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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 [살전 4: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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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금하 작성일12-08-17 23:46 조회6,86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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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 [살전 4:13~18]
MT: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문1) 당신은 죽은 자가 다시 부활할 것을 확신합니까? 어떤 근거로 믿으십니까?

“이슬람교도와 기독교인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슬람교도는 뽐을 내며 자랑합니다. 우리의 성지 메카에 가면 으리으리한 마호멧의 묘지가 있소, 당신들 예수의 무덤은 있소? 그러자 기독교인이 대답합니다. 그렇소 우리 예수님은 무덤은 예루살렘에 있긴 하지만 그것은 빈 무덤이오, 그리고 그것이 당신들과 우리의 차이점이요, 마호멧은 죽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였다오.”

“기독교는 종교가 끝나는데서 부활과 함께 시작한다. 부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부록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이다.”(죤 s. 웨일)

이번 주는 바울이 살전 4:13~18을 기록해야 했던 상황과, 또 당시의 신학적 오해를 알아보고 죽은 그리스도인들의 운명에 대해서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연구 핵심 키워드]
전반부, <일-월> 데살로니가 신자들의 부활에 대한 오해와 배경.
(일) 데살로니가 재림 신자들이 슬퍼한 이유는 무엇인가? (잠자는 자들은 소망이 없다고 생각함)
(월) 왜 저들은 자는 자들에게는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였는가? (부활이 없는 이교 사상이 침투함)

후반부, <화-목> 재림 시에 일어날 부활과 승천에 관한 교훈과 부탁.
(화) 잠자는 자들의 부활을 확신할 근거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
(수) 재림하실 때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먼저 부활하여 살아있는 자와 함께 승천함)
(목) 바울은 어떤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하는가? (재림과, 부활, 승천과 이별 없이 주와 영원히 함께함)

<일요일> 데살로니가의 상황 [살전4:13]

‘거룩하게’ ‘흠 없게’ 보호해 달라는 바울의 두 기도 사이에는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후반부는 다음과 같은 교차대구 구조로 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A) 3:11-13 기도-강림 시 거룩하고 흠 없게=(A) 5:23-24 기도 – 흠 없이 보전 되기를.
(B) 4:1-8 구하고 권면하노니, 하나님의 뜻=(B) 5:12-22 구하노니, 권면하노니, 하나님 뜻.
(C) 4:9-12 형제사랑-쓸 것이 없음은=(C) 5:1-11 때와 시기 – 쓸 것이 없음은.
(D) 4:13-18 자는 자들 - 알지 못함을 원하지 아니 하노니(핵심 강조).
이 구조에서는 중앙에 있는 (D)4;13-18절의 “자는 자들”에 관한 이슈가 가장 핵심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는 자는 자들에 대해 바로 알기를 원한다는 바울의 강조점이 있습니다.

토의1) 데살로니가에는 죽은 자에 대하여 어떤 신학적 오해가 퍼져 있었습니까?
   답: 내세관: 살아 있는 자들만 승천하고 죽은 자는 땅에 남아 있게 됨.

데살로니가 교회는 종말 신앙관에 혼란이 있었습니다. 재림과 죽은 자들의 구원 문제에 대한 오해는 유대교와 카비루스 종교, 헬라 철학 등 혼합된 바벨 신학들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특히 이원론 사상은 복음과 혼합되어 순수한 기독교 신앙을 흔들었습니다. 주류 종교인 ‘카비루스’는 예수님의 재림과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결정적으로 내세관에 오해를 일으켰는데 이는 바울이 전한 예수님의 순교나 부활이 비슷하였기에, 부활에 대한 오해가 있었고, 예수님 오시기 전에 죽은 자들은 부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또 당시의 이방종교나 철학자들은 죽음을 자는 것으로 여겼으나 완곡한 표현일 뿐, 잠에 대한 바울의 개념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러한 사상에 오염된 신자들은 재림 전에 죽음을 영원한 결별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살아 있는 충실한 자들을 변화시켜 당신께로 데려가시기 위해 오시리라는 생각을 열심히 붙잡았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하는 이들이 차례차례 그들을 떠나갔으므로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괴로움으로 그 죽은 자들의 얼굴을 마지막 바라보았으며 감히 내세에 그들을 만나리라는 희망을 갖지 못하였다”-AA, 258.

토의2) 하나님께서 종말에 일어날 사건들을 미리 예언으로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1)오류와 이설을 구별함. (2)깨어 준비된 삶을 위함. (3)끝까지 소망을 붙잡게 함.

“우리는 세상 역사의 마지막이 가까이 이름에 따라 특별히 말세에 관한 예언을 연구해야 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계 1:3)라고 말씀하셨다“-실물교훈, 133.

적용) 부활의 교리는 오늘날보다 초대 교회가 더욱 중요하게 여긴 것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날 사람이 죽을 때에 불사(不死)의 축복(강신술 교리)을 받는다는 소망이 부활에 관한 성경상 교리를 일반적으로 등한히 하게 했습니다.

(요점)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재림 전에 죽은 성도와 재림 시 살아 있는 성도들 사이의 차이점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월요일> 소망을 잃은 슬픔 [살전 4:13]

토의1) 데살로니가 신자들이 소망 없는 이방인들처럼 슬퍼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답: (1)재림 시에 일어날 사건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함(바울의 짧은 체류). (2)신자들의 주류가 이교도 출신들임(이방종교는 사후 내세관이 없음).

데살로니가 교회의 아이콘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또 고난을 잘 이겨내는 저들의 모습은 마게도냐 신자들에게 모본이 되었으며 하나님과 사도들에게 큰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들에게 부활신앙에 대한 중대한 오해와 무지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짧은 기간(세 안식일)에 최선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고난과 죽으심,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에 관하여 밤낮 가르쳤으나 진리를 온전히 이해시키고 정립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들이 박해와 핍박으로 죽어간 신자들이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영광스런 은혜를 얻지 못하지는 않을까 하여 두려워하며 슬퍼하고 있다는 디모데의 보고를 들은 바울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소망 없는 자들처럼 자는 자들에 관하여 왜 슬퍼하느냐고 반문하면서 마지막 날에 주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지 너희들이 다시 알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불신자와 믿는 자의 차이점은 부활과 영원한 소망의 유, 무이며 소망의 백성과 소망 없는 자의 차이 역시 그리스도의 소유 유, 무에 있는 것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요 11:25)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소망이십니다.

“해스켈 목사는, 죽기까지 잔인한 핍박을 당하도록 일찌기 부름을 받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경험을 회고하였다. 사도 바울은 슬픔에 잠긴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에게 보낸 첫 편지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확실성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말라고 그는 권고하고 있다“-엘렌 지 화잇 자서전p.477-해스켈 목사의 설교 中.

적용) 당신은 사랑하던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자에게 어떤 말로 위로할겁니까?
   “우리는 잠자나 영원히 자지는 않으리 영광스런 새벽 동이 터 오리라 부활의 아침에 우리가 만난 후에 다시는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 대양의 심연에서, 사막과 평지에서, 계곡과 산에서 셀 수 없는 무리가 다시 살아나리라.”

※예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위해 울지 않으심 “그분의 부드럽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언제나 고통 받는 자에게 동정을 느꼈다. 그분은 우는 자와 같이 우시고 기뻐하는 자와 같이 기뻐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나사로를 위하여 울지 않으셨다. 그 까닭은 그를 무덤에서 곧 불러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이었다.”-DA, 533.

(요점) 재림을 오해하고 소망을 상실한 데살로니가 신자들은 죽은 자에게 대하여 이방인들처럼 슬퍼하였습니다.

<화요일> 죽음과 부활 [살전 4:14]

영국의 계관시인 테니슨은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아름다운 언어로 찬양한 시인이었다. 어느 날 그는 시골길을 가다가 행복한 얼굴로 열심히 일하는 중년 부인을 보았다. "오늘 아침에 좋은 소식이 있나 보죠?" 테니슨이 묻자 부인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한 가지 소식밖에 모른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테니슨도 말했다. "부인, 그것은 오래된 소식이자 새로운 소식이며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토의1) 죽음으로 애통해 하는 데살로니가 신자들에게 오래되고 새롭고 정말 기쁘고 좋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답: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

“바울의 편지는 그들에게 새로운 소망과 활력을 주었으며 당신의 죽으심을 통하여 생명과 불멸을 밝혀 주신 그분께 대한 확고한 신앙과 깊은 사랑을 심어 주었다. 이제 그들은 믿음의 친구들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였다. 죽은 자의 무덤을 둘러싸고 있던 흑암은 사라졌다. 한 새로운 광채가 그리스도인 신앙을 영광스럽게 하였으며 그들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서 새로운 영광을 보았다"-DA, 259.

토의2) 어떤 특권을 소유한 자들만 죽은 자 중에서 부활하여 승천합니까?
   답: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선언하셨다. 그리스도에게는 최초부터 있고 빌려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파생(派生)되지 않은 생명이 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요일 5:12)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믿는 자에게 영생에 대한 보증이다“-DA, 530.

☞살전4:14절의 "예수 안에서”는 예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한 모든 의인들.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는 잘못된 오역임. 자는 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서 온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께서 성도들을 무덤에서 불러내어 주님과 함께 하늘로 데려가시리라는 것을 의미하였음.  

(요점) 우리가 죽은 신자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수요일>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함 [살전 4:15~16]

살전 4:13~5:11은 예수님의 지상 설교를 인용했습니다. 이 종말론적인 본문은 적어도 12곳에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살전 4:15에서 “주의 말씀”에 대해 말할 때 그는 4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바울이 우리를 위해 간수했던 예수님의 말씀을 언급하였습니다(예 행20:35.)-교과 설명.

토의1)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된다고 말합니까?(계1:7,마 24:31,요 5:28~29, 행 1:9~11 참고)
   답: 가시적(可視的), 가청적(可聽的) 재림-부활-성도들 불멸과 승천-공중에서 주님 대면-영원히 주님과 함께.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살아있는 자들이 예수 안에서 잠자는 자들보다 먼저 주를 만나러 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이 자는 자들에게 울리겠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에게 불멸의 생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부활할 것이다. 이 보증이 데살로니가의 어린 교회에게 가져다 준 소망과 기쁨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저희 복음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보낸 편지를 믿고 소중히 여겼고 그들의 마음이 그에 대한 사랑으로 기울어졌다.”-AA, 257.

적용) 오늘날 또 다른 형태의 비성경적인 부활 신학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곧 바로 영혼이 천당 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반론하면 좋을까요?
힌트: 만약 신자가 죽어서 곧장 천당으로 직행한다면 데살로니가 신자들이 슬퍼할 이유가 없었음. (성경 기자들이 왜 육체의 부활을 그렇게 강조하였는가? 그 이유는 전인간(全人間)이 무덤 속에서 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전4:15의 “앞서지 못한다(헬:프싸노)”는 우선권이 없다는 뜻. “호령(헬: 켈류스마)”는 명령의 큰 외침.

(요점)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죽은 의인들이 부활하여 산 의인들과 함께 공중에서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목요일> 서로 위로하라 [살전 4:13, 17~18]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는 제가 7살 때(현재 55세, 차남) 급환으로 주 안에서 잠드셨습니다. 3살 딸, 5살 남, 7살 남, 9살 남, 12살 딸, 5남매를 세상에 두고 말입니다. 어렴풋 안방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염하던 날 저와 동생들은 철이 없어 죽음이 무엇인지 영문을 몰라 눈물도 없이 구경만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동네 공동묘지를 향해 상여가 떠나던 날 사람들의 몇 일후~ 몇 일후~ 요단 강 건너가 만나리~ 찬송을 들으면서 아버지는 상여 뒤 맨 앞에서 울면서 가시고 저희들은 그냥 아버지의 손을 잡고 따라가기만 했었습니다. 묘지를 완성하고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가족들만 남았을 때 아버지는 흙으로 덮인 무덤 위를 나둥글면서 어린 자식들을 두고 먼저 떠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울부짖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후, 추모 예배 때마다 엄마 생각으로 슬퍼하곤 했지만 장성하고부터는 재림의 날이 그 때보다 더 가까움을 바라보며 부활의 아침, 죽음으로 헤어졌던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으로 위로를 받으며 열심히 재림신앙에 정진하고 있습니다(박금하).

토의1) 재림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면서 바울은 신자들에게 어떤 부탁을 하였습니까?
   답: 지금까지 권고한 말씀(재림, 부활, 승천, 영생의 소망)으로 서로 위로하라.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장)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으므로 그들은 더 이상 사단의 포로가 아니다. 내가 그들을 나의 능력의 첫 열매로 무덤에서 일으켰으므로 그들은 나와 함께 있어 다시는 결코 죽음을 당하거나 슬픔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DA, 786.

☞살전4:17절의 “끌어 올려(헬: 하르파조)”는 ‘나꿔채다’란 뜻이며 “하르파조”로부터 라틴어 동사 “라피오”를 거쳐 영어 단어 (rapture+휴거)가 파생되었으나 재림은 비밀히 진행되지 않음(비밀 휴거설은 AD400년경 천주교 작품).

적용) 우리는 왜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까?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의 의인들의 복스런 불멸의 교리는 주의 재림에 대한 교리와 함께 실제로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우리가 죽음이라는 잠에서 깨어날 그 때가 주님께서 영광중에 불사불멸의 영생의 축복을 가지고 오시는 순간이기 때문이며 죽는 순간이 곧 재림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요점) 몸의 부활과 재림의 가르침은 사별을 겪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될 뿐 아니라 예수께서 계신 곳에 함께 거하리라는 영광된 소망을 제시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죽음이란 인생의 결말이 아닌 부활의 아침에 영광스런 재회로 가기 위한 일시적인 이별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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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성경 연구를 등한히 하면서 남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죄악이다."(복음 교역자,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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