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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예수 우리의 신실하신 형제 -(핵심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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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2-01-18 02:39 조회1,3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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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과 예수, 우리의 신실(信實)하신 형제(兄弟)>

                                                      (2022년1월22일(안)17시44분)


(01월16일 (일) <구속자(救贖者)로서의 형제(兄弟)>


(Q)~(히브리서 2:14~16)에서 “자녀들은 혈육(血肉)에 함께 속하였으며,.…그도(예수님도) 혈육(血肉)에 속하심은” 이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A)~본 말씀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형상(形像)으로 오신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즉 “같은 모양(模樣)으로 혈(血)과 육(肉)을 함께 지니심은(성육신(聖肉身)은 그리스도께서 성도(聖徒)들과 형제(兄弟)가 되기 위한 방법(方法)임을 밝히고 있으며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죄(罪)가운데 있는 인류(人類)를 구원(救援)하시고 죄와 사단의 권세(權勢)를 멸절(滅絶)시키기 위함이다. 또한 (히브리서 2:16)의 “아브라함의 자손(子孫)을 붙들어 주려”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성육신(聖肉身)은 인간(人間)구원(救援)이 목적(目的)이며 특히 믿음의 조상(祖上) 아브라함의 영적(靈的)후손(後孫) 곧 아브라함의 언약(言約)(창세기17장, 누가복음 19:10, 로마서 11장~16장)에 참여(參與)한 모든 성도(聖徒)들을 위한 것임을 가리키며 죄인(罪人)의 모습으로 가장 가까운 친척(親戚)이 되셔서 우리를 죄의 속박(束縛)으로부터 구속(救贖)하심을 말씀하는 것이다.


(01월17일 (월) <형제(兄弟)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심>


(Q)~(히브리서 2:11)에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人間)을 “형제(兄弟)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던 이유(理由)는?


(A)~⑴.히브리서 저자(著者)는 그리스도인들의 박해(迫害)와 핍박(逼迫)등으로 믿음의 위기(危機)에 봉착(逢着)하면 믿음을 떠날 모든 이들에게,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신분(身分)이 이러한 분임에도 불구하고 창조주(創造主)를 피조물(被造物)과 형제(兄弟)라는 같은 범주(範疇)에 놓는다는 것이 당황(唐惶)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겸손(謙遜), 예수님의 낮아지심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라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의 형제(兄弟)라 함을 부끄러워 아니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굳게 붙잡고 믿으라는 권면(勸勉)의 말씀이다.

 

⑵. ‘형제(兄弟)’는 영적(靈的)인 의미(意味)의 형제(兄弟)로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가족 관계(家族關係)를 의미(意味)한다(마12:49,50, 막3:33-35, 눅8:21, 롬8:29).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형제 관계(兄弟關係)를 이루며, 가족 중에서 맏아들이 되신다(히1:6). 본 절의 이러한 확언(確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勇氣)를 준다(11:16).” (히 2:11, 만나주석)


⑶.우리를 하늘의 영광(榮光)가운데 이끄신 분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셔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분이 되셨습니다. 거룩한 제사장(祭司長)으로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우리와 하나 되셔서 우리들을 “내 형제(兄弟),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子女)들” 로 삼으셨습니다.

 

(01월18일 (화) <우리와 같은 혈(血)과 육(肉)>


(Q)~(히브리서 2:14)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혈(血)과 육(肉)으로 라는 표현(表現)으로 우리 인간(人間)들과 똑 같은 인성(人性)을 취(取)하셨다고 이야기하는 히브리서의 저자(著者)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意圖)는 무엇인가? 


(A)~"예수님"은 우리 와 똑 같은 구조(構造)를 가진 인간으로써의 모습(模襲)이지만 어떠한 죄를 짓지 않으셨으며(히브리4:15) 또한 거룩하고 더러움이 없으며 죄에서 떠나 계시는 분이신(히브리7:26) 혈(血)과 육(肉)을 가지신 즉 인성(人性)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구원(救援)을 위한 흠(欠)없는 제물(祭物)로 설명(說明)하기 위한 의도(意圖)이다.


⑴. ‘혈(血)과 육(肉)’은 유한(有限)하고 연약(軟弱)한 인간(人間)의 본성(本性)을 가리킨다(Lincoln, Mitton). 그리스도인들이 싸워야 할 적(敵)들은 이런 연약(軟弱)하고 유한(有限)한 인간 본성(本性)이 아니라 악(惡)한 영적(靈的) 세력(勢力)들이다. 악(惡)한 영적(靈的) 세력(勢力)들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全身甲冑)를 입은 자들에게는 위협(威脅)이나 해(害)가 될 수 없으나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계속적(繼續的)으로 위험(危險)한 존재(存在)가 된다(Bruce, Lincoln).


⑵.<사단이 추방(追放)된 것은 십자가(十字架) 때에(마 27:50; 요 3:14-17 참조)>

   그는(그리스도) 인성(人性)으로 사단을 추방(追放)하였다. 에덴에서는 사단이 그 인성(人性)에 대하여 승리(勝利)한 승리자(勝利者)가 되었다. 그 원수(怨讐)는 인성(人性)을 입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정복(征服)된 것이다. 구주(救主)의 신성(神性)의 능력(能力)은 감추어졌다. 그는 인성(人性)을 입으시고 하나님의 능력(能力)을 전적(全的)으로 의지(依支)함으로써 이기었다(청년 지도자 1901. 4. 25).


⑶.<창조주(創造主)와 피조물(被造物)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聯合)됨>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 곧 창조주(創造主)와 피조물(被造物)이 연합(聯合)되었다. 하나님의 본성(本性)과 아담의 본성(本性)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 안에서 만난다. 그가 자신(自身)의 피로 구속(救贖)의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인간의 경험(經驗)을 모두 다 겪으셨기 때문에, 인간을 위하여 시험(試驗)을 당하시고 또 이기셨기 때문에, 자기는 죄가 없었지만 죄와 수치(羞恥)와 죄의 무거운 짐을 지셨기 때문에, 그는 인간의 대언자(代言者)와 중보자(仲保者)가 되신다. 이것이야 말로 시험(試驗)을 당해 몸부림치는 영혼(靈魂)들에게 참으로 놀라운 보증(保證)이 아니겠는가! 이것이야 말로 증인(證人)으로서 지켜보고 있는 온 우주(宇宙) 앞에 그리스도는 “자비(慈悲)하시고 충성(忠誠)된 대제사장(大祭司長)”이 되실 것이라는 참으로 확실(確實)한 보증(保證)이 아닌가!(원고 141, 1901).


(01월19일 (수) <고난(苦難)을 통(通)해 온전(穩全)하게 됨> 


(Q)~(히브리 2:10, 18절)에 "예수님"은 도덕적(道德的)으로나 윤리적(倫理的)으로 결함(缺陷)도 없으시며 완벽(完璧)한분이셨는데 왜 고난(苦難)을 통(通)해 온전(穩全)하게 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靈的意味)는 무엇을 가르쳐주기 위한 히브리서 저자(著者)의 의도(意圖)인가?


(A)~⑴.예수님"은 도덕적(道德的)으로나 윤리적(倫理的)으로 결함(缺陷)도 없으시며 완벽(完璧)한분이셨는데 왜 고난(苦難)을 통(通)해 온전(穩全)하게 된다는 말씀은 우리를 구원(救援)하기 위한 제물(祭物)되시며 제사장(祭司長)되시며 구속주(救贖主)로써의 완전한 법적(法的)타당성(妥當性)보여주시는 것이요 이러한 모본(模本)을 통해서 우리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입증(立證)해보이시는 영적 의미(靈的意味)로 불순종(不順從)에서 순종(順從)으로가 아니라 주권(主權)과 지배(支配)에서 복종(服從)과 순종(順從)의 자리로 나가심을 히브리서 저자(著者)는 죄인들이 깨닫고 배우기 위(爲)함으로 기록하고 있다.


⑵.그리스도께서 “시험(試驗)을 받아 고난(苦難)을 당하셨”다는 말씀의 의미(意味)를 깨달을 수가 있다면 좋으련만! 그(예수님)는 죄의 오점(汚點)이 없었지만 그의 거룩한 본성(本性)에서 우러나온 우아(優雅)한 감정(感情)이 그분에게는 말할 수 없이 고통(苦痛)스러운 죄악(罪惡)과 맞부딪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인성(人性)을 가지고 그 반역(反逆)의 괴수(魁首)를 대면(對面)하였다. 그리고 그는 맨손으로 그의 보좌(寶座)의 원수(怨讐)를 저지(沮止)하였다. 그리스도는 단 하나의 생각으로라도 유혹(誘惑)에 굴복(屈伏)치 않았다. 


⑶.<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完全)한 순종(順從)이 가능(可能)함>

   그리스도는 인성(人性)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대표자(代表者)로 서셨다. 그가 사단과의 투쟁(鬪爭)에서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創造)하신 그대로 하나님과 연합(聯合)한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요구(要求)를 다 순종(順從)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사인즈 1898. 6. 9).”(화잇주석, 히 2:14-16)


⑷.사단은 인간의 마음에서 그가 발판을 삼을 수 있는 어떤 점을 찾아낸다. 그것은 마음에 품고 있는 몇 가지 죄된 욕망(慾望)으로서 이것에 의해서 사단은 그의 권리(權利)를 주장(主張)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關係)할 것이 없”다고 하셨다. 유혹(誘惑)의 폭풍(暴風)들이 그에게 몰아쳤지만 그것들은 하나님을 향한 그분의 충성심(忠誠心)을 흔들어 놓을 수가 없었다(리뷰 1887. 11. 8).


⑸.우리 구원(救援)의 주님은 고난(苦難)으로 온전(穩全)케 되셨고, 그의 영혼(靈魂)은 속죄 제물(贖罪祭物)이 되셨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恩寵)을 거두어 가셨기 때문에 두려운 어두움이 그의 영혼을 휘감은 것은 필연적(必然的)인 일이었다. 이는 그가 죄인(罪人)의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어두움은 모든 죄인이 다 경험(經驗)해야 한다. 의(義)로운 분이 하나님의 정죄(定罪)와 진노(震怒)를 받아 고통(苦痛)을 받아야 했다. 앙심(怏心)을 품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의 형벌(刑罰)을 받아 고통(苦痛)을 당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가장 큰 슬픔을 가지고 그를 그리워하였기 때문이었다. 신성(神性)의 능력(能力)들이 이렇게 분리(分離)된 것은 영원(永遠)한 시대(時代)를 통(通)하여 두 번 다시없을 것이다.(원고 93, 1899).”(화잇주석, 히 2:10)


(01월20일 (목) <우리의 모본(模本)으로서의 형제(兄弟)>


(Q)~어떻게 하면 우리도 우리의 모본(模本)으로서의 예수님과 같이 날마다 하나님을 온전(穩全)히 신뢰(信賴)하는 법(法)을 배울 수 있을까요?


(A)~⑴.성도(聖徒)들은 앞서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히 6:20)를 바라봄으로서 영적 승리자(靈的勝利者)가 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극심(極甚)한 고난(苦難)을 당하셨으나 승리(勝利)하셨고 이로써 하나님 우편(右便)에 앉는 영광(榮光)을 얻으셨다. 피곤(疲困)하여 낙심(落心)하지 않기 위하여 성도(聖徒)들이 당하는 고난(苦難)이 너무도 가혹(苛酷)하여 믿음의 경주(競走)에서 전의(戰意)를 상실(喪失)하게 될 때 고난(苦難)과 승리(勝利)의 대명사(代名詞)인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生覺)함으로 끝까지 인내(忍耐)할 것을 권면(勸勉)하는 말씀이다. 아무리 혹독(酷毒)한 고난(苦難)일지라도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苦難)을 생각(生覺)할 때 성도(聖徒)들은 충분(充分)히 견딜 수 있다. 성도(聖徒)가 신앙 경주(信仰競走)의 결승점(決勝點)까지 힘차게 달려갈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살아 역사(役事)하시는 성령(聖靈)의 사역(事役)을 통해 가능(可能)하게 된다. 


⑵.<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경우(境遇)나 순간(瞬間)에도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約束)을 전적(全的)으로 신뢰(信賴)하는 모본(模本)을 보여 주심으로 믿음의 모본(模本)이 되셨다. 그러므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克服)하고 마지막까지 인내(忍耐)할 수 있는 은혜(恩惠)와 능력(能力)을 위(爲)하여. 베드로가 갈릴리 광풍(光風)의 파도(波濤) 위를 걸을 때 깨달은 것처럼(참조 마 14:24~32), 구주(救主)에게서 시선(視線)을 돌리면 비록 잠시(暫時)일지라도 위험(危險)하다. 예수께 믿음의 눈을 계속(繼續) 고정(固定)하면 능력(能力)의 근원(根源)이신 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참고 극복(克服)하도록 힘을 줄 수 있는 그분과 끊어지지 않는 접촉(接觸)을 유지(維持)하게 한다. (성경주석, 히 1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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