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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여자에게서 나심 : 속죄와 성육신(첨부파일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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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8-11-19 19:06 조회4,5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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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11월22일(안) 일몰 오후5시17분

제8과 여자(女子)에게서 나심: 속죄(贖罪)와 성육신(成肉身)

(기억절)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

▶ 깨닫기 : 그리스도께서는 자원하여 자신을 낮추시고 인간이 되셨음을 배운다.
▶ 느끼기 : 그리스도는 아담을 대신하여 오신 분이심을 인식한다.
▶ 행하기 :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이시며 완전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해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목 적 :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완전히 깨닫지 못할지라도 그분께서 침례 받으시고 시험을 이기신 사실은 알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모본을 남기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따르게 하고자 하심이었다.

<확대경(擴大鏡)>
◉ 예수님의 성육신(成肉身)으로의 탄생(誕生)과 사역과 희생(犧牲)은 신비(神秘)중에 신비(神秘)이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이루신 모든 것에는 하나의 오점도 결함도 없으시다.
그분께서 모본(模本)으로 남기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을 따르게 하고자 하심이었다.

일(日) (11월 16일)
<성육신의 신비(골 2:9)>

◉ “신비(神秘)란”= 어떤 일이나 현상 따위가 사람의 힘이나 지혜 또는 보통의 이론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묘함, 또는 그런 일이나 비밀(秘密)을 신비(神秘)라고 한다.
세상에는 신비(神秘)와 신묘막측(神妙莫測)한 것과 일들이 참으로 많이 있다,
그러한 일들은 유한(有限)한 인간의 지혜로는 당연히 무지(無知)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셨다는 사실에는 성령의 도우심외에는 그러한 신비(神秘)를 이해(理解)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의 지식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자(尺)로 표현 하자면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의 지식이 약10㎝ 정도로 간주하고, 중학교 정도의 지식을 20㎝ 정도로 간주하고, 고등학교는 30㎝ 정도로 간주하고, 대학교 나온 사람은 40㎝정도로 간주하고, 석사 박사 등의 지식을 1m정도의 지식으로 간주 해 본다면. 약간의 눈 끔은 더하겠지만 그리 많은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지식으로 무한(無限)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30㎝자(尺)로 서울서 부산의 거리를 재는 것과 같다고 할까? 요, 아니면 서울서 뉴욕까지를 30㎝자(尺)로 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잴 수도 없을 것 이구요.
설명을 하자면
인간의 생명은 난자(卵子)와 정자(精子)가 결합해야 사람을 낳게 되는데 예수님은 그렇게 요셉의 정자(精子)와 마리아의 난자(卵子)가 결합해서 예수님이 탄생한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즉 정혼(定婚)하지 않은 몸으로, 더 자세히 말해서 마리아는 남자(요셉)와 관계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聖靈)으로 잉태(孕胎)하였기 때문에(마 1:18-21)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이를 일컬어서 신비(神秘)라고 설명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성육신(成肉身)의 신비(神秘) (요일1:1-4 )
그 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 자신이셨는데 사람이 되신 분이다.
이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고 자기의 백성을 삼으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나님이 이루신 세 가지 큰 사역이 있는데
첫째가 천지창조이며,
둘째는 성육신이요,
셋째는 성령을 부어주심인데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 중에서 성육신(成肉身)은 신비(神秘)중의 신비요, 기적(奇蹟)중의 기적이다.

성경의 기사(記事)를 살펴보면, 마리아의 수태고지(受胎告知), 요셉에게 계시됨, 베들레헴의 한 사관(私館)에서 아기 예수가 탄생하셔서 구유 안에 뉘우심, 하늘의 천사들이 찬양, 목자들에게 알려지심, 동방박사들의 경배와 예물드림 등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초림의 신비를 더해준다.

그리스도의 출생은 수십 세기를 통하여 수백억의 사람의 입에서 경이와 감탄, 감격, 그리고
감사와 찬송을 이끌어 왔고, 또 정반대로 불신과 반대를 가져오기도 했다.
서글프게도 오늘날에는 성탄의 참된 의미가 왜곡되고 변질이 되어 성경에도 없는 날짜를 12월25일로 정하여 일 년에 한 번의 행사로 예수님의 탄생을 희석시키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1년365일 동안에 늘 주님의 탄생을 기리는 일에 기억하지 못하도록 변질시켜 놓았다. 그러므로 백화점이나 거리마다 성탄절에 장사하여 큰 몫을 챙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며, 술집마다 만취된 사람들의 모습이며, 마치 이 날만은 불의와 죄악을 즐기도록 허가받은 것처럼 죄악을 즐기는 자들의 세상으로 변질됨으로 성탄의 참된 뜻이 변질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는 현실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성경에도 없는 성탄일을 언제부터 지금의 12월25일로 정하여 오게 되었는지 그 경위와 내막을 알고 신앙하는 것이 바른 신앙인이라고 생각이 된다. 안식일도 날짜(요일)의 변경과, 12월25일의 날짜가 성탄일로 사람들의 마음을 고정시키고 있는 것 또한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중요하게 살피고 바르게 신앙하여야 할 문제이다.

◉ 무엇 때문에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사건이 생겼을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신비에 대해서는 성경이 가르치지 않아도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목적, 혹은 동기는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다.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기독교란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다.
요한은 자기 자신을 성육하신 주 예수의 생애를 눈으로 본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규정하면서 기독교의 핵심인 성육신의 육체적 실제성을 말하고 있다(요일 1:1,2).

또한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이 서신을 기록한다고 말하고 있다(요일1:3,4).

1. 하나님이 사람이 되심은 나를 죄(罪)에서 구속(救贖)하기 위함이다.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오신 그 영원한 생명, 그 말씀이 왜 나타나셨는가?
그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속(救贖)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즉 인간의 죄 때문에 성육신(成肉身)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죄인(罪人)을 구속(救贖)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크고 놀라운 사건을 이루신 것이다.
나를 구원(救援)하시는 속전(贖錢)이 되시려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사도 요한은 말년에 쓴 요한복음 1장을 성육신(成肉身)의 신비(神秘)에다 초점을 두고 기록했다.
요한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 곧 독생(獨生) 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을 감탄하여 일생을 그 감격 가운데 살았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
도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1-4; 예수 그리스도의 신
성).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獨生)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4,18;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성육신(成肉身)의 사건).

<찬미가 83장 :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Ⅰ.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지은 영혼 구하러 그 아들 보내 사 화목제 삼아주셔서 죄용서 하시네.

Ⅱ.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이 세상 영화 시들 때 주 믿지 않던 모든 사람 큰 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 우리의 죄 사했으니 그 은혜 잊을까

Ⅲ. 저 바닷물을 먹물삼고 하늘을 두루마리로 하나님 사랑기록해도 다 묘사할 수 없겠네.
하나님크신 사랑을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 하리

(후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다 측량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 하세.

오늘 우리도 우리를 죄악으로 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 그
리고 경탄과 영광을 돌려드리자.

2. 하나님이 사람이 되심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속(救贖)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육체 안에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은 "Immanuel"(God with us)이라 불리셨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그리스도 탄생 전 700년경에 예언한 것이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이 이사야의 예언이 글자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밝히기 위하여 글자 그대로 마태가 인용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였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救援者)가 되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동정녀(童貞女)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셨다. 우리는 이 진리를 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을 믿는 믿음에 구원과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에 우리의 구원(救援)이 있다(요일 1:3).

에덴동산에서의 범죄 이후에 인간과 떠나 계시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육신(肉身)이 되셨다.
인간으로 탄생하신 이후 33년 반(半)동안 예수님은 육체로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셨으나,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우리 개개인 가운데 영(靈)으로 임재 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심의 완전한 완성으로 신약성경을 끝맺는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니러라."(계 21:3,4).
바로 여기에 하나님이 육신이 되신 근본 목적이 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셔서 정결케 하시므로 자신과 함께 사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함이다.

예수님의 초림은 육체로 오신 하나님을 말구유에 그냥 두지 않고 우리 마음 중심에 그리고 우리 생활에 모시고 살기로 작정하는 날이다.
동방박사들이 세상의 소망이신 아기 예수께 경배했던 것처럼, 하늘의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찬양했던 것처럼, 그리고 목자들이 듣고 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구주로 오신 예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눅 2:14).

◉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는 일련의 추상적 개념들이 있지 않고 구체적인 역사적 인물이 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역사적 인물을 그 중심으로 전개된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는 다른 관념이나 이데올로기의 창시자의 존재와 전혀 다른 성격을 띤다. 기독교 신앙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핵(核)으로 둘러싸며 존재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肉身)이 되신 말씀이다.

◉ 성육신(成肉身)이란 ?
요한복음 1장 14절에 있는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사건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세상의 창조 이전부터 계신 분이며,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이 말씀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다.(요 1:1)
요한의 증언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이 말씀을 통하여 지음을 받았다.(요 1:3)
이 말씀은 이제 육신이 되어서 사람들 사이에 거하셨는데, 이 말씀은 참 빛이며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다.
육신이 되신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에게 오셨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사건이 곧 성육신의 사건이다. 성육신(成肉身)의 개념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 곧 자기를 비워 모든 조건에서 인간과 같이 된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빌 2:6-8)
성육신은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 지음을 받은 존재 가운데 하나가 되었음을 뜻한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인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주장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는 성육신 교리에서 그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가 단지 위대한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곧 하나님 자신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대표하여 행동한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를 경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며, 우리가 예수를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우리가 예수의 약속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으며, 우리가 예수와 마주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마주치는 것이다. 성육신의 개념은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의 절정이다.
여기에서 성육신의 핵심은 예수 자신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 성육신의 신비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지금까지도 신비요, 앞으로도 신비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나타난 것은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을 위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혀 우리와 꼭 같은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지 못하도록 모든 사람에게 경고하라.
신성과 인성이 연합한 정확한 때를 우리는 알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해 주신 대로 우리는 우리의 발을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계속 굳게 디디고 서 있어야 한다.”(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26)

◉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동안에도 그분의 신성이 유지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진리와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속죄를 위해 하나님은 인간이 되셔야만 했다.

월(月) (11월 17일)
◎<하나님과 인간(人間)의 재결합(再結合) (고전 15:45)>

◉ 어려운 이야기를 가장 쉽게 예를 들어 이야기 해봅시다.
☞ 성경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비(非)그리스도인들로써 생각할 때 (2008년4월6일자 교과 (李奉周)인용)
(질문) : 왜 예수님은 인간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면서 “하나님”이라고들 하는가?

(설명)
1) 서울에 63빌딩이나, 삼성동 코엑스에 가면 대형 수족관에 다양한 바닷물고기들이 있다. 이 물고기들이 오래 살게 되는 비결이 있는데, 큰 수족관에 바닷물만 채워놓고 물고기를 넣어 놓는다고 하면 이 물고기들이 얼마 못가서 모두 죽게 된다고 한다. 즉 수족관(水族館)에 바닷물을 넣고 실제의 바다와 같은 조건으로 산소공급을 비롯해서 수족관의 환경을 인위적으로 자연의 바다환경과 여건이 똑같이 조성하여 관리를 해 줄때에 수족관 안에 있는 물고기가 실제의 자연 바다 속의 환경과 똑같이 될 때에야 수족관 안에 물고기들이 오래 산다고 한다.

2) 그런데 수족관 관리인이 수족관 유리 밖에서 물고기들에게 아무리 너희물고기들아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건강하게 잘살 수 있도록 수족관 환경을 잘 관리해주고 있고, 똑 너희들 먹고 사는 것 음식을 내가 매일 너희들에게 주고 있는데 너희 물고기들아 나에게 대하여 고맙게 생각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 생명이 내 손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들이 모르겠느냐고 매일 수족관 밖에서 물고기에게 아무리 이야기 한들 물고기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3) 물고기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물고기가 사람이 되든지, 아니면 사람이 물고기가 되어서 물고기와 같은 모양과 언어(言語)로 이야기를 하면 그 뜻을 알아들을 수가 있다.

4)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직접만나고 하였다, 그러나 불순종으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쫒겨나온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친히 신정정치(神政政治)를 하셨다. 그런데 패역(悖逆)한 인간들이 눈에 보이는 이방인(異邦人)의 사람이 통치하는 왕(王)을 달라고 하여 사무엘 시대에 사울 왕을 시작으로 인간 왕정(王政)정치를 하게 되었다.
성경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이 백성들이 패역(悖逆)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제사장을 통하여 용서해주시고 이러한 일이 계속 반복하였다. 그러나 이 패역한 백성들은 오히려 선지자(先知者)나 제사장(祭司長)들을 죽이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였다. 이젠 죄의 온전한 회개도 없이 불쌍한 동물들의 희생제물(犧牲祭物)들만 죽게 되는 일이 계속 반복하였다........
도무지 세월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송두리째 망가트려 놓는 이 백성들에게 좋으신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과 똑같은 삶을 통하여 인간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오셔서 우리인간들과 똑같이 지정의(知情意)를 갖고 우리와 같은 언어로 말씀하시고 인도하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5)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모양(형체)이시지만 사람과 다른 면이 있다면 곧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갖이신 분이시다.
가) 사람은 엄마의 난자(卵子)와 아빠의 정자(精子)가 만나야 세상에 태어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빌려(마리아)태어 나셨지만 마리아의 난자(卵子)와 목수 요셉의 정자(精子)로 태어나신 분이 아니시다.(전능(全能)하신분이시다)
나) 사람은 죄를 사(赦)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죄를 사(赦)하실 수가 있으시다.
다) 사람은 죽으면 부활(復活)할 수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 그리고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 성경은 예수님을 “인간의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요 1:1-2, 14, 히 1:3)
예수그리스도 안에서의 인간과 하나님의 연합은 구속 사역에 있어 필수적인 일이었다.

◉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分離)되었다.
그 분리가 그들의 존재를 위협하므로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과의 재결합을 시도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심으로 인간과의 재결합을 주도하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영원한 재 연합을 위한 결합의 장(場)이 되셨다.
성육신(成肉身)을 통해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은 신비(神秘)롭게 결합되었고, 인간과 하나님은 하나가 되었다"
(영문시조, 1896년 7월 30일자). 이 결합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원래의 연합보다 더 심오(深奧)한 것이었다.

◉ 예수님은 둘째 아담이셨다. 성경은 아담과 예수그리스도를 비교하여 아담을 ‘첫 사람’으로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 혹은 ‘둘째 사람’이라고 부른다. (고전 15:45, 47)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영원한 사랑의 줄로 하나님과 인간을 재결합시키셨다.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다

화(火) (11월 18일)
<예수님의 침례(浸禮)(마 3:13-17)>

◉ 그리스도의 침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예수께서는 침례를 자청하심으로 자신을 죄인들과 동일시하셨다.
침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그분께서 그것을 요구하신 것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우리의 유익을 위함이다.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심으로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위해 본을 남기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침례에는 본을 남기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수님의 침례를 통하여, 우리도 침례를 받음으로 그분과 연합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분이 침례 받으실 때에 임했던 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예수께서는 침례 받으신 후 물에서 나오시자마자 무릎을 꿇으시고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셨다(눅 3:21-22). 성경은 그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아버지로부터의 대답은 그 내용에 대하여 암시해 준다. 아버지께서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2)고 선언하심으로 예수님의 기도가 들으신바 되었음을 알리셨다.
"이것은 우리 각자에게 희망과 자비의 말씀이 된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사랑하시는 분 안에서 받으신바 되고, 예수님의 희생을 통하여 가납하신바 된다."(영문 시조, 1894년 11월 12일자)

(셋째) 예수님의 침례시(浸禮時)에 삼위(三位)하나님이 함께 등장하였다.
아버지의 음성이 하늘에서 들렸고, 성령께서는 볼 수 있는 비둘기의 형상으로 임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류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인류를 대표하신 당신의 아들에게로 흘러내렸다.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셨기 때문에, 인류는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교과 112p)

◉ 침례(浸禮) (Baptism) =(baptism by immersion)
(마 3:13-17) 우리말 한글 성경에는 세례(洗禮)라는 말로 번역(飜譯)되어 있기 때문에 “세(洗))뿌릴세”머리에만 물을 얻는 것으로 이 예식(禮式은 마치 물을 뿌리는 예식처럼 오해하기가 쉽다. “그러나 원문헬라어에는 분명히 세례가 아니라 침례(浸禮)로 기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세례(洗禮)란 잘못된 번역(飜譯)이다.

[1] 침례(浸禮)의 원어적(原語的) 의미(意味)
헬라어로 BAPTISMA인데 이말은 동사형인 밥티조 (baptizo)에서 파생(派生)되었다.
그러면 밥티조 (baptizo)라는 말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가?
⑴ 물속에 잠근다는 뜻이다.
어원적인 의미에서 볼 때 밥티조 (baptizo)란 말에는 “물을 뿌린다. 는 의미가 전혀 없다.
이말은 분명히 “물속에 잠그다”는 뜻이므로 성서적(聖書的)인 용어(用語)다 그 예식 방법은 세례(洗禮)가 아니라 “침례(浸禮)”임을 알 수 있다.
⑵ 천(cloth) : 포(布))를 물감 속에 담그다 는 뜻이다.
“밥티조 (baptizo)” 라는 말 가운데는 염색(染色)하기 위해 천(布)을 물속에 담그다 는 뜻도 있다. 염색을 하려면 그 옷감은 반듯이 물감 속에 담겨져야만 한다.
이처럼 침례식(浸禮式)은 뿌리는 예식이 아니라 물속에 잠기는 예식이다.

⑶ 배를 침몰(沈沒)시키다 는 뜻이다.
baptizo(밥티조) 라는 말 가운데는 배를 침몰시키다 는 뜻도 있다.
바다 속에 침몰된 수많은 배를 연상케 해준다.
즉 이 말은 물속에 완전히 가라앉은 상태를 암시해 주고 있다.
이상과 같이 baptizo(밥티조)라는 말속에는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곧 물속에 잠긴 상태(狀態)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어원적(語源的)의미에서 고찰(考察)해 볼 때 성경이 요구하는 예식은 물을 뿌리는 “세례(洗禮)가 아니라 물속에 잠기는 침례(浸禮)이다.

[2]침례(浸禮)의 영적(靈的)의미?
①그리스도와 연합(聯合)하는 것을 의미(意味)한다. (갈 3:27, 롬6:3-5)
남녀가 결혼식(結婚式)을 통하여 한 몸이 된 것을 공적(公的)으로 선포(宣布)하듯
침례는 예수그리스도와 의 연합(聯合)을 공적(公的)으로 선언(宣言)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와 연합(聯合)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나의 죄 된 생애도 함께 죽는 것이요.
㉡ 예수그리스도의 장사(葬事) 되심을 본받아 나의 죄 된 생애를 장사(葬事)지내 버리는 것이다.
㉢ 예수그리스도의 부활(復活)을 본(本)받아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을 의미(意味)함.

침례(浸禮)를 통하여
ⓐ 죽음= 물속에 잠길 때.
ⓑ 장사(葬事)= 물속에 잠길 때.
ⓒ 부활(復活)= 올라 올 때.
이와 같이 침례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葬事)지냄과 부활(復活)의 경험(經驗)속에 믿음으로 동참(同參)함으로 예수그리스도와 연합 하는 것이다.

② 죄(罪)로 부터의 정결(淨潔)을 의미 한다. (행 2:38, 22:16)
침례를 받고 죄 사(赦)함을 받으라.
※ 물 자체가 우리의 죄를 씻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침례 자체가 우리의 죄를 씻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죄를 씻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침례가 죄를 씻어주는 예식이 될 수 있는가?
예수그리스도와 연합 하여 침례를 받는 자는 예수그리스도 보혈의 공로를 자신에게 적용시키기 때문에 그는 죄의 용서를 받고 정결(淨潔)함을 받는 것이다.

③ 새로운 생애(生涯)의 시작(始作)을 의미(意味)한다. (엡 4:22-24, 고후 5:17, 요 3:3-5)

④ 하나님의 가족과 연합(聯合)하는 것을 의미(意味)한다. (갈 3:26-28, 엡 2:19)

[3] 침례(浸禮)를 받아야 하는 이유(理由)
⑴ 예수그리스도께서 명령(命令) 하셨기 때문이다. (마 28:19-20)
⑵ 예수그리스도께서 모본(模本)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마 3:13-17, 막 1:9-11)
⑶ 사도(使徒)들이 실행(實行)했기 때문이다. (행 2:38, 41)
⑷ 구원(救援)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막 16:15-16, 요 3:5) 골 2:12

[4] 침례(浸禮)의 방법(方法)
⑴ 방법은 한가지뿐이다. (엡 4:5) 하나님+믿음+침례
⑵ 물 있는 곳에서 행한다. (마 3:16, 행 8:36-39)
⑶ 물속에 잠겨야 한다. (행 8:36-39)

[5] 침례(浸禮)를 위한 준비(準備)
⑴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마 28:19-20)
(행 8:26-29) 에티오피아의 내시는 침례를 받기 전에 빌립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와 구원(救援)의 도리(道理)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았다.
⑵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막 16:16)
⑶ 회개(悔改) 해야 한다. (행 2:37-38, 행 3:19), 마 3:6)

[6] 침례후(浸禮後)의 생애(生涯)
⑴ 새로운 생애(生涯) (엡 4:22-24, 고후 5:17)
⑵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順從)하는 생애 (시 119:33-34)
⑶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애 (갈 5:22-23)
⑷ 위에 것을 사모(思慕)하는 생애 (골 3:1-2)

<침례의 요약>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定罪)를 받으리라. (막 16:15-16)

1. 예수께서 구원을 위하여 하실 일을 요약하여 보이신 예식이며, 그분의 본을 좇는 사람들은 다 예수님처럼 죽고 장사되고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2. 우리가 침례를 받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받으신다. 그리고 온 하늘은 잃은 자를 찾은 기쁨을 함께 나눈다.

◉ 날마다 새로운 침례(浸禮)를 받음
“주님이 사시고, 생각하시고, 기도하신 것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남을 위함이었다.
그분은 매일 아침 여러 시간 동안 아버지와 교통하심으로 하늘의 빛을 사람에게 나누어 줄 준비를 하셨다.
그분은 날마다 성령의 새로운 침례를 받으셨다.
주님께서는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나셔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자기의 심령과 입술에 은혜의 기름을 바르셨다.
그분은 하늘 조정으로부터 새로운 말씀을 직접 받으셨는데 그 말씀은 피곤하고 학대를 받는 자들에게 하실, 경우에 합당한 말씀이었다.”(실물교훈, 139)

◉ 침례는 죽음과 장사와 부활을 뜻하는 것으로 죄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므로 새사람이 되지만,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남기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시키셨다.

수(水) (11월 19일)
<예수님의 시험(試驗)(마 4:1-11)>

◉ 물고기가 낚시에 걸려 올라오는 것은 모두가 먹는 것 때문에 낚시에 걸려 올라오듯이 동물들은 모두가 먹는 것에는 약하므로 그들의 생명에 끝을 보게 된다.
이점을 사단은 너무나도 잘 알고 이를 통하여 올무로 삼아 실족하게 한다.
그 첫 케이스가 에덴동산에서의 하와와 아담의 경우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으로 인하여 실족하게 만들었으며 에서도 야곱에게 먹는 것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렸고. 이를 예수님에게도 40일 금식(禁食)후에 사용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마 4:1-11)

◉ 마귀(魔鬼)의 시험(試驗)은
① 먹는 것으로 시험 하고, → 돌이 떡덩이가 되게
② 이생의 자랑으로 시험하며, →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③ 경배(敬拜)의 대상으로 시험한다. → 마귀에게 경배하는 것 등을 통하여 시험을 한다.


◉ 예수님의 시험은 아담의 시험과 대조(對照)를 이룬다.
구분아담 예수님
1 죄가 없는 동산에서 시험을 받음악의세력이 득세하는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다
2 풍성한 음식을 갖고 있었다.음식이 없었다. (금식)
3 금식하지 않았다.금식(禁食)하셨다.
4 하나님의 뜻에 먹는 것으로 실패함예수님은 말씀으로 승리하셨다.
5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하는 유혹에 넘어감예수님은 동일한 시험에 넘어가지 않으심
6 공공연하게 하나님에 반역하여 사단과 합세함사단의 경배에 관하여 말씀으로 승리하심

◉ 한사람 아담으로 죄가 들어와 모든 죄인들은 죽게 되었지만 제2의 아담이 되시는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죄인을 살리시는 승리의 아담으로 오셨고 생애(生涯)하셨다. 즉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처리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예수 안에서 처리되었으며, 예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

◉ 흠 없는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
“우리의 크신 대리자시요, 보증인이신 그분은 아담이 걸려 넘어진 바로 그 지점을 통과하셨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던 것같이 예수께서도 걸려 넘어지실 것인가? 주님께서는 사단의 공격에 번번이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되받았고 사단은 정복당한 원수로서 그 쟁투의 들판을 떠나갔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아담의 치욕스러운 실패에 설욕하고 완전한 순종의 품성을 완성하시고 인간 가족들에게 한 모본을 남기셨으니, 이는 우리로 그 모본을 그대로 모방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율법과 관계있는 곳에 단 한 점이라도 실패가 있었더라면 그는 온전한 제물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재림교 성경주석, 5권, 1080)

◉ 처음의 아담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죄와 사망을 이 땅에 오게 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아담이 실패한 자리에서 승리하심으로 우리를 위한 승리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우리도 그분께서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승리할 수 있다.

목(木) (11월 20일)
<치료봉사(治療奉仕) (마 9:35)>

◉ 고통(苦痛)이나 질병(疾病)이나 사망(死亡)은 모두가 죄(罪)의 결과(結果)들이다.
치료의 사역은 죽음에서의 승리를 예고하는 것이다. 죽음에서의 회복(막 5:35-43, 눅 7:11-17, 요 11:38-44)은 죄에서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치료에 대상은 남녀노소(男女老少)나 인종이나 직위고하(職位高下)나 빈부귀천(貧富貴賤)이나 그 어느 것에도 한계가 없으셨다. 그분의 이적(異蹟)은 사회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였다.
나병환자가 그분께 깨끗함을 받았고(막 1:41),
사마리아인이 돌아와 엎드려 사례하였으며(눅 17:11-17),
심지어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도 그분에 의해 고침을 받았다(막 7:29-30).
사람들 사이를 분리시켰던 장벽은 예수님의 치료 봉사를 통해 무너져 내렸다.
그분께서는 서로 화목하게 살아가는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을 창조하고 계셨다.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평화의 정신은 그들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의 달콤한 향기가 그들을 두르고 있다.
생애의 향기와 품성의 아름다움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낸다.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산상보훈, 28)

◉ 예수께서는 치료봉사를 통하여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이적을 통해 인간의 장벽을 허무시고,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갈망을 심으셨다.

요약: 성육신하신 예수께서는 사단에게 많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끝까지 아버지께 충성하셨으며, 아담이 실패한 자리에서 승리하셨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초점(焦點)>

1. 물은 100℃에서 끓는다. 99℃에서는 끓지 않는다. 1℃상관에 차이(差異)가 있다.
우리의 신앙(信仰)에 그 한계(限界)점을 물의 비유(譬喩)에 적용해서 용기와 믿음으로 예수님을 굳게 붙잡고 신앙하자.

2. 죄로 멸망(滅亡)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을 구원(救援)하시고자 속죄(贖罪)와 대속(代贖)의 몸으로 친히 이 땅에 성육신(成肉身) 하시어 오셨다.
예수님의 이 땅의 삶의 모본(模本)을 남기신 모든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와 같이 따르게 하심이었다.



<처음에 첨부파일을 잘못올려서 다시 올렸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도표로 된것이 있기 때문에 첨부파일을 열어 보시는 것이 도표가 깨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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