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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 마지막 때의 속임수-(핵심 Q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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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2-12-05 18:17 조회1,39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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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과 마지막 때의 속임수

                                     (12월 10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14분)

 

 

<서언(緖言)>

○.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는 인간으로서 창조주(創造主) 하나님께서 창조의 목적(目的)대로 산다(생애).하는 것은 참으로 귀중한 가치관(價値觀)을 같고 사는 것이다.

그와 같은 확고부동(確固不動)한 가치관(價値觀)을 갖고 살 때에 본인의 의사(意思)와 상관없이 환경에 많은 지배(支配)를 받게 되는데 특히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생사(生死)를 가늠하는 주체의식(主體意識)과 사상(思想)이 즉 다니엘 같은 믿음이 아주 중요(重要)하다.

그러기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즉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救主)요 주인(主人)으로 영접(迎接)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重要)한지 모른다. 그처럼 중요한일은 오로지 그분의 말씀인 성경(聖經)을 분명하게 확실(確實)하게 알 때 좌(左)로나 우(右)로나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런 과정(過程)을 잘 굳게 똑바로 지켜 나가려는 사람에게는 사단이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 사단의 첫째방법은 진리(眞理)를 못 받게 하거니 틀리도록 왜곡(歪曲)하여 받아 드리도록 한다. 그 단계(段階)가 지나면, 박해(迫害)와 고난(苦難)으로 시도(試圖)하고, 또 그 단계(段階)가 지나면 회유(懷柔)와 타협(妥協)이 오고, 또 한 단계(段階)로는 유혹(誘惑)으로 넘어뜨리는 것이 사단의 전술(戰術)l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대처(對處)해야 한다.

 

○.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가장 축복받은 재림성도(再臨聖徒)들은 신앙(信仰)의 성경의 핵심(核心)과 골격(骨格)으로 이루어진 <6가지의 기둥>이 되는 재림교회 기본교리(基本敎理)로 ⑴.신론(神論) ⑵.인간론(人間論) ⑶.구원론(救援論) ⑷.교회론(敎會論) ⑸.그리스도인 생활론(生活論) ⑹.종말론(終末論)등에 대하여 28가지의 신앙(信仰)의 기초(基礎)가 되며 반석(磐石)이 되는 교리(敎理)가 있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신앙(信仰)을 해야 되는 지의 나침판이 확실(確實)하게 규정(規定)되어 있다. 즉 이 기본교리(基本敎理)를 분명(分明)하게 알고 그대로 믿을 때에는 조금의 흔들림이나 오류(誤謬)에 빠질 위험(危險)이 없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종말(終末)의 때에 살고 있는 재림성도(再臨聖徒)들에게 기본교리(基本敎理) <종말론(終末論)장(章)의 제26장>의 <죽음과 부활>장(章)을 다시 한 번 정독(精讀)하시면 <안교교과 2022년 제4기 죽음 그리고 미래(未來)의 소망(所望)> 이라는 교과(敎科)에서 정답(正答)을 찾게 될 것이며 특히 <제11과-마지막 때의 속임수>에 대하여 현혹(眩惑)되거나 넘어질 염려(念慮)가 전혀 없을 것이라 장담(壯談)하면서, 

 

○. 이번 주(週) <안교교과 제11과>에서 우리는 신비주의(神秘主義)나 임사체험(臨死體驗)이나 환생(還生)이나 주술(呪術)이나 조상숭배(祖上崇拜)등등 종말(終末)에 더욱 기승(氣勝)을 부리게 될 속임수들을 살펴 공부함으로 똑바로 배워서 그 사단의 영향력(影響力)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 오직 하나님의 능력(能力)으로 보호(保護)를 받고 성경의 진리(眞理)로 마음을 무장(武裝)하고 그것을 그들의 유일(唯一)한 권위(權威)로 받아들이는 자(者)들만이 그 기만(欺瞞)을 피(避)하게 될 것이다.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보호(保護)의 길을 잃고 이 기만(欺瞞)에 휩쓸려 갈 것이다.

 

 

12월 4일(일)  신비주의(神秘主義)

 

(Q)~(마 7:21~27) 무엇을 믿느냐도 중요(重要)하지만 어떻게 믿느냐도 중요(重要)한 이유(理由)는 무엇일까요?

 

(A)~○.신비주의【神秘主義】란

신(神)의 존재(存在)나 사물현상(事物現象)을 사람의 지혜(智慧)로는 알 수 없는 초자연적(超自然的)인 것으로 보는 생각(生覺)이나 태도(態度), 또는 신비(神秘)스럽거나 환상적(幻想的)인 힘을 믿는 생각이나 태도(態度)를 말하는데.(naver 사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權威)를 개인(個人)의 주관적(主觀的)인 경험(經驗)으로 판단(判斷)하여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解釋)함으로 결국 개인적(個人的)인 감정(感情)과 취향(趣向)으로 성경을 해석(解釋)하여 기준(基準)을 삼다 보니, 일예(一例)로 예수천국(天國) 불신(不信)지옥(地獄)으로 영적(靈的)인 본질(本質)의 깊이를 생략(省略)하고, 마치 성경(聖經)해석(解釋)을 온전히 알지 못하여 “성경의 권위(權威)”보다 자신이 체험(體驗)한 영적경험(靈的經驗)을 더 주장(主張)하여 마치 “내가복음”으로? 잘못 신앙(信仰)하는 매우 위험(危險)한 신앙인(信仰人)들로 성경 말씀인 “반석(磐石)되시는 그리스도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 보다, “모래위에 집을 짖는” 신앙인(信仰人)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12월 5일(월)  임사체험[ Near-Death experience , 臨死體驗 ]

 

(Q)~(왕상 17:22~24, 막 5:41~43, 요 11:40~44) 임사체험(臨死體驗)이란 무엇이며 그 주장(主張)이 잘못된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A)~○.영혼불멸(靈魂不滅)을 증명(證明)하고자 할 때 가장 인기 있는 현대적(現代的) 주장(主張)은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이다. 임사체험(臨死體驗)이란 

 임상적(臨床的)으로 죽은 것으로 여겨졌지만 실제(實際)로 죽은 것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것으로 흔히 말하고 있으나, 성경(聖經)(요 11:39)에서 말하는 나사로의 경우처럼 죽은 지 나흘이 지나서 시체(屍體)가 부패(腐敗)하기 시작한 경우가 아닌 것들을 사람들을 임사체험(臨死體驗)이라는 사단의 속임수가 작용(作用)한 경우(境遇)로 많이 속아 넘어 가고 있다. 과학적(科學的)인 방법이나 사단의 술수(術數)의 속임수가 작용(作用)한 것을 사람들은 속고 있다. 성경은 죽은 사람은 무의식상태(無意識常態)로 천국(天國)이나 연옥(煉獄)이나 지옥(地獄)같은 사후(死後)경험에 대하여 전혀 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탄은 마지막 때에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과학(科學)의 이름으로 우리의 정신(精神)을 현혹(眩惑)하지만 변함없는 성경의 진리를 확실히 붙든다면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임사(臨死)’라는 말은 말 그대로 ‘죽음에 가까이 이른 상태’라는 말이다. 아직은 죽지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므로 결코 사후(死後))체험이 아니다. 죽은 후에는  예수님이 살리시기 전에는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이 죽었다가 살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다.

 

12월 6일(화)  환생(還生)

 

(Q)~(히 9:25~28, 벧 3:18) 그리스도인으로서 환생(還生)에 관한 이론(理論)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A)~○.(히브리서 9:25~28)과 (베드로전서 3:18)을 읽어보라. 만일 예수님께서 “한 번” 죽으셨고(히 9:28, 벧전 3:18),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도 “한 번”(히 9:27) 죽는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어떤 형태로든 환생을 믿는 것인가? (사전적 의미로 환생(還生)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사실을 믿는 것보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평안과 위로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여망(餘望)으로 기울어 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성경에서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전 9:5)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시 146:4)라고 읽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리니”(창3:19)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예수님 재림하실 때 부활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고전15:12~13). 그러나 영혼불멸(靈魂不滅)사상을 가진 다른 종교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까지도 사람이 죽으면 즉시 천국(天國)이나 지옥(地獄)으로 간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矛盾)된다는 것이므로 환생(還生)이나 윤회(輪廻)사상(思想)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후에는 예수님 부활의 심판이 있을 뿐이다..

 

12월 7일(수) 강신술(降神術)과 조상숭배(祖上崇拜)

 

(Q)~(삼상 28:3~25) 사울이 엔돌의 신접(神接)한 여인(女人)을 찾아간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敎訓)은 무엇입니까?

 

(A)~○.영적(靈的)으로 무지(無知)한 자는 부지중(不知中)에 범죄(犯罪)로 이끌러 가게 됩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힐 것을 권면(勸勉)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배우고 익혀,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분별(分別)하는 것이, 부지중(不知中)에 일어날 수도 있는 범죄(犯罪)를 막는 지름길입니다. 사도바울은 성경을 가리켜 "교훈(敎訓)과 책망(責望)과 바르게 함과 의(義)로 교육(敎育)하기에 유익(有益)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穩全)케 하며, 모든 선(善)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穩全)케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딤후3:16,17). 그러므로 말씀은 잊어버린 채 개인적(個人的)인 감정(感情)이나 체험(體驗)만을 강조(强調)하는 이 시기(時期)에 우리는 말씀의 빛에 삶을 비추어 보고 바른 지혜(智慧)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강신술은 영혼불멸(靈魂不滅)을 믿는 자들에게 사탄이 직접(直接)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매개체(媒介體)를 통하여 사단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고 진리(眞理)를 깨닫지 모르는 자는 그의 속임수에 걸려들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拒逆)하게 만드는 것이다.  

 

12월 8일(목)  죽은 자(者)의 모습(模襲)으로 나타남

 

(Q)~(엡 6:10~18)  사탄의 속임수를 물리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허락(許諾)된 약속은 무엇입니까?

 

(A)~○.그 어느 때 보다도 인생의 삶은 간단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족의 인연(因緣)으로 살다가 죽음이라는 것을 통하여 잠시 사별(死別)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境遇)를 맞게 되면 나약(懦弱)한 인생들은 망자(亡者)에 대한 그리움으로 상(傷)한 마음과 가슴에 공허(空虛)함을 해소(解消)하고자 하는 것을 이용하여 사단은 접근(接近)하여 가장 잘 활용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사단은 죽은 사람의 모습(模襲)이 마치 산 사람처럼 다시 나타나는 것 역시(亦是) 강신술(降神術)과 마찬가지로 사탄이 꾸며내는 일이다. 아무리 강력(强力)하고, 설득력(說得力) 있고, 진짜처럼 보일지라도, 죽은 자는 무덤에서 잠들어 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확고히 믿어 붙잡지 않으면 사단의 먹잇감이 되고 말 것이다. 이에 엘렌 G. 화잇은 다음과 같이 경고(警告)한다. “사도(使徒)들의 모양으로 가장(假裝)하고 나타나는 이 속이는 영(靈)들은 사도(使徒)들이 세상에 있을 때 성령(聖靈)의 지도(指導)로 기록한 바와는 전혀 반대되는 말들을 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557). 

<전신갑주(全身甲胄)> : 갑옷과 투구를 말하는 것이나 성경이 말하는 전신갑주는 성령으로          무장하여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겨서 사단의 속임수를 물리쳐야 한다. (딤전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라

 

<말미부록(末尾附錄)>--------------------------------

            

 

 

 

 

     제11과 마지막 때의 속임수

                                                  (12월 10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14분)

 

 

<서언(緖言)>

○.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는 인간으로서 창조주(創造主) 하나님께서 창조의 목적(目的)대로 산다(생애).하는 것은 참으로 귀중한 가치관(價値觀)을 같고 사는 것이다.

그와 같은 확고부동(確固不動)한 가치관(價値觀)을 갖고 살 때에 본인의 의사(意思)와 상관없이 환경에 많은 지배(支配)를 받게 되는데 특히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생사(生死)를 가늠하는 주체의식(主體意識)과 사상(思想)이 즉 다니엘 같은 믿음이 아주 중요(重要)하다.

그러기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즉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救主)요 주인(主人)으로 영접(迎接)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重要)한지 모른다. 그처럼 중요한일은 오로지 그분의 말씀인 성경(聖經)을 분명하게 확실(確實)하게 알 때 좌(左)로나 우(右)로나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런 과정(過程)을 잘 굳게 똑바로 지켜 나가려는 사람에게는 사단이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 사단의 첫째방법은 진리(眞理)를 못 받게 하거니 틀리도록 왜곡(歪曲)하여 받아 드리도록 한다. 그 단계(段階)가 지나면, 박해(迫害)와 고난(苦難)으로 시도(試圖)하고, 또 그 단계(段階)가 지나면 회유(懷柔)와 타협(妥協)이 오고, 또 한 단계(段階)로는 유혹(誘惑)으로 넘어뜨리는 것이 사단의 전술(戰術)l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대처(對處)해야 한다.

 

○.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가장 축복받은 재림성도(再臨聖徒)들은 신앙(信仰)의 성경의 핵심(核心)과 골격(骨格)으로 이루어진 <6가지의 기둥>이 되는 재림교회 기본교리(基本敎理)로 ⑴.신론(神論) ⑵.인간론(人間論) ⑶.구원론(救援論) ⑷.교회론(敎會論) ⑸.그리스도인 생활론(生活論) ⑹.종말론(終末論)등에 대하여 28가지의 신앙(信仰)의 기초(基礎)가 되며 반석(磐石)이 되는 교리(敎理)가 있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신앙(信仰)을 해야 되는 지의 나침판이 확실(確實)하게 규정(規定)되어 있다. 즉 이 기본교리(基本敎理)를 분명(分明)하게 알고 그대로 믿을 때에는 조금의 흔들림이나 오류(誤謬)에 빠질 위험(危險)이 없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종말(終末)의 때에 살고 있는 재림성도(再臨聖徒)들에게 기본교리(基本敎理) <종말론(終末論)장(章)의 제26장>의 <죽음과 부활>장(章)을 다시 한 번 정독(精讀)하시면 <안교교과 2022년 제4기 죽음 그리고 미래(未來)의 소망(所望)> 이라는 교과(敎科)에서 정답(正答)을 찾게 될 것이며 특히 <제11과-마지막 때의 속임수>에 대하여 현혹(眩惑)되거나 넘어질 염려(念慮)가 전혀 없을 것이라 장담(壯談)하면서, 

 

○. 이번 주(週) <안교교과 제11과>에서 우리는 신비주의(神秘主義)나 임사체험(臨死體驗)이나 환생(還生)이나 주술(呪術)이나 조상숭배(祖上崇拜)등등 종말(終末)에 더욱 기승(氣勝)을 부리게 될 속임수들을 살펴 공부함으로 똑바로 배워서 그 사단의 영향력(影響力)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 오직 하나님의 능력(能力)으로 보호(保護)를 받고 성경의 진리(眞理)로 마음을 무장(武裝)하고 그것을 그들의 유일(唯一)한 권위(權威)로 받아들이는 자(者)들만이 그 기만(欺瞞)을 피(避)하게 될 것이다.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보호(保護)의 길을 잃고 이 기만(欺瞞)에 휩쓸려 갈 것이다.

 

12월 4일(일)  신비주의(神秘主義)

 

(Q)~(마 7:21~27) 무엇을 믿느냐도 중요(重要)하지만 어떻게 믿느냐도 중요(重要)한 이유(理由)는 무엇일까요?

 

(A)~○.신비주의【神秘主義】란

신(神)의 존재(存在)나 사물현상(事物現象)을 사람의 지혜(智慧)로는 알 수 없는 초자연적(超自然的)인 것으로 보는 생각(生覺)이나 태도(態度), 또는 신비(神秘)스럽거나 환상적(幻想的)인 힘을 믿는 생각이나 태도(態度)를 말하는데.(naver 사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權威)를 개인(個人)의 주관적(主觀的)인 경험(經驗)으로 판단(判斷)하여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解釋)함으로 결국 개인적(個人的)인 감정(感情)과 취향(趣向)으로 성경을 해석(解釋)하여 기준(基準)을 삼다 보니, 일예(一例)로 예수천국(天國) 불신(不信)지옥(地獄)으로 영적(靈的)인 본질(本質)의 깊이를 생략(省略)하고, 마치 성경(聖經)해석(解釋)을 온전히 알지 못하여 “성경의 권위(權威)”보다 자신이 체험(體驗)한 영적경험(靈的經驗)을 더 주장(主張)하여 마치 “내가복음”으로? 잘못 신앙(信仰)하는 매우 위험(危險)한 신앙인(信仰人)들로 성경 말씀인 “반석(磐石)되시는 그리스도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 보다, “모래위에 집을 짖는” 신앙인(信仰人)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현대 심령주의(降神術)의 출현(出現).> 

영계(靈界)와 사자(死者)와의 교통(交通)을 주장(主張)하는 운동인 강신술(降神術)이 출현(出現)한 직후인 1850년 엘렌 화잇은 그것이 마지막 시대의 한 기만(欺瞞)임을 간파(看破)했으며 그 운동이 성장(成長)할 것을 예언(豫言)했다. 그 당시 그 운동은 결정적(決定的)으로 반(反)그리스도교 적이었지만 그녀는 이러한 적대감(敵對感)이 변(變)할 것이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그것이 존중(尊重)될 것이라고 예견(豫見)하였다. 그 때 이래로 강신술은 전세계로 확산(擴散)되었고 수백만의 신봉자(信奉者)를 얻었다. 그것의 반(反)그리스도교적 자세는 변(變)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을 그리스도인 심령주의자(心靈主義者)라고 부르며 그들은 참그리스도인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심령주의자(心靈主義者)들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약속(約束)하신 선물(膳物)들을 활용(活用)하고 있는 유일(唯一)의 독실(篤實)한 신자들로서, 그 은사(恩賜)들을 사용하여 병자(病者)를 고치며 의식(意識)이 있고 점점 더 향상하는 사후(死後)의 삶이 있음을 증명(證明)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심지어 심령술(강신술)은 "그대들에게 모든 위대(偉大)한 종교 조직체(組織體)들에 대한 지식을 제공(提供)하며 더욱이 그대들에게 모든 주선책(周旋責)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성경에 대한 지식을 준다. 성경은 하나의 강신술책(降神術冊)이다"라고 주장(主張)한다.”(교리, 211)

 

○.강신술(降神術). 만일 죽은 자가 전혀 의식(意識)이 없다면 강신술(降神術)의 영매(靈媒)들은 누구와, 혹은 무엇과 교통(交通)을 하는가? 모든 정직(正直)한 사람은, 최소(最小)한 이런 현상(現象) 중 어떤 것은 속이는 일임을 인정(認定)할 것이다.”(교리, 327)

 

12월 5일(월)  임사체험[ Near-Death experience , 臨死體驗 ]

 

(Q)~(왕상 17:22~24, 막 5:41~43, 요 11:40~44) 임사체험(臨死體驗)이란 무엇이며 그 주장(主張)이 잘못된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A)~○.영혼불멸(靈魂不滅)을 증명(證明)하고자 할 때 가장 인기 있는 현대적(現代的) 주장(主張)은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이다. 임사체험(臨死體驗)이란 

 임상적(臨床的)으로 죽은 것으로 여겨졌지만 실제(實際)로 죽은 것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것으로 흔히 말하고 있으나, 성경(聖經)(요 11:39)에서 말하는 나사로의 경우처럼 죽은 지 나흘이 지나서 시체(屍體)가 부패(腐敗)하기 시작한 경우가 아닌 것들을 사람들을 임사체험(臨死體驗)이라는 사단의 속임수가 작용(作用)한 경우(境遇)로 많이 속아 넘어 가고 있다. 과학적(科學的)인 방법이나 사단의 술수(術數)의 속임수가 작용(作用)한 것을 사람들은 속고 있다. 성경은 죽은 사람은 무의식상태(無意識常態)로 천국(天國)이나 연옥(煉獄)이나 지옥(地獄)같은 사후(死後)경험에 대하여 전혀 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탄은 마지막 때에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과학(科學)의 이름으로 우리의 정신(精神)을 현혹(眩惑)하지만 변함없는 성경의 진리를 확실히 붙든다면 흔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임사(臨死)’라는말은 말그대로 ‘죽음에 가까이 이른 상태’라는 말이다. 아직은 죽지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므로 결코 사후(死後))체험이 아니다. 죽은 후에는  예수님이 살리시기 전에는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이 죽었다가 살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다.

 

12월 6일(화)  환생(還生)

 

(Q)~(히 9:25~28, 벧 3:18) 그리스도인으로서 환생(還生)에 관한 이론(理論)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A)~○.(히브리서 9:25~28)과 (베드로전서 3:18)을 읽어보라. 만일 예수님께서 “한 번” 죽으셨고(히 9:28, 벧전 3:18),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도 “한 번”(히 9:27) 죽는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어떤 형태로든 환생을 믿는 것인가? (사전적 의미로 환생(還生)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사실을 믿는 것보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평안과 위로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여망(餘望)으로 기울어 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성경에서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전 9:5)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시 146:4)라고 읽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리니”(창3:19)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예수님 재림하실 때 부활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고전15:12~13). 그러나 영혼불멸(靈魂不滅)사상을 가진 다른 종교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까지도 사람이 죽으면 즉시 천국(天國)이나 지옥(地獄)으로 간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矛盾)된다는 것이므로 환생(還生)이나 윤회(輪廻)사상(思想)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후에는 예수님 부활의 심판이 있을 뿐이다..

 

○.(첫째), 환생(還生)에 관한 이론(理論)은 영혼(靈魂)의 죽음과 육체의 부활(復活)에 대한 성경적(聖經的) 가르침과 모순(矛盾)된다(살전 4:13~18). <교과154~155>

○.(둘째), 그와 같은 주장(主張)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사역(엡 2:8~10)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은혜(恩惠)로 받는 구원(救援)의 교리(敎理)를 부정(否定)하고 인간의 업적(業績)을 그 자리에 대신 놓는다.

○.셋째, 그 이론(理論)은 사람의 영원한 운명(運命)이 각자의 생애를 통한 선택으로 영원히 결정(決定)된다는 성경적 가르침과 배치(背馳)된다(마 22:1-14, 마 25:31-46).

○.(넷째), 그 이론(理論)은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요 14:1~3)의 의미(意味)와 타당성(妥當性)을 경시(輕視)한다.

○.(다섯째), 그 이론(理論)에서는 전생(前生)에서 부족(不足)했던 점을 극복(克服)할 수 있는 다른 기회(機會)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히 9:27). 한마디로 환생(還生)이라는 개념(槪念)은 그리스도인 신앙(信仰)에는 설 자리가 없다. 

 

○.<죽은 자의 무의식(無意識) 상태(狀態)>

 우리는 사람이 죽을 때에 적막하고 활동이 없으며 완전한 무의식(無意識) 상태(狀態)에 들어가며 그래서 그가 의인(義人)이면 첫째 부활(復活)때까지 만일 악인(惡人)이면 둘째 부활(復活)때까지는 시간의 흐름이나 외부사건(外部事件)에 대하여 완전히 알지 못하는 잠자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성연1-3, 제1편>30.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인들은 무엇을 믿는가?)

 

12월 7일(수) 강신술(降神術)과 조상숭배(祖上崇拜)

 

(Q)~(삼상 28:3~25) 사울이 엔돌의 신접(神接)한 여인(女人)을 찾아간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敎訓)은 무엇입니까?

 

(A)~○.영적(靈的)으로 무지(無知)한 자는 부지중(不知中)에 범죄(犯罪)로 이끌려 가게 됩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힐 것을 권면(勸勉)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배우고 익혀,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분별(分別)하는 것이, 부지중(不知中)에 일어날 수도 있는 범죄(犯罪)를 막는 지름길입니다. 사도바울은 성경을 가리켜 "교훈(敎訓)과 책망(責望)과 바르게 함과 의(義)로 교육(敎育)하기에 유익(有益)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穩全)케 하며, 모든 선(善)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穩全)케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딤후3:16,17). 그러므로 말씀은 잊어버린 채 개인적(個人的)인 감정(感情)이나 체험(體驗)만을 강조(强調)하는 이 시기(時期)에 우리는 말씀의 빛에 삶을 비추어 보고 바른 지혜(智慧)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강신술(降神術)은 영혼불멸(靈魂不滅)을 믿는 자들에게 사탄이 직접(直接)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매개체(媒介體)를 통하여 사단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고 진리(眞理)를 깨닫지 모르는 자는 그의 속임수에 걸려들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拒逆)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생의 거울과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성경을 깊이 상고(詳考)함으로 사탄의 속임수에 빠지기 보다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音聲)에 집중(集中)하여 넉넉히 승리(勝利)하시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강신술(降神術)(necromancy)이라는 영어단어(英語單語)는 죽음이라는 뜻의 ‘네크로스’와 점(占)을 친다는 뜻의 ‘만테이아’라는 두 개의 헬라어에서 유래(由來)했다. 고대(古代)부터 강신술(降神術)은 주로 미래의 사건을 예측(豫測)하기 위해 죽은 자의 영혼을 소환(召喚)하는 행위(行爲)를 가리켜왔다. 

 

○.조상숭배(祖上崇拜)는 죽은 조상(祖上)을 여전히 가족(家族)으로 여기며, 그들의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고 숭배하는 관습(慣習)을 말한다. <교과 156>

 

○.이와 같은 이교적(異敎的) 관습(慣習)들은 영혼이 죽지 않는다고 믿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그들을 계속해서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魅力的)으로 느껴질 수 있다. 

 

○.<강신술(降神術) 안에 희망(希望)이 있는가?>

    강신술(降神術)의 주장(主張)을 검토(檢討)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상한 현상들의 연속(連續)을 직면(直面)하게 되는데 그것은 비참(悲慘)한 인류에게 전해진 가장 위대(偉大)한 진리(眞理)이거나 혹(或)은 인생의 기억(記憶)중에 가장 파렴치(破廉恥)한 기만(欺瞞)이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모든 인간은 내세(來世)의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그 희망 때문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무덤 저편에 대하여 암시(暗示)하는 어떤 교리(敎理)에 대해서도 그처럼 민감(敏感)한 것이다. 

강신술의 장면에 감싸인 신비(神秘)를, 부주의(不注意)한 사람이나 학자(學者)답게 심사숙고(深思熟考)하는 사람이거나 간에 영교(靈巧)의 증거(證據)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영(靈)”들이 실제로 죽은 자들이라고 믿도록 우리에게 요구(要求)한다. 

 

○.현대적(現代的)인 형태(形態)로서의 강신술(降神術)은 1848년 3월 8일부터 시작되었다. 그때에는 뉴욕 주, 하이데스빌에 있는 폭스의 가정에서 “두들기는 소리”에 의하여 죽은 자와의 교제(交際)가 확립(確立)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여기서 시작된 그 운동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전파(傳播)되어 세계도처에서 모든 계급의 사람들 사이에서 추종자(追從者)를 얻게 되었다. 이것은 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인 때문이다. 

 

○.첫째로 죽은 자들에 대한 산 자들의 자연적(自然的)인 동경(憧憬), 

○.둘째로는 물질계(物質界) 밖에서 작용(作用)하는 세력의 뚜렷한 증거로서 이것이 죽은 사람들의 산영이라고 인정(認定)되었다. 그들이 사랑하던 어머니나 친척들로 가장한 이들에게서 나온 지혜로운 기별이 외롭고 사랑에 주린 유가족(遺家族)들에게 전해질 때 유족들은 그것을 저항할 수가 없었다. 

 

○.심리학(心理學) 분야(分野)의 유능(有能)한 연구가들이 엄밀(嚴密)한 실험을 해본 후에 이런 현상을 암시, 최면술(催眠術) 혹은 기만(欺瞞)으로 된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超自然的)인 능력이 나타난 것이라고 선언(宣言)할 때 그것을 기만(欺瞞)이라고 단정(斷定)하던 자들도 침묵(沈黙)하게 되고 말았다. (성연1-3, <제1편>53. <강신술에 희망이 있는가?> (죽음은 단지 영계에 있어서보다 넓은 세계의 시작인가?)

 

○.(삼상28:22) 본 절에 언급(言及)된 무녀(巫女)의 행동은 사울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同情心)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접신녀(接神女)의 이 같은 동정(同情)도 사울로 하여금 고통(苦痛)을 당하게 하는 정신적(精神的)이며 근본적(根本的)인 원인을 결코 제거(除去)할 수 없었다. (삼상 28:~22, 만나주석)

 

○.성경에 의하면, 창조주만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수 있다. (요 11:25).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신접(神接)한 자에게 해당(該當)하는 사형선고(死刑宣告). (레 20:27) 아래 있던 엔돌의 무당(巫堂)의 호소(呼訴)에 응답하시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삼상 28장)의 장면(場面)은 무당(巫堂)이 저승 세계에서 신(神)을 올리겠다고 약속한 가나안 인들의 교령회(交靈會)를 극적(極的)으로 묘사(描寫)하는데, 사실 귀신(鬼神)이 사무엘로 변장(變裝)하여 나타나 사울을 속이고 죄책감으로 절망(絶望)하게 하여 여호와 및 자신의 생명까지 포기(抛棄)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허용(許容)으로 마귀(魔鬼)가 사무엘로 변장(變裝)할 수 있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가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假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이 경우에도 그렇게 하도록 허용(許容)을 받아 사울이 마귀에 물음으로써 절망(絶望)에 내몰리도록 한 것이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위로(慰勞)를 얻기 위해 바른 방법으로 여호와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Matthew Henry’s Bible Commentary on I Samuel 28:7-14).

 

○.엔돌에서 있었던 이교적(異敎的) 행습(行習)들: 

  엔돌은 이스라엘의 거주지(居住地)가 아니라 가나안 인들의 거주지였던 것 같으며(수 17:11-13), 근래(近來)의 고고학적(考古學的) 발견에 의하면 가나안 종교는 엔돌의 무당(巫堂)이 사울에게 행했던 것과 매우 유사(類似)한 의식(儀式)을 사용한 조상숭배(祖上崇拜)와 결부(結付)되었음이 드러났다. 한 우가릿어 토판(土版)은 최근에 죽은 왕을 포함한 죽은 조상들을 주술(呪術)로 불러내 당시 살아있는 왕을 축복하도록 하였다. 이 조상들 곧 ‘우가릿의 신격화(神格化)된 죽은 왕들’이 저승에서 신적(神的)인 존재(存在)가 되었다고 믿었고, 따라서 그들은 ‘엘로힘’이라 불렸는데, 그것은 사울이 만난 무당(巫堂)이 땅에서 올라온다고 말한 ‘영(靈)(신(神))’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 말과 같은 말이다(삼상 28:13). (삼상 28:3~25, 만나주석)

 

○.(삼상28:7) 무당(巫堂)과 사단의 의견(意見)은 일치함

  엔돌의 무당(巫堂)은 모든 일에 있어서 사단의 지시(指示)를 따르기로 동의(同意) 하였다. 만약 그녀가 주저 없이 자신을 사단의 권위(權威)에 복종(服從)시킨다면, 사단은 그녀를 위하여 이적(異蹟)과 기사(奇事)를 행할 것이었으며 가장 비밀(秘密)스런 것들을 그녀에게 보일 것이었다. 그녀는 이대로 하였다(1예언 375,376).

 

○.(삼상28:8) 사울의 마지막 발걸음

  사울이 사무엘을 불러올리라고 요청했을 때 주께서는 사무엘을 사울에게 나타나게 하지 않으셨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다. 사단은 무덤에서 쉬고 있는 사무엘을 번거롭게 할 허락(許諾)을 받지 못하였고 엔돌의 무당(巫堂) 앞에 진짜 사무엘을 불러올릴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사단에게 죽은 자를 부활(復活)시킬 힘을 주지 않으신다. 그러나 사단의 사자들은 죽은 친구 모양(模樣)을 하고 나타나 그들과 같이 말하고 행(行)함으로 그들을 통(通)하여 사단은 자신의 속이는 일을 훨씬 더 잘 수행(遂行)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단은 사무엘을 잘 안다. 그는 엔돌의 무당(巫堂) 앞에서 사무엘을 흉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사울과 그 아들의 운명을 정확하게 말하였다. (삼상 28:3~25, 화잇주석)

 

○.사단은 속일 수 있을만한 아주 그럴듯한 방법으로 다가와서 사람들의 호감(好感)을 얻고 거의 눈에 뜨이지 않게 사람들을 하나님과 갈라놓는다. 그는 처음에 매우 조심스럽게 그들을 그의 지배(支配)하에 두었다가 끝에 가서는 그들의 영적(靈的) 식별력(識別力)을 마비(痲痹)시켜 버린다. 그 다음에 더욱 담대(膽大)한 제안(提案)을 하고 마침내 사단은 그들을 인도(引導)하여 아무리 흉(凶)한 죄라도 범(犯)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그가 사람들을 완전히 자신의 덫으로 인도했을 때 그는 기쁨으로 그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보게 해 주고 사울의 경우(境遇)와 같이 그들이 당황(唐惶)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을 때 사단은 크게 즐거워한다. 사울은 사단이 그를 자발적(自發的)인 포로(捕虜)로 만들도록 그냥 두었다. 그러자 이제 사단은 그의 운명이 정확히 어떻게 될 것인가를 그에게 펼쳐보여 주었다.(삼상 28:3~25, 화잇주석)

 

○.엔돌의 무당(巫堂)을 통하여 사울의 종말(終末)을 그에게 정확(正確)히 말해줌으로써 사단은 이스라엘이 그의 교활(狡猾)한 훈계(訓戒)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그들이 하나님을 배역(背逆)할 때 사단에게서 배울 수 있게 하려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을 하나님께 붙잡아 놓고 있는 마지막 고리마저 끊으려 하였다. 사울은, 엔돌의 무당(巫堂)에게 묻는 이 마지막 행동을 통해서 그가 하나님께 그를 붙들어 놓고 있었던 마지막 가느다란 실을 잘라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삼상 28:3~25, 화잇주석)

 

○.(삼상28:7) 나를 위하여…여인(女人)을 찾으라. 

   황급(遑急)히 사울은 자신이 정죄(定罪)했던 정보(情報)의 제공자(提供者)인 신접(神接)한 자에게로 서둘러 갔다(3절). 한때 영적(靈的) 열정(熱情)으로 충만(充滿)했던 사람이 이제 죽은 자의 영(靈)이라고 생각되는 존재(存在)에게 도움을 구(求)하는 이방(異邦) 미신(迷信)에게 굴복(屈伏)하고 말았다. 

 

○.(삼상28:7~25 신접(神接)한)

  히브리어 바알라트-오브(ba‘alat-’ob). 바알라트는 “여주인(女主人)”을 뜻한다. 오브는 “강신술사(降神術士)” 혹은 현대어(現代語)로는 “영매(靈媒)”(개정표준역(RSV); 참조 레 19:31 주석)로 번역(飜譯)해야 한다. 이 단어는 문자적(文字的)으로 사울이 “청(請)하노니 나를 위하여 강신술(降神術)로”라고 말하고 있는 (삼상28:8)절에서처럼, 강신술(降神術)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영어 “necromancy”(죽은 사람과 교통(交通)하여 점(占)치는 것)는 두 개의 헬라어 곧 “죽은”을 뜻하는 네크로스(nekros)와 “점”(占)을 뜻하는 만테이아(manteia)가 합성(合成)된 말로, 소위 죽은 자의 영(靈)과의 교통(交通)이라 추정(推定)되는 수단(手段)을 통해 미래(未來)를 알아내는 술법(術法)을 가리킨다.

 

○.(삼상28:11) 사무엘을 불러올리라. (삼상 28:3~25, 재림교주석)

  왜 사울이 모든 사람을 제쳐놓고 사무엘을 요청(要請)했을까? 그 선지자(先知者)는 왕의 안내자(案內者)요 현명(賢明)하고 성실(誠實)한 조언자(助言者)였고,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에 여러 가지 예언(豫言)을 했던 사람이다. 사울은 그 예언들이 성취(成就)되는 것을 보았을 때 기쁨과 평안(平安)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포악(暴惡)한 기질(氣質)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권고(勸告)에 대한 존중심(尊重心)이 줄어들었다. 이런 태도(態度)는 무관심(無關心) 그리고 심지어(甚至於)는 증오(憎惡)로까지 발전했고, 마침내 왕은 자신의 호적수(好敵手)를 제거(除去)하려는 과정(過程)에서 온갖 행정적(行政的) 책임을 소홀(疏忽)히 하게 되었다. 아직도 그의 병(病)든 마음을 괴롭게 하는 두 경우에 다윗이 베푼 친절에 대한 기억(記憶)과 함께, 사울은 자기를 버리고 다윗에게 도망(逃亡)가는 많은 신민이 보는 앞에서 실패(失敗)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하늘이 침묵(沈黙)을 지키자 크게 초조(焦燥)한 나머지 사울은 강제(强制)로 응답을 얻어낼 몇 가지 방법을 강구(講究)했다.

 

○.(삼상28:12)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이 정보(情報)는 초자연적(超自然的)으로 주어졌으나, 하나님이 주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강신술(降神術)을 행하는 모든 사람을 죽이라고 명(命)함으로 그런 행습(行習)을 혐오(嫌惡)한다는 것을 나타냈다(레 20:27). 심지어 영매(靈媒)에게 묻는 자들도 끊어지게 될 것이었다.(레 20:6). 그러므로 이 교통(交通)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출처(出處)에서 나왔음이 분명하다. 죽은 자의 영(靈)이 돌아와서 산 사람과 교통(交通)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사무엘의 영(靈)이 신접(神接)한 자의 소환(召喚)에 응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선지자(先知者)처럼 말하고 있는 사무엘의 통보(通報)는 간접적(間接的)으로는 하나님의 통보(通報)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울과 교통(交通)하기를 거부(拒否)하셨다는 것이 성경에 명백히 진술(陳述)되어 있다(28:6). 사울은 “신접(神接)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請)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대상 10:13, 14) 죽임을 당했다. (삼상 28:3~25, 재림교주석)

 

○.죽은 자의 영(靈)이 산 자와 교통(交通)하기 위해 돌아온다는 가르침은, 사람의 영(靈)이 사후(死後)에 의식(意識)이 있는 상태로 존재하며, 이 영(靈)이야말로 진짜 사람이라는 믿음에 토대(土臺)를 두고 있다. 성경은 사람이 죽을 때 영(靈)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가르치지만(전 12:7), 구약(舊約)은 이 영혼(靈魂)이 의식(意識)이 있는 실체(實體)라는 것은 단호히 부정(否定)한다(욥 14:21; 시 146:4; 전 9:5, 6). 신약(新約)도 동일한 교리(敎理)를 가르치고 있다. 예수는 믿는 자들이 그의 주와 재연합(再聯合)할 때를 임종(臨終)할 때가 아닌 재림의 때로 가리키셨다(요 14:1~3).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는, 곧 죽음이 닥쳐오며 그들은 즉시(卽時) 천상(天上)의 영역(領域)으로 가서 그분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슬퍼하는 제자들을 위로(慰勞)했을 것이다. 바울은 사랑하는 자들을 쉬도록 무덤에 뉘였던 자들에게 위로(慰勞)의 말을 하면서, 죽은 자들보다 살아있는 자들이 결단코 앞서지 못하고 모두가 동시에 주님과 재결합(再結合)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意味深長)한 선언(宣言)을 했다(살전 4:16, 17). (삼상 28:3~25, 재림교주석)

 

○.그러므로 사무엘의 영(靈)이 여기에서 사울과 교통(交通)하지 않았음이 명백(明白)하다. 그 정보(情報)의 출처(出處)가 또 하나 남아 있다. 성경은 사단과 그의 천사들이 정보(情報)를 나누어 주고 또한 그들의 형체(形體)를 변모(變貌)시킬 능력이 있음을 드러낸다.(참조 마 4:1~11; 고후 11:13, 14). 엔돌의 여인에게 나타났던 환영(幻影)은 사단이 사무엘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며, 전해준 기별(寄別)은 흑암(黑暗)의 왕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강신술(降神術) 교령회(交靈會)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의 대부분은 속임수와 날랜 손재주를 수반(隨伴)하지만, 모든 현상들을 그런 토대(土臺) 위에서 설명할 수는 없다. 교령회(交靈會)를 조사(調査)해온 많은 사람들은 속임수나 기존의 과학적 법칙에 의거(依據)하여 설명할 수 없는 한 권세(權勢)의 존재(存在)를 인정(認定)한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초자연적(超自然的) 현시(顯示)들이 증가(增加)할 것이라고 예언한다(마 7:22, 23; 살후 2:9; 계 13:13, 14; 16:14). 이러한 기만적(欺瞞的) 간계(奸計)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어책은 성경의 진리들로 마음을 잘 방비(防備)하여 변장(變裝)한 유혹자(誘惑者)를 분간(分揀)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죽은 자의 무의식(無意識) 상태에 관한 진리(眞理)를 확고하게 믿으면 영매(靈媒)와 소위 사자(死者)로부터의 교통을 통하여 그의 선전(宣傳)을 스며들게 하려는 원수(怨讐)의 어떤 시도(試圖)도 무력화(無力化)시키게 될 것이다(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제34장). (삼상 28:3~25, 재림교주석)

 

12월 8일(목)  죽은 자(者)의 모습(模襲)으로 나타남

 

(Q)~(엡 6:10~18)  사탄의 속임수를 물리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허락(許諾)된 약속은 무엇입니까?

 

(A)~○.그 어느 때 보다도 인생의 삶은 간단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족의 인연(因緣)으로 살다가 죽음이라는 것을 통하여 잠시 사별(死別)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境遇)를 맞게 되면 나약(懦弱)한 인생들은 망자(亡者)에 대한 그리움으로 상(傷)한 마음과 가슴에 공허(空虛)함을 해소(解消)하고자 하는 것을 이용하여 사단은 접근(接近)하여 가장 잘 활용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사단은 죽은 사람의 모습(模襲)이 마치 산 사람처럼 다시 나타나는 것 역시(亦是) 강신술(降神術)과 마찬가지로 사탄이 꾸며내는 일이다. 아무리 강력(强力)하고, 설득력(說得力) 있고, 진짜처럼 보일지라도, 죽은 자는 무덤에서 잠들어 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확고히 믿어 붙잡지 않으면 사단의 먹잇감이 되고 말 것이다. 이에 엘렌 G. 화잇은 다음과 같이 경고(警告)한다. “사도(使徒)들의 모양으로 가장(假裝)하고 나타나는 이 속이는 영(靈)들은 사도(使徒)들이 세상에 있을 때 성령(聖靈)의 지도(指導)로 기록한 바와는 전혀 반대되는 말들을 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557). 

 

○.<전신갑주(全身甲胄)> : 갑옷과 투구(鬪具)를 말하는 것이나 성경이 말하는 전신갑주는 성령으로  무장(武裝)하여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겨서 사단의 속임수를 물리쳐야 한다. (딤전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祈禱)로 거룩하여 짐이라

 

○.(고후11:14) 사단의 최고의 속임수를 대처(對處)함(마 24:24; 요 10:4)( 엡 6:10-12 참조)

   사단은 그리스도를 속이려고 빛의 천사(天使)와 같이 유혹(誘惑)의 광야(廣野)에 나타났다. 때때로 사람들이 사단을 묘사(描寫)하는 것같이 사단은 그런 끔찍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고, 빛의 천사처럼 나타난다. 그는 놀라운 이적(異蹟)을 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假裝)하여 나타날 것이다.(리뷰 1888. 12. 18).

 

○.틀림이 없는 시금석(試金石)(마 7:15; 살후 2:7-12)

  사단은 이 마지막 때에 불의(不義)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滅亡)하는 자들 가운데서 일하기 위하여 내려왔다. 그의 사단적인 위엄(威嚴)으로 거짓 선지자(先知者)들이 보는데서, 사람들이 보는데서 이적(異蹟)들을 행하고 그가 참으로 그리스도라고 주장할 것이다. 사단은 사람들을 속이는 일에 그를 도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능력을 준다. 그러므로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가졌노라고 하는 사람들은 위대(偉大)한 수사관(搜査官)인, 여호와의 율법에 의해서만 식별(識別)이 가능하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할 수 있으면 그들이 택(擇)하신 자라도 미혹(迷惑)하려 할 것이라고 하셨다. 양(羊)의 옷은 너무나도 진짜 같고 순수(純粹)해 보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리를 식별(識別)해 낼 수 있는 것은 단지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도덕적(道德的) 표준으로 향할 때만 가능(可能)하고 거기에 가면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범(犯)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리뷰 1885. 8. 25). (고후 11:14~15, 화잇주석)

 

○.마지막 국면(局面)을 위해 준비(準備)함

   이 세상은 하나의 극장(劇場)이다. 배우(俳優)들은 이 세계의 거민(居民)들인데 그들은 마지막 큰 드라마에서 자신이 맡은 배역(配役)을 감당(堪當)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사람들의 파당들은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연합할 때를 제외(除外)하고는 통일(統一)된 목적이 없다. 하나님께서 관망(觀望)하고 계신다. 그분을 반역(叛逆)한 신하(臣下)들에 대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시적(一時的)으로 혼란(混亂)과 무질서(無秩序)가 판을 치도록 허락하시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은 사람들의 손에 맡겨진 일이 없다. 아래에서 오는 권세는 그 드라마의 마지막 큰 장면을 연출하기 위하여 일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사단이 그리스도처럼 나타나고, 비밀결사(秘密決死)로 함께 결속(結束)되어 있는 사람들 속에서 불의(不義)의 모든 속임수로 일하고 있다. 동맹(同盟)의 소용돌이에 굴복(屈伏)하고 있는 사람들은 원수의 계획을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법이다(편지 141, 1902). (고후 11:14~15, 화잇주석)

 

○.계속(繼續) 깨어 경계(警戒)하는 일이 요구(要求)됨(엡 6:10-12)

  (엡 6:10-12 인용)그리스도의 피 묻은 깃발 아래로 부름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의 정병(正兵)들은 끊임없는 경계(警戒)가 필요한 전쟁(戰爭)에 돌입(突入)한 것이다. 사단은 그 전쟁을 끝까지 계속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빛의 천사(天使)와 같이 나타나 그리스도라고 주장(主張)하면서 세상을 속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승리는 잠깐이다. 어떠한 폭풍(暴風)과 선풍(旋風)도 영원한 진리의 원칙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을 한 사람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들은 범(凡) 세계적(世界的)인 배도(背道)의 시간에도 설 수 있을 것이다. (원고 74, 1903). (고후 11:14~15, 화잇주석)

 

○.우리가 대적(對敵)할 적(敵)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우리가 위험(危險)한지도 알 수 있으며 전신갑주(全身甲冑)를 입어야 할 필요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원수(怨讐)는 누구인가. 그것은 어둠의 모든 권세(權勢)와 사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씨름은 혈(血)과 육(肉)에 대한 것이 아니라"(12월)고 본문에 말씀되어 있다. 우리가 위하여 예비(豫備)해야 하는 싸움은 평범(平凡)한 인간들도 이루어진 적이 아니다. 즉 "혈(血)과 육(肉)"으로 이루어진 인간 또는 단순히 우리 자신의 타락(墮落)한 본성(本性)에 대적(對敵)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다스리는 권한(權限)을 쥐고 있는 여러 가지 종류의 사탄에 대항(對抗)하는 것이다.

 

○.그들은 잘 무장(武裝)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冑)를 입으라."(에베소서 6:11절)고 하였다. 즉 

"사탄의 유혹(誘惑)과 책략(策略)을 물리치기 위하여 모든 무기(武器)와 온갖 적절(適切)한 방어(防禦)책을 사용하라.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모든 은혜 즉 전신갑주(全身甲冑)를 얻고 또 자꾸 입어 봄으로 전신(全身)을 무장(武裝)하여 적(敵)에게 노출되고 벗어진 부분이 없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참된 은혜를 지닌 것을 스스로 입증(立證)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모든 은혜 즉 전신갑주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은혜(恩惠)는 하나님의 갑주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은혜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수여(授與)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난(苦難)의 때를 당하여 견뎌낼 수 있는 갑주를 스스로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하나님의 갑주 이외에는 우리를 지켜 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갑주(甲冑)는 우리를 위하여 예비(豫備)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입어야 한다. 즉 우리는 은혜를 간구(懇求)해야만 하며 또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를 사용하여야 하며 때가 오면 그 은혜로 역사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완전히 무장(武裝)하여야 하는 까닭은 "마귀(魔鬼)의 궤계(詭計)를 능히 대적(對敵)하기 위하여인 것이다."  (엡 6:11, 매튜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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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附錄)>2


<성경전체(聖經全體)와의 조화(調和)> 

(기본교리 26장 죽음과 부활,(480-483. 2022년3월18일 한글 개정판/영문 327-329p 참조)

 

 

 

○.죽음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포괄적(包括的)으로 연구하지 않은 많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이 부활(復活)할 때까지 계속(繼續)되는 하나의 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영(靈)이나 영혼(靈魂)이 죽음 후에 의식적 실체(意

댓글목록

이봉주님의 댓글

이봉주 작성일

내용이 좀 길어서 부록이 짤렸습니다
첨부 파일로 보시면 전체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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