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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그분의 능력 있는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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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 작성일08-06-05 18:21 조회5,0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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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그분의 능력 있는 부활
6월 14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55분)

기억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계 1:18).

연구범위: 마 27:62-66, 눅 24:36-39, 행 3:14-16, 고전 15장, 빌3:7-10.

안식일 오후
부활절이 다가오자 선생님은 아이들을 학교 주변의 숲 속으로 내보냈다. 각자의 손에 작은 상자를 들려주며 그 안에 생명을 상징하는 뭔가를 담아 오라고 숙제를 내주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돌아오자 선생님은 상자를 하나씩 열어 보았다. 첫 번째 상자에는 나비가 들어 있었는데, 뚜껑을 열자 나비가 날아 나왔다. 다른 상자에는 나뭇잎이, 또 다른 상자에는 나뭇가지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한 상자를 열자,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한 아이가 소리쳤다. “어? 얘는 바보다! 숙제도 안 했네.”
그 때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필립이 말했다. “이건 내 상자야.”
그 아이는 필립을 놀리듯이 다시 소리쳤다. “그래 필립, 넌 숙제를 망친거야!”
필립은 힘 있게 대답했다. “아니야. 그분의 무덤도 비어있었다고!”
그날 필립은 숙제를 가장 잘 한 아이로 뽑혀 칭찬을 들었다. 오래지 않아서 필립은 앓고 있던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의 장례식에 온 급우들은 세상을 떠난 친구를 기리기 위해 빈 상자를 하나씩 가지고 왔다.
참으로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빈 무덤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위대한 소망을 발견한다. 이번 주에 우리는 무덤에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어떤 소망을 발견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핵심본문: 요 11:25

<학습 목표>
깨닫기: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적인 사건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을 목격했음을 확인한다.
느끼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행하기: 장차 있게 될 부활을 소망하면서 서로를 위로한다.

< 교과 개요 >
I. 부활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이었는가?
A. 예수님의 부활 시에 있었던 모든 사건들은 부활이 실제로 있었음을 입증하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임
B. 그리스도인 신앙은 부활의 확실성에 의존되어 있음

II. 그분은 살아나셨다.
A. 사도들이 행한 이적과 그들이 증언한 목격담은 다시 살아나신 구주에 대한 증거가 되었음
B. 제자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했음
C.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전파했음

III. 부활과 생명
A. 예수께서 부활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었고, 이들이 친지들에게 보였으며, 이들을 본 자들이 구주의 부활을 증언하였음
B. 예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또한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되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의 마지막은 죽음뿐이었을 것임
C.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구원의 계획은 헛되었을 것임

요점: 그리스도의 부활은 제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격한 실제적인 사건이었다. 예수께서 다시 사셨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되었다.


일요일(6월 8일) 부활의 이야기 - 1 (마 27:62-66)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사건으로 꼽을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는 성육신, 십자가, 재림 등이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부활은 이 모든 것들 중의 으뜸이며, 심지어 지난주에 공부한 십자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부활이 없다면 나머지 것들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사실상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반드시 부활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부활은 그리스도인 신앙의 중심 교리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들 중에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만이 부활의 교리를 믿는데, 그 중에서도 오직 그리스도교만이 부활의 교리를 그 핵심에 두고 있다. 오직 그리스도교만이 그 중심인물이 실제로 죽음에서 살아났다고 믿는 신앙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 사복음서는 믿어지지 않는 사건을 다루면서, 그 기록의 신빙성을 입증할 만한 꾸밈없는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1. 다음 구절들은 부활의 이야기에 대한 신빙성을 높여주는 데 어떤 도움을 주고 있습니까?
마27:50-53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고, 많은 성도가 부활함
마27:54-56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백부장과 지키던 자들뿐 아니라 많은 여인들이 부활을 목격함
마27:57-61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예수님의 시체를 요셉의 무덤에 장사함
(비교, 막 15:42-47) 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는지라 46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마27:62-66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63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수꾼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66 저희가 파수꾼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무덤을 인봉하고 파수꾼이 지켰으므로 도난의 가능성은 없음

여기에 제시된 사건들은 다 공개적인 것들이었다. 마태복음의 기록연대를 추정해 볼 때(주후 70년 이전으로 추정됨) 사건의 목격자들이 여전히 살아 있었으므로 이 보고를 확증하거나 반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 기록이 거짓이라면 종교 당국자들 중 그러한 주장을 그냥 넘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고(분명히 그날 성전 봉사자들 중 목격자들이 있었을 것임), 주변 지역에 지진이 일어났으며,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많은 성읍 사람들에게 보였고, 로마 백부장과 군병들도 목격했으며, 무덤은 인봉되었고 특별 수비병이 세워졌다. 구체적인 사건들이 있었으며, 어떤 특별한 부탁이나 방어 목적으로 꾸며낸 일이 아니었다.

육신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고전 15:14, 17)이라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부활하셨고(눅 24:36-43), 신-인(神人)으로서 하늘로 승천하셨고,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서 중보자로서 중요한 대언자의 일을 시작하셨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007년, 158).

<부가설명> 세상은 사망이 모든 생물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식적으로 사망이 모든 생물의 마지막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것을 부정하셨다. 사망이 생물의 종결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이 생물의 본래 상태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죽으시므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여 생명이 사망을 이겼음을 증명하셨다. 이 부활이 보편적인 사실이라고 외친 것이 초대교회의 복음의 실체였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1:10). 사망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경험적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이 기별은 황당한 것이었을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부활의 기별의 증명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으면 예수교는 의미 없는 종교이며 신앙해야 할 필요가 없다. 예수를 믿는 것은 도덕성을 고양하고 성품이 거룩하고 온전해 지기 위한 것 이전에 예수 안에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을 믿는 것이며, 이 생명을 얻으면 이 생명이 도덕적으로나 성품적으로 완전한 삶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이야 말로 구원의 성취이며 우리가 이 부활의 생명을 얻을 때 구원을 얻은 것이다.

교훈: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의 중심 교리이며, 부활과 관련된 공개적인 사건들은 그 사건이 결코 꾸며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증명해 준다.


월요일(6월 9일) 부활의 이야기 - 2 (눅 24:36-39)

어제의 교과에서 우리는 사복음서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들과 그분의 부활의 신빙성을 높여주는 꾸밈없는 사건들의 목록을 작성해 보았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맥락에서 몇 구절을 더 살펴보고자 한다.

1. 다음 구절들에서 발견되는 핵심 기별은 무엇입니까? 이 구절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핵심요소는 무엇입니까?(마 28장, 막 16장, 눅 24:10-44).
마28:1-20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1 여자들이 갈제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막16:1-20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 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11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눅24:10-44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저희와 함께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고하니라) 11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13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16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19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같이 하시니 29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31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답: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많은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그들에게 지상명령을 주셨다. “(흰 옷을 입은)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 16:6).

비록 요한복음이 위의 참고 절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사복음서는 각각 부활에 관해 상당히 세부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2. 부활은 우리의 신앙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합니까?

답: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신앙의 중심축이며 모든 신조의 핵심이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다(고전 15:17)고 말한 사도 바울의 신앙에 동의해 왔다. 그리스도교의 다른 모든 교리는 부활의 선언에 의존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의 중요성은 탄생한 그 아기가 하나님이 죽음에서 일으키신 분이라는 사실에 의존한다. 만약 죽으신 그분이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예수의 수난일(Good Friday)은 또 하나의 순교자를 기념하는 날에 불과했을 것이다. 만일 주님께서 신실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떡을 떼지 않으셨다면 교회에서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는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앨런 리처드슨, 기독교 신학사전, ‘그리스도의 부활,’ 웨스트민스터 출판사, 1969년, 290).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우리에게는 부활하시고 항상 살아계신 구주가 있다. 그분은 사흘 동안 무덤에 누워 계신 후에 그 차꼬를 깨뜨리셨다. 그리고 승리하신 가운데 그분은 요셉의 빈 무덤을 향하여,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다. … 만약 우리가 잠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으로 부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가? 그대는 형제들과 자매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가? 생명을 주시는 분이 곧 오실 것이다. 생명의 시여자(施與者)께서 무덤의 차꼬를 깨뜨리시려고 오고 계신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093).

<부가설명> 사단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할 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만일 할 수만 있었다면 사단은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고 증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단이 그것을 못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참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부활하여 영원히 계시는 예수님이 지금도 하늘에서 봉사하시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사단은 처음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완벽한 준비를 하였다. 무덤을 인봉하여 아무나 무덤을 열지 못하도록 했고 파수꾼을 보내어 무덤을 지키게 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첫 증인들을 만든 것이 되었다. 파수꾼들이 와서 부활을 목도한 것을 제사장들에게 고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성경의 종교를 생명의 종교로 증명한 것이고 예수를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된 것이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17:31).

교훈: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신앙의 기초는 무너지고 그리스도교의 모든 예식은 무의미한 의식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화요일(6월 10일) 초기교회 부흥의 원동력(행 3:14-16)

만일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가정한다면, 그것은 죽은 예언자의 부활을 믿는 무리가 로마 제국에 두루 퍼져 있는 것 같은 참으로 이상스런 이야기가 아니었겠는가? 몇몇 어부들과 세리들이 무엇 때문에 그 모든 난관을 무릅쓰고 이같은 이야기를 지어냈겠는가? 그리고 만약 그들이 이 이야기를 꾸며냈다면, 어떻게 그것을 옹호하기 위해 가족과 친구도 버리고, 그들이 선포한 부활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었겠는가?
그들의 주님께서 붙잡혀 심문 받으시고 처형되시자 제자들은 충격과 상심과 좌절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정신을 차린 제자들은 옛날에 익숙하던 일로 되돌아갔다. 그들은 본래의 생계 수단이던 고기잡이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어부가 아니었던 마태나 열심당원 시몬 같은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금방 몇 주가 지나가고 오순절이 되어 그들은 성령의 부으심을 입었다(행 2장). 베드로는 오순절에 설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분이시며, 부활하여 하늘 아버지 앞에 높임을 받으신 분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하고 반응하였다.
부활을 강조하는 것은 초기교회 신자들의 일시적인 신념이 아니었으며, 더 나은 것이 생기면 쉽게 내팽개치는 순간적인 경험도 아니었다. 정반대로 부활은 사도들의 가르침의 중심 내용이었으며 그들이 입을 열면 언제나 계속해서 되돌아갔던 주제였다.

1. 사도행전 3:11-16, 4:8-12, 7:54-56, 17:29-31을 읽으십시오. 그들은 끊임없이 어떤 주제로 되돌아갔습니까?
행3:11-16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4:8-12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7:54-56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행17:29-31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답: 사도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으며 자신들이 그 일에 증인임을 고백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설교에 있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로 증명하는 것은 부활이었다. 부활은 그분이 하늘로 오르셔서 메시야로서의 당신의 통치를 시작하시고 영광의 시대를 여시는 시작점이었다”(해설자의 성경 사전, vol R-Z, 44).

초기교회 부흥의 원동력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 제자들이 그분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전했을 때, 당국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 이상 말하거나 가르치지 말도록 그들에게 명령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19, 20).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계속해서 전하였고, 하나님의 능력은 그 기별에 나타났다.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다”(교회증언, 5권, 712).

<부가설명>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만 있으면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전15:13-19). 제자들이 부활을 전할 때 너희가 죽였다는 말을 하는 것은 십자가를 이야기 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이 살리신 사실을 증거하였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성경의 종교는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부활을 성경의 종교 곧 예수를 믿는 종교의 기초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며 그것은 곧 나도 그 부활에 참여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과 그를 힘입어 내가 부활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전혀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비록 교회에 다닌다 해도 성경을 읽는다 해도 예수님의 부활과 그분의 부활의 생명을 나도 받는 다는 것을 진정으로 고백하지 않는 것은 전혀 성경의 진리를 믿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교훈: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으로 그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다.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이 주제를 반복하였다.


수요일(6월 11일) 증거하는 일에 권능을 부여함(빌 3:7-10)

우리는 사도들의 사역에서 부활의 능력을 본다. 베드로가 앉은뱅이에게 한 말은 부활하신 구주께 기초를 둔 말이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 이 엄청난 이적에 사람들이 흥분하여 날뛸 때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었고(13-14절) 그 다음에 복음으로 옮겨갔다. 처음부터 베드로의 목표는 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행 3:15)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이 앉은뱅이를 걷게 한 능력은 그분의 부활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16절).
그 놀라운 이적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체포되어 이 새로운 사건에 대해 답변하도록 소환되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행 4:7). 이 질문에 대해 베드로는 또 다시 재빨리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 곧 예수님의 부활로 되돌아갔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10절).
베드로는 이 세 번의 경우에 다 자신이 증거하는 능력의 근원을 예수님의 부활에 두고 있었다. 그리스도에 관한 그의 설교에는 언제나 그분의 부활이 암시되어 있었다(행 5:40-42).
“예수께서 계속 살아계신다는 확신은, 모욕당하고 죽임을 당한 지도자 뒤에 남아서 위로받지 못하고 있던 열두 제자들로 하여금 인류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무리로 변신하게 해 주었다. 불의 혀가 그들에게 임하였다. 말주변이 없던 자들이 유창한 웅변가들이 되었고, 그레코-로만 세계를 가로질러 폭발적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다.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시작한 그들은 자신들의 세대 안에 그 기별을 그 당시 모든 주요 도시에 뿌리내리게 했던 것이다”(휴스턴 스미스, 예화로 엮은 세계의 종교들, 하퍼콜린스 출판사, 1986년, 215).

부활의 대 진리를 선포함
“사도는 수긍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부활의 대 진리를 진술하였다. 사도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도는 고린도 형제들의 마음을 부활의 아침에 있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때는 자는 성도들이 모두 부활하여 그들의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다”(사도행적, 320).

<부가설명> 제자들은 부활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부활을 목도한 증인들이었다. 그들이 육안으로 확인하였을 뿐 아니라 그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먹고 40일을 같이 지내면서(행1:3) 교육을 받았다. 그들의 증언은 절대적인 것이다. 그때 그들에게 절대적인 것처럼 지금 우리들에게도 절대적이다. 이 부활은 모든 죽은 자들의 소망이다(행23:6).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 죽을 자들이요 죽은 자들이다. 부활이 없으면 이들에게는 결코 소망이 없다. 이 부활은 우리 믿음의 근거요(행17:31) 구원 그 자체이다.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는다(롬8:24). 구언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다(요5:24).그러므로 부활은 구원이다. 부활이 없으면 구원이 없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망했다고 선언한 것이다(고전15:18).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도하고 함께 지내며 그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권력의 위협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담대히 이 너무나 분명한 사실을 증거하였던 것이다.

교훈: 제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세상에 전파하였다. 그들의 이와 같은 담력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서 온 것이었다.


목요일(6월 12일) 우리 자신의 부활의 보증(고전 15:20)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에 관해 신약에 그렇게도 분명히 언급되어 있지만 어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순전히 과학적, 이성적 세계관에 미혹되어 예수님의 부활의 실제성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세운다. 그들은 부활을 하나의 신화나 은유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부활이란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예수님의 도덕적 가르침을 받아들일 때 지금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새로운 부활의 생명에 대한 은유라는 것이다.
그럴 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인간적 사고에 기초한 견해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가르침에 기초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부활에 대해 지극히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결코 모호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취한다면 부활을 은유로 받아들일 위험은 없다. 예수님이 실제로 육체적인 부활을 하셨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리고 일단 우리가 그 부활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면 우리는 죽음에 직면해서도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소망을 간직할 수 있다. 이 땅에서의 삶에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든지 우리는 예수님처럼 죽음에서 부활할 것이라는 확고한 소망을 가질 수 있다. 부활의 약속은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전망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1. 다음 구절들은 우리 자신의 부활에 관한 어떤 소망을 줍니까?
요 5:25-29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우리에게는 생명의 부활로 나올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음
요 11:23-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죽어도 살겠고 영원한 사망을 면하였음
고전 15:51-58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할 것임
계 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전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심

예수님의 부활은 세 가지 확실성을 던져 준다. (1)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생명은 보장된다는 사실(벧전 1:3-5)과, (2) 죽음은 이미 정복된 원수라는 사실(고전 15:20-22)과, (3) 이 엄청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졌다(요 14:12, 행 1:8)는 사실이다.

인류의 소망
“비록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로 태어났을지라도 성경은 불멸성을 찾도록 그들에게 격려한다(롬 2:7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불멸성의 근원이시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요일 5:11 참조). 그분은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음성이 무덤을 열고 죽은 자를 부활시키실 것이라고 친히 말씀하셨다(요 5:28-29)”(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기본교리, 2007년, 476).

<부가설명> 예수님의 부활은 그를 믿는 사람들의 부활의 보증이다. 사실 우리를 위하지 않았다면 예수께서 굳이 하늘을 떠나 세상에 오셔서 죽고 다시 살고 할 필요가 없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전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상 우리의 부활인 것이다. 다만 주께서 우리를 불러내셔야 부활한다는 사실이 주님의 부활과 좀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물론 하나님께서 불러내셨지만, 그 자신으로도 부활하실 수 있다고 친히 말씀하셨다(요10:18). 그러나 우리는 전적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부활로 불러내셔야 한다. 그것이 마지막 날에 있을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6:44).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죽어도 사는 자들이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 곧 부활의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골3:3,4).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이 생명이 부활로 현실화 할 것이다. 얼마나 벅찬 소망인가!

교훈: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은 우리의 부활의 보증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어 가진 자들은 마지막 날에 육신의 부활을 경험하게 된다.


금요일(6월 1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갈라진 요셉의 무덤을 향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의기양양하게 선포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과 능력으로 산다. 그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받느냐에 따라 저들의 생사가 좌우된다. 가장 높은 스랍으로부터 가장 낮은 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생명의 근원되시는 분에게서 생명을 공급받는다. 하나님과 하나이신 그분만이 나는 내 생명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성 속에 죽음의 속박을 깨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다”(시대의 소망, 785).
“당신의 봉사 기간 동안 예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셨다. 그분은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과 관원의 딸과 나사로를 살리셨다. 그러나 그들은 불멸의 옷을 입지 못했다. 살아난 후에도 그들은 역시 죽음에 정복당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무덤에서 나온 자들은 영생으로 일으킴을 받았다. 그들은 죽음과 무덤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전승 기념으로서 그분과 함께 승천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으므로 그들은 더 이상 사단의 포로가 아니다. 내가 그들을 나의 능력의 첫 열매로서 무덤에서 일으켰으므로 그들은 나와 함께 있어 다시는 결코 죽음을 당하거나 슬픔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시대의 소망, 78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신약에서 가장 강력한 부활의 신학을 대변해 주는 고린도전서 15장을 읽어보십시오. 만약 죽은 의인이 죽자마자 즉시 천국으로 간다고 믿는다면 이 장의 어떤 내용과 서로 모순이 됩니까? 죽은 자의 상태에 관한 재림교회의 이해는 부활의 소망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까?
* 부활이 없으면 믿음이 헛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도 망하였다는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재림교회의 이해는 부활로 구원이 완성된다는 성경의 사상과 일치한다.

2. 만약 죽음으로 모든 것이 영원히 끝나버린다고 믿는다면 인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어떻게 달라지리라고 생각합니까? 각자의 답을 교과토의 시간에 나누어 봅시다.
* 만일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대로 먹고 마시자 내일 죽으리라고 할 것이다(고전15:32).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부활의 소망을 더욱 확실하게 하고 그날의 부활을 확증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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