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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속죄와 하나님의 주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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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갱상도싸나이 작성일08-10-24 13:38 조회3,4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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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제4기
10월 25일 제4과
속죄와 하나님의 주도권

<안식일 오후>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서 누구랑 뭐하는지 궁금해집니까? 연인들이 통화를 할 때 어디야? 누구랑 있어? 뭐해? 라는 질문을 합니다.
왜 물어 보나요? 사랑하는 사람이 염려가 되어서 입니까? 혹은 믿음이 가지 않아서 입니까? 혹시나 좋지 않은 일을 할까봐, 불건전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봐, 혹은 다른 남자나 여자와 함께 있을까봐 이런 질문을 하지는 않습니까?
어떤 경우에는 같이 있는 친구들 중에 한 명을 전화를 바꿔서 나의 위치와 하는 일을 설명하게 하죠. 어떤 커플은 위치추적을 해서 확인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을 때에는 어디서 누구랑 무엇을 하던 신경 쓰이지 않는데 사랑하는 관계가 되면 이런 일들로 신경을 쓰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사람을 구속, 속박하게 되는 경우죠. 이런 경우를 보면서 이 커플들은 정말 깊은 사랑, 참 아름다운 사랑, 참사랑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인데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사랑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랑, 불완전한 사랑, 성숙하지 못한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주면서 집안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랑일까요? 정말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대상이 자발적으로 사랑을 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 자유의지를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관심하며, 어떤 일을 하던 상관하지 않는 것도 온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믿기 때문에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저는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어머니가 어린아이에게 칼을 주지 않고 뜨거운 것을 만지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와 사랑하는 피조물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의 기본 적인 속성은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하고 보장하는 것입니다. 단,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 그 자유의 책임에 대한 값을 치러야 합니다. 인류는 자유를 과용, 오용함으로 율법을 어기게 되고 죄를 짓게 됩니다. 그 죄에 대한 값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야만 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형수인 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우리는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게 된 것입니다.


<일요일>
(롬 5:6-8, 개정)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책임이나 의무가 없으셨습니다. 만약에 우리를 구원하실 의무가 있으셨다면 그건 우리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가 죄를 짓는 것에 책임이 있다는 논리가 성립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롬 3:19-22, 개정)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죄를 짓기 전에는 율법을 지키므로 늘 구원받은 삶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죄를 짓기 전에는 구원이라는 개념이 없었겠지요) 하지만 율법을 범하고 나면 더 이상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죄는 한 번 범했던 여러 번 범했던 그 횟수에 상관없이 죄인이 됩니다. 도둑질 한 번 한 사람이 앞으로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인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율법을 어긴 인간, 즉 죄인은 어떤 행위나 순종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뭔가 다른 방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마련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신 죄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죄인이 다시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행위나 순종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보혈이 내 죄를 사하여 줄 수 있음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만약 구원이 순종의 행위를 통해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류가 용서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를 회복하도록 하셨습니다.

Q.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있습니까? 믿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갈 수 있을까요?


<월요일>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은혜라고 부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흔히 은혜를 선물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선물은 무엇입니까? 정의를 내려 볼까요? 선물은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그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베풂을 말하는 것입니다.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그래서 주는 것입니다. 받는 사람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선물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는 선물은 상대방이 사랑스러워서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내 감정을 상하게 하면 선물 주기가 싫어집니다. 조금 있으면 빼빼로 데이(11월 11일)인데 아담이 하와에게 빼빼로를 선물하기 위해서 예쁘게 포장해서 준비를 해뒀는데 그 사이에 하와가 루스벨을 사랑하게 되면 아담은 빼빼로를 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 질 것입니다. 사람끼리 주고받는 선물은 대가를 바라지는 않지만 줄만하기 때문에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다릅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할만한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바람 맞히고 죄와 사랑하게 되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불순종한 괴심한 죄인의 어디를 봐서, 죄와 바람피우게 되어 죽게 된 죄인이 뭐가 사랑스러워서 선물을 주시겠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무엇 때문에 선물로 내어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은혜입니다. 은혜는 사랑의 여러 모습 중에 하나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여러 품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롭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더 감사할 수 있으며 그 분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이 선물이 때로는 주는 사람의 의도와는 다르게 받는 사람에게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선물을 받기를 꺼려할 때가 있습니다. 또 선물을 받으면 받은 선물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여야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절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물을 주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 은혜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그 선물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게 된다면 그 선물을 받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물은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어떻게 보여야 할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감사한 것입니다. 너무나도 감사해서 감사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 은혜에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의 의지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이 반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큰 선물을 받게 되면 그 선물을 주신 분에게 더 잘하고 더 애정이가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게 되듯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나도 싫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입게 되면 죄가 싫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죄가 뭔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죄를 짓게 되면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어, 이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건데, 옳지 못한 것임을 자각하게 되고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Q.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변화하도록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습니까?


<화요일>
그렇다면 그 은혜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선물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신약의 말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비밀관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먼저이번 주 안교교과 기억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엡 1:9 개정)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기억절에서 말하는 “그 뜻의 비밀”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하는 은혜의 선물인 것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뜻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죄인인 우리가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 비밀을 알아야만 합니다.
(엡 1:4, 개정)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나서 계획된 것이 아닙니다. 일이 터지고 나서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 급하게 준비하신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생기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자하나님이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낼까 말까, 예수님도 갈까 말까 고민하시면서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닙니다. 창세전에 이미 계획해 두셨고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이었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사고나 사건에 의한 피해나 손해 때문에 미리 보험을 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피조물에게 문제가 생기면 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가장 훌륭한 변호사와 수사팀과 검사를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골 1:26-27, 개정)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이 비밀은 감추어졌던 것이었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향한 구속의 계획이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 계획이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비밀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구속의 계획은 유대민족 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향한 것임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 비밀이 무엇입니까? 그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냥 그리스도가 아니라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지 않은 그리스도는 궁금하지 않은, 알고 싶지 않은, 관심 없는 비밀인 것입니다. 아니 나와 관련이 없으니 비밀이 아닌 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세워 놓으신 구속의 계획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딤후 1:8-9, 개정)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딛 1:2, 개정)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영원 전부터 계획된 이 비밀은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사형수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죄인에게 영생의 소망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엡 1:10, 개정)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분단된 두 나라가 통일이 된다는 것은 단지 두 나라를 나누었던 경계선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화폐단위, 언어, 문화에 대한 이해, 도량의 통일, 그리고 서로를 향해 우리는 하나라는 마음을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격리 되어 살아야만 하는 죄인들과, 죄악으로 황폐해진 지구가 온 우주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그 길이 예수님이 십니다. 내가 곧 길이라고 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죄인과 황폐해진 지구와 거룩한 하늘보좌 사이를 갈라놓았던 죄라는 경계선이 철거 되고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완전한 통일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Q.인간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세워 놓으신 구속의 계획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화잇여사도 “이 계획을 헤아려 보려 할 때 유한한 인간의 모든 지성은 좌절하고 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듯이 구속의 계획 속에도 인간이 믿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나는 이 구속의 계획을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구속의 계획 속에 내가 포함 되어 있다고 믿습니까? 아니면 구속의 계획과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수요일>
하나님이 구속의 계획을 세우지 않으셨다면 이 땅과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가정하고 인간이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죄의 행성이 되어 버린 지구를 향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 있었을까요? 아담고 하와를 죄 지은 즉시 벌하시고 지구를 없애버릴 수도 있으셨습니다. 또는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지 못하도록 하고, 죄로 인해 힘들어하며 고통에 신음하며 살다가 죽도록 내버려 두실 수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혹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생명과를 계속 먹도록 하시면서 죄 속에서 영원히 살도록 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떠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죄로 인해 변화 될 환경과 지금과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될 것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죄인 향한 저주가 아니라 죄인게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임을 알 수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모든 것들을 행하시고 알리시기 전에 아담과 하와에게 구속의 계획(창3:15)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가지게 계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길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주장은 그리스도 없이 구원을 이루어 보겠다는 인간의 어리석은 교만입니다. 죄인이 하늘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에 갈 수 있는 길은 예수그리스도라는 고속도로(Jesus Christ Highway, JCH)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막 10:45, 개정)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갈 1:4, 개정)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갈 2:20, 개정)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엡 5:2, 개정)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딛 2:14, 개정)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죄인이 하나님과 다시 교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다시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근거와 당위성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구속의 계획이 시행되면 다시 에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하게 되고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복음이 주어진 것입니다.

Q.구원의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나는 구원의 유일한 길인 예수그리스도라는 고속도로(Jesus Christ Highway, JCH) 나아가고 있습니까? 이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곧 멸망 길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하면 항상 구원의 길 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목요일>
(눅 4:43,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눅 9:22, 개정)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눅 17:25, 개정)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눅 19:5, 개정)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눅 22:37, 개정)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눅 24:7, 개정)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눅 24:26, 개정)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눅 24:44, 개정)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위 말씀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헬라어 동사는 “해야한다” 뜻을 가지고 있는 dei(δει)입니다. 이 δει는 must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dei 라고 말씀하신 것들은 모두 구속의 계획과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전 생애는 영혼을 구원하며 죄 값을 치르시기 위한 구원의 계획을 실행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인 구속 사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위의 말씀에 나타난 일들을 꼭 하셔야(dei) 했고 틀림 없이 이루어져야(dei)했습니다. 예수님이 구속 사업을 성취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들을 빈틈없이 성취하셨고 지금도 그 계획을 성취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dei(δει)해야 할 차례입니다.

Q.우리가 dei(δει)해야 할 일은 무엇일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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