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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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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08-02-27 20:19 조회6,4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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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음(1/19/08)


1월 19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41분)

기억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연구범위: 마 4:18-22, 5:46, 9:10-11, 막 1:16-20, 눅 5:1-11, 18:10-11, 요 1:35-51.

중심 사상: 첫 제자들은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는가? 이들이 부르심에 응할 수 있도록 성경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레위 마태의 부르심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무엇인가? 제자로의 부르심에 여러 차이점들이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무엇인가? 초기 제자들에 비해 오늘날의 제자들은 어떤 유리한 입장에 있는가?

안식일 오후
“가리발디(Garibaldi)는 로마의 습격이 있은 후에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제군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배고픔과 목마름, 고생과 죽음뿐이다. 그러나 조국을 사랑하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그는 많은 용감한 젊은이들이 배고픔과 목마름과 죽음을 무릅쓰고 그를 따를 것을 알았다”(고든 네스비 편, 그리스도인 세계의 보물, 뉴욕, 1953년, 92)
가리발디와는 달리 예수께서는 조국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호소하셨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 또한 배고픔과 목마름, 고생과 죽임을 당할지 모르지만 그들에겐 영생의 약속이 주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 부르심에 응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날 것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초기 제자들을 부르신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핵심본문: 눅 5:1-11

학습 목표
깨닫기: 예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와 우리가 그분께 기대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느끼기: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기를 열망한다.
행하기: 예수님을 첫째 자리에 두기로 선택한다.

교과 개요
I. 하나님의 부르심
A. 고기를 잡는 일과 제자의 일은 어떤 면에서 유사한가?
B. 부르심에 즉각 반응한 첫 제자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C. 예수님은 기적적으로 고기를 잡게 하심으로 무엇을 확증하셨는가?
D.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기를 떠나달라고 말했으면서 왜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쫓았는가? 그는 무엇을 인식하였는가?

II. 부르심을 인식함
A. 예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옛 삶을 버리기를 바라시는가?
B.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할 수 있는가?
C. 베드로의 그물은 무거웠으나 배가 가라앉지는 않았다. 이것은 복음전파에 있어서 상호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 주는가?

III. 우리의 반응
A. 베드로의 텅 빈 배는 고기로 가득 차서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성공의 무게에 눌려 가라앉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B. 그물을 곧 버리게 될 베드로에게 왜 예수께서는 그처럼 많은 고기를 잡게 하셨는가? 어떻게 주님을 전적으로 따를 수 있는가?

요점: 당신 자신을 전부 우리에게 주신 예수께서는 우리가 자신을 온전히 바칠 때에만 가납하신다.


일요일(1월 13일) 첫 제자들을 부르심

요한복음 1:35-51을 읽고 다음 질문들에 답하십시오.
요1:35-51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1. 예수께서 첫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그들이 부르심에 응하도록 침례자 요한은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답: 침례자 요한은 자기 제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따르도록 소개하였다.

2. 사람들이 기꺼이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는 성경이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여기서 우리에게 주어진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답: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 1:45)고 예수님을 소개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데는 성경의 확증이 가장 힘 있게 작용한다.

3. 부르심에 응한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습니까? 우리를 위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답: 안드레는 베드로에게,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자신들이 만난 예수님을 전하였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그분에 관한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원하게 된다.

4. 예수께서는 나다나엘이 편견을 극복하도록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답: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거룩한 능력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나다나엘로 하여금 편견에서 벗어나도록 도우셨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는 말씀은 그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증거였다.

안드레는 예수님과 함께 한 후에 그분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믿었을 뿐 아니라, 곧바로 제자 됨의 기쁨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는 제자도가 몇몇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며 어느 친목 단체나 모임에 의해 독점될 수 없다는 지극히 중대한 원칙을 깨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안드레가 부르심에 응한 사례는 전도의 좋은 모형이 된다. 안드레는 침례자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랐으며 형 베드로에게 자신의 경험을 말함으로 예수님을 소개하여 그도 그분의 제자가 되게 하였다.
우리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듣게 되었고 그분을 따르기로 헌신하였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그분에 관한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안드레는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운 기쁨을 나누어 주려고 하였다. 그는 그의 형제 시몬을 찾으러 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소리쳤다. 시몬은 두번 말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시대의 소망, 139).

<부가설명> 침례요한은 예수님의 선구자로서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의 제자들 중에 두 사람이 침례요한의 증거를 따라 예수님을 찾았다. 요한은 예수께 가라고 그의 제자들에게 강권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예수님을 찾아 간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그들은 곧 그들의 형제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였다. 안드레가 그의 형제 시몬에게 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는 말은 “발견했다”는 뜻인데, 그것은 그냥 만나져서 만난 것이 아니라 찾고 있던 것을 만난 것을 뜻한다. 그들은 메시야를 진심으로 찾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마음에 그런 열망이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메시야를 만나게 되어 있다.

교훈: 안드레는 침례자 요한으로부터 예수님에 관해 들었으며, 그분의 제자가 된 후에 즉시 베드로에게 그분을 소개하였다. 나는 누구에게 전하기를 원하는가?


월요일(1월 14일)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의 부르심

1. 마태복음 4:18-22과 마가복음 1:16-20에서 예수님의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까? 이 두 경우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그분을 좇았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마4:18-22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막1:16-20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답: 예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배와 그물과 부친과 삯군들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전적인 헌신이 요구된다.

이처럼 성경에서 전적인 헌신의 원리가 나타나는 곳은 여기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2. 다음 성경절들을 살펴보십시오. 비록 상황은 다르지만 동일한 원리가 어떻게 나타나 있습니까?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전적인 순종을 요구하셨다.
왕상 19:19-21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20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
소로 밭을 갈던 엘리사는 소를 버리고 엘리야를 따랐다.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바울은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였다.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모세는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애굽의 왕자라 칭함을 거절하였다.

주님께서 우리의 온 마음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다. 그분께 굴복시키지 않은 것들, 우리 자신이 굳게 붙잡고 포기하기를 거절하는 것들, 주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무엇이나 하나의 우상이 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들이 결국에는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데 더 큰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버리라고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기꺼이 버려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마 6:24).

모든 것을 버렸으나 더 많은 것을 받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의 그물과 고깃배들을 버리라고 요구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리라는 보증을 그들에게 주셨다. 복음 사업을 위하여 베드로의 배를 사용한 대가는 풍성하게 갚음을 받았다.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신 분께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롬 10:12, 눅 6:38)”(시대의 소망, 249).

<부가설명> 예수께서 모두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시는데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버릴 것들은 결국 없어지게 될 것들이기 때문이다. 없어질 것을 붙들고 버리지 못하면 그것과 함께 사람도 없어지게 된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며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아무것도 없다. 이때까지 있는 것 같아 보인 것들이 객관적으로는 있더라고 죽은 자에게는 없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를 때 비로소 모든 것이 참으로 있는 것이 된다. 그것이 영생이요 영원이다. 이것을 가지기 위하여서는 없어질 것을 신속하고 결단성 있게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제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치신 것이며, 우리에게도 그것을 가르치신다. 버렸는지?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방해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상이다.

교훈: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분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하며 그분의 제자가 되는 데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


화요일(1월 15일) 누가복음에서의 부르심

누가복음 5:1-11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과 함께, 다른 복음서의 기자들이 생략한 부분까지 언급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복음서가 서로 상충되는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문제될 것이 없으며, 비록 세세한 부분이나 강조점이 다를지라도 중요한 핵심에 있어서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 누가복음 5:1-11을 읽으십시오. 베드로가 이미 예수님께 대해 어느 정도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눅5:1-1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답: 베드로는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들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다. 이미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을 신뢰할 만한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라. 그들은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한 마리도 고기를 잡지 못했다. 바로 이때 예수께서 오셔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다.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아니 한낮에 어떻게 고기를 잡는단 말인가? 그러나 왠지 모르지만 베드로는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그는 이미 예수님을 신뢰할 만한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2. 베드로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어떤 면에서 그의 반응은 제자도의 본질과 영원한 복음의 핵심을 드러내 줍니까?(사 53:6, 롬 5:16-21, 요일 1:7-9).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롬5:16-21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요일1:7-9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답: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 베드로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용서하시는 은혜로 그분의 제자가 된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과 결함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베드로처럼 우리 자신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때 “나를 떠나소서”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의지함으로써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할 수 있다.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의지함으로써만 우리는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베드로는 이제 배나 그 실은 고기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이제까지 목격한 다른 어떤 이적보다도 이 이적은 더 그분께 하늘의 능력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예수님 안에서 만물을 지배하시는 분을 보았다. 신성의 임재가 자신의 부정함을 드러내었다. 그의 선생에 대한 사랑, 자신의 불신에 대한 수치, 그리스도의 겸비에 대한 감사,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한히 순결하신 분 앞에서 자기는 깨끗지 못하다는 느낌 등이 그를 압도하였다. 그의 동료들이 그물 속에 든 고기를 거두어들이는 동안 베드로는 구주의 발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부르짖었다”(시대의 소망, 246).

<부가설명> 누가복음의 이 장면은 마태와 마가복음의 장면의 이면에 있었던 세부 사항을 기록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초기에 유대지방에서 봉사하셨다. 그때 안드레, 요한, 베드로, 야고보, 빌립, 나다나엘 등이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자기 직업에 종사하면서 시간을 내어 예수께 와서 배우고 돌아가서 자기 업에 종사하는 그런 상태의 제자들이었다. 예수께서 침례요한이 잡힌 소식을 들으신 후에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봉사 지역을 옮기셨다. 그때 그는 베드로의 집에 가서 그 장모의 열병을 고치셨다. 그런데 안드레나 요한은 다 침례요한의 제자였다. 침례요한은 예수님의 선구자였다. 그런데 그가 잡혀 옥에 갇혔는데도 예수는 방문은커녕 슬그머니 갈릴리로 피하시는 것이 아닌가. 베드로와 그의 친구들은 예수에 대하여 의심이 생겼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장모의 병을 고치는 기적의 능력을 보면서도 그는 집을 나와 바다에 그물을 던졌던 것이다. 그런 그의 마음은 의혹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런 새벽에 예수께서 나오셔서 베드로의 배를 빌어 타시고 무리들에게 강론하신 후에 누가복음에 있는 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베드로는 자기의 마음을 환하게 들여다보시는 주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죄인된 것을 어찌 고백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그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을 약속하시면서 이제는 생업은 버려두고 전적으로 예수를 따르라고 부르신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부르심이다.

교훈: 베드로는 무리를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분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은 들음에서 생겨난다(롬 10:17).


수요일(1월 16일) 레위 마태를 부르심

1. 마태복음 9:9, 마가복음 2:14, 누가복음 5:27-28을 읽으십시오. 레위 마태를 부르실 때와 다른 제자들을 부르실 때를 비교해 볼 때 두 부르심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각각 무엇입니까?
마9: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막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눅5:27,28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28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답: 예수께서는 다른 제자들과 동일한 방법으로 세리를 부르시고 제자로 삼으셨다. 그는 경건한 유대인으로 대우를 받지 못한 사실이 다르다.

지금까지 예수께서 부르신 제자들은, 요한복음 1:44-45에 암시되어 있듯이 경건한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레위 마태는 그 사회의 소외 계층에 속해 있었다. 그는 유대인들이 가장 멸시하는 세리였던 것이다.

2. 마태복음 5:46, 9:10-11, 마가복음 2:16, 그리고 누가복음 18:10-11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을 통해 마태와 같은 사람들이 그 당시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쳐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마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9:10,11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막2: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눅18:10,11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답: 그 당시 세리는 죄인들의 대명사로 불렸으며, 멸시받는 이방인들과 동일하게 간주되었다.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 가장 가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세관에 앉아 있다가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로마의 문학가들은 세리를 포주(抱主)와 동류로 취급했고, 랍비들은 이들을 강도와 같은 무리로 분류했다. 세리들은 세금을 갈취(喝取)하는 자들로 여겨졌으며(눅 3:12-13), 부정직한 자들로 간주되어 뭇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데, 특히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적국(敵國)을 위해 동족 사람들을 속이고 유대의 지도세력까지도 속였기 때문이었다.
그처럼 평판이 좋지 못하고 불리한 특성을 지닌 사람을 예수께서 제자로 부르시다니! 그러나 예수께서는 분명히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제자로 부르신 사실은 그분께서 제공하시는 구원의 보편성을 말해주고, 그분의 왕국의 포용성을 보여주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려는 그분의 의지를 드러내 준다.

예수께서 세리 마태를 부르심
“팔레스틴에 있던 로마 관리 중에 세리보다 더 미움을 받은 자는 없었다. … 세금을 징수하는 자들은 단순히 로마의 압박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치부하는 착취자였다. 로마 사람들의 지배 아래 이 직책을 맡은 유대인은 국가의 명예를 배신하는 자로 여겨졌다. 그는 배신자로서 멸시를 받았고 사회의 가장 비열한 계층으로 분류되었다.
레위 마태는 이 계층에 속한 사람으로 게네사렛에서 부름을 입은 네 제자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사업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마태를 그의 직업에 따라 판단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마음이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열려 있는 것을 아셨다”(시대의 소망, 272).

<부가설명>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유대지방 봉사 때에 일차로 제자가 된 사람들이었다. 갈릴리에서 2차로 부르심을 받고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나섰다. 그러나 마태에 대하여서는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없다. 그럴지라도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은 열망을 나타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열망을 예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셨다. 그가 모든 사람의 지탄의 대상이었으나 주님의 구원은 세리와 창기에게도 이르러야 하였다. 이 마태는 알패오의 아들이다. 제자 중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도 있다. 어쩌면 형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마태가 제자가 되면서 그의 형제 야고보를 데리고 왔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예수의 제자들은 6명이 형제 제자들이다.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모였으나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훈련이 이루어졌다.

교훈: 예수께서 레위 마태와 같은 세리를 제자로 부르신 사실은 그분께서 제공하시는 구원의 보편성과 그분의 왕국의 포용성을 잘 드러내 준다.


목요일(1월 17일) 하나님의 부르심

1.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각각의 경우들을 탐구해 볼 때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히 11:1).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답: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그들 앞에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믿음으로 그분을 좇았다. 그리스도의 제자 되는 첫째 조건은 그분께 대한 전적인 믿음이다.

놀랍게도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할 당시 그들 앞에 어떤 일이 닥쳐올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름으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였다.
이번 주 교과에서 살펴본 대로, 그들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예수님이 메시야시라는 어느 정도의 성경적 증거를 가지고 있었으나(요 1:45), 복음서들을 연구해 보면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과 봉사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고, 특히 그분의 사역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인 그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들은 예수께서 잡히실 때까지도, 아니 그 이후까지도 닥쳐올 일들에 관해 대단히 그릇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2. 마가복음 10:35-40, 요한복음 18:10, 그리고 사도행전 1:6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에는 제자들의 무지한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 있습니까?
막10:35-40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요18: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 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행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답: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께서 세우려고 하시는 왕국의 성격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자신들이 받게 될 진정한 상급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제자들인 우리는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이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와 비교해 볼 때 얼마나 더 유리한 입장에 있는지 생각해 보라. 물론 그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놀라운 이적들을 수없이 목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시려 했던 사역과 사명, 그리고 그분의 궁극적인 승리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히브리서 11:1에 묘사되어 있는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믿음으로 전진함
“아브라함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미래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그는 믿음으로 낯선 나라로 갔다. 그는,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 것과,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신령한 인도하심을 주시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했다.
우리는 사람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의논을 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신뢰는 그분 안에 있다. … 우리가 계속 그분을 바라보면 그분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이끄실 것이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시다”(설교와 강연, 1권, 218-219).

<부가설명> 그때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가 이 지상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라나선 것이 확실하다. 그들이 모든 생업을 버리고 예수를 좇을 때에 그들은 예수께서 세우실 나라에 높은 관직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가룟 유다의 배신의 이면에는 이런 나라를 세울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이는 예수를 위기에 몰아넣음으로 불가불 로마와 대항하게 되도록 하여 세상의 권력을 잡고 세계 최강의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나라를 세우러 오신 것이 아니고 영생의 나라를 세우려고 오신 것이다. 이 사망의 세상에 사망에 젖은 사람들이 이것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도 마찬가지이다. 소위 그리스도인들도 이 영생은 다만 하나의 비유적 소망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정말 믿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우리는 정말 믿는가? 그렇지 않으면 전혀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

교훈: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기 위해서는 그분에 관한 지식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분께 대한 믿음이다.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믿음이 있는가?


금요일(1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시대의 소망, 제14장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132-143), 제25장 ‘해변에서의 부르심’(244-252), 재림교 성경주석, 한국어판, 9권, 263-264, 10권, 266-268, 500-503.

“그들이 예전에 잡아 보지 못한 엄청난 양의 고기를 소유하게 된 네 명의 동업자가 거기에 서 있었다. 그들은 가장 큰 물질적 성공을 거둔 그 순간 자신들의 사업을 버렸다. … 그들이 기적의 더 고귀한 의미를 보았다 해도, 지금까지는 미미한 성과만을 올린 떠돌이 선생의 제자로서 불확실한 생계를 위해 자신들이 선택한 직업을 버리는 데는 참으로 큰 믿음이 필요했을 것이다. …
제자들에게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예수님과 함께 더욱 고귀한 동업을 하기 위해 어부로서의 성공적인 동업을 해체하려는 것은 즉각적이고 현명한 결정이었다. 그들은 곰곰이 생각해 볼 시간도, 가족들의 필요를 제공해 줄 시간도 필요치 않았다. … 그들은 평범한 어부로서 깊은 곳으로 나아갔지만, 해안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그리스도께서 이제 그들을 불러 사람을 낚도록 하기 위하여 지시한 ‘깊은 곳’을 향해 믿음으로 나아갔다”(재림교 성경주석, 한국어판, 10권, 267-26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분께 더 큰 영광을 돌리기 위해 나의 삶에서 우선순위를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각각 대답해보자.

2. 우리는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에 비해 어떤 면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습니까? 그들이 알지 못했던 것 중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으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목록을 작성해 보십시오. 이러한 유리한 점들은 우리가 은혜 안에서 제자로 자라가도록 어떤 도움을 줍니까?
*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성경 말씀을 통하여 다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이며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을 다 알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어떤 결과가 올 것인지도 다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기의 그들보다 훨씬 더 확신을 가지고 따를 수 있는 여건에 있는 것이다.

3. 예수께서 마태를 부르신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우리는 어떤 특정 그룹의 사람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이 온전히 변하는 실제적인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리 쉽지 않은 것이다.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깨달은 내용이나 한 주일 동안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 올바른 제자도를 따라 세상을 버리고 주님만 바라보며 살고 싶은데 성령의 인도로 이루도록 더욱 기도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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