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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영원한 친구들 [살전 2: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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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금하 작성일12-08-03 17:11 조회5,1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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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영원한 친구들 [살전 2:13~3:13]
MT: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 3:13).

문1) 당신의 진정한 친구는 누구입니까? 왜 친구라고 생각합니까? 우정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대중 가수 태진아가 부르는 노래 ‘동반자’ 서두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동반자, 영원한 나의 동반자, 내생에 최고의 선물, 당신과 만남 이었어“

위의 노래 가사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신자들과의 사랑의 관계를 묘사하기에 아주 적절한 내용입니다. 복음으로 낳은 저들은 바울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물이며 십자가의 구속의 피로 맺어진 끊어질 수 없는 사랑의 혈맹이자 영원히 함께 할 동반자들이었습니다. ‘영원한 동반자’ 즉, ‘영원한 친구’란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자들에게만 붙여질 수 있는 거룩한 수식어이고 생사고락과 희노애락을 함께 공유하며 같은 길 같은 목적지를 향하여 끝까지 동행하는 사이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란 두 개의 육체에 깃들인 하나의 영혼이다’ 라 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챔버스’는 “그리스도와 비교한다면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주는 신자들에 대한 바울의 우정 어린 순애보를 살펴봅니다.

[연구 핵심 키워드]
(일)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면에서 유대 교회를 닮았습니까?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고난과 핍박을 받음)
(월)사도들의 삶의 유일한 관심과 가치, 우선순위는 무엇이었습니까? (영혼을 구원하여 재림의 날에 서게 하는 일)
(화)바울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파송한 이유는? (고난 받는 신자들을 위로하고 믿음 굳게 세우기 위함)
(수)신자들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보고에 대한 바울의 소감은? (위로와 안심을 얻고 주야로 더욱 기도에 힘씀)
(목)신자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방문을 위한 것과 신자들 간의 사랑과 흠 없는 재림 준비)

<일요일> 유대 교회들의 모본 [살전 2:13~16]

2:1-3:13절까지 바울의 ‘변증’과 고난을 이기는 ‘믿음’은 변증과 믿음이 ABAB 교대로 기록되고 마지막에 기도로 마무리 됩니다. A, 2:1-12(변증1) B, 2:13-16(믿음1) A, 2:17-18(변증2) B, 2:19-20(믿음2) A, 3:1-5(변증3) B, 3:6-10(믿음3)  C, 3:11-13(기도, 감사)

토의1) 바울이 데살로니가 신자들에게 쉬지 않고 감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살전2:13)
   답: 사도들의 기별을 사람의 말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으로 믿는 자 속에 역사했기 때문.

여기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신자들을 칭찬한 이유는 말씀에 대한 자세 때문입니다. 의구심 없이 기별을 귀담아 듣고 믿음으로 마음에 수용하여 말씀의 거룩한 권위를 인정함으로 저들 심령 속에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10:17).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히4:12).

☞살전 2:13절에 두 번 언급한 ‘받음’은 다른 두 헬라어 동사의 번역입니다. 1,(헬; 파랄람): 외적으로 기별을 듣는 것. 2,(헬; 데코마이): 내적으로 기별을 수용하는 것.
  
토의2) 데살로니가 신자들이 유대 기독교 신자들의 어떤 점을 모방하였습니까? (살전2;14)
   답: 팔레스타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은 것처럼(행8:1; 9:1,2), 마게도냐 신자들도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동족 이방인들에게 똑같은 고난을 받음(행17:5~8)으로서 그리스도인 두 공동체는 시련 중에 서로 동정과 위로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바울은 유대의 그리스도인들을 다른 지역 신자들의 ‘롤 모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장애나 핍박이나 어려운 일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저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생애에 가장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모든 시험을 대적하고 모든 시련을 견딤으로 우리는 새 경험을 얻고 성품을 완성하는 일에 더욱 진보 하게 된다.”-문서전도봉사, 67.

☞살전 2:15~16; 마23:29~36의 성경절들은 자칫하면 유대인 집단에 대한 또 다른 편견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죄악상과 최종적 결말을 지적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며, 우리의 원수는 혈과 육이 아니라 사단과 그의 대리자들입니다(엡6:12).

요점) 데살로니가 교회는 동족에게 핍박을 당함으로써 유대에 있는 교회들이 당한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월요일> 바울의 소망과 기쁨 [살전 2:17~20]

살전 2:17~18절의 변증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신자들에 대한 돈독하고 뜨거운 우정과 사랑을 필체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환란과 시련이 우리 사이를 수개월 떼어놓았으나, 그러나 너희를 향한 사랑은 한 치도 갈라놓지 못했다. 육신적으로만 함께하지 못할 뿐 영으로는 아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처럼 보고 싶은 그리움에 맘이 타들어간다. 그래서 여러 번 가고자 백방으로 시도했으나 사단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살전2:17절의 ‘잠시’는 행17;10절의 사건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기간이며, ‘떠난 것(헬: 아포르파니조)’은 “부모를 잃어버리다”란 뜻이고, ‘힘썼다(헬: 스푸다조)’는 “서두르다, 노력하다‘라는 뜻, ’막았도다(헬: 엥콥토)‘는 ”끼어들다, 진로를 방해하다“라는 뜻.  

토의1) 바울은 일생일대의 소망과 기쁨, 자랑의 면류관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살전19~20)
    답: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예수 앞에 있는 데살로니가 신자들.

바울은 삶에 있어서 사람에게 큰 가치를 두고, 자신이 돌본 데살로니가 교인을 ‘소망’이요 ‘기쁨’이요 ‘면류관’이요 ‘영광’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강림하실 때 바울이 대표 단장이 되어 예수님을 마중하고 면류관을 쓰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소개하며 악수하고 포용시키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주님! 이들이 저의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입니다” 바울은 그가 행한 수고의 보수로 장래의 기쁨을 기대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참으시고 굴욕을 문제 삼지 않으신 것과 같은 기쁨, 곧 자기의 수고의 결실을 내다보는 기쁨이었습니다.

“바울의 필생의 사업이 세상에 끼친 결과를 어느 누가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괴로움을 덜어주고 슬픔을 위로하며, 악을 물리치고, 이기주의와 육욕을 버리고 고상한 생활을 하게 하며...이렇게 복된 감화를 사람들에게 끼치기 위하여 하나님의 그릇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생애인가? 그리고, 이런 평생 사업의 결과를 영원한 나라에서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또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교육,70.

※“그리스도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그분의 보석이며, 그분의 귀중하고 특별한 보물들이다. 그들은 “면류관의 보석”(슥 9:16) 곧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엡 1:18)함이다. 그리스도는 그들 가운데서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사 53:11)것이다.“-복음 교역자, 570.

적용) 당신은 삶에서 무엇을 최고의 가치와 우선순위로 삼으십니까? 또 무엇을 소망하며 무엇으로 인해 기뻐하며 무엇을 자랑의 면류관으로 여기십니까? (재산?, 자식?, 출세?, 명예?,학벌? 전도와 구원한 영혼?)

요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그의 소망과 기쁨으로 여겼으며 재림의 날에 예수님 앞에서 자랑의 면류관으로 삼기를 원했습니다.

<화요일> 디모데의 대리 방문 [살전 3:1~5]

토의1) 바울이 디모데를 대신 데살로니가에 파송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1)본인은 가고 싶으나 길이 막혀서, (2)격한 그리움에 견딜 수 없어서, (3)위로와 굳건한 믿음을 위한 권고를 위해서, (4)희생으로 일궈낸 수고가 물거품이 될까봐서.

방문이 좌절된 바울은 대신 동역자 디모데를 신임하도록 ‘우리의 형제’ ‘하나님의 일꾼“이란 호칭을 써서 아덴에서 보냅니다. 그 후 고린도에서 저들이 환란과 박해를 기쁨으로 이겨내고 있다는 디모데의 보고를 받고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3:8)고 말한 것처럼 염려로 인한 그동안의 괴로움을 털어내며 본 서신을 통해 믿음의 친구들을 격려하며 위로합니다. 바울은 어린 영적 친구들을 노심초사 염려하며 사랑했고 우정을 다하여 저들의 복리에 힘썼습니다.

토의2) 바울의 편지에서 주목해야 할 어떤 종말론적인 표현들이 등장합니까? (3:3~4)
   답: “여러 환란” “장차 받을 환란”

예수님은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요 15:20)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눅21:17)라고 말씀하셨으며,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14:22)고 말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신자들도 바울을 통해 미리 환란에 대한 충분한 인식과 함께 대비의 필요성도 알고 대처하였습니다. 환란과 고난들은 선한 목적과 축복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이며 사자들입니다.

적용) 오늘날 교회가 박해의 불이 거의 꺼진 듯이 보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 유일한 이유는 교회가 세속적 표준과 타협하여 별로 반대를 받을 일이 없는 까닭이다. 오늘날의 종교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이 생활하던 당시의 그리스도인의 신앙처럼 순결하고 거룩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가 세상에서 인기가 있는 유일한 이유는 죄와 타협하는 정신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진리들이 너무도 무시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교회 내에 활력이 넘치는 경건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의 신앙과 능력이 되살아날 때에 박해의 정신은 다시 나타날 것이며, 핍박의 불길은 다시 타오를 것이다.“-GC,48

요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염려한 나머지 함께 동행하던 디모데를 보내서 그들이 환난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굳게 서도록 격려하였습니다.

<수요일> 디모데의 방문 결과 [살전 3:6~10]

[옵션]“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전쟁이라는 비극과 환란으로 북으로 끌려가는 가족들에 대한 애환이 담긴 사연을 노래한 것입니다. 가사 중 ‘단장’은 창자를 끊어내는 고통을 말합니다. 바울이 박해자들에게 쫓겨서 사랑하는 신자들을 뒤로하고 데살로니가 언덕을 넘어올 때의 그 심정과 또, 믿음의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던 저들의 아픔과 고통은 바울 당시의 버전으로 한 맺힌 ‘단장의 데살로니가고개‘의 처절함이었습니다. 625 때 해어졌던 가족들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만나고 싶은 이산가족 이상으로 바울과 데살로니가 신자들은 서로를 보고파하는 애절함이 뜨거웠습니다.

토의1) 발신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디모데 기자의 리포팅 내용과 바울의 반응은?
   답: 데살로니가에서 날아온 뉴스는 (1)신자들이 환란 중에도 믿음과 사랑으로 주 안에 굳게 서 있다는 것과, (2)신자들이 바울과 사도들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한다는 희소식이었습니다. 이런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낭보는 사도들의 궁핍과 환란을 잊게 해주었으며 졸이고 지친 영혼에 새로운 활력과 위로를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이런 신자들의 건재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돌보심의 결과였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도록 하고, 저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벧후1:5~8) 하기위해 주야로 기도하며 속히 만나기를 고대하였습니다.

☞살전3:6절의 ‘궁핍(헬:쓸림시스)과 환란(헬:아낭케)’는 내외적인 가혹한 시련을 말하고, 살전3:10절의 ‘온전케 하려 함이라(헬: 카타르티조)’는 바울이 저들의 믿음 소망 사랑을 칭찬했으나 영적인 소양에 있어서 부족한 필수적인 덕목들을 채워주고 향상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요점) 디모데가 전한 데살로니가 교회의 보고는 바울을 위로하기에 충분한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을 위해 더욱 기도하였습니다.

<목요일> 바울의 새로운 기도 [살전 3:11~13]

토의1) 바울이 하나님께 불철주야 기도한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요?
   답: (1)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의 이름 즉 두 신격의 일체성을 특별히 강조하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2)사단의 방해나 장애물 없이 성공적인 방문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합니다. (3)성도 간에 사랑이 넘치게 되어 견고한 믿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4)신자들이 재림 때 하나님 앞에서 결점 없이 설 수 있게 준비시켜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이와 같이 바울의 기도 중심에는 항상 영원한 과제들이 주제였고 특히 목양의 중점은 재림의 날이 최대의 포커스였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간구할 때 자신과 함께 이웃도 포함시켜야 한다. 자신만을 위하여 축복을 구하는 사람은 올바로 기도한다고 할 수 없다”-산상보훈, 105.

☞살전3:12절의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헬:플레오나조)’는 신자들의 사랑이 세상 밖으로 전달되기를 강조하는 뜻이며, 3:13절의 ’성도(헬:하기오이)‘는 구속 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의미하기도 하나, 바울은 재림 때 동반 할 ’천사들‘을 적용하고 있습니다(마25:31).  

적용) 당신은 기도하십니까? 얼마나 많이, 어떤 제목으로, 어떤 이유로 기도하십니까?
요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할 수 있도록 기도하였으며, 그들이 풍성하게 사랑하며 재림의 날에 흠이 없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결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주신 잠재력에 부응하려면 동료 신자들과 더불어 진실하고 사랑 넘치는 영원한 우정의 공동체를 경험해야 합니다.


[별첨]“무명 화가 시절 밀레가 ‘접목을 하고 있는 농부’를 그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림 한 점 팔지 못한 밀레는 온기 없는 냉방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아내와 아이들은 굶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팔아 식량과 땔감을 구해 오려고 나서던 찰라 친구인 루소가 찾아왔습니다. “여보게 밀레, 기뻐하게 드디어 자네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네.” 루소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면서, “그런데 그 사람이 나에게 돈을 주며 대신 그림을 골라 오라고 부탁했네. 자, 여기 돈 받게나.” 루소는 두툼한 지폐 뭉치를 밀레의 손에 쥐어 주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끝낸 ‘접목을 하고 있는 농부’그림을 들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밀레가 루소의 집을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한쪽 벽에 낯익은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는데 그것은 몇 년 전에 밀레가 그린 ‘접목을 하고 있는 농부’였던 것입니다. 루소의 따뜻한 마음을 안 순간 밀레는 가슴이 뭉클해져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벗의 생활고가 딱했지만 그보다도 벗의 자존심을 지켜줄 줄 알았던 루소의 배려 속에서 참된 우정이란 무엇인지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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