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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제13과-애굽에서의 이스라엘- (핵심 Q & A) -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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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2-06-20 17:34 조회1,5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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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과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06월 25일 (안) / 日沒: 19시 57분)

 

(06월 19일) (日) 요셉에게로 간 야곱 

 

(Q)~(창 46:7~27) 야곱의 온 가족(家族)(70명)이 애굽으로 내려갔다는 사실(事實)이 중요(重要)한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A)~○. 야곱 가족의 애굽 이주사건(移住事件)이 가지는 의의(意義)는 ①.가나안 족속(族屬)으로부터의 순결성보존(純潔性保存)과 ②.야곱 가족(家族)에서 이스라엘 “국가(國家)”로의 전환(轉換). ③.많은 시련(試鍊)을 통한 선민(選民)의 연단(鍊鍛)과 그리고 ④.먼 훗날 출애굽 사건(事件)을 통해 구속(救贖)의 참된 의미(意味)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며, 결론적(結論的)으로는 타락(墮落)한 인류(人類)의 구원(救援)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計劃) 속에서 이루어진 그것으로서의 영적의미(靈的意味)가 있다.

 

(06월 20일) (月) 애굽에 정착(定着)한 야곱 

 

(Q)~(창 47:7) 야곱이 자신(自身)보다 더 높은 지위(地位)에 있던 바로를 축복(祝福)했다는 사실이 갖는 중요성(重要性)은 무엇입니까?

 

(A)~○. 야곱이 자신보다 더 높은 지위(地位)에 있던 바로에게 축복(祝福)했다는 것은 구약시대(舊約時代)에 족장(族長)들의 축복권(祝福權)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신적(信的) 공수(公須) 동맹계약(同盟契約)(창 12:3)에 근거(根據)하고 있으며, 또한 족장(族長)들은 가정(家庭)의 제사장(祭司長) 역할(役割)도 겸(兼)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제사장(祭司長) 자격(資格)으로서 복(福)을 빌 수 있었다. 여기서 야곱은 그동안 바로 가 베풀어준 호의(好意)에 감사(感謝)하는 마음으로 자신보다 훨씬 높은 지위(地位)에 있던 바로를 축복함으로 택(擇)함. 받은 백성으로서 그가 가진 영적 우월성(靈的優越性)을 나타냈다.

 

(06월 21일) (火)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祝福)한 야곱 

 

(Q)~(창 48:8~22) 야곱이 다른 손자(孫子)들을 제외(除外)하고 요셉의 두 아들만을 축복(祝福)한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A)~○. <(창 48:8~22)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는 야곱>

야곱이 그의 열두 아들을 축복(祝福)하기에 앞서 특별(特別)히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앞서 축복하는 장면(場面)은 이스라엘 집의 장자권(長子權)이 “르우벤”에게서 요셉에게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대상 5:1~2). 한편 언약(言約)의 축복과 관련(關聯)하여 본문(本文)에서는 언약(言約)의 이름인 “이스라엘”이 계속(繼續) 사용되고 있다. 이는 야곱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선(善)하게 인도(引導)하신 하나님을 언급(言及)하면서 그 좋으신 하나님께서 자기 후손(後孫)들의 삶도 또한 선(善)하게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구(懇求)하며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祝福)한 것이다.

 

(06월 22일) (水) 그의 아들들을 축복(祝福)한 야곱 

 

(Q)~(창 49:1~28) 죽음을 앞둔 야곱이 그의 아들들에게 했던 축복의 영적(靈的)인 중요성(重要性)은 무엇입니까?

 

(A)~○. <야곱의 임종(臨終) 및 유언(遺言)>

가장 장엄한 시적(詩的) 형태로 제시(提示)된 임종 전(臨終前) 야곱의 예언적(豫言的) 유언(遺言)으로 성령(聖靈)의 감동(感動)을 받아 깊은 영적 통찰력(洞察力)을 가진 야곱은 그의 아들들 각자에 대한 유언(遺言)을 통하여 메시아 강림(降臨)을 핵(核)으로 하는 이스라엘 민족(民族)의 미래사(未來史)를 보다 선명(宣明)하게 예언(豫言)했다. 

 

(06월 23일) (木) 약속(約束)의 땅에 대한 소망(所望) 

 

(Q)~(창 49:29~50:21) 창세기(創世記)의 결말(結末)에는 소망(所望)을 나타내는 어떤 사건(事件)들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A)~빛과 생명으로 시작(始作)되었던 창세기의 역사(歷史)는 슬픈 조종(弔鐘)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족장(族長) 야곱의 장례식(葬禮式)과 요셉의 죽음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죽음에서 한 민족(民族) 이스라엘을 탄생(誕生)시켰고, 요셉의 죽음을 출애굽 사건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던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50장은 죽음 속에서도 새로운 삶의 소망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생명과 탄생(誕生)의 장(章)이다. 이처럼 성도(聖徒)의 죽음은 더 큰 삶을 위한 시작(始作)이요 탄생(誕生)이다.. (고후 5:1; 딤후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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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卷末附錄)>



<제13과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06월 25일 (안) / 日沒: 19시 57분)

 

(06월 19일) (일) 요셉에게로 간 야곱 

 

(Q)~(창 46:7~27) 야곱의 온 가족(家族)(70명)이 애굽으로 내려갔다는 사실(事實)이 중요(重要)한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A)~○. 야곱 가족의 애굽 이주사건(移住事件)이 가지는 의의(意義)는 ①.가나안 족속(族屬)으로부터의 순결성보존(純潔性保存)과 ②.야곱 가족(家族)에서 이스라엘 “국가(國家)”로의 전환(轉換). ③.많은 시련(試鍊)을 통한 선민(選民)의 연단(鍊鍛)과 그리고 ④.먼 훗날 출애굽 사건(事件)을 통해 구속(救贖)의 참된 의미(意味)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며, 결론적(結論的)으로는 타락(墮落)한 인류(人類)의 구원(救援)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計劃) 속에서 이루어진 그것으로서의 영적의미(靈的意味)가 있다.

 

○. <(창 46:27) 칠십(七十) 명>

모세는 야곱의 66명의 자손(子孫)에 야곱, 요셉 그리고 요셉의 두 아들을 더하여 애굽에 정착(定着)한 야곱의 가족수(家族數)를 도합(都合) 70명으로 계산(計算)했다. 그러나 사도행전(使徒行傳)에서는 “스데반”이 총계(總計)를 70명이 아니라 75명으로 계산(計算)한 것은(행 7:4) 아마도 그가 종종 신약(新約)에 인용(引用)된 헬라어 구약번역본(舊約飜譯本)[70인 역] 을 사용(使用)한 헬라어권 유대인(행 6:1 주석 참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번역본(飜譯本)은 요셉의 다른 (후의) 다섯 명의 후손(後孫)을 포함(包含)하고 있다(참조 70인 역의 20, 27절). (창 46:27, 재림교주석)

 

○. (창 46:8) 본(本) 절(節)부터 27절까지 애굽으로 이주(移住)한 야곱 가족(家族)의 명단(名單)이 나열(羅列)된다. 그런데 이들의 총수(總數)가 우연(偶然)찮게 70명인 점은 중요(重要)한 영적의미(靈的意味)를 지닌다. 왜냐하면, 70은 7 x 10으로 구성(構成)된 수(數)로서 히브리인들의 숫자 개념(槪念)에 의하면 7은 하나님의 신성(神性)을 상징(象徵)하며, 10은 완전수(完全數) 또는 만수(滿數)를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굽으로 이주(移住)한 야곱의 가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그분의 권속(眷屬)이 된 모든 성도를 예표(豫表) 하는 총수(總數)임을 알 수 있다.

 

○. (창 46:26) 애굽에 들어간 자(者). 

본 절에 의하면 야곱의 가족으로서 애굽에 이주(移住)한 자(者)의 총수(總數)는 야곱 자신(自身)과 이미 애굽에 거주(居住)하던 요셉과 그의 두 아들을 제외(除外)할 경우(境遇) 66명, 그들을 모두 포함(包含)시킬 경우 70명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행 7:14)에 의하면 이와는 달리 총 75명으로 나와 있다. 따라서 일부(一部) 성급(性急)한 사람들은 이를 성경자체(聖經自體)의 모순(矛盾)으로 단정(斷定)할 수도 있다. 하지만 75명이란 숫자는 70명의 숫자에 요셉의 다섯 손자(孫子) 들(창 50:23)을 더한 수(數)일 뿐이다. 따라서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의 기록간(記錄間)에는 전혀 모순(矛盾)이 존재(存在)하지 않는다(Pulpit).(창 46:26, 만나주석)

 

(06월 20일) (월) 애굽에 정착(定着)한 야곱 

 

(Q)~(창 47:7) 야곱이 자신(自身)보다 더 높은 지위(地位)에 있던 바로를 축복(祝福)했다는 사실이 갖는 중요성(重要性)은 무엇입니까?

 

(A)~○. 야곱이 자신보다 더 높은 지위(地位)에 있던 바로에게 축복(祝福)했다는 것은 구약시대(舊約時代)에 족장(族長)들의 축복권(祝福權)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신적(信的) 공수(公須) 동맹계약(同盟契約)(창 12:3)에 근거(根據)하고 있으며, 또한 족장(族長)들은 가정(家庭)의 제사장(祭司長) 역할(役割)도 겸(兼)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제사장(祭司長) 자격(資格)으로서 복(福)을 빌 수 있었다. 여기서 야곱은 그동안 바로 가 베풀어준 호의(好意)에 감사(感謝)하는 마음으로 자신보다 훨씬 높은 지위(地位)에 있던 바로를 축복함으로 택(擇)함. 받은 백성으로서 그가 가진 영적 우월성(靈的優越性)을 나타냈다.

 

○.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祝福)하매>

야곱이 바로에게 베푼 축복은 단순(單純)한 문안(問安) 인사(人事)가 아니다(삼하 16:16, 왕상 1:25, 단 2:4, 3:9). 구약시대(舊約時代) 족장(族長)들의 축복권(祝福權)은 일찍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契約)에 근거(根據)한 것이다(12:3). 따라서 야곱은 그러한 축복권을 가지고 그동안 바로가 베풀어 준 호의(好意)에 감사(感謝)하는 마음으로 개인(個人)의 번영(繁榮)과 안녕(安寧)을 비는 축복을 했을 것이다. (창 47:7, 만나주석)

 

○.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祝福)하매>

야곱은 왕(王)들에게 드리는 “왕(王)이여 만세수(萬歲壽)를 하옵소서!”(삼하 16:16; 왕상 1:25; 단 2:4 등)와 같은 통례적(通例的)인 인사(人事)를 바로에게 하지 않았다. 여호와의 선지자(先知者)로서 자신의 위엄(威嚴)을 의식(意識)하면서 야곱은 하늘의 축복을 그에게 선언(宣言)하였다. (창 47:7, 재림교주석)

 

(06월 21일) (화)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祝福)한 야곱 

 

(Q)~(창 48:8~22) 야곱이 다른 손자(孫子)들을 제외(除外)하고 요셉의 두 아들만을 축복(祝福)한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A)~○. <(창 48:8~22)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는 야곱>

야곱이 그의 열두 아들을 축복(祝福)하기에 앞서 특별(特別)히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앞서 축복하는 장면(場面)은 이스라엘 집의 장자권(長子權)이 “르우벤”에게서 요셉에게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대상 5:1~2). 한편 언약(言約)의 축복과 관련(關聯)하여 본문(本文)에서는 언약(言約)의 이름인 “이스라엘”이 계속(繼續) 사용되고 있다. 이는 야곱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선(善)하게 인도(引導)하신 하나님을 언급(言及)하면서 그 좋으신 하나님께서 자기 후손(後孫)들의 삶도 또한 선(善)하게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구(懇求)하며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祝福)한 것이다.

 

○. 언약전수(言約傳受) 및 기업계승(基業繼承)으로 죽음을 앞둔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恩惠) 약속(約束)을 지닌 공인(公人) 이스라엘의 자격(資格)으로서 영적(靈的) 장자(長子)인 요셉에게 충실(忠實)히 가나안 언약(言約)을 전수(傳受)함과 동시(同時)에 두 아들로 대표(代表)된 두 몫의 기업(基業)을 요셉에게 계승(繼承)하고 있는 장면(場面)이다. 개인(個人) 야곱은 비록 죽지만 하나님의 언약(言約)은 후손(後孫)을 통하여 끊임없이 계승되고 있는 모습(模襲)을 볼 수 있다.

 

○.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그들의 출생(出生) 환경(環境)이나 혈통(血統)에도 불구하고 구속사(救贖史) 견지(見地)에서 양자(養子)로 삼는다. 즉 이것은 그들을 한 지파(支派)(요셉)의 두 갈래로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가족(家族)의 독립(獨立)된 일원(一員)으로서 공평(公平)하게 취급(取扱)하겠다는 약속(約束)이다. 훗날이 약속(約束)은 그대로 지켜져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의 다른 형제들과 같이 야곱의 친(親)아들로 취급(取扱)되었으며, 가나안 땅의 분할(分割) 때도 각기 한 지파(支派)로 인정(認定)받아 동참(同參)하게 되었다. (민 1:1~16, 신 34:2)

 

○. <(창 48:14 이스라엘이 우수(右手)를 펴서>

이것은 축복의 상징(象徵)으로써 안수(按手)가 사용된, 성경(聖經)상 최초(最初)의 기록(記錄)이다. 축복을 전(傳)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必要)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행동(行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실(事實)을 상징(象徵)하기에 부적합(不適合)하지는 않다. 따라서 이 안수(按手)는 영적(靈的)인 능력(能力)과 은사(恩賜)들을 전달(傳達)하는 한 방식(方式)으로 인식(認識)되어 왔다. 구약시대(舊約時代)에는 여호수아를 봉헌(奉獻)할 때 이 절차(節次)가 사용되었고(민 27:18, 23; 신 34:9), 신약 시대(新約時代)에는 교회(敎會)가 재직(在職)들을 임명(任命)하는 데 사용(使用) 되었으며(행 6:6; 8:17; 딤전 4:14; 딤후 1:6), 많은 이적을 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막 6:5; 8:23, 25; 행 9:17; 19:6; 28:8).

 

○. <(창 48:14) 이스라엘이 …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안수(按手)가 축복(祝福)을 위하여 시행(施行)된 최초(最初)의 경우(境遇)이다. 본래(本來) 안수(按手)란 자신이 가진 그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轉嫁)시키는 데 의미(意味)가 있는 행위(行爲)이다. 따라서 이러한 안수(按手)는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베풀거나 자신이 갖고 있는 초자연적(超自然的)인 은사(恩賜)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상징적(象徵的) 행위(行爲)로 자주 시행(施行) 되었다(48:13, 민 27:18, 신 34:9). 또한 직분자(職分者)를 세울 때도 안수(按手)를 하였는데 이는 안수(按手)하는 자가 지닌 권위(權威)나 능력(能力) 등을 안수받는 자(者)에게 전가(轉嫁)하여 그로 하여금 사역을 감당(堪當)케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행 6:6, 8:17, 딤전 4:14, 딤후 1:6).

 

○. <(창 48:15) 내 조부(祖父)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야곱은 요셉을 축복함에 있어서 특히 언약(言約)을 주신 하나님의 구원(救援) 행동(行動)을 강조(强調)하고 있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은 그들에게 언약(言約)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약속(約束)을 성취(成就)하신 분이다. 따라서 이 하나님이 장차(將次) 그들의 후손(後孫)인 요셉과 그 아들들을 보호(保護)하시며 그를 통하여 언약(言約)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야곱은 믿은 것이다.

 

○. <(창 48:15) 나(야곱)의 출생(出生)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야곱은 하나님을 그의 출생(出生)부터 시작(始作)하여 죽기 직전(直前)인 당시(當時)의 그 시점(時點)까지 자신을 보호(保護)하고 양육(養育)했던 목자(牧者)로서의 하나님으로 이해(理解)하고 있다. 이 사실은 그가 축복하는 요셉을 하나님이 보호(保護)하시리라는 보증(保證)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한 이 구절(句節)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牧者)로 부른 첫 구절(句節)로 볼 수도 있다(시 23:1, 28:29).

 

○. <(창 48:16) 나를 모든 환난(患難)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使者)>

야곱의 생애(生涯)는 고난(苦難)의 연속(連續)이었다. 그는 에서를 피(避)하여(창 27:42-44) 하란으로 갔으나 거기서도 라반 밑에서 20년간 고생(苦生)스러운 생활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라반으로부터 도망(逃亡)하여(창 31장) 가나안으로 왔으나 그의 딸 디나가 히위 족속(族屬)에게 강간(强奸)당한 사건으로 대살륙(大殺戮)에 휘말려 들었다(창 34:2). 또한, 그는 아들로부터 속임을 당하였고, 요셉을 잃은 슬픔으로 고통(苦痛)을 겪었다(창 37:33). 그 후에도 흉년(凶年)으로 인(因)하여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었다. 그러나 야곱은 이러한 환난(患難) 가운데서도 오히려 순간(瞬間)순간 하나님이 건져 주시는 은혜(恩惠)를 더욱 깊이 체험(體驗)할 수 있었다. 특히 여기서 처음 사용(使用)된 ‘건지다’에 해당하는 ‘고엘’은 다양한 용법을 지닌 말이다. 이 단어는 ‘속죄하다’, ‘성별(聖別)하다’라는 뜻을 지니며 특별히 인간에 대해 속죄(贖罪)하는 하나님의 사역(使役)과 더불어 하나님의 능력(能力)으로 포로(捕虜)된 상태(狀態)에서 석방(釋放)되는 이스라엘을 묘사(描寫)하는 데 사용(使用) 되었다(출 6:6, 사 43:1). 이 구절(句節)에서는 이 단어(單語)가 바로 뒤에 나오는 ‘사자(使者)’라는 말과 더불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데 사용(使用)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많은 주 석(註釋)가들이 동조(同調)하고 있다(Aalders, Delizsch, Lange, Pulpit). 즉 ‘사자’에 해당하는 ‘말라크’는 단순(單純)한 천사(天使)가 아니라, 야곱이 얍복강에서 씨름할 때 나타났던 ‘여호와의 사자(使者)’(창 32:23-29) 곧 그리스도를 지칭(指稱)한다.….

 

○. <(창 48:21)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야곱은 가나안 땅의 회복(恢復)에 대한 언약(言約)(창 28:15)의 성취(成就)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그는 전능(全能)한 하나님을 믿으므로 이 약속(約束)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신앙(信仰)을 가졌다. 야곱은 특히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라는 사상(思想)을 강조(强調)하였다. 천지(天地)를 창조(創造)한 전능(全能)한 하나님께서 항상(恒常) 함께 계시고 힘이 되신다는 사상은 이방(異邦) 땅에서 고난(苦難)을 겪게 될 그의 후손(後孫)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창 48:21), 만나주석)

 

○. <(창 48:19) 그의 아우가 … 여러 민족(民族)을 이루리라>

모세 시대(時代)의 첫 번째 인구 조사(人口調査)에서 에브라임 지파(支派)는 40,500명의 남자를 가진 반면, 므낫세 지파는 32,200명을 가졌다. 두 번째 인구 조사에는 에브라임 지파(支派)가 32,500명, 므낫세 지파(支派)가 52,700명으로 나타났다(민 1:33-35, 26:28-37). 그러나 그 후 왕국분열(王國分裂) 시대(時代)에 이르러 에브라임 지파는 다시 북왕국(北王國)에서 강력(强力)한 영향력(影響力)을 행사하는 지도적(指導的)인 위치(位置)를 차지했다(사 7:2, 호 4:17, 13:1). 따라서 야곱의 예언(豫言)은 역사적(歷史的)으로 온전(穩全)히 성취(成就)되었음을 알 수 있다.

 

(06월 22일) (수) 그의 아들들을 축복(祝福)한 야곱 

 

(Q)~(창 49:1~28) 죽음을 앞둔 야곱이 그의 아들들에게 했던 축복의 영적(靈的)인 중요성(重要性)은 무엇입니까?

 

(A)~○. <야곱의 임종(臨終) 및 유언(遺言)>

가장 장엄한 시적(詩的) 형태로 제시(提示)된 임종 전(臨終前) 야곱의 예언적(豫言的) 유언(遺言)으로 성령(聖靈)의 감동(感動)을 받아 깊은 영적 통찰력(洞察力)을 가진 야곱은 그의 아들들 각자에 대한 유언(遺言)을 통하여 메시아 강림(降臨)을 핵(核)으로 하는 이스라엘 민족(民族)의 미래사(未來史)를 보다 선명(宣明)하게 예언(豫言)했다. 

 

○. <그 특징(特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이 예언은 향후(向後) 전개(展開)되는 선민(選民)의 역사(歷史)가 하나님의 주권적(主權的) 섭리(攝理) 속에 포함(包含)된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라는 사실을 입증(立證)해 준다. ②.이 예언은 노아의 예언(창 9:25~27)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족장(族長)들의 예언 중 가장 발전된 내용의 구속사(救贖史) 적 내용이다. ③.예언된 순서는 먼저 레아(창 49:3~15), 주 첩(妾)(창 49:16~21) 그리고 라헬(창 49:22~27) 등 모계(母系)에 의해 분류(分類)된 다음, 그 모계(母系) 안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예언되었다. ④.이 중대한 예언은 육신(肉身)이 가장 약할 때인 임종시(臨終時) 선포(宣布)됨으로써 약(弱)한 자를 들어 위대한 일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설적(逆說的) 섭리(攝理) 현상(現象)을 보여준다. (고전 1:27~29); 고후12:9~10). ⑤.각 아들의 죄(罪)와 선행(善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후 저주(詛呪)와 축복(祝福)이 내려지고 있다. 여기서 철저(徹底)한 보응(報應)의 원리(原理)를 깨닫게 되며, 특히 죽음을 앞둔 야곱은 아들들을 축복하면서 유다 지파(支派)를 통하여 이 땅에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내다 보았고 그 속에서 구원(救援)의 소망(所望)을 발견하였다.

 

○. (창 49:1). 회중이 모아졌다(2절). 

"너희는 함께 모이라," 그들 모두가 그들의 업무를 떠나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고 그의 유언을 듣도록 보내라. 비록 그가 종종 죽음으로 인해 처자식을 빼앗겼다고 생각했었지만, 임종하면서 그의 모든 자식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자기 주위에 보는 것은 야곱에게 위안이 되었다. 마지막 순간의 그를 본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유용했으나, 그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뿐만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그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그는 각자에게 다른 사람이 듣는 데서 그 말할 바를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원칙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증거와 조언과 위안에 의해서도 유익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에게 다시, 또다시 함께 모이는 것을 끊지 말라는 것), 그들이 아브라함의 아들들과 이삭의 아들들처럼, 서로 갈라지지 말고 합동하여 하나의 백성을 이룰 것이라는 예언을 암시했다.

 

○. (창 49:2)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예언을 받은 자는 야곱의 아들들임과 동시에 언약의 자손인 이스라엘의 아들이다. 본 장에서 진행되는 야곱의 축복은 인간적인 요소와 언약적인 요소가 복합되어 있다. 즉 그들은 야곱의 육체적인 아들로서 또한 이스라엘 각 지파의 영적인 대리자로서 예언을 받은 것이다.

 

○. (창 49: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제 야곱은 그의 열두 아들에게 영적 유산을 나타내 보였다. 그는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을 들으라고 그들에게 엄숙히 권고하였다. 거룩한 예지로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축복하며(창 27장) 그들 가족의 미래 역사를 예언적으로 가르쳐 주었듯이, 야곱은 열두 아들로 대표된 온 민족의 미래를 광범위한 개요(槪要)로 묘사하였다. 그 아들들의 품성이 그들에 관한 예언의 시발점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영이 임종 직전의 부조에게 그의 자손의 미래 역사를 계시하므로 야곱은 그의 아들들의 품성을 통해 그들의 후손으로 이루어질 지파들의 미래 발전을 간파하였다. 그는 틀림없는 예언적 통찰을 가지고 각 지파에게 국가에서의 지위와 중요성을 할당하였다. (창 49:1 재림교주석)

 

(06월 23일) (목) 약속(約束)의 땅에 대한 소망(所望) 

 

(Q)~(창 49:29~50:21) 창세기(創世記)의 결말(結末)에는 소망(所望)을 나타내는 어떤 사건(事件)들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A)~빛과 생명으로 시작(始作)되었던 창세기의 역사(歷史)는 슬픈 조종(弔鐘)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족장(族長) 야곱의 장례식(葬禮式)과 요셉의 죽음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죽음에서 한 민족(民族) 이스라엘을 탄생(誕生)시켰고, 요셉의 죽음을 출애굽 사건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던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50장은 죽음 속에서도 새로운 삶의 소망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생명과 탄생(誕生)의 장(章)이다. 이처럼 성도(聖徒)의 죽음은 더 큰 삶을 위한 시작(始作)이요 탄생(誕生)이다. (고후 5:1; 딤후 4:6~8)

 

<창세기 49:29~50:21)에서 우리에게 소망(所望)을 주는 위대(偉大)한 주제(主題)는

①.이스라엘이 약속(約束)의 땅으로 들어가리라는 소망(所望)이 나타나 있으며

②.하나님께서는 악(惡)을 선(善)으로 바꾸시리라는 소망(所望)이 나타나 있고

③.하나님께서는 타락(墮落)한 인류(人類)를 구원(救援)하시리라는 소망(所望)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통하여 얻을 교훈(敎訓)은 하나님의 섭리(攝理)가 마침내는 승리(勝利)하리라는 소망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가 경험(經驗)하게 될 구원(救援)과 회복(回復)을 주는 소망(所望)으로 창세기(創世記)는 끝을 맺고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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