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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과 예언과 성령의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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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폴쵸 작성일09-01-08 16:29 조회5,2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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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과 예언과 성령의 은사
1월 17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39분)

도입)
어느 날 화가 로세티에게 한 젊은 신사가 찾아왔다. 그 신사는 로세티에게 몇 폭의 그림을 보이며 그것들에 대한 솔직한 평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로세티가 그 그림을 보았을 때 그 그림들은 거의 가치가 없는 것이어서 그 신사에게 “화가의 재질이 나타나 있지 않다”고 친절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 신사는 그의 코트 속에서 다른 몇 폭의 그림을 내놓으면서 “이 그림들은 한 학생의 작품인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화가 로세티는 즉시 그 그림 가운데서 훌륭한 재능을 발견하고 그 신사에게 말하기를 “이 그림을 그린 학생은 분명히 장차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던 그 젊은 신사는 로세티에게 “선생님 그 학생이 바로 저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 저의 선생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저는 계속 그림 그리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저는 저의 그림 소질이 퇴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최근에 제가 그린 그림에 대한 선생님의 평과 같이 그것들은 거의 가치 없는 것들입니다. 능력이 한때 나타났다 해도 계속 완전을 향해 닦고 힘쓰지 않으면 그 능력이 소멸됨을 알았습니다” 라고 후회스런 심정으로 말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재능이나 은사를 주신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은사라 할지라도 그것을 주를 위해 계속해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재능이나 은사는 퇴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억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 12:4-6)

연구범위: 행 2:1-11, 롬 12:6-8, 고전 1:6-7, 13:9, 엡 4:11, 살후 2:9-10.

학습 포인트: 영적 은사를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영적 은사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방언의 은사란 무엇인가? 성경은 거짓 은사에 대해 어떤 가르침을 주는가?

안식일 오후
‘제 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는 영적 은사를 믿는다. 이 선물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섬기는 일을 돕기 위해 주어졌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영적 은사를 가지며, 어떤 이들은 하나 이상의 은사를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은사는 교회를 돕도록 성령께서 주신 것이다. 많은 오순절파 교회들은 영적 은사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이 교회의 어떤 교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이들 중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미국에 교훈을 주시기 위해 우주왕복선 챌린저(Challenger)호를 폭발시키셨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 우주왕복선에 공립학교 선생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폭발시키셨다는 것이다(아마도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공립학교 선생들을 싫어하신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우리 ‘제 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는 예언의 은사를 포함한 영적 은사를 인정하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번 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몇 가지 영적 은사들을 주의 깊이 살펴볼 것이다.

일요일(1월 11일)
영적 은사들(엡 4:11)

도입)
신약성경은 성령의 은사를 표현할 때 주로 두 가지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카리스마타와 프뉴마티카가 그것이다. 프뉴마티카는 영 혹은 바람을 뜻하는 헬라어프뉴마의 형용사형으로서 "성령의 혹은 성령으로부터 나온"의 의미를 가지는데 킹 제임스 흠정역은 이를 영적 은사들로 번역하였고 우리말 개역성경에는 "신령한 것"으로 번역된 이 어휘는 모든 영적 은사들의 원천이 성령이심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성령의 은사들을 표현하는 보편적인 단어인 카리스마타는 신약성경에서 17번 나온다. 카리스마타는 카리스마의 복수형으로서 은혜라는 카리스와 은혜의 선물이라는 카리스마어원에서 왔다. 카리스마란 "은혜의 선물", 값없이 주는 선물", 또는 "비상한 능력","부여된 은총"(롬 12:6,고전 1:7,딤전 4:14)이라는 뜻으로서 "보이다", "거져주다", "아낌없이 주다"라는 뜻으로 "카리스마타"는 은혜를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은혜의 결과가 바로 카리스마타인 것이다. 성령의 나타나심은 ‘프리즘’의 원리와 같다. 프리즘이라는 삼각형의 유리는 투명해서, 아무런 색도 없는 것 같은 햇빛이지만, 햇빛이, 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빛은 일곱 가지 아름다운 무지개 색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아무런 형상도 가지지 않은, 성령께서 사람에게 임하시면, 여러 가지 은사로 나타나서 귀한 열매를 아름답게 맺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은사는 질서가 있고, 분열이 아니라 연합이요, 인격을 무시하여 실망과 실족을 주는 것이 아니라 위로와 용기를 더하여 주는 것이다. 은사의 원천은 성부, 성자, 셩령의 하나님이시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 4:11)

영적 은사(헬, 카리스마타)는 그것을 자기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성령(고전 12:11)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신령한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선물들을 깨닫고 식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고전 2:10-13).

1. 바울은 네 번에 걸쳐 영적 은사의 목록을 제시하였습니다(롬 12:6-8, 고전 12:8-10, 28-30, 엡 4:11-12). 영적 은사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
신약에 따르면, 영적 은사는 교회에 위임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교회의 성장뿐 아니라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 은사들은 또한 우리가 주님께 완전히 의지해야 함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준다. 왜냐하면 그분의 도우심 없이는 우리에게 행하라고 부르신 그 일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복음서에서 우리는 사도들이 오순절 전에 이미 영적 은사를 소유했음을 보게 된다. 누가복음 9:1에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고(눅 9:1), 마태복음 10:8에서는 그들에게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마 10:8)는 명령을 주셨다. 그러다가 오순절에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행 2:14). 제자들의 경험은 성령의 침례를 한 번 이상 받는 것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후(행 2:1-4), 그들이 배운 적이 없는 언어로 설교할 수 있었다.

교훈: 영적 은사는 교회의 성장과 세계 복음화를 위해 신자 개개인에게 부어주신 성령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의 신자들에게 영적 은사를 약속하셨다.

부가적용)
은사의 기원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받은 사람을 에워싸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나름대로 은사를 선택할 수는 없게 된다. 이 은사들은 하나님께서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각인의 성도에게 절대 주권적인 은혜로 주신 것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며 이 은사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교화하는데 반드시 사용해야할 것이다. 은사의 개념은 고전 12:4-5까지에 나타남3가지의 용어를 이해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성령의 은사를 나타내는 말이 "은사들", "직임". "역사"로 묘사된 것에 근거한다. 첫째, 은사들이라는 용어는 은사의 근원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은혜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둘째, 은사는 그 직무가 평범한 것이든 특수한 것이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행하는 직임이다. 직임이라는 용어는 은사가 실제로 생활에서 들어내는 방법을 말한다. 은사와 직임은 적극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신약의 성도들에게 각기 알맞은 은사가 주어질 뿐 아니라, 완수해야 될 특별한 사역도 주어진다고 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셋째, 성령의 은사는 뚜렷한 역사를 일으킨다. 모든 은사는 어떤 일을 실제적으로 창출하고 어떤 사람을 도와주며 교회를 힘 있게 하는데 있다.

월요일(1월 12일)
오늘날 교회 내의 영적 은사

도입)
교회(혹은 선교사역)를 성장 시키는 것은 은사를 활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은사로 인한 문제가 교회 안에 많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은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인한 문제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은사 자체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선물이며 더 없이 유용하고 유익한 것이다. 은사란 무엇인가? ‘은사’란 용어를 여러 가지 번역 성경들이 그 뜻을 다양하게 밝혀주고 있다.
(1) 구역
은사를 "은혜 주시는 것"이라고 번역했다.
(2) 새번역
은사를 "선물"이라고 번역했다.
(3) 공동역
은사를 "은총의 선물"이라고 번역했다.
(4) 현대인의 성격
은사를 "영적능력"이라고 번역했다.
이상과 같이 은사란 은혜주신 것이요. 선물이오. 은총의 선물이오. 영적능력이다.
(5) 직분이 곧 은사이다.
우리가 맡은 바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잘 수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잘 활용하는 것임을 생각하고 맡은 바 자신의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행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영적 은사는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첫째는 함양하는 은사(edifying gifts)로서 지식, 지혜, 가르침, 권면, 믿음, 자비 등이 여기에 속하고, 둘째는 이적 은사(sign gifts)로서 예언, 치유, 방언, 이적 행함 등이 여기에 속한다. 어떤 이들은 은사의 연속성에 대해, 함양하는 은사는 계속되지만 이적 은사는 사도들의 죽음과 함께 그쳐졌다고 믿는다. 이 견해를 옹호하는 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적 은사의 고유한 목적은 사도들에게 신임장을 줌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일단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된 후에는 이적 은사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으므로 그치게 된 것이다”(존 F. 맥아더 주니어, 영적 은사의 혼돈, 199). 한편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든 영적 은사가 주님 오실 때까지 교회 안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1. 다음 구절들은 영적 은사의 연속성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고전 1:6-7, 13:9-10, 엡 4:11-13)
답:
바울에 따르면, 영적 은사(카리스마타)는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교회에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말은 모든 은사들이 항상 존재할 것이라는 의미인가?
교부(敎父) 이레니우스(AD 120-195)는 그의 시대에도 영적 은사가 존재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레니우스에 따르면, 영적 은사는 주후 2세기 말에도 여전히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 두 세기 동안에 교회는 심각한 영적 및 신학적 타락을 겪었으며, 대부분의 영적 은사는 사라지고 말았다. 영국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와 함께 시작된 종교개혁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개혁자들을 사용하셔서 묻혀버린 진리를 회복하셨는데, 그들은 분명히 지식과 지혜와 가르침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개혁자들 중 아무도 예언의 은사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이는 없었다. 요한계시록 12:17을 보면 이 특정한 은사는 마지막 때의 남은 교회에 다시 나타날 것으로 되어 있다.

교훈: 영적 은사는 초기교회뿐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존재할 것이며, 특히 마지막 때의 남은 교회에는 예언의 은사가 주어질 것이 예언되어 있다.

부가적용)
고전 12:4은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다고 함으로서 은사는 곧 직임이오 은사가 곧 역사임을 보여준다. 이를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은사는 직임과 역사의 원동력이오. 직임은 역사의 성격이며, 역사는 직임의 활동상이라고 하겠다. 우리 SDA에 나타난 마지막 시대의 예언의 은사가 나타나고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든 예언의 은사도 중요하지만 사도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을 호소한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지 않은가? 이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들나 목사나 교인들이 사랑 결핍증에 걸린 경우가 많다. 사랑이 없으면 겸손해지지 못한다. 사랑은 겸손을 뿌리로 해서 피어난 꽃이다. 우리가 가진 특별한 은사, 예언의 신에 대하여 주인의식을 갖지 말고 우리는 더욱 자세를 낮춰 세상을 향해 종의 자세로 섬겨야 할 것이다. 예언의 신의 기별이 마치 우리가 맡은 특별한 은사인 것처럼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만에게 주신 고유의 소유인양 유대인처럼 교만한 자세로 세상을 향하여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고 겸손한 자세, 봉사하는 자세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

화요일(1월 13일)
거짓 은사들(살후 2:9-10)

도입)
우리는 흔히 한국의 전통종교는 샤머니즘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이 샤머니즘, 소위 무속종교는 불교나 유교 같은 기성 종교보다 더 오래 전부터 우리 한국 사람을 심성을 지배하고 민족의식의 일부가 되었다. 시기적으로 봐도 이 샤머니즘은 다른 일반 종교들보다 훨씬 오래된 원시적인 형태의 종교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종교의식은 더욱 투명하고 깨끗했다. 최근의 문화 인류학이나 비교종교 연구는 이러한 증거들을 얼마든지 확보하고 있다. 한 마디로 종교에도 엔트로피 법칙(Entropy rule)이 작용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종교는 깨끗해지고 순결해지고 정제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반대로 더 혼탁해지고 무질서해지고 흐려지고 있다는 말이다. 시간이 갈수록 세상은 영적으로 혼돈하며 무질서가운데 사탄이 더욱 강하게 역사함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1. 성경은 거짓 은사들의 기원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마 7:22-23, 살후 2:9-10, 계 16:13-14)
답: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로의 면전에서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였고(출 7:10), 나일강물이 피로 변하게 했으며(20절), 나일강에서 개구리가 나와 온 땅을 뒤덮게 했다(출 8:6). 그런데 애굽의 술객들도 사단의 능력으로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애굽의 술객들은 세 번째 재앙 이후로는 하나님의 이적을 모조할 수 없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두 가지 사실은, (1) 사단도 진짜처럼 보이는 이적을 행할 수 있다는 것과, (2) 사단은 하나님이 제한하신 범위 내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짓 은사들은 하나님의 참된 은사를 단순히 변형시킨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근원인 사단으로부터 나온 유사한 현상임을 기억해야 한다.
위의 구절들을 연구해 보면, 거짓 은사들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이 거짓 현상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공언하는 사람들에 의해 행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노라고 주장할 것이나, 그들은 분명히 그분의 편에 서 있지 않다. 둘째, 장차 많은 사람을 기만하기에 충분한 놀라운 이적들과 기사들이 행해질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사단의 초자연적인 이적에 속지 않도록 깊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그 이적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행해지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성령의 참된 은사라는 의미는 아니다.
끝으로, 마지막 때에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많은 사람을 미혹하기 위해 일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증해야만 한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놀랍고 인상적인 이적이라 할지라도 거부되어야만 한다. 성경이 우리의 최종적인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교훈: 사단은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더욱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거짓 은사들을 나타낼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판단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부가적용)
종교사적으로 볼 때 소위 무속종교는 과거 우리나라에 보편화된 것이 아니었다. 공개적으로 샤머니즘이 억제되었고, 사회의 하층계급들만이 눈을 피해서 할 수 있었던 것이 샤머니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양상이 달라졌다. 문화라고 하는 이름으로 전통, 선승이라고 하는 이름 아래서 지금은 공개적으로 국가기관에서도 이 샤머니즘적 행동인 굿판을 벌이고 있다. 옛날에는 사회 질시의 대상이었던 점쟁이들, 무당과 박수들이 이제는 버젓이 고개를 들고 사회의 인기 있는 계층으로 등장하고 그들의 저서가 독서계를 강타하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과학은 발달하지만 그러나 그것과 반비례하여 최근의 신문들에는 ‘오늘의 운세’라는 칸이 나타나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후진국일수록 심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선진국일수록 더욱 심화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무궁화 위성 2호가 발진을 했을 때 위성을 올리면서 돼지머리를 삶아 고사를 지냈다. 미국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비웃었습니다만 그 다음에 바로 미국의 CIA는 자기들이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심령술을 사용했음을 고백했다. 소위 ‘스타게이트’라고 하는 작전 명령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첩보 활동 속에서 이 사람들은 점쟁이를 고용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핵무기에 관한 것이다. 핵문제가 심각해졌을 때에 북한에 이 핵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이라고 물질이 어느 지역에 감춰져 있는가를 발견해 내기 위하여 점쟁이들을 동원했다. 또 납치된 저명인사가 어디에 갇혀 있는가 이런 것들을 알기 위해 점쟁이를 고용하였다. 오늘날 깨어있어야 할 시기이다.

수요일(1월 14일)
예언의 은사(고전 12:8-10)

도입)
지난 일이지만, 걸프전 때 ‘후세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어느 벙커에 숨어 있어서 어느 벙커를 공격해야 될지에 관한 결정을 점쟁이가 한 일이다. 오늘날에도 백악관에서 매일의 계획을 세울 때에 점쟁이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시간표를 만든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이제는 이것이 보편화되고 상류계층까지 모든 나라로 샤머니즘이 전파되고 있는데 이제는 이것을 하나의 학문으로까지 발전시켜서 많은 대학에서는 초능력학과와 심령술학과를 개설하고 있다. 정말로 세상이 자꾸 영적으로 혼돈되고 어두워지는 시대가 왔다. 성경도 말씀하시거나와 앞으로는 더욱 더 어렵고 혼탁한 그러한 세상이 될 것이다.

역사를 통하여, 미래를 안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어 왔다. 노스트라다무스로 알려진 프랑스 출신의 의사 미셸 드 노트르담(Michel de Notredame, 1503-1566)은 1666년 런던에 대화재가 있을 것을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런던에서 의로운 자들의 피를 요구할 것이며, 66의 해에 불에 살라질 것이다.” 아일랜드의 예언자 케이로(Cheiro)는 1894년과 1911년 두 번에 걸쳐, 신문기자인 스테드(W. T. Stead)가 1912년 4월에 익사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스테드는 1912년 4월에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죽었다. 진 딕슨(Jean Dixon)은 1956년에 그녀가 본 환상을 발표했는데, 1960년에 미국의 대통령이 민주당에서 나올 것이며, 그가 재임 중에 암살당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1960년에 민주당 후보 존 케네디(John Kennedy)가 당선되었으며, 재임 중인 1963년에 암살되었다.

1. 성경의 선지자들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에 의해 주어진 예언이 이처럼 정확히 성취된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사 8:19, 행 16:16, 고후 11:14)
답:
사단은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속이기 위해 뱀을 이용한 이래, 남녀들을 미혹하기 위해 정확한 예언을 말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인간 매개자들을 이용해왔다. 그러나 예언이 성취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보증은 되지 못한다.

2. 사도 바울이 영적 은사에 관해 언급한 네 가지 목록에서 예언의 은사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롬 12:6, 고전 12:8-10, 12:28-30, 엡 4:11)
답:
성경 예언들은 미래를 알려주고(단 2장), 왕들에게 조언을 주며(사 7:3-4), 다가올 심판을 경고하고(렘 1:14-16), 부흥을 불러일으키며(욜 2:12-13),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사 40:1-2). 이 은사는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공표하는 데 그 강조점이 있다.

교훈: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교통하는 수단 중 하나인데, 우리는 사단에 의해 나타나는 거짓 예언들에 매우 주의할 필요가 있다.

부가적용)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의 지관들이 수천 명이었다. 왕가의 지관들은 한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좋은 땅만 골라 썼다. 그런데 나라는 망했다. 조선시대의 풍수지리가 약해서 조선이 망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고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왕들의 평균연령이 40이다. 명당자리가 없어서 단명했는가? 그렇지 않다. 명당짜리를 쓰면 후손들이 오래 산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말에 기독교인들도 솔깃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상이 이끄는 대로 끌려 다니는 영적 분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목요일(1월 15일)
영적 은사와 고린도전서 14장

도입)
은사는 모두를 유익하게 하려고 있는 것이다. 각각 다르지만 주신 분은 한 분이며 주신 목적도 하나이다. 은사는 서로 분쟁이나 시기가 일어나면 그것을 주신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개인의 믿음과 허영과 자랑거리로 주신 것은 아니다. 고린도교회에서는 어떤 사람들은 은사를 자랑하면서 받지 못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한 행위는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고전 14: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교인들은 서로 다투고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며, 교인들 간의 법정 소송과 결혼의 문제들, 성찬식을 바르게 거행하지 않는 문제 등이 있었다. 그리고 영적 은사에 관한 문제, 특히 방언의 은사에 관한 문제가 있었다.(고전 14:15)

1. 사도행전에 언급된 방언의 은사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어떤 종류의 언어들이 말해졌습니까?(행 2:1-11)
답:

2. 고린도 교회에서 말해진 방언들은 어떤 것이었습니까?(고전 14:1-25)
답: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원칙, 즉 애매한 구절은 명확한 구절에 의해 해석된다는 원칙을 적용할 때, 고린도전서 14장의 방언은 사도행전의 방언과 같은 성질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데, 특히 글로사(glossa)라는 헬라어 단어가 두 책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두 곳에서의 방언은 초자연적 능력으로 외국어를 말하는 것으로서, 흔히 오늘날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언어로 지껄이는 방언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한 무의미한 소리는 거짓 방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이성적 능력을 통해 일하신다.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마 6:7)고 하신 그분께서 알지 못하는 소리를 지껄이도록 영감을 주시겠는가? 고린도전서 14:22에 의하면, 방언은 오순절 때처럼 불신자들에게 하나의 표적이었는데,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지껄이는 소리로 어떻게 불신자들에게 표적이 될 수 있겠는가? 방언은 사도행전 2장에서처럼 실제의 언어이다. 더군다나 영적 은사는 만인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것이며(고전 12:7), 소위 현대의 방언과 같이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소위 현대의 방언은 헬라어로 글로솔랄리아(glossolalia)라 하는데, 성경이 말하는 언어의 은사와 다른 것이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방언은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의 언어이지 무아경의 지껄임이 아니다.

교훈: 성경에서 방언의 은사는 사람들이 말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의 언어이지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말하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지껄임이 아니다.

부가적용)
방언이라는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는 오늘날 중지되었다. 방언과 예언, 지식이란 세 가지 은사는 완성된 성경이 없었던 초대교회 시절에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을 통해 완성되자 사라졌다. 따라서 목적을 완수한 방언은 사라졌다. 고린도교회 안에 있었던 방언은 오늘날 개신교회 안에서 유행하고 있는 방언이 아니다. 바른 방언은 반드시 통역될 수 있으며 공동체를 위한 계시의 은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방언은 통역될 수 없으며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있다. 방언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연구를 수행한 킬달 박사는 통역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한 방언을 녹음한 후, 통역은사를 받았다는 7명에게 각기 틀어주고 통역을 요청했다. 그 결과 일곱 가지 통역 중 비슷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킬발 KR사는 ‘오늘날의 방언은 학습된 현상이다. 방언을 하는데 필요한 심리적 조건이 갖추어진 사람은 누구나 쉽게 배워서 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모두 교회의 덕을 세우며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이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통해 일하심으로써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흘러들어간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하게 되며 그것을 목적으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구원 받기를 원하고 있다. 각자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이 각 개인에게 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은사를 다를 때 목록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은사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그 자리에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그것이 목록이 아니라 ‘의미’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려 은혜를 베풀고 계시다는 것과 그 은혜를 어떤 방향으로 베풀고 계시는가를 성경이 우리에게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은사보다는 은사를 주신 목적을 알고 그 일에 함께 섬겨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금요일(월 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엘렌 G. 화잇, 사도행적, 제4장 ‘오순절’(35-46)

“특별한 성령의 선물만이 비유에 나오는 달란트라고 할 수는 없다. 이 달란트는 선천적이고, 후천적인 것에 관계없이 또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에 관계없이 모든 선물과 재능을 다 포함한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소유와 우리 자신을 아울러 그분에게 바치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바친 것을 순결하게 하시고 고상하게 하셔서 그것으로 동료 인간들을 축복하고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데 쓰도록 우리에게 다시 돌려주신다.”(실물교훈, 328)
“자기 신앙의 시금석으로서 이적을 행하는 자는 사단도 여러 가지 기만적인 방법을 통하여 순수한 이적들처럼 보이는 기사들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2권, 52)
“이런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그들이 선물이라고 부르고 주님께서 교회에 두셨다고 주장하는 것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님과 온 하늘도 모르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방언이라고 부르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무의미한 말을 한다. 그런 선물은 큰 기만자의 도움을 받은 남녀들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광신, 거짓 흥분, 거짓으로 지껄이는 방언, 떠드는 것 등이 하나님께서 교회에 두신 선물로 간주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기만을 당하였다.”(교회증언, 1권, 41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자신이 가진 영적 은사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을 최선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2. 우리의 문화에서 하늘의 기적으로 여겨지는 일들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의 신자들로 하여금 사단의 기만에 미혹되지 않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또한 교회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거짓 이적의 위험을 알릴 수 있을까요?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깨달은 내용이나 한 주일 동안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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