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구원에 관한 은유적 표현들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9과 구원에 관한 은유적 표현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8-11-27 22:09 조회4,491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2008년11월 29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14분) (李奉周)

제9과 救援에 關한 隱喩的 表現들

<擴大鏡>
◉ 1. 은유법(隱喩法)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修辭法)을 은유법이라 말한다.

◉ 예수님의 은유적(隱喩的) 칭호(稱號)들의 쉬운 예(例)를 들어 보면-
(1) 생명(生命)의 떡. (요 6:32-35)
(2) 세상(世上)의 빛. (요 8:12)
(3) 양(羊)의 문(門) (요10:7-10)
구약성경에서도 <문(門)>은 (시118:20).
신약성경에서 <문(門)>은 몇 차례 비유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눅13:24; 행14:27; 고전16:9).
예수님께서 자신을 <길>에 비유한 (요14:6) (행4:12).
(4) 선(善)한 목자(牧者)(요10:11-18)
구약성경에서 (시23:1. 80:1, 95:7, 100:3; 사40:11; 렘31:10),
(시78:70-72; 사63:11; 겔37:24).
(5) 참 포도나무(요15:1-11)
(6) 부활(復活)이요 생명(生命)
자신을 가리켜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요11:25-26).등등의 많은 은유들이 있다.

◉ 예수님께서는 속전(贖錢)을 지불(支拂)하시고 죄(罪)의 노예(奴隸)에서 즉 사단의 노예(奴隸)로 부터 구원(救援)해 주시는 말의 “구속(救贖)”과 “화목(和睦)”과 “칭의(稱義)”등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희생(犧牲)으로 이루어진 것 등의 은유(隱喩)로 이번 주에 공부할 수 있음에 감사드리자.

日 (11월 23일)
救贖 (막 10:45)

◉ “구속”이라고 한글로만 써 놓고 해석(解釋)한다면 정반대(正反對)의 뜻으로 생각 할 수가 있다.
1. “구속(拘束)” = 행동이나 의사(意思)의 자유를 제한(制限)하거나 속박(束縛)함의 뜻이 있고
2. “구속(救贖)” = 죄의 속박(束縛)으로부터, 즉 죄의 종으로 부터의 자유(自由)함을 뜻하는 말이
누구나 1번이 아닌 2번의 구속(救贖)을 원하지만 아주 지극히 쉬운 일이지만 돈도 필요 없는 쉬운 일이지만 이를 받아들이기가 참으로 쉽지 않는 것을 보면 생각만 해도 답답해진다.

◉ 구속(救贖)이란 속전(贖錢)을 지불함으로 빚이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하는데, 이 개념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 신약(新約)에서 사용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온 세상은 죄의 포로가 되었고, 율법은 감시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갈 3:22-23).
죄의 노예(奴隸)가 된 인간을 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죽음뿐이었다(롬 6:6, 23).
그리고 그 빚을 갚는 길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값을 지불하시고, 당신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본래 죄의 종이더니”(롬 6:17),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된” 것이다.(18절) (교과 122)

◉ 영감의 글에서 말씀하시는 구속(救贖)
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목적 즉 구속(救贖)하시는 사랑의 신비(神秘)는 “천사들도 또한 살피기를 원하는” 주제로서 무궁한 시대를 통하여 그들의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구속(救贖)받은 자들이나 타락하지 않은 자들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들의 과학과 노래를 찾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치는 영광은 자아 희생적(自我犧牲的) 사랑의 영광임이 드러날 것이다. 갈바리에서 비쳐 나오는 빛으로 볼 때 자아를 부정하는 사랑의 법칙이 이 세상과 하늘의 생명의 법칙임이 드러날 것이다.”(소망, 19)

② “구속 사업에는 강제가 없다. 외부 압력이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성령의 감화 아래서 누구를 섬길지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져 있다.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할 때 일어나는 변화 가운데 가장 높은 의미의 자유가 있다. 죄를 버리는 것은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 스스로 사단의 지배를 벗어날 힘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크게 그 필요를 느껴 자신보다 더 높은 힘을 구할 때 영혼의 힘에는 성령의 거룩한 힘이 불어 넣어져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의지의 지배를 받는다.”(소망, 466)

③ “이전에도 성령께서는 세상에 계셨으며 구속 사업이 시작된 바로 그 때부터 그분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오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동안에는 제자들은 다른 조력자를 바라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지 않게 되자 비로소 제자들은 성령의 필요를 느끼게 되고 그때에 성령께서는 오실 것이었다.”(소망, 669)

④ “사단과 배도의 무리인 악의 동맹자들도 구속 사업의 이 큰 위기를 한 결같이 바라보았다. 선과 악의 세력들은 그리스도께서 세 번 반복하신 기도에 어떤 응답이 올 것인지를 보려고 기다렸다. 천사들은 거룩하신 고통 자에게 구원을 가져다 드리기를 열망하였으나 그렇게 하지 않아야만 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피할 수 있는 길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두려운 위기, 만물이 위기에 처하였으며 신비스러운 잔이 고통하시는 자의 손에서 떨고 있던 그 때에, 하늘이 열리며 그 위급한 시간에 폭풍이 휘몰아치는 어두움 가운데 빛이 비추었는데, 사단이 떨어진 그 지위를 차지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서 있는 힘 있는 천사가 그리스도 곁에 내려왔다.
천사는 그리스도의 손에서 잔을 취하려고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사랑의 보증으로 그리스도께서 이 잔을 마시도록 격려하려고 온 것이었다. 그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겸(兼)하여 가지신 탄원자에게 힘을 주려고 왔다.
그리스도의 고통의 결과로 구원 얻게 될 영혼들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 천사는 그리스도에게 열려 있는 하늘을 가리켰다. 그 천사는 그분의 아버지가 사단보다 더욱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시므로, 그분의 죽음은 사단의 계획을 완전히 좌절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이 세상 나라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그분께 보증하였다. 인류 가운데서 큰 무리가 구원 곧 영원한 구원을 얻는 것을 볼 때에 그분은 영혼의 수고에 만족하실 것이라고 그 천사는 말하였다.”(소망, 693)

⑤ “너 양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미 4:8). 화염검이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부부를 내쫓은 이래 성도들이 “그 얻으신 것을 구속”(엡 1:14)할 시기를 열렬하게 사모해 온 그때가 왔다. 원래 사람에게 그의 나라로 주어졌으나 사단의 손으로 넘어가서 오랫동안 강한 원수에게 점령당해 있던 땅은 위대한 구속의 계획으로 말미암아 다시 사람에게로 돌아왔다.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땅도 …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사 45:18)섰다. 땅이 구속받은 자들의 영원한 거처가 될 때 하나님께서 땅을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이 성취된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시 37:29).”(쟁투, 674)

⑥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한 당신의 순종의 생애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성취하셨다. 구속 사업은 당신의 본체를 버리시고 다른 형체를 취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본체에 인성을 쓰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본체에서 나온 한 실체를 인성에게 주셨다. 그리스도 안에 인성을 이루며 타락한 인류를 신성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구속 사업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가 마치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당신과 하나가 될 수 있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사랑하신 것처럼 인간을 사랑할 수 있으며 거룩한 성품의 참여자들이 될 수 있고 주님 안에서 온전하게 되도록 하기 위하여 인성을 쓰셨다.”(1기별, 250)

◉ 죄의 노예가 되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구속(救贖)하시고, 죄의 삯인 사망에서 건져내심으로 영생의 특권을 되찾아 주셨다.

月 (11월 24일)
和睦 (고후 5:18-21)

◉ 하나님은 화목(和睦)의 창시자(創始者)요 집행(執行)자이시다.
이것은 구약(舊約)의 주제들 곧 하나님의 긍휼(矜恤)(출 34:6-7; 시 103:8-14; 사 43:25)과 자기 백성과 세우신 언약의 선물(膳物)(렘 31:31-34)과 일치된다.
하나님에 의해 성취된 화목은 오로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가까이 접할 수 있게 하는 성취된 행동으로 나타난다. (롬 5:10)

하나님께서 화목의 문제를 주장하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는 자들에게는 즐거움의 근거가 된다. (롬 5:11)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하나님 편에 있는 적대감만을 제거(除去)한 것이 아니라 그 적대감을 제거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사에 참여하실수 있게 하셨다.
이때에야 인간은 비로소 화목의 과정을 시작하신 하나님을 대할 수 있게 된다. (롬 5:10; 골 1:21)
동시(同時)에 십자가(十字架)상의 예수님의 죽음은 믿는 자를 위한 속죄제물(贖罪祭物)이 되심을 통해 속죄(贖罪)를 유효(有效)케 했다. (고후 5:21) 그리하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인간의 죄악 된 상태에 들어가실 수 있게 했다. (롬 5:10, 엡 2:13, 골 1:20-22)

☞ “화목(和睦)”은 사도 바울의 복음 이해(理解)에 대한 중심(中心)개념(槪念)이 되고 있다.
사도 바울이 고집이센 고린도 교인들에게 호소하는 심정이 담긴 구절(句節)인 (고후 5:18-21)에서 화목에 해당하는 단어(單語)가 다섯 차례나 나타난다.
구원(救援)사에서 하나님의 활동의 총화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고후 5:19절, 참조 롬 11:15)라는 기술에서 포착이 된다.)

◉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죄 지은 인류와 화목하시고, 또한 화목케 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기셨다.

火 (11월 25일)
稱義 (롬 3:19-24)

◉ 1 .칭의(稱義)란 무엇인가 ?
인간을 속죄하기 위해서 피 흘려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여기심을 받는 것이다.

< 말씀 >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함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4 : 2- 8 )

2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여기심을 받는 가 ?

< 말씀 >
* 어떤 사람도 율법의 행위로써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자는 없다
그것은 율법을 다 지키며 사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해주는 기능을 가진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 : 20 )

* 모든 인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의 피에 의해서만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3 : 24 )

* 누구든지 나를 대신해서 피 흘려주신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 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 : 28 )

*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 믿음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是認)하는 신앙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救援)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義)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是認)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 : 9-10 )

3 .칭의(稱義)의 결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和平)케되며 의로운 백성으로 칭해주신다.

< 말씀 >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린다.

◉ 신약(新約)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설명하기위하여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 짐을 지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불의(不義)한 우리를 의(義)롭다고 칭(稱)하실 수 있게 되었다.
칭의(稱義)의 선물(膳物)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신앙으로 반응을 하자.

水 (11월 26일)
贖罪의 犧牲 (롬 3:25-26)

◉ 속죄(贖罪)의 피
"피 흘림이 없은즉 사(赦)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22)
"피가 죄를 속(贖)하느니라" (레위기 17:11)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시록 7:14)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속죄의 사실은 에덴동산으로부터 십자가에 이르기까지의 모형과 예언 가운데 예표 되어 진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救贖)의 계획인 것입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출애굽기 12:13) 하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였습니다.
이것은 갈 바리 위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는 구원은 없습니다. 피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함을 받을 자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피에 의한 구속(救贖)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보혈(寶血)의 능력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영혼을 구원(救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를 도말(塗抹)하는 위대한 능력은 그분을 생명의 구주(救主)로 영접하기만 하면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분의 피는 가장 악(惡)한 죄인이라도 깨끗하게 할 것이며, 그로 하여금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할 것이며, 또한 죄악의 길에서 떠나 진리의 길에 서게 할 것입니다.

속죄(贖罪)의 희생(犧牲)의 피는 죄에 대한 유일한 하나님의 치료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우리는 다 나면서부터 이미 죄인인 동시에 스스로 범죄 함으로 죄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작은 죄(罪)라도 용납하지 아니하십니다.
그의 법칙은 태초(太初)로부터 주어졌습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에스겔 18:2)
"피 흘림이 없은즉 사(赦)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22)
하나님의 의의 요청을 만족케 하기 위하여서와 그리고 죄인을 용서하기 위하여서는 우리 대신 그리스도께서 죽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온 세상의 죄를 위하여 생명을 희생 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다 용서함을 받기 위하여, 그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법은 변할 수 없으며, 그의 심판은 반드시 있습니다.
율법의 요청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리고 모든 죄인을 향한 그의 거룩하고 무한한 사랑 때문에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부끄러운 죽음으로 고초 당하셨고, 잃어버린 세상을 구속하기 위하여 곧 모든 남자, 여자, 어린이 할 것 없이 다 그의 놀라운 은혜를 받아들여 구원함을 받을 수 있도록 생명의 피를 흘린 것입니다.

십자가에 그를 못 박은 것은 곧 죄입니다.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무서운 죽음을 당하시고 피 흘려 고귀한 희생을 했을 리 있겠습니까?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할 절대적 필요성이 없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죽음에 내어 주실 리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구속을 위해 치른 값이며, 은이나 금이 아니라 보배로운 예수의 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慈悲)
십자가의 길은 승리로 이끕니다.
십자가(十字架)의 주님을 명상 하십시오
구세주를 쳐다보지 아니하면 당신은 결코 승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그는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머리를 수그리고 "다 이루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이루어졌을까요? 그것은 인간 구속(救贖)의 계획(計劃)이 이루어졌단 말씀입니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는 이루어지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타락한 백성의 죄를 위하여 피 줄기가 그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것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십시다.

도말(塗抹)된 죄
피의 능력을 안다는 것은 죄 없는 생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피의 첫째 번 적용(칭의)은 불결과 위선과 그리고 모든 형태의 죄를 멸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당신을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둘째 번 역사 곧 피의 둘째 번 적용(성화)에 의하여 하나님께서는 죄의 뿌리를 뽑으시며, 범죄로 기울어지는 성질을 멸하시고, 모든 육정으로부터 깨끗하게 하셔서, 안으로 우리를 성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브리서 3:12)

죄 때문에 당한 희생은 영원한 것입니다.
피는 항상 우리를 위하여 제단(祭壇)위에 있습니다.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2)

예수께서는 오늘날도 우리의 중보자로서 하늘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써 봉사하고 계시며 머지않아 재림하실 것입니다.

◉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납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 값은 치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어 속죄의 희생으로 자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적(代贖的) 희생(犧牲)을 통하여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우리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木 (11월 27일)
하나님의 사랑의 表證 (요일 4:7-11)

◉ 사랑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의 귀한 요소이며 선물이며 축복이다.
인간은 본래의 성품 가운데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고귀한 선물이 있다 이것이 사랑이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본체를 잃어버렸다.
마치 주신 사랑 위에 새로 페인트칠을 해서 새로 만든 인조사랑으로 변해버렸다.

사랑이란 하나님의 성품 속에서도 가장 노른자위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인간은 분석할 수도 없고 파헤쳐 볼 수도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릴 수도 만질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의 두뇌로 분석되어지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무한히 주어도 줄어들지 않고 여전히 똑 같다.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놓으면 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쉬지 않고 계속 솟아 나온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이 받고 또 받아도 싫어하는 자가 없고 받고 또 받아도 배부른 지도 싫증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피나 무게로 측정할 수 없지만 우리 인간에게 무한한 가치적인 모습으로 변화하여 무게나 부피로 닥아 오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전 세계 온 인류가 함께 받아서 그 모든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의 부피가 더 크다고 더 높고 많다. 비교나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술어나 표현의 매체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비슷하게 표현한다면 마치 엄마의 품에 품긴 아기가 엄마의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으면서 엄마의 눈과 시선이 마주칠 때 갖는 그러한 평온함이라고나 할까. 이것은 도저히 비유가 되지 않는 표현이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황홀한 빛이 어떻게 순간순간 인간을 찾아오시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빛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시시각각 다릅니다.
큰 불, 작은 불, 둥글둥글한 불, 마치 지상에서 보아왔던 불꽃놀이 광경처럼 빛나는 찬란한 빛들이 여러 가지 광채가 되어 인간에게 사랑의 빛으로 나타나시는데 그 빛을 발하는 모습에 따라 느껴지는 감성도 다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불이요 빛이다
빛이 사랑의 모습인지를 무엇으로 판단하느냐.
하나님의 모습은 불이요 빛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빛을 보면 인간의 마음속에 사랑의 요소가 그대로 작용한다.
마치 전기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빛을 보면 사랑이 작동하고 인간의 마음속은 사랑의 덩어리로 화해지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 사랑하는 독자(獨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영구적인 보증이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의 이해력을 훨씬 뛰어 넘는 것이다.

<초점(焦點)>
1. 구속(救贖)은 그분의 죽음이 우리를 죄의 세력에서 자유케 하였음을 증명하는 말씀이다.

2.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기로 선택하심으로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聯合)되었다.
이러한 사랑을 온 우주와 하늘의 존재들도 이해하거나 경험할 수가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O : 바로 잡습니다.
지난주의 (제8과)교과 내용중에 한문으로 성육신(聖肉身)을 - 성육신(成肉身)으로 바로 잡습니다. (거룩할 聖자가 아니라 이를成자로) 대단히 죄송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