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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그분의 유효한 대제사장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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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 작성일08-06-13 21:31 조회5,1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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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그분의 유효한 대제사장 사역
6월 21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57분)

기억절: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히 8:1).

연구범위: 출 25:8, 마 27:50-51, 행 7:54-56, 히 6:19-20, 7:23-28, 8:1-2, 9장.

안식일 오후
창조 후 오래지 않아서 우리의 첫 조상은 죄에 빠지고 말았다. 이 엄청난 사건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는 먼저 인간의 회복과 우주의 영원한 안전에 관심을 가지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예지(叡智)와 평화의 의논을 통하여 신성의 한 분의 죽음을 결정하셨는데, 그것만이 죄의 문제를 끝낼 수 있는 유일의 방편이었다.
“이 중요한 계획에 인간의 참여와 협력을 확보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첫 조상에게 그 계획을 신속히 알리셨다. 동시에 그분께서는 그들과 그 후손들의 주목을 영구히 끌 수 있는 교육적 장치를 마련하셨다”(로이 애덤스, 성소,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 1993년, 17-18). 물론 이 교육적 장치는 성소 봉사제도였다.
성소는 히브리인들의 예배의 중심이 되었고, 그것의 활동과 의식을 통하여 탄원자들은 장차 오실 메시야(참조 히 9장)와 그분의 하늘 성소에서의 사역을 통한 인간 구원의 우주적 실체를 깨닫게 되었다. 이번 주에 우리는 하늘 성소와 그곳에서 진행되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핵심본문: 히 8:1

학습 목표
깨닫기: 지상 성소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드러내며 예수께서 봉사하고 계신 하늘 성소를 가리킨다.
느끼기: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하늘 성소에서 중보하고 계신다는 사실에서 평안을 느낀다.
행하기: 용서를 얻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가기로 결심한다.

교과 개요
I. 구원의 계획
A. 지상 성소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나타내기 위해 세워졌음
B. 지상 성소의 각 부분은 특별한 의미가 있으며 예수님의 사역을 가리킴
C. 예수님의 죽음은 지상 성소의 의식이 불필요하게 되었음을 가리켰는데, 이는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이 찢어짐으로 나타났음

II.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
A. 예수께서는 부활 후에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이 되셨음
B. 하늘 성소에 계신 예수님과 그분의 사역이 지상 성소의 봉사와 제사장 직분과 생축의 희생과 매일 및 매년의 봉사를 대신하였음
C.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단번에 희생되심으로 이제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 앉으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음

요점: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에는 시간제한이 없다. 그 사역은 초기 신약 교회에도 유효하였고,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적용될 수 있다. 그분의 사역을 통해 예수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일요일(6월 15일) 고대 성막으로부터의 암시(출 25:9, 40)

모세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보여주신 식양에 따라 성막을 지으라는 지시를 받았다(출 25:9, 40). 일반적으로 판단할 때 성막의 널빤지와 못 하나하나에 무슨 신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을까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구약 성소제도의 교육적인 기능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상징들의 의미에 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사실상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가 구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약간의 정보와 신약에 나타나 있는 내용을 종합함으로써 성소 제도와 그 봉사 자체를 뛰어넘는 보다 더 큰 실체가 암시되어 있음을 깨닫고, 성소 제도의 다음 각 부분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상당히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1. 조석으로 드리는 제사(출 29:38-42, 민 28:1-6)
2. 진설병과 등대(출 25:23, 30-31, 37)
3. 속죄일의 의식(레 16장, 히 9:1-12)
4. 대제사장의 예복(출 28:6-21)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희생은 “그 민족이 매일 여호와께 헌신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에 끊임없이 의지한다는 것을 상징하였다”(부조와 선지자, 352). 신약에 나오는 떡에 대한 많은 암시를 통해 우리는 성막 혹은 성소의 떡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참조 마 26:26, 요 6:48-51). “만나와 진설병은 둘 다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항상 계시는 산 떡 곧 그리스도를 가리킨다”(354쪽). 이와 마찬가지로 등대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요 8:12)고 말씀하신 그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대제사장의 흉패의 작은 보석들에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엘렌 G. 화잇이 말한 대로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회개하고 믿는 각 영혼의 이름을 당신의 가슴에 새기시고 당신의 보혈의 공로로써 하늘 아버지 앞에서 호소하시는 것을 암시한다”(로이 애덤스, 성소, 38, 비교 부조와 선지자, 351).

표상과 실체
“하나님의 유월절 양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시고 세상 죄를 위하여 운명하신다.
표상은 실체를 만났다. 여러 세기를 통하여 성전의 봉사가 가리켜온 바로 그 사건이 이루어졌다. 구주께서는 그분의 속죄 희생을 완성하셨다. 그러나 표상이 실체와 만났기 때문에 이 희생을 예표하는 의식들은 폐지되었다. 그래서 휘장은 찢어지고, 칼은 떨어지고, 어린양은 도망쳤다.
그러나 거기에는 구원 역사에 있어서 다른 과정이 더 있다. 그것은 십자가가 사건너머까지 미친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그분께서 더 이상 어린양이 아니고, 제사장으로서 봉사하시는 하늘 성소로 우리의 주목을 이끈다. 최종적이고도 완전한 희생이 드려졌다(히 9:28). 이제 그분은 이 속죄의 희생이 모든 사람에게 효력을 나타내게 하신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428).

<부가설명> 성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도해(圖解)한 구조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복음을 생활로 배우게 한 것이다. 성소의 구조와 봉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의 내용을 구조와 기구와 봉사로 설명한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세상에서 봉사하시는 뜰의 봉사와, 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성소 첫째 칸의 봉사와, 대제사장으로 지성소 봉사를 하시는 것을 구조와 기구와 봉사를 통하여 가르쳐주셨다. 우리가 성소를 연구할 때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성소에는 구원의 복음이 구체적으로 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소는 임마누엘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구원의 봉사를 가장 자세하게 잘 가르쳐주는 도구이다. 성소를 지으라고 하실 때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출25:8)라고 하셨다. 그것은 바로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이름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표상하는 것이다. 성소를 바르게 알면 예수님과 그의 봉사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교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으라 하신 성막의 구조와 봉사 제도는 인간의 구속을 위한 과정을 설명하는 교육적 장치로서 성막의 각 부분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월요일(6월 16일) 모든 것은 그분을 가리킴

1. 요한복음 1:29을 읽으십시오.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한 데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까?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답: 예수께서는 구약 성소에서 죽어간 수많은 희생 제물의 원형으로 오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지시고 희생 제물이 되셨다. 그래서 침례자 요한은 그분을 가리키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외쳤던 것이다.

광야의 성막은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신실하게 남아 있는 한 그들은 이 성스러운 건축물을 구원의 장소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화목의 장소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성막 봉헌(참조 출 40:34-35) 시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임재는 그것을 목격한 자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성전 봉헌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현저한 임재에도 불구하고 그 건물의 험난한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바벨론 군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후에 다시 지어진 성전은 이전의 영광에는 훨씬 못 미치었다. 그러나 이 성전은 예수님의 발길이 닿은 성전이었다. 2천여 년 전 어느 금요일 오후, 예수께서 예루살렘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바로 이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던 것이다(마 27:51).
“그 때는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이었다. 제사장은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양을 잡기 위하여 끌고 왔다. … 그러나 땅이 떨며 흔들렸다. 성전 안의 휘장이 소리를 내면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 한때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했던 곳이 군중의 눈으로 볼 수 있게 열려졌다. 그 곳에 쉐키나가 거했었다. 하나님께서 그 곳 시은소(施恩所)위에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이 부분과 성전의 다른 부분을 갈라놓은 이 휘장을 쳐들 수 없었다. … 지성소는 더 이상 거룩한 장소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공포와 혼란뿐이었다. 제사장은 희생 제물을 죽이려 했으나 칼은 그의 무기력한 손에서 떨어지고 양은 도망쳐 버렸다. 모형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 원형과 마주쳤다. 큰 희생이 이루어졌다. … 마치 예배하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힘 있는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이제 죄를 위한 모든 희생과 제사는 끝났다. …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당신의 말씀대로 오셨다”(시대의 소망, 756-757).

성소 기별의 초점이신 하나님의 어린양
“성소의 기별은 구원의 기별이었다. 하나님은 그 의식을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사용하셨다(히 4:2). 지상 성소의 봉사는 ‘현재까지의 비유’, 곧 그리스도의 초림까지의 비유였다(히 9:9-10). 표상과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 비유의 수단으로 이스라엘의 믿음을 세상의 구속주, 곧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희생과 그의 제사장 봉사에 초점을 맞추고자 의도하셨다(갈 3:23, 요 1:29).
성소는 그리스도의 봉사의 세 단계, 즉 (1) 대속적 희생, (2) 제사장 중보, (3) 마지막 심판을 예증했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429).

<부가설명> 침례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외쳤을 때 그 의미를 그가 다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린양이라는 외침에는 유월절 양, 매일의 양, 속죄일의 양을 다 포함하는 선언이었다. 성소제도에서 속죄제와 속건제와 화목제 등 모든 제사에 희생된 짐승들은 다 예수께서 이런 일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희생될 것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희생되심으로 이 모든 일에서 사람들이 안식하게 되었다. 이것을 다니엘을 통하여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단9:27상단)라고 계시하셨다. 여기 “금지한다”는 말이 “샤바트”이다. 예수를 믿으면 성소에서 행하던 모든 희생이 가리킨 바로 그 속죄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제사와 예물에서 모든 사람이 쉼을 얻게 되었다는 뜻이다.

교훈: 수천 년 동안 성소에서 드려진 수많은 희생 제물은 세상 죄를 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화요일(6월 17일) 우리의 대제사장(히 7:25)

사도는 히브리서의 앞 장들에서 천사와 그들의 지위, 모세와 그의 광야에서의 경험, 여호수아와 가나안 땅, 선지자들과 아브라함과 멜기세덱 등 많은 것에 관해 말하였다. 그러나 8장 1절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우리의 시선을 한 곳에 머물게 한다.

1. 히브리서 8:1-2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에서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는 무엇입니까?
히8:1,2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답: 예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신다는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진영을 배경으로 놓고 볼 때, 지성소와 이스라엘의 일반 예배자 사이에는 몇 가지 장애물이 가로놓여 있었다. 일반인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보호를 받는다 할지라도 거룩한 울타리로 둘러싸인 출입금지 구역에는 실제로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기자는, 이제 우리의 하늘 제사장이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알현실(謁見室)인 하늘 성소에 제한 없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여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의 중보자이시다.
비록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중보가 정확히 어떤 형태인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통해 비록 인간적인 견지이긴 하지만 중보에 관한 실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실례들 중 둘을 모세의 생애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가데스의 반역(민 14:10-20)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금송아지 사건(출 32:9-14, 30-32)과 연관된 것이다. 이 구절은 참으로 힘 있는 구절이다. 모세는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32절)라고 탄원하였다. 우리는 또한 이와 같은 제사장적 중보의 모습을 다니엘(9장)에게서와, 당신의 수난을 앞두고 드린 예수님의 위대한 기도(요 17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중보 사역의 중요성
“하늘 성소에서 사람을 위하여 진행되는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은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십자가상에서의 그분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긴요하다. 그분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여 하늘에서 완성하실 일은 그분의 죽으심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믿음으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신(히 6:20)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거기는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나온 빛이 비치고 있다. 우리는 거기서 구속의 오묘를 더욱 밝히 살펴볼 수 있다. 인류의 구원은 하늘에서 무한한 값을 치르고 완성된다. 거기에 치러지는 희생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데 대한 최대한의 요구에 해당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셨으므로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의 진정한 소망도 그분의 중보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있다”(각 시대의 대쟁투, 489).

<부가설명>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희생하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고 해도 승천하지 않으셨으면 속죄 구원 사업은 성취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속죄는 제사장의 직무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실 수 없었다(히8:4). 그가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모든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서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늘에 가셔야만 되었다. 예수님은 승천하기고 하늘 성소에 제사장과 대제사장으로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당신의 피를 하나님께 드리신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는 분명하게 밝혀놓았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4). 예수님은 속죄를 위한 생축(牲畜)이 되셨을 뿐 아니라 그 희생의 피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도 되신 것이다. 그렇게 한 결과로 아담 안에서 죽은 인류의 죽음은 예수님의 대신한 죽음으로 처리되고 예수님의 부활한 생명이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며 의롭다고 선언되는 것이다.

교훈: 예수님은 우리의 하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그분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수요일(6월 18일) 어떤 차이가 있는가? - 1

1. 히브리서 4:16에는 우리를 위한 어떤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우리를 위한 어떤 권면이 주어져 있습니까? 여기에 기록된 말씀을 우리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답: 누구든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을 구주와 대제사장으로 아는 사람들은 그분을 단지 구주로만 아는 사람들보다 영적으로 어떤 유리한 입장에 있는가? 우리는 이틀에 걸쳐 이 문제를 다룰 것인데, 이 문제에 관해 언급한 히브리서 9장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살피면서 시작해 보자.
물론 이 장을 읽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단어와 구절의 의미를 정의하고, 오로지 학문적인 관점에서 그 의미를 밝혀내는, 순전히 언어학적이고 해석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방법이 있는데, 전자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전자의 방법을 통해 얻은 결과는 무시하지 않는다. 즉 단순히 그 구절이 말하는 바대로 읽고 진술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함으로써 앞에서 던졌던 기본적인 질문과 관련하여, 다음의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1. 첫 언약(구약의 성소 봉사) 아래서 일어난 일은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 본질적으로 내면의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부적합하였으므로, 제물과 의식은 더 큰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2. 더 큰 무언가가 이제 나타났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다. 그분은 참된 대제사장이시다(히 9:11). 그분이 하늘 성소에 들어가신 것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다(히 9:12).
3. 구약의 제도 아래서 제물은 외형적 결과만을 성취했으며(13절), 내면적인 변화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은 내면에까지 미치어, 우리의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할 수 있다(14절).
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단번에 당신의 보혈을 흘리사,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24-28절).

첫 언약과 둘째 언약의 차이
“진리를 연구하는 자들이 히브리서를 다시 펴보았을 때 그들은 둘째 언약 곧 새 언약의 성소가 암시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에도’라는 말을 쓴 것은 바울이 이 성소에 대하여 이미 말했음을 암시해 준다. 그 전장(前章)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제 한말에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히 8:1-2).
여기 새 언약의 성소가 나타나 있다. 첫 언약의 성소는 사람이 치고 모세가 세운 것이었으나, 이 성소는 사람이 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치신 것이다. 먼저 있던 성소에서는 이 세상의 제사장들이 봉사하였으나 나중 성소에서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 봉사하고 계신다. 먼저 것은 세상에 있었고, 나중 것은 하늘에 있다”(각 시대의 대쟁투, 413).

<부가설명>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회는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신다는 사실에 대하여 어둡다. 그들이 예수님이 대제사장 직무에 대하여서는 말하지만 하늘 성소봉사에 대하여서는 깜깜하다. 성소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늘 성소의 지성소봉사를 가르치는 재림교회의 기별을 이단시한다. 성소를 모르기 때문이다. 시인은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악인의 결국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시73:16,17). 성소로 계시하신 구속의 전반적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구원의 복음의 실상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교회 교인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설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익숙하게 이해하도록 배워야 한다. 그럴 때 복음의 전체적인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교훈: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는 희생제물의 피가 아닌 당신 자신의 보혈을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 그 보혈은 우리의 내면을 정결케 한다.


목요일(6월 19일) 어떤 차이가 있는가? - 2

예수님을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도 그분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특성인 친절과 관용과 인내를 나타낼 것이다. 우리는 또한 그분께서 나타내신 자비와 은혜도 나타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도덕적으로 바르게 생활할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치르신 그분의 뜻 깊은 희생에 대해 영원히 감사할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이들은 주장하기를, 다른 교파에 속한 사람들도 똑 같이 은혜롭고 자비롭고 인내하고 너그럽고 친절하며 도덕적으로 바르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진실로 우리의 ‘성소 기별’은 어떤 차이점을 만드는가?
아마도 성실함과 신실함의 차이를 만들 것이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그 글을 수신하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영적으로 회복시키기 원하여 ‘성소의 주제’로 돌아갔던 것이다.

1. 히브리서 10:19-25을 읽으십시오. 여기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관한 어떤 실제적인 메시지가 주어져 있습니까?
히10:19-25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답: 예수님의 하늘 성소봉사로 인하여 우리가 휘장 안 곧 하늘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담력을 얻었으며, 결과로 우리는 깨끗하여졌고 그렇기 때문에 소망 중에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더욱 모이기를 힘쓰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은혜의 보좌”(히 4:16)로 나아가라고 초청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서 지금 우리 앞에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늘 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예수님을 통하여 만들어졌다. 그리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성소로 들어가는 경험은 그분의 놀라운 은혜로 말미암아 영혼의 정결을 얻게 할 뿐 아니라, 그분의 변경할 수 없는 율법(참조 히 8:10)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 준다. 이러한 인식은 재림교인들이 말하는 ‘선악 간의 대쟁투’의 맥락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성소로 들어간다. 거기서 우리는 언약궤로 상징된 불변의 약속을 주신 분께 매달린다. 이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을 포기하도록 이끄는 견해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주에서 끌어내리는 진화론적 사상에 물들지도 않을 것이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을 수가 있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나를 받으신다.’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가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마치 땅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언제든지 오라고 하시는 것같이 주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부족한 것들, 곤란한 문제들, 우리의 기쁨과 사랑을 그분 앞에 갖다 놓으라고 하신다. 모든 약속은 확실하다. 예수님은 우리의 보증인이요, 중보자시며, 우리가 완전한 품성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자원을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곳에다 두셨다. 그리스도의 피의 공효는 항상 살아있고 그것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116).

<부가설명> 성소에 대한 교훈을 모르면 속죄의 실상을 모른다. 그냥 막연히 예수의 보혈이 우리 죄를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옳다. 그러나 그 속죄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인도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속죄는 우리를 보좌 앞으로 이끌고 보좌의 기초가 하나님의 계명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며 그 계명이 속죄 받음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사람들의 삶의 궤도라는 것을 깨닫고 그 계명이 생리가 되는 경험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성소가 가르치는 교훈을 모르면 이런 경험에 이를 수 없다.

교훈: 성소의 교리는 우리를 반역으로부터 보호해 주며, 이 반역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하는 신실한 남은 백성으로 남도록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다.


금요일(6월 20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각 시대의 대쟁투, 제24장 ‘지성소에서의 봉사’(423-426), 부조와 선지자, 제30장 ‘성막과 그 봉사’(350-358).

“성소 문제는 1844년에 있었던 실망의 신비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 큰 재림운동을 지도하셨다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의 위치와 현재의 의무를 가르쳐 줌으로 진리의 전체적인 체계가 상호 연결되고 조화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 보여 주었다”(각 시대의 대쟁투, 423).
“나는 하늘 성소를 하나님의 거처, 그분의 통치하시는 보좌, 우주의 중심으로 본다. 하늘 성소는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의 타락과 함께 추가적인 기능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곧 우주적인 반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고대의 희생 제도를 생각할 때 이러한 관점이 지배적일 수 있다. 우리는 죄의 근절을 위한 사역이라는 채색 유리를 통해 하늘 성소를 보는 것이다”(로이 애덤스, 성소, 71).
“나는 하늘 성소를 텅 비어 있는 곳으로 보지 않는다. 하나님의 보좌가 어떤 형태이든 간에, 그곳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옹위하고 있으며, 가장 기쁜 것은 우리의 죄를 넉넉히 해결하실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곳에 계신다! 그분은 하늘 성소에 충만하시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계신다. 나는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71쪽)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재림 전 심판에 관한 우리의 이해는 하늘 성소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에 관한 이해와 어떻게 조화를 이룹니까? 그리고 예수께서 심판 날에 우리의 대리인으로 서신다는 기쁜 소식을 어떻게 전파할 수 있을까요?
* 성소가 계시하는 교훈은 제사장이 두 봉사를 한다는 것이다. 성소와 지성소 봉사이다. 지성소 봉사는 대제사장만이 하는 봉사이다. 그것은 속죄를 완성하여 모든 죄와 거기 속한 것을 완전히 제거 처리하는 봉사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하늘 성소와 지성소에서 봉사하신다는 것을 이해하는 우리의 이해는 아주 성경적이며, 주님의 성소와 지성소 봉사는 영원한 구원의 보증이다.

2.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사역을 우리 개인의 영적인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 성소는 영원하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성소이기 때문이다(렘17:12). 세상에 죄가 들어왔을 때 이 성소에는 피가 더해졌다. 생축의 피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피가 속죄를 위하여 성소에 더해질 것을 계시하셨다. 또한 그 피를 가지고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어 성소적 봉사와 지성소적 봉사를 하시므로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날마다의 삶을 깨끗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 앞에 속죄의 회개로 무릎을 꿇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두루마기를 빠는 방법이다.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인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은혜의 보좌 앞에 항상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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