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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선교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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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 작성일08-08-28 12:59 조회3,1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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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선교의 여인들
9월 6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54분)

기억절: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

연구범위: 눅 8:41-55, 요 4:1-40, 행 16:14-16, 18:1-3, 24-28, 롬 16:3-5.

중심 사상: 신약에서 비록 여인들이 눈에 띄는 역할을 수행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의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사실을 볼 수 있다.

안식일 오후

성경 역사에서 여인들은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였다. 그들 중에는 선한 여왕들과 악한 여왕들, 정직한 하녀들, 기도하는 어머니들, 능력 있는 지도자들, 영향력 있는 아내들, 관대한 자선가들, 매춘부들, 선지자들, 여집사들, 친절한 여주인들, 예수님의 충실한 후원자들과 친구들이 있었다.

에스더와 드보라 같은 여인들은 무대의 중심을 차기하기도 했다. 성경이라는 커다란 캔버스에서 사명을 가진 여인들이 여러 방면에서 하늘 왕국을 촉진시킨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된다.

신약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여인들을 대하신 모본을 본다. 한편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을 따르며 그분을 재정적으로 돕고(눅 8:1-3), 그분의 필요를 보살펴 드린(막 15:41) 모습도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특별히 여러 경우에 여인들을 위한 사역을 하셨다. 예수님의 많은 제자들이 그분의 죽음에 이르러 그분을 버렸을 때, 여인들은 신실하게 남아 있었으며 십자가 곁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여인들은 그분의 부활을 목격한 첫 번째 사람들이 되었다.

이번 주에 비록 짧은 기록이긴 하지만 신약에 나오는 몇 여인들이 교회의 선교를 위해 담당했던 중요한 역할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핵심본문: 눅 7:47

학습 목표

깨닫기: 문화적 관습 혹은 규례와 성경적 권위를 가진 규칙 또는 규정 사이의 차이점을 파악한다.

느끼기: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합당한 경의와 존경을 나타내야 할 책임을 느낀다.

행하기: 교과반에서 깨닫고 느낀 바를 실행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한다.

교과 개요

I. 예수께서 관습을 깨뜨리심(참조 눅 7:37-47)

A. 예수께서 어떤 문화적 관습과 성경 원칙에서 파생된 대체물들을 깨뜨리셨는지 교과반에서 목록을 작성해 보라.

B. 성경 원칙과 비교해 볼 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깨뜨려져야만 할 관습들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C. 만약 루디아가 오늘날 우리 교회에 출석하게 된다면,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D. 만약 브리스길라(롬 16:3-5)가 복음전도회 강사로 우리 교회에 온다면 어떤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II.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행 21:9)

A. 이 구절 속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토의해 보라. 이 짧은 구절 속에는 교회의 지도력, 권위, 사역에 대한 어떤 암시가 주어져 있는가?

요점: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은 문화적 관습과 성경적 원칙을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문화적 관습은 바뀔 수 있는 것이지만, 성경의 원칙은 바뀔 수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성경적 원칙과 교회의 선교적 사명에 초점을 맞추셨다.



일요일(8월 31일) 관습을 깨뜨리심(갈 3:28)

예수님 당시의 유대사회에서 여자들은 대체로 공적인 활동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식일 예배에서 그들은 참여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불과했으며, 이방인들처럼 회당의 바깥뜰에 머물도록 지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자들의 뜰은 남자들의 뜰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다.

공적인 자리에서 남자들은 심지어 자기 아내라 할지라도 여자와는 말하지 못하도록 제한되어 있었다. 여자들은 토라(Torah)를 공부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성경을 만지는 것조차도 금지되어 있었는데, 이는 그들로 인해 성경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는 다르게 접근하셨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분의 사랑스런 자녀들이었다. 예수님의 죽음은 남자들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여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 당시에 랍비들은 여자들을 가르치지 못하게 되어 있었으나 예수께서는 기쁘게 가르치셨다. 한 가지 예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그분의 제자로서 그분의 발아래 앉았었다(눅 19:38-42).

여자들에 대한 편견은 생활 전반에 걸쳐 침투해 있었다. 남자들은 아주 하찮은 사유로도 여자와 이혼하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여자들은 아무리 중대한 사유로도 남자와 이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마치 여자를 남자의 노예처럼 취급하는(마 19:3-8) 그 당시의 관습을 신랄한 어조로 책망하셨다.

1.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의식(儀式)상 부정한 여자들을 접촉하심으로 율법의 규례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살리셨고(눅 8:41-42 49-55),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당신께 손을 대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눅 8:43-48). 그분께서는 평판이 좋지 않은 한 여인이 당신의 발을 씻기도록 허락하셨습니다(눅 7:37-39). 그분은 어떤 원칙을 따르신 것입니까?

눅8:41-55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42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먹은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옹위하더라 43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4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 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47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연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하니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49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마소서 하거늘 50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51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및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하지 아니하시니라 52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53 저희가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54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신대.

눅7:37-39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답: 예수께서는 남녀 간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신분과 계급의 차이도 인정하지 않으셨으며, 오직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고귀한 영혼의 가치만을 보셨다. 각 사람은 그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신 동안 인간적인 편견의 벽을 깨뜨리셨다.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다(갈 3:28).

교회는 모든 편견이 극복되는 곳

“교회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 가운데서 불러냄을 받은 자들로 구성된, 많은 지체를 가진 한 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사이에서 민족, 문화, 학문, 국적 등의 구별이나 높은 자와 낮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 남자와 여자간의 차별이 분열의 요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 상호간을 하나의 친교에로 결속시키는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하다. 우리는 편견이 없이 솔직하게 서로 섬기고 또 섬김을 받아야 한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247).

<부가설명> 예수님은 남자나 여자를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분이시다. 남녀가 인격의 가치상으로 차별을 받을 요소가 전혀 없다. 물론 남녀의 기능상의 차이가 있다. 남자가 여자의 기능을 행할 수 없고 여자가 남자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이런 것은 차별이 아니고 차이이다. 이런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또 하나의 차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격의 소중함이나 권위는 결코 차별이 될 수 없다. 바울의 주장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뿌리 깊은 차별의 문화 속에 살아왔다. 인간의 유전자 안에는 이 차별의 사상이 아주 깊이 똬리 틀고 있는 것 같다.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이런 차별이 쉽게 그의 사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인종 차별, 성별 차별, 신분 차별, 장유 차별 등등. 그러나 힘센 사람은 약한 사람을 도우며 봉사해야 마땅하고 유식한 사람은 무식한 사람을 도우며 봉사하는 것이 마땅하며, 부자는 가난한 자를 도우면 봉사해야 한다. 그래서 평균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유기체의 협력으로 봉사하고 자기 임무를 감당하게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것을 모범으로 보이셨다.

교훈: 예수께서는 그 당시의 보편적이었던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관습을 깨뜨리시고 여자들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로 동등하게 대하셨다.



월요일(9월 1일) 우물가의 여인-1(요 4:27)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분쟁은 몹시 오래되었고 원한 또한 깊었다(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려면 열왕기하 17:24-41을 읽으라).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려 했을 때 사마리아인들은 그 역사(役事)를 그치도록 방해했다(참조 스 4:7-22, 느 4:1-5). 이와 같은 사건들과 성전의 정확한 지점에 대한 논쟁은 이들 사이에 증오심을 일으켰다. 유대인이 동료 유대인에게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독한 욕이었다. 한번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귀신들린 사람 혹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부름으로써 그분을 모욕하려 한 적이 있었다(요 8:48).

남쪽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 북쪽 갈릴리로 가는 가장 짧은 지름길은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이런 여행을 할 때에는 오래되고 원한이 깊은 원수를 피하기 위해 불편을 무릅쓰고 사마리아를 우회하여 더 먼 길을 택하곤 하였다.

1. 누가복음에 나오는 다음 구절들은 그리스도께서 사마리아인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셨음을 보여줍니까? 이 사실은 문화적 전통으로 인해 멸시되어 온 사람들을 우리가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 것을 말해 줍니까?(눅 9:51-56, 10:30-37, 17:11-19).

눅9:51-56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수를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고로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촌으로 가시니라.

눅10:30-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눅17:11-19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답: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관습을 깨뜨리시고 사마리아인의 촌에 들어가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또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기도 하시고, 열 명의 나병환자 가운데 깨끗함을 받은 후에 사례한 사람은 사마리아인 밖에 없었다고 말씀하기도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도 예수님의 원칙을 따라 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어야 한다.

복음서 기자들은 여러 곳에서 사마리아를 직접 통과하신 예수님의 여정을 보여준다. 한번은 예수께서 유다에서 갈릴리로 가는 여행 중에 수가(Sychar)라는 사마리아 동네에서 멈추셨는데, 그곳은 사마리아인들에게 거룩한 장소인 그리심 산이 가깝고 야곱의 우물이 있는 곳이었다. 거기서 그분께서는 사마리아인, 그것도 사마리아 여인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셨다(참조 요 4장).

유대인이신 예수께서는 놀랍게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요청하셨는데 이 사실은 그녀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돌아온 제자들은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는데(요 4:27) 이는 비록 종교적인 교사에게조차도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한 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족적인 편견을 초월하신 예수님

“구주께서는 국가적 편견이나 민족적인 모든 편견을 초월하셨다. 그분은 그가 세상에 가지고 오신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유대인들의 축복과 특권들을 기쁨으로 나누어 주시고자 하셨다. 영적으로 눈이 멀어 흑암 중에 있던 자들 중 단 한 영혼이라도 그분께로 손을 뻗치는 것을 보시면 그것은 그분께 큰 기쁨이 되었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5권, 1134).

<부가설명> 편견은 사람을 아주 몹쓸 사람으로 만든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는 아무런 편견 없이 공평하게 한다고 주장해도 이 세상에서는 절대적이 공평이 시행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문화적 인종적 편견은 그의 성장과 교육과 관행에 의하여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인간 심리 깊이 박혀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고 해도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이루어질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그리스도께 굴복해야 한다.

교훈: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실 물을 요청하시고 그녀와 대화하심으로 유대인들의 오랜 전통을 깨뜨리시고 편견의 장벽을 허무셨다.



화요일(9월 2일) 우물가의 여인-2(요 4:1-40)

1. 요한복음 4:1-40에서 그리스도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기사를 읽으십시오. 예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그 여인의 매일의 삶과 그분께서 나누고자 하신 영적인 진리를 연결시키셨습니까? 즉 그분께서는 어떻게 그녀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셨습니까?

요4:1-40 예수의 제자를 삼고 침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침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니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 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답: 예수께서는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물과 영원한 생수를 연결시키심으로 사마리아 여인의 영적인 갈급함을 채워주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그 여인은 자신이 보고 들은 사실에 대해 너무 흥분하여 동네로 달려 들어갔다. 그녀는 자신의 물동이를 가져가는 것조차 잊어버렸다(요 4:28). 그녀는 메시야를 만났으며, 그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증언한 첫 부분은 자신의 삶의 비밀을 알고 있는 그 사람을 만나보라는 초청이었다(29절). 이것은 단순하지만 오랜 경험으로 입증된 증거의 방식이다. 우리의 사명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며, 그들을 예수께로 데려오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성령께서 그들의 심령에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신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신 줄 앎이니라”(요 4:42).

그 여인의 증언의 두 번째 부분은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라는 질문이었다. 헬라어 원문은 그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부정적으로 나올 수 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그녀의 질문은 문자적으로 “그분이 혹 메시야가 아닐까요?”라는 의미이다. 그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100퍼센트 확신하지 못하였거나, 이와 같은 사실을 주장하는 그녀에게 반감을 품을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아주 조심스럽게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이 기사에서 많은 교훈을 취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 중요한 핵심은, 예수께서 그 행하신 일을 통해 분명히 그 시대의 전통을 깨뜨리시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증거하시며 그녀를 사용하셔서 복음의 기별자와 전도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편견의 벽을 뛰어넘음

“구주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명수를 제공하셨을 때와 똑같은 사업을 지금도 추진시키고 계신다. 예수님을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소외된 자들을 멸시하고 피할는지 모르지만, 어떤 출생 환경이나 민족적 배경 혹은 생활 조건도 인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다. 예수께서는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각 영혼에게 ‘네가 만일 나에게 구하기만 하였으면 내가 네게 생명수를 주었으리라’고 말씀하신다.

복음의 초청을 상류 사회의 소수인, 곧 우리의 생각에 그들이 그 초청을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영예가 되리라고 여겨지는 자들에게만 국한시켜 제시해서는 안 된다. 이 기별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한다”(시대의 소망, 194).

<부가설명> 예수님은 이런 행보에 대한 비난을 지금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비난한 것은 이런 행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유대인의 문화정서를 아주 무시한 행보였다. 한국에서 한국 여자가 흑인과 교제할 때에 주위 사람들이 그 여자에게 던진 눈초리를 6.25를 경험하며 산 세대 사람들은 짐작할 것이다. 예수님의 행보는 그 이상으로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랍비였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무릅쓰고 예수님은 인간 사이의 편견의 장벽을 깨뜨리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이런 편견의 장벽에 갇혀 있다. 언제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게 될는지!

교훈: 관습을 깨뜨리시고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신 예수께서는 우리도 영혼 구원을 위해 관습의 장벽을 뛰어 넘어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요청하신다.



수요일(9월 3일) 초기교회의 여인들(행 16:14-16)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들에는 여인들이 종종 초기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 예배드리지 않고 사람들의 가정에서 만났는데, 종종 식탁에 둘러앉았다.

이 가정들 중의 상당수는 자주(紫朱)장사 루디아(Lydia)와 같은 여인들이 소유한 집이었다. 바울, 실라, 디모데, 누가 등이 안식일에 한 무리의 여인들과 함께 강가에서 예배드리려 할 때에 루디아는 그들에게 마게도니아의 빌립보에 위치한 자기 집을 제공하였다.

1. 루디아는 초기교회에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행 16:14-16)

행16:14-16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15 저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답: 선교 여행 중인 바울 일행에게 말씀을 배우고 예수를 믿었으며 자기 집을 예배 장소로 제공하였다.

이 짧은 구절 뒤에는 분명히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두 절 속에 루디아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믿음을 온 식구들에게 증거하고, 식구들과 함께 자신도 침례를 받고, 자신의 집을 사도들을 위해 제공하였다. 루디아는 유럽에서 얻은 첫 회심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녀의 가정은 그 지역의 선교 사역을 위한 사도들의 근거지가 되었다.

2. 사도행전 18:1-3, 24-28, 로마서 16:3-5, 고린도전서 16:19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에서 주님께서는 브리스길라를 어떻게 사역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으셨습니까?

행18:1-3, 24-28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롬16:3-5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5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고전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답: 브리스길라는 남편 아굴라와 더불어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를 자기 집에 데려다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자세히 가르쳐 아가야 교회의 큰 일꾼으로 세우는 데 이바지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롬 16:3-4).

바울은 고린도에서 얼마의 시간을 보낸 후에, 브리스길라(Priscilla)와 아굴라(Aquila)를 데리고 수리아(Syria)로 떠나갔다. 여기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라는 유대인을 자기네 집으로 데려와서 예수님에 관하여 가르쳤다(행 18:24-26). 아볼로는 후에 아가야(Achaia)교회에 큰 도움이 되었다(27-28절).

여성들도 전도자로 일할 수 있음

“여성들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진리를 심어 두는 일에 종사할 수 있는데 그 심어놓은 진리가 곧 싹이 터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복음 전도, 469).

<부가설명> 복음서나 사도행전에는 여자들이 복음 전파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한 사실을 간단하지만 분명하게 기록하였다. 여자들의 도움으로 남자들이 아심하고 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자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대상들도 있다.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곧 그 가정의 마음을 사로잡는 지름길일 것이다. 마지막 때의 교회는 여자들의 활동을 기대하고 있다. 드러나지 않게 일할는지 모르지만 여자들의 활동과 도움이 없이는 전도 사업이 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교훈: 초기교회는 루디아나 브리스길라와 같은 헌신적인 여인들의 역할로 크게 부흥했으며, 그들이 제공한 집은 선교 사역의 거점으로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목요일(9월 4일)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롬 16:1)

여인들은 비록 사회적 관습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았으나, 초기 그리스도교의 여러 여인들은 자신을 봉사의 삶을 위해 구별하였다. 성경은 세부적인 사항을 말하고 있지 않지만 여인들이 교회의 선교에 있어 활동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만은 분명하다.

1. 사도행전 21:9절에서 우리는 어떤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까?

행21: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답: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네 딸이 처녀로 예언을 했다는 사실은 당시의 일반적인 통념에서 벗어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사는 어느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셨으면 교회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면서, ‘우리 자매’(롬 16:1)라는 말을 붙이면서 뵈뵈(Phoebe)라는 한 여인을 그들에게 추천하였다. 뵈뵈는 고린도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항구도시 겐그레아(Cenchrea) 교회에 속해 있었다.

바울은 뵈뵈를 ‘교회의 일꾼’으로 묘사하였다(1절). 바울은 자신의 서신에서 자주 디아코노스(diakonos)라는 헬라어 단어를 사용했는데, 여기서는 ‘일꾼’으로 번역되었으나 다른 곳에서는 ‘집사’로 번역되었다. 어느 것이 바른 번역이든 간에, 그 의미는 뵈뵈가 교회를 섬긴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2절)고 하였다.

2. 신약의 여러 다른 여인들도 그들의 선행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미 살펴본 여인들과 더불어 다음 구절들에 나오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여러 여인들에게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행 9:36, 롬 16:7, 12, 빌 4:2-3, 몬 1:2).

행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롬16: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빌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몬1:2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답: 욥바에 사는 다비다(도르가)라는 여제자는 심히 많은 선행과 구제를 하였다. 그리고 뵈뵈, 유니아, 드루배나, 드루보사, 버시(롬16:12) 압비아 등 수많은 여인들이 충성스런 일꾼으로 초기교회를 섬겼다.

초기교회에서 여성들은 무대 뒤에서 후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을 뿐 아니라, 많은 여성들은 복음 전파의 일선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의심할 바 없이 복음 사업을 마치기 위해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계 14:6) 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함에 있어서도 여성들은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여성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모든 사람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특성을 겸한 것, 즉 즐겨 봉사하는 특성과 진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특성을 소유해야 한다. 자아와 이기심은 보이지 않도록 제거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열성 있는 여성 일꾼들을 부르신다. 그분께서는 자신과 개인의 편의를 생각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진리의 말씀을 말하고,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고, 영혼들의 회개를 위하여 활동하는 인내력 있는 여성들을 부르신다”(교회증언, 6권, 118).

<부가설명> 빌립의 네 딸은 모두 여선지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도 미리암과 드보라와 훌다 등 여선지자들이 있었으며 신약시대에도 역시 여선지자들이 활동하였다. 비록 선지자는 아닐지라도 여 성도들이 교회에서 그들이 담당해야 할 몫을 담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또한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깊이 새겨주는데 어머니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정도로 중요하다. 아이들이 6세가 될 때까지 예수님을 그 마음에 깊이 새겨주도록 해야 한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역할은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그리스도인 여 성도들의 전도적 역할은 엄청난 것이다. 아울러 교회에서 합당한 일을 맡아 봉사하면 나아가서 전도 활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ㄹ께서 남자나 여자에게 공동적으로 맡긴 일이다. 각각 받은 달란트를 따라 충성해야 할 것이다.

교훈: 초기교회에 많은 여인들이 복음 전파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듯이, 복음 사업이 마치는 때에도 여성들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금요일(9월 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이야기한 사마리아 여인은 구주를 발견하자 즉시 다른 사람들을 그분께로 인도해 왔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오히려 더욱 능률적인 선교사임을 스스로 입증하였다. 제자들은 사마리아가 유망한 선교지라는 것을 알려 주는 아무런 흔적도 보지 못하였다. 그들의 생각은 장차 이루어져야 할 큰 사업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들 바로 주위에 거두어 들여야 할 수확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멸시하던 그 여인으로 말미암아 온 동네가 구주의 말씀을 들으러 나왔다”(치료봉사, 102).

“주님께서는 남자들과 여자들을 위해 하실 일이 있으시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겸손하게 되는 중요한 공과를 먼저 배운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선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닐 뿐 아니라, 그분의 영을 소유해야 한다”(엘렌 G. 화잇, 북 태평양 연합회 회보, 1907년 12월 4일자).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세계의 어떤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교회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엘렌 G. 화잇은 그 우물가의 여인이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더 능률적인 선교사임이 입증되었다고 했습니다. 여성들은 교회의 선교에 있어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교회는 여성들이 선교 사업에 더 많이 동참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습니까?

* 여 성도들은 가정의 주부들을 접근하는데 필수적인 사람들이다. 가정의 주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그 가정을 사로잡는 것이다. 가정 사역이나, 어린이 지도 등에 능력을 계발할 수 있을 것이다. 각 교회에서 연구하고 여성 인력을 최대화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2.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우리의 문화에 적용시켜 봅시다. 예수께서 만약 우리 문화에서 멸시당하는 자들과 일하신다면 어떤 이들과 더불어 일하시리라고 생각합니까?

* 글쎄요, 가난한 사람들, 무식한 사람들, 상식적으로 생각되는 소외된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도 불러들이실 것이다.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주님의 복음 사업을 하는 데는 성이나 신분에 상관없어야 하며, 하나님께사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요약: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서 여인들은 보조적인 역할 그 이상의 것을 감당하였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은 종종 여인들의 사랑과 자비의 행동과 교회의 선교를 촉진한 일에 대해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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