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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과 그리스도와 연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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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폴쵸 작성일08-12-11 10:51 조회4,072회 댓글0건

본문

제 12과 그리스도와 연합함
12월 20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17분)

도입)
어떤 사람이 마카리우스에게 물었다. "세상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마카리우스는 "공동묘지에 가서 무덤 안에 누워 있는 시체에게 욕을 한바탕 퍼붓고 오게나" 말했다. 그 사람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마카리우스가 시키는 대로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마카리우스는 그를 다시 공동묘지로 보냈다. 이번에는 칭찬을 하라고 했다. 그는 또 시키는대로 했다. 돌아온 그 사람에게 마카리우스가 물었다. "자네가 욕설을 퍼부어 대니까 시체들이 성을 내던가?" "아닙니다." "그럼, 칭찬을 하니 그들이 좋아하던가?" "아닙니다." "세상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그와 같은 것이라네." 모든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 죄에 대해 육체에 대하여 그리고 악에 대해 죽는다. 우리가 믿고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 받은 후 그리스도와 생명의 연합을 가지게 되었고 그분과 합하게 되었다. 우리가 그분과 합하는 것은 그분이 먼저 우리와 합한 것에 근거한 것이다. 그분이 우리와 합하심에 있어서의 첫 번째 단계는 육신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육신이 있는 사람이 되신 것이다. 하나님의 신분으로서 그분은 사람과 하나로 합하기 위해서 인성을 지닌 사람의 몸을 취하셨고 그리하여 (하나님-사람)이신 분이 되셨다. 이것이 그분이 우리와 합하심의 시작인 것이다.

기억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연구범위: 롬 5:19, 6:3-6, 8:9, 고후 5:17, 갈 4:5-7, 6:15, 엡 4:24, 골 3:10.

중심 사상: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우리를 불러 그분의 새로운 가족이 되게 하는 사역으로 이어짐을 확인한다.

안식일 오후
그리스도의 희생은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준다. 여기에는 구주와 주님이신 그분과의 영원한 연합의 가능성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침례 예식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 예식을 통하여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을 대신한 것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그분과 연합하게 되고, 그 연합 안에서 그분의 희생의 모든 은택을 누리며, 그분의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된다. 그리스도와의 이 연합은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분과 교통할 뿐 아니라, 그분의 교회 안에 있는 다른 이들과도 서로 연합하게 된다.

일요일(12월 14일)
두 부류의 사람들

도입)
아담의 죄가 어떻게 온 인류의 죄가 될 수 있는가? 성경은 아담의 죄가 온 인류의 죄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담이 지은 죄가 얼마나 크기에, 얼마나 치명적이기에 그 죄가 모든 사람의 죄가 되었을까? 아담의 죄는 물론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 앞에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죄를 지었다. 그러나 아담의 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가 최초로 죄를 세상에 들어오게 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죄가 들어왔다는 것은 어떤 도시에 방사능이 유출된 것과 같다. 한 사람의 실수로 방사능에 노출되어서 심각하고 결정적인 피해를 입게 된 것과 같은 것이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을 지배하고 점령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이런 비유를 들 수 있다. 어떤 상수원에 어떤 사람이 극약을 뿌린 것과 같다. 그래서 그 물을 먹는 자마다 죽게 된 것이다. 에덴동산에 죄가 들어오고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게 되어 인간은 사망을 당하고 죽음의 존재가 된 것이다. 죽음이란 사단의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죽음이 없다. 그에게는 영생과 생명이 있을 뿐 이다. 그러나 인간은 죽어야 하는 존재이다. 왜 인간은 하나님과 영원히 살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는가? 죄가 인간 속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죽지 않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된 것이다.

1. 다음 도표에서 아담에 의해 형성된 타락한 인류와 그리스도에 의해 형성된 새롭게 된 인류의 특성을 비교해 보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해 보십시오.

아담 그리스도

1. 하나님의 아들(눅 3:38) 1. 하나님의 아들(눅 3:22)
2. 불순종함(롬 5:19) 2. 순종함(롬 5:19)
3. 죄를 들여옴(롬 5:12) 3. 은혜를 가져옴(롬 5:20-22)
4. 죄의 지배를 가져옴(롬 5:17) 4. 생명의 지배를 가져옴(롬 5:17)
5. 모든 후손이 죄인 됨(롬 5:19) 5. 만민을 의롭게 함(롬 5:19)
6. 정죄를 가져옴(롬 5:18) 6. 칭의를 가져옴(롬 5:18)
7. 모두 죽게 됨(고전 15:21) 7. 모두 살게 됨(고전 15:21)

아담의 타락은 그 자신의 영적인 죽음과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담의 모든 후손들도 아담과 마찬가지로 죄와 죽음을 극복할 수 없는 그런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아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옛 인류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가족에 어떻게 소속될 수 있는가? 그 유일한 길은 거듭남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가족은 혈육에 의하지 않고 위로부터 난 사람들로 이루어진다(요 3:3, 5-6).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의 방편을 발견한 사람들로서, 그분을 믿음으로 영생을 소유한 자들이다(15절). 그들은 이제 새로운 피조물에 속하였고 굴복케 하는 죄의 세력에서 벗어난 자들이다(고후 5:17).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늘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가족으로의 입양이라고 설명한다(갈 4:5-7). 예수께서는 침례 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는데, 우리도 침례 시에 양자(養子)됨을 통하여 자녀의 명분을 얻게 된다. 양자가 된다는 것은 자녀보다 못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롬 8:16)
교훈: 우리는 선천적으로 아담처럼 죄와 죽음의 종된 자들이었으나,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영생을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도 허락하셨다.

부가적용)
아담 한사람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죄로 죽었지만 그것을 그대로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인류를 구원하기로 결정하시고 그 백성들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뽑아내고 살려내고 축복하시기 위하여 한 사람을 준비하셨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로마서 5장에는 한사람 아담, 한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한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는 죽음의 존재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또 한사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를 구원코자 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사람 아담과 또 한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둘째 아담이라고 부른다. 첫째 아담이 실패한 모든 것을 두 번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하게, 완벽하게 회복시키신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월요일(12월 15일)
만물을 새롭게 함: 새로운 삶(갈 6:15)

도입)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신 선물이다. 인간은 죄인으로 도장 찍혔다. 정죄되었다. 그러나 이 죄에서 우리를 풀어주시고 새롭게 하여 주신 것이다. 구원은 이런 의미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 그런가? 다른 사람이 지은 죄로 왜 내가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저 사람이 잘못했는데 내가 죄인이 된 것이다. 그래서 억울한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어렵다. 또 한 가지는 내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의인이 된 사실이다. 저 사람이 잘했는데 내가 의인된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구원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상식이나 이성이나 경험과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이성과 합리와 맞아 떨어진다면 이것을 믿기는 쉬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수 믿게 된 것이 기적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최종 목표는 만물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께서는 죄가 남긴 상처를 영원히 제거하신다. 이 새롭게 됨에 대한 소망은 구약의 선지자들도 예고한 바 있는데, 특히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관해 말했다(사 65:17). 이러한 구약의 개념은 신약에 와서 예수님을 통한 구속 사역을 거치면서 보다 완전하게 발전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새롭게 됨'이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기대하는 소망일 뿐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경험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더불어 새 언약에 들어갔고(막 14:24), 이미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고 있다(롬 6:4). 이 새 생명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것이다.
구속 사역은 본질적으로 재창조 사역이며,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귀결되는 근본적인 변화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재창조 사역은 문자적인 새 하늘과 새 땅과 더불어 시작되지 않고, 우리의 옛 몸의 재창조로부터 시작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새롭게 된 인류를 창조함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죄의 문제가 본래 인간의 타락과 직접 관련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에서 죄의 세력을 제거하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다. 이 새롭게 된 인류는 신성과 인성을 영원히 겸비(兼備)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새로운 인류에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정신을 소유해야 한다.
이 새롭게 된 인류는 역사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어떤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해 잘 드러나 있다. 이 새롭게 된 인류는 인종이나 사회적 신분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연합시키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함께 교회로 이끄셨다고 말하면서,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짓”는 것(엡 2:15)이 그분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새롭게 된 인류는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었는데, 이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하게 된 하나님과의 연합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교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함으로 새롭게 된 인류의 일원이 되었다. 우리를 새롭게 재창조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자.

부가적용)
우리는 그의 부활을 본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자라고 있다(롬 6:45). 「그의 부활을 본받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의 새로움이다. 우리는 모두 이 생명의 새로움 안에서 행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이 두 가지를 보아야 한다. 우리는 침례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자라는 것을 보아야 하고, 그의 부활을 본받아, 즉 그분의 부활한 생명의 새로움 안에서 그분과 함께 자라야 함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그와 함께 죽고 이제 그와 함께 자라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는 침례 안에서 그와 함께 장사되었고, 이제 그의 부활 안에서 그의 거룩한 생명 안에 그와 함께 자라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깨달은 대로 행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새로움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화요일(12월 16일)
그리스도와의 연합(롬 6:3-6)

도입)
우리는 원래 아담 안에서 태어났고 그리스도 밖에 있었지만(엡 2:12) 믿고 침례를 받음으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체험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는 것의 시작이다. 고후 1: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주님 안에서 믿고 침례를 받았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견고히 부착시키기 위하여 그분의 영을 우리 안에 두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를 받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연합됨은 그분 안으로 들어감으로 시작되고, 그 분 안에 머물고 그분 안에 거함으로 계속되며, 더욱이 그분과 함께 삶으로 강화되어진다. 이것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가 그분과 연합하고 그분을 생명으로 취하는 것(골 3:4)을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으로 그리스도를 취하고 그분 안에서 살면서 그분과 함께 연합되는 것의 극점은 그분이 나타나실 때에 영광중에 그분과 함께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우리의 체험의 최종적인 완성이다.


1. 바울은 인간과 그리스도의 연합을 어떻게 묘사했습니까?(롬 6:3-6, 고후 5:17)
답:
그리스도께 대한 개인적인 믿음의 헌신 없이는 아무도 자동적으로 그분 안에 거할 수 없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결되는 일은 침례를 통해 표현된다. 침례의 중요성은 대단히 크다.
첫째,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대신한 죽음이며,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 즉 새롭게 된 인류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합하여 침례를 받고 그분과 더불어 영원한 관계를 맺는다. 셋째,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받았다"는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롬 6:3, 8). 그리하여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는다(골 2:13). 이는 새로운 생명이 오직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탄생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분과 함께 '죽는다'는 말은 그분을 우리의 구주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을 구주로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또한 회개와 침례와 죄의 용서를 경험한다(행 2:38). 참된 회심은 성경의 진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죄인이며 완전히 죄와 죽음의 노예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절망적인 상태가 오직 예수님을 통해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끝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합한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유일한 주님이심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부활의 능력에 참여한다는 것은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함을 가리킨다. 바울은,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2)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바울은 여전히 죄가 우리를 지배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라(롬 6:12)고 하였다.

교훈: 우리는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으로 그분과 연합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게 된다.

부가적용)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꿈꾸어 본다. 하지만 구체적인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어쩌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이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는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으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칼빈은 새로운 비유를 추가한다. 이것이 바로 결혼의 비유이다. 결혼은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인간으로서 더는 가까워질 수 없는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이다. 이러한 부부관계는 인간으로 서로 비슷한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고, 동시에 한 인간으로써 너무 다른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부부는 서로 너무 많이 달라 전혀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지만, 만약 둘이 한 몸이 됨을 느꼈을 때는 부부는 혼자 사는 것보다 모든 면에서 안정감, 편안함을 느끼게 되어 행복하게 될 것이다. 부부관계에서 이러한 삶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신뢰일 것이다.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는 전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지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지거나, 어렵다고 느낄 수 있으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가 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받는 모든 것을 부부관계의 신부로서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칼빈에 의하면 우리와 그리스도와 연합된 관계는 인간의 결혼관계를 통해 설명될 수 있는 그 이상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인간인 우리는 인간의 결혼관계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요일(12월 17일)
"그리스도 안에서"(롬 16:7)

도입)
침례의 의미는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으로 넣는 것이다. 그것은 의식(儀式)이나 형식이 아니다. 그것은 극히 중요한 체험이다. 침례의 행동에는 반드시 영적 이동이 있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침례에 대해 말해서는 안된다. 결코 의식적(意識的)으로 침례를 행하지 말라. 침례를 행할 때 우리에게 그들을 그리스도 안으로 넣고 있다는 확신과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침례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면 그 침례를 한낱 외적 형식이나 의식으로 그르치지 않을 것이다. 침례란 아담의 지체들을 죽음에 넣음으로써 그들을 아담으로부터 그리스도 안으로 옮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 받았다. 흠정역(King James Version)에서도 로마서 6장 3절에서 「안으로」라는 말을 사용한다. 침례의 형식과 방법에 대해 논쟁하는 사람들은 침례의 본래의 목적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침례를 행할 때마다 우리는 그들을 그리스도 안으로 넣는데 주의해야 한다. 형식적인 의식(儀式)만을 계속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으로 넣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당신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흘러 떠내려 갈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배도자의 무리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로 발견될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당신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해주고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 줄 것입니다. -존넬슨 다비-

1. 다음 구절들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롬 16:7, 갈 3:28, 엡 1:1, 골 1:28, 살전 4:16)
답: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어떤 경우에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신 것을 나타내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고후 5:19)라는 구절을 예로 들 수 있다. 여기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크게 두 가지 개념을 전달한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화목케 하시는 유일한 방편임을 의미하고, 둘째는 우리가 오직 그분과 연합함으로써만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할 수 있음을 뜻한다. 사실상,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주어지는 구원의 모든 은총은 오직 그분 안에서만 우리에게 유효하게 된다. 거기에는 은혜(엡 1:2), 영생의 선물(롬 6:23), 거룩한 삶으로의 부르심(빌 3:14), 택하심(엡 1:4), 구속(골 1:14), 의롭게 됨(갈 2:17), 용서(엡 4:32), 성화(고전 1:2) 등이 포함된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지음을 받았고(엡 2:10),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었으며(엡 3:12), 하늘에 앉혀졌고(엡 2:6), 기업을 가졌으며(엡 1:10-11), 이기게 되었고(고후 2:14),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빌 4:13),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었다(골 2:7). 이 모든 것은 오직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행하는 모든 일이 그분과의 연합을 통해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기뻐하고(빌 3:1), 그분 안에서 자랑하며(롬 15:17), 그분 안에서 든든히 서고(빌 4:1), 그분 안에서 강건하여지며(엡 6:10), 그분 안에서 믿음의 사역을 행한다.(갈 5:6)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우리를 악의 세력 아래 가두어 두었던 죄에 대하여 종지부를 찍는 것을 뜻한다. 이제 그리스도는 우리 존재의 중심이시며,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행위를 지도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삶의 중심을 둠으로 우리를 위해 준비된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은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이 아닌 그분과의 연합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

교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하나님과의 화친하게 되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모든 영광스러운 미래를 소유할 수 있게 된다.

부가적용)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영원한 것이다. 변함이 없다. 이루어졌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합되었다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 때문인가? 이 연합은 전혀 나의 경건과 선행에 근거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근거했기 때문에, 내 안의 조건의 변화에 따라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이 연합이 이루어지는 매체, 도구는 성령이다. 성령 안에서 주님과 우리의 인격이 만난다. 연합이 영구하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 안에 거하는 것은 영구하기 때문이다. 구약에서는 주님의 구속사역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영광을 받으신 주님이 함께 하시는 성령으로 임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신고로...” ‘받는다’는 의미는 ‘성령충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성령 충만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목요일(12월 18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교회(롬 8:9)

도입)
야당에 속한 국회의원을 아버지로 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늘 현 정치에 대해서 불만을 터뜨렸고 비판적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여당의 국회의원 아들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 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 여성은 어떻게 변했을까? 놀랍게도 그녀는 현 정권을 옹호하게 되었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게 되었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바로 결혼이다. 결혼은 어떤 인격체와의 연합이다. 결혼은 실재(實在 / Reality)이다. 결혼은 한 여인의 신분을 바꾸어 놓는다. 그뿐만 아니라 결혼은 그 여인의 가치관과 세계관과 삶과 문화도 바꾸어 놓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과 연합하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주 예수님과 연합의 관계에 있는가? 예수님은 자신과의 연합을 머리와 몸,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설명하신다. 이처럼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유기적인 연합을 통해 아들의 형상, 신의 성품, 그리스도의 마음에 참여한다. 우리의 마음과 그리스도의 마음이 합일이 될 수 있다.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바울은 계속 강조한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부모를 이해하려면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신학적으로 알아도 그 안의 그리스도의 마음을 모르면, 이 연합의 핵심을 간파할 수 없다.

1. 로마서 8:9을 읽으십시오. 본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
성령과 교회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로마서 8:9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 본문에는 육신과 성령 사이의 대조가 나온다. 신자들은 육신에 있지 아니하다. 즉 그들은 타락한 본성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반역하는 상태에 있지 아니하다(6-8절). 그들은 성령 안에 거하고 영적으로 살아있으며(10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14절), 죄가 그들을 지배하지 못한다. 본문은 인생의 두 가지 상반된 길을 묘사한다. 하나는 옛 피조물에 속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피조물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인류에 속하는 것이다.
둘째, 성령 안에 거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께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은 성령 안에 거한다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성령과 그리스도는 동일한 분이 아니시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신자들과 관계를 맺으신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은 성령과 연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것이 된 선물들은 또한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은사(恩賜)이기도 하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며(고전 6:11),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고(롬 14:17), 성령 및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를 나눈다(고전 1:9, 빌 2:1).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더불어 연합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더불어 연합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동시에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는 것이다(고전 12:13).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한 것은 신자들이 상호간에 그리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연합하고 서로 의존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연합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반영해 준다. 교인들은 종종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간주된다.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행위에 대하여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산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교훈: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음으로 교회의 일원이 된다.

부가적용)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어떤 목적으로 성령님의 침례를 받았을까? 그것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것은 주된 목적이 아니었다. 또한 방언을 하거나 어떤 특별한 경험을 즐기도록 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을 한 몸, 즉 살아있는 하나의 유기체로 결합시키기 위함이었다. 성령 침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하는 것이다. 믿는 자들이 공통의 이해관계에 의해 함께 모인 단순한 개개인들의 집합체가 아닌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인간의 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와 같이 좁은 의미이든 혹은 넓은 의미에서이든 그리스도의 몸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인간의 몸은 조직체가 아니라 몸의 각 부분의 똑같은 생명을 가지로 있고 머리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유기체이다. 개인적으로 성령 침례를 받았다거나, 개인적으로 성령 침례를 구하라는 권고가 주어진 적은 없다. 그것은 집합적이며 단체적이다. 이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성령 침례를 받음으로써 그들은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이 집단 침례였듯이 온 회중이 함께 연합하여야 하는 의미가 보여 지고 있다. 사도행전 시대에 120명의 남녀 제자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다 한 장소에 모여 있었다. 그 때 홀연히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셔서 그들을 "모두" 충만케 하셨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다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이처럼 놀라운 방법으로 하늘에 계신,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생명 있는 유기체의 한 구성원이 된 것이다. 오늘날도 개인적 그리스도와 연합뿐만이 아니라 이와 같이 온 교회의 연합이 필요한 것이다. 한 사람의 죄가 온 공동체에 영향을 미쳤듯이 온 공동체에 하나님이 충만케 하시는 축복이 내리도록 간구해야 한다.

금요일(12월 19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에게 당신 자신으로부터 새 생명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것, 죄인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곧 구속 사업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아버지와 하나이듯이 인류가 당신과 하나 되게 하시려고 인성을 취하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들이 거룩한 성품의 참여자들이 되고, 주님 안에서 온전케 되게 하시려고 인성을 쓰셨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51)
“그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만일 그대가 실수가 많고 속절없으며 정죄 받은 죄인임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 만일 그대가 자아를 높인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 만일 그대 안에 어떤 선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구주의 자비하심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대의 가문과 명성, 재산과 재능, 덕성과 자선 행위, 그대 안에 있거나 그대와 관련된 어떤 것도 그대의 영혼을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지 못한다. … 그분에 관하여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대는 그분을 믿어야 한다.”(교회증언, 5권, 48-4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현재 우리 속에는 새 사람과 옛 사람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이 둘을 어떻게 다루어야 합니까? 어느 것이 더 쉽고 자연스럽게 표출됩니까?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2.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은 교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인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요약: 아담은 자신의 죄를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류를 탄생시켰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연합하신 가운데 이 땅에 오셔서 원수를 물리치시고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며 죄의 세력에 굴복하지 않으심으로 하나님과 연합한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키셨다. 우리는 그분을 믿음으로 새로운 인류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수님과 그분의 교회와 더불어 연합한 새 삶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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