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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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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5-08 23:46 조회3,9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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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5월 16일 안식일 (일몰(日沒) : 오후 7시 35분)

제7과 은혜(恩惠) Grace

◉ <기억절(記憶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 깨닫기 : 죄는 우리의 본성(本性)속에 내재(內在)하고 있는 고통(苦痛)스런 실체(實體)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 오직 예수님을 통(通)해서만 맛볼 수 있는 죄(罪)로부터의 자유(自由)를 만끽한다.
행하기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공(提供)하신 거룩한 은혜(恩惠)를 받아들인다.

◉ <확대경(擴大鏡)>
▶ 은혜(恩惠)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 대하여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값없는 사랑을 말하며
이 은혜는 언약(言約)을 통해 나타났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成就)되었다.
▶ 하나님 편에서는 은혜(恩惠)를 베푸시고,
인간(人間) 편에서는 믿음을 행사(行事)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膳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救援)받는 것은 우리 자신을 그분에게 위탁(委託)하는 행위(行爲)를 통(通)해서이며,
믿음은 구원(救援)의 수단(手段)이 아니라 통로(通路)일뿐이다.

▶ <요점(要點)>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영생(永生)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잃어버린바 되었을 것이다.

일요일(5월 10일)
<하나님께서 구원(救援)을 제공(提栱) 하심(창 22:8)>

◉ 아브라함은 아내(사라)를 두 번씩이나 위급한 상황이라고 생각되면 아내라 하지 않고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약속보다도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을 그의 아내로 취함으로써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무한(無限)한 능력을 믿는 믿음의 시련을 견디지 못하였고 그 결과로 사라와 그 자신에게 많은 불행이 닥쳤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가장 큰 시험을 통하여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獨子)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믿음의 시험을 통하여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제물(祭物)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구원(救援)을 위하여 창세기 22장12-14절에서 "여호와 이레"로 확실하게 증명하는 바와 같이 대속(代贖)의 제물(祭物)을 통하여 구원(救援)을 제공해주십니다.
이를 믿고 믿음을 행사하는 자들은 구원(救援)을 얻으리라.

◉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이삭이 동행하여 모리아 산의 번제단(燔祭壇)을 향해 동행(同行)하는 중에 아들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내 아버지여 번제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라는 질문에 아브라함은 아들이삭에게 "하나님이.준비하시리라"는 말로 대답하였다. 아브라함의 대답은 그의 영혼(靈魂)이 도달한 영웅적(英雄的)믿음의 경지에서 비롯된 예언적(豫言的)발언(發言)이다.
영감(靈感)에 의해 이 말은 창세기22장13절의 수양은 물론 하나님의 어린양을 가리켰지만 그 순간(瞬間)에는 이 둘 모두 그의 시야(視野)를 벗어나있었다.
아브라함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이행(履行)하고 있다는 것과 그의 "독자(獨子)"가 회복(回復)되리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이삭과 헤어지리라는 생각으로 인한 아브라함의 고뇌(苦惱)는 인내(忍耐)의 한계(限界)를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소년(이삭)의 질문은 아버지의 마음을 찔렀을 것이다. (본교 성경주석1권355p참조)

▶ 이러므로 성경 히브리서11장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생애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救援)을 제공하신다."는 사실을 창세기22장8절의 아브라함의 믿음의 교훈에서 우리도 확신하는 신앙의 삶을 살자.

◉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중심이시다. 지상성소의 목적은 메시야의 초림을 가리키는 것이었다(참조 히 8, 9장). 그분의 초림 전에 있었던 구속사의 모든 사건들은 십자가를 예표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때를 기다리셨다. 그러다가 “때가 차매”(갈 4:4)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오셨다.
“각 시대를 통하여, 매 시간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타락한 인류에게 베풀어져 왔다. 사람들의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은혜의 표징들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때가 찼을 때에 구원의 경륜이 성취될 때까지 결코 방해되거나 철회되지 않을 치료하는 은혜의 홍수를 세상에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다.”(시대의 소망, 37)

◉ <여호와이레의 하나님>
“아브라함은, …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대신하여 희생 제물을 준비하신 사실에서, 자기를 위하여 스스로 속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선언되었다. 이교의 희생 제도는 하나님께 전혀 가납될 수 없었다. 어떤 아버지도 속죄 제물로 자녀를 드려서는 안 될 것이었다.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께서만 세상의 죄악을 담당하실 수 있으셨다.”(시대의 소망, 469)

▶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고 한 아브라함의 말은 이삭이 희생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대속물(代贖物)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 원복음(原福音)으로 알려진 창세기 3:15를 비롯하여, 구약에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이르러 온다는 수많은 기별들이 주어졌다. 가장 생생한 기록 중 하나는 이사야서 53장이다.

◉ 하나님께서는 정확한 때에 독생자(獨生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구원(救援)의 계획을 예언(豫言)대로 정확히 성취(成就)시키셨습니다.
구원(救援)은 돈이나 값없이 거저 받는 선물이다. (참조 사 55:1; 요 4:14; 고후 9:15; 요일 5:11)

월요일(5월 11일)
<은혜(恩惠)의 기적(奇迹)에 대한 상징(象徵) (사 53:7)>

◉ 은혜(恩惠)와 진리(眞理)
말씀이 육신(肉身)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居)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榮光)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獨生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充滿)하더라 (요 1:14).
은혜와 진리(眞理)가 되시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독생자(獨生子)를 은혜와 진리로 이 세상에 보내시고
그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심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贊頌)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膳物)입니다.
하나님의 선물(膳物)인 은혜와 진리에 대하여 우리는 말씀을 상고(詳考)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진리이시며 (약 1:17)
은혜(恩惠)주시는 하나님은 (약 1:17, 4:6, 롬 9:23-24, 엡 2:8)
진리(眞理)이시며 성령(聖靈)이시고 (요 17:17, (고후 3:17, 요 4:24), 요일 5:7)
빛과 사랑이시며 (요일 1:5, 4:7-8, 16)

은혜와 진리로 오신 예수님은 (요 1:17)
은혜와 진리로 오신 예수님을 (요 1:14, 16, 17)
영접(迎接)하고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子女)가 되게 하시고 (요 1:12, 갈 3:26, 엡 2:8)
또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며 (요 3:3, 5, 행 2:33, 고후 1:21-22, 딛 3:4-7, 엡 4:30)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實踐)(확증(確證))하셨습니다. (롬 5:8)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증(實證)하셨으며 (요일 4:9-10, 롬 3:25-26, 5:8-10)
사랑의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요 13:34, 15:10-11, 16-17, 요일3 :16, 롬 13:10)
땅 끝까지 하나님 사랑을 전파(傳播)하신분이십니다. (벧전 4:8, 행 1:8, 고전 16:22)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하여 은혜와 진리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救援)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랑의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膳物)임을 명심(銘心)하고 항상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의 계명(誡命)을 지키며 생활하는 성도(聖徒)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참조 : 벧전1:22-23)

◉ <영원한 연구의 주제인 갈바리 십자가(十字架) >
“광대한 우주의 무수한 세계들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그분, 그룹과 영광의 스랍들이 즐겨 경배하는 사랑받는 하나님의 아들, 하늘의 왕께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자신을 낮추시고 죄의 치욕과 슬픔을 지시고 아버지의 얼굴에서 숨겨진 채 마침내 잃어버린 세상의 죄 때문에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심장이 터지고 생명이 떠나간 사실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온 우주의 창조자시며 모든 운명의 결정자께서 인류를 위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영광을 버리시고 스스로를 낮추셨다는 것은 영원히 우주의 경이와 존경을 자아낼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51)

▶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에 비유(譬喩)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심오(深奧)한 은혜의 신비(神秘)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 예수께서 흘리신 피를 통해 속전(贖錢)을 지불하고 우리를 구속(救贖)하셨다는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속죄(贖罪)의 진리를 깨닫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상징(象徵)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려고 여러 가지 상징(象徵)들을 사용하셨는데,
이 중에서도 우리는 속전(贖錢)의 개념(槪念)을 잘 이해(理解)해야 합니다.

화요일(5월 12일)
<갈바리에서 일어난 일(사 53:4-5)>

◉ 철모르는 아이들이 이웃이나 다른 사람들의 재산이나 소유에 피해를 안겨주면 어린아이들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부모들이 모든 피해나 책임을 대신하여 해결해 주는 것과 같은 보호자들의 사랑의 일예(一例)이다.

◉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사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十字架)에서 죽게 하시고, 부활(復活)하게하심으로써 은혜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는 이제 주님으로 통치함으로써 은혜의 새 시대가 시작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표현된 그분의 사랑과 떼어 놓을 수 없다. (롬 1:7; 고전 1:3) 그리스도는 구원의 중보자이시다. 그분은 부요하신자로서 가난한자가 되셨으며(고후8:9) 영광의 위치에서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 (빌 2:7) 바로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롬 5:8)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자신과 화목하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다. (갈 2:20; 엡 1:20) 참조 롬 5:9) 하나님은 믿음과 은혜로 모든 믿는 사람들을 값없이 의롭다고 하신다. (롬 3:24-25; 참조 롬 5:1)
은혜(恩惠)는 율법(갈 5:4)과 사람의 지혜(고후 1:12)와, 죄 (롬 6:1)와 반대가 된다.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진노의 대상인 우리들을 살리신다. (엡 2:4-5)
이 은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으며 (엡 2:8), 또는 믿음 안에서 사람들은 이 은혜의풍성함을 경험하게 된다. (롬 5:17; 엡 1:7; 2:7)
하지만 율법주의(갈2:21; 5:4)나, 태만함(고전 15:2; 고후 6:1)으로 인한 불신앙은 이 은혜를 헛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풍성한 이 은혜는 모든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적절한 것이다. (참조: 딤전 1:15-16)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 분의백성들을 통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간다. (고후 4:15)
하나님께서는 어려울 때에 그분을 찾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히 4:16)
이 은혜는 믿음을 요구 하고 있다. (참조 : 히11:6).
은혜로 마음을 강건하게 해야 한다. (히 13:9)
고난(苦難)자체도 은혜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벧전 5:10)

◉ 이사야 53장의 고난과 죽음과 사건들은 우리 인간의 질고(疾苦)(사 53:4-5)를 대속적(代贖的)의 성격으로 그가 고난(苦難)당하시고 죽은 것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위함이라는 사실이 이사야 53:4-6, 8, 11절에 아홉 번이나 반복되어있다.
실로 예수님은 우리 대신에 고난을 당하셨다.
우리가 당해야할 고통과 모욕(侮辱)과 학대를 그가 몸소 당하셨다. (참조 시대의 소망 25)
예수님께서 당하신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데 필요한 징계이다. (참조 : 롬 5:1) <참조 : 성경주석 7권380p>

◉ 사람은 스스로 선(善)한 일을 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선한 일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靈的)으로 재창조(再創造)를 받아야 한다. 의지(意志)와 애정(愛情)과 목적(目的)이 변화(變化)되야 선(善)한 일을 통해 증거(證據)하는 특권(特權)과 의무(義務)를 이행(履行)할 수 있다. (본교 성경주석 12권 605p)

◉ <갈바리 십자가(十字架)에서 베풀어진 은혜(恩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늘의 행복과 영광을 버리시고 궁핍과 수치, 잔혹한 고통과 무서운 죽음을 당하신 것을 기억할 때 아무리 완악한 마음이라도 녹아지지 않겠는가? 만일 그분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에게 소망의 문을 열어 주시지 않았을 것 같으면, 우리는 흑암의 공포와 절망의 비극 외에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은혜와 축복을 받은 우리의 현 상태로서는 우리가 어느 정도 깊은 수렁에서 구원을 받았는지 깨달을 수 없다.”(증언보감, 2권, 109)

▶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疾苦)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生角)하기를 그는 징벌(懲罰)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苦難)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傷)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懲戒)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4-5)

◉ 갈바리의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구속(救贖)이 분명한 역사적(歷史的) 사건(事件)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십자가(十字架)의 사랑에 대한 우리 자신의 반응(反應)이다

수요일(5월 13일)
<마음의 변화(變化) (고후 3:16-18)>

◉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등등 인생살이의 구분은 량(量)과 질(質)에 있지 않고 가슴과 마음에 있다고 생각 하게 된다.
일례(一例)로 물질의 소유가 많다고, 세상적인 출세가(신분이)높다고 해서 반듯이 행복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관리(청지기 직분)를 잘못 함으로 그들의 인생말로가 비참하게 끝나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반면에 지체의 장애(障碍)가 있거나 아주 가난하게 살거나 저 산간 촌락에 살아도 웃음이 끈이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이들을 반증하는 것이다.
사람은 마음이 중요하고 매우 주요하고 그에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다.
그 좋은 비결은 예수님 안에 있을 때이며, 그분 즉 평강의 주인이 되시는 구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내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 나약(懦弱)하고 비굴(卑屈)한 베드로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보고 느끼고 마음의 변화를 받았으며 마음의 변화 후에는 이젠 목숨까지도 내어 놓는 순교자가 되었다.
간음(姦淫)하다 잡혀온 여인도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몸을 파는 비천한 여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부터는 마음에 변화를 입어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 사건의 현장까지는 물론이거니와 주님의 무덤까지 부활하신 주님의 빈 무덤까지 겁과 두려움 없이 발길을 옮긴 이유는 딱 한가지인 예수님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마음의 변화를 받아 성경의 기록에 높이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도 이론(理論)으로만 신앙(信仰)을 하지 말고, 가슴과 마음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마음의 변화를 받아 생활로 신앙을 합시다.

◉ 사람들은 이해(理解)한 것만큼 믿음이 있다.
영적(靈的)시력의 장애물은 하나님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 국가 전체가 집단적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을 가르치지지도 않고,
사실 또한 구원은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소속이나 집단자체가 아님을 명심하자. (롬 9:6-8)

그리스도의 희생제도(犧牲制度)와 모세의 전 율법(律法)의 핵심(核心)은 그 분의 인격(人格)과 사업 속에 이루셨음을 깨달아야 되며. 구약(舊約)이든 신약(新約)이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발견 할 때에 만 사람들은 그 기별을 제대로 읽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온전한 순종으로 헌신 할 때에 만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고 올바로 해석할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自由)란.
모든 일에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 다면 자기 좋은 대로 해도 된다는 허가증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에는 규제가 있어야만 한다. 내부 규제가 적을수록 외부에서 가하는 통제는 더욱 증가해야만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듭난 사람에게는 완전한 자유를 안심하고 위탁할 수 있는데 이는 그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그 자유를 남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교 성경주석 12권 393p)

◉ 갈바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비할 데 없는 긍휼과 은혜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바로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분의 사랑을 바라봄으로 변화되었다.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 중 하나는 예수님이 특별한 분이시고, 그 수치스런 죽음 후에도 미래를 가지신 분임을 알았다(눅 23:39-43). 로마 백부장도 그분께 아무 죄가 없음을 깨달았다.(47절)

◉ “회개(悔改)하는 죄인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에 그 눈을 고정시키도록 하라.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변화를 받게 된다. 우리의 공포는 기쁨으로, 의심은 소망으로 변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오른다. 돌 같은 마음이 깨어진다. 사랑의 조수가 심령에 밀려온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임재하심으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신다. …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십자가에서 고통의 죽음을 당하신 광경을 깨닫게 될 때 자아는 더 이상 인정받기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자신의 냉담함과 무기력과 이기심을 수치스럽게 생각할 것이다.”(시대의 소망, 439-440)

◉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역사는 토론의 주제이기보다 깊이 있는 묵상을 통하여 변화를 경험해야 할 체험의 문제이다.

◉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변화(變化)됨 >
“구주의 다함이 없는 사랑을 바라보는 자는 사상이 향상되고, 마음이 순결하게 되고, 품성이 변화될 것이다. 그는 나아가 세상의 빛이 될 것이며 이 오묘한 사랑을 어느 정도 반사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더 우리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고 말한 사도의 말을 더욱 완전히 받아들일 것이다.”(시대의 소망, 661)

▶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右便)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拒逆)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2-3)

목요일(5월 14일)
<우리의 구원(救援)이신 그리스도(엡 2:4-10)>

◉ 하나님은 자비로우실 뿐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자비(慈悲)가 풍성하신데 (참조 롬 10:12) 이는 그들이 긍휼이 여길 만해서가 아니라 자비를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기쁨이기 때문이다. (딛 3:5; 벧전 1:3)
하나님의 사랑은 동정심에 그치지 않고 자비로운 행동으로 옮겨지며 결코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우리를 사랑 하셨으며 (참: 롬 5:8) 우리에 대한 사랑을 결코 그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에게 구원의 사역을 하도록 동기를 유발시킨 것은 바로 이 사랑이었다. (요 3:16)
사랑은 그분의 품성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이며(요일 4:8),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그 사랑의 최고 표현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가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사랑하신다.
인류를 위한 그분의 위대한 사역은 단순히 자비로운 행동이나 관대한 선심이 아니라 애정과 사라의 행위였다.
구원은 교훈이나 권고가 아니라 신자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오는 활기찬 생명에 다가감으로 이루어진다.

◉ 구원(救援)은 교훈(敎訓)이나 권고(眷顧)가 아니라. 신자(信者)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오는 활기(活氣)찬 생명에 다가감으로 이뤄진다.

◉ <두 가지 그릇된 교리(敎理)>
“죽은 악인들이 영원히 불타고 있는 지옥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것과 사람이 짧은 일생에 범한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 내내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교리는 사랑과 자비의 감정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심지어 공의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견해에 비추어 볼 때에도 얼마나 모순되는가. … 한편 영원 지옥설을 반대하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은 그것과 반대되는 오류에 빠져 있다.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을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분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을 알므로 그분께서 당신의 피조물들을 영원한 지옥 불에 던지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각 시대의 대쟁투, 535-537)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肉體)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 우리가 믿는 교리(敎理)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 알 수 있도록 진리를 체계화(體系化)해 놓은 것이다.
우리 신앙(信仰)의 중심이 되시는 그분을 더 잘 알기 위해 힘쓰자.

<요약(要約)>
신학자들은 속죄에 관한 여러 이론들을 발전시켰다. 그 이론들은 대부분 불완전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것들이다. 그것들은 히말라야 산맥의 어느 한쪽 면을 찍은 사진과 같다. 그것들은 모두 산맥의 한 부분을 보여주지만 산맥의 완전한 모습을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은혜의 기적은 우리가 지적으로 동의하는 어떤 표현방식에 한정되지 말아야 한다. 은혜는 우리 믿음의 기초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므로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잃어버린바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구원이신 그분과 더불어 우리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


<초점(焦點)>
◉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그 은혜를 받아드림으로, 죄인은 변화되는 삶을 살 것이다.
변화된 삶이란 죄에서 떠난 삶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들의 삶이 몸과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고 그것이 바로 선교사요 전도자요 성도인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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