다. 선한 사람과 사귀면 선한 본능이 살아나고 악한 사람과 사귀면 악의 본능이 드러난다. 인간의 본능인 선과 악은 마치 전염되듯이 가까이 하는 자이게 옮아간다.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인 영생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선물이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는’(요일 5:12) 이토록 단순한 방법으로 주어지는 것은 그와 가까이하는 자에게 거부할 수 없는 능력으로 옮겨가는 속성의 전염성 때문이 아닐까? 전염성은 산 것의 특징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 이미 영생이 옮겨져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건 안타까운 일이다. 하여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요일 5:13)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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