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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선지자들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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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 작성일09-02-12 12:35 조회5,2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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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선지자들의 권위

2월 21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17분)



기억절: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 5:20-21)



연구범위: 출 4:10-16, 삼상 12:1-14, 왕하 22:10-13, 렘 36:22-31, 막 1:21-27, 행 16:25-34.



학습 포인트: 모세는 왜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기를 주저했는가? 비록 성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어떤 권위를 가졌는가? 정경(正經)을 기록한 선지자들과 그 외의 선지자들 사이에는 어떤 권위의 차이가 있는가?



안식일 오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간에 선지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말씀하신다는 사실이 성경 전체를 통해 나타나 있다. 물론 선지자들의 말을 거절하는 것은 선지자들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내신 분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한다는 것은 대단히 엄숙한 일이다. 만약 누군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노라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우주의 창조주의 대언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결코 작은 책무가 아닌 것이다. 종종 회사의 상사나 대통령 혹은 수상을 대신해서 말하도록 권한을 위임받는 경우가 있지만, 주님을 대신하여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거운 책임이겠는가? 불행하게도, 성경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되었지만 사람들은 그 기별을 거절한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 우리는 그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조심해야겠는가?



핵심본문: 살전 5:20-21



학습 목표

깨닫기: 선지자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기별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행하기: 성경을 그리스도인 생애와 교리의 최종적인 권위로 존중한다.



교과 개요

I.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함(출 4:10-16)

A. 모세의 권위의 근거는 무엇이었는가?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으며,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에는 각각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

B. 예수님의 권위의 근거는 무엇이었는가?(마 21:23, 요 17:2).



II. 권위에 반응함(왕하 22:10-13)

A. 예레미야 36:22-31을 읽으라. 아무도 듣지 않는다 해도 선지자에게는 권위가 있는 것인가? 사람들이 성경이나 엘렌 G. 화잇의 글을 거절할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B. 히브리서 4:12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반응을 촉구함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반응에 있어 감정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III. 권위를 비교해 봄(대상 29:29-30)

A.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영감을 받는가? 설교자의 기별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의 권위를 인정해야 하는가?

B. 정경(正經) 이외의 영감적인 글들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의 권위를 인정해야 하는가? 엘렌 G. 화잇의 글이나 다른 신앙 서적에 대해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왜 중요한가?



요점: 선지자의 권위는 그 권위의 출처와 글의 내용 그리고 기별의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개인적 능력이나 영향력 혹은 카리스마를 선지자적 권위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최종적인 권위는 성경에 있다.



일요일(2월 15일) 하나님의 대언자인 선지자(출 4:10-16)



1. 출애굽기 4:10-16에서 하나님과 모세 사이의 대화를 읽으십시오. 여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 대화에서 선지자는 어떻게 부르심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까?

출4:10-16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



답: 여호와께서 모세를 당신의 대언자로 부르셨을 때 모세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사양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노를 발하시며 그의 형 아론을 그의 대변인으로 지명하셨다.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출 4:16)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같이” 되고(참조 출 4:16), 아론은 모세의 “대언자”가 되었다(출 7:1). 이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대언자요 대변인인 선지자들 간의 밀접한 관계를 정확히 나타내준다. 더군다나 모세와 아론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선지자들에게 대언자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처음에 모세는 선지자가 되기를 꺼리고 있었다.

엘렌 G. 화잇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도 처음에 주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주저했었다. “첫 이상을 본 지 약 1주일 후에 본 두 번째 이상에서, 주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시련들을 보여 주시고, 주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의 활동은 큰 반대를 받을 것이며 마음은 고민으로 찢어지는 듯할 것이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 모든 것을 능히 감당하기에 충분할 것임을 보여 주셨다.

이상에서 깨어난 후 나는 심히 괴로웠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나아가 진리를 전하는 것이 나의 의무로 이상 중에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건강 상태는 너무도 나빠서 끊임없이 육신적인 괴로움에 시달렸으며, 모든 상황으로 보아 나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였다.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으며, 작고 나약하며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못하고 천성적으로 수줍고 소심해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여러 날 동안 나는, 이 짐을 내게서 옮겨 그것을 더욱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 달라고 깊은 밤중까지 기도하였다. 그러나 임무에 대한 빛은 변하지 않고 천사의 음성만이 계속 내 귀에 쟁쟁하였다. ‘내가 네게 보여 준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라.’”(엘렌 G. 화잇의 자서전, 69)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는 대언자

“모세와 아론의 관계를 통해서 성령과 기자 사이의 관계를 어느 정도 예시할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출 7:1, 4:15-16 참조)라고 하셨다.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의 기별들을 알려주었고, 그 대신 아론은 그것들을 자신의 어휘와 표현 양식을 사용하여 바로에게 전했다. 마찬가지로 성경 기자들은 그들 자신의 언어 양식에 따라 신적 명령과, 사상, 생각들을 전달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전달하셨기 때문에 성경의 서로 다른 책들은 그 어휘가 다르며 기자의 교육과 교양을 반영하고 있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21-22)



<부가설명> 옛날 왕조 시대에는 왕의 칙서를 가지고 온 사자 앞에서 칙서를 받을 때 삼배 사배 절을 하고 칙서를 받았다. 물론 사자에게 절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가지고 온 칙서를 받는 것을 왕 앞에서 왕의 말을 직접 듣는 것과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그 칙사의 권위는 바로 왕의 권위와 같았다. 선지자의 권위는 그에게 기별을 주신 하나님의 권위를 대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세가 바로에게 하나님과 같다고 하셨고, 아론은 그 모세의 대언자라고 하였다. 아론이 말하는 것은 모세가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그런 마음가짐으로 읽고 받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받은 말씀은 곧 실행해야 할 것이다.



교훈: 선지자의 권위는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엘렌 G. 화잇은 하나님의 기별 선포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매우 망설였지만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



월요일(2월 16일) 성육신하신 말씀의 권위(마 28:18)



마태복음 21:23에,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분께 이렇게 물었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예수께서는 랍비들이 잘 사용하는 방식인 ‘되묻는 질문’(counter question)으로 대답하셨다. “요한의 침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25절, 참조 23-27절). 랍비들의 논쟁에서 되묻는 질문은 본 질문에 대한 답을 암시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들이 대답하지 않자, 그분께서도 명확한 대답을 주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만약 요한의 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동일하게 하나님께로부터 온 그분의 권위에 대해서도 논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1. 다음 구절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마 7:28-29, 막 1:21-27, 눅 8:22-25, 9:1, 요 5:25-27)

마7:28,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막1:21-27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눅8:22-25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요5:25-2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답: 예수님께는 분명히 신적인 권위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놀랐고, 그 행하시는 이적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은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권세를 받으셨을 뿐 아니라, 당신의 제자들에게 능력과 권세를 나누어 주셨다.


최종적인 권위는 우리의 창조주(요 1:3)요 구속주(롬 3:24)이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 그분은 재판장이신 동시에 각 사람이 심판받게 될 절대적 표준이시다. 그분의 권위는 최종적인 권위이다. 그러므로 복음서들은, 그분이 권세 있는 자와 같이 가르치시자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에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다.(마 7:29)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적인 권위를 보게 된다. 그분은 죄를 용서하셨고(막 2:10), 귀신을 쫓아내셨으며(막 3:15), 사람들의 마음을 심판할 권세가 있음을 주장하셨고(요 2:24-25), 또한 영생을 주셨다(요 10:28).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행사하신 권위는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것이었다(요 17:2).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을 포함하여,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은 항상 하늘 아버지께 의존함으로, 아버지와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요 5:19). 그와 동시에 그분은 독자적인 권세를 가지셨다(마 28:18). 따라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권세를 위임하실 수 있었으며(막 6:7), 마지막 날에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수 있으시다.(요 5:27)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

“그분의 가르침은 단순했지만 그분은 권세 있는 자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 특징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든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과 대조가 되게 하였다. 랍비들은 마치 성경의 말씀들이 한 가지 사물이나 혹은 그와는 꼭 반대의 사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의심과 주저함으로 말하였다. 듣는 자들은 날마다 더욱 큰 불확실 가운데 싸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경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권위의 책으로 가르치셨다. 그분이 제시하시는 문제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분의 말씀은 전혀 논박할 수가 없는 그런 권세로 제시되었다.”(시대의 소망, 253)



<부가설명> 예수님은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같은 이름을 공유하신 분이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셨을 때, 셋의 이름이기 때문에 “이름들”이라고 복수(複數)를 써야 문법에 맞는다. 그러나 “이름”은 단수(單數)이다. 그러므로 이 세분은 한 이름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다. 그 이름이 여호와이다. 곧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종을 형체를 취하여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빌2:6,7). 그럴 때 그분에게 그분이 아버지라고 부르신 하나님이 모든 권세를 위임하셨다. 비록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으나 이 세상에서 그분이 가지신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이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모두 아버지 하나님의 권세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말씀하실 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마5:22,28,32,34,39)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 그 주장과 가르침이 권세 있는 자와 같았다. 오늘날 성경말씀으로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은 기록되었으되가 권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는데 인간 자신의 권위는 없다.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교훈: 예수께서는 창조주와 구속주로서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다. 그분의 권위는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며, 또한 당신 자신이 독자적으로 가지신 권세이다.



화요일(2월 17일) 기록된 말씀의 권위(왕하 22:10-13)



1. 열왕기하 22:10-13과 예레미야 36:22-31에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대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반응을 비교해 보십시오. 비록 우리는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 사건들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어떤 기본적인 두 가지 반응을 대표합니까?

왕하22:10-13 또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왕의 앞에서 읽으매 11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12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신 아사야에게 명하여 가로되 13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발하신 진노가 크도다.

렘36:22-31 때는 구월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23 여후디가 삼 편 사 편을 낭독하면 왕이 소도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온 두루마리를 태웠더라 24 왕과 그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그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25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사르지 말기를 간구하여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26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를 명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27 왕이 두루마리와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으로 기록한 말씀을 불사른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8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 왕 여호야김의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29 또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그가 이 두루마리를 불사르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바벨론 왕이 정녕히 와서 이 땅을 멸하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어지게 하리라 하는 말을 이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느뇨 하도다 30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그에게 다윗의 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 시체는 버림을 입어서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31 또 내가 그와 그 자손과 신하들을 그들의 죄악을 인하여 벌할 것이라 내가 일찍 그들과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에게 선포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한 그 모든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다 하라.



답: 유다 왕 요시야는 율법책의 말씀을 듣자 옷을 찢으며 말씀에 순응하여 우상을 제하고 산당을 허는 대대적인 개혁을 일으켰으나, 유다 왕 여호야김은 말씀이 낭독될 때에 그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칼로 베어 화로 불에 던져 넣었다. 이 두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두 부류의 사람을 나타낸다.


오늘날에는 이 왕처럼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불태우지는 않지만 여러 다른 방식으로 그 말씀을 거절할 수 있다. 그것을 조롱하거나, 무시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책으로 거부하거나, 아무런 역사적 가치나 권위가 없는 것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면서 형벌을 받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조만간 말씀을 무시한 결과로 고통을 당할 것이다. 기록된 말씀에는 하나님의 품성과 뜻, 인간 존재의 의미, 각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 등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도록 명료하게 진술되어 있다. 그 말씀을 거절하는 것은 즉각적인 형벌을 받지 않을지 모르나, 분명히 영원한 손실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을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권위 있는 책으로 지적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하여야 한다. 성경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논쟁의 해답으로써 그리고 모든 신앙의 기초로써 제시되어야 한다.”(실물교훈, 39-40)

화잇 여사는 그녀의 일생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높였다. 과학과 성경 사이의 논쟁에 관하여 그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신성한 권위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사람들의 과학적 관념으로 시험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지식은 신뢰할 수 없는 안내자다.”(부조와 선지자, 114)

1909년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대총회에 참석했을 때, 마지막 설교를 마치면서 그녀는 펼쳐진 성경을 두 손으로 높이 들고 이렇게 말했다. “형제자매들이여, 나는 이 책을 여러분께 권하는 바입니다.”(아서 L. 화잇, 엘렌 G. 화잇: 엠스헤이븐에서의 후년의 생애, 197)



성경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

“성경의 거죽만 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피상적 지식을 가지고 심오한 성경 지식을 가졌노라고 생각하고는 성경의 모순점들과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진리와 의무에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준비가 된 마음으로 성경을 살펴볼 것이다. 빛을 받은 영혼은 영적인 통일성을 보게 된다. 그것은 성경 전편을 꿰뚫고 있는 장중한 황금 실과 같은 것이지만 그 귀한 황금실을 추적해 내려면 인내와 생각과 기도가 필요하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7권, 945)



<부가설명> 앞에 부가설명에 왕의 칙서에 대하여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친히 육성으로 말씀하실 때가 기록한 말씀이나 동일한 권위를 가진다. 성경의 권위는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위이다. 우리는 이 권위를 인정하고 말씀의 권위 앞에 굴복해야 한다. 인간의 학문과 지식과 문화를 성경을 이해하는 자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다 사람에게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것을 성경을 재어보다가는 다른 형태로 여호야김의 전철을 밟게 된다. 비록 칼로 찢지는 않지만 말씀을 자기 사상이나 지식 문화라는 칼로 찢는 것이다. 성경을 찢으려하지 말고 자기 옷을 찢는 태도로 회개해야 할 것이다.



교훈: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품성과 뜻,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엘렌 G. 화잇은 일생 동안 성경을 높였다.



수요일(2월 18일) 선포된 말씀의 권위(히 4:12)



1. 기록하는 재료가 부족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지 못했던 옛날에는 선포되는 말씀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렘 38:1-4, 요 3:1-10, 6:51-66, 행 16:25-34)

렘38:1-4 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밀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의 모든 백성에게 이르는 말을 들은즉 이르기를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살리라 3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가 취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4 이에 그 방백들이 왕께 고하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치 아니하고 해를 구하오니 청컨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요3:1-10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요6:51-66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52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행16:25-34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침례를 받은 후 34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답: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그 말씀에 강력히 반발하여 그 말씀을 전달한 선지자를 죽이려 하기도 했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그 반대의 경우로 어떤 이들은 그 말씀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또는 그 말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회개하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로 선포되거나 글로 기록되거나 간에 이중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그것이 양날 선 검과 같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히 4:12)고 했다. 즉 의사의 손에 들린 수술용 칼처럼,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치료를 위해 뚫고 들어가며, 영원한 사망에 이를 치명적인 질병을 밝혀낸다. 듣는 사람의 믿음이 말씀과 화합하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

교회 내의 모든 사람이 엘렌 화잇의 선지자적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 권면을 들음으로 큰 유익을 얻었다. 예를 들면, 1863년부터 1901년까지 교회의 조직은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었다. 여러 분야의 사업들이 발전함에 따라 의료 선교 협회, 안식일학교 협회, 종교자유 협회, 소책자 협회 등 다양한 협회들이 형성되어 사업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이 협회들은 각각 독자적으로 활동했고, 대총회에 속하여 유기적으로 일하는 대신 종종 경쟁으로 치닫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 세계적인 사업의 모든 주요한 결정들은 배틀크릭에 있는 대총회의 몇몇 사람들에 의해 내려졌다.

1901년 대총회 전날, 엘렌 G. 화잇은 교회 지도자들과 만나서 교회 운영에 대한 과감한 변화를 촉구했다. 총회가 개최되자 일상적인 의사진행 절차를 미루어두고 교회 구조 개편을 위한 약 75명에 달하는 거대한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 결과로 대총회 행정위원회는 크게 확대되었고, 다양한 협회들은 대총회의 부서로 귀속되었으며, 연합회가 조직됨으로 현장의 지도자들은 배틀크릭의 결정을 기다릴 필요 없이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권면에 의해 지시된 교회의 조직 개편은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으며, 약간의 수정과 증보가 있었으나 그 조직은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말씀에 귀를 기울임

“우리는 주님의 길을 알기 위하여 또한 종교적인 허위(虛僞)들에 속지 않기 위하여 매일 성경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는 거짓된 이론들과 미혹적인 강신술의 견해들로 가득 차 있어 밝은 영적 식별력을 흐리게 하고 진리와 거룩함에서 떠나게 하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이때를 만난 우리는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엡 5:6)는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가려 뽑은 기별, 1권, 169)



<부가설명> 지금은 책이 아주 흔한 시대이다. 누그든지 책을 구입할 수 있고 누구든지 책을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사람들은 지금의 의식으로 옛날을 생각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성경을 기록할 당시나, 19세게 계몽사상이 민중들을 깨우기 전에는 책이 너무나 귀하였고 또 책이 있어도 대부분의 민중이 문맹(文盲)이어서 글을 읽지 못하였기 때문에 책의 유익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들어야 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큰 비중을 구고 있는 것은 당시 문화의 일면을 보게 한다. 그리고 그림을 그렸다. 글을 못 읽어도 그림은 보고 설명을 들으면 쉬웠다. 아무튼 그때는 기록된 말씀보다 선포되는 말씀이 민중들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선포되는 말씀과 기록된 말씀은 동일한 권위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지금도 그 사실을 변하지 않았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말씀뿐 아니라 선포된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교회를 지도해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화잇 여사를 통해 교회의 재조직을 지시하셨다.



목요일(2월 19일) 비정경 선지자들의 권위(눅 7:28)



1. 성경에는 이사야, 아모스와 같이 정경(正經)을 기록한 선지자들 외에도 정경을 기록하지 않은 몇몇 비정경 선지자들이 나옵니다. 다음 구절들은 이 선지자들과 그들의 글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대상 29:29, 대하 9:29, 12:15)

대상29:29 다윗 왕의 시종 행적이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

대하9:29 이 외에 솔로몬의 시종 행적은 선지자 나단의 글과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과 선견자 잇도의 묵시책 곧 잇도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대하여 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대하12:15 르호보암의 시종 행적은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족보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답: 선견자 사무엘의 글, 선지자 나단의 글, 선견자 갓의 글,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 선견자 잇도의 묵시책,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족보책 등이 언급되어 있다.


역대기에는 갓, 나단, 아히야, 스마야, 잇도 등 정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들에 의해 쓰인 최소한 여섯 권의 책이 언급되어 있다.



2. 정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들은 어떤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까?(삼하 12:14, 왕상 11:29-39, 14:2-18, 눅 7:28)

삼하12:14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

왕상11:29-39 그 즈음에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갈 때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길에서 저를 만나니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더라 30 아히야가 그 입은 새 옷을 잡아 열두 조각에 찢고 31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취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32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뺀 성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 33 이는 저희가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숭배하며 그 아비 다윗의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치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나의 법도와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함이니라 34 그러나 내가 뺀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내가 저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온 나라를 그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 주관하게 하려니와 35 내가 그 아들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줄 것이요 36 그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 37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38 네가 만일 내가 명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의 행함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39 내가 이로 인하여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 터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한지라 40 이러므로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매 여로보암이 일어나 애굽으로 도망하여 애굽 왕 시삭에게 이르러 솔로몬의 죽기까지 애굽에 있으니라.

왕상14:2-18 여로보암이 그 아내에게 이르되 청컨대 일어나 변장하여 사람으로 그대가 여로보암의 아내임을 알지 못하게 하고 실로로 가라 거기 선지자 아히야가 있나니 저는 이전에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을 내게 고한 사람이니라 3 그대의 손에 떡 열과 과자와 꿀 한 병을 가지고 그에게로 가라 저가 그대에게 이 아이의 어떻게 될 것을 알게 하리라 4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일어나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니 아히야는 나이로 인하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 5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 아들이 병듦을 인하여 네게 물으러 오나니 너는 이리이리 대답하라 저가 들어올 때에 다른 사람인 체함이니라 6 저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처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뇨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로 네게 고하리니 7 가서 여로보암에게 고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 8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9 너의 이전 사람들보다도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의 노를 격발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10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을 쓸어 버림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11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니라 하셨나니 12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13 온 이스라엘이 저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서 저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위에 한 왕을 일으키신즉 저가 그 날에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 버리리라 어느 때냐 곧 이제라 1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 열조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저희를 하수 밖으로 흩으시리니 저희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케 하였음이니라 16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저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음이니라 하니라 17 여로보암의 처가 일어나 디르사로 돌아가서 집 문지방에 이를 때에 아이가 죽은지라 18 온 이스라엘이 저를 장사하고 저를 위하여 슬퍼하니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 아히야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눅7: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하시니.



답: 성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예언을 하였고, 그 예언이 정확히 성취되었다. 모든 선지자가 성경을 쓴 것이 아니며, 선지자들의 모든 글이 다 성경에 포함된 것도 아니다.


다윗의 시대에 성경은 모세의 책들 밖에 없었으나 다윗은 나단의 권위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비록 나단이 정경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다윗은 그를 선지자로 인정하였다.

가령 오늘날 고고학자들이 나단의 책을 발굴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책이 성경에 추가될 것인가? 아니다. 그 책은 성경 외의 영감 받은 책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 어떤 신학적인 진술이 발견된다면 그것 역시 정경 외의 권위 있는 진술로 남게 될 것이다.

정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삶과 믿음의 규준으로서 그분의 섭리 하에 묶여진 책들의 수집본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선지자들의 모든 글이 성경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에 포함된 것보다 더 많은 영감 받은 편지들이 바울에 의해 쓰였다(고전 5:9, 골 4:16). 혹 그 편지들 중 하나가 발견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성경의 일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정경 이외의 권위 있고 영감적인 서신으로 남게 될 것이다.

엘렌 화잇의 권위는 정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들의 권위와 비견될 수 있다. 그녀가 받은 영감적인 기별은 정경에 추가되지 않는다. 그녀의 글들은 또 다른 성경이 아니다. 결국 성경,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최종적인 권위이다.



비정경 선지자들과 성경 시대 이후 선지자들의 유사성

“성경 시대 이후의 선지자들은, 나단, 갓, 아삽, 스마야, 아사랴, 엘리에셀, 아히야, 그리고 오벳, 미리암, 드보라, 훌다, 시므온, 침례자 요한, 아가보, 실라, 안나, 빌립의 네 딸 등 성경 시대에 살았지만 그들의 증언이 성경에 수록되지 않은 선지자들과 많은 면에서 유사한 기능을 행한다. 그들의 저술들이 성경에 수록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동일한 하나님이 이 남녀 선지자들에게 영감을 주셨다. 그들의 기별은 전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와 모순되지 않는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313)



<부가설명> 하나님은 성령으로 성경 66권을 모으셨다. 이것으로 구원의 도리를 깨닫기에 가장 합당하다고 여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교회가 가지고 있는 66권은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시는 모든 도리를 넉넉히 깨달을 수 있도록 기록하고 보전하여 우리에게 이르게 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에 가감하지 말라고 친히 명하셨다(계22:18,19). 그러므로 그 선지자적 권위에 있어서 정경을 기록한 선지자와 동일하여도 그들이 기록하였으나 정경에 들어가지 않은 책들은 정경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최종 권위는 정경으로 인정된 66권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해진 66권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깨닫기 위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연구하며 말씀을 순종하는 삶으로 영원한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해야 할 것이다.



교훈: 성경,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최종적인 권위이다. 하지만 정경을 기록하지 않은 선지자들도 정경을 기록한 선지자들과 동일한 권위를 가졌다.



금요일(2월 2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다음은 1982년에 대총회가 성경과 엘렌 G. 화잇의 글에 관해 진술한 내용의 일부이다. 긍정: “(1) 우리는 성경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의 영감 받은 책임을 믿는다. (2) 성경의 정경은 오직 신구약 66권뿐임을 믿는다. (3) 성경은 믿음의 기초이며 모든 교리와 경험에 관한 최종적인 권위임을 믿는다. (4)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5) 예언의 은사가 신약시대 이후의 교회에서도 발견될 것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음을 믿는다. (6) 엘렌 화잇의 사역과 글이 그녀의 예언적 은사를 입증해 준다고 믿는다. (7) 우리는 엘렌 화잇이 성령의 영감을 받았으며, 그녀의 글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기별임을 믿는다. (8) 엘렌 화잇의 글의 목적은 우리의 영적인 생애와 성장을 위해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믿는다. (9) 엘렌 화잇의 예언적 은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성장과 연합에 중요하다는 것을 믿는다. (10) 우리는 엘렌 화잇이 성경의 많은 기자들이 사용했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했음을 믿는다.”

부정: “(1) 우리는 엘렌 화잇의 글이 성경과는 질적으로 다른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믿지 않는다. (2) 우리는 엘렌 화잇의 글이 거룩한 정경에 추가되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3) 엘렌 화잇의 글이 그리스도인 신앙에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 성경과 동등한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4) 엘렌 화잇의 글이 모든 교리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5) 엘렌 화잇의 글을 연구하는 것으로 성경 연구를 대신해도 된다고 믿지 않는다. (6) 성경은 오직 엘렌 화잇의 글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7) 엘렌 화잇의 글은 성경의 의미를 남김없이 해석해 준다고 믿지 않는다. (8) 넓은 의미에서 엘렌 화잇의 글은 성경의 진리를 세상에 선포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9) 우리는 엘렌 화잇의 글이 단순히 그리스도인 경건의 산물이라고 믿지 않는다. (10) 엘렌 화잇이 문학적 자료를 인용하고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은 것이 그녀의 글의 영감성을 무효화한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엘렌 G. 화잇의 글의 영감성과 권위를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1) 그녀의 글을 성경 수준으로 취급하거나, (2) 일반 신앙 서적처럼 간주해 버리는 양극단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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