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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기-제9과-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라- (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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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1-11-24 06:27 조회1,4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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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과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라>

                                           (2021년11월27일(안) 일몰:17시15분)

 

(11월21일(日) <미-이텐(Mi-yitten)- 간절(懇切)한 소망(所望)>

 

(Q)~구약성경(舊約聖經)말씀에 나타난 관용구(慣用句)중 하나가 <미-이텐(Mi-yitten)>이라는 문자(文字)인데 이는 “누가 줄 것인가?” “~를 원(願)하노라”라는 뜻으로 누군가가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는데 이 말씀에는 어떤 의미(意味)로 기록(記錄)하고 있는지 설명해 보세요? 

 

(A)~<편의상 교과 내용을 참고>

대부분의 언어(言語)와 마찬가지로 성서(聖書) 히브리어에도 관용구(慣用句)가 많이 사용됩니다.  

구약(舊約)의 한 관용구(慣用句)는 “Mi-yitten”입니다. Mi는 "누구?"라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yitten은 "줄 것이다"를 의미(意味)합니다.  

말 그대로 “미이 텐”은 "누가 줄까?" 라는 어원(語源)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러나 구약성경(舊約聖經)에서 이 구절(句節)은 소원(所願), 욕망(慾望), 무언가를 간절(懇切)히 원(願)하는 사람의 개념(槪念)을 표현(表現)합니다.  

예를 들어,

 ⑴.<애굽에서 탈출(脫出)한 이스라엘 자손(子孫)>

“만일 우리가 애굽에서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출애굽기 16:3, NIV) 광야에서 도전에 직면하여 외쳤습니다. “만일”이라는 표현은 mi-yitten에서 나왔습니다. 

⑵. “시편 14:7”에서 다윗은 "오 이스라엘의 구원(救援)이 시온에서 났도다! "히브리어는 "오"라고 말하지 않고 “미-잇텐”이라고 합니다. 

⑶.욥기 6:8에서 그가 외칠 때 "오, 나의  요청(要請)"(NKJV)- "오"는 다시 mi-yitten에서 나온 것입니다. 특히

⑷. “신명기5:29절에 초점(焦點)을 맞추어 ”신명기 5:22-29“을 읽어 보시면, "Oh"로 번역(飜譯)된 단어(單語)가 ”mi-yitten“에서 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意味)합니까?  

☞. 여기 창조주(創造主) 하나님, 공간(空間)과 시간(時間)과 물질(物質)을 만드신 분, 우리 세계(世界)를 존재(存在)하게 하신 분, 아담에게 생명(生命)의 호흡(呼吸)을 불어넣으신 분, 일반적(一般的)으로 인간(人間)의 약점(弱點)과 한계(限界)와 관련(關聯)된 구절(句節)을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자유의지(自由意志)의 실재(實在)에 대한 얼마나 좋은 예(例)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대쟁투(大爭鬪) 속에서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에는 한계(限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能力)의 사용(使用)은 하나님도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짓밟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가 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무료(無料)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선택(選擇)하고, 그분의 인도(引導)하심에 마음을 열고, 선택(選擇)하고, 하루하루, 매 순간(瞬間)순간 응답(應答)할 자유(自由)가 있습니다. 

 

<요점(要點)>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존중(尊重)하시는 하나님께서 “선(善)과 악(惡)”의 대쟁투(大爭鬪)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人間)들에게 강제적(強制的)으로 하나님을 선택(選擇)하라고 강요(强要)하지 않으시면서 다만 “생명의 길”을 선택(選擇)하라고 간절(懇切)한 소망(所望)의 복음(福音)으로 기록된 신명기(申命記)의 참으로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깨닫기 바라십니다.

 

(11월22일(月) <나를 찾으면 만나리라>

 

(Q)~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約束)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우상숭배(偶像崇拜)에 빠질 것을 예지(豫知)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럴지라도 저들에게 어떤 호소(呼訴)를 하셨는가?

 

(A)~⑴.예지(豫知)는 이론적(理論的)으로는 내다볼 수 없다고 생각(生覺)되는 앞날의 일을 미리 지각(知覺)하는 초감각적(超感覺的)인 지각(知覺)을 가리킨다. 예견(豫見)이라고도 하며 이에 대한 능력(能力)을 예지력(豫知力)으로 부른다.

 

⑵.(신명기 4:31)에서 “하나님께서 너를 버리지 아니 하시며” 여기서 “버리다”(히, 라파)란 말은 ‘풀다’, ‘놓치다’, ‘손을 떼다’란 의미(意味)이다. 따라서 본(本) 절(節)은 하나님께서 택(擇)한 백성 이스라엘을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의미(意味)이다. 그러나 이는 이스라엘 자체(自體)에게서 어떤 합당(合當)한 조건(條件)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버리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그들 열조(烈祖)와 맺은 언약(言約)(창 15:12-21)을 잊지 않고 준행(遵行)하시기 위해서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도(聖徒)들이 비록 죄악(罪惡)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할지라도 끝내 버림당하지 않고 구원(救援)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오로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예수님 자신(自身)의 피로써 맺어주신 ‘새 언약(言約)’ 때문이다.(히 9:15).

 

⑶.우상(偶像)을 만들고 경배(敬拜)할지라도 이에 잘 못을 깨닫고 진심(眞心)으로 회개(悔改)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면 만나리라고 언약(言約)하신 사랑의 기별(奇別)을 말씀하고 계신다.

 

(11월23일(火) <트슈바(Teshuvah)-돌아오라>

 

(Q)~(신명기 30:2)의 “여호와께 돌아와”의 “트슈바(teshuva)”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미(意味)는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인가?

 

(A)~⑴.히브리어로 회개(悔改)를 뜻하는 “트슈바(teshuva)”는 영어로 "repentance(리펜턴스, 회개(悔改))"라고 번역(飜譯)하지만, 이것은 본래 의미를 온전히 전달(傳達)하진 못한다. 

사실 “트슈바”는 “리펜턴스”보다 더 넓고 깊은 의미(意味)를 가진다. "되돌린다(Return)"라고 해야 옳다.

 

⑵.회개(悔改)라는 것은 죄(罪)를 슬퍼하고 죄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意味)하는 것이다. 

우리가 죄가 얼마나 악(惡)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면 죄를 버리지 않게 될 것이요, 또한 진심(眞心)으로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우리 생애(生涯)에 진정(眞正)한 변화(變化)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회개(悔改)의 참 뜻을 이해(理解)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많은 사람은 저희의 악행(惡行)이 저희 자신(自身)에게 고통(苦痛)을 미치게 할까 두려워 저희가 범죄(犯罪)한 것을 후회(後悔)하고 혹(或)은 외모적(外貌的) 변화(變化)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聖經)상 의미(意味)로서는 회개(悔改)가 아니다. 저들은 죄 그것보다도 그 고통(苦痛)을 슬퍼함이다. (정로의 계단-회개(悔改)장(章)

 

⑶.하나님께서 원(願)하시는 진정(眞正)한 회개(悔改)란 

  ㉮. 먼저 자기의 잘못을 겸손(謙遜)히 깨닫고 뉘우치는 것이다. 

  ㉯. 다음으로 과감(過感)히 그 죄악(罪惡)의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골 3:1-10).

 

⑷.불행(不幸)하게도 인류가 타락(墮落)한 이후(以後)로 죄를 짓는 일은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쉽고 자연(自然)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트슈바(teshuva)”의 어근(語根)에서 볼 수 있듯이 진심(眞心)으로 회개(悔改)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로 선택(選擇)만 한다면 그들을 다시 받아 주실 것이라는 복음(福音)의 말씀이다.

 

(11월24일(水) <온 마음을 다하여>

 

(Q)~참된 회개(悔改)의 증거(證據)는 어떻게 나타날 수 있습니까?

 

(A)~⑴.<“마음 … 뜻 … 힘을 다하여.>

여기서 ‘마음’에 해당(該當)하는 원어(原語) ‘레밥’은 지정의(知情意)를 포함(包含)하는 인간의 내적(內的), 정신적(精神的) 본질(本質)을 가리킨다. 그리고 ‘뜻’에 해당(該當)하는 ‘네페쉬’는 ‘영혼(靈魂)’, ‘생명(生命)’, ‘호흡(呼吸)’ 등으로 번역(飜譯)되는데(창 1:30, 욥 41:21). 여기서는 육체(肉體)와 정신전체(精神全體)를 포괄(包括)한 전인격(全人格)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힘’에 해당하는 ‘메오드’는 육체적(肉體的), 정신적(精神的) 활동력(活動力) 및 모든 능력(能力)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상(以上)과 같은 구분(區分)은 순전(純全)히 여자적(如字的)인 것일 뿐, 사실이 세 단어(單語)는 인간의 전 인격(全 人格)과 모든 노력(努力)을 강조(强調)하는 중언법적(重言法的) 표현이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전적(全的)인 헌신(獻身)과 사랑을 의미(意味)한다.(마 22:37, 눅 10:27, 롬 12:1).

 

⑵.<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인간은 그 마음에 두 주인(主人)을 겸(兼)하여 섬길 수 없다. 

왜냐하면 한편을 사랑하면 자연히 다른 편은 소홀(疏忽)히 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 능력(能力)의 한계(限界)이기 때문이다(마 6:24). 

마음을 분산(分散)시키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마음 중심(中心)에 모셔 그분만을 경외(敬畏)하라는 의미(意味)이다(마 10:37).” (신 6:5, 만나주석)

 

⑶.<너는 마음을 다하고.> 

그리스도교는 사람의 존재(存在) 자체(自體)와 마음, 애정(愛情), 능력(能力) 등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요구(要求)한다.(살전 5:23). 여기서 “마음”으로 번역(飜譯)된 단어(單語)는 일반적(一般的)으로 동기(動機), 애정(愛情), 감정(感情), 욕구(慾求), 의지(意志) 등을 일컫는 용어(用語)이다. 마음은 행동(行動)의 원천(源泉)이며 생각(生覺)과 감정(感情)의 중심(中心)이다(출 31:6; 36:2; 대하 9:23; 전 2:23). 

⑷. 참된 회개(悔改)의 증거(證據)는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順從)하기로 선택(選擇)하는 것이 참된 회개(悔改)의 증거(證據)가 되는 것이다.

 

(11월25일(木) <회개(悔改)하고 변화(變化)를 경험(經驗)하라>

 

(Q)~개혁(改革)과 변화(變化)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그 원인(原因)이 무엇일까요? 

 

(A)~⑴.개혁(改革)이 따르지 않으면 참된 회개(悔改)가 아니다. 

이 말의 원어(原語) ‘메타노에이테’은 고전(古典) 헬라어에서 순수(純粹)한 의미(意味)로는 ‘마음을 바꾼다.'는 뜻을 가지며, 통속적(通俗的)으로는 단순히 ‘무슨 일을 후회(後悔)한다’라고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도입된 이 단어의 용례(用例)는 ‘새 행실(行實)로 돌아온다’는 히브리어 ‘슈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백성들로 여호와와 맺은 언약에로 돌아오라는 예언자(豫言者)의 외침이다. 

즉 유대인 중에도 믿음 없는 자가 있고, 우상 숭배자가 있기에 그러한 불신(不信)과 영적(靈的) 음행(淫行)에서 돌이키라는 구약적 의미인 것이다(Alford). 실로 이 말은 머리로서만 계획(計劃)을 수정(修整)하고 감정적(感情的)으로만 후회(後悔)하는 정도가 아니라, 죄와 죄책(罪責)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서는(Turn ye) 전인격적(全人格的)인 참회(懺悔)인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恩惠)로 말미암아 메시아를 영접(迎接)하는 마음과 행위(行爲)의 철두철미(徹頭徹尾)한 변화(變化) 전반(全般)을 가리킨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의 행위가 근본적(根本的)으로 올바른 궤도(軌道)를 이탈(離脫)해 있으며, 따라서 인간은 철저한 변화가 절대 요청되는 존재라는 것이 전제(前提)되어 있다(롬 3:10). 한편 이 같은 회개(悔改)는 합당(合當)한 열매를 맺음으로서만 참 회개(悔改)임이 증명(證明)된다.

 

⑵. ‘회개(悔改)하다’는 마음의 완전(完全)한 변화(變化)와 죄의 고백(告白)을 뜻한다. 마음의 변화(變化)란 전인격에 대한 것으로 죄와 불신(不信)에서 떠나 그리스도에게 향(向)하는 인격(人格) 그리고 신앙(信仰)과 그리스도를 통한 성결(聖潔)로 나아가는 인격(人格)에로의 변화(變化)를 의미한다.

 

⑶. 참된 회개(悔改)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과정(過程)이다. 세속적(世俗的)이고 죄를 사랑하는 마음을 변화(變化)시켜 그리스도의 말할 수 없는 사랑과 그분의 은혜(恩惠)의 매력(魅力)과 하나님의 탁월(卓越)하심을 깨닫게 함으로 영혼(靈魂)이 거룩한 사랑에 젖고 하늘의 신비(神秘)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죄인이 이러한 일들을 이해(理解)할 때, 그의 이전(以前) 생애는 가증하고 증오(憎惡)스럽게 보일 것이다. 그는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 앞에 그의 마음을 깨뜨리게 되며, 그리스도를 영혼(靈魂)의 생명과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이전(以前)의 쾌락(快樂)들을 버린다. 그는 새로운 마음, 새로운 애정(愛情), 새로운 관심(關心), 새로운 뜻을 갖는다. 그의 슬픔, 소망(所望), 사랑은 모두 새로운 것들이다. 육신(肉身)의 정욕(情慾), 안목(眼目)의 정욕(情慾), 이생의 자랑 등 지금까지 그리스도보다 더 좋아했던 것들은 이제 버려지고 그리스도께서 그의 생애의 매력(魅力)이 되며 그의 기쁨의 극치(極致)가 된다. (1보감, 253)

 

⑷. “참된 회개(悔改) 속에서 일어나는 기적(奇蹟)들이 있다. 

참된 회개(悔改)와 및 과거를 버리는 때에 틀림없이 따르는 투쟁(鬪爭)은 단지 승리(勝利)의 생활을 전(傳)하는 기별(寄別)이다. 죄의 쾌락(快樂)과 이기적(利己的)인 습관(習慣)을 버리는데 드려지는 희생(犧牲)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의 보고(보물창고)에 문을 여는 일에 불과하다. 회개(悔改)와 자복(自服)은 비록 괴롭고 쓰라릴지라도 모르지만 그러나 절대로 비열(卑劣)한 것은 참다운 용기(勇氣)가 필요하며 참으로 남자다운 일이다. 자복(自服)은 우리를 작게(위축)하는 대신에 우리를 하나님을 위하여 더 강(强)하게 더 크게 더 빛나게 만들어 준다. 

 

⑸.지금은 이 기적이 기적(奇蹟)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세상의 가장 위대(偉大)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기적(奇蹟)을 행하시는 능력(能力) 저편의 사람들이 아니다. 만일 그분과 동역자(同役者)가 되는 사람들이 그들의 의무(義務)를 용감(勇敢)하게 그리고 믿음으로 행하는 기회(機會)를 아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책임(責任) 있는 위치(位置)에 있는, 지적(知的)이며 영향력(影響力) 있는 사람들을 회개(悔改)시키실 것이다. 성령(聖靈)의 능력(能力)을 통하여 많은 이들이 거룩한 원칙(原則)을 받아들일 것이다. 예수의 사랑스러움과, 극기(克己), 희생(犧牲)의 모습을 바라볼 때에 자아 만족(滿足)하는 부자(富者)는 자신의 상태(常態)가 대조적(對照的)으로 비참(悲慘)하고, 가난(家難)하며, 눈멀고, 벗음을 보게 되며, 자신이 너무 왜소(矮小)하게 느껴져서, 자기보다는 그리스도를 더 좋아하게 되고, 영생(永生)을 붙잡게 될 것이다.”(높임, 293)

 

⑹.예수님은 죄인(罪人)들을 구원(救援)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 구원(救援)을 받아드릴 수 있는 유일(唯一)한 방법(方法)이 죄를 미워하고 참된 회개(悔改)로 마음을 변화(變化)시키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경험(經驗)하는 모두가 되라고 호소(呼訴)하심에 우리 모두 반응(反應)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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