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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그분의 능력 있는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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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8-06-06 17:56 조회4,7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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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6월14일(안) 일몰 오후7시55분 李奉周

제11과 그 분의 능력(能力)있는 부활(復活)
<확대경(擴大鏡)>
◎ 성경을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 가운데 중요한 사건으로 예수님의 성육신(聖肉身)과 십자가(十字架)의 고난(苦難)으로의 죽음과 부활(復活)과 승천(昇天)과 재림(再臨)을 꼽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부활(復活)에 관한 사건(事件)이다.
그 이유는 부활(復活)이 없다면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無意味)하기 때문이다.

◎ 사도 바울은(고린도전서 15장14-17절)에서 부활에 대하여 단호(斷乎)히 말하고 있음에 우리는 부활에 대하여 그 중요성과 신빙성에는 추호의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證據)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 15:14-17)

◎ 이 세상에서 그리스인들만큼 일방적(一方的)인 핍박(逼迫)과 고난(苦難)을 감수하며 생활하는 종교는 거의가 없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얼마나 비참(悲慘)하고 참담(慘憺)하겠는가?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은 그 많은 박해와 핍박 속에서도 오로지 부활의 소망이 있었기에 그 어려운 고통과 고난을 감수했다는 사실이다.

◎ 죄가 세상에 들어 온 것, 그리스도의 성육신, 중생, 십자가의 고난, 부활, 승천과 그 외의 성경에 제시된 많은 주제들은 너무나 심오해서 인간의 마음으로 설명하거나 완전히 깨달을 수 없는 오묘(奧妙)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이 하나님의 특성에 속한 것이라는 충분한 증거를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섭리에 속한 모든 오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분의 말씀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5증언 699)

日 6월8일
<復活의 이야기 - 1 (마 27:62-66)>
◎ 1.부활(復活)이란 죽은 자(者)가 새 생명을 얻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성경에서는 역사(歷史)종말(終末)에(예수님 재림(再臨)때) 전 역사(歷史)에 걸쳐 살았던 의(義)로 운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일컬어 부활(復活)이라고 말하며 부활에 대한 소망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바램이다.
2. 인류의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이미 역사(歷史)속에서 실제적으로 일어났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역사의 종말에 일어날 인류의 부활에 대한 예고였다.
◎ 부활(復活)은 죄와 사망의 굴레로부터 해방(解放)과 구원(救援)이며 영광스러운 영원에 삶에 대한 준비이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증거(證據)이다.
(롬8:19-23; 고전 15:23-28, 35-49)
◎ 사도 바울은 죽음을 자는(잠자는)자로 불렀다. (살전 4:13, 고전 15:18)
잠자는 것은 다시 깨어 일어나기 때문에 잠으로 묘사(妙思)한 것이다.
죽음은 잠자는 것이요, 잠자는 것은 다시 깨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부활이라 한다.
◎ "예수님"의 부활은 앞으로 일어날 성도(聖徒)들의 부활에 대한 모델이며 (빌 3:21), 성도들의 부활에 대한보증이며(고전 15:17-20; 살전 4:14-16),또한 성도들의 부활에 대한 도구인(롬 8:11, 고전 15:21-22) 부활의 첫 열매였다. (고전 15:23; 골1:18)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함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성도들의 구원(救援)에 대한 가장 중요한 근거(根據)가 된다. (롬 4:25; 벧전 3:21)
◎ "예수님"의 부활(復活)사건은 신약(新約)을 기록한 저자들에게 믿음을 갖게 만드는 중심적인 사건(事件)이었다.

◎ 부활(復活)하신 예수님께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셨다. (고전 15:5-7)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특히 제자들과 자기를 따르던 무리들에게 강조하신 일이 있는데 그것은교회의 선교적 사명(宣敎的使命)이었다.
(마 28:16-20; 눅 24:36-49; 요 20:19-22; 21:14-17; 행 1:2-8).)

◎ "예수님"의 장사(葬事)지냄과 부활후(復活後)에 나타나신 사례(事例)들이 그 분의 부활이 실제일어 났던 일이었음을 증명(證明)해주는 자료(資料)로 언급되었다. (요 20:20-27; 고전 15:5-7)

◎ "예수님"의 부활(復活)은 또한 구원의 역사(役事)속에서 친히 일하고 계심을 증명하는 증거(證據)로도 간주(看做)되었다. (참조 행 17:31)

◎ "예수님"의 부활과 앞으로 도래(到來)할 일반적인 부활은 성도들의 영적(靈的)체험에 대한 비유에서 함께 사용되었다. (롬 6:4; 엡 2:5-6; 빌 3:10; 골 2:12-13; 3;1-3)

◎ 교 훈: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의 중심 교리이며, 부활과 관련된 공개적인 사건들은 그 사건이 결코 꾸며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증명해 준다.

月 6월9일
<復活의 이야기 - 2 (눅 24:36-39)>
◎ 우리의 삶의 처음과 끝은 태어남과 죽음이다.
태어남은 어느 누구에게나 기쁨을 주지만 죽음은 그와는 반대다.
죽음을 맞이한 그들에게는 슬픔을 주는 것이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여 많은 이들을 슬프게 할 것이며, 어떤 이는 태어남에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태어남과 죽음은 어찌 보면 상반된 것 같지만, 아주 긴밀히 연결된 것들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나는 삶은 한사람도 없다. 그러나 죽음은 태어난 순서대로가 아니고 본인들이 하나님의 건강 법칙(健康法則)을 준수할 때 생명의 길이가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죽는 것은 즉 죽음을 피할 수가 업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도(聖徒)의 죽음은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은 귀중한 것이요 복된 것이요 떳떳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생을 위한 필수 코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죽음이므로 평안에 들어가는 것이요 의의 면류관(冕旒冠)이 예비(豫備)된 것이요 유익한 것입니다.
주님을 믿음으로써의 죽음은 비로소 영원한 삶이 시작(始作)하는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날에 부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믿는 자의 죽음을 잠자는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죽음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죽음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 6:40 참고)
◎ 구약 성경을 보면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직접 데려가신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에녹과 엘리야가 그들입니다.
그러나 이들 외에는 어느 누구라도 죽음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창 3:19)
◎ “만일 저들이 할 수만 있었다면 흑암의 왕과 반역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갇혀 있는 무덤을 영원히 인봉한 채로 보존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 군대는 무덤을 둘러쌌으며 탁월한 힘을 가진 천사들이 그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생명의 왕을 환영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천사는 하나님의 갑옷을 입고 하늘 궁전을 떠났다. 하나님의 영광의 밝은 빛이 그의 앞에서 행하며 그의 길을 비춰 주었다.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소망, 779)
◎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많은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그들에게 지상명령을 주셨다.
“(흰 옷을 입은)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 16:6).
◎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신앙(信仰)의 중심축이며 모든 신조의 핵심이다.
◎ 교 훈: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신앙의 기초는 무너지고 그리스도교의 모든 예식은 무의미한 의식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火 6월10일
<初期敎會 復興의 原動力 (행 3:14-16)>
◎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는 용기(勇氣)는 사랑할 때 가능(可能)합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否認)했던 베드로와 겁쟁이로 도망갔던 모든 제자들이 이제는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경험하고 죽기까지 사랑한 주님의 그 사랑을 체험하고 난 이후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극형까지 당하시며 제자들과 인간을 사랑 하셨던 것을 깨닫게 되었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부터는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의 삶은 이전의 비겁하고 졸 열하고 겁 많던 사람에서, 이제는 로마의 군병이나 유대의 지도자들의 위협도 목숨까지도 베드로와 제자들에게는 그 무엇도 무서울 것이 없었고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초반부는 베드로의 활동이고, 사도행전의 후반부는 사도 바울로 두 중심축을 이루고 있으며, 베드로는 예루살렘과 유대인들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면, 바울은 이방인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傳播)함에 확신을 갖고 증거(證據)하였다.
◎ 사도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으며 자신들이 그 일에 증인임을 고백했다.
◎ 교 훈: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으로 그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였다.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이 주제를 반복하였다.

水 6월11일
<證據하는 일에 權能을 附與함 (빌 3:7-10)>
◎ 우리의 삶에는 전해들은 것도 거의가 믿게 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전해들은 것보다 눈으로 본 것이나 직접체험한 일에는 표현은 잘 못할지라도 용기(勇氣)와 확신(確信)을 갖게 된다.

바울 사도는 다메섹도상의 사건이전에는 얼마나 잘못된 지식을 갖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고 괴롭히고 죽이고 하였던가?
그가 그 열성을 이제는 진리(眞理)를 발견하고는 확신을 갖고 부터는 전에 모든 열성보다 더 한 삶으로 전환된 각오와 삶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有益)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 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7-10)

◎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면서부터 상식이나 체면이나 숫자나 시간에 관하여 계산하는 방법이 변했다.
사도들이 직접 본 것이나 만난 것이나 받은 것이나 경험했던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곧 증인(證人)인 것이다.
◎ 예수님께서 이적을 베푸신 공생애의 3년 반 동안을 동고동락(同居同樂)을 하였지만, 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체포와 심문과 십자기의 처형까지 무기력하게 겁쟁이로 숨거나 도망갔던 이들이, 어떻게 사도행전의 2장의 베드로의 거창한 설교와 3장의 앉은뱅이의 고침과 4장의 체포되어 감옥에 가서도 찬미하며 담대함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 하였을까? 이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온전한 믿음과 신앙이 적립되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사도들도 없었을 것이고 권능도 부여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 교 훈: 제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세상에 전파하였다.
그들의 이와 같은 담력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서 온 것이었다.

木 6월12일
<우리 自身의 復活의 保證 (고전 15:20)>
◎ 에너지 즉 힘은 근원(根源)이 필요하다.
그 근원(根源)이 어디에서 시작(始作)되는가에 따라서 힘의 크기나 세기나 지속성이 다르다.
(행 1:8)의 “뒤나미스” 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이 위력이 있는 “힘” (고후 8:3)또는 “능력”(엡 3:16)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 말은 “능력 있는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행 2:22)
성령의 권능은 또한 교회의 활력소로 역사하였다. (행 4:7, 33 ;6:8)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으뜸가는 증거라고 말하였다. (롬 1:4; 엡 1:19-20)

◎ 성경과 영감의 글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보고 듣고 체험 하였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고 불편하고 감당하기에 어려운 고통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죽어도 살 수 있는 보증을 확인 하였다
우리 모두에게 도래할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여 부활의 소망으로 역경과 고난에서 승리하자.

◎ 예수님의 부활은 세 가지 확실성을 던져 준다.
(1)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생명은 보장된다는 사실(벧전 1:3-5)과,
(2) 죽음은 이미 정복된 원수라는 사실(고전 15:20-22)과,
(3) 이 엄청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요 14:12, 행 1:8)은 사실이다.

◎ 교 훈: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은 우리의 부활의 보증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어 가진 자들은 마지막 날에 육신의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

(초점(焦點))
1. 그리스도인의 부활신앙(復活信仰)은 타 종교에 없는 신빙성(信憑性)과 확실성(確實性)으로 "예수님"으로 입증(立證)되었다.

2. 이 세상이나 천국(天國)이 제아무리 좋다 해도 부활(復活)이 없다면 모두가 무의미(無意味)한 것이다.





<말미부록(末尾附錄)>

◎ 하나님의 구원이 곧 선물(膳物)이며, 그 구원(救援)을 이루어 주신 그리스도는 사람을 위해서 하늘이 선택(選擇)한 최고(最高)의 선물이다. 이 선물을 받고 말할 수 없이 기뻐하는 사람도 있고 시큰둥해서 별로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선물(膳物)의 가치는 그 것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그 가치(價値)를 알고 누릴 줄 아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 부활(復活)
1. 제사장들과 위정자들에게 알려진 부활(마 28:2-4 주해 참조)
예수의 부활(復活)시에 무덤에서 일어난 그 포로(捕虜)들은 정복자이신 왕으로서 손에 든 트로피와 같았다. 이와 같이하여 그는 무덤을 이기시고 죽음을 정복하신 그의 승리를 증명하였고, 모든 죽은 의인들을 무덤에서 부활시키겠다는 맹세와 선도금을 준 셈이었다. 무덤에서 불려나온 사람들은 그 도성으로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부활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참으로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과 그들이 그분과 함께 부활하였다는 것을 증거(證據)하였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 죽은 어떤 사람들이 부활하였다는 것을 제사장들과 위정자들이 잘 알고 있었다. 여러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들은 믿을만한 보고들을 받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한 사람들은 부활한 사람들을 보았고, 대화를 해 보았으며, 제사장들과 위정자들이 살해한 예수는 생명의 왕이시며,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증언하는 증언을 들은 사람들이었다(3예언 223).”
(화잇주석, 마 27:52,53)

2. (가장 힘센 천사(天使)가 지진(地震)을 일으킴)
―어느 사람도 무덤에 오기 전에 큰 지진이 있었다. 사단이 타락하기 전에 가졌던 자리에 임명함을 받은 가장 힘 있는 천사가 하늘에서 아버지께로부터 사명을 받고 훌륭한 하늘 복장(服裝)으로 차려 입고 어둠을 가르고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번개 같고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았다. 그의 발이 땅에 닿자마자 그의 발밑에는 지진이 일어났다. 이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을 때 피곤한 몸으로 수직하던 로마 병정들은 그들이 보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목격자로서 전해야 될 기별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 천사가 무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 돌은 마치 조약돌같이 굴려 나가고 그는 그 돌 위에 앉았다. 하늘의 빛이 무덤을 둘렀고, 온 하늘은 천사들의 영광으로 환히 밝았다. 그 다음에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을 부르십니다. 나오십시오. 하는 그의 음성이 들렸다(원고 115, 1897).

3. 영광(榮光)의 몸으로 부활(復活)할 의인(義人)들의 모습
(마 24:30; 27:52,53; 사 24:20; 요 5:28, 29; 살전 4:16; 계 6:14-17)
하나님의 아들이 부활하신 이 장면 가운데에는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때 의인들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그때에 죽은 자들이 무덤 속에서 그의 음성을 듣고 살아서 나아올 것이며, 그때에는 땅은 물론 하늘도 진동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에는 무덤이 몇 개만 열리었지만 주의 재림 때에는 아벨로부터 마지막 성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귀한 주검들이 영광스러운 불멸의 생명으로 깨어 일어날 것이다.
무덤을 수직하던 병사들이 한 천사가 하늘의 빛과 능력을 입고 나타났을 때에 그토록 심한 공포에 질려서 죽은 자들같이 땅바닥에 엎드려졌다면, 하늘 궁정에 있는 천천만만 천사들을 거느리고 그리스도께서 큰 영광과 능력으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아들 앞에 그의 원수들이 어떻게 설 수 있겠는가? 땅이 취한 자같이 비틀비틀하며 초막같이 사라질 것이다. 하늘은 두루마리같이 말릴 것이며,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이다(사인즈1913. 4. 22).”(화잇주석, 마 28:2-2-4)

4. 최종적(最終的) 부활(復活)의 견본(見本) (13:12; 롬 8:11)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모든 자들의 최종적 부활의 견본이었다.
부활하신 구주의 몸과 그분의 자태와 그의 말의 억양은 모두 다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낯익은 것들이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그런 낯익은 모습으로 다시 부활할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던 것같이 우리도 우리의 친구들을 알아볼 것이다. 비록 그들이 이 세상의 생활 속에서 병들고, 불구가 되고, 모습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을지라도 몸은 영광스럽게 부활할 것이며, 그 중에서도 그들의 개인적 신원은 완전하게 보존될 것이다. 예수님의 얼굴에서 비쳐 나오는 빛으로 광채가 나는 얼굴을 한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알아볼 것이다(3예언 219).”(화잇주석, 고전 15:20,42-52)
5. 새 몸에도 개성(個性)은 보존(保存)됨(13:12)
비록 부활한 몸이 무덤 속으로 들어갈 때와 꼭 같은 물질이나 원소로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개성과 동일성은 그대로 보존된다. 하나님이 하시는 불가사의한 일들은 인간에게는 하나의 신비이다. 인간의 정신과 품성은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대로 보존된다. 부활할 때에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품성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가 정하신 때에 죽은 자를 불러내시고 생명의 호흡을 다시 주실 것이며, 마른 뼈들에게 다시 살라고 명하실 것이다. 죽을 때와 꼭 같은 모습으로 나올 것이겠지만 병에서는 자유함을 얻고 아무 흠이 없는 모습일 것이다. 각자의 얼굴 모습도 그대로 가지고 살아날 것이다. 따라서 친구들이 서로 알아볼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죽기 전에 그 몸을 이루고 있었던 것과 꼭 같은 물질의 원소들을 되돌려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법이 자연에는 없다. 하나님은 의롭게 살다가 죽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몸을 주실 것이다.
바울은 밭에 뿌려진 곡식 알갱이의 예를 들어서 이 문제를 설명하였다. 파종된 알갱이는 썩었지만 거기에서 새로운 곡식 낟알이 나온다. 썩은 낟알 속에 있는 자연의 원소가 결코 그전 것과 꼭 같이 재구성되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그것에다 자기를 기쁘시게 할 만한 형체를 주신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데는 훨씬 더 좋은 재료가 쓰여질 것이다. 이는 그것이 새로운 피조물이요, 새로운 출생이기 때문이다. 육의 몸을 심고 영의 몸으로 일어나는 것이다(원고 76, 1900).
6. 불멸(不滅)을 위한 마지막 손질
(사 65:17; 마 25:21; 살전 4:16, 17; 계 5:12; 21:4)
우리에게는 부활하시고 항상 살아계신 구주가 있다.
그는 사흘 동안 무덤에 누워 계신 후에 그 착고를 깨뜨리셨다. 그리고 승리하신 가운데 그는 요셉의 빈 무덤을 향하여 선포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바로 그분이 지금 오고 계신다. 우리는 지금 그분을 맡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잠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으로 부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가? 그대는 그대의 형제들과 자매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가? 생명을 주시는 분이 곧 오실 것이다. 생명의 시여자(施與者)께서 무덤의 착고를 깨뜨리시려고 오고 계신다. 포로들을 데리고 오시면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포고하실 것이다. 거기에 부활한 무리들이 서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가졌던 마지막 생각들은 죽음과 그 고통, 무덤과 묘지 등에 관한 것이었으나, 이제 그들은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선언할 것이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사망의 고통이었지만 그들이 깨었을 때는 고통은 모두 다 사라졌다.…
이제 그들은 여기에 서 있다. 불사불멸을 위한 마지막 손질이 가해지고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기 위하여 올라간다. 하나님의 도성의 문이 활짝 열리고 진리를 굳게 지킨 열국의 백성들이 안으로 들어간다. 양편에는 천사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하나님의 속량함을 입은 자들이 스랍들과 그룹들이 있는 곳을 지나서 걸어 들어간다. 그리스도는 이 천사들에게 명하여 환영사와 축복의 말을 하라고 하신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그 즐거움은 무엇인가? 그분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기신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힘쓰는 일이다. (원고 18, 1894).” (화잇주석, 고전 15:42-52-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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