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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과 예언의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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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폴쵸 작성일09-01-02 02:57 조회5,2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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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과 예언의 은사
1월 10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32분)


도입)
메마르고 형식화된 영국 국교회에 반동하여 60여년 세월을 전도와 빈민구제에 헌신한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1829~1912)에게 한 신문기자가 물었다. “다가오는 미래에 기독교에 닥쳐올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이겠습니까?” 83세의 나이로 임종을 앞두고 있던 이 노 전도자는 더듬거리는 말로 미래 기독교의 위기를 두 가지로 진단했다고 한다. 그 하나는 성령의 역사가 없는 형식화된 기독교로 변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그리스도가 없는 세속화된 교회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90년 전의 그의 예언은 빗나가지 않았다고 본다. 우리는 다시 한번 나 자신과 교회를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냉철하게 자신을 진단하고 처방하므로 상실한 영성과 그로 말미암는 소망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신앙에 있어서 선지자의 역할은 지대하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기록으로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비밀을 보이시고 행하셨다. 인간이 하나님께 스스로 나아가서 하나님을 대면할 수는 없었던바 제사장의 인도와 중재를 받아야 하였듯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도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별을 듣고 그것에 순종하는 데에 달려 있었다.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를 구주로 믿는다. 예수에 관한 예언이 성경에 없다면 예수가 그리스도인 줄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므로 구약 예언을 모르고 예수를 믿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한 참된 믿음(히11:1)이 아니다.

기억절: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민 12:6)

연구범위: 창 20:7, 출 15:20, 신 18:15, 마 11:11, 요 6:14, 히 11:24-26.

학습 포인트: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들은 성인(聖人)들이었는가, 아니면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는가? 이스라엘에서 여선지자들은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신약에서 사도와 선지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안식일 오후
인류 역사를 통하여, 그리고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미래에 대해 예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 예언들은 전혀 성취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예언들이 성취되는 때에는 몇 가지 경우가 있다. 그 예언이 순전히 운 좋게 맞아 떨어졌거나, 하나님께서 그 예언에 개입하셨거나, 혹은 영혼의 원수 사단이 많은 사람을 미혹하기 위해 행한 것이다.
성경에서 이 예언의 은사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이들은 그분과 밀접히 동행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죄 없는 자들은 아니었으나, 하나님의 계시된 뜻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 애쓴 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그와 같은 관계 속에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사용하실 수 있으셨다.
이번 주에 우리는 그분께서 그들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살펴볼 것이다.

일요일(1월 4일)
부조와 선지자(창 20:7)

도입)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이사하여 그랄에 거하였을 때에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밤에 꿈을 통하여 사라의 일로 인하여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밤에 꿈을 통하여 사라의 일로 인하여 아비멜렉이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아비멜렉은 하나님께 자신이 사라와 동침치 아니하였음을 아뢰며 구원을 호소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돌려보내고 선지자인 아브라함에게 기도를 받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그와 그 집의 사람들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비멜렉은 사라를 아브라함에 돌려보내었고 아브라함이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림으로써 사라로 인하여 그 집에 임했던 재앙이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께 부름 받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특별한 자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그 말씀대로 행함으로써 사라로 인하여 그 집에 임했던 재앙이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께 부름 받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특별한 자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그 말씀대로 행함으로써 죄악된 세상에 하나님의 의를 증거 한다는 면에서 아브라함은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한 것이다. 성도는 어두운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삶을 살고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선지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여야 한다.

선지자의 지도와 역할이 중대한 구약 당시에도 수많은 혼동과 낭패와 패배를 가져온 원인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있어 왔다. 성경이 말하는 바는 선지자를 신뢰하여야 형통함을 얻겠다고 말씀한다. 이토록 중요한 선지자의 역할이 신약 시대로 와서 선지자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이 신앙을 올바로 영위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이 어디에서 근거한 일인지 모를 일이다. 신약 성경 중에서도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운 직분 중 선지자를 언급하고 있다. 바울 당시만이 아니고 세상 끝 날까지 교회가 존속하는 한, 선지자는 있어야 할 것으로 보는 바이다. 오순절 성령이 강림한 이래로 개개인들이 신령한 영의 역사로 인하여 하나님을 올바로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바른 지도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어 온 것으로 보인다.

1. 성경에서 처음으로 선지자(히, 나비)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은 창세기 20:7입니다. 그 단어가 사용된 배경을 고려해 볼 때, 선지자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까?
답:
모세오경(성경의 처음 다섯 책)에서 ‘선지자’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사시대에는 ‘선견자’(히, 로에)라는 칭호가 사용되다가(삼상 9:9, 11, 18-19), 후에 다시 선지자로 통용되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대변인이었을 뿐 아니라, 때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매개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창세기 20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아비멜렉 사이의 매개자로서, 아비멜렉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은 두드러진 인물이다. 성경에서 그는 세 번이나 ‘하나님의 친구’로 불리었다(대하 20:7, 사 41:8, 약 2:23). 그가 99세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창 17:6)고 하셨는데,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이었다. 아브라함은 여러 인간적인 이유를 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믿는 모든 자의 조상”(롬 4:11)이 되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기 아들까지도 제물로 드리고자 했던 사람(창 22장)이 아내 사라에 관하여 아비멜렉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창 20:2)은 잘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의 약점이 우리에게도 존재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에 비취이면 얼굴 모습이 나타나듯이, 마음을 살피면 자신의 참 모습이 나타나느니라”(잠 27:19, NIrV). 신자들의 마음속에도 때로는 옛 본성이 다시 일어난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때로는 미끄러져 넘어지고, 의의 길에서 떠나 죄와 불신의 길에 빠진다. 그러므로 “믿는 모든 자의 조상” 아브라함이 저지른 통탄스런 행동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브라함도 인간으로서, 위대한 믿음의 순간이 있었는가하면 매우 연약한 순간도 있었다. 그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교훈: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우리처럼 연약한 순간이 있었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다.

부가적용)
아비멜렉은 상당히 부요한 족장인 아브라함과 당시의 일반적인 동맹관계를 맺으려고 한 것 같다. 아비멜렉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아내로 취한 것은 사라가 너무 아름다워서 사라를 빼앗아서 취하려 했다기 보다는 동맹관계를 위한 목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사라는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90세가 넘은 노인이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창 20장에서와 같이 기근 때문에 내려간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큰 부자로 성장했다. 애굽에서와 같이 배가 고파서 기근을 피해서 그랄로 내려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아브라함은 큰 부자가 되어 그랄로 확장되어 내려간 것이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부요한 동방의 족장과 상호 결혼을 통해서 연합하고 동맹하려는 의도로 사라를 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비멜렉으로 사라를 아내로 취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꿈에 아비멜렉에게 계시하셨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이니까 손대지 말라고 경고하시고 장차 약속의 씨를 생산할 사라의 태를 보호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선지자로 알리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 빎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며 동행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월요일(1월 5일)
출애굽기의 선지자(출 34:28-35)

도입)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들에 의해 전달되었는데, 공적인 첫 선지자는 모세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위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대면하였다. 그리고 그만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선지직 계열이라고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입에 담아 두셨으며, 말일에 일어날 것을 말씀하였다. 신약에서는 이 선지자를 곧 메시야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모세는 선지자의 반열을 말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시는 메시야이심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민족 최초의 선지자는 모세이다. 그의 죽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 34:10).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였고,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의 선지자요, 그 후에 있을 선지자들의 모본이었다.

1. 다음 구절들은 모세의 인격과 품성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출 4:10, 32:11-13, 32, 민 12:3, 20:10-12, 히 11:24-26) 이 특성들 중 그의 선지자 사역에 도움을 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답:
모세는 애굽에서 자라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고, 불타는 가시떨기에서 전능하신 분과 함께 했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준비를 갖추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거듭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에 실패할 때마다 모세는 그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탄원하였다(출 32:11-13, 민 14:13-19, 16:46-50). 또한 모세는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 신실하도록 권면하였다.
시내산에서의 금송아지 사건(출 32장)이 있은 후, 모세는 40일간 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머물렀다. 그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는 광채가 났다(출 34:28-35).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얼굴에 반사되었기 때문이다(고후 3:7). 그가 창조주의 영광을 뵈옵는 특별한 경험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얼굴이 광채로 빛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그가 하나님과 교통했다는 증거는 그로 하여금 지도자로서의 정당한 위치를 갖게 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왜냐하면 금송아지를 만든 반역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일 뿐 아니라 모세에 대한 반역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받던 그의 지도력과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회복시켜 주었다.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위치에서든 하나님의 영광스런 품성을 반사할 것이다. 하나님과 밀접히 교통한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은연중에 분명한 영향력을 나타낼 것이다.

교훈: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간 하나님과 함께 머문 후 그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빛났다. 백성은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기별에 귀를 기울였다.

부가적용)
신명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주신 명령을 남김없이 다 고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선지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all) 들으려 하기보다는 호불호와 유 불리를 따져서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결국 주의 종들의 말씀이 사람의 말로 변질되는 물꼬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쓰고 달고를 떠나 내 영혼에 약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로 하여금 금보다 귀한 믿음 가운데 서게 한다. 뿐만 아니라 폭풍 같은 우리 삶의 자리에서 생명의 길로 뻗어 가게 하는 내 인생의 가이드북이다.

화요일(1월 6일)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도입)
하나님에게서 부름을 받고 또 그를 위해 말하는 사람. 하나님의 사자로서, 선지자는 명령, 예언, 계시를 하나님에게서 받는다. 그의 책임은 하나님의 뜻과 참된 본성을 인간에게 알리는 것이며 또 인간에게 행하는 그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선지자는 죄를 비난하고 그 결과를 예고한다. 그는 의의 전파자이다. 때때로 선지자들은 인류의 이익을 위하여 영감을 받아 미래를 예고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주된 책임은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다.

모세는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신 18:15). 이 예언은 문맥상, 모세의 죽음 후에 이어진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게 바로 적용됨을 알 수 있다.(신 18장, 34:9-10, 호 12:10). 여호수아로부터 말라기에 이르는 선지자들은 모세의 이 예언을 부분적으로 성취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의 예언을 완전히 충족시키시는 유일한 분이시다(참조 요 1:21, 6:14, 7:40). 그분께서는 제2의 모세로서 당신의 백성을 지상 통치자들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
이사야로부터 말라기까지 구약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다. 사무엘은 사사시대 동안 활동하였고(삼상 3:20), 갓과 나단이 그 뒤를 이어 일하였다(삼하 12:1, 24:13). 주전 931년에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에는 아히야(왕상 11:29), 엘리야(왕상 18:1), 엘리사(왕하 2:9-14) 등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였다.
선지자들은 여러 직업적인 배경으로부터 왔는데,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제사장이었고, 이사야와 스바냐는 왕족이었으며, 다니엘은 바벨론의 총리였고, 사무엘은 사사였으며, 엘리사는 농부였고, 아모스는 목자였다. 그들의 배경은 달랐지만 하나같이 하나님의 기별자로 일했으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타락에 빠지지 않도록 지키고자 하셨다. 어떤 선지자들은 책을 썼고(대상 29:29, 대하 9:29), 어떤 선지자들은 쓰지 않았다(왕상 17:1, 왕하 2:15). 어떤 선지자들은 왕에게 조언을 했고(삼상 22:5), 어떤 선지자들은 백성에게 설교하였다(겔 3:17). 4세기 동안의 선지자 없는 기간이 있은 후, 침례자 요한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말 3:1)로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 선지자들을 통해 당신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성경은 이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선지자들은 그 배경과 교육과 성격이 다르고, 때로는 품성의 결함을 나타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별 선포자로 사용하셨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당신의 백성을 영적으로 이끄셨다.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하게 하신 말씀의 원칙은 세상 끝 날까지 전파될 것이다.

부가적용)
출애굽기에 모세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을 때 자신은 입이 둔하여 백성들을 설득할만한 구변이 없다고 하자 하나님은 아론을 너의 대언자로 세우라고 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출 7:1). 아론이 모세의 대언자가 된 것처럼,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는 것이 바로 선지자의 역할이고,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는 미래의 사건을 언급하지만 과거에 대한 회고도, 현재에 대한 평가도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예언은 반드시 미래사를 말하는 것이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된다. 성경에서 예언자들이 과거와 현재의 일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실 때, 주로 훈계할 때가 많다. 그래서 예언자는 훈계자란 뜻도 있다. 즉 그때그때의 상황을 잘 판단하여 훈계하는 것이 예언자의 역할이다.
"너희는 여기가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 7:4)고 훈계하고 있다. 이렇게 선지자들은 미래사를 말하는 것만 아니라 현재사를 가지고 백성들을 훈계하기도 한다. 또 훈계라는 말씀 속에는 가르침, 경고, 권고, 약속, 책망 등등 많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구약의 예언자들은 백성들은 훈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도덕적인 의무를 강조하고, 정의를 장려하며, 악의 파멸을 예고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구약에서 예언의 은사 혹은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언하는 대언자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수요일(1월 7일)
이스라엘의 여선지자들(삿 4:1-10)

도입)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녀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았다. 이것은 여성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다는 말이다. 그녀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남자 장수에게 전쟁을 하라고 명령도 내렸다(사사기 4:4-6). 드보라는 여선지자였고 이 직분은 제사장과 왕으로 더불어 기름을 부어 세우는 직책이었기에 메시야(기름부음 받은 자, 헬라어로 a christ)로 불렸던 것이다. 엄격히 제한을 받았던 구약시대에도 여자가 메시야가 되었다는 말이다. 절대로 여자가 남자를 주관할 수 없는가? 물론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결코 아내인 여자가 남편으로서 남자를 주관할 수 없다. 다만 교회의 한 일원(지체)으로서는 구약에서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카할'(모형적 교회)에서도 여성이 이스라엘 모두를 재판하고 명령하고 가르치고 다스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요시야 왕 시대에 성전을 수리하다가 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하였다(역대기하 34:14). 요시야 왕은 제사장 힐기야와 왕의 사신들을 보내어 여선지자 훌다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게 했다. 여선지자 훌다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 왕과 제사장에게 전했다. 구약성경에서 메시야(기름부음 받은 자)로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를 든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신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훌다는 여자 선지자였고 왕과 제사장들과 모든 장로들과 레위 사람들까지 그녀의 입에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했었다(역대기하 34:22-32). 왕과 제사장과 장로들과 레위 사람이 훌다의 말을 듣고 준행함으로써 신앙 부흥이 일어났다. 누군가가 여성은 말씀을 가르칠 수는 있어도 목사는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말들은 성경에 대한 무식한 소치로 하는 말이거나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회중을 위해 세우시는 권위를 무시하고 세상적인 자기 권위를 세우기 위해 하는 말일 것이다. 출가한지 일곱 해 후에 남편과 사별하고 금식하고 주야로 기도하며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섬겼던 안나도 구약시대에 속한 여선지자였다. 그는 결국 모든 인류를 완전히 구원하실 메시야가 탄생하심을 눈으로 똑똑히 보고 증거했다(누가복음 2:36-38).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언하는데 있어서 시므온이라는 남성(제사장) 뿐만 아니라 안나라는 여성을 선지자로 세워 사용하셨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1. 성경에는 몇 사람의 여선지자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습니까?(출 15:20-21, 삿 4:4-10, 왕하 22:11-20)
답: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은 여선지자로 불리었다. 그녀는 여인들을 이끌어 모세의 노래를 부른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참조 출 15:1, 21).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임명된 모세는 가족의 머리인 남자들을 주로 다루었다. 한편 미리암의 임무는 아마도 이스라엘 여인들을 이끄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모세보다 몇 살 위였으며(출 2:18),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따르면, 그녀는 훌(Hur)과 결혼하였는데, 훌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아론과 함께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었던 사람이다.(앤티퀴티스, 3권, 98)
미리암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동생 모세와 그의 아내를 비방한 불행한 사건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 그녀의 나병을 제하시기까지 백성이 7일간 진행치 아니하고 기다린 사건에서 알 수 있다(민 12:1-15).
드보라(삿 5장)는 비범한 여인이었던 것 같다. 남성이 주도하던 사회에서 그녀는 그 당시 여성들이 거의 상상할 수도 없었던 정치적 및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높은 영성을 지녔던 그녀는 가나안을 이긴 승리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으며(3-5, 13절), 조금도 자신이나 바락에게 돌리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어미”(삿 5:7)로서 그녀는 모성적 보살핌으로 그 백성을 돌보았고, 그들이 공의를 따르도록 조언하고 지도하였다.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았다.(삿 4:1-8)
이스라엘의 또 다른 여선지자로 훌다를 들 수 있다(왕하 22:14-20, 대하 34:20-28). 요시야왕은 훌다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그 백성을 벌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으나, 그 고난의 때는 요시야왕의 생전에 이르지 않았다. 요시야가 여호와 앞에 겸비히 행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선지자 예레미야와 스바냐가 있었지만 왕은 여선지자 훌다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교훈: 미라암, 드보라, 훌다 같은 여선지자들은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시기에 백성을 영적으로 이끌었으며, 하나님의 뜻이 옳게 실행되도록 주도하였다.

부가적용)
여성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창세기 1:27), 구약시대에 여성들의 지위는 신약시대의 교회 안에서 지위와 현저하게 달랐다. 구약성경에 여성들은 마치 아버지나 남편의 소유물처럼 취급을 받았고 남자들이 받는 것과 같은 율법 교육을 받는데도 상당히 제한을 받았다. 그러나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로서 거듭난 성도들로 구성된 교회는 예수님을 맏아들로 하는 아들들만이 있음을 보여준 데 의미가 있다. 구약적 여성관은 교회에서 여성들이 어떤 직분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기대고 싶은 배경이 작용하여 '기저귀를 차는 여자'라는 어처구니없는 표현까지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여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직분에 절대 접근금지령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여행하는 과정을 광야교회라 불렀다(사도행전 7:38). 이는 세상으로 나와 하늘의 나라로 여행하는 이 땅의 교회에 그림자이기 때문이다(고린도전서 10:1-11). 히브리어로 '교회'는 회중(會衆)이라는 뜻의 לꕗꙌ[카할]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으로 홍해를 건넌 사건을 바울은 바다에서 침례를 받은 것이라고 풀었다. 홍해를 건넌 후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찬양을 했는데 성경은 그녀를 선지자라 불렀다(출애굽기 15:20,21). 미리암은 여자였으나 '기름부음을 받은 자'요 모세와 아론 다음가는 선지자였다(참고 시편 105:15). 기름부음 받은 자는 메시야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모형과 그림자에서 하나님께서 여성을 선지자로 쓰셨다면 실체인 신약의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여성을 쓰시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모세는 여호수아가 어떤 이들이 예언하는 것을 금하라고 청하자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야훼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대답했다(민수기 11:29).

목요일(1월 8일)
신약의 선지자들(마 11:11)

도입)
예언의 은사는 신약에서도 계속된다. 그리고 신약에서도 예언은 미래사를 예언한다.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성령으로 천하가 크게 흉년이 들것을 예언하였고, 그대로 되었다"(행 11:27-28). 이런 예언은 우리가 제일 좋아하고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만이 참 예언자이고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 예언 기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예언의 은사의 극히 일부분이거나 혹은 잘못된 마귀의 역사에 빠지기 쉬운 부분이다. 안디옥 교회에 예언의 은사를 가진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성령의 지시를 받고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안수하고 선교사로 파송을 한다(행 13:1). 이것도 예언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구약 선지자들의 기간이 끝나고 400년의 공백 기간이 있은 후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 그 400년 동안에 많은 유대인들이 책을 기록하였지만 그 어느 것도 영감 받은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1. 신약의 선지자들은 누구이며, 선지자와 사도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눅 1:66-67, 요 1:6-7, 행 11:27-28, 13:1, 계 1:1-3)
답:
신약 헬라어에서 사도(아포스톨로스)라는 단어는 대리자, 사절, 대표자를 의미했다. 가령, 요세푸스는 유대의 대표자로서 로마에 파견되는 사절단을 지칭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다.(앤티퀴티스, 17권, 11)
신약에서 사도는 사명을 가진 대표자라는 개념을 띠고 있다. 이 용어는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특별한 전도의 사명을 위임하여 파송하실 때도 사용되었다(마 10:2-6). 열두 제자는 또한 사도로 불리었는데,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특별한 권세를 받았으며, 이전의 선지자들이 목격하지 못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요한과 바울 같은 사도들은 또한 선지자들이다. 그러나 모든 사도들이 선지자는 아니다. 에베소서 2:20에 따르면, 사도와 선지자는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2. 마태복음 11:11에서, 침례자 요한이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보다 큰 까닭은 무엇이며, 또한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마 11:11)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답:
침례자 요한은 모든 선지자들이 증거했던 그리스도의 오심을 선포하는 특권을 가졌기 때문에 가장 위대한 선지자이다(참조 눅 24:27, 요 5:39, 46). 아브라함과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였으나(벧전 1:10-11), 요한만이 그분을 직접 목격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의 모든 선지자 직분은 요한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 한편 침례자 요한은 은혜의 왕국의 문턱에 있었지만, 그 이후의 신자들은 누구나 메시야의 예언이 완전히 성취됨을 보았다.

교훈: 침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선포하고 목격하는 특권을 가졌다. 메시야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 것을 아는 우리는 더 큰 복을 받았다.

부가적용)
요한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 그의 출생 전에 천사를 통해 미리 알려주셨던 선지자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나와 “여호와께서 오신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모든 백성들은 나와 너희 하나님을 보라!”하고 크게 외칠 것을 예언하였다. 사 40장 3∼10절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예정된 시간이 흘러갔을 때 하나님은 이 예언의 말씀을 침례 요한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명으로 이루어지게 하셨다. 이렇듯 요한은 이사야서에 예언된 광야의 외치는 자의 사명으로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고 예수님께 침례를 행하여 증거하고 나타내었던 것이다. 요한이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활동했던 선지자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이신 성령과 신부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그리스도의 출현 이후에 활동하는 선지자들이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과 환난의 길에 동참할 경우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도 참여할 축복이 약속된 선지자들이다. 자신이 쇠하여가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스도를 위해 예비하는 삶을 살아간 침례 요한의 믿음 생애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복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의 믿음 생애를 늘 조명해보아야 한다. 쇠하여가는 길에도 그처럼 침례요한이 충성하였거늘 그리스도와 함께 흥함의 길을 약속받은 우리들은 어떠한 충성을 보여야 하겠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과 영광의 길에까지 동참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이며 얼마나 크나큰 영광이겠는가?

금요일(1월 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과제: 부조와 선지자, 제13장 ‘믿음의 시험’(145-155), 제22장 ‘모세’(241-256).

“애굽에 체류하는 동안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약점과 불완전함을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나타내었다. 사라가 그의 아내라는 사실을 숨김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그의 생애 속에서 그처럼 자주 존귀하게 예증되었던 고상한 신앙과 용기의 결핍을 나타내었다.”(부조와 선지자, 130)
“모세는 겸손하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최후의 상급이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이와 비교할 때 세상의 이익은 가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바로의 장엄한 궁전과 왕좌가 모세를 유인했으나, 그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는 죄악의 쾌락이 그곳에 있음을 알았다. 그는 화려한 왕궁과 왕관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는 죄로 오염되지 않은 왕국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받게 될 고상한 영예를 택하였다. 그는 하늘의 왕께서 이기는 자의 머리에 씌워주실 썩지 않을 면류관을 믿음으로 보았다.”(엘렌 G. 화잇, 투쟁과 용기, 81)
“모세의 얼굴에서 반사된 영광은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이 받을 축복을 예시(例示)한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면 할수록 그리고 그분의 요구를 더 분명히 알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더 완전하게 닮게 되고 더 쉽게 그분의 품성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증거한다.”(부조와 선지자, 33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여러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가지고 있던 품성의 결함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보게 됩니까? 한편 이들의 좋은 품성의 특질에서 어떤 약속을 발견하게 됩니까?

2. 우리는 개인적으로 어떤 선지자적 사명을 부여받았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 사명을 더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은 무엇이며,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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