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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죄악 세상에서의 죽음 -(핵심 Q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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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2-10-03 20:47 조회1,4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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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과 죄악(罪惡) 세상(世上)에서의 죽음

                                              (10월08일 (안) / 일몰: 오후18시06분) 

 

 

<서언(序言)>

심히 보시기에 좋았던 아담과 하와의 인간 창조(創造)를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과 관계(關係)에서의 최초의언약과 순종의 표로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뱀의 모습(模襲)으로 에덴동산의 하와를 찾아온 사탄은 인간의 논리(論理)와 눈에 보이는 것들로 하와를 유혹(誘惑)하여 선악과(善惡果) 사건(事件)의 결과(結果)로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죽음이라는 것이 도래(到來)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창3:15)>을 통하여 범죄(犯罪)한 인류에게 회복(回復)에 대한 소망(所望)을 주셨다. 여인(女人)의 후손(後孫)과 뱀의 후손(後孫)사이에 끊임없이 있을 선(善)과 악(惡)의 대쟁투(大爭鬪)인데 그 승부(勝負)는 이미 판가름이 난 투쟁(鬪爭)인데 이러한 사실의 교훈(敎訓)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원불변(永遠不變)한 하나님의 말씀에 단단히 믿음의 밧줄을 매고 신뢰(信賴)할 때만이 승리(勝利)하여 영생(永生)할 수 있음을 교훈(敎訓)하자.

 

(10월02일 (日)  <상반(相反)된 진술(陳述)>

 

(Q)~(창 3:1~4) 하와의 입장(立場)에서 뱀의 말이 설득력(說得力) 있게 들렸던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A)~○.하와는 뱀과의 대화(對話)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상반(相反)된 진술(陳述) 때문에, 하와가 유혹(誘惑)에 빠져 죄인이 된 비극(悲劇)을 초래(招來)하게 되었다. 즉 사탄은 인간의 논리(論理)와 눈에 보이는 증거(證據)들

① 그때까지 죄와 죽음에 대한 증거가 전혀 없었고 ② 뱀(사탄)은 금지된 선악과를 너무 맛있게 먹어도 죽지않는 것

을 가지고 하와를 유혹(誘惑)한다. 하와가 뱀과의 대화(對話)를 통해 유혹에 넘어가는 과정(過程)을 통해 인류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삶보다 자기 자신의 자율적 이성에 따라 사는 존재가 되었다..

 

(10월03일 (月)  <뱀에게 속음>

 

(Q)~(창 3:1~7) 하나님의 말씀과 뱀의 말 사이에서 하와의 선택(選擇)의 기준(基準)은 무엇이었습니까?

 

(A)~○.하나님의 확실(確實)한 경고(警告)(열매를 먹으면 정녕(丁寧)죽으리라고)하신 말씀을 신뢰(信賴)하지 않고, 하와의 호기심(好奇心)은 그녀를 사탄의 매력적(魅力的)인 유혹(誘惑) 속으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하나님이 아심이라”(창3:15)

으로 빨려 들어가게 했다. 그러므로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輕忽)히 여겨 묵살(黙殺)하고 뱀의 말을 믿고(신뢰하고) 금단(禁斷)의 열매를 먹었다.  

 

(10월04일 (火)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Q)~(창세기 3:4)에 나타난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영혼불멸(靈魂不滅)의 사상(思想)>의 뱀의 거짓말은 어떤 다른 모양(模樣)들로 오랜 세월 동안 반복(反復)되고 있습니까?

 

(A)~○.영혼불멸설(靈魂不滅設)은 예전이나 지금 현재나 예수님 재림 하시는 그때까지 불신자(不信者)나 기타 종교(宗敎)나 심지어(甚至於) 예수 이름으로 말하는 교회(敎會)까지 온 세상을 미혹(迷惑)하고 왜곡(歪曲)하고 오해(誤解)하게 할 것이다.이는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하와에게 했던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거짓말로 시작된 영혼불멸(靈魂不滅)이라는 사상(思想)으로 포장(包裝)된 거짓으로 오늘까지도 우리 삶에 영향(影響)을 미치고 있다.  

 

(10월05일 (水)  <죄(罪)의 결과(結果)>

 

(Q)~(창 3:7~19)(로마서 5:12)에 의하면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직접적(直接的)인 결과(結果)로 죄가 가져온 주된 결과(結果)는 무엇이었습니까?

 

(A)~○.(창 3:7~19)(로마서 5:12)에 의하면 범죄후(犯罪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의 선택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즉 아담과 하와의 타락(墮落)과 그것이 초래(招來)한 비극적(悲劇的)인 결과(結果)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要約)하여 묘사(描寫)할 수가 있다. 

   ①.<신학적(神學的)인 관점(觀點)>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에 대한 공포심(恐怖心)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숨겼다(창 3:8).   

   ②.<사회 심리적(社會心理的) 관점(觀點)>에서,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서로를 비난(非難)하기 시작했다(창 3:7, 9~13). 

   ③.<육체적(肉體的)인 관점(觀點)>에서, 

      그들은 땀을 흘리며, 고통(苦痛)을 느끼고, 마침내 죽게 될 것이었다(창 3:16~19). 

   ④. <생태학적(生態學的) 관점(觀點)>에서, 이 세상은 퇴화(退化)하였다(창 3:17, 18).

 

(10월06일 (木)  <첫 번째 복음(福音)의 약속(約束)>

 

(Q)~(창 3:15, 21)  죄(罪)에 빠진 인류(人類)에게 허락(許諾)된 소망(所望)의 약속(約束)은 무엇입니까?

 

(A)~○.하와와 아담의 범죄(犯罪)이후 타락(墮落)한 이 세상은 죄로 인해 그들의 좌절감(挫折感)과 절망(絶望) 가운데, 절망적(絶望的)인 상황(狀況)에 놓인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영세전(永世前)부터 가지고 계셨던 구속(救贖)의 계획(計劃)을 드러내심으로 회복(回復)에 대한 미래(未來)를 위한 소망(所望)을(창세기3:15) 허락(許諾)하셨다.

<참고 : 부조와 선지자, 63~70; 초기문집, 149~153; 살아남는 이들, 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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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부록(末尾附錄)>

 

     제2과 죄악(罪惡) 세상(世上)에서의 죽음

                                               (10월08일 (안) / 일몰: 오후18시06분) 

 

 

<서언(序言)>

심히 보시기에 좋았던 아담과 하와의 인간 창조(創造)를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과 관계(關係)에서의 최초의언약과 순종의 표로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뱀의 모습(模襲)으로 에덴동산의 하와를 찾아온 사탄은 인간의 논리(論理)와 눈에 보이는 것들로 하와를 유혹(誘惑)하여 선악과(善惡果) 사건(事件)의 결과(結果)로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죽음이라는 것이 도래(到來)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창3:15)>을 통하여 범죄(犯罪)한 인류에게 회복(回復)에 대한 소망(所望)을 주셨다. 여인(女人)의 후손(後孫)과 뱀의 후손(後孫)사이에 끊임없이 있을 선(善)과 악(惡)의 대쟁투(大爭鬪)인데 그 승부(勝負)는 이미 판가름이 난 투쟁(鬪爭)인데 이러한 사실의 교훈(敎訓)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원불변(永遠不變)한 하나님의 말씀에 단단히 믿음의 밧줄을 매고 신뢰(信賴)할 때만이 승리(勝利)하여 영생(永生)할 수 있음을 교훈(敎訓)하자.

 

(10월02일 (日)  <상반(相反)된 진술(陳述)>

 

(Q)~(창 3:1~4) 하와의 입장(立場)에서 뱀의 말이 설득력(說得力) 있게 들렸던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A)~○.하와는 뱀과의 대화(對話)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상반(相反)된 진술(陳述) 때문에, 하와가 유혹(誘惑)에 빠져 죄인이 된 비극(悲劇)을 초래(招來)하게 되었다. 즉 사탄은 인간의 논리(論理)와 눈에 보이는 증거(證據)들

① 그때까지 죄와 죽음에 대한 증거가 전혀 없었고 ② 뱀(사탄)은 금지된 선악과를 너무 맛있게 먹어도 죽지않는 것

을 가지고 하와를 유혹(誘惑)한다. 하와가 뱀과의 대화(對話)를 통해 유혹에 넘어가는 과정(過程)을 통해 인류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삶보다 자기 자신의 자율적 이성에 따라 사는 존재가 되었다..

 

※.뱀은 (창3:5)에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善惡)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①.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없는 말을 했다.(즉 만지지도 말라 (창2:17) 과장된 표현이다. 

②.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약화(弱化)시켰다.(즉 “반드시(정녕)죽으리라”는 말씀을 → “죽을까 하노라”).(창 2:17)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不信)하는데 에서 나온 말이다.

③.하와는 뱀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正面)위배(違背)되는 거짓말인줄을 알면서도(요8:44) 계속 상종(相從)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악(惡)과의 교제(交際)는 타락의 전주(前奏)일뿐이다.

④. 하와는 자기 자신의 편리한 대로 자의적(恣意的)인 감각(感覺)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보대 당면한 현실에서 판단하고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금지명령(禁止命令)과는 차이가 있는(2:17) 과장된 표현이다. 이는 

(1) 하나님의 명령이 하와에게 있어선 너무 엄격한 것으로 비쳤다는 점과 

(2) 하나님께 대한 그녀의 신뢰와 사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드러내 준다. 

(창 3:1~4, 만나주석)

 

○.<시험(試驗)과 유혹(誘惑)에는 차이(差異)가 있다.>

즉 시험의 배후(背後)에는 선(善)이 자라 잡고 있는 반면, 유혹(誘惑)의 배후에는 악(惡)이 도사리고 있다. 하나님은 첫 인류에게 보다나은 차원(次元)으로의 성숙(成熟)을 위하여 시험을 허락(許諾)하셨으나, 인간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감으로서 하나님의 선(善)하신 뜻을 거부(拒否)하였다. 이 때문에 인간은 성숙의 기쁨이 아닌 타락(墮落)의 슬픔과 비극(悲劇)을 맛보게 되었다.

 

○. < 뱀. [히, 나하쉬] >

  본래(本來) 이 단어는 파충류(爬蟲類)를 가리키는 포괄적(包括的)인 낱말이나 성경에서는 모두 ‘뱀’으로 번역된다.(사 27:1, 렘 8:17, 미 7:17). 한편 뱀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사나움을 강조(强調)하는 ‘사라프’(민 21:8, 사 30:6)와 ‘용’(욥 7:12, 시 74:13, 사 27:1, 렘 51:34)으로도 번역되며 특히 큰 뱀을 가리키는 ‘탄닌’(출 7:9, 신 32:33) 등이 있으나, 여기서 사용된 ‘나하쉬’는 사람을 꾀며 미혹(迷惑)하는 능력을 지닌 뱀의 교활(狡猾)함을 특히 강조하는 명칭이다. (창 3:1~4, 만나주석)

 

○.<하와를 속인 자는 확실히 마귀(魔鬼)였다>

   마귀(魔鬼)와 사탄은 옛 뱀이다(계 12:9). 그리고 이는 악의(惡意)에 찬 영(靈)인데 창조 때에 빛의 천사(天使)로 하나님의 보좌(寶座) 바로 옆에서 수종(隨從)들었으나 죄로 인하여 당초(當初)의 지위(地位)로부터 쫓겨나서 하나님의 명예(名譽)와 권위(權威)에 반항(反抗)하게 된 자이다. 이 때 수많은 천사들이 타락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시조(始祖)들을 공격(攻擊)한 자는 확실히 마귀들의 왕자요 반역자(叛逆者)들의 향도(嚮導)였다. 그는 죄를 짓자 곧 사탄이 되었고, 반역자가 되자 곧 유혹자(誘惑者)가 되었으며, 하나님과 그의 영광에 대해 분노(忿怒)하고 인간과 그들의 행복을 시기(猜忌)하였다. 사탄은 인간을 멸망시킬 수는 없어도 타락시킬 수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詛呪)할 수는 없었으나 시험(試驗)할 수는 있었다(계 2:14). 그러므로 사탄이 꾸민 간계(奸計)는 우리의 시조(始祖)들의 죄짓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그들과 하나님과 사이를 갈라놓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사탄은 원래부터 살인자(殺人者)요 이간자(離間者)였다. 사탄은 온 인류의 목덜미를 움켜 잡고 이를 한 손에 내려쳤다. 인류의 원수(怨讐)는 이처럼 극악(極惡)한 자(者)이다.(창 3:1~4, 매튜헨리)

 

○.사탄이 처음부터 노린 것은 그녀에게서 명령에 대해 복종(服從)하고자 하는 마음을 제거(除去) 시키자고 하는 것이었다. 너는 정말 오해(誤解)하고 있구나. 하나님이 너를 그 나무에 접근(接近)하지 못하게 하였다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불합리(不合理)한 일을 하실 수 있단 말인가? 사탄의 계교(計巧)란 하나님의 법을 불확실(不確實)하고 불확실한 것처럼 손상(損傷)시킴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을 확고히 믿고 그것을 굳게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智慧)이다. "너희는 거짓말하지 말며 하나님의 이름을 명령(命令)되어 일컫지 말며 술 취하지도 말라." 고 말씀하시지 않았던 가? "그렇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합당(合當)한 말씀이다. 유혹자(誘惑者)가 아무리 이와 반대(反對)되는 것들을 제안(提案)하여 온다고 하여도 나는 하나님의 은혜(恩惠)로 말미암아 그의 명령을 지켜 나갈 것이다."  (창 3:1~4, 매튜헨리)

 

○.뱀과 더불어 이 이야기 가운데는 새로운 존재(存在), 곧 이후에 계속되는 세계의 역사(歷史)에 엄청난 영향력(影響力)을 행사(行事)한 자가 등장(登場)한다. 모세는 낙원(樂園)의 완전한 상태에 대한 묘사(描寫)에서 타락(墮落)의 역사로 주의를 돌리는데, 타락(墮落)으로 말미암아 이 지구가 행복과 사랑과 완전의 세상에서 슬픔과 증오(憎惡)와 악(惡)의 세상으로 전환(轉換)되었다. 모세는 에덴에서의 축복에 넘치는 기간, 곧 자연의 역사를 연구하며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대로 정원을 돌보며 저녁 서늘할 때에 창조주와 더불어 날마다 교통하던(창3:8), 완전한 행복 속에서 보냈던 시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로 남겨 둔다.

 

○.들짐승 중에…가장 간교(奸巧)하더라. 

뱀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간교한 피조물(被造物)로 소개(紹介)된다. “간교(奸巧)하다”는 단어, 아룸(‘arum)은 성경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품성의 경향을 나타내기 위하여 몇 차례 사용되는데(욥 5:12; 15:5), “영리(榮利)하다” 또는 “교활(狡猾)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나 대개는 “신중(愼重)하다”는 호의(好意)적인 의미로 사용된다(참조 잠 12:16, 23; 13:16; 14:8, 15, 18; 22:3; 27:12). 여기서는 후자(後者)의 호의적(好意的)인 의미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왜냐하면 뱀은 하나님이 “좋았더라”, 심지어는 “심히 좋았더라”(창1:25, 31)고 선언하였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뱀의 악한 특성은 타락과 그에 뒤이은 저주(詛呪)의 결과이지, 그것이 창조되었을 당시 그 동물의 특성은 아니다.” (창 3:1~4, 재림교주석)

 

○.사단은 순진해 보이지만 매우 교묘(巧妙)한 질문을 그녀에게 했다. 그 질문(質問)은 (1) “너희들이 먹지 말아야 할 실과나무들이 동산에 있느냐?”라는 뜻에서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實果)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로 번역(飜譯)해야 할지 혹은 (2) “동산(東山)의 어떤 나무의 실과(實果)도 먹어서는 안 된다”로 번역(飜譯)해야 할지 논란(論難)이 되어 왔다. 히브리어는 두 번역이 다 가능하므로, 다소 모호(謀互)한 점이 있다. 사단은 자신의 말이 불명확(不明確)하고 모호(謀互)하도록 의도(意圖)하였다. 그의 목적은 명백하였다. 그는 여자의 마음에 하나님의 명령의 진정한 어법(語法)과 정확한 의미에 관해서, 특히 그러한 명령의 타당성(妥當性)과 공정성(公正性)에 관해서 의심(疑心)의 씨를 뿌리기 원했다. (창 3:1~4, 재림교주석)

 

○.(창3:1) 사단은 앞잡이를 이용(利用)함

에덴에서 사단은 뱀을 앞잡이로 이용하였다. 오늘날도 그는 주의 구속(救贖)받은 자들이 걸어가는 의의(意義) 길을 가로막기 위하여, 온갖 수단(手段)과 속임수를 다 써가며 인간 가족들을 이용하고 있다(편지 91, 1900).

 

(10월03일 (月)  <뱀에게 속음>

 

(Q)~(창 3:1~7) 하나님의 말씀과 뱀의 말 사이에서 하와의 선택(選擇)의 기준(基準)은 무엇이었습니까?

 

(A)~○.하나님의 확실(確實)한 경고(警告)(열매를 먹으면 정녕(丁寧)죽으리라고)하신 말씀을 신뢰(信賴)하지 않고, 하와의 호기심(好奇心)은 그녀를 사탄의 매력적(魅力的)인 유혹(誘惑) 속으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하나님이 아심이라”(창3:15)

으로 빨려 들어가게 했다. 그러므로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輕忽)히 여겨 묵살(黙殺)하고 뱀의 말을 믿고(신뢰하고) 금단(禁斷)의 열매를 먹었다.  

 

○.우리의 판단(判斷) 기준(基準)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은 자기의 생각대로 선 악간(善惡間)에 판단함으로 인하여  자신의 삶을 스스로 파괴(破壞) 시킵니다. 나의 판단 기준은 무엇입니까?  내안에 끓임없이 판단과 정죄(定罪)를 일으키는 사단의 궤계(詭計)를 어떻게 하면 물리칠 수 있을까요?

에덴에서 벌어진 최초의 타락 현장을 본다. 뱀의 간계(奸計), 하와의 속음, 아담의 나약(懦弱)함이 맞아 떨어져서 벌어진 일이다. 먼저 뱀의 간계(奸計)를 보면 1단계로 혼동(混同) 또는 의심(疑心)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한다.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命令)은 명백(明白)했다.

   (창3: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6-17) 하지만 뱀은 하나님의 명령을 왜곡(歪曲)하며 혼동(混同)과 의심(疑心)을 일으킨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奸巧)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3:1)

이에 하와가 미끼를 덥석 물자 거짓말을 사실로 단언(斷言)해 버린다.

(창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3:4-5) 한편 하와가 미끼를 무는 과정(過程)을 보면 역시 말씀에 대한 왜곡(歪曲)이 결정적(決定的) 원인이었다. 세 가지의 왜곡(歪曲)이 있었다.

(1) 자의적(恣意的)인 추가(追加)

   동산중앙(東山中央)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3:3). 만지지도 말라는 말씀을 하신 적은 없는데 추가(追加)했다.

(2) 변경(變更)함 (의미약화(意味弱化))

   하나님의 명령(命令)은 ‘먹으면 반드시(정녕) 죽으리라’ 였다.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하지만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로 바꾸었다.

(3) 오해(誤解)

   명령(命令)을 주신 하나님의 절대주권(絶對主權)을 오해(誤解)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는 결국(結局) 불순종(不順從)을 범(犯)했다.

   한편 아담도 이 일의 방관자(傍觀者)가 되었다. 그는 일단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直接)받은 자로서 전달(傳達)과 교육(敎育)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하와가 따먹고 나서 권(勸)할 때라도 단호(斷乎)히 거절(拒絶)하고 회개(悔改)를 권(勸)하지 못한 점은 결정적(決定的) 실수(失手)이다. 이처럼, 본문(本文)에 기록된 최초의 타락(墮落)은 뱀의 간계(奸計)와 하와의 속음과 아담의 나약(懦弱)한 방관(傍觀) 내지는 동조(同調)가 맞아 떨어져서 벌어진 일이다. 뱀은 지금도 유혹(誘惑)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聖靈)으로 충만(充滿)하여 유혹(誘惑)을 이겨야 한다.

 

(10월04일 (火)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Q)~(창세기 3:4)에 나타난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영혼불멸(靈魂不滅)의 사상(思想)>의 뱀의 거짓말은 어떤 다른 모양(模樣)들로 오랜 세월 동안 반복(反復)되고 있습니까?

 

(A)~○.영혼불멸설(靈魂不滅設)은 예전이나 지금 현재나 예수님 재림 하시는 그때까지 불신자(不信者)나 기타 종교(宗敎)나 심지어(甚至於) 예수 이름으로 말하는 교회(敎會)까지 온 세상을 미혹(迷惑)하고 왜곡(歪曲)하고 오해(誤解)하게 할 것이다.이는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하와에게 했던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거짓말로 시작된 영혼불멸(靈魂不滅)이라는 사상(思想)으로 포장(包裝)된 거짓으로 오늘까지도 우리 삶에 영향(影響)을 미치고 있다.  

 

○.<(창3:4)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사단의 첫 번째 질문(質問)이 정말 그러했듯이, 의심(疑心)을 불러일으키고자 의도(意圖)된 것이라면, 그가 뒤이어 한 진술(陳述)은 권위적(權威的)인 선언(宣言)의 모습을 띤 기만(欺瞞)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진실(眞實)과 거짓이 가장 교묘(巧妙)하게 뒤섞여 있었다. 이 주장(主張)은 히브리어로 할 수 있는 최고(最高)의 강조법(强調法)으로 하나님의 명백(明白)한 명령(命令)을 반박(反駁)하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로 번역(飜譯)될 수 있다. 사단은 공공연한 거짓말로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眞實性)에 도전(挑戰)하였다. 그런 이유로 그리스도가 그를 거짓의 아비라고 부른 것(요 8:44)은 옳다.  (창 3:4, 재림교주석)

 

○.<(창3:4) 결코>. 

  (창2:17)의 ‘정녕’(surely)과 동일(同一)한 말로 불변(不變)하는 사실을 나타내는 단어(單語)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절대(絶對) 명령(命令)을 절대적(絶對的)인 거짓으로 맞바꾸고 있는 장면에서 우리는 사탄의 거짓된 속성을 살펴볼 수 있다(요 8:44).  (창 3:4, 만나주석)

 

○.영혼불멸설(靈魂不滅設)

   주류(主流) 기독교(基督敎), 이슬람교, 불교(佛敎), 힌두교 등 세상의 많은 종교(宗敎)는 '영혼불멸설'(靈魂不滅說, immortality of the soul)을 따른다. 즉 육신(肉身)과 영혼(靈魂)은 별개(別個)이며, 육신(肉身)은 죽어도 영혼(靈魂)은 죽지 않고 천당(天堂)이나 지옥(地獄)에 가거나 다시 인간(人間), 동물(動物) 등으로 환생(幻生)한다는 사상(思想)이다. 기독교에서는 야훼(여호와)가 불멸(不滅)하는 영(靈)을 인간에게 불어넣었다고 하며, 도교(道敎)에서는 불멸(不滅)의 영혼(靈魂)을 일컬어 신선(神仙)이라 하며, 불교에서는 불멸(不滅)의 영혼을 업식이라 일컬을 수 있으며 아뢰야식에 저장되며 이 업식에 따라 지옥(地獄),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天上)으로 육도 윤회한다고 한다. 서양철학(西洋哲學)의 아버지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영혼불멸(靈魂不滅)을 다루고 있다. (워키백과)

 

○.영혼이 불멸(不滅)한다? 는 사상(思想)은 결코 성경적(聖經的)이지 않습니다.

사후(死後) 즉시 천국(天國)?은 말도 안 됩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매우 분명(分明)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죽음을 잠자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니엘 12: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永生)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羞恥)를 당하여서 영원(永遠)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전통적(傳統的) 교리(敎理)의 주장(主張)처럼 영생(永生)은 죽음과 함께 시작(始作)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復活)과 함께 시작(始作)됩니다.

그때까지 죽은 자들은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그리고 이제 영혼(靈魂)이 천국(天國)에 있는 많은 자들”이라고 하시지 않았음을 기억(記憶)하세요. 바울사도께서 데살로니가 인들에게 죽음과 부활(復活)의 희망(希望)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도 죽은 자들이 “잠자는” 것이라 하죠. 

 

○.[데살로니가전서 4:13-16] <⑬.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所望)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⑭.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⑮.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降臨)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號令)과 천사 장(天使長)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喇叭)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降臨)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3~16)

<참고 성경절(聖經節) : [시115:17],[요5:28,29], [시146:4], [마10:28], [고전15:51~58]>

 

○.사도 바울의 소망(所望)이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所望)은 단(單) 하나, 부활(復活)이죠.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만, 주님께서 언제 오시느냐에 따라)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再臨)을 맞이할 것이고 또 어떤이는 무덤에서 예수님의 재림시(再臨時)의 나팔(喇叭)소리에 부활(復活)하여 예수님을 맞이 할 것을 믿습니다. <마라나타.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할렐루야 아

 

(10월05일 (水)  <죄(罪)의 결과(結果)>

 

(Q)~(창 3:7~19)(로마서 5:12)에 의하면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직접적(直接的)인 결과(結果)로 죄가 가져온 주된 결과(結果)는 무엇이었습니까?

 

(A)~○.(창 3:7~19)(로마서 5:12)에 의하면 범죄후(犯罪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의 선택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즉 아담과 하와의 타락(墮落)과 그것이 초래(招來)한 비극적(悲劇的)인 결과(結果)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要約)하여 묘사(描寫)할 수가 있다. 

   ①.<신학적(神學的)인 관점(觀點)>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에 대한 공포심(恐怖心)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숨겼다(창 3:8).   

   ②.<사회 심리적(社會心理的) 관점(觀點)>에서,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서로를 비난(非難)하기 시작했다(창 3:7, 9~13). 

   ③.<육체적(肉體的)인 관점(觀點)>에서, 

      그들은 땀을 흘리며, 고통(苦痛)을 느끼고, 마침내 죽게 될 것이었다(창 3:16~19). 

   ④. <생태학적(生態學的) 관점(觀點)>에서, 이 세상은 퇴화(退化)하였다(창 3:17, 18).

 

○.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결과가 모든 사람의 경험(經驗)가운데 나타난다. 악(惡)으로 기우는 성향(性向) 곧 인간이 다른 도움 없이 혼자서는 저항(抵抗)할 수 없는 힘이 사람의 본성(本性) 속에 내재(內在)한다” (교육, 29).

 

○.하나님의 은혜(恩惠)가 “원죄(原罪)”에 대한 해독제(解毒劑)임 : 

하지만 이런 개념의 “원죄(原罪)”가 그리스도의 희생(犧牲)에서 나오는 능력을 통해 하나님께 순종(順從)할 수 있는 가능성(可能性)을 막을 순 없다. 죄의 세력(勢力) 및 죄책감(罪責感)에 대한 해독제(解毒劑)는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롭게 하고 거룩케 하시는 은혜(恩惠)이다. (롬 5:12, 만나주석)

 

○.죄로 말미암아 사망(死亡)이. 죄가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죄의 결과(結果)는 사망(死亡)임을 경고(警告)하였다(창 2:17). 범죄후(犯罪後)에 하나님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고 선고(宣告)했다. 

성경(聖經)은 세 가지 종류(種類)의 사망(死亡)에 대하여 말한다. 

(1) 영적(靈的)인 사망(死亡)(참조 엡 2:1; 요일 3:14), 

(2) 예수가 “잠”으로 묘사한 일시적(一時的) 죽음인 “첫째 사망(死亡)”(참조 요 11:11~14; 계 2:10; 12:11), (3) 영원(永遠)한 죽음인 “둘째 사망(死亡)”(참조 마 10:28; 약 5:20; 계 2:11; 20:6, 14; 21:8). 아담의 죄의 결과(結果)로 생기게 된 사망(死亡), 특히 그의 후손(後孫)에게 전해진 사망(死亡)이 과연(果然) 어떤 류의 것이냐에 대하여 상당한 논란(論難)이 있어 왔다(참조 아래 “사망이…이르렀느니라.에 관한 주석). 이런 논란(論難)의 대부분은 사망의 본질(本質)에 대한 일반적(一般的)인 오해(誤解)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문제들에 관심(關心)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단지 죄가 아담을 통하여 세상에 들어왔고 그 결과(結果)로 사망이 이르러 왔다는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만을 진술(陳述)하고 있다. 아담의 범죄(犯罪) 이전(以前)에는 이 세상에 죄나 사망(死亡)이 없었다. 범죄 후에 그 두 가지가 다 존재(存在)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담의 죄악이 그 두 가지의 원인(原因)이었다. 아담의 죄의 결과(結果)인 사망(死亡)과 그리스도의 의의 결과(結果)인 생명 사이에는 중요한 대조(對照)점이 있다. 바울의 논증(論證)은, 그리스도가 이룬 생명의 선물(膳物)과 은혜(恩惠)가 아담의 죄의 결과보다 훨씬 더 위대(偉大)하다는 것이다. 이 성경절(聖經節)의 요지(要旨)는 “은혜(恩惠)가 더욱 넘”친다는 것이다(5:20).” (롬 5:12, 재림교주석)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 수 있는가를 보여 주시기 위(爲)함이었고, 하나님과 협력(協力)할 때에 우리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주는 우리의 보석금(保釋金)을 지불(支拂)하셨다. 아무도 사단의 종이 될 필요가 없다. 주께서는 우리의 거룩하신 모본(模本)이시요, 전능하신 조력자(助力者)로서 우리 앞에 서 계신다. 그분은 우리를 헤아릴 수 없는 값으로 사셨다. 누가 구속(救贖)하시는 사랑의 선(善)하심과 자비(慈悲)하심을 측량(測量)할 수 있겠는가?(원고 76, 1903).(롬 5:12, 화잇주석)

 

○.<그리스도는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지닌 윤리적(倫理的) 존재(存在)>

   둘째 아담은 자기의 행위(行爲)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責任)을 져야 하는 윤리적(倫理的) 자유 행위(行爲)자였다. 그분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려는 강렬(强烈)하고도 아주 미묘(微妙)한 감화(感化)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첫째 아담보다는 그 상황이 죄 없는 생애(生涯)를 살기에는 휠씬 더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죄인(罪人)들 틈바귀에서 살면서도 그분은 죄를 짓게 하는 모든 유혹(誘惑)을 뿌리치고 순결(純潔)무구함을 유지(維持)하셨다. 그분은 항상(恒常) 죄가 없으신 분이셨다(안교 1903. 9. 29).(롬 5:12, 화잇주석)

 

○.<유리(有利)한 입장(立場)에 놓인 인간>

   첫 아담에게 연결(連結)된 인간은 그에게서 죄와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다. 그러나 주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모든 시험(試驗)을 견디시면서 아담이 실패(失敗)한 곳에 오사 그곳을 통과하셨다. 그분은 시험 가운데서도 더럽힘을 받지 않고 그곳을 빠져 나옴으로써 아담의 수치(羞恥)스러운 실패(失敗)와 타락(墮落)을 구속(救贖)하셨다. 이렇게 해서 그분은 인간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유리(有利)한 곳에 두셨다. 그곳에서 인간은 그리스도를 구주(救主)로 모심으로써 신(神)의 성품(性稟)에 참여(參與)하는 자가 된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하나님과 연합(聯合)하고, 그리스도와 연합(聯合)하게 된다(편지 68, 1899). (롬 5:12, 화잇주석)

 

(10월06일 (木)  <첫 번째 복음(福音)의 약속(約束)>

 

(Q)~(창 3:15, 21)  죄(罪)에 빠진 인류(人類)에게 허락(許諾)된 소망(所望)의 약속(約束)은 무엇입니까?

 

(A)~○.하와와 아담의 범죄(犯罪)이후 타락(墮落)한 이 세상은 죄로 인해 그들의 좌절감(挫折感)과 절망(絶望) 가운데, 절망적(絶望的)인 상황(狀況)에 놓인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영세전(永世前)부터 가지고 계셨던 구속(救贖)의 계획(計劃)을 드러내심으로 회복(回復)에 대한 미래(未來)를 위한 소망(所望)을(창세기3:15) 허락(許諾)하셨다.

<참고 : 부조와 선지자, 63~70; 초기문집, 149~153; 살아남는 이들, 42-51>

 

○.구속(救贖)의 경륜(經綸)

   구속(救贖)의 계획(計劃)은 하나의 희생(犧牲), 곧 하나의 선물(膳物)을 통하여 세워졌다. …

   구속(救贖)의 계획(計劃)은 선물(膳物)로 시작되어 마치는 것처럼 그렇게 추진(推進)되어야 한다.”(5증언, 730)​

 

구속(救贖)의 경륜(經綸)과 “평화(平和)의 의논(議論)”

▷.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은 언제 세워졌으며, 구속(救贖)의 경륜(經綸)과 “평화(平和)의 의논(議論)”은 어떤 차이(差異)가 있는가?

○. “세상의 기초(基礎)가 놓인 이래로 죽임당한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땅에 사는 모든 자는 그에게 경배(敬拜)할 것이라.”(계 13:8, 킹제임스)

 

○. “그가 여호와의 전(殿)을 건축(建築)하고 영광(榮光)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祭司長)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平和)의 의논(議論)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슥 6:13)​

 

○.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은 지구(地球)의 창조(創造) 전에 이미 세워졌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창조(創造)함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계 13:8 구역)이시기 때문이었다.”(부조, 63)

 

○.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 세워진 사후 고안(事後考案)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세(永世) 전부터 감추었다가 … 알게 하신 그 비밀(秘密)’(롬 16:25)의 계시였다. 그것은 영세 전부터 하나님의 보좌(寶座)의 기초(基礎)가 되어 온 원칙을 공개한 것이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이 반역(叛逆)할 것과, 그 반역자(叛逆者)의 기만적(欺瞞的)인 권세(權勢)로 인하여 인류가 타락할 것을 아셨다. 하나님께서 죄가 존재하도록 정해 놓지는 않으셨으나 죄가 존재할 것을 내다보고 그 두려운 비상사태(非常事態)를 위하여 대비책(對備策)을 세워 놓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獨生子)를 주기로 언약하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滅亡)치 않고 영생(永生)을 얻게 하려 하심이’(요 3:16)었다. (소망, 22)

 

○.죄가 있자마자 곧 구세주(救世主)가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고통(苦痛)을 당해야 할 것을 아셨지만 인간을 대신(代身)하기로 하셨다. 아담이 죄를 범하자마자 하나님의 아들은 그가 갈바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 가지셨던 동일한 능력(能力)으로 범죄자(犯罪者)에게 선고(宣告)된 운명(運命)을 막기 위하여, 당신을 인류(人類)의 담보물(擔保物)로 제시(提示)하셨다(리뷰 1901. 3. 12). (화잇주석, 창 3:15)​

 

▷.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이 세워진 목적(目的)은 무엇인가?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은 무엇을 통하여 세워졌으며 어떤 방법으로 추진(推進)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滅亡)치 않고 영생(永生)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이 구속받을 수 있는 한 경륜을 입안하셨다.”(부조, 63)

 

○.구속(救贖)의 계획(計劃)은 하나의 희생, 곧 하나의 선물(膳物)을 통하여 세워졌다. …

구속(救贖)의 계획은 선물로 시작되어 마치는 것처럼 그렇게 추진되어야 한다.”(5증언, 730)

 

○. “그러자 측량(測量)할 수 없는 기쁨이 온 하늘에 가득 찼다. 그리고 하늘의 천군(天軍)들은 찬양(讚揚)의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이전(以前)보다 더 큰 곡조(曲調)로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는데 그것은 반역(叛逆)한 인류(人類)를 위하여 사랑하는 아들을 죽기까지 내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자비(慈悲)와 긍휼(矜恤) 때문이었다. 그 다음에는 기꺼이 그의 아버지의 품을 떠나 고통(苦痛)과 번민(煩悶)의 생애(生涯)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굴욕적(屈辱的)인 죽음을 선택(選擇)하셔서 그의 생명을 바치신 예수님의 극기(克己)와 희생(犧牲)에 대한 찬양(讚揚)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초기, 151)

 

○.사람의 구원(救援)을 위(爲)한 희생(犧牲)

사람을 구원(救援)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감당(堪當)하셔야 할 희생(犧牲)은 무엇이었는가?

“그는 근본(根本) 하나님의 본체(本體)시나 하나님과 동등(同等)됨을 취(取)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形體)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模樣)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服從)하셨으니 곧 십자가(十字架)에 죽으심이라”(빌 2:6-8)

 

○. “깨어진 하나님의 율법은 죄인(罪人)의 생명을 요구(要求)하였다. 온 우주(宇宙)에서 사람을 위하여 이 요구(要求)를 만족(滿足)시킬 수 있는 이는 한 분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 자신처럼 거룩하므로 하나님과 동등(同等)하신 분만이 범법(犯法)을 속죄(贖罪)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밖에는 아무도 타락(墮落)한 사람을 율법의 저주(詛呪)에서 속량(贖良)하여 하늘과 조화(調和)시킬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책(罪責)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매우 가증(可憎)하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틀림없이 분리시킬 죄의 수치를 자진해서 떠맡으실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비참(悲慘)의 심연(深淵)에까지 내려가실 것이었다.”(부조, 63)

 

○. “그분[예수]은 죄인과 죄의 형벌(刑罰) 사이에 서실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일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그분은 하늘의 왕의 높은 지위를 버리시고 자신을 낮추어 사람으로 지상(地上)에 나타나셔서 사람이 견뎌야 할 각종 슬픔과 유혹(誘惑)을 친히 경험(經驗)하실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그분께서 시험 받게 될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게 되기 위하여 필요하였다(히 2:18). 교사로서의 그분의 사명이 마치게 될 때에 그분은 악인들의 손에 넘겨지고 사단이 그들을 충동하여 끼치는 모든 모욕과 고통을 받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그분은 가장 잔인한 죽음을 당하시고 하늘과 땅 사이에 범죄한 죄인으로 들림을 받아야 하였다. 그분은 천사들이 차마 볼 수 없어서 얼굴을 가릴 정도로 무서운 고통의 긴 시간을 견뎌내셔야 하였다. 그분은 자기가 져야 할 온 세계의 죄의 짐, 곧 율법을 범한 죄책을 지심과 동시에 아버지께서 얼굴을 숨기심으로 인한 영혼의 고뇌도 견디셔야 하였다.”(부조, 64)​

 

○. 사람의 구원(救援)을 위해 천사(天使)들이 감당(堪當)해야 할 희생(犧牲)은 무엇이었는가?

“모든 천사(天使)들은 부리는 영(靈)으로서 구원(救援) 얻을 후사(後嗣)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 1:14)

 

○. “사람의 구원(救援)을 확보(確保)할 수 있는 유일(唯一)한 경륜(經綸)에는 온 하늘의 무한(無限)한 희생(犧牲)이 포함(包含)되었다. 그리스도께서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을 천사들 앞에서 공개(公開)하셨을 때에 천사들은 기뻐할 수 없었다.”(부조, 64)

 

○. “천사(天使)들은 그들의 사령관(司令官)의 발 앞에 부복(仆伏)하여 그들이 사람을 위한 희생(犧牲)이 되겠다고 제안(提案)하였다. 그러나 천사의 생명은 죄의 빚을 갚을 수 없었다. 사람을 창조하신 분께서만 인간을 속량(贖良)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셨다. 그러나 천사들은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에 일익을 담당(擔當)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히 2:9, 1:14)을 받은 자가 되실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인성(人性)을 취하실 때 그분의 능력은 그들의 능력에 못 미칠 것이었으며 그들은 그분께서 고통(苦痛)당하실 때 그분께 수종(隨從)들고, 그분의 힘을 북돋워 드리고 위로(慰勞)할 것이었다. 그들은 또한 구원(救援)얻을 후사(後嗣)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부리는 영(靈)이 될 것이었다. 그들은 은혜(恩惠)의 백성들을 사단과 악한 천사들의 세력(勢力)으로부터 그리고 사단이 끊임없이 그들의 주위를 두르는 어두움으로부터 보호(保護)할 것이었다.”(부조, 64-65)​

 

○.<예언(豫言)된 구속(救贖)의 약속(約束)> ​

○. 인류의 첫 부모에게 주어진 구속(救贖)의 약속(約束)은 무엇이었으며, 이 예언(豫言)은 언제 성취(成就)될 것인가?

 

○. “내가 너로 여자(女子)와 원수(怨讐)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後孫)도 여자의 후손(後孫)과 원수(怨讐)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後孫)은 네 머리를 상(傷)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傷)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 “우리의 첫 부모가 듣는 데서 선언(宣言)된 이 선고(宣告)는 그들에게는 한 약속(約束)이었다. 이 선고(宣告)는 사람과 사단 사이의 전쟁(戰爭)을 예언(豫言)했을 뿐만 아니라, 큰 원수(怨讐)의 세력이 최후에 부서질 것도 선언하였다.”(부조, 66)

 

○. “약속된 구주의 출현에 관한 분명하고 특별한 예언들이 주어져 왔었다. 아담에게 구속주의 오심에 관한 보증이 주어졌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창 3:15)고 사단에게 선고하신 선언은 우리의 첫 부모에게 주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될 구속의 약속이었다.”(행적, 222)

 

○. “(창 3:15 인용) 인류의 타락 후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내리신 이 선고는 동시에 하나의 예언이었다. 그것은 종말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에 미치고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참가할 대쟁투를 미리 보여준다.”(쟁투, 505)​

 

○.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은 단지(但只) 인류의 구원(救援)만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다. 어떤 다른 목적(目的)도 있는가?

“이제 이 세상의 심판(審判)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世上)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요 12:31-32)​

 

○.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에는 사람을 구원(救援)하는 일보다 더 광범위(廣範圍)하고 깊은 목적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만을 위하여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오신 것은 단순히 이 작은 세계의 거민(居民)들이 하나님의 율법(律法)을 마땅히 생각해야 할대로 생각(生覺)하게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온 우주(宇宙) 앞에 하나님의 품성(稟性)을 옹호(擁護)하시기 위해서였다. … 사람의 구원(救援)을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행위(行爲)는 사람들이 하늘에 접근(接近)하는 일을 가능(可能)하게 할 뿐 아니라, 사단의 반역(叛逆)을 처리하심에 있어서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이 정당(正當)하심을 온 우주 앞에 옹호(擁護)할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영원 불변성(不變性)을 확립(確立)할 것이며 죄의 본질(本質)과 결과(結果)들을 나타낼 것이었다.”(부조, 68-69)​

 

○.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고난(苦難)을 당하시고 사망(死亡)을 맛보신 것은 인류(人類)의 구속(救贖)을 완성(完成)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주님께서는 또한 율법을 크게 하고 존귀(尊貴)케 하기 위하여 오셨다. 율법은 마땅히 존중(尊重)을 받아야 하는바 그분께서 오신 것은 이 세상의 거민(居民)들이 율법을 그처럼 존중(尊重)히 여기도록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주(宇宙)의 모든 세계에 하나님의 율법이 변경(變更)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立證)하기 위함이었다. 만일 율법의 요구(要求)가 취소(取消)될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율법을 범한 죄를 속하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生命)을 바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율법의 불변성(不變性)을 입증(立證)한다. 무한(無限)한 사랑이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을 강권(强勸)하여 죄인들을 구원(救援)하고자 치르게 한 희생(犧牲), 곧 이 속죄(贖罪)의 계획(計劃)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할 수 없었던 그 희생은 공의(公義)와 자비(慈悲)가 하나님의 율법(律法)과 그분의 정부(政府)의 기초(基礎)가 된다는 사실(事實)을 온 우주(宇宙)에 실증(實證)해 준다.”(쟁투, 50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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