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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이와같은 때에 - 사도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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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8-06-27 22:59 조회5,5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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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7월5일(안) 일몰 오후7시57분 (李奉周)

(제1과) 이와 같은 때에 使徒바울
<擴大鏡>
1. 사울이라는 본명을 가진 이방인(異邦人)의 사도(使徒)요, 소아시아의 길리기아의 수도인 다소 성(城)에서 출생했으며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으로 베냐민 족속의 사람인 사울은 특별(特別)한 선교사역을 위해 선택(選擇)되었고 준비된 사람이었다.

2.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은사(恩賜)와 달란트를 계발(啓發)하여 주님의 제자의 삶으로 전환(轉換)하여 은사들과 달란트를 적극 활용하여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기를 바라신다.
그 모델이 바울로 모델삼아 우리에게 적용되기를 기뻐 기다리시고 원(願)하신다.

日 6월29일
<바울의 背景> (행 22:3-5, 25-29)
◎ 위대(偉大)한 복음(福音) 전도자(傳道者) 사도(使徒) 바울은 그 부모(父母)들이 하나님께 간구(懇求)하여 얻은 아들로 기대(期待)를 걸고 이름을 사울(간구(懇求)된 바, 희망(希望), 여호와께 구(救)하다)의 뜻도 있지만 쉽게 말해서 “큰 자(者)”라는 의미로 사람들 앞에서 훌륭하고 똑똑하고 큰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사울”이라는 이름을 지어 불렀으리라, 그러나 사울이 바울(작은 자(者)로 변(變)하게 된 유래(由來)를 공부해보면 참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有益)한 교훈이 될 것이다.

◎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으로, 본명(本名)은 '여호와께 구(救)했다'라는 '사울'(행 9:4)이였고 베냐민 지파(支派)로서(빌3:5), 길리기아의 다소 출신(出身)(행22:3)으로,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市民權)을 가진(행22:26-28)자(者)로, 유대인으로서 당대 최고의 교법사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격(嚴格)한 교육을 받았고(행22:3). 바리새파에 속한 철저한 유대교도로서 기독교 박해(迫害)에 앞장섰으며, 스데반의 재판(裁判)과 처형(處刑)에 입회하였고(행8:1,3). 그리스도인들을 체포(逮捕)하고자 다메섹으로 가던 중 예수를 만난 후,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박해자(迫害者)에서 사도(使徒)로 대 전환(轉換)하였고(행9:3 이하;22:4 이하). 이후 아나니아에게 침례(浸禮)를 받고 사도로 세움을 받은 후(행9:15), 안디옥 교회에 의해 이방인(異邦人)의 사도(使徒)로 파송(派送)받았고.(행13:1-3). 바나바, 마가와 함께 2차 전도여행을 떠났고(행13:1-14:28). 안디옥을 출발하여 구브로 섬을 거쳐 소아시아 중남부의 유대교 회당(會黨)을 중심으로 전도(傳道)하였다. 또한 실라와 함께 2차 전도여행을 떠났고(행15:36-18:22). 안디옥을 출발(出發)하여 드로아 항구를 경유하여 마게도냐 지방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아덴, 고린도에서 사역(使役)하였고,
3차전도 여행 시에는(행18:23-21:14) 에베소에서 중점적으로 선교를 하였고 3차 전도여행 후 유대인에게 붙잡혀 연금을 당하였고 (행21:27-30;24:22-26:32).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A.D.60년 로마에 입성(入城)하여 (행27:1-28:16). 전설에 따르면, 스페인까지 전도했다고 하며, A.D.65-68년경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月 6월30일
<바울의 悔心과 召命> (행 9:1-9)
◎ 우리말에 무식(無識)하면 용감(勇敢)하다는 말이 있다.
사울(바울)은 예수님에 대하여 무지(無知)함으로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위협(威脅)과 살기가 등등하여 그 도(道)를 좇는 사람들은 무론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結縛)하여 핍박(逼迫)하는 일에 그 누구보다도 열심(熱心)을 내었던 사울(바울)이었다. (행 9:1-2)
그런 사울(바울)에게 굉장한 사건이 다메섹 도상(途上)에서 벌어집니다.
홀연(忽然)히 하늘로 부터의 빛이 즉 예수님에게 두르고 있던 그 빛은 굉장한 빛인 것입니다.
그 빛이 사울에게 쏘일(비추일)때에 어느 인간(人間)도 쓰러지지 않을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빛이 사울에게 비추일 때 그가 꼬꾸라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能力)이 잠깐만이라도 미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0.00000001초만의 하나님의 빛이 비추기만 하면 어느 인간이라도 꼬꾸라집니다.
사울이 바로 그 것 이였습니다. (행 9:3-4)
내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조금이라도 미치기만 하면 우리는 누구든지 꼬꾸라집니다.
사람들의 큰 회심(悔心)의 경우에는 큰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그때 영적(靈的)인 눈이 뜨이지 않으면 더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전자(前字)에 말한 무식(無識)은 바로 사울에게는 여기(행 9:1-5)에다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때 사울은 자신이 핍박(逼迫)하든 대상이 뉘인지 여기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행 9:4-5)
핍박(逼迫)은 인격적(人格的)인 것도 될 수 있지만 또한 물리적(物理的)인 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이 핍박한 대상의 존재가 사도행전 9장5절에 들어 났습니다.

☞ 여기서 사울은 큰 - 충격(衝擊)을 받는 것입니다.
사울(바울)로써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굉장히 큰 충격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사울이 땅에서 일어났으나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눈은 하나님의 빛인 영광의 빛이 잠깐만 비추 워도 안 보이는 것입니다.
눈은 신비하고 연약한 지체(肢體)인 것입니다. 정신적인 심한 충격을 받아도 시력을 잃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본 것은 엄청난 사건(事件)인 것입니다.
베드로도 닭우는 소리에 예수님을 보았고, 이후에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회개(悔改)를 한 것입니다. 하늘로 부터의 빛은 여러 가지 여러 형태로 임(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서신(書信)에서는 가끔씩 내가 “예수님을 보았다”고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둘 중에 하나를 선택(選擇)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지금 받은 충격을 무시하고 그대로 가던 길을 그대로 가는 사람이든지.
(둘째)는 아니면 받은 충격(衝擊)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가던 길을 청산(淸算)하고, 정 반대(反對)의 길로 가는 것을 선택(選擇)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앞이 캄캄할 때 결정(決定)을 내린 것입니다.
사울은 그 당시에 당대 최고의 교법사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격(嚴格)한 교육을 받은 사람(행22:3)이라는 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또한 그에 신분(身分)과 혈통(血統)은 굉장(宏壯)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도 하늘의 빛이 아니였더면 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 주님 앞에 설 수 있으려면 반석(磐石)되시는 예수님위에 떨어져서 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十字架) 사건(事件)전에 바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인간으로써의 육신(肉身)을 깨어 내시려고 그 동산에 가셔서 기도(祈禱)하실 때에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애쓰시며 기도(祈禱)하신 것입니다.

◎ 정경(正經)외(外)의 글에 의하면
☞ 사울의 모습(模襲)은
① 대머리에
② 안짱다리에
③ 자그마한 몸집에
④ 좌우(左右) 눈썹은 마주연결 되어 있고
⑤ 코는 크고 체구(體軀)는 조그마하고
⑥ 겉모습은 볼품없는 그런 사람이었답니다.
하나님께선 왜 그런 볼품없는 사람을 택하셨을까?
멋지고 늠름하고 잘생긴 사람을 택하지 않으셨을까?
신약 성경의27권중에 14권을 사울(바울)이 기록하였다.
(삼상 16:7)......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中心)을 보느니라.
사울 당시에 사람들은 사울의 외모(外貌)로부터의 위용(偉容)이 아니라,
영력(靈力)으로 아무도 꼼작 못했다.

◎ .이방인(異邦人)의 사도(使徒)로서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나서는 정열적(情熱的)인 사람 바울(빌4:11-13)은 그로 인해 오늘날의 기독교가 성립될 수 있었다.
◎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그리고 가장 많은 해석(解釋)을 내린 신학자(神學者)였다. 그의 서신(書信)들이 이를 잘 증명(證明)해 주고 있다(롬1:4;9:5;고전 8:6).
◎ 복음(福音)의 씨를 뿌리는 데에 그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자라도록 돌보아 주는데 힘쓴 책임감 있는 사람 바울(고전16:15-20; 살전1:2)이다.
◎ 교회내의 많은 문제들과 개인적인 삶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적절한 답변을 제시해 준 설교(롬9:1;고전11:1)라고 볼 수 있다.

◎ 특히 바울의 회심(悔心)을 보면 “사도(使徒)”에서 → “성도(聖徒)”로 “성도”에서 → 죄인(罪人) 중에 괴수(魁首)로 점점 더 낮아지는 단계를 생각해 보자. 이것이 신앙(信仰)의 깊이 인 것이고,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인 것이다.
① (고전 15:9) 사도(使徒)중에 지극(至極)히 작은 자 →
② (엡 3:8) 모든 성도(聖徒)중에 지극(至極)히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자 →
③ (딤전 1:15) 죄인(罪人)중에 내가 괴수(魁首)니라 →

<적용>
◎ 요즘의 교인들은 성도(聖徒)로써가 아니고 교인(敎人)들로써의 이름만 가지고 신앙(信仰)을 마치 문화생활(文化生活)을 하듯 하려고 하는가 하면 적당히 적절히 예배(禮拜)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禮拜)를 보러 오는 경향(傾向)의 추세(趨勢)로 차츰차츰 세속(世俗)화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火 7월1일
<우리와 性情이 같은 바울> (롬 7:24)
◎ 성정(性情)이라는 말은 우리와 같이 성질(性質)과 심정(心情)과 타고난 본성(本性)이 같다는 것을 말하는데, 바울 역시우리와 같은 성질과 심정을 가졌던 사람으로 우리처럼 실수를 하고 넘어지는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도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의 빛의 통로와 도구(道具)와 예수님의 향기를 뿜을 수 있는 종이 될 수 있다는 큰 용기(勇氣)가 된다.
◎ 바울은 우리와 같은 성정(性情)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證據)가 그의 사울(큰 자(者))이라는 이름부터 시작해서 그의 출신(出身)과 배경(背景)을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사람일지라도 완전한 사람은 아니며 그의 삶에서 드러난 실수(失手)와 약점(弱點)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도구(道具)로 사용하셨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심문(審問)하는 곳에서 결정적(決定的)일 때 세 번이나 부인(否認)한 사람이었고, 바울도 바나바와의 날카로운 대립과 동역(董役)하는 과정에서의 실패와 결함들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시는 성령에 의해서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 특히 바울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마음을 토로(吐露)한 말씀이 로마서7장14절-25절까지에 육(肉)과 영(靈) 사이의 갈등을 잘 표현(表現)하고 있다.
“내속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肢體)속에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肢體)속에 있는 죄(罪)의 법(法)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困苦)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死亡)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롬 7:22-24)
“내가 원(願)하는 바 선(善)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願)치 아니하는바 악(惡)은 행(行)하는 도다.” (롬7:19)
◎ 육체(肉體)의 가시로 고통(苦痛)받은 바울(고후12:7).은 우리와 성정이 같다.

水 7월2일
<그리스도를 通한 生命과 救援> (고전 2:2)
◎ 사울(바울)의 삶을 보면서, 사울의 초기에 삶은 예수님을 믿던 사람을 핍박하고 옥(獄)에 집어넣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迫害)하던 그가 신약(新約)의 절반(折半)이상(以上)을 자기가 핍박(逼迫)하고 박해(迫害)하던 예수님에 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記錄)한 것을 생각할 때 회심(悔心)과 선교(宣敎)와 소명(召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에게 교훈(敎訓)하여 주고 있다.
한사람 사울(바울)이 유대교를 신봉(信奉)하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悔心)후에 그의 삶의 일대 전환(轉換)은 가히 우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성도(聖徒)들에게 선교(宣敎)와 전도(傳道)에 일대의 소망(所望)과 분발(奮發)을 촉구(促求)함에 충분하기에 우리는 우리도 세천사의 기별자(寄別者)로써 남은 생애에 예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모두가 됩시다.

◎ 우리는 (바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가장 성실하게 순종한 사도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가서 제자를 삼으라.'(마28:19) ‘내 증인(證人)이 되리라'(행1:8)는 말씀에 누구보다도 헌신(獻身)한 사람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믿는 종교(宗敎)에 대해 끈기와 정열(情熱)을 갖고 열심(熱心)을 다한 사람이었다(고전2:2;갈1:14).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한 이상 미지근한 신앙으로 책망 받았던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아서는 안 되겠다. 그리스도 앞에서 약(弱)한 자(者)였던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강(强)한 자가 되었다. 자기 부인(否認)만이 우리를 그리스도 앞으로 더욱 가까이 인도해 줄 수 있는 것이다.

◎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 이로라."(고전9:16).
들었으나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들은 말을 깨달았으며, 그에게 말씀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 그에게 분명(分明)하게 나타났다.

◎ 사울은 그의 앞에 서 계신 영광(榮光)스러운 분에게서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셨던 그분을 보았다. 그 상처(傷處)받은 유대인의 영혼(靈魂)위에 구주(救主)의 얼굴 모습이 영원(永遠)히 인각(印刻)되었다. 그분의 말씀은 놀라운 힘으로 그의 마음을 찔렀다. 그의 어두운 마음 구석에 큰 빛이 비쳐 들어와 과거(過去)생애(生涯)의 무지(無知)와 과오(過誤), 그리고 현재 성령(聖靈)의 교화(敎化)하심의 필요(必要)를 깨닫게 하였다.”(행적, 114)

◎ “바울은 그가 회개(悔改)하지 아니하였을 때는 오실 메시야의 성격(性格)과 사업에 관하여 개인적(個人的)인 지식(知識)에 의해 알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은 그런 생각(生角)으로 그리스도를 알았었다고 선언(宣言)하였다. 그가 나사렛 예수를 사기꾼으로 거절(拒絶)하였던 것은 그분께서 이 같은 생각을 충족(充足)시켜 주시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명(使命)에 대한 바울의 견해(見解)는 매우 신령(神靈)하였고 고상(高尙)하였는데 이는 그가 회개(悔改)한 까닭이었다. 사도(使徒)는 그가 육체(肉體)를 따라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소개(紹介)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을 강조(强調)하였다. 헤롯은 그리스도께서 인성(人性)을 쓰셨을 때 그분을 보았다. 안나스도, 빌라도와 제사장(祭司長)들과 관원들도, 로마의 군사(軍士)들도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信仰)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보지 아니하였고 영광(榮光)을 받으신 구속주(救贖主)로서 그분을 보지 아니하였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이해(理解)하는 것, 곧 그리스도에 관한 영적(靈的) 지식(知識)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그분과 개인적(個人的) 친분(親分)을 갖는 것보다 더 바람직한 일이었다. 지금 바울이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와의 교제(交際)는 단지 세상적(世上的)인, 인간적(人間的)인 그러한 교제(交際)보다 더욱 친밀(親密)하고 더욱 지속적(持續的)인 것이었다.”(행적, 452)

木 7월3일
<所望의 主題들> (딤전 6:11)
◎ 개과천선(改過遷善)이라는 말은 지난날의 잘못이나 허물을 고쳐 올바르고 착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救主)로 영접한 후에 사람들을 보면 거의가 제 잘난 멋에 이기적(利己的)인 삶을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의 삶은 너무나 다른 삶을 산다. 즉 동(東)이 서(西)에서 먼 것과 같이 의식주(衣食住)는 물론이고 생활방식(生活方式)이 달라진 것을 보게 된다.
<찬미가 382>
(一).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같이 빛난다.
(二) 주안에 감추인 새 생명 얻으니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값없다.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맛보니 찬송과 기도로 주함께 살리라
(三) 산천도 초목도 새것이 되었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새 생명 얻은 자 영생을 맛보니 주님을 모신 맘 새 하늘이로다.
(四) 주 따라 가는 길 험하고 멀어도 찬송을 부르며 주 따라 가리라
나주를 모시고 영원히 살리라 날마다 섬기며 주함께 살리라.
(後斂) 영생을 맛보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함께 살리라.

◎ 비(非) 그리스도인들의 삶 / 그리스도인들의 삶 (NEW START)
① 고단백 고 칼로리의 인스턴트식품 선호(選好) / 채소, 견과류, 과일 등
② 편하게 (리모컨) 선호(選好) / 노작(勞作), 운동(運動)
③ 썩은 물(주류(酒類)) 선호(選好) / 깨끗한 물
④ 어둠 컴컴하게 선호(選好) / 햇빛
⑤ 부절제(不節制) 선호(選好) / 절제(節制)
⑥ 썩은 공기(담배) 선호(選好) / 깨끗한 공기
⑦ 과로(過勞) / 휴식(休息)
⑧ 자신이 하나님 됨 / 하나님 신뢰

◎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향(志向)하는 삶.
① 의(義)로운 삶 (마 5:6 참조)
② 경건(敬虔)한 삶 (딤전 2:2 참조)
③ 믿음 있는 삶 (롬 3:3 참조)
④ 사랑하는 삶 (고전 13:1 참조)
(원래의 사람은 사랑의 대상인데 사람들은 사람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인데 반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착각하며 산다)
⑤ 인내(忍耐)하는 삶 (약 1:3; 계 14:12 참조)
⑥ 온유(溫柔)한 삶
(고전 13:4; 고후 10:1; 갈 5:23; 엡 4:2; 골:3:12; 딤전6:11; 딛3:2; 약 3:13 참조)
⑦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 (갈 5:22-23)
⑧ 구원의 투구를 쓰는 삶 (엡 6:17 참조)

◎ 바울은 결코 교회생활과 상관없는 교리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한 곳이 없다.
바울의 서신(書信)서들에는 언제나 신앙생활에 있어 그리스도인들의 필요와 질문(質問)등에 응답하기위하여 쓰여 졌다. 따라서 서신들 마다 서로 다른 어휘와 논리(論理)와 주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그의 논리전개(論理展開)는 그가 지닌 사상(思想)의 특정한 관점들을 간파(看破)할 수 있게 해준다.

<焦點>
1. 죄 많고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자격과 한계(限界)가 없음을 깨닫고
2. 바울은 예수님의 복음을 자신의 특별한 배경과 은사를 사용하여 십분 활용하였다. 우리도 이점에 용기를 내어 세 천사의 기별전달자로 분발(奮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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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부록(末尾附錄)>
1. 개종(改宗)하기전의 바울의 생애(生涯)
다소사람 사울이 참석하여 스데반을 대적하는 역할을 하였다.
사울은 이 사건을 지시하는 무게 있는 웅변과 랍비의 이론으로 백성들로 하여금 스데반이 기만적이요 위험한 교리를 전파하고 있다고 확신시키려 하였으나 그는 다른 열국에 복음을 전파하는 하나님의 목적을 완전히 깨달은 사람을 스데반에게서 발견하였다,
스데반의 심문과 죽음의 광경을 볼 때에 사울은 심한 분노에 젖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후에 그는 그가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한 바로 그때에 스데반은 하나님에게서 영광을 받았다는 그 자신의 은밀한 확신 때문에 분노를 느꼈다. 사울은 계속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여 교인들을 박해하고 그들을 그들의 집에서 잡아다가 투옥하고 죽이도록 제사장들과 관원들에게 넘겨주었다. 이와 같은 박해를 계속하는 그의 열심은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포심을 가져왔다. 로마 관헌들은 잔인한 행위를 멈추려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환심을 사고 그들의 호의를 얻고자 비밀리에 유대인들을 도와주었다. (행적 99, 102-103)

2. 그는 어떤 돌도 던지지 않았다.
사울은 스데반을 돌로 치는 일에는 가담하지 않았으나 그의 죽음에 동의 하였다……. 사울은 역량 있고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으며 그의; 열심과 학문은 유대인들에게 크게 호평을 받았으나 반면에 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두려운 존재였다. 그의 재능들은 사단에게 크게 이용당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그를 믿는 자들을 대적하여 일하였다. (초기 204-205)

3. 스데반의 죽음에 대한 바울의 보상
스데반을 죽인 후 바울은 그때에 행한 역할을 참작하여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한동안 사울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그의 반역을 수행하는데 사단의 수중에 든 유력한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이 무정한 박해자는 그가 지금 헐고 있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종사해야 하였다. (행적 103)

4. 그는 그의 죄를 슬퍼하였음
바울은 자기 자신을 방어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죄를 작게 보이려고 하지 않고 그의 죄를 가장 어두운 색깔로 칠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대 제사장들에게 권세를 얻어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獄)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라고 그는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선언하였다.
순수한 회개로 굴복되어서 낮추어지고 깨어진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갈바리의 값을 감사하게 될 것이다.
아들이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자복하는 것 같이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그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가져올 것이다. 가라사대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赦)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5T 641)

5. 바울은 당시에 그가 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생각 하였다.
바울의 놀라운 회심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기적적인능력을 보게 된다. 한낮의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그를 둘렀다. 모든 이름 중에서 그가 가장 멸시하고 증오하던 이름인 예수가 바울에게 자신을 나타 내셨다. 이는 그가 정직하기는 하지만 광기(狂氣)에 가까운 그의 질주를 저지하는 동시에 전혀 가망 없어 보이는 이 기구를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선택받은 그릇으로 만드시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의식적으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반대하는 많은 일들을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 교회를 핍박하는 끈질기고 열렬한 박해자이었다. 예수를 생명의 왕이라고 믿는 이 놀라운 교리, 도처에 만연되어가는 이 교리를 박멸(撲滅)해버리는 것이 그의 의무라고 생각한 그의 확신은 깊고도 강한 것이었다. 사울은 하나님의 성도들을 핍박하고 그들을 옥(獄)에 가두고 죽이는 이 같은 잘못된 믿음을 행하는데 에 있어서 정열과 열심히 충만해있었다. 비록 그의 손으로 살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형판결을 짓도록 말하였으며 열심히 지지하였다. 그는 그 길을 준비하였으며, 사형집행자들의 손에 신자들을 넘겨주는 일을 하였다....... 바울은 약(弱)하고, 무식(無識)하고 광신적(狂信的)인 이단(異端)자들을 박해(迫害)하고 있다고 정직하게 생각하였다. 그는 자신이 미혹당하여 속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둠의 왕자의 깃발 아래서 무지하게 행동하였다. ( M. S 142, 1897)

6. 사울의 불신은 정직하였지만 그것이 변명될 수는 없음.
진리를 거절하는 마음은 왜곡된 빛 가운데서 모든 것을 보게 된다. 그의 지성은 확실히 원수의 음모 속에 매여 있으며 원수의 빛 가운데서 사물을 볼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권고보다는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도 메시아를 가리켜 보이는 예언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랍비들의 말과 사람들의 말을 더 좋아하였다. 사울 자신의 지혜로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몰랐다.
……. 그는 그가 잘못 판단 한 것을 용서 받을 수 있다고 변명하지 않았다. ........ 그는 거짓된 양심이 받은 인상을 성실하게 따라감으로써 그가 저지른 잔인한 행동을 하나도 변명하지 않았다. ( M. S 9, 1898).

7. 바울이 받은 계시와 생애의 변화.
다메섹 성문 밖에서 바울이 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이상은 그의 전 생애의 방향을 일변시켰다.
박해자는 제자가 되고 교사는 학생이 되었다. 다메섹에서 고독한 중에 보낸 흑암의 몇날동안은 그의 여러 해 동안에 받은 경험으로 더불어 장애될 만큼 유력 하였다. 그가 기억 하고 있던 구약 성경의 말씀들은 그의 연구 자료이었고 그리스도께서 그의 선생이었다. 그는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가서 거기서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에 대하여 배웠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의 생애를 꼴 짓게 하던 편견과 관습을 그 심경으로부터 내어버리고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교훈을 받았다. (교육 84-85)

8. 그들에게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도 그 음성을 들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서있기만 하였다. 빛이 사라지자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지만 시력을 잃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
하늘의 빛의 영광이 그를 볼 수 없게 한 것이었다. (초기 205-206)

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고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사울의 눈먼 것을 고쳐주실 수 있으셨을 뿐 아니라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장차 그가 걸어야할 길을 뚜렷이 보여주심으로써 그의 의무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셨다.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자비와 능력이 흘러나와야 하였지만 그분은 바울이 진리로 회심할 때 최근에 조직된 지상 교회와는 유리된 경험을 그에게 주시지 않았다. ……. 바울이 없애버리려고 계획 하였던 바로 그 사람이 그가 멸시하고 박해해왔던 바로 그 신앙을 가르쳐주는 그의 교사가 되어야만 하였다. (3T 430)

10. 참으로 보도록 하기 위하여 장님이 되었음.
바울은 그가 훼방하던 그분의 영광으로 인하여 육체적으로는 눈이 멀었지만 그것은 그로 영적 시력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그의 식별력을 둔화시키고 마비시켜버린 혼수상태로부터 그를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 그는 자신의무기력하고 소망 없는 상태를 그를 용서하실 수 있고 의(義)로 옷입힐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그리스도께 다 맡겨버렸다. (M S 23, 1899)

11. 그는 언제나 시력이 나빴다.
그는 그의 몸에 그리스도의 영광의 흔적을 언제나 가지고 다녔으니 그의 눈은 하늘의 빛으로 침침하게 되었다. (The Life of Paul 34)
바울은 신체적으로 고통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시력은 나빴다. 그는 열렬한 기도로 그 어려움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주께서는 목적을 가지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문제로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Letter 207, 1899)

12.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았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지 않았고 율법으로 생각과 행동과 영을 정죄 하였다. 그가 박해해왔던 구세주(救世主)가 없이는 그는 스스로를 완전한 죄인으로 보았다. (M S 23, 1899)

13. 그는 결코 그의 회심을 잊지 않았다.
그 사도는 자기가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을 박해하던 핍박자의 자리에서 그 분을 믿는 신자의 자리로 회심한 것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이 회심이 그 후의 모든 생활에서 어떤 태도를 갖게 하였겠는가!
그 것은 그가 한 대 비웃고 멸시하던 그분의 편에 서서 일할 대 얼마나 용기가 되었겠는가! ....... 그가 회심한 후 사도 바울은 가라고 부름 받은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그가 회심할 때 하늘 천사들이 한 봉사를 생생하게 제시하였다. (M S 29, 1900)

14. 바울의 품성의 변화
다소사람 사울은 로마의 시민이면서 이방사람의 도시에서 난 사람으로서 그 혈통만이 아니라 성장하는 긴 동안에 받은 훈련과 애국적인 헌신과 종교적인 신념에 있어서 유대인이요 예루살렘에 있어서도 가장 우수한 학자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고 부조로부터 전하여 오는 율법과 관습에 대한 교훈을 받았으며 도한 유대국민으로서의 자부심과 편견을 최대한 도로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산헤드린의 존경을 받는 의원이 되었다.
그는 장래의 촉망을 받는 고래의 전통적인 신아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였다. (교육 83-84)
그들은 편지들이 힘 있고 능력이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나 사실상 그는 약하고 눌변이라고 비방하였다.
바울은 높은 학문을 한 사람이었으므로 그 지혜와 방법들에 청중들이 이끌릴 경우도 있었다. 학자들은 그의 지식을 즐겨 받아들였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 왕들과 대 의회 앞에 섰을 때 그는 그의 앞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매혹 될 만큼 웅변을 곧잘 토하였다. (초기 212)

15. 예절바르게 된 바울
그리스도교는 사람을 신사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예의가 바르셨다. 그분께서 심지어 당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예모를 지키셨다. 그러므로 그분을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정신을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법관들 앞에 나온 바울을 보라. 아그립바 앞에서 한 그의 말은 설득력 있는 웅변에 대한 예증이 됨은 물론이요 참된 예의에 대한 예증이다. 복음은 이 세상에 유행하는 형식적인 예증을 권장하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진정한 친절에서 나오는 예절을 권장한다. (치료 451)

16. 바울은 개심(改心)한 후에 하늘 분위기의 사람이 되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하늘의 고상한 분위기를 몸에 지니고 갔다. 그와 접촉하는 사람들마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위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자기가 전하는 진리와 일치한 생애를 했기 때문에 바울이 전하는 마음에는 위대한 능력이 있어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진리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부지중에 자연히 나타나는 거룩한 생애의 감화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하는 가장 위대한 설교이다……. 바울의 마음은 죄인에 대한 사랑으로 뜨거워져서 그의 온 힘을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에 바쳤다. 극기와 인내에 있어서 바울보다 더 월등한 일군은 아직 없었다. 바울은 그가 받은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 복되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였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구세주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또한 고난 중에 있는 자들을 도와주었다.
……. 이상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는 교역자들 앞에 도달하여야 할 높은 표준이 있음을 말하여준다. 그러나 더 표준은 크신 교사 그리스도의 지도하심을 받고 날마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표준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한량없기 때문에 그 능력이 크게 필요함을 깨닫고 주의 앞에 나아가 주와 교제하는 교역자는 그의 말을 듣는 자들을 생명으로 이끄는 생명의 향기가 될 자료를 받은 줄로 확신할 수 있다. (복음 57, 58)

17. 그는 자신의 눈으로 사물을 볼 때 모든 것이 작게 보였다.
그때에 죄는 그 참 흉악성을 드러내었다. 선행과 공로를 더 이상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고, 분수없게 자신을 더 높다고 생각하던 버릇을 그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그는 더 이상 큰 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갖지 않았고 복수심을 버렸다. 이 땅의 인간관계나 지위, 명예 등을 더 이상 구하지 않게 되었고 자신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지 않았다. 그는 온유하고, 겸손하며, 자신을 낮추고 낮은 데 마음을 두었으니 이는 그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운 연고였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의 비할 데 없는 사람에 대하여 말하였으며 점점 그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갔다. 그는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데에 그의 온 힘을 다하여 몰두하였다. (R.H 1890. 7.22)

18. 힘과 성공의 비결
어떤 때에 바울은 말하기를 “아시아에 들어온 첫 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의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럼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행20:18-20) 이 말씀은 바울의 능력과 성공의 비결을 설명해 준다. 그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은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 회당과 저자에서 공공연하게 그리스도를 설교하였다. 그는 집집에 다니면서 가르쳤고 가족이 둘러 모인 곳에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다. 병든 자들과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눌린 자들을 놓아주었다. 그가 말하고 행한 모든 것에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구주를 나타내었다. (Y.I 1990.11.22)

19. 우리도 이와 같은 정신이 필요함.
그대의 이웃들에게 온 힘을 다하여 친절하게 말하고 행하는 일을 등한히 하지 말라. 이렇게 함으로 아무쪼록 몇 사람을 구원하려 함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강권하였던 그 정신을 구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집집에 다니면서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눈물로 탄원하고 가르쳤다. (R.H 1888. 3.13)

20.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의 믿음이 필요함
우리들 가운데 책임이 큰 지위를 가진 사람들 중에는 소위 철학자들이라는 몇몇 사람들의 외람된 말을 성현의 증언이나 성경진리보다도 더 믿을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다. 오늘날에는 바울이나 베드로나 요한이 가졌던 그럼 믿음은 구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신앙은 지성인들에게 불합리하고, 미신적이며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5T 79)

21. 바울보다 더 큰 교역자가 없음
일찍이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 바울보다 더 열렬하고, 활동적이며 희생적인 그리스도의 제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가장 위대한 교사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세계의 대부분이 그의 입술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이야기를 배울 때까지 바다를 건너서 원근 각처를 널리 여행하였다. 그는 구주의 사랑을 통해서 나타난 진리의 지식을 멸망해 가는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불붙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영혼은 봉사사업으로 가득 차 있었다. (4T 409)

22. 바울의 첫 번째 사업은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함께 했다.
사도 바울은 인구가 많은 안디옥 시는 일하기 좋은 곳임을 발견하였다. 바울의 탁월한 학문과 지식과 그리고 열성은 다 함께 이 문화의 도시에 사는 시민들과 또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큰 감화를 주었다……. 그러나 바울은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그의 사명을 받게 되었는데 그가 설교할 바 넓은 지역도 아울러 현저히 나타내 보여주심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맡은 바 중대하고 큰 사업을 능히 감당하도록 준비시키기 위하여 당신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게 하시며 또한 묵시 가운데서 하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보여주셨다. (남는 이 342, 343)

23.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음
주께로부터 많은 계시를 받은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로 난관에 봉착하고 그의 모든 투쟁과 낙담할만한 환경 중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신뢰를 결코 잃지 않았다. 성경의 특별한 가르침으로 그의 판단은 깨끗하고, 고상하며 거룩하였다. (Letter 127, 1903)

24. 두 번째 전도여행
바나바가 바울과 함께 가려고 하였으나 저희와 함께 다시 목회에 자신을 헌신하기로 결정한 마가를 데리고 가기를 원하였다. 바울은 이에 반대하였다. …….그 논쟁이 매우 격렬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헤어졌고 후자는 자기의 확신을 따라 마가를 데리고 갔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났다. (행적 200)

25. 아테네에서의 바울
그가 전도를 끝낼 때 쯤해서 전도결과를 정리해 보았다. 그의 웅변적인 설교에 귀를 기울인 큰 회중 가운데 믿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단지 세 사람뿐이었다. 그 때부터 그는 단순한 복음만 전하기로 결심하였다. 세상 학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 힘이 없다는 것과 복음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그는 확신하였다. (R.H 1911. 8. 3)
바울이 설교할 때 웅변적 스타일로 하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그는 왕들과 아테네의 위인들과 지식 계급의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적임자였고 그의 지식은 복음의 길을 준비하는 데에 가치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아데네에서 이것을 시도해 보았다. 웅변에는 웅변으로, 철학에는 철학으로, 논리에는 논리로 대처하였지만 그가 바라는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복음전도에는 인간의 지혜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세상 지혜보다 더 높은 어떤 것이 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그는 더 높은 근원에서 능력을 받아야 한다. 죄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하려면 하나님의 영께서 그의 사업에 개입하셔서 모든 영적 발전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 (R.H 1899. 7.18)
성경을 살피는 가운데 마음에 언제나 간직하고 있어야 할 하나의 큰 중심 진리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다. 모든 다른 진리는 이 큰 제목과 관련을 갖게 될 때에 능력과 감화를 갖게 된다. 십자가의 빛 가운데서 만이 우리는 율법의 고상한 성격을 깨닫게 되는 ㄱ덧이다. 죄로 마비된 영혼은 우리 구원의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행하신 그 사업을 통해서만이 생명이 부여될 수가 있다. (M.S 31, 1890)

26. 이방인들을 위한 대사로 바울은 그의 손으로 일하였다.
이방인들을 위한 대사로 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을 배웠다. 천막의 제작도 고급분과와 저급분과가 있었으며 바울은 고급분과를 익혔고 형편에 따라서 양 분과에서 다 일할 수도 있었다. 천막제조업은 다른 직업과 같이 빨리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바울이 그의 쓸 것을 당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근검절약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었다. (R.H 1990. 3.6)
"그는 비록 몸이 약하였지만 그리스도의 사업에 봉사하면서 낮에 일하고 밤 시간의 대부분도 힘써 일하였고 밤샘을 하는 때도 종종 있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자신이 쓸 것과 동행인의 쓸 것을 마련하였다. (YI 1902. 1.27)

27. 에베소에서의 바울
에베소에서 바울이 우상숭배(偶像崇拜)하는 주민들과 직접 맞부딪히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통하여 현저하게 나타났다. 사도들은 뜻대로 언제나 이적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주께서는 그의 사업의 발전이나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이 돌아갈 때에만이 특별한 능력을 그의 종들에게 허락하셨다……. 성경은 말하기를 주께서 바울의 손으로 이적을 행하게 하셔셔 주 예수의 이름을 크게 하셨다고 기록하였지 바울의 이름을 크게 하였다고 하지 않았다. (The Life of Paul 135)

28. 바울은 만능 목사였다.
행20:17-35에서 우리는 성실하게 의무를 다하는 그리스도인 목사들의 성격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개관해 볼 수가 있다. 바울은 다재다능한 목사였다. 우리들은 모든 목사들이 모든 점에서 다 바울같이 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말은 바울이 가장 고상한 그리스도인 신사였다는 것이다. 그의 모본은 손으로 하는 일이 결코 그 사람의 감화력을 약화시키지 않으며 존귀한 직책에 있는 사림이 손으로 일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을 거칠게 하거나 조잡게 만들거나 무례하게 만들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 준다. (YI 1901. 1.31)

29. 이 마지막 시대를 위한 교훈
사람들이 고집스러운 논쟁으로 진리가 잘못 전달되고, 하찮게 여김을 받고, 가치가 떨어짐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게 된 때는 이 마지막 시대보다 더한 때가 한 번도 없었다.
사람들은 백성들을 위한 계시라고 말하는 많은 이질적인 이단들을 들여왔다. 사람들은 어떤 이상하고 새로운 것에 이끌리고 그것으로 무엇이 형성될지도 모르는 그 사상의 성격들을 식별하는 데에 현명하지 못하다. 그것은 큰 결과를 가져올 “무엇”이라고 부르고 하나님의 말씀에다 갖다 붙인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 이것은 경건의표준이 낮아진 교회에 대한 얼마나 큰 책망인가!
독창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발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새롭고도 이상한 어떤 것을 생각해내고 확정되지 않은 이러한 이론들을 얽어 짜서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제시하면서 말하기를 생사가 달린 문제라고 한다. (Letter 136, a, 1898)

30. 그의 글들
“바울은 영감을 받은 사도였지만 주께서는 그때마다 그 백성들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다 나타내 보이시지 않았다. 교회의 번영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교회 안에 악(惡)이 잠입해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들은 그에게 그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때 그는 전에 받은 빛을 가지고 이러한 사태 진전의 참 성격을 판단하려고 준비하였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그 특별한 때를 위한 새로운 빛을 그에게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진정으로 빛을 구하는 삶들은 그의 서신을 보통 편지라고 접어놓지 않았다. (S T 684)

31. 그의 죽음
바울은 은밀하게 사형집행 장소로 인도 되었다. 바울의 큰 감화력에 놀란 박해자들은 사람들이 그의 죽는 장면을 보고 기독교로 회심하는 사람들이 생기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이 때문에 사형장에 있도록 허락된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았다. 그를 호송하도록 명령을 받은 군인들은 마음이 강퍅한 사람들이었지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우렸고 바울이 그렇게 죽을 것을 바라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경탄하는 마음으로 보았다. 그를 죽이는 사람들에 대한용서의 정신과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스도께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은 그의 순교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었다. 오래지 않아서 몇 사람이 바울이 설교한 구주(救主)를 받아들였고 두려움 없이 그들의 믿음을 피로써 인(印)쳤다. 그가 순교장에 섰을 때 그는 형리의 번쩍이는 칼이나 곧 그의 피를 받을 땅을 보지 않고 그 여름날의 조용하고 푸른 하늘을 통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았다. (The Life of Paul 330-331)

노령(老齡)의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의 증거로 그의 피를 쏟은 지 거의 20세기가 지났다. 어느 충성스러운 사람의 후세대를 위하여 이 거룩한 사람의 생애의 최후의 광경을 기록 하지 아니하였으나 영광의 말씀은 그의 임종의 증언을 우리를 위하여 보존 하였다.
나팔 소리처럼 그의 음성은 그 후 각 시대를 통하여 울려 퍼져 그의 용기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무수한 사람들을 격려하고 슬픔에 쌓인 무수한 사람의 마음을 다음과 같은 그의 승리의 기쁨의 메아리로써 일깨워 주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사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 (행적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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