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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최후의 사건들 [살전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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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금하 작성일12-08-25 07:16 조회5,01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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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최후의 사건들 [살전 5:1~11]
MT: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8).

문) 당신은 재림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재림을 준비하는 것입니까?

[예화]평생을 최고의 시계를 만드는 데 힘썼던 사람이 아들의 성인식 날 손수 만든 시계를 선물하였습니다. 그 시계는 특이하게도 시침은 동(銅), 분침은 은(銀), 초침은 금(金)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시계를 받아든 아들은, “아버지, 시침이 가장 크니까 금으로 하고 가장 가는 초침을 동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요?” “아니다. 초침이야말로 금으로 만들어져야 한단다. 1초를 잃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시간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지.” 그는 아들의 손목에 시계를 채워주며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1초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시간과 분을 아낄 수 있겠니? 세상의 흐름은 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명심하고 너도 성인이 되는 만큼 1초의 시간에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라.”

재림에 대한 소망과 시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올바른 재림관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이번 주 살펴보겠습니다.

[연구 핵심 키워드]
전반부, <일-화> 심판의 성격과 심판의 돌연성.
(일) 하나님의 심판 행위에 어떤 양면성이 발견됩니까? (부정적(공의) 심판과 구원을 위한 긍정적(자비) 심판)  
(월) 어떤 자들에게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임하는 것입니까? (의무와 사명에 나태하고 영적으로 졸고 있는 자들)

후반부, <화-목>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의 자세와 의무.
(화) 어떤 자들에게만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임하지 않습니까? (빛과 낮의 자녀로서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않음)
(수) 어떤 것이 밤에 자지 않고 낮에 속하는 것입니까? (깨어 믿음과 사랑, 소망의 투구로 무장하여 근신하는 것)
(목) 주님과 더불어 함께 살 자들이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힘써야함)

<일요일> 심판의 양면성 [창3:15-24; 살전 5:1~11]

연구범위 살전 5:1~11에서 ‘심판’이라는 구체적인 단어가 등장하지는 않으나, 심판의 주제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주의 날(day of the Lord)’ 은 ‘여호와의 날’과 같은 용어로써 불신자들에게는 멸망의 날이요 믿는 자들에게는 부활과 최후의 승리의 날이며 지구상에 임하는 심판의 날입니다(욜2:1; 습1:14). 한편 바울은 하나님의 심판이 마지막 때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에 국한되지 않고 매일 이어지는 삶의 실제적인 결과라는 사실을 데살로니가 신자들이 깨닫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토의1) 인류에 대한 심판 행위에서 하나님의 품성이 어떻게 드러나 있습니까?
   답: 심판의 양면성 즉 ‘공의’(부정적 심판)와 ‘자비’(긍정적 심판)가 나타남.
예: (1)부정적 결과=출산과 노동의 고통(아담과 하와), 추방되어 유리함(가인), 홍수로 심판. (2)긍정적 결과=가죽 옷을 입혀줌(아담과 하와). 죽이지 못하게 표를 줌(가인), 방주로 구원.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자비에 못지않게 그분의 공의에도 표현되어 있다. 공의는 그분의 보좌의 초석이며 그분의 사랑의 열매이다. 진리와 공의로부터 자비를 분리시키려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의 의가 평화의 적이 된다는 것을 밝혀 보려고 애써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는 이것들이 서로 분리될 수 없도록 단단히 결합되어 있으므로 전자는 후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시 85:10)다.“-DA, 762.

적용) 당신은 십자가에서 무엇을 보십니까? 공의와 진노? 자비와 용서의 은혜?
“그대는 나는 매우 죄가 많다고 말할는지 모른다. 그대는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악하면 악할수록 더욱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분은 울면서 참회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돌려보내지 않으신다.“-DA, 568.

요점) 하나님의 심판에는 악을 정죄하고 벌하는 부정적인 개념도 있지만, 그분의 자비에 의존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와 긍정의 이미지도 있습니다.

<월요일> 갑작스럽고 예기치 않게 [살전 5:1~3]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는 동안 시대의 징조에 관한 문제, 즉 주께서 하늘 구름 가운데 나타나시기 전에 어떠한 사건들이 일어날 것인가를 보여 주었기 때문에 상세한 진술은 생략하고 이전 가르침을 다시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특히 ‘주의 날(여호와의 날)’을 ‘종말’에 하나님의 결정적인 개입으로 묘사하며 불순종에 대한 부정적인 결과(심판)를 강조하고 있습니다(사13:6~9, 렘46:10, 겔30:2~12).

토의1) 신자들이 익히 알고 있다는 때와 시기에 관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답: (1)주의 날은 밤에 도적이 불시에 오는 것처럼 임함. (2)주의 날은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불시에 오는 것처럼 임함.

“은혜의 시기가 끝날 때, 그것은 갑자기, 예기치 않게, 우리가 전혀 예기하고 있지 않은 그 때 올 것이다...예수님이 인류를 위한 탄원을 그치실 때, 모든 사람의 운명은 영원히 결정된다 … 은혜의 시기는 끝난다. 그리스도의 중보는 하늘에서 끝난다. 이 때는 마침내 갑자기 모든 사람에게 이른다. 그리고 진리를 순종함으로 심령을 정결케 하기를 등한히 해 온 자들은 잠자고 있음이 발견된다.”-마지막 날의 사건들, 254.

토의2) 어떤 자들에게 주의 날이 홀연히, 도적처럼, 해산의 고통처럼 다가오게 될까요?
   답: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는 자들에게 ‘결단코’ 피할 수 없는 사건으로 다가옴.

“때가 이르리니, 여호와의 날이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 생각지 아니한 중에 이를 것이다. 일상생활이 변함없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향락에 도취되고, 사업과 장사와 돈 버는 일에 몰두하고, 종교인들은 세속적 발전과 문화를 찬양하고, 백성들은 거짓된 안전 속에 속아 있을 그 때에, 마치 도둑이 문들을 단속하지 아니한 집으로 숨어 들어오는 것처럼, 부주의하고 경건치 않는 자들에게 갑작스런 멸망이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단코 피하지 못”(살전 5:2)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38.

☞살전5:1절의 “때(크로노스)”는 역사적인 시점, “시기(헬: 카이로이)”는 결정적인 시점. 5:3절 “홀연히(헬: 아이프니디오스)”는 '예기치 않은‘ ’돌연한‘이란 뜻이며, 눅21:34절에서는 ’뜻밖에‘로 번역. “이르리니(헬: 에피스테미)”는 ’대기하다‘ ’가까이 오다‘ 란 뜻으로서 갑작스런 출연 때 쓰는 말.

적용) (1)당신은 ‘주의 날’을 떠올리면 심판으로 다가옵니까 아니면 구원의 날로 여겨집니까? (2)당신은 ‘재림의 때’에 관심이 있습니까? 아니면 ‘재림 준비’에 더 관심을 쏟으십니까? 재림의 날을 위해 어떤 준비를 어떻게 실행하고 있습니까?

요점) 아무리 심판이 임박할지라도 평화와 안정을 외치는 자들과 생활의 염려 때문에 영적으로 졸고 있는 자들에게 심판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될 것입니다.

<화요일> 신자의 유리한 점 [살전 5:4~5]

토의1) ‘때와 시기’를 아버지의 권한에 두시고 비밀에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행1:7)
   답: (1)어느 시대, 누구를 막론하고 재림준비에 소홀함 없이 항상 깨어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인간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2)하나님 사업의 지연과 광신적인 신앙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들은 의무에 충실하기보다 때와 시기에 관한 공론에 몰두하고 광분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예가 1844,10, 22일 대실망과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의 1992,10,28일 휴거설입니다.

토의2) 어떤 자들에게 주의 날은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 날이 되는 것입니까? 이유는?
   답: (1)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않음. (2)빛과 낯의 아들이기 때문.

※빛과 낯의 아들이란?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리라”(암 3:7).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주신 인류 및 구속의 역사 시, 종을 알 수 있는 예언의 빛(현대 기별)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림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그 전에 일어날 시대의 징조와 사건들은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빛의 아들”(살전 5:5)인 하나님의 백성과 어두움에 속한 세상 사람들과의 뚜렷한 차이점입니다. 그러나 알 것은, 바울은 재림 전에 있을 징조들에 대하여 경성하여 깨어있지 않고 무관심하고 태만한 것은 죄악이며 이런 자들을 밤의 아들이요 흑암의 자녀라고 지칭합니다.

적용) 빛의 자녀는 빛대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영혼의 등잔을 손질하며 등잔 그릇에 은혜의 기름을 준비하여야 한다. 그리고 주의 날이 도적과 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도록 영적인 쇠퇴를 막기 위하여 모든 예비책을 마련하여야 한다”-그리스도인 선교봉사, 85.

요점) 낯에 속한 신자들은 진리의 빛 가운데 다니기 때문에 종말이 도둑같이 임할지라도 결코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수요일> 항상 깨어 있음 [살전 5:6~8]

[예화]물고기는 잠잘 때도 눈을 감지 않고 죽었을 때도 눈을 뜹니다. 초대교회 당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피해 로마 외곽의 시체 매장지인 지하 동굴로 도피했습니다. 이유는 로마는 묘지를 신성불가침의 장소로 여겼기 때문에 접근을 하지 않은 점을 노린 것입니다. 결굴 지하 동굴로 도피한 그리스도인들은 10대에 걸쳐 300년 동안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카타콤입니다. 그들은 카타콤에서 사는 동안 벽면에 물고기 그림을 새겼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고기처럼 자나 깨나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메시지였습니다.

토의1) 빛의 자녀들은 영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어야 합니까? (6~7절)
   답: 다른(어두움) 이들과 같이 자거나 취하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함.

예수님은 마24장에서 재림의 때에 일어날 여러 징조를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깨어 준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반복하여 경고하시면서 깨어서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무료하게 기다리는 일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일하면서 시간을 보내라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은 복음 사업의 진전을 위하여 능력껏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열심히 하고자 노력하는, 열성적으로 일하는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영적 나태와 게으름)을 보지 않도록”(막 13:36) 깨어 있으라고 경고하십니다. 복음증거 사명에 무관심하거나 무감각한 자들이 곧 영적 혼수상태(취함)에 빠져 있는 자들입니다.

토의2) 깨어 주의 사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자들이 갖출 전신갑주는 무엇입니까? (8절)
   답: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

믿음과 사랑은 불로 연단한 금 같은 품성, 즉 순결한 그리스도의 의의 옷입니다. 또한 우리는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하고 의로 흉배를 삼아야 하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을 가지고 죄악의 장애물과 철조망을 헤치고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재림 전 충성스런 자들에게 큰 위기의 때가 닥쳐올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파수꾼들은 영적 갑옷으로 철저히 무장하여야 합니다(벧전6:11~17).

적용) 현재 당신의 영적 상태를 말씀으로 진단해 보십시오. 어떤 상태입니까?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16:15)

☞살전5:6절의 “깨어 있다(헬: 그레고류오)”는 ‘완전히 깨어 있다‘ ’경계하다“라는 의미. ”근신할지라(헬: 네포)“는 ‘전혀 술을 마시지 않다‘ ’술취하지 않다‘란 의미.

요점) 그리스도인들은 잠들거나 술 취한 상태가 아닌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예수께서 재림하시기까지 영적인 준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목요일> 서로 격려하라 [살전 5:9~11]

토의1) 하나님께서 우리를 빛의 자녀로 세우신(선택하다) 목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답: (1)진노 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결국은 구원하시기 위함. (2)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진노(죽음)를 받으심으로 살든지 죽든지 영원히 함께 살게 하시기 위함.

그리스도의 재림은 어두움에 속한 자들에게는 진노와 형벌의 날(생명과 분리)이지만 빛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는 사망과 진노에서 영원히 해방되는 구원의 날이요 예수님과 영원토록 함께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입은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둘째 사망의 진노를 받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진노의 잔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빛을 증거 할 자비의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우리를 빛의 자녀로 세우신 목적은 진노의 심판에서 구원해 주실 뿐만 아니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종노릇하고 있는 자들을 생명의 빛이 되시는 그리스도께로 전도하기 위함입니다.

토의2)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살 자들에게 서로 어떻게, 왜 격려하라고 합니까? (11절)
   답: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힘쓰라.

“덕을 세우다(헬: 오이코도메이테)”라는 말은 ‘집을 세우다’ 는 뜻으로 공관 복음에는 주로 문자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신자들에게 계속해서 영적 성장(성화된 삶)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구속의 은혜와 특권을 누리고 있는 신자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무사 안일과 게으름에 빠져 빛을 상실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세상 조류에 휩쓸려 영적인 잠에 취하지 않도록 근신하여 깨어 있도록 서로 권면하고 격려하므로 피차 영적진보를 이루어야 합니다.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 살고 있다. 예언은 신속하게 성취되고 있다. 은혜의 시간들은 신속하게 지나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단 한순간도 낭비 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잠자는 파수꾼으로 발견되지 않도록 하자. 아무도 마음으로나 행실로 ‘나의 주께서 더디 오신다.’고 말하지 않도록 하자.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의 기별을 열렬한 경고의 말로 선포하도록 하자. 각처에서 남녀들을 권고하여 회개하고 임박한 진노를 피하게 하자. 그들이 신속하게 준비하도록 깨우쳐 주자”-교회증언8권, 252.

요점)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분명 진노하시지만 그분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서로를 격려해야 합니다.

[결론] 신자들은 열렬하게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준비함으로써 영적으로 안주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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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하님의 댓글

박금하 작성일

어떤 안식일 학교에서는 유감스럽게도 교과책에서 교과를 그저 읽어나가기만 한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만일, 흔히 불필요하게, 심지어는 악하게 허비하는 시간을 성경 연구에 바친다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교사나 학생들이 안식일 학교 교과를 일반 학교 과목보다 완전하지 못하게 배워야 한다는 이유는 조금도 없다. 안식일 학교 교과는 분명히 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취급하고 있으므로 어느 무엇보다 더 잘 배워야 한다. 여기에 게으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안식일 학교 사업에 관한 권면,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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