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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여자에게서 나심: 속죄와 성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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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 작성일08-11-13 16:19 조회4,8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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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여자에게서 나심: 속죄와 성육신
11월 22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17분)

기억절: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

연구범위: 마 1:18-25, 3:13-17, 4:1-11, 9:35, 막 1:12-13, 요 1:1-2, 14, 골 2:9, 히 1:3.

중심 사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통하여 인류를 당신과 화목하게 하시고 인간 상호간에도 조화를 회복하셨다는 사실을 탐구한다.



안식일 오후

아무리 학식이 많은 과학자라 할지라도 우주가 신비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 또한 신비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신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이 되신 사실을 공부할 것인데, 이것은 아마도 온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신비일 것이다. 인간의 유한한 머리로는 창조주께서 기꺼이 비천한 인간이 되셔서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그 놀라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가지 사실은, 만약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이 되시지 않았다면 죄의 용서와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하신 것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핵심본문: 요일 3:5

학습 목표

깨닫기: 그리스도께서는 자원하여 자신을 낮추시고 인간이 되셨음을 배운다.
느끼기: 그리스도는 아담을 대신하여 오신 분이심을 인식한다.
행하기: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이시며 완전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해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교과 개요

I.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심(마 26:38, 눅 2:40, 갈 4:4)

A.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공부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무엇이며,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부분은 무엇인가?


II. 씻어주는 강물(마 3:13-17)

A.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침례 받으심으로 친히 자신을 죄인과 동일시하신 사실을 보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그분께로 인도할 때에 그분의 이러한 모본을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가?

B. 바울이 고린도전서 15:45에서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한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구절은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안겨 주는가? 이 개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III. 매혹적인 시험(마 4:1-11, 막 1:12-13)

A.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에 사단은 그분께 정면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스도께서 직면하신 세 가지 시험은 무엇이었는가? 그 시험은 오늘날로 말하면 어떤 것에 해당하는가? 우리는 시험을 극복하기 위해 그분이 사용하신 방법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요점: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완전히 깨닫지 못할지라도 그분께서 침례 받으시고 시험을 이기신 사실은 알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모본을 남기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따르게 하고자 하심이었다.



일요일(11월 16일) 성육신의 신비(골 2:9)

마리아는 특별한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놀라서 이렇게 반응하였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 그러자 천사가 이렇게 대답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눅 1:35). 이 아기는 성령의 창조적인 능력을 통해 마리아의 태를 빌어 역사 속으로 오셨다(마 1:18). 여기서 '덮으리라'는 동사는 출애굽기 40:35을 생각나게 해 주는데, 거기에는 구름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으로 내려와 사람들 가운데 임하던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 여인의 태에서 탄생하시기 위해 신비로운 방법으로 강림하셨다.

예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은 하나님과 인간을 연합시키기 위함이었다. 비록 두 본성이 구별되어 있었으나, 하나님이 '인간 속에' 사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사신 것이다. 그분은 참으로 성육신하신 것이다. 그분은 참으로 하나님이시고, 참으로 인간이셨다. 성경은 마리아의 태에서 두 본성이 결합되는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고 그분은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사셨다.

1. 골로새서 2:9은 예수님이 진정 어떤 분이셨다고 말합니까?

골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답: 예수님이 완전한 하나님이셨다고 말한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셨다.(골 2:9)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예수께서 완전한 하나님이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육신하신 동안 하나님의 속성 중 어떤 것을 잃어버리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빌 2:6)시요, 하나님과 동등하셨으나, 성육신을 통하여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빌 2:6-7).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셨지만 모든 것을 아버지의 권능 아래 두셨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는 동안 그분은 하나님으로서의 속성을 잃지 않으셨다.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은 인간으로서의 예수님 안에 숨겨지셨다. 그분의 신성은 항상 완전히 유지되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에 인간의 속죄를 위해 그분께서 친히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야만 했다.

성육신의 신비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지금까지도 신비요, 앞으로도 신비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나타난 것은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을 위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혀 우리와 꼭 같은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지 못하도록 모든 사람에게 경고하라. 신성과 인성이 연합한 정확한 때를 우리는 알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해 주신 대로 우리는 우리의 발을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계속 굳게 디디고 서 있어야 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26)

<부가설명> 예수님은 원래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여호수아의 헬라어식 표기라고 한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예수의 예표적 이름이다. 이 이름이 실제로 성육신하신 예수님께 주어졌을 때는 “여호와는 구원”이라고 풀이하기 보다는 “구원하시는 여호와”라고 풀이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여호와이시다. 그분 외에 구원자가 없다(사43:11). 구원하시는 여호와이신 분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어 세상에 탄생하셨다. 세상에 탄생한 사람 그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가 하시려고 하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은 스스로 그렇게 하시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사람이 되셨다. 그는 마지막 아담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는 첫 아담을 대신하여 사망이 되기 위하여 오셨다. 첫 아담은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사망 자체가 되었다. 그에게서는 하나님이 창조할 때 그에게 준 영원한 생명이 태어날 수 없게 되었다. 그에게서 나는 후손들은 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다. 즉 영원한 생명이 없는 자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의 영원한 생명으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에게 잉태하여 탄생하신 것이다. 성령께서 이 일을 담당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탄생하신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있는 생명으로(요1:4) 산 자로 탄생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아담이신 것이다. 첫 아담은 사망의 사람이 되었으나 마지막 아담은 생명의 사람이 되었다. 첫 아담 안에서 죽은 우리는 마지막 아담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이 구원받은 것이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1,12).

교훈: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동안에도 그분의 신성이 유지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진리와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속죄를 위해 하나님은 인간이 되셔야만 했다.



월요일(11월 17일) 하나님과 인간의 재결합(고전 15:45)

1.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인간이셨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마 26:38, 눅 2:40, 갈 4:4)

마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눅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답: 예수 그리스도는 여자에게서 아기로 탄생하셨고, 아이로 자라나시며 순종을 배우셨으며, 고난당하시고 마침내 죽임 당하셨다.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마 26:38)


고대 헬라 철학자들은 인간의 육체를 본질적으로 악한 것으로 간주하고,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인 어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분명히 예수께서 참으로 인간이 되셨다고 말한다. 그분은 여자에게서 나셨고, 아이로 자라나시면서 순종을 배우셨으며(히 5:8), 고난당하시고 죽으셨다(마 26:38, 눅 23:46). 성경은 또한 예수님을 '인간의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말한다(요 1:1-2, 14, 히 1:3). 그리스도 안에서의 인간과 하나님의 연합은 구속 사역에 있어 필수적인 일이었다.

왜 그런가? 아담과 하와와 그 모든 후손들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 그 분리가 그들의 존재를 위협하였다.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과의 재결합을 시도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심으로 인간과의 재결합을 주도하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영원한 재연합을 위한 결합의 장(場)이 되셨다. 성육신을 통해 "신성과 인성은 신비롭게 결합되었고, 인간과 하나님은 하나가 되었다"(엘렌 G. 화잇, 영문 시조, 1896년 7월 30일자). 이 결합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원래의 연합보다 더 심오한 것이었다.

2. 바울은 고린도전서 15:45에서 예수님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고전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답: 마지막 아담이시며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고 한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한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었다. 그분은 창조주시요 그 새 인류의 머리이시다. 그분은 새 인류를 존재하게 하신 새 아담이시다. 그분 밖에는 타락한 아담으로 말미암은 옛 인류가 있으며,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죽음으로 달려갈 뿐이다(고전 15:22). 이들을 위한 유일의 희망은 성육신하신 하나님 밖에 없다. 그분은 영원한 사랑의 줄로 인류를 하나님과 묶으셨다.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

“그분은 둘째 아담이셨다. 성경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하여 아담을 '첫 사람',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 혹은 '둘째 사람'이라고 부른다(고전 15:45, 47). 그러나 아담은 그리스도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타락할 때 그는 낙원에 살았다. 그는 신체와 심령에 활력이 넘치는 완전한 인성을 소유했다.

예수님은 그렇지 못하셨다. 그분은 죄로 저주받은 이 땅에서 4,000년에 걸쳐 이미 타락해 버린 인간적 본성을 취하셨다. 그리스도는 아담의 타락하지 않은 본성과 비교해 볼 때 신체적, 정신적 활기가 떨어진 인간적 본성을 취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죄를 짓지 않으셨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68-69)

<부가설명>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자리에 오신 것이다. 그렇게 하셔서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인류를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를 개인의 구주로 믿으면 그는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그런 사람들이 새 인류가 되는 것이다. 그 시조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현재 우리가 호흡하는 이 생명은 아담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것은 끊어져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런 호흡으로만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눈에는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일 뿐이다. 예수님의 생명은 아담의 죽은 생명과 상관없는 생명자체이신 당신 자신의 생명이다. 그래서 그분은 생명이시다. 그가 부활하셔서 누구든지 예수 안에서 이 부활의 생명을 얻으면 그는 새 사람이다. 새 인류이며 새 인종이다. 그 인종의 이름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교훈: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영원한 사랑의 줄로 하나님과 인간을 재결합시키셨다.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다



화요일(11월 18일) 예수님의 침례(마 3:13-17)

1. 예수께서 요한에게서 침례 받으신 기사에서 우리는 어떤 중요한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까?(마 3:13-17)

마3:13-17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14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답: 예수께서 구원을 위하여 하실 일을 요약하여 보이신 예식이며, 그분의 본을 좇는 사람들은 다 예수님처럼 죽고 장사되고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침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예수께서는 침례를 자청하심으로 자신을 죄인들과 동일시하셨다. 침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그분께서 그것을 요구하신 것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우리의 유익을 위함이다.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심으로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위해 본을 남기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침례에는 본을 남기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수님의 침례를 통하여, 우리도 침례를 받음으로 그분과 연합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분이 침례 받으실 때에 임했던 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예수께서는 침례 받으신 후 물에서 나오시자마자 무릎을 꿇으시고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셨다(눅 3:21-22). 성경은 그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아버지로부터의 대답은 그 내용에 대하여 암시해 준다. 아버지께서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2)고 선언하심으로 예수님의 기도가 들으신바 되었음을 알리셨다. "이것은 우리 각자에게 희망과 자비의 말씀이 된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사랑하시는 분 안에서 받으신바 되고, 예수님의 희생을 통하여 가납하신바 된다."(엘렌 G. 화잇, 영문 시조, 1894년 11월 12일자)

2. 위에 인용한 엘렌 화잇의 글에서 어떤 위대한 소망을 발견합니까?

답: 우리가 침례를 받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받으신다. 그리고 온 하늘은 잃은 자를 찾은 기쁨을 함께 나눈다.


셋째, 예수님의 침례 시에 삼위 하나님이 함께 등장하였다. 아버지의 음성이 하늘에서 들렸고, 성령께서는 볼 수 있는 비둘기의 형상으로 임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류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인류를 대표하신 당신의 아들에게로 흘러내렸다.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셨기 때문에, 인류는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날마다 새로운 침례를 받음

“주님이 사시고, 생각하시고, 기도하신 것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남을 위함이었다. 그분은 매일 아침 여러 시간 동안 아버지와 교통하심으로 하늘의 빛을 사람에게 나누어 줄 준비를 하셨다. 그분은 날마다 성령의 새로운 침례를 받으셨다. 주님께서는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나셔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자기의 심령과 입술에 은혜의 기름을 바르셨다. 그분은 하늘 조정으로부터 새로운 말씀을 직접 받으셨는데 그 말씀은 피곤하고 학대를 받는 자들에게 하실, 경우에 합당한 말씀이었다.”(실물교훈, 139)

<부가설명> 예수께서 침례 받으신 의미를 성경 밖에서 찾으려는 것이 이 문제에 임한 사람들의 태도인 것 같다. 왜냐하면 성경에 직접적이 설명이 있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주로 주장하는 것이 우리의 모본이 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그가 친히 죄인의 입장에 서서 죄인 우리가 걸어야할 길을 먼저 보이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다 맞는 설명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의미가 성경에 있다. 마3:14에 요한의 말에 친히 하신 15절의 대답이 바로 그것이다.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신 것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었다. 침례가 어떻게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되는가? 예수께서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죽고 장사되고 부활하셔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침례 받으신 것은 우리의 모본이 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중심은 예수께서 이루실 구원의 사업을 요약하여 보이신 것이다. 모든 의,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을 영원한 생명으로 살려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일은 예수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며, 동시에 이것을 믿는 사람들도 예수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부활하여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선언하신 예식인 것이다. 예수 안에서 얻는 의는 바로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임을 분명히 가르쳐주시는 예식이다. 예수의 부활은 바로 우리가 믿음으로 얻는 생명이며 그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실상이다(롬4:23-25).

교훈: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남기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시키셨다.



수요일(11월 19일) 예수님의 시험(마 4:1-11)

1. 예수께서 침례 받으신 후 광야에서 직면하신 세 가지 시험은 무엇이었습니까?(마 4:1-11, 막 1:12-13)

마4:1-1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막1:12,13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답: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 마귀에게 절하라.

예수님의 시험은 아담과 하와가 받았던 시험과 몇 가지 면에서 대조를 이룬다. 첫째, 아담은 죄가 없는 에덴동산에서 시험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악의 세력이 득세하는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다. 둘째, 아담은 풍성한 음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예수님은 그렇지 못하셨다. 셋째, 아담은 금식하지 않았으나 예수님은 금식하신 상태였다. 넷째, 아담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무언가를 먹음으로 만족을 얻으라는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아담은 실패하였고, 예수님은 승리하셨다. 다섯째, 아담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의심하도록 유혹을 받았을 때,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부족을 드러냈으나, 예수님은 동일한 시험에도 굴복하지 않으셨다. 여섯째, 아담은 공공연하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분의 왕국에 반역하는 일에 사단과 합세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단이 경배하기만 하면 이 세상 왕국을 다 주겠다는 제안을 받으셨을 때 아버지께만 충성하셨다.

예수께서는 사단을 이기심으로 아담이 실패했던 자리에서 승리하셨다. 그리고 그분의 승리는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도 유효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인류는 아담을 통한 옛 인류와 달리, 불순종과 반역의 정신 대신에 하나님께 복종하는 정신을 가질 것이다.

2. 예수께서 모든 죄에 승리하신 것은 속죄의 과정에서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고후 5:21)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처리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예수 안에서 처리되었으며, 예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친밀한 유대는 사단의 맹렬한 시험과 공격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전적으로 의지하심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셨다. 그분은 본성적으로,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죄를 짓지 않으셨다. 죄 없으신 분이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심으로 우리를 창조주와 연합시키셨다.

흠 없는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

“우리의 크신 대리자시요, 보증인이신 그분은 아담이 걸려 넘어진 바로 그 지점을 통과하셨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던 것같이 예수께서도 걸려 넘어지실 것인가? 주님께서는 사단의 공격에 번번이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되받았고 사단은 정복당한 원수로서 그 쟁투의 들판을 떠나갔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아담의 치욕스러운 실패에 설욕하고 완전한 순종의 품성을 완성하시고 인간 가족들에게 한 모본을 남기셨으니, 이는 우리로 그 모본을 그대로 모방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율법과 관계있는 곳에 단 한 점이라도 실패가 있었더라면 그는 온전한 제물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080)


<부가설명> 마귀가 예수를 시험한 내용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게 할 때와 아주 흡사하다. 첫째가 먹는 문제이고, 둘째가 선망의 대상이 되라는 것이다. 높은 곳에서 뛰었을 때 새가 날아 앉듯이 내려앉으면 얼마나 유명해지겠는가. 다음은 천하만국을 보였는데 그것은 안목의 정욕을 자극하는 것이다. 하와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을 만큼 탐스럽다고 하였다.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 사단은 이것을 통하여 사람을 시험한다. 이것들은 다 정서를 통하여 오는 것들이다. 우리는 감정의 문을 잘 지켜야 한다. 우리의 정서를 잘 다스려야 한다. 이것들을 이기는 능력이 믿음 소망 사랑이다.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이루는 믿음 소망 사랑이 우리를 주장할 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넉넉히 이길 것이다. 주님은 가장 약해진 상태서도 오직 말씀으로 이기셨다. 우리가 말씀을 익숙한 사람이 되고 그 말씀을 생활로 이루어나가기를 정직하게 원할 때 성령으로 이길 것을 보증하신 것이다. 천사들이 와서 수종 들며 도울 것이다.

교훈: 예수께서는 아담이 실패한 자리에서 승리하심으로 우리를 위한 승리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우리도 그분께서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승리할 수 있다.



목요일(11월 20일) 치료 봉사(마 9:35)

예수께서는 치유의 사역을 통하여 고통당하는 백성 중에 활동하는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셨다. 날마다 행해진 그분의 치료 사역은, 장차 그분께서 죽음의 왕국에 대하여 이루실 승리를 예고해 주었다. 죄로 인해 이 세상에 들어온 죽음의 세력은 패배하였다. 이 사실은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의 부활을 포함한 여러 부활의 사례를 통해서 확인되었다.(막 5:35-43, 눅 7:11-17, 요 11:38-44)

그분의 이적(異蹟)은 사회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였다. 나병환자가 그분께 깨끗함을 받았고(막 1:41), 사마리아인이 돌아와 엎드려 사례하였으며(눅 17:11-17), 심지어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도 그분에 의해 고침을 받았다(막 7:29-30). 사람들 사이를 분리시켰던 장벽은 예수님의 치료 봉사를 통해 무너져 내렸다. 그분께서는 서로 화목하게 살아가는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을 창조하고 계셨다.

그분의 이적은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와의 조화를 회복하고 교통하게 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였다. 죽음의 세력에 대해 얻은 그분의 승리는 많은 사람들을 그분께로 이끌어 믿음을 갖게 해 주었다.(요 4:53, 20:30-31)

1. 예수께서는 사회에 화목을 가져오고 하나님과의 교통을 회복하게 하는 어떤 다른 방법들을 그분의 사역에서 사용하셨습니까?(막 2:15-17, 요 4:39-42)

막2:15-17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요4:39-42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답: 세리 마태의 집에서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며 교제하셨고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그들과 함께 유하시며 친교를 나누셨다.

예수님의 생애와 그분의 구원의 말씀의 능력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은 분리의 심연 위로 다리가 놓여졌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영접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 이들은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으로 난 자들이다(13절). 예수께서는 당신 '안에서' 그리고 당신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친하게 된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을 친히 모으고 계셨다. 예수께서는 인류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서로 화목하게 하고자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일을 통하여, 당신께 나오는 자들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사실과, 우리도 서로를 용납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셨다.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로 보냄 받았음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평화의 기별을 가지고 세상으로 보내진다. 자신도 몰래 조용히 거룩한 생애의 감화를 끼치는 자는 누구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낼 것이다. 언행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버리고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게 하는 자는 누구나 화평케 하는 자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평화의 정신은 그들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의 달콤한 향기가 그들을 두르고 있다. 생애의 향기와 품성의 아름다움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낸다.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산상보훈, 28)


<부가설명> 예수님의 치료봉사는 죄를 치료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행동으로 선포하는 복음이었다. 사망은 그의 하수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것이 고통과 질병과 걱정 근심 등등이다. 이것들은 다 사망의 증세들이다. 예수께서 질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 생명이 사망을 이기는 복음의 실상을 행동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런 봉사를 유대인들이 경원하고 무시하고 사람취급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행동 복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복음을 듣고 주의 백성들이 되었으니 주님의 영광을 드러냄으로 복음이 확산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훈: 예수께서는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이적을 통해 인간의 장벽을 허무시고,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갈망을 심으셨다.



금요일(11월 2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교통하시는 가운데 이 세상에서의 당신의 생명을 위한 계획을 내어 놓으셨다. … 예수께서는 당신의 신성을 인성으로 옷입으심으로 인간 가족의 머리가 되셨다.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타락한 사람들과 섞이셨다."(엘렌 G. 화잇, 남부에서의 사역, 85)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인성을 통하여 인류를 하나님과 화목시키셨으며, 그분의 신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인류와 화목하게 하셨다."(엘렌 G. 화잇, 대결, 38)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셔서 요단강 둑에 엎드려 하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셨다. … 그분께서는 인류의 대표로서 하늘의 가납하심을 받으셨다. 우리는 비록 죄 많고 연약한 존재이지만 무가치하게 버려지지 않았다. 우리는 사랑하시는 분 안에서 받으신바 되었으며,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의 탄원은 하늘에 상달된다. 만일 우리가 의의 태양이 비치는 범위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하늘의 빛은 우리 위에 비칠 것이다."(엘렌 G. 화잇, 영문 시조, 1890년 7월 28일자)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인간을 속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성육신하셔야만 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 사람이 되지 않으면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실 수 없다. 아담과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의 사망을 처리하셔야 한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아담으로 오셨다. 그리고 아담이 죽은 그 죽음을 십자가에서 처리하심으로 아담 안에서 죽은 그것 때문에 죽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도록 조처를 취하셨다. 이것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

2. 그리스도의 인성은 우리에게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또한 그분의 신성은 우리에게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 성경에는 인성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냥 육신 또는 육체라고 하였다. 그가 육체가 되셔야 육체인 사람들의 죽음을 대신할 수 있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육신이 된 우리들을 대신하여 죄가 되시고 사망하심으로 사망을 처리하시고(히2:14), 부활하여 그를 믿는 자는 하나님이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는 화목을 누리게 된 것이다.

3.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치료와 화목의 사역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습니까?

* 각 자가 속한 교회의 상태를 따라 대답하자.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 예수님이 왜 꼭 사람이 되셔야 했는지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했다. 그것은 엄청난 희생이며 사랑임을 깊이 느끼게 된다. 감사함으로 주님께 나아가고 화목의 정신으로 살아야 하겠다.

요약: 성육신하신 예수께서는 사단에게 많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끝까지 아버지께 충성하셨으며, 아담이 실패한 자리에서 승리하셨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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