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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 화-수요일) 교과 보충 십자가(十字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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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8-06-01 17:59 조회4,5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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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十字架)

1.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신 구주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루신 희생이 얼마나 크고 의미심장(意味深長)한 것인지를 더욱 충분히 깨닫게 된다. 구속의 경륜은 우리 앞에서 영광스럽게 빛나고 갈바리의 사상은 우리 마음속에 활력 있고 신성한 감격을 일깨운다.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돌리는 찬양이 우리의 마음과 입술에 있을 것이니 이는 갈바리의 장면들을 기억 속에 생생하게 간직하는 영혼들에게는 교만과 자아 숭배가 번성할 수 없는 까닭이다.”(소망, 661)

2.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의 죄를 영원히 보상하신 희생 제물이 되신다.”(쟁투, 175)

3.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는 영원토록 구속받은 자들의 연구와 찬양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들은 영광을 입으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볼 것이다. 광대한 우주의 무수한 세계들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그분, 그룹과 영광의 스랍들이 즐겨 경배하는 사랑받는 하나님의 아들, 하늘의 왕께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자신을 낮추시고 죄의 치욕과 슬픔을 지시고 아버지의 얼굴에서 숨겨진 채 마침내 잃어버린 세상의 죄 때문에 갈바리의 십자가(十字架) 위에서 당신의 심장이 터지고 생명이 떠나간 사실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온 우주의 창조자시며 모든 운명의 결정자께서 인류를 위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영광을 버리시고 스스로를 낮추셨다는 것은 영원히 우주의 경이와 존경을 자아낼 것이다. 구원을 받은 모든 민족들이 그들의 구주를 쳐다보고 그분의 얼굴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볼 때, 또한 그들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속하는 그분의 보좌를 보고, 그분의 나라가 끝이 없을 것을 알게 될 때 그들은 환희에 사로잡혀 노래를 부를 것이다. “우리를 그 귀하신 보혈로 하나님께 구속하시고자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쟁투, 651)

4.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그에게 임하신다. 그는 영혼들을 그가 반드시 찾아야 할 사람들처럼 바라본다. 그는 갈바리의 십자가(十字架)에 그의 눈을 고정시켜, 높이 달리신 구주를 바라보고 그분의 은혜를 의지하며 그분께서 끝까지 그의 방패와 힘과 능력으로 그와 함께 하시리라는 사실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한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의 보증이 섞인 초청과 호소로써 영혼들을 예수께로 인도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므로 하늘에서는 그를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계 17:14)로 계수한다.”(행적, 370)

5. “구주께서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셨을 때, 제자들은 지상에서의 그분의 사업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십자가(十字架) 상에서의 죽음은 사실상 그분이 옹호해 오셨던 사업의 바로 그 활력이었다.”(자서, 456)

6.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신다는 것은 온 우주가 경탄할 일이었다. 별에서 별로, 세계에서 세계로 다니시면서 만물을 감독하시고 그분의 섭리로 창조하신 광대한 우주의 각계각층의 존재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그분께서 당신의 영광을 떠나 몸소 인성을 취하시기로 동의하신 것은 죄 없는 다른 세계들의 지적 존재자들이 이해하기를 원하는 신비였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세상에 오셨을 때에 온 우주는 그분께서 말구유에서 갈바리에 이르기까지 피 묻은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놓으시며 가로지르시는 모습을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하늘은 그분이 받으신 능욕과 멸시를 주목하였고, 그것이 사단의 선동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았다. 그들은 서로 적대적인 세력의 역사(役事)가 진행되는 것을 주목하였다. 사단은 인류에게 계속적으로 흑암과 슬픔과 고통을 가져다주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막고 계셨다. 그들은 빛과 어두움 사이의 투쟁이 더욱 격렬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十字架) 위에서 숨을 거두시며 고통 중에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실 때에 승리의 함성이 온 하늘과 모든 세계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 세상에서 진행되어 오던 대쟁투의 승부가 그 때 판가름이 났다. 승리자는 그리스도이셨다. 그분의 죽음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이 사람을 위하여 자기 부인과 희생의 정신을 발휘하실 만큼 충분한 사랑을 가지셨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 주었다. 사단은 거짓말쟁이요 살인자로서의 자신의 참 성격을 드러냈다. 하늘의 지적 존재자들을 통치하도록 허용되었었더라면 사단은 자기의 권세 하에 있는 사람들을 다스렸던 바로 그 동일한 정신을 나타내었을 것이라는 사실이 밝히 드러났다. 충성스러운 우주는 목소리를 합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하였다.”(부조, 69)

7. “우리는 어떻게 구원(救援)을 받을 수가 있는가?
“모세가 광야(廣野)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린바 되었으니 뱀에게 속고 물린 자마다 쳐다보면 살 수 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십자가(十字架)에서 비취는 빛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다. 그의 사랑은 우리를 그에게로 이끌어 준다. 만일 우리가 이 이끄심을 저항하지 않는다면 구주를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게 한 죄를 회개하는 가운데 십자가(十字架) 밑으로 인도함을 받을 것이다. 그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심령에 새 생명을 지어 준다. 사상과 욕망은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게 된다. 심령은 우리들 속에 역사하시어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시는 그분의 형상으로 새로 지음을 받는다. 그 때에 하나님의 율법이 심령에 쓰여지게 되며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시 40:8)나이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소망, 175)

8. “우리는 흔히 우리의 악한 행실이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슬퍼한다. 그러나 이것은 회개가 아니다.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 성령께서는 구주를 모욕하고 슬프시게 한 감사하지 아니한 마음을 드러내어 우리로 십자가(十字架) 밑에서 통회하게 하신다. 모든 죄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다시 상처를 입으시는 바 우리 때문에 찔림을 받으신 예수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께 고뇌를 안겨 준 죄로 인하여 슬퍼하게 된다. 이러한 애통이 죄를 버리게 하는 것이다.”(소망, 300)

9. “회개하는 죄인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에 그 눈을 고정시키도록 하라. 그는 바라봄으로써 변화를 받게 된다. 그의 공포는 기쁨으로, 의심은 소망으로 변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오른다. 돌 같은 마음이 부수어진다. 사랑의 조수가 심령에 밀려들어온다. 그리스도가 그 마음에 계셔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신다. 우리가 질고를 아는 자이신 예수께서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일하시면서 멸시와 조롱과 경멸을 받으시고 그의 사명을 성취하시기까지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쫓김을 받으신 모습을 볼 때, 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큰 피땀을 흘리시고 십자가(十字架)상에서 고뇌의 죽음을 당하시는 그런 광경을 보고 알게 될 때에 자아는 더 이상 인정받기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를 바라볼 때 우리는 자신의 냉담함과 무기력과 이기심을 수치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며, 그렇게 될 때 주님을 위한 진정한 봉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따라 십자가(十字架)를 지고 우리가 사랑하는 그분을 위하여 시련이나 치욕이나 박해를 견디기를 기뻐할 것이다.”(소망, 439)

10. “땅에 묻힌 씨앗은 열매를 가져오고 그리고 또다시 그 열매는 씨앗으로 뿌려진다. 이렇게 하여 수확은 증대된다. 그와 같이 갈바리 십자가(十字架)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영생에 이르는 열매가 맺힐 것이다. 이 희생을 숙고하는 것이 그 희생의 열매로써 영생할 자들의 영광이 될 것이다.”(소망, 623)

11. “ 우리를 위하여 갈바리의 십자가(十字架) 위에서 버리신 생명을 받아들임으로 우리는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이 명하신 일을 행함으로 우리는 이 생명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소망, 660)

12. “그리스도께서 십자가(十字架) 위에서 고통을 당하심으로 예언은 성취되었다.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시기 여러 세기 전에 구주께서는 당신이 어떠한 취급을 받으실지 에 대하여 미리 예언하셨다. 그분은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시 22:16-18)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옷에 대한 예언은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신 분의 친구들이나 원수들의 조언이나 간여없이 성취되었다.”(소망, 746)

13. “사단과 그의 천사들은 인간의 모양으로 십자가(十字架) 곁에 나타났다. 사단과 그의 군대들은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더불어 협력하고 있었다. 백성들의 교사들은 무지한 폭도들을 자극해서 그들 중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희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그분에게 형벌을 선고 하도록 유도했으며 심지어는 그분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하도록 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바리새인들과 완악한 폭도들은 미친 듯이 사단의 무리와 결탁했으며 종교 지도자들도 사단과 그의 천사들로 더불어 연합하였다. 그들은 그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소망, 746)

14. “하나님과 그의 거룩한 천사들은 십자가(十字架) 곁에 계셨다. 아버지께서는 아들과 함께 계셨으나 그분의 임재는 나타나지 않았다. 만일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서 번쩍였다면 모든 관중들은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또 그리스도께서는 그 무서운 시간에 아버지의 임재하심에서 오는 위로를 받지 못했다. 그분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으셨으며 백성 가운데 그분과 함께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소망, 753)

15. “흠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셨으며 그분의 살은 채찍에 맞아 찢어졌고, 그처럼 자주 축복하시기 위하여 펴시던 그분의 손은 나무 막대기에 못 박히셨다. 사랑의 봉사로 피곤할 줄 모르던 그분의 발도 나무 기둥에 못 박히셨고, 그분의 고귀하신 머리는 가시관에 찔리셨다. 그분의 떨리는 입술은 비통의 부르짖음을 발했다. 그분이 참으신 모든 것 곧 그분의 머리와 손과 발에서 흘러내린 핏방울과 그분의 몸을 괴롭힌 고통과, 아버지께서 얼굴을 숨기심으로 그분의 영혼을 가득 채웠던 말할 수 없는 고민은 우리 인류 각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와 같은 죄악의 짐을 지기로 동의하신 것은 다 그대를 위함이다. 그리고 그대를 위하여 그분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낙원의 문을 여신다고 선언한다. 성난 파도를 잔잔케 하시고 거품이 이는 파도 위를 걸으셨으며 귀신들로 떨게 하시고 질병이 물러가게 하셨으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던 그분이 자기 자신을 제물로 십자가(十字架) 위에 바치셨다. 이것은 다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죄를 짊어지신 그분은 거룩한 공의의 진노를 견디시고 그대를 위하여 죄 그 자체가 되셨다.”(소망, 755)

16. “어두움의 주권자들과 권세 자들이 십자가(十字架) 주위에 모여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옥 같은 불신의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주께서 이들을 창조하셔서 그분의 보좌 앞에 서게 하였을 때에 그들은 아름답고 영광스러웠다. 그들의 사랑스러움과 거룩함은 그들의 높은 지위와 조화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로 부요하였고 하늘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사신들이었다. 그러나 이 타락한 천사들이 한때 하늘 궁정에서 섬기던 영광스러운 스랍이었다는 것을 그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소망, 760)

17. “그러므로 천사들이 구주의 십자가(十字架)를 바라보고 기뻐한 것은 당연하였다. 왜냐하면 저희가 그 때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죄와 사단의 멸망이 영원히 확실해졌다는 것과, 인류의 구속이 보장되었다는 것과 이 우주가 영원히 안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 자신은 갈바리에서 이루신 희생의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셨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내다보시고 십자가(十字架)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셨다.”(소망, 764)

18. “십자가(十字架) 위에서 “다 이루었다”는 부르짖음이 죽은 자들 가운데도 들렸다. 이 음성은 무덤의 벽을 뚫고 들어가자는 자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리스도의 음성이 하늘에서 들리게 될 때도 그러할 것이다. 그 음성이 무덤을 뚫고 들어가 무덤의 문을 열겠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일어날 것이다. 구주께서 부활하시던 때에는 몇몇 무덤 밖에 열리지 않았으나 그분이 재림하실 때에는 값있게 죽은 모든 사람들이 그분의 음성을 듣고 영광스러운 불멸의 생명으로 부활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킨 그 동일한 능력이 그분의 교회를 일으키실 것이며 금세 뿐 아니라 내세에서도 모든 주권과 모든 권세와 모든 이름위에 그분과 함께 그 교회를 뛰어나게 하사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소망, 787)

19. “하늘 성소에서 사람을 위하여 진행되는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은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십자가(十字架)상에서의 그분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긴요하다. 그분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여 하늘에서 완성하실 일은 그분의 죽으심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믿음으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히 6:20)신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거기는 갈바리의 십자가(十字架)에서 나온 빛이 비치고 있다. 우리는 거기서 구속의 오묘를 더욱 밝히 살펴볼 수 있다. 인류의 구원은 하늘에서 무한한 값을 치르고 완성된다. 거기에 치르어지는 희생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데 대한 최대한의 요구에 해당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셨으므로 그분을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가는 모든 사람의 진정한 소망도 그분의 중보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있다.”(쟁투, 489)

20. “십자가(十字架)가 없었다면 인류는 아버지와 연합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우리의 모든 소망이 달려 있다. 십자가(十字架)로부터 구주의 사랑의 빛이 비쳐 나오므로 십자가(十字架)의 발아래에서 죄인이 그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돌아가신 분을 쳐다볼 때에, 그는 충만한 기쁨으로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의 죄가 사함을 받은 까닭이다. 죄인이 십자가(十字架) 곁에 믿음으로 무릎을 꿇을 때, 그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에 도달한 것이다.”(행적, 209)

21. “값없는 용서의 제공. 예수님은 과거의 죄책을 보시고, 용서를 말씀하신다. 그럴 때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의심함으로써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이 죄책감은 갈바리의 십자가 밑에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의 죄악 됨에 대한 의식은 생명의 샘들과 참된 행복의 샘들에 독을 뿌렸다. 이제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내 위에 얹어 놓으라. 내가 너에게 평화를 주겠다. 더 이상 그대의 자중심을 쫓아버리지 말라. 이는 내가 너를 내 자신의 보혈의 값으로 샀기 때문이다. 그대는 내 것이다. 그대의 연약해진 의지를 내가 강하게 해줄 것이다. 죄에 대한 그대의 가책을 내가 제거해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행실, 259)

22. “십자가(十字架)를 통하여 우리는 하늘 아버지께서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배운다. 바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갈 6:14 )다고 부르짖은 것을 우리는 이상히 여길 수 있는가? 또한 십자가(十字架)를 자랑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며,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그분께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바치는 것도 우리의 특권이다. 그리할 때 우리는 갈바리에서 흘러나와 우리의 얼굴을 비추는 그 빛을 받아, 흑암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아가 이 빛을 나타낼 수가 있게 될 것이다.”(행적, 210)

23. “우리는 십자가(十字架) 주위에 모여야만 한다. 그리스도와 십자가(十字架)상에서의 그분의 죽음이 명상, 대화, 그리고 우리의 가장 큰 즐거움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모든 것을 우리 마음에 신선하게 간직하기 위하여, 또한 그분의 크신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감사를 표현하고 십자가(十字架)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못 박히신 그분의 손에 우리가 기꺼이 모든 것을 의탁함을 표시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특별한 회집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이 집회에서 가나안의 언어를 말하기를 배우고 시온의 노래를 부르기를 배워야 한다. 십자가(十字架)의 오묘와 영광을 통하여 우리는 사람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으며,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동료 인간들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히올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 1880, vol. 4, p. 462.”(1보감, 278)

24.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자아 부정을 통하여 이루질 것이었다. 치욕의 십자가(十字架)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구속을 위한 고통을 당하실 때에, 인간의 본성은 높여졌다. 십자가(十字架)를 통하여서만 인간 가족은 높임을 받아 하늘과 연결될 수 있었다. 하늘을 향한 우리의 여행의 매발걸음에서, 우리는 자아 부정과 십자가(十字架)들을 만난다.”(1보감, 468)

25. “십자가(十字架) 없이 면류관(冕旒冠)은 없다. 시련(試鍊)이 없이 어떻게 주님 안에서 강해질 수 있겠는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한다. 강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을 발휘할 환경에 놓여져야 한다. 우리는 많은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간다. 우리 구주께서는 온갖 방법으로 시험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하나님 안에서 계속 승리하셨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강건해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 1872, vol. 3, p. 67.”(1보감, 480)

26. “우리가 최종적으로 구원을 얻으려면 십자가(十字架) 아래서 회개와 믿음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치욕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굴욕을 당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멸시와 조롱과 학대를 받기로 동의하셨다. 그분의 거룩한 영혼 주위에 흑암의 장막이 덮이고, 하나님께 매를 맞고 버림당한 자처럼 부르짖게 한 것은 우리의 범죄였다. 그분은 우리의 슬픔을 지셨다. 그분은 우리의 죄로 질고를 지셨다.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게 하시고자 그분은 자신을 속죄제로 드리셨다. 인간 속에 있는 고상하고 관대한 것은 무엇이나 십자가(十字架)위의 그리스도를 명상할 때 주어질 것이다.”(1보감, 515)

27. “우리가 십자가(十字架)를 만들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고안해 내고자 해서는 안 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十字架)를 제시하시면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져야 한다. 십자가(十字架)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우리의 특성을 비웃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을 짓게 된다. 그리스도는 세상에 속한 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셨다. 그렇다면,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그들의 주님보다 더 나은 대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세상의 비난이나 빈축을 사지 않고 지낸다면, 우리는 놀라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세상과 일치되어 그들과 너무도 유사하므로 그들의 시기나 반감을 일으킬 것이 아무것도 없고, 정신적 충돌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십자가(十字架)를 멸시한다. “십자가(十字架)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1증언, 525)

28. “그가 갈릴리 바다의 흰 거품을 날리는 파도 위를 걷고 있을 때나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셨을 때 또는 온 인류를 깨우쳐 새롭고 완전한 생애를 살게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十字架)상에서 인간의 희생 제물로서 돌아가셨을 때에, 당신의 거룩한 사명에 대한 큰 비밀을 숨기는 데 있어서도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평범한 일상생활 과정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얼마나 밀접하게 동행할 수 있는가를 당신의 모본으로 친히 가르치시기 위한 교훈으로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알려지지 않은 채 나사렛에서 오랫동안 사셨습니다. 하늘의 지존 자이신 주님께서 우리들 인간과 같이 되시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셨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굴욕적이며 얼마나 조잡하고 그 얼마나 보기 흉한 것이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동정하실 수 있는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심으로 모든 인간의 동정심을 이끄시려고 하셨던 것입니다.”(2기별, 163)

29. “그분께서 십자가(十字架)상에서 겪으신 고통은 그분께서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시는지 보여 준다. 이 위대한 구원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모두 그분과 동역 자가 될 것을 서약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자기 자신이 하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줄로 생각함으로 관심과 주의를 자신에게 집중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사업에 동참한 자들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고, 무지와 죄 가운데 빠져 있는 자들을 사랑하되 그분께서 그들 자신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2보감, 247)

30. “영원의 빛에 비추어서 그대의 마음을 면밀히 조사하라. 아무것도 감추지 말고 조사하라. 찾아라, 캐내어라. 그대의 생애를 살펴서 자신을 정리하고 심판하고, 이제는 믿음으로 그대의 품성을 더럽힌 오점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정결케 하시는 피에 의지하라. 아첨하든지 핑계를 대지 말라. 그대의 영혼을 진실하게 취급하라. 그리고 그대가 죄인임을 볼 때에 십자가(十字架) 밑에 찢긴 심령으로 엎드리라. 예수께서 그대를 더러운 그대로 받으실 것이다. 그리고 하늘 천사의 무리에 가담할 수 있게 할 것이며 정결하고 조화된 하늘에 적합하게 할 것이다. 그 곳에는 충돌이나 불화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건강, 행복, 기쁨으로 넘칠 것이다.”(2증언, 81)

31. “그들이 십자가(十字架) 위에서 그분이 고통당하는 것을 볼 때에 그분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겪어야 했던 그 힘겨운 고뇌의 본질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깨닫도록 준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해서 말씀하신 것을 더 잘 기억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 무섭고 고통스럽고 어두운 시간 속에서 희망의 빛줄기가 어두움을 환히 밝히고 그들의 믿음을 지탱하였을 것이다.”(2증언, 205)

32. “그대가 지금 갈바리의 십자가(十字架) 밑에 엎드려 있을 때에 그분을 부르라. 스스로 모든 자만을 벗어 버리고 교회를 대표하는 파수꾼으로서 낭실과 단 사이에서 애통하면서 “주님, 당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당신의 기업으로 욕되게 마옵소서. 당신의 뜻대로 취하시되 당신의 백성인 우리에게서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라고 부르짖으라. 오, 기도하라.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시도록 기도하라!―원고 27, 1889.”(3기별, 189)

33. “너그러움의 정신은 하늘의 정신이다.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적 정신은 십자가 위에서 계시되었다. 그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주셨는데 그 후에는 자신까지 주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복된 구주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한 마음을 가지라고 호소한다. 그 곳에서 실증된 원칙은 “주라! 주라!”는 것이다. 실제적인 자선과 선한 행실로 나타나는 이런 주는 일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참된 열매이다. 세상 사람의 원칙은 “취하라! 취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행복을 얻는 줄로 기대하지만, 모든 면에서 그 열매는 비극과 죽음이다.”(3보감, 402)

34. “갈바리에서 나타난 사랑이 우리 교회들 가운데서 부흥되고 강조되어 널리 번져 나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가져 오신 원칙들을 강화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시급히 요구되고 있는 자선 사업을 일으키고 효율성 있게 하고자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가 십자가 앞에 서서 그대를 위해 죽으신 하늘의 왕자를 향하여 그대의 마음을 봉하고, “내게는 줄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3보감, 403)

35.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은 그의 사랑을 영속시켜야 한다. 이 사랑이 그들을 십자가 주위에 함께 모으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에게서 모든 이기심을 제하여 버리고, 그들을 하나님께 묶고, 피차도 서로 묶게 하여야 한다.”(3보감, 404)

36. “자기를 희생하고 자신을 부인하며 다 같이 갈바리의 십자가 주위에 모이자.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최선을 다할 때 그대를 축복하실 것이다. 그대가 은혜의 보좌에 접근할 때에, 그대가, 인류를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건지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금사슬로 말미암아 그 보좌에 매여 있음을 발견할 때에, 그대의 마음은 하나님도 소망도 없이 세상에 살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사랑으로 동정하게 될 것이다.”(3보감, 404)

37.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 시련 없이 주님 안에서 어떻게 강해질 수 있겠는가? 힘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강한 믿음을 얻기 위해서 우리의 믿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 속에 놓여져야 한다. 사도 바울은 순교당하기 직전에 디모데에게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고 권면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가능한 한 모든 면에 시험을 받으셨으나 하나님 안에서 끊임없이 승리를 거두셨다.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강하여 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영광을 돌리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3증언, 67)

38.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비천한 생애, 자아 부정, 가난, 고난, 수치,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의 죽음을 당하도록 내어 주셨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제 충분하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이제 죽을 필요가 없다” 라는 기쁨의 기별을 가져올 천사가 없었다. 천사의 무리들은 이삭의 경우에서처럼 하나님께서 마지막 순간에 그분의 수치스러운 죽음을 중단시키기를 슬픈 마음으로 기다리며 희망하였다. 그러나 천사들에게는 그와 같은 어떤 기별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전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았다. 심판정과 갈바리로 가는 길에서의 굴욕은 계속되었다. 그분은 조롱과 비웃음과 침 뱉음을 당하셨다. 십자가 위에서 머리를 떨구시고 운명하시기까지 그분은 그분을 미워하는 자들의 조소와 모욕과 욕설을 견디셨다.”(3증언, 369)

39. “하나님께서는 성소의 저울로 우리의 품성과 행위와 동기를 달아보고 계신다. 우리의 마음을 당신께로 이끄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우리 구주에 의해, 사랑과 순종에 있어서 부족하다는 선고를 받는 것은 두려운 일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고 귀중한 선물을 주셨다. 그분은 당신의 뜻에 대한 빛과 지식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실수하거나 흑암 중에 걸어가지 않게 하셨다. 최종 판결의 날, 보상의 날에 저울에 달려서 부족하다고 판결이 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 것이다. 젊은 친구들이여, 하나님의 책에서 그대들의 이름을 찾는 일에 허사가 되게 할 것인가?”(3증언, 370)

40.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 때문에 고되고 자기 부정적이고, 자아 희생적이고, 미천한 길을 우리의 모본 자께서 걷지 않으셨는가?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일하실 때, 그분은 역경을 만나시고, 실망을 겪으시고 비난과 고난을 감수하셨다. 그런데 영광의 왕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기를 우리는 거절해야 하겠는가? 시험의 광야의 우리 구속주, 겟세마네 동산의 우리 구주, 갈바리 십자가 위의 우리 구주께서 당하신 고통을 기억할 때, 우리 자신을 위해 정복하는 일을 할 때 겪게 되는 고난과 시련에 대해 우리는 불평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고, 우리가 마땅히 소유하지 않으면 멸망될 수밖에 없는 신령한 도우심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시기 위하여 견디신바 되었다. 만일 청년들이 영생을 얻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스스로의 성향을 따라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상급에는 무엇인가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그렇다, 모든 것을 치러야 한다. 지금 그들은 예수님을 소유하든지, 세상을 소유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랑스러운 청년들이 자아를 섬기고, 이 세상의 목적을 얻기 위하여, 빈궁, 피곤, 수고, 염려의 고통을 겪으려고 할 것인가! 그들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어떤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불평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영생을 얻기 위한 일에 쟁투, 자기 부인, 혹은 그 어떤 희생에 대해 그들이 움츠러들어야 한단 말인가?”(3증언, 371)

41. “그분과 같이 시험에 둘러싸인 이곳에서,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구유로부터 갈바리까지 그리스도의 생애를 회상하면서 날마다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특별히 그분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부분을 하나하나 취하고, 상상으로 매 장면을 분명하게 포착해야 한다. 이렇게 그분의 가르침과 고통, 인류의 구속을 위한 그분의 무한한 희생을 명상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우리의 사랑을 일깨우고, 우리의 구주를 지탱했던 영예보다 더 깊이 물들 것이다. 만일 우리가 마침내 구원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참회와 믿음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수치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굴욕을 당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지키기 위해 당신에게 떨어지는 책망과 모욕과 훼방을 받기로 동의하셨다. 흑암의 장막을 그분의 영혼에 뒤집어씌우고 하나님에게 맞아 버림받으신 분으로서 그분에게서 그런 부르짖음이 나오게 만든 것은 우리의 범죄였다. 그분은 우리의 슬픔을 지셨으며, 우리의 죄악을 인해 슬퍼하셨다. 그분은 당신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있도록 자신을 죄를 위한 제물로 드리셨다. 사람 안에 있는 모든 고상하고 너그러운 것은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를 명상하는 일에 반응할 것이다.”(4증언, 374)

42. “바울의 호소는 얼마나 진지하고도 가슴에 와 닿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그대는 그분의 낮추심의 높이를 알지 않는가. 그분의 내려오심에 대한 겸비의 깊이를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그분의 발은 자아 부정과 자기희생의 길에 들어섰으며, 당신의 생명을 주기까지 발을 빼지 않으셨다. 하늘의 보좌와 십자가 사이에 당신을 위한 여지는 없었다. 인간을 위한 그분의 사랑이 모든 경멸을 기꺼이 당케 했으며, 모든 욕설을 받게 했다.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나는 나의 영광과, 내 존재 자체를 인간을 구원하는 일에 내놓는다. 그런데도 지금 자신들을 통하여 영혼을 구원케 하는 하나님의 사업에 거룩하게 바치기로 작정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극소수인지.”(4증언, 457)

43. “우리는 십자가 주위에 모여야 한다.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명상의 주제, 대화의 주제, 그리고 우리의 가장 기쁜 감정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우리가 받는 모든 것을 우리 마음에 생생히 기억하고, 그분의 위대한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감사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손에 모든 것을 기꺼이 내맡기려는 우리의 마음 자세를 표현할 목적을 위하여 이런 특별한 방법들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하늘 가나안의 언어를 말하고, 하늘 시온의 노래를 부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십자가의 신비와 영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람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 동료 인간들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게 될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하여 일하는 일의 중요성을 보고 느끼게 될 것이다.”(4증언, 462)

44.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십자가 아래서 낮아지고, 우리 자신의 눈에 작아지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분만이 우리를 크게 만들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4증언, 607)

45. “십자가 위에서까지 그분께서는 당신이 구원하러 오신 자들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잊어 버리셨다. 우리 구주께서 나타내신 사랑과 관심에 비교해 볼 때,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냉랭하며, 우리의 관심은 얼마나 나약한가! 예수님은 우리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하시고자 세상에 오신 위대한 사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동안 배척과 멸시와 조롱을 받으셨다.”(5증언, 385)

46. “이런 교훈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제자들이 그분의 사업에 협력하는 자들이 되고, 그분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분부하셨다.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겪으신 고민은 그분이 인간의 영혼을 평가하시는 정도를 입증한다. 이 큰 구원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그분의 동역자가 되겠다고 서약한다. 아무도 자기 자신이 특별히 하늘의 은총을 받은 자로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그들의 관심과 주의를 자아에 집중시켜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의 사업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그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고, 무지와 죄 가운데 빠져 있는 자들을 그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5증언, 604)

47. “갈바리에서 표현된 사랑이 우리의 교회에서 되살아나고, 강화되고, 확산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으로 가져오신 원칙들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지 않겠는가? 지금 시급히 요구되고 있는 자선의 사업을 시작하여 능률 있게 하고자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들이 십자가 앞에 서서 그대들을 위해 돌아가고 계시는 하늘의 왕을 보면서도 마음을 굳게 닫고, “아니야, 내게는 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가?”(9증언, 256)

48.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들은 그분의 사랑을 영원히 존속시켜야 한다. 이 사랑은 그들을 십자가 주위로 함께 모여들게 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서 모든 이기심을 벗겨버리고 하나님과 서로를 함께 묶어줄 것이다.”(9증언, 256)

49. “자아 희생과 극기로 갈바리의 십자가 주위에 모이자. 그대들이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그대들이 은혜의 보좌로 접근할 때, 그대들이 죄의 함정에서 사람들을 구원해 내기 위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황금 사슬로 이 보좌에 묶여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그대들의 마음은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는 형제자매들을 위한 사랑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9증언, 256)

50.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우리는 대답할 수 있는가? 나는 내게 위탁된 신성한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청지기인가? 각 사람에게 개인적인 의무가 주어졌다. 파수꾼에게는 다가오는 위험을 분별하고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할 특별한 사명이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군병들은 예민하게 알아듣는 귀를 가져야 한다. 각자 책임진 자리에서 그들은 분명한 소리로 나팔을 불어 모든 사람이 전투를 위해 갑옷을 입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목사, 236)

51. “그대의 사랑과 애정을 갈바리 십자가 위에서 그대를 위해 죽으신 분께로 옮기라. 그분께 찬양을 돌리고, 거룩한 향으로서 기도를 올릴 수 있도록 그대의 입술을 훈련하라.”(목사, 430)

52 “사단은 우리의 마음을 전능하신 조력자로부터 떨어뜨리고, 우리 영혼의 타락상을 곰곰이 생각하게 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과거의 죄악을 보시지만, 당신의 용서를 말씀하신다. 죄책감은 십자가 그늘 밑에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생명의 샘에 독을 투입하게 될 것이다. 사단이 그대를 위협할 때, 그에게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약속들로 그대의 영혼을 위로하라. 구름 그 자체는 어두울지 모르나 하늘의 빛으로 채워질 때, 그것은 황금처럼 빛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목사, 518)

53. “구주의 비할 데 없는 사랑을 그려 보는 자는 사상이 고상하여지고 마음이 정결하여지며 성품이 변화될 것이다. 또, 그는 나아가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 이 기이한 사랑을 얼마간 반영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대하여 생각하면 할수록,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갈 6:14)다고 한 사도의 말에 더욱 공감하게 될 것이다.”(복음, 29)

54. “죄의 속죄 물로서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이야말로 위대한 진리이며, 이 진리 주위에 모든 다른 진리들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모든 진리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충분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갈바리 십자가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을 통해서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대들에게 자비와 재생과 구원과 구속의 위대한 큰 기념물을 소개하노니 곧 십자가 위에 들리. 우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이것은 우리의 목사들이 행하는 모든 설교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복음, 315)

55.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하라
종종 교리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예상하기를 상대방이 저희의 교리를 강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비할 데 없는 사랑이 자세히 설명될 때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마음에 감동을 준다. 빛을 열심히 찾되 구원받기 위해서 무엇을 하여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멸망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희생을 말하라! 저희의 뜻을 하나님의 뜻 편에 두도록 저희에게 말하라. 그럴 때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 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7). ― MC 36-38(1902)”(문전, 42)

56. “나는 갈바리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는 구주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마음에 제시하는 증거가 있다. 그대가 보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죄를 용서하신다는 증거이다. 갈바리의 십자가로부터 반사되는 빛은, 죄의 용서를 위해 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에게 말해 주며, 그것은 우리가 정결해지고 성화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1설교, 107)

57 . “불확실한 매 순간마다 기도하라, 그리고 진지하게 물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길인가?” 그대의 성경을 앞에 놓고 그분이 그대에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에 대해 하나님과 상의하라. 거룩한 원칙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나타나 있다. 모든 참된 지혜의 근원은 갈바리의 십자가 안에서 발견된다.”(2설교, 308)

58. “믿음에 공로를 둘 때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위험이 생긴다. 그대가 그리스도의 의를 값없는 선물로 받아들일 때 그대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값없이 의로워진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그것은 지각을 주신 하나님, 마음을 감동시키신 하나님,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도록 제일 먼저 마음을 끌어주신 하나님께 즐겨 헌신하고 봉사하도록 마음을 묶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동의이다. 믿음은 지적 능력을 하나님께 바치고 마음과 의지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리스도를 하늘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으로 삼는 것이다.”(믿음, 25)

59. “그것이 그대들이 원하는 바를 행하는 믿음이다. 그것이 어떻게 역사하는가? 그것은 사랑으로 역사한다. 어떤 사랑인가? 물론,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빛나고 있는 사랑이다. 그것은 땅과 하늘 사이에 세워져 있으며,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구원을 얻는다. 아버지께서 그것을 받으셨고, 천사의 무리가 그 십자가 앞에 나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희생제물을 받으시면서 친히 머리를 숙이셨다. 그것은 하늘의 요구에 응답하고, 우리가 그분을 믿는 믿음만을 가지면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충분하고 완전하고 온전한 희생을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은 인간과 화해가 이루어진다.”(믿음, 72)

60. “ 우리는 진정한 회개를 통해 십자가 아래로 나아가며 그 곳에다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보훈, 10)

61. “태양 광선이 지구의 가장 먼 구석까지 비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빛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미치도록 계획하신다. 만일, 그리스도의 교회가 우리 주님의 목적을 성취할 것 같으면, 흑암과 죽음의 음침한 그늘에 웅크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게 될 것이다. 한 곳에 모여서 책임과 십자가 지기를 회피하는 대신, 교인들은 온 세상에 흩어져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며,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일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천국 복음”은 곧 온 세상에 신속히 전해질 것 이다.”(보훈, 42)

62.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봉사를 사실 그대로 매력 있게 나타내기를 바라신다. 극기와, 마음의 은밀한 고통을 자비하신 구주께 내어 놓도록 하자. 짐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그대를 먼저 사랑하신 그분의 사랑 안에서 즐겁게 갈 길을 가도록 하라. 사람들은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은밀히 진행되는 일을 끝까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활동의 결과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분이 “갚으”실 것이기 때문이다.”(보훈, 88)

63. “고통, 십자가, 유혹, 역경 및 우리가 당하는 다양한 시련들은 우리를 순화시키고, 거룩하게 하며, 하늘 곳간에 적합한 사람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이다. ― 3T, 115(1872).”(사건, 154)

64.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십자가 밑에서 회개하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평강에 대한 첫째 공과가 된다. 예수님의 사랑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의 사랑보다도 무한히 상냥하고 헌신적인 사랑이다. 영혼의 가치를 알려고 하면 살아 있는 믿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며, 이렇게 하여 영원한 세대를 통하여 구속받은 자들의 과학과 노래를 배우기 시작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과 재능에 대한 가치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치르신 그리스도의 속죄의 대가가 얼마나 크셨던가를 생각하면 그것을 평가할 수 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애정과 봉사를 드리지 않음으로써 그분께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 얼마나 배은망덕함을 나타내게 되겠는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분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을 너무 심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고 제안하시는 불멸의 영광 앞에서 우리는 세상과 벗할 수 있겠는가?”(성화, 93)

65. “구속 사업은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전 2:9). 그리스도의 능력에 이끌린 죄인이 십자가 앞에 나아가 부복할 때에 그는 새로 창조함을 받는다. 그는 새 마음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게 된다. 그리고 더 요구될 것이 없는 거룩함을 입게 된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롬 3:26)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입은 수치와 타락은 몹시 크다. 그러나 구속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얻게 될 우리의 영예와 위대함은 더욱더 클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으려고 애쓰는 모든 사람에게 탁월한 능력 곧 하늘의 보화가 주어져서 그들로 타락한 일이 전혀 없는 천사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할 것이다.”(실물, 162)

66. “안식일학교 교장과 교사들은 스스로 다음과 같이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가? 내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고 십자가 위에서 참혹한 죽음을 겪으시면서 까지 내 자신을 위해 당신 스스로를 바치신 그분에게 나는 내 스스로를 바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 심지어는 뉘우칠 줄도 모르며 예수님의 이끄시는 능력에 응답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영혼까지도 이끌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는가? 하는 질문인 것이다. 그러고는 참회하는 심령으로 “주님, 저는 저의 모든 힘을 다하여 주님께 나아가겠습니다. 저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만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이 움직이게 되고 부드럽게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고 말하라. ― TSS 47-50.”(안교, 63)

67. “그리스도께서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한 가지로 새롭고 산길이 열렸습니다.”(인류, 147)

68. “너그러움의 정신은 하늘의 정신이다.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적 정신은 십자가 위에서 계시되었다. 그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주시고 마침내 자기 자신까지 주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복되신 구주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한 마음을 가지라고 호소한다. 그 곳에서 실증된 원칙은 “주라! 주라!”는 것이다. 실제적인 자선과 선한 행실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참된 열매이다. 세상 사람의 원칙은 “가지라, 가지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행복을 얻은 줄로 기대하지만 모든 면에서 그 열매는 비극과 죽음이다.”(청지기, 14)

69. “갈바리에서 나타난 사랑이 우리 교회내에서 부흥되고 강조되며 널리 전파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가져오신 원칙들을 강화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시급히 요청되고 있는 자선 사업들을 시작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일에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가 십자가 앞에 서서 그대를 위하여 죽으신 하늘의 왕자를 향하여 그대의 마음을 봉하고 “내게는 줄 것이 없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청지기, 16)

70.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은 그의 사랑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이 사랑의 정신으로 그들은 십자가 주위에 함께 모이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에게서 모든 이기심을 제거하고 그들을 하나님께 묶고, 피차에 서로 묶도록 해야 한다.”(청지기, 16)

71.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가운데 갈바리의 십자가 주위에 다 같이 모이자.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최선을 다할 때 그대를 축복하실 것이다. 그대가 은혜의 보좌에 접근할 때에,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인류를 건지시기 위하여 하늘에서 땅에 내리신 금사슬로 말미암아 그대가 이 보좌에 매여 있음을 발견할 때에 그대의 마음은 하나님도 소망도 없이 세상에 살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사랑으로 동정하게 될 것이다. ― 9T, 253-256.”(청지기, 16)

72. “나는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시던 당시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기쁨에 찬 제자들은 그가 그 때 세상 왕국을 취하시고 현세의 왕으로 군림하실 줄 믿었다. 그들은 대망을 품고 그들의 왕을 따랐다. 그들은 아름다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그들의 겉옷을 벗어 그분이 가시는 길 위에 깔았다. 그들은 앞서거니 뒤따르거니 하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리로다. 고 외쳤다. 바리새인들은 그 소동에 놀라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을 나무래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하고 말씀하셨다.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이 성취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쓰라린 실망의 경험을 당해야 했다. 그로부터 몇 날이 못 가서 그들은 갈바리로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서 잔인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시며 고난당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그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했고 그분은 무덤에 그를 안치했다. 그들의 마음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들의 기대는 일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고 그들의 소망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가 사망에서 일어나 슬픔 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자 저들의 소망은 다시 소생되었다. 그들은 그를 다시 찾았던 것이다.”(초기, 244)

73. “그 때부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사단을 정복당한 원수로 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들을 위하여 승리를 얻으실 것이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들이 그 승리를 자기들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셨다. 그분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눅 10:19)고 말씀하셨다.”(가건, 256)

74.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희생하신 것은 십자가 위에서만 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행 10:38)실 때에 겪으신 매일의 경험은 바로 그분의 생활이었다. 이러한 생애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면서 사셨다. 사람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은밀한 곳에,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할 때에, 또 거기서 얼마 동안 살 때에는 그 행위가 고상한 결과를 나타내지만, 그 후에는 신앙이 쇠하여지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그 평생사업이 좌절되고 만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일생은 하나님과 더불어 끊임없는 교제로 유지된 변함없는 신뢰의 일생이었으며, 하늘과 땅에 대한 그분의 봉사는 실패하거나 실족함이 없는 것이었다.”(교육, 80)

75.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든 학생들에게 거듭 거듭 반복하여 가르치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진정한 의미를 믿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저들의 연구 과제로 삼으며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 우리들 세상에 단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라도 있을 수 있었을까? 그러므로 그대들의 학교에서 십자가를 참된 교육의 기초로 높이 받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들의 교사들처럼 가까이 있으며 바울이 깨닫고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고 말할 수 있었듯이 저들도 십자가에 대하여 완전히 깨달아야 한다.”(부모, 23)

76. “교사들이여, 세속적인 모본에서 돌이키고 세상의 위인(偉人)들을 공공연하게 격찬하는 일을 그치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도록 학생들의 정신을 돌이키게 하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메시야는 모든 기독교 사상의 중심점이다. 교사들과 학생들이 배워야 할 가장 긴요한 교훈들이란 세상으로 지향케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갈바리의 십자가를 가리키는 것들이다.”(부모, 23)

77. “청년들은 무한한 대가(代價) 즉,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산 바되었다. 당신의 아들로 하여금 이러한 희생을 하도록 허락하신 아버지의 희생을 생각해 보라. 사람을 대신하여 날마다 드리는 희생의 제물로 당신의 생명을 바치시고자 하늘 조정과 왕좌(王座)를 버리고 나오실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셨는가를 생각해 보라. 그리스도는 비난과 욕설을 받으셨다. 그는 악인들이 퍼부을 수 있는 모든 모욕과 조롱을 받으시면 서도 그것을 참으셨다. 그리고 그의 지상 봉사가 끝났을 때 그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당신이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자들로부터 오히려 조소와 욕설을 받으시고, 당신의 아버지는 얼굴을 감추시던,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명에 비견될 수 있는 생명을 얻는 것을 가능케 하신 것은 이러한 모든 고난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청년, 16)

78. “사단은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전능하신 구주를 떠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영혼의 타락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하려고 힘쓴다. 그러나 비록 예수께서 과거의 범죄를 보고 계실지라도 그는 사유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사랑을 의심함으로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죄책감은 십자가 아래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생명의 샘을 중독 시킬 것이다. 사단이 그대들을 위협할 때 그것으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의 약속으로써 그대들의 영혼을 안위하라. 구름 자체는 어두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하늘의 빛을 가득 머금을 때에는 황금의 빛으로 변한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청년, 109)

79.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십자가 밑에서 참회하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화평의 첫째 교과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가 능히 이해하리요!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무한히 자애롭고 희생적이다. 우리가 인간의 영혼의 가치를 알기 원한다면 우리는 산 믿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영원무궁토록 구속을 받은 자들의 과학과 노래가 될 공부를 시작하여야 한다.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달란트의 가치는 우리의 구속의 대가로 지불된 속죄물의 크기로써만 평가될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애정과 우리의 봉사를 하나님께 바치기를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얼마나 큰 배은망덕인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신 그분에게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이 너무 과한 것인가?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시는 불멸의 영광, 즉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시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고 하신 영광을 앞에 두고 세상과 벗이 되고자 선택할 수 있겠는가?”(청년, 115)

80. “십자가에서의 용서. 십자가 앞에서 죄인은 그의 품성이 그리스도와 닮지 않았다는 것을 본다. 그는 범죄의 두려운 결과들을 본다. 그는 그가 자행한 죄들을 미워한다. 그리고 그는 산 믿음으로 예수를 붙잡는다. 그는 하나님과 하늘의 지성적 존재자들의 임재에 비추어 그의 부정한 처지를 판단하였다. 그는 십자가의 표준으로 그것을 척량하였다. 그는 그것을 성소의 저울에 달아보았다. 그리스도의 순결이 그에게 그 가증한 모습 그대로 그의 불순결함을 드러내었다. 그는 더럽히는 죄에서 돌아선다. 그는 예수를 바라보고 산다.”(행실, 108)

81. “전적인 변화. 그대가 전적인 품성의 변화를 겪지 않는 한 그대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그리스도처럼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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