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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상징들로 묘사된 속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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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 작성일08-10-31 01:03 조회5,3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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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상징들로 묘사된 속죄 - 1
11월 8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27분)


기억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연구범위: 창 3:21, 4:3-5, 레 17:11, 롬 3:23, 엡 2:11-13, 벧전 1:18-19.

중심 사상: 구약의 희생 제도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으로 나타냈는지를 살펴본다.


안식일 오후

성경에 나오는 희생제도는 하나님께서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제정되었다. 그 봉사의 중심에는 희생제물의 피가 있었다. 희생 제물의 생명은 회개한 죄인의 생명이 구원받도록 흘려진바 되었다. 이 희생 제물은 우리를 대신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실 예수님의 상징이었다.

회개한 죄인들이 희생 제물을 여호와께 가져오는 행위는 자신이 죽어야 할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을 나타내야만 했다. 그들은 자기를 대신한 희생 제물의 생명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고 용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어야 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일은 필수적이다. (이것은 곧 회개와 자백을 의미한다.) 오직 십자가의 빛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들만이 정결케 됨을 경험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어린양을 발견하는 자들이다.

핵심본문: 벧전 1:18-19

<학습 목표>

깨닫기: 희생 제도는 죄의 대가를 시각적으로 상기시켜 주었음을 확인한다.
느끼기: 죄인을 구원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음을 느낀다.
행하기: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죄의 대가에 대해 어느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음을 기억한다.

< 교과 개요 >

I. 회개, 믿음, 피(창 3:21, 4:3-5, 15)

A. 처음으로 양의 피를 흘린 아담은 그 후로 무고한 양을 잡는 무수한 사람들의 첫 주자가 되었다. 아담은 가인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는 일에 대해 충분히 납득시키기 못했다. 가인이 들판에서 행한 불순종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한 불순종과 어떻게 비슷한가?

B. 가인은 하나님의 희생의 계획을 거절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호하셨다. 이 사실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그분의 보호는 얼마나 어디까지 지속되었는가?


II. 피 안에 덮어짐(레 17:11)

A. 그리스도의 죽음 이전에는 죄가 오직 양의 죽음을 통해서만 정결케 되었다. 성소에서 드려지는 속죄제를 그리스도께서 바라보신다고 상상해 보라. 그분의 마음에 어떤 느낌이 들었을지 묘사해 보라. 만약 당신이 한 손으로 양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다른 한 손으로 차가운 칼을 잡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만약 오늘날도 희생 제물인 양을 죽여야 한다면 우리는 죄의 결과를 더 실감나게 느끼겠는가? 십자가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얼마나 더 많은 감동을 주는가?

요점: 죄가 있는 곳에는 희생 제물이 필요하다. 우리는 비록 '작은' 죄라 할지라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일요일(11월 2일) 속죄와 생축의 희생(창 3:21)

1. 성경에서 생축의 희생을 드리는 일은 얼마나 오래 전에 시작되었습니까?(참조 창 3:21, 4:3,4)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4:3,4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답: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축의 죽음이 있어야 했다. 아담은 그 희생의 의미를 깨닫고, 장차 있을 하나님의 독생자의 희생을 상징하는 희생 제도를 아들들에게도 가르쳤다.


성경에서, 생축의 희생과 그것을 가져온 죄인은 너무나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생축의 생명이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였다. 그리고 그 생축의 피가 죄를 속하였다.(레 17:11)

2. 레위기 17:11에는 어떤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까?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답: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피가 죄를 속한다는 기별이 있다. 이 말씀은 생명으로 생명을 속한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성경의 희생제도에서 상징들의 의미를 발견한다. 첫째, 생축의 죽음은 그 사람의 죽음을 대신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희생(犧牲)의 행위는 구원의 행위였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예증해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을 구하시기 위해 다른 생축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인간과 더불어 교제를 계속하고자 하셨다. 둘째, 생축의 생명이 죄인의 생명을 참으로 속죄할 수는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래서 희생되는 생축의 죽음에는 단지 상징적인 의미만 있었다. 그것은 그 너머에 있는 여자의 후손(예수님)의 죽음을 가리켰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실 분이셨다(막 10:45). 셋째, 생축을 죽이는 일은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며 용서를 위해 얼마나 값비싼 대가가 치러져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희생 제물의 생명을 취하는 일은 아담과 하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우 고통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제물을 바치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사람들은 죄와 죽음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또한 용서가 죄를 묵인하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써 값을 지불하셨다.(벧전 1:19)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마자 하나님께서는 희생제도를 마련하셨다. 이 제도는 상징적 및 교육적인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아담과 하와가 바친 첫 번째 희생은 장차 오실 구세주에 대한 놀라운 소망의 예증이었다.


아담의 첫 희생 제사

“아담에게 있어서 첫 희생 제사는 가장 고통스러운 의식이었다. 그의 손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생명을 취하기 위해 들려져야만 하였다. 그는 이 때 죽음을 처음으로 목도하였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순종하였었더라면 사람이나 짐승이 죽는 일이 없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무죄한 동물을 희생 제물로 죽이면서 그는 자기의 죄가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떨었다. 이 장면을 보고 그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밖에는 속죄할 수 없는 그의 죄의 중함을 더욱 깊고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다.”(부조와 선지자, 68)

<부가설명> 만일 죄가 도덕적인 차원에만 국한되었다면, 굳이 생명을 취하지 않아도 되었을는지 모른다. 도덕적 성품은 수양과 훈련과 연습으로도 도야할 수 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도 도덕적으로 아주 고상한 상태에 도달한 사람들이 많다. 선악과를 먹은 그 순간에 아담의 도덕성이나 성품이 당장 파렴치한으로 변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순간은 아직도 아담은 가장 고상한 도덕성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즉 사망이 된 것이다. 이 잃어버리게 된 생명, 사망 그것이 죄의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죄를 속하기 위하여 누군가가 대신 죽지 않으면 안 되며, 이미 사망이 된 사람은 스스로 결코 그 사망을 처리하고 생명을 얻을 수 없다. 생명 있는 존재가 그의 사망을 처리하고 생명을 불어넣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생축(牲畜)을 통하여 사망이 대신 처리되고 죽음으로 처리되어야 할 그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게 하시고, 그것이 바로 여자의 후손이 대신 죽어주심으로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들의 사망이 처리되고 그가 부활하심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는 복음을 실천 실물로 교훈하신 것이다.





양의 머리에 손을 얹고

구슬피 울며 끌려가는 양

풀죽은 얼굴로

양을 끌고 가는 사람

벌써 몇 마리의 양을

이처럼 끌고 갔는가



양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아픈 마음으로

찢는 아픔으로

피를 토하듯 고백한 죄



양은 구슬픈 울음으로

피를 쏟고

흰옷 입은 제사장의 손끝으로

휘장에 뿌려지는 양의 피

속죄되는 죄


흘러내린 피의 강은

갈바리 십자가에서 발원하고



오늘

내 손끝에서 떨리는 잔

속을 씻어내는 붉은 즙

말간 영혼



십자가에서 찢은 살로

한 켜 한 켜

새로 지어지는 몸



아, 이제는

임이 오시는 날

말갛게 투명한 몸으로

흰옷 입고 맞이할 수 있으리



갈바리의 의미가

영광을 부활로 열매 맺는 아침에

그 구슬픈 양의 울음이

감격의 눈물로 영롱히 빛나게 되리.

(김명호 설교 시집, ‘묵도의 여행’ 중에서)


교훈: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자마자 하나님께서는 장차 있을 구원을 예증하는 희생 제도를 세우시고 죄의 심각성과 구원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셨다.



월요일(11월 3일) 죄와 부정(레 12장)

레위기는 죄와 부정(不淨)의 문제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데, 특히 정결과 부정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부정이란 언약 관계의 파기로서 그것 자체가 죄로 간주된다. 부정에 관한 규례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부정하게 하는 일은 무엇이나 피하도록 격려해 주었다. 정결에 관한 율례는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어떻게 정결한 상태로 회복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부정함을 일으키는 요인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는 불가피한 상황도 있었다. 예를 들면, 자녀를 낳은 여인은 부정하였는데(레 12장), 이 경우의 부정은 출산으로 인해 산혈(産血)이 깨끗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레 12:4-5, 7, 참조 15:19-30). 유출병이 있는 남자도 또한 부정하였다.(레 15:1-15, 참조 16-18절)

그러한 경우에 부정함을 전달하는 매개체는 개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사람이나 거룩한 물건과 접촉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물론 씻는 것과 격리시키는 것이 위생적인 이유에서 강조되었지만, 거기에는 신학적인 이유도 있었다. 부정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또한 성전에 들어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부정'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상징하게 되었다. 사실 부정은 종종 죽음과 연결된다. 부정은 또한 시체(민 6:6-7, 11)나 질병(레 13-14장), 출혈 또는 생명의 씨인 정자의 설정(泄精)과도 연결된다. 나병환자는 완전히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다.(민 12:9-12)

부정한 사람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오직 정결 예식을 통해서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으로부터 분리되고 말 것이다(레 15:31). 성경에서 말하는 부정의 개념은, 인간이 거의 항상 더럽혀져 있으며, 깨끗지 못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정결케 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 자유로이 여호와께 기도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정결은 희생제물의 피를 통해서만 가능하였다.(레 12:8)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했던 나병환자의 애환

“동방에 알려진 모든 질병 중에 나병은 가장 무서운 병이었다. 그 불치성과 전염성, 그리고 그 병이 희생자에게 끼치는 끔찍스러운 결과 등은 가장 용기 있는 사람조차도 공포로 가득 차게 했다. 유대인들 간에 이 질병은 죄 때문에 받는 심판으로 여겨졌으므로 '하나님의 치심' 혹은 '하나님의 손가락'이라고 불려졌다. 그 병은 뿌리를 깊이 박고 근절할 수가 없으며 치명적이어서 죄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의문의 법에 의하여 나병환자는 부정하다고 선고되었다. 이미 죽은 사람처럼 그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격리되었다. 무엇이든지 그가 접촉하는 것은 부정하였다. 공기는 그의 호흡에 의해 불결하여졌다. 이 병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자신을 제사장에게 보여야 하며 제사장은 진단을 하여 그의 상태를 결정하게 되어 있었다. 만일 나병이라는 선언을 받으면 그는 그의 가족에게서 격리되며, 이스라엘 회중으로부터 끊어져서 자기와 같은 병이 걸린 자들과만 사귀도록 운명지어졌다. 그 법은 그 요구에 있어서 융통성이 없었다. 비록 왕과 통치자일지라도 면제되지 않았다. 이 두려운 질병에 걸린 군주는 홀을 버리고 사회에서 도피해야 했다.”(시대의 소망, 262)

<부가설명> 부정한 것에 대한 것에서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시체에 대한 것이다. 시체는 부정하다. 그것은 썩고 있다. 이 썩는 것에 닿은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하다. 다른 것은 문둥병이나 기타 악성 질병들이나, 피를 흘린 상태나, 설정을 했을 경우들이다. 이것도 다 생명이 소모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망과 관계있는 것이다.

성경은 아담의 후손들은 다 죽은 자라고 단정적으로 계시한다(고전15:22, 마8:22). 그러므로 이 땅에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다 부정하다. 그들은 반드시 정결 예식을 거쳐야 정결해진다. 예수의 십자가는 바로 이 사망이 된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며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런 예식들은 바로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가 정결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존재이며, 그 정결을 위하여 여자의 후손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실물 교훈적 계시이다.

교훈: 구약시대에 부정에 관한 규례는 죄에 오염된 인간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었으며, 희생제물의 피를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화요일(11월 4일) 희생 제물들(레 4:3, 13, 22, 27)

1. 레위기 4:3, 13, 22, 27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은 우리에게 죄에 관하여, 그리고 죄로 인해 속죄가 필요한 사람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해 줍니까?(참조 롬 3:23, 5:12)

레4:3,13,22,27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13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22 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27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답: 죄의 영향력은 너무나도 강력하여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제사장이든 회중이든, 족장이든 평민이든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알게 모르게 죄에 오염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죄를 속하는 이 제사들로부터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첫째, 속죄 제물로 가져온 생축의 종류는 개인의 형편에 따라 달랐는데(레 5:7-12), 이는 여호와께서 사람들의 형편에 맞게 배려해 주셨음을 시사한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이 세상에서 부하든 가난하든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희생 제물은 흠이 없고 건강하며 신체적 결함이 없어야 했다(레 4:3). 비록 죄인은 불완전했으나 하나님의 어린양을 대표하는 희생 제물은 완전하였다

2. 베드로전서 1:18-19을 읽으십시오. 그 완전한 희생 제물에는 예수님의 어떤 중요한 면이 상징되었으며, 그것은 왜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그토록 중요합니까?(롬 5:19, 고후 5:21, 히 4:15)

벧전1:18,19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롬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답: 예수님의 흠과 티가 없이 온전히 깨끗하신 것을 표상하는 것이다. 예수님에게 흠이나 티가 있으면 우리를 대속할 자격을 잃는 것이다. 그도 그 흠이나 티를 용서받아야 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가 절대로 흠과 티가 없어야 우리의 죄를 대신 질 자격이 있다.


속죄제는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레 5:1-5)를 속할 뿐 아니라, 의식상의 부정도 속(贖)하였다(레 12:6-7).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만일 죄인이 돌이키기만 한다면 하나님께는 용서하지 못할 죄가 없으시다는 사실이다. 도덕적인 죄와 의식(儀式) 상의 부정은 그 희생의 피로 인하여 진심으로 회개하는 죄인에게서 상징적으로 제거되었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참으로 죄를 씻을 수 있다. 우리에게 놀라운 소식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치유와 용서와 정결함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가 어떠했든지, 우리가 얼마나 깊이 타락했든지,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속죄 제물

“율법은 어머니를 위하여 드리는 제물은 일 년 된 어린 양을 번제로 드리고 어린 비둘기나 반구를 속죄 제물로 드리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율법의 규정에 의하면 만일 부모가 너무 가난하여 어린 양을 드릴 수 없을 경우 반구 한 쌍이나 혹은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한 마리는 번제로, 다른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드릴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시대의 소망, 50)

<부가설명> 예수님이 흠과 티가 없다는 것은 도덕적 성품이나 행위의 완전함 이상이다. 우리가 예수님이 전혀 허물이 없는 분이라고 말할 때에 그냥 그가 도덕적으로 티끌만한 죄도 지으신 일이 없고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으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이런 사실도 다 포함되었으나, 더 근본적인 것은 그의 생명이 사망과 전혀 상관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여자의 후손이기 때문에 아담에게서 생명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다. 당신의 생명으로(요1:4) 처녀에게 잉태하여 탄생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사망과 전혀 상관없으신 생명자체로서 점도 없고 흠도 없으신 분이시다. 그래서 그는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들의 사망을 대신 지실 수가 있으신 것이다. 그것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다는 말의 진의이며, 그가 죄가 되셨다는 말은 바로 그런 분이 사망을 대신 지셨다는 말이다. 그가 십자가에서 사망이 되신 것은 사망 곧 죄 자체가 되신 것이다.

교훈: 속죄의 제물은 빈부귀천의 구별이 없이 누구나 형편에 따라 드릴 수 있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공평하게 주어진 구원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수요일(11월 5일) 죄와 부정의 제거(레 4:5-7)

1. 속죄제를 드릴 때에 제사장과 죄인은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레 4:5-7, 28-31)

레4:5-7, 28-31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6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 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7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28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29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 30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31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 것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답: 죄인은 희생의 짐승을 끌고 와서 그 머리에 안주하며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그 짐승을 죽이고 제사장은 그 짐승의 피를 받아 속죄제를 집행하였다.

희생 제사들에 관해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의식들이 있다. 회개한 죄인은 희생 제물을 성소로 가져와야 했으며, 그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것에 기대야 했다. 매일의 제사에서 손을 얹을 때에는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지라.”(레 1:4)는 말이 선언되었는데 이는 그 죄인과 그 희생 제물이 완전히 동일시됨을 나타내었다. 그 순간 그 희생 제물은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그를 대신하여 서는 것이다.

몇몇 예외들이 있지만(레 1:14-15, 5:8), 일반적으로 희생 제물은 가져온 그 사람에 의해 죽여진다. 이 행위는 회개한 죄인들이 죄책감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회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죄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회개한 죄인이 아닌 희생 제물에게 내려졌다. 그의 생명은 하나님에 의해 보존된 것이다. 죄와 형벌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죄가 전가되면 형벌도 전가된다. 우리는 그 최종적인 성취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한다. 우리의 죄는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을 십자가에서 대신 당하신 그분께 전가되었다.

생축의 머리에 손을 얹고 죽게 하는 의식 외에도 피를 성소로 가져가는 의식이 있었다. 이를 통해 죄가 그곳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피가 성막 내부에 뿌려지기도 하고(레 4:6), 또 어떤 경우에는 번제단의 뿔에 발라지기도 했다(30절).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죄가 성소로 옮겨지지 않는 때에는 그 죄가 제사장을 통하여 옮겨졌다. 그런 경우에 제사장은 속죄제의 고기를 먹어야 했으며, 그렇게 함으로 자신이 백성의 죄를 담당하였던 것이다(레 10:17).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들의 죄책(罪責)을 받아들이셨다. 이것은 우리를 위해 하늘에서 중보하시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을 가리킨다.

죄인의 죄가 성소로 옮겨짐

“매일 드리는 봉사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개인들을 위하여 수행하는 봉사였다. 회개하는 죄인은 자기의 제물을 성막 문으로 가져와서 그 희생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의 죄들을 고백하였다. 이 상징적 행위에 의하여 죄는 그에게서 흠 없는 제물에게 옮겨졌다. 그는 자기의 손으로 그 짐승을 죽였고 제사장은 그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 죄인이 범한 신성한 율법이 들어있는 법궤 앞 휘장에 뿌렸다. 이 의식에 의하여 그 죄는 피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성소에 옮겨졌다. 어떤 경우에는 피를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고, 모세가 아론의 아들들에게 명령하여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레 10:17)고 말한 것처럼 그 고기는 그때에 제사장이 먹어야 하였다. 이 두 의식은 다같이 죄가 회개하는 죄인에게서 성소로 옮겨짐을 상징하였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레 16:1-28)

<부가설명>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 자체가 되셔서 죽으셨다. 그것은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의 죽음을 대신 당하신 것이다. 이 일로 인류의 죄는 하나님 편에서 다 용서되었다. 이제 이 용서를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그것은 마치 아담이 하나님의 창조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하는 것과 같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했을 때 아담은 사망의 존재가 되었다. 이제 인류 개개인은 예수님의 이 희생이 자기가 희생되어야 할 것을 대신하셨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이제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각 개인의 죄가 된다. 그것은 곧 예수 안에서 주신 영생을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침내 자기 존재를 영원히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교훈: 죄인이 희생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음으로 죄를 전가했던 것처럼, 우리는 회개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십자가의 예수님께 전가할 수 있다.



목요일(11월 6일) 그 외의 제사들

1. 번제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레 1:3-9, 22:17-22)

레1:3-9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4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6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9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22:17-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8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 중에 우거하는 자가 서원제나 낙헌제로 번제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려거든 19 열납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20 무릇 흠 있는 것을 너희는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열납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21 무릇 서원한 것을 갚으려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든지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열납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22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괴혈병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너희는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단 위에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답: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레1:4).

레위기에서 번제(燔祭)는 속죄하는 제사였다. 번제는 희생 제물이 제단에서 완전히 살라짐으로 그 사람을 위해 가납되었기 때문에, 여호와께 대한 완전한 헌신을 나타내었다. 번제는 또한 서원제(誓願祭)나 낙헌제(樂獻祭)로 드려지기도 했다(레 22:17-22). 서원제는 서원이 이루어진 후에 여호와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드려졌으며, 낙헌제는 개인적인 헌신이나 감사, 또는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드려졌다.

2. 화목제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레 7:12, 16)

레7:12,16 만일 그것을 감사하므로 드리거든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 희생과 함께 드리고/ 16 그러나 그 희생의 예물이 서원이나 자원의 예물이면 그 희생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답: 화목제는 하나님과 화목한 사실을 감사함으로 드리는 제사이다. 그래서 그것은 감사제, 또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잘 수행하겠다는 서원제로 드렸다.

화목제는 감사의 희생이나 서원의 예물 혹은 자원(自願)의 예물로 드려질 수 있었다(레 7:12, 15-16). 이것은 희생의 행위가 즐거운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삼상 11:14-15, 왕상 8:62-63). 여호와께서 그 희생의 고기를 경배자에게 되돌리시사 친척과 친구로 더불어 당신의 앞에서 먹게 하신 것은(신 12:17-18), 그 희생이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이스라엘 백성과의 교통을 통하여 언약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함을 나타내었다.(신 27:7, 왕상 8:63)

3. 소제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레 2:1-10)

레2:1-10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2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3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4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5 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6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7 네가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8 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9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0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답: 소제는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드려졌다.

소제는 땅의 소산으로부터 드려졌으며,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식하게 하는 제사였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하였으나, 그분께서는 감사의 표현으로서 그것의 작은 부분을 가져오도록 백성에게 요구하셨다(신 26:9-10). 소제는 '언약의 소금'(레 2:13)과 함께 드려졌다. 소금은 고대 근동지방에서 음식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첨가제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소금은 언약의 결속시키는 특징을 상징하기에 적합하였다(대하 13:5).

제사는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를 보존하기 위해 드리는 자원하는 마음의 표시였다.

제사의 의미들

“번제는 여호와께 대한 민족의 헌신을 의미했으며, 화목제는 그분의 섬세한 자비를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함에 있어서 백성들이 연합할 때에 느끼는 기쁨과 평화를 표현했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대상 16:2)

<부가설명> 제사에는 중심 되는 제사가 있고 보조 제사들이 있었다.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가 중심 되는 제사인 것 같고, 어쩌면 번제는 모든 제사의 기본으로 가장 중요한 제사이기도 한 것 같다. 소제, 전제는 보조 제사들인 것 같으며, 건제, 요제 등은 제사 드리는 방법을 말하는 것 같다. 거제는 높이 들어 드리는 제사이고, 요제는 앞뒤로 흔들어 드리는 제사이다.

소제는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이고, 전제는 액체로 드리는 제사이다. 제물을 보면 고체 제물, 액체 제물, 기체 제물이 있다. 고체 제물은 짐승, 곡식 등등이고, 전제로 드리는 액체 제물은 포도주, 기름, 물 등이 있으며, 기체 제물은 분향이다. 이런 것들은 다 구속의 어떤 측면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다.

교훈: 번제와 화목제와 소제 등 여러 종류의 제사들은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관계를 보존하기 위해 자원하는 마음을 표현하게 한 것들이었다.



금요일(11월 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희생 제도는 그리스도께서 고안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장차 오셔서 세상 죄를 짊어지실 구주의 표상으로 아담에게 주어졌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세를 통해 희생 제사들에 관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한 지시를 주셨다. … 오직 깨끗하고 완전한 제물만이 … 하나님께 가납될 것이었다."(엘렌 G. 화잇, 하나님의 자녀들, 225)

“구약 시대에는 왜 그토록 많은 희생 제물들이 요구되었는가? 왜 그토록 많은 짐승들을 제단으로 데려가 피를 흘렸는가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신비로 남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새겨 두어야 할 하나의 큰 진리는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다'는 것이다. 피를 흘린 모든 희생 제물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표상하였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 주석, 7권, 932)

“에덴에서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창 3:15)는 선언이 있은 후에 사단은 자기가 세상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권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 그는 큰 관심을 가지고 아담과 그의 아들들이 드리는 제사를 지켜보았다. 그는 이 의식 가운데서 땅과 하늘 사이의 교통의 표상을 보았다. 그는 이 교통을 방해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그릇되게 나타내고 구주를 예표하는 예식을 그릇 해석하였다. …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할 제물을 다만 그분의 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드렸다.”(시대의 소망, 11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이스라엘 백성과 달리, 언약을 상기시켜 주는 제사를 드리지 않는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영생의 약속을 상기할 수 있을까요?

*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분이 언약의 모든 것이다.

2.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은 무엇이며,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예수님이 흠도 없고 점도 없으신 실상을 더 폭넓게 깨달았으며, 그분 안에서 그분처럼 깨끗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성령의 주장을 간절히 빌겠다.


요약: 하나님께서는 죄가 들어오자마자 용서의 귀중함과 장차 있을 당신의 아들의 희생을 상기시키는 희생 제도를 마련하셨다. 여러 종류의 제사들은 특정한 죄를 속하고, 부정으로부터 정결케 되며, 깊은 감사와 찬양을 표현하기 위해 드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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